秋 明 熙 자유기고가
修能(수능·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된 지 올해로 10년째다. 修能시험 수석합격자에 대한 기사는 입시철마다 신문 사회면을 커다랗게 장식했다. 수석들에 대한 보도를 보고 필자는 늘 의문을 가졌다.
그들은 정말로 공부가 쉬웠을까? 진짜 공부가 재미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과외는 받지 않고 하루에 일곱 시간 이상씩 자면서 학교공부에만 충실했던 것일까.이런 궁금증을 풀고 싶어 취재에 나섰다.
필자는 修能시험 시작 첫해인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역대 수능 수석 학생 8명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 그들은 저마다 개성이 달랐다. 출신지역도 이른바 「교육특구」라 불리는 서울 강남의 대치동에서부터 지방의 작은 市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인터뷰 결과, 실제로는 공부가 하기 싫고 힘들었던 적도 많았던 평범한 학생들이 많았다.
◈ 2002 修能 인문계 수석 윤석준
따분함 해소 위해 경시대회·TV 장학퀴즈 출전
윤석준(20)군은 2002년도 修能에서 변환표준점수 393점(원점수 392점)으로 인문계 전국수석을 차지했다. 현재 서울大 법학부에 재학 중이다. 중학교 생물교사인 아버지 尹德根(윤덕근·51)씨와 전주북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梁銀英(양은영·48)씨의 2남 중 맏이다. 전주에서 태어나 익산의 남성高를 졸업했다.
尹군은 대학 입학 후 부모님에게서 일절 학비와 용돈을 받은 적이 없다. 학비는 장학금으로,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해서 벌고 있다.
尹군은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공부만으론 따분했던 尹군은 각종 경시대회에 참가했었다. 서울에 올라오는 재미도 각종 경시대회 참가를 부추겼다. 경시대회 예선에 붙으면 서울에 가서 본선을 치를 수 있고, 본선에서 웬만큼만 하면 장려상은 받았다고 한다. 시상식 참석을 위해 또 서울에 갈 수 있기 때문에 경시대회만 있으면 열심히 준비했다고 한다.
「서울대 국어경시대회」, 「동아일보 영어경시대회」를 비롯해 방송사 퀴즈 프로그램에까지 출연했다. 결과적으로 尹군은 高3시절 2週에 한 번 꼴로 서울에 올라왔다. 尹군은 『경시대회는 성취감도 있고 재미도 있고, 「하면 된다」는 경험의 측면에서도 도움이 많이 됐다』며 「아, 그때도 어려웠지만 열심히 하니까 됐다」는 경험과 자신감이 공부에서는 중요하다고 말한다.
尹군은 특히 아리랑TV에서 하는 「퀴즈챔피언」이라는 영어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으로 꼽는다. 「퀴즈챔피언」은 영어판 장학퀴즈로 사회자가 영어로 질문하면 영어로 대답해야 한다.
高3이라 여유가 없었지만 또래 학생들이 영어로 문제를 푸는 게 신기했던 尹군은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친구들을 설득해 참가했다. 팀 이름은 「프린켑스」(Princeps·로마 원로원의 1인자). 尹군의 팀은 국내파 純토종 팀으로 5연승을 하고 期장원(Champion of the champions)까지 출전하는 기염을 토했다.
잦은 경시대회에 참가하며 高3생활을 나름대로 즐겁게 한 尹군이었지만 재수 때는 얌전히 공부만 했다. 尹군은 『고등학교 때는 공부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했지만 재수할 때는 집에다가 재수 비용을 대 달라고 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잘못하면 체면이 말이 아니라서 현역 때보다 열심히 했다』고 말한다.
尹군은 「서울대 국어경시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경시대회 금상 덕분에 수능시험을 치르기 10일 전에 「수시모집」으로 서울대 법학부에 합격을 했다. 尹군은 『수능 성적은 1등급(전국 등수로 16000등) 안에만 들면 됐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수능시험을 치른 것이 결과적으로 시험을 잘 보게 한 것 같다』고 말한다.
놀고 싶을 때는 놀아야
尹군은 조기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전주市 교육청에서 시내 각 중학교에서 2명씩 선발해 방학 때마다 수학과 과학을 교육하는 데 선발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과학실험을 제대로 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수학은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도 유치원 이외에는 다니지 않았다. 어머니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지만 어머니한테는 전혀 배우지 않았다.
尹군의 부모는 공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동기부여만 해 주실 뿐 직접 가르쳐 주거나 알려 주는 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질문을 하면 어디에 있으니까 찾아보라고 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먼저 책으로 찾아보게 하고 그 다음에 눈으로 꼭 확인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게 가장 훌륭한 교육이었다』고 尹군은 말한다.
尹군은 先行學習(선행학습)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반대다. 학교 과정대로 따라가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尹군은 단계적으로 차근차근해야 머릿속에 쌓이지 괜히 미리 해 놓으면 금방 까먹게 마련이라고 한다.
尹군은 私敎育(사교육)은 본인이 원하면 찬성하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시키는 거라면 100% 반대한다. 『어머니들은 그래도 학원 보내면 그 시간이라도 공부하겠지 하고 생각하시는데 절대 안 한다』는 게 尹군의 주장이다. 尹군은 『가능성이 가장 열려 있는 시기에 모든 걸 차단하고 공부만 하면 안 된다. 놀고 싶을 때는 놀아야 스트레스가 풀려 맑은 정신으로 공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 2001 修能 자연계 수석(만점) 李周炫
공부는 우직하게, 입시는 전략적으로
2001 修能에서 자연계 만점을 받아 서울大 전기공학부에 특차로 입학한 李周炫(이주현·20)군은 인터뷰를 하고 난 후인 지난 2월10일 해군에 입대했다. 어릴 때부터 「워킹홀리데이」(해외 근로연수)를 가는 것이 꿈이었다는 李군은 軍 제대를 해야만 워킹홀리데이의 자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또래 친구들보다 빨리 군대를 지원했다. 대학에서 HAM(아마추어 무선통신) 동아리 활동을 하고 로모(LOMO) 카메라, 인라인 스케이트, 스쿼시 등 운동을 좋아하는 건강한 청년. 李군의 부모님은 현재 흑석동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고 여동생이 하나 있다.
李군의 고등학교 때 좌우명은 「대학 가서 놀자」였다. 솔직히 공부가 즐겁지 않았다는 李군은 고등학생의 여건으로는 어차피 놀아 봤자 제대로 놀 수 없기 때문에 꾹 참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등학교 때 성적이 제일 중요하다. 인생을 놓고 볼 때 노력한 것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게 가장 많은 시기가 바로 고등학교 때라고 생각했다』
李군은 高1 초에 학원을 한 달 정도 다녔는데, 진도가 너무 빠르고 숙제가 많아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학원 수업을 소화만 할 수 있다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안 다니는 게 낫다는 게 李군의 지론이다.
대신 李군은 약하거나 어중간한 과목은 과외를 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과외에 맡겨 놓으면 신경을 많이 안 써도 되고 자기 수준에 맞출 수 있어서 편하기 때문이다. 언어영역과 외국어영역이 약했던 李군은 高2 말부터 高3 때까지 외국어영역 과외를 받았다. 언어영역은 문제집만 20권을 넘게 풀었다. 市中에 나와 있는 언어영역 문제는 거의 다 풀었다는 얘기다.
『못하는 과목은 양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 시간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李군은 그야말로 우직하게 공부한 스타일이다. 李군은 高3이 되면 약한 과목을 올리기 힘들므로 高2 겨울방학 때 약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잡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高3 때보다 오히려 高2 겨울방학이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李군은 방학 때는 私設(사설) 독서실보다 학교에서 주로 공부했다. 방학 때는 오전이 제일 버리기 쉬운 시간이다. 李군은 오전에는 강제성이 필요하므로 감독 선생님이 있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또 하루 종일 한 곳에서만 공부하면 지루하기 때문에 오전·오후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저녁에는 私設 독서실에서 공부했다.
李군의 내신성적은 중위권이었고 논술도 약해서 특차를 노렸다. 특차로 갈 경우 내신 적용이 안 되는 만큼 내신에 신경을 안 써도 되기 때문이다. 李군은 『입시에는 전략이 필요하며,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시제도를 잘 파악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법을 공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李군은 교과과정을 미리 배우고 들어가는 先行學習을 하더라도 6개월 이상 앞서가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너무 많이 진도를 나가 버리면 막상 공부할 때 지루해져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예습을 하더라도 한 학기 정도만 미리 해 두는 것이 좋다고 한다.
영재교육을 받지 않은 李군이지만 영재교육은 수능시험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단언한다. 초·중학교 때 영재교육을 받아도 어차피 고등학교 때 입시공부를 따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李군은 『중학교 때까지는 교과과정만 따라가면 되고, 고등학교 들어갈 때는 英·數만 미리 예습하고 시작하면 무리 없다』고 말한다.
수학만큼은 조기교육 필요하다
李군은 『수능은 돈으로 되지 않는 것』이라며 『수능은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족집게 과외도 필요없다. 하지만 1부터 10까지 배우면 그것들을 다 머릿속에 넣고 연결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 공부가 필요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옛날 학력고사·예비고사 때는 암기만으로도 통했을 것 같기도 한데 수능에서는 이해력·응용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李군은 수학만큼은 조기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李군은 계산능력은 어렸을 때 정해지는 것이라며, 본인의 경우는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 학습지를 꾸준히 공부해 어릴 때 계산능력의 기본을 닦은 것이 수학을 잘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李군은 어릴 때부터 신문 읽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며 독서하는 습관 역시 어릴 때부터 길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李군은 바쁜 부모님 밑에서 스스로 자율성을 배웠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님은 李군이 어릴 때부터 늘 세탁소 일로 바빴다. 부모님이 일에 매달려 있느라 李군을 제대로 보살필 시간이 없었지만, 李군은 어머니가 일하는 동안 혼자 책을 읽고 혼자 글자 연습을 했다. 부모님은 늘 믿어 주고 격려해 주긴 했지만 李군은 혼자 공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깨달았다.
李군은 입시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막연히 공부해야 하는 것보다 대학 가야 하는 이유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학은 일종의 유예기간, 자기 길을 찾아가는 시간이다. 고등학교 때는 그런 것을 맘대로 할 수 없지 않은가. 보통 사회에서는 한 번 실수하면 끝이지만 대학은 예비 사회인에게 일종의 울타리가 되어 준다. 대학에서는 고민하고 방황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그래서 대학을 가야 한다』
李군에게 대학에서도 공부를 잘하는지를 묻자 답은 『노코멘트』다. 대신에 『대학에서 공부 잘하려면 내신처럼 벼락치기를 잘해야 하는데 나는 벼락치기를 잘 하지 못한다』는 말로 힌트를 준다.
『대학생활은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대학 4년은 실패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실패해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경험을 많이 쌓고 있다. 하지만 「대학에서도 역시 공부를 안 하면 안 되는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李군에게 전기공학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순수공학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연구원이 되고 싶다. 무언가에 몰두해서 연구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 2001 修能 인문계 수석(만점) 張原碩
학교 공부를 무시하는 것 자체가 우등생의 길에서 벗어나는 일
2001 修能에서 만점을 받아 서울大 법대에 특차로 입학한 張原碩(장원석·21)군은 요즘 사법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다. 張군은 『예전에는 대학 3학년까지 놀고 고시를 준비하는 분위기였는데 요즘은 입학하자마자 공부를 시작하는 추세다』라며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방학 중에도 학교 도서관에 나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인생이 끝없는 경쟁의 연속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고 한다. 張군은 기업체에 다니는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만 둘이 있다.
張군은 한 해 재수를 했다. 현역 때는 경제학과를 지원했지만 재수를 하면서 법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시험을 치러 왔고 또 시험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사법)시험 한 번 더 보는 게 뭐 어떠냐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법대에 진학해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은 시험이 두렵다며 웃는다.
대학입시에서 수석을 한 학생들은 으레 『학원에 다니지 않고 학교 공부에만 충실했다. 잠도 충분히 자고 취미생활도 즐겼고 공부가 제일 재미있었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張군은 『솔직히 공부가 재미있었던 건 아니지만 단지 공부를 싫어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4當5落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건 사실 말이 안 된다. 네 시간 자면 어차피 학교 가서 졸게 된다. 나의 경우엔 6~7시간 정도 잤다. 일곱 시간 이상 자는 것은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3년 동안의 수험준비 생활은 장기전이다. 高 1, 2학년 때 무리하게 공부하다가 결정적인 高 3 때 오히려 지쳐서 망치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張군은 『고등학교 3년은 뒤로 갈수록 중요하다』며 『1, 2학년 때는 수학·영어 같은 오래 걸리는 과목을 미리 잘 닦아 놔야 한다』고 말한다. 張군은 학교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학교 과정을 잘 따라가는 게 정말 중요하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7~8시간으로, 제일 많은데 그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고 학원에 가서 공부한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학교에서 자고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는데, 학교 공부를 무시하는 것 자체가 우등생의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張군은 『의문이 있을 때 질문하고 답을 얻는 것이 중요한데, 일단 질문하려면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알아야 더 깊은 것을 질문할 수 있다. 모르면 질문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학교 수업의 흐름을 잘 타는 것이 중요하다』며 선생님들을 잘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신문 많이 읽고 생각하는 습관 길러야
張군은 어릴 때부터 수학에 관심이 많아 경시대회에 많이 참가했으며 수학 자체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張군은 『잘 모르면 재미가 없지만 어느 정도 알고 나면 공부에도 재미가 붙는다』며 『공부한 것들이 문제로 나오고 또 점수가 오르는 데서 성취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중학교를 마치고 수학·영어만 미리 배우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탓에 사회·자연과학 쪽은 잘 몰라 처음에 하기 싫었지만 어떤 과목이든 낯설음만 극복하면 나중에 쉬워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금방 따라갈 수 있었다.
張군은 다른 과목은 몰라도 영어·수학은 조기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어 역시 어릴 때부터 책·신문 등을 많이 읽고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張군은 딱히 조기교육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 학습지를 꾸준히 풀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對外 수학경시대회를 위해 특별운영한「산수반」에서 교과과정 이외의 수학 원리를 배운 것이 도움이 많이 됐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3년 동안 수학과외를 받았다.
張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재수할 때까지 학원은 쉬지 않고 계속 다녔다. 과외도 중간중간 필요에 따라 받았다. 영어가 약해서 학원과 과외의 도움을 받아 꾸준히 공부했다. 張군은 싫어하는 과목, 못하는 과목은 무조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張군은 『학원에 대해서 부정적이지 않다』며 『예전에 학력고사나 예비고사 시절의 선배들이 「학교 공부에만 충실했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예습·복습 철저히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한 말은 맞는 말이다. 단지 요즘은 예습을 학원에서 하는 것뿐이라며 제대로만 하면 학원수강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張군은 『요즘 강남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는 것을 두고 「돈이 있어야 공부도 잘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법대의 같은 科(과) 친구들만 봐도 사회 계층적으로 중산층 이상의 집안 아이들이 많다. 선배들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법대가 잘사는 집 애들이 오는 곳이 아니었고 개천에서 용 나듯이 지방의 가난한 집안 출신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집안도 좋고 지방보다는 서울 지역 출신이 많다고 한다』
부모님의 도움 컸지만 그래도 80% 이상이 자기 몫
『전반적으로 사교육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 않지만, 학원을 10개씩 다니면서 공부를 아예 사교육에 의존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張군은 『사교육이 보조적 수단이 되어야지 주체가 되어서는 절대 우등생이 될 수 없다』며 『중요한 것은 목적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기부여가 안 되면 유혹이 있을 때 빠져 나오기 힘들다. 넘어졌을 때 일어날 수 있도록 목적의식을 분명히 갖도록 주변 사람들(부모)이 도와 줘야 한다. 나의 경우엔 타인을 의식하는 편이고 자존심이 강해 남들보다 못하면 자책하고 또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책임감이 강했다』
張군은 『중학교 때부터 차근차근 기초를 잘 밟아야 한다. 언어영역을 위해 책도 많이 읽고 학교에서 배운 거 잘 이해하고 부족한 것은 학원 다니면서 선행학습하는 등 흐름을 잘 타는 게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수능은 다방면으로 느끼고 공부해야 한다. 내신, 본고사와는 다르다. 신문, 책, 잡지, 만화책까지도 많이 읽으면 도움이 된다. 어릴 때부터 무언가 읽는 걸 아주 좋아했다. 읽을거리를 찾다가 신문을 발견했다. 신문은 다양한 읽을거리가 있고 날마다 새로운 내용이기 때문에 즐겨 읽었다. 高3 때도 아침마다 학교에 신문을 가져가 읽었다. 수능이란 게 어차피 지문을 빨리 읽고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이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억지로 신문을 읽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즐겨야 한다』
초등학교 때는 아버지가 직접 수학을 가르쳤다. 부모님이 신경 써 주고 같이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공부에 관심을 갖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굳이 말하자면 나의 경우엔 공부에 있어서 어머니의 뒷받침이 차지한 비중이 20% 정도. 아무리 그래도 80% 이상은 자기의 노력이 없으면 안 된다』
◈ 1999 修能 전국 수석(修能 최초 만점) 吳承恩
책을 늘 가까이 한 부모님의 영향
1999년 大入수능에서 첫 「만점 수석」을 기록한 吳承恩(오승은·22)양. 1968년 大入 예비고사가 도입된 이래 학력고사, 수능시험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주관해 치른 大入시험 30년 동안 만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吳양이 처음이었다. 행정자치부 산하 지방행정연수원장으로 있는 吳양의 아버지 오형환(57)씨는 행정고시 8회 수석 합격자로 당시 이 父女의 국가고시 「신화」는 사람들의 놀라움과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吳양은 과학高 재학 시절 늘 수석을 차지하며 서울大 자연과학부 물리학부에 교장 추천 전형으로 입학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吳양은 알고 싶은 지식을 찾아 공부했다. 방학이면 다른 친구들이 다음 학기 예습 위주의 공부를 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과학자의 꿈을 간직한 그녀는 방학이면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용돈을 모아 수학·과학 교양서적과 각종 경시대회 문제집을 산 후 「완전정복」을 다짐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바스 피터슨의 「현대 수학의 여행자」는 吳양에게 과학자의 꿈을 키워 준 책이었다. 어머니 이우인씨는 풀지 못할 문제에 절망만 할 뿐이라며 극구 말렸지만 吳양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한성과학高 진학 후 吳양의 공부는 더욱 흥미가 붙었다. 다양한 과학실험으로 이루어진 학교공부와 심도 깊은 수학, 과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학高 수업이 단지 교과서 중심의 수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吳양의 수학·과학에 대한 흥미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었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은 미리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올라왔기 때문에 吳양은 처음에 주변 친구들을 따라가기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들이 수업과정을 이미 알고 있어 흥미가 떨어진 반면에 吳양은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기쁨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 결과적으로는 또래보다 뛰어난 활약을 보여 줄 수 있었다.
집안에 가득 널려 있던 지식의 寶庫, 다양한 책
吳양의 언어영역 만점의 배경에는 많은 독서를 통한 지식습득과 사고력의 향상이 주효했다. 시간 날 때마다 읽은 32권이나 되는 백과사전은 폭넓은 상식을 쌓아 주었다. 吳양은 부모님이 어린 시절 사 준 문학전집과 위인전 등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읽었다.
부모님은 뉴스 외의 TV 시청은 하지 않았고 다양한 책 읽는 모습을 吳양에게 보여 주었다고 한다. 사회비평 서적, 수필집, 신문 칼럼집 등이 가득한 책장과 주변에 널려 있던 책들이 자연스레 그녀가 책을 자주 접하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행자부 1급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아버지와 방산중학교 사회교사인 어머니 사이에 특별한 학습지도가 있을 듯하지만 吳양은 잔소리를 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무한한 신뢰가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얘기한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잔소리했던 것은 『이를 깨끗하게 닦으라』고 했던 것뿐이었다고 한다.
조기교육을 받은 것은 없지만 吳양의 어머니는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영어노트를 사주며 알파벳을 알려 주고 영어 테이프를 사 주며 반복해서 들으라고 주문했다.
吳양은 학생의 소질과 흥미를 살리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조기교육이 물론 학습효과와 능력계발에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공부는 지루함과 발전에 한계를 가진다고 말한다. 吳양은 자신의 경우 어린 시절 부모님의 강제적인 학습지도나 조기교육 없이 흥미계발을 위한 충분한 기회와 뒷받침이 있었기에 좋은 결과를 이룬 것이라고 강조한다.
◈ 1997 修能 전국 수석 徐晙豪
학교 수업 100% 이상 소화하고자 노력
徐晙豪(서준호·24)씨의 제주도 조그만 방에는 그가 수상한 온갖 상패와 상장으로 가득하다. 中3 시절 중앙일보·교육부 주최 전국 수학과학경시대회 금상을 수상했고, 고등학교 때도 제주도 과학경시대회 화학부문 1위, 전국 과학경시대회 화학부문 동상, 제주도 외국어경시대회 영어부문 1위를 차지하였다. 徐씨는 광양초등학교 시절부터 고교 졸업까지 1등을 놓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徐씨는 그날 그날의 수업내용을 완전히 소화하려고 노력했다. 평소 학교 수업을 위해 예습·복습을 철저히 했고, 과목별로 보충교재를 구해 필요할 때마다 참고하며 공부했다. 徐씨는 이 공부방법으로 교과서에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보충하고 학습내용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언제나 全과목을 예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徐씨는 특별히 수학 예습을 중심으로 했다.
徐씨는 학교에서 제시하는 교육 양을 따라가기에도 벅차다며 이를 잘 따라가기 위해 효율적인 학습계획의 준비와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徐씨는 이를 위해 방학이면 시행되는 보충수업에서도 예습·복습의 꾸준한 학습으로 페이스를 늦추지 않았다.
徐씨는 오전 7시쯤 등교해 오후 자율학습이 끝난 뒤에도 학교 독서실 「면학당」에서 공부하였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학교 독서실에서 밤 11시까지 공부하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생활을 유지했다.
徐씨의 수석 합격 바탕에는 그가 나온 제주 대기高의 토론학습법이 있었다. 徐씨는 高득점의 원인을 『응용력과 이해의 폭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던 토론 중심의 학습』이라고 말한다.
『방과 후 수학반 시간에 문제 풀이를 발표하고 토론을 자주 했다. 이것은 단순히 수학문제 해법을 선생님께 듣는 것이 아닌 직접 설명을 통해 더욱 깊이 이해하고 그와 관련된 원리와 지식을 습득하는 기회였다. 인문 과목 수업에는 발표 수업이 활발하게 도입되어 언제나 다양한 토론이 오갔고 이때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훈련이 사고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품어 온 과학자의 꿈
徐씨는 학창시절 수학과 화학 과목을 제일 좋아했다. 그의 수상경력이 모두 이와 관련된 것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수학반·과학반 등을 통해서 알게 된 지식에 많은 흥미와 관심을 가졌다. 각종 경시대회를 준비하며 몰두했던 어려운 문제 풀이가 오히려 수학, 과학의 매력에 그를 흠뻑 빠지게 했다.
徐씨는 어린 시절 과학 교양서적들을 읽으며 과학자의 꿈을 키워 나갔다. 특히 중학교 시절에 구독한 「과학동아」와 고등학교 때 읽은 게리 주커브의 「춤추는 물리」는 물리학도로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徐씨의 아버지 서우종(47·제주시의회 전문위원)씨와 어머니 고영실(41·제주도여성회관 상담계장)씨는 집에서는 공부하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고 단지 생활에 성실하도록 분위기만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徐씨의 어머니는 『아침밥을 잘 챙겨 주고 신문을 스크랩해 준 것 외에는 달리 해 준 게 없다』며 『식사시간에 대화로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얘기했다. 徐씨 역시 『부모님께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인정해 주고 이해해 주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말한다.
徐씨는 현재 서울大 물리학부를 마치고 병역특례업체 원자 현미경 제조회사인 「PSIA」에서 근무하고 있다. PSIA는 나노(nano)기술을 제품에 응용하는 국가 지정 연구소다.
◈ 1996 修能 전국 수석 李正元
충분한 수면과 자신만의 교과서 학습법, 우수한 친구들과의 스터디로 재미있게 공부
1996년도 수능시험은 예년에 비해 무척 어려웠다. 1995년엔 190점을 넘은 학생만도 수백 명에 달했지만 李正元(이정원·25)씨는 200점 만점에 188.6점으로 최고득점을 차지하였다.
그로부터 6년 후, 李군의 연락처를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했던 기자는 뜻밖의 곳에서 그를 발견했다. 스탠포드 대학에 유학 중인 1995년 修能 전국 수석 鄭盛澤(정성택)씨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가 근무하는 연구실에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은 사람이 다름 아닌 李正元씨였다. 서울大 전기공학부 선후배인 鄭盛澤씨와 李正元씨는 같은 연구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李씨는 하루 8시간의 충분한 수면이 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첫 번째 비결이라며 모두가 알다시피 수면 부족은 최적 능력발휘에 많은 장애를 유발한다고 설명한다.
두 번째 비결은 자신만의 교과서 학습법이다. 李씨는 『고등학교 교과서는 고등학생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쉽게 잘 설명해 준다. 따라서 여러 번 정독함으로써 핵심사항은 반드시 암기하였고, 다양한 책과 신문을 읽음으로써 교과서가 자세히 다루지 못한 부분을 보충했다』고 말한다.
李씨는 영어공부를 위해 평소 외국문학원서를 즐겨 읽었다. 특히 고등학년 2학년 여름방학 때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원서로 독파했다고 한다. 그는 영역본까지 포함해 이 소설을 무려 다섯 번이나 읽었다.
음악에 남다른 관심과 재주를 가지고 있던 李씨는 언제나 헨델의 「메시아」를 틀어 놓고 공부할 정도로 클래식 음악광이었다. 李씨는 공부할 때 클래식 음악이 집중력을 향상시켜 준다고 말한다.
李씨는 고등학교 시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개인적으로 사교육을 받았을 거라고 말한다. 李씨는 『사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사교육이 공교육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주고 있는 건 사실이다. 조기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특별한 재능을 가진 학생들에게 조기교육을 시키는 것은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李씨는 미국의 대학교들은 산업체와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李씨는 스탠포드 대학에서도 한국 학생들의 수준이 다른 나라 학생들에 비해 우수해 한국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며 기술强國 한국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고 밝혔다.
◈ 1995 修能 전국 수석 鄭盛澤
신중하게 고려한 현실적 학습계획으로 끝까지 정진
鄭盛澤(정성택·26)씨는 고등학교 시절 고교생 국제 수학올림피아드 동상 수상으로 이미 해외에 이름 석 자를 알렸다. 鄭씨는 부산과학高 수석 졸업에 1995년 수능시험 전국 수석, 서울大 수석 입학 그리고 학점 4.3 만점에 4.24로 수석 졸업한 그야말로 수재다. 대학교 때도 국내 대학생 수학경시대회 非전공자 분야에서 2등을 했다. 鄭씨는 1998년 미국 스탠포드大 석사과정(전자공학) 입학 때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성적장학금(연간 3만4000달러)을 받았다. 현재 ADSL을 개발한 벨코어 교수의 지도 아래 광대역밴드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鄭씨는 자신의 학습방법에 특별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우선 주어진 과제에 대해 파악하고 그 일을 위해 어떤 일들이 필요한지 생각해 본 후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들을 가려내 능률적인 학습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나갔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鄭씨는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이 일을 왜 하고 있나」를 먼저 생각해 보고,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그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 만족스러운 답변을 내리지 못하면 과감히 그만두고, 아니면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정진한다고 말한다. 鄭씨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야심에 찬 무리한 학습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도중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실수를 저지른다』고 말한다.
鄭씨는 특별한 조기교육이나 사교육을 받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대학입시 준비를 위해 시중의 거의 모든 학습지를 독파했다고 한다. 아무리 과학高 학생이라 해도 다른 수험생들과 같은 대학입시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대학에 가기 위한 입시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공부보다 성실한 자세를 강조
鄭씨의 아버지 정구용(49)씨는 부산에서 소아과 의사이고, 어머니 이복순(46)씨는 전직 생물교사다. 공부와 관련해 부모님의 특별한 지도는 없었지만 부모님의 평소 생활습관이 鄭씨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鄭씨는 부모님으로부터 『늘 계획해서 노력하되 주위를 돌아보며 인간다움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鄭씨는 중학교 시절 법조인이나 언론인을 희망하였다. 과학高로 진학하는 바람에 이 꿈은 멀어져 갔지만 기자직에 대한 동경과 관심은 아직도 많다고 한다. 대학 시절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행사기간 일간스포츠 학생기자 활동을 하였고, 마지막 학기에는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강좌를 수강하기도 했다.
鄭씨는 미국 학생과 한국 학생의 다른 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노는 애들은 한국 애들보다 더 미친 것처럼 놀고, 공부하는 애들은 한국 학생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노는 애들에게 공부하라는 사람들도 없고, 공부하는 학생한테 세상도 좀 알고 살라고 충고하는 사람도 없다는 점이다』
◈ 1994 修能·본고사 서울대 수석 崔智錫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재미를 익혀 주는 게 중요하다』
1994년도 수능과 본고사를 합쳐 서울大 법학부에 수석으로 입학한 崔智錫(최지석·28)씨. 기업체에 다니는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을 두고 있으며 잠실高를 졸업했다. 崔씨는 현재 원주에 있는 모 부대에 법무관으로 복무하고 있다.
공부에 대해서 묻자 『고등학생 때는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지 않습니까. 당시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기 싫다고 생각하면 그 다음 선택이 난감해져요.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이왕이면 즐겁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답한다. 崔씨는 입시공부하는 것 자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가지 할 줄 아는 것 중에서 공부가 제일 나았고 공부가 가장 경쟁력 있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고등학생 때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을 빨리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崔씨는 최근 몇 년간 「재수생들이 강세」라고 나오는데,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며 재수할 때 강북 종로학원에서 공부했는데 그 해에도 역시 재수생들이 강세였다고 설명한다. 修能 수석 최고참인 崔智錫씨에게 입시 문제와 조기교육 문제, 사교육에 대한 생각 등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재수 때 입시제도가 바뀌어서 두렵지는 않았나.
『입시제도가 바뀌어서 오히려 좋았다. 공부한 걸 또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공포심을 갖는다고 해서 시험을 안 볼 수도 없지 않은가』
―修能과 본고사, 학력고사를 다 경험했는데 비교한다면.
『학력고사와 수능의 성격이 다르다고 하는데 학력고사든 수능이든 객관식이라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학력고사 체제에서 공부한 것들이 수능으로 바뀌면서 전혀 쓸모없게 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나의 경우엔 매우 유용했다. 학력고사가 암기 위주라면 이때 암기했던 지식들이 수능에서 매우 유용했던 것이다. 응용, 이해하기 위해서는 암기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입시문제의 방향은 암기 위주가 아닌 응용 위주여야 하겠지만 학생들은 암기를 기본으로 해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조기교육에 대해서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어릴 때부터 수학·영어를 배워서 남들보다 조금 앞서나가는 것이 자신감 측면에서 보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영어는 초등학교 때 어머니한테 기초적인 것을 미리 배웠지만 이렇다 할 조기교육은 받지 않았다. 그때는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그랬다. 조기교육 열풍도 없었고 그냥 평온하게 어린 시절을 잘 놀면서 보냈다』
―후배 수능 수석자들이 어릴 때부터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해 신문이나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는데.
『읽는 게 중요하다는 것에는 찬성한다. 영상매체보다는 활자매체가 중요하다.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재미를 익혀 주는 것이 필요하다. 글을 많이 읽고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야 공부하는 능력이 커진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말로 공부가 쉬웠을까? 진짜 공부가 재미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과외는 받지 않고 하루에 일곱 시간 이상씩 자면서 학교공부에만 충실했던 것일까.이런 궁금증을 풀고 싶어 취재에 나섰다.
필자는 修能시험 시작 첫해인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역대 수능 수석 학생 8명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 그들은 저마다 개성이 달랐다. 출신지역도 이른바 「교육특구」라 불리는 서울 강남의 대치동에서부터 지방의 작은 市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인터뷰 결과, 실제로는 공부가 하기 싫고 힘들었던 적도 많았던 평범한 학생들이 많았다.
◈ 2002 修能 인문계 수석 윤석준


尹군은 대학 입학 후 부모님에게서 일절 학비와 용돈을 받은 적이 없다. 학비는 장학금으로,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해서 벌고 있다.
尹군은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공부만으론 따분했던 尹군은 각종 경시대회에 참가했었다. 서울에 올라오는 재미도 각종 경시대회 참가를 부추겼다. 경시대회 예선에 붙으면 서울에 가서 본선을 치를 수 있고, 본선에서 웬만큼만 하면 장려상은 받았다고 한다. 시상식 참석을 위해 또 서울에 갈 수 있기 때문에 경시대회만 있으면 열심히 준비했다고 한다.
「서울대 국어경시대회」, 「동아일보 영어경시대회」를 비롯해 방송사 퀴즈 프로그램에까지 출연했다. 결과적으로 尹군은 高3시절 2週에 한 번 꼴로 서울에 올라왔다. 尹군은 『경시대회는 성취감도 있고 재미도 있고, 「하면 된다」는 경험의 측면에서도 도움이 많이 됐다』며 「아, 그때도 어려웠지만 열심히 하니까 됐다」는 경험과 자신감이 공부에서는 중요하다고 말한다.
尹군은 특히 아리랑TV에서 하는 「퀴즈챔피언」이라는 영어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으로 꼽는다. 「퀴즈챔피언」은 영어판 장학퀴즈로 사회자가 영어로 질문하면 영어로 대답해야 한다.
高3이라 여유가 없었지만 또래 학생들이 영어로 문제를 푸는 게 신기했던 尹군은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친구들을 설득해 참가했다. 팀 이름은 「프린켑스」(Princeps·로마 원로원의 1인자). 尹군의 팀은 국내파 純토종 팀으로 5연승을 하고 期장원(Champion of the champions)까지 출전하는 기염을 토했다.
잦은 경시대회에 참가하며 高3생활을 나름대로 즐겁게 한 尹군이었지만 재수 때는 얌전히 공부만 했다. 尹군은 『고등학교 때는 공부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했지만 재수할 때는 집에다가 재수 비용을 대 달라고 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잘못하면 체면이 말이 아니라서 현역 때보다 열심히 했다』고 말한다.
尹군은 「서울대 국어경시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경시대회 금상 덕분에 수능시험을 치르기 10일 전에 「수시모집」으로 서울대 법학부에 합격을 했다. 尹군은 『수능 성적은 1등급(전국 등수로 16000등) 안에만 들면 됐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수능시험을 치른 것이 결과적으로 시험을 잘 보게 한 것 같다』고 말한다.

尹군은 조기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전주市 교육청에서 시내 각 중학교에서 2명씩 선발해 방학 때마다 수학과 과학을 교육하는 데 선발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과학실험을 제대로 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수학은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도 유치원 이외에는 다니지 않았다. 어머니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지만 어머니한테는 전혀 배우지 않았다.
尹군의 부모는 공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동기부여만 해 주실 뿐 직접 가르쳐 주거나 알려 주는 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질문을 하면 어디에 있으니까 찾아보라고 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먼저 책으로 찾아보게 하고 그 다음에 눈으로 꼭 확인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게 가장 훌륭한 교육이었다』고 尹군은 말한다.
尹군은 先行學習(선행학습)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반대다. 학교 과정대로 따라가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尹군은 단계적으로 차근차근해야 머릿속에 쌓이지 괜히 미리 해 놓으면 금방 까먹게 마련이라고 한다.
尹군은 私敎育(사교육)은 본인이 원하면 찬성하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시키는 거라면 100% 반대한다. 『어머니들은 그래도 학원 보내면 그 시간이라도 공부하겠지 하고 생각하시는데 절대 안 한다』는 게 尹군의 주장이다. 尹군은 『가능성이 가장 열려 있는 시기에 모든 걸 차단하고 공부만 하면 안 된다. 놀고 싶을 때는 놀아야 스트레스가 풀려 맑은 정신으로 공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李군의 고등학교 때 좌우명은 「대학 가서 놀자」였다. 솔직히 공부가 즐겁지 않았다는 李군은 고등학생의 여건으로는 어차피 놀아 봤자 제대로 놀 수 없기 때문에 꾹 참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등학교 때 성적이 제일 중요하다. 인생을 놓고 볼 때 노력한 것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게 가장 많은 시기가 바로 고등학교 때라고 생각했다』
李군은 高1 초에 학원을 한 달 정도 다녔는데, 진도가 너무 빠르고 숙제가 많아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학원 수업을 소화만 할 수 있다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안 다니는 게 낫다는 게 李군의 지론이다.
대신 李군은 약하거나 어중간한 과목은 과외를 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과외에 맡겨 놓으면 신경을 많이 안 써도 되고 자기 수준에 맞출 수 있어서 편하기 때문이다. 언어영역과 외국어영역이 약했던 李군은 高2 말부터 高3 때까지 외국어영역 과외를 받았다. 언어영역은 문제집만 20권을 넘게 풀었다. 市中에 나와 있는 언어영역 문제는 거의 다 풀었다는 얘기다.
『못하는 과목은 양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 시간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李군은 그야말로 우직하게 공부한 스타일이다. 李군은 高3이 되면 약한 과목을 올리기 힘들므로 高2 겨울방학 때 약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잡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高3 때보다 오히려 高2 겨울방학이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李군은 방학 때는 私設(사설) 독서실보다 학교에서 주로 공부했다. 방학 때는 오전이 제일 버리기 쉬운 시간이다. 李군은 오전에는 강제성이 필요하므로 감독 선생님이 있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또 하루 종일 한 곳에서만 공부하면 지루하기 때문에 오전·오후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저녁에는 私設 독서실에서 공부했다.
李군의 내신성적은 중위권이었고 논술도 약해서 특차를 노렸다. 특차로 갈 경우 내신 적용이 안 되는 만큼 내신에 신경을 안 써도 되기 때문이다. 李군은 『입시에는 전략이 필요하며,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시제도를 잘 파악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법을 공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李군은 교과과정을 미리 배우고 들어가는 先行學習을 하더라도 6개월 이상 앞서가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너무 많이 진도를 나가 버리면 막상 공부할 때 지루해져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예습을 하더라도 한 학기 정도만 미리 해 두는 것이 좋다고 한다.
영재교육을 받지 않은 李군이지만 영재교육은 수능시험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단언한다. 초·중학교 때 영재교육을 받아도 어차피 고등학교 때 입시공부를 따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李군은 『중학교 때까지는 교과과정만 따라가면 되고, 고등학교 들어갈 때는 英·數만 미리 예습하고 시작하면 무리 없다』고 말한다.

李군은 『수능은 돈으로 되지 않는 것』이라며 『수능은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족집게 과외도 필요없다. 하지만 1부터 10까지 배우면 그것들을 다 머릿속에 넣고 연결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 공부가 필요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옛날 학력고사·예비고사 때는 암기만으로도 통했을 것 같기도 한데 수능에서는 이해력·응용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李군은 수학만큼은 조기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李군은 계산능력은 어렸을 때 정해지는 것이라며, 본인의 경우는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 학습지를 꾸준히 공부해 어릴 때 계산능력의 기본을 닦은 것이 수학을 잘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李군은 어릴 때부터 신문 읽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며 독서하는 습관 역시 어릴 때부터 길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李군은 바쁜 부모님 밑에서 스스로 자율성을 배웠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님은 李군이 어릴 때부터 늘 세탁소 일로 바빴다. 부모님이 일에 매달려 있느라 李군을 제대로 보살필 시간이 없었지만, 李군은 어머니가 일하는 동안 혼자 책을 읽고 혼자 글자 연습을 했다. 부모님은 늘 믿어 주고 격려해 주긴 했지만 李군은 혼자 공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깨달았다.
李군은 입시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막연히 공부해야 하는 것보다 대학 가야 하는 이유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학은 일종의 유예기간, 자기 길을 찾아가는 시간이다. 고등학교 때는 그런 것을 맘대로 할 수 없지 않은가. 보통 사회에서는 한 번 실수하면 끝이지만 대학은 예비 사회인에게 일종의 울타리가 되어 준다. 대학에서는 고민하고 방황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그래서 대학을 가야 한다』
李군에게 대학에서도 공부를 잘하는지를 묻자 답은 『노코멘트』다. 대신에 『대학에서 공부 잘하려면 내신처럼 벼락치기를 잘해야 하는데 나는 벼락치기를 잘 하지 못한다』는 말로 힌트를 준다.
『대학생활은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대학 4년은 실패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실패해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경험을 많이 쌓고 있다. 하지만 「대학에서도 역시 공부를 안 하면 안 되는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李군에게 전기공학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순수공학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연구원이 되고 싶다. 무언가에 몰두해서 연구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 2001 修能 인문계 수석(만점) 張原碩


張군은 한 해 재수를 했다. 현역 때는 경제학과를 지원했지만 재수를 하면서 법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시험을 치러 왔고 또 시험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사법)시험 한 번 더 보는 게 뭐 어떠냐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법대에 진학해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은 시험이 두렵다며 웃는다.
대학입시에서 수석을 한 학생들은 으레 『학원에 다니지 않고 학교 공부에만 충실했다. 잠도 충분히 자고 취미생활도 즐겼고 공부가 제일 재미있었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張군은 『솔직히 공부가 재미있었던 건 아니지만 단지 공부를 싫어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4當5落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건 사실 말이 안 된다. 네 시간 자면 어차피 학교 가서 졸게 된다. 나의 경우엔 6~7시간 정도 잤다. 일곱 시간 이상 자는 것은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3년 동안의 수험준비 생활은 장기전이다. 高 1, 2학년 때 무리하게 공부하다가 결정적인 高 3 때 오히려 지쳐서 망치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張군은 『고등학교 3년은 뒤로 갈수록 중요하다』며 『1, 2학년 때는 수학·영어 같은 오래 걸리는 과목을 미리 잘 닦아 놔야 한다』고 말한다. 張군은 학교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학교 과정을 잘 따라가는 게 정말 중요하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7~8시간으로, 제일 많은데 그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고 학원에 가서 공부한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학교에서 자고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는데, 학교 공부를 무시하는 것 자체가 우등생의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張군은 『의문이 있을 때 질문하고 답을 얻는 것이 중요한데, 일단 질문하려면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알아야 더 깊은 것을 질문할 수 있다. 모르면 질문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학교 수업의 흐름을 잘 타는 것이 중요하다』며 선생님들을 잘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張군은 어릴 때부터 수학에 관심이 많아 경시대회에 많이 참가했으며 수학 자체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張군은 『잘 모르면 재미가 없지만 어느 정도 알고 나면 공부에도 재미가 붙는다』며 『공부한 것들이 문제로 나오고 또 점수가 오르는 데서 성취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중학교를 마치고 수학·영어만 미리 배우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탓에 사회·자연과학 쪽은 잘 몰라 처음에 하기 싫었지만 어떤 과목이든 낯설음만 극복하면 나중에 쉬워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금방 따라갈 수 있었다.
張군은 다른 과목은 몰라도 영어·수학은 조기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어 역시 어릴 때부터 책·신문 등을 많이 읽고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張군은 딱히 조기교육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 학습지를 꾸준히 풀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對外 수학경시대회를 위해 특별운영한「산수반」에서 교과과정 이외의 수학 원리를 배운 것이 도움이 많이 됐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3년 동안 수학과외를 받았다.
張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재수할 때까지 학원은 쉬지 않고 계속 다녔다. 과외도 중간중간 필요에 따라 받았다. 영어가 약해서 학원과 과외의 도움을 받아 꾸준히 공부했다. 張군은 싫어하는 과목, 못하는 과목은 무조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張군은 『학원에 대해서 부정적이지 않다』며 『예전에 학력고사나 예비고사 시절의 선배들이 「학교 공부에만 충실했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예습·복습 철저히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한 말은 맞는 말이다. 단지 요즘은 예습을 학원에서 하는 것뿐이라며 제대로만 하면 학원수강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張군은 『요즘 강남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는 것을 두고 「돈이 있어야 공부도 잘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법대의 같은 科(과) 친구들만 봐도 사회 계층적으로 중산층 이상의 집안 아이들이 많다. 선배들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법대가 잘사는 집 애들이 오는 곳이 아니었고 개천에서 용 나듯이 지방의 가난한 집안 출신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집안도 좋고 지방보다는 서울 지역 출신이 많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사교육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 않지만, 학원을 10개씩 다니면서 공부를 아예 사교육에 의존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張군은 『사교육이 보조적 수단이 되어야지 주체가 되어서는 절대 우등생이 될 수 없다』며 『중요한 것은 목적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기부여가 안 되면 유혹이 있을 때 빠져 나오기 힘들다. 넘어졌을 때 일어날 수 있도록 목적의식을 분명히 갖도록 주변 사람들(부모)이 도와 줘야 한다. 나의 경우엔 타인을 의식하는 편이고 자존심이 강해 남들보다 못하면 자책하고 또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책임감이 강했다』
張군은 『중학교 때부터 차근차근 기초를 잘 밟아야 한다. 언어영역을 위해 책도 많이 읽고 학교에서 배운 거 잘 이해하고 부족한 것은 학원 다니면서 선행학습하는 등 흐름을 잘 타는 게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수능은 다방면으로 느끼고 공부해야 한다. 내신, 본고사와는 다르다. 신문, 책, 잡지, 만화책까지도 많이 읽으면 도움이 된다. 어릴 때부터 무언가 읽는 걸 아주 좋아했다. 읽을거리를 찾다가 신문을 발견했다. 신문은 다양한 읽을거리가 있고 날마다 새로운 내용이기 때문에 즐겨 읽었다. 高3 때도 아침마다 학교에 신문을 가져가 읽었다. 수능이란 게 어차피 지문을 빨리 읽고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이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억지로 신문을 읽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즐겨야 한다』
초등학교 때는 아버지가 직접 수학을 가르쳤다. 부모님이 신경 써 주고 같이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공부에 관심을 갖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굳이 말하자면 나의 경우엔 공부에 있어서 어머니의 뒷받침이 차지한 비중이 20% 정도. 아무리 그래도 80% 이상은 자기의 노력이 없으면 안 된다』
◈ 1999 修能 전국 수석(修能 최초 만점) 吳承恩


吳양은 과학高 재학 시절 늘 수석을 차지하며 서울大 자연과학부 물리학부에 교장 추천 전형으로 입학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吳양은 알고 싶은 지식을 찾아 공부했다. 방학이면 다른 친구들이 다음 학기 예습 위주의 공부를 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과학자의 꿈을 간직한 그녀는 방학이면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용돈을 모아 수학·과학 교양서적과 각종 경시대회 문제집을 산 후 「완전정복」을 다짐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바스 피터슨의 「현대 수학의 여행자」는 吳양에게 과학자의 꿈을 키워 준 책이었다. 어머니 이우인씨는 풀지 못할 문제에 절망만 할 뿐이라며 극구 말렸지만 吳양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한성과학高 진학 후 吳양의 공부는 더욱 흥미가 붙었다. 다양한 과학실험으로 이루어진 학교공부와 심도 깊은 수학, 과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학高 수업이 단지 교과서 중심의 수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吳양의 수학·과학에 대한 흥미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었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은 미리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올라왔기 때문에 吳양은 처음에 주변 친구들을 따라가기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들이 수업과정을 이미 알고 있어 흥미가 떨어진 반면에 吳양은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기쁨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 결과적으로는 또래보다 뛰어난 활약을 보여 줄 수 있었다.

吳양의 언어영역 만점의 배경에는 많은 독서를 통한 지식습득과 사고력의 향상이 주효했다. 시간 날 때마다 읽은 32권이나 되는 백과사전은 폭넓은 상식을 쌓아 주었다. 吳양은 부모님이 어린 시절 사 준 문학전집과 위인전 등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읽었다.
부모님은 뉴스 외의 TV 시청은 하지 않았고 다양한 책 읽는 모습을 吳양에게 보여 주었다고 한다. 사회비평 서적, 수필집, 신문 칼럼집 등이 가득한 책장과 주변에 널려 있던 책들이 자연스레 그녀가 책을 자주 접하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행자부 1급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아버지와 방산중학교 사회교사인 어머니 사이에 특별한 학습지도가 있을 듯하지만 吳양은 잔소리를 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무한한 신뢰가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얘기한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잔소리했던 것은 『이를 깨끗하게 닦으라』고 했던 것뿐이었다고 한다.
조기교육을 받은 것은 없지만 吳양의 어머니는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영어노트를 사주며 알파벳을 알려 주고 영어 테이프를 사 주며 반복해서 들으라고 주문했다.
吳양은 학생의 소질과 흥미를 살리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조기교육이 물론 학습효과와 능력계발에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공부는 지루함과 발전에 한계를 가진다고 말한다. 吳양은 자신의 경우 어린 시절 부모님의 강제적인 학습지도나 조기교육 없이 흥미계발을 위한 충분한 기회와 뒷받침이 있었기에 좋은 결과를 이룬 것이라고 강조한다.
◈ 1997 修能 전국 수석 徐晙豪

徐晙豪(서준호·24)씨의 제주도 조그만 방에는 그가 수상한 온갖 상패와 상장으로 가득하다. 中3 시절 중앙일보·교육부 주최 전국 수학과학경시대회 금상을 수상했고, 고등학교 때도 제주도 과학경시대회 화학부문 1위, 전국 과학경시대회 화학부문 동상, 제주도 외국어경시대회 영어부문 1위를 차지하였다. 徐씨는 광양초등학교 시절부터 고교 졸업까지 1등을 놓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徐씨는 그날 그날의 수업내용을 완전히 소화하려고 노력했다. 평소 학교 수업을 위해 예습·복습을 철저히 했고, 과목별로 보충교재를 구해 필요할 때마다 참고하며 공부했다. 徐씨는 이 공부방법으로 교과서에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보충하고 학습내용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언제나 全과목을 예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徐씨는 특별히 수학 예습을 중심으로 했다.
徐씨는 학교에서 제시하는 교육 양을 따라가기에도 벅차다며 이를 잘 따라가기 위해 효율적인 학습계획의 준비와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徐씨는 이를 위해 방학이면 시행되는 보충수업에서도 예습·복습의 꾸준한 학습으로 페이스를 늦추지 않았다.
徐씨는 오전 7시쯤 등교해 오후 자율학습이 끝난 뒤에도 학교 독서실 「면학당」에서 공부하였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학교 독서실에서 밤 11시까지 공부하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생활을 유지했다.
徐씨의 수석 합격 바탕에는 그가 나온 제주 대기高의 토론학습법이 있었다. 徐씨는 高득점의 원인을 『응용력과 이해의 폭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던 토론 중심의 학습』이라고 말한다.
『방과 후 수학반 시간에 문제 풀이를 발표하고 토론을 자주 했다. 이것은 단순히 수학문제 해법을 선생님께 듣는 것이 아닌 직접 설명을 통해 더욱 깊이 이해하고 그와 관련된 원리와 지식을 습득하는 기회였다. 인문 과목 수업에는 발표 수업이 활발하게 도입되어 언제나 다양한 토론이 오갔고 이때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훈련이 사고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徐씨는 학창시절 수학과 화학 과목을 제일 좋아했다. 그의 수상경력이 모두 이와 관련된 것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수학반·과학반 등을 통해서 알게 된 지식에 많은 흥미와 관심을 가졌다. 각종 경시대회를 준비하며 몰두했던 어려운 문제 풀이가 오히려 수학, 과학의 매력에 그를 흠뻑 빠지게 했다.
徐씨는 어린 시절 과학 교양서적들을 읽으며 과학자의 꿈을 키워 나갔다. 특히 중학교 시절에 구독한 「과학동아」와 고등학교 때 읽은 게리 주커브의 「춤추는 물리」는 물리학도로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徐씨의 아버지 서우종(47·제주시의회 전문위원)씨와 어머니 고영실(41·제주도여성회관 상담계장)씨는 집에서는 공부하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고 단지 생활에 성실하도록 분위기만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徐씨의 어머니는 『아침밥을 잘 챙겨 주고 신문을 스크랩해 준 것 외에는 달리 해 준 게 없다』며 『식사시간에 대화로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얘기했다. 徐씨 역시 『부모님께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인정해 주고 이해해 주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말한다.
徐씨는 현재 서울大 물리학부를 마치고 병역특례업체 원자 현미경 제조회사인 「PSIA」에서 근무하고 있다. PSIA는 나노(nano)기술을 제품에 응용하는 국가 지정 연구소다.
◈ 1996 修能 전국 수석 李正元


그로부터 6년 후, 李군의 연락처를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했던 기자는 뜻밖의 곳에서 그를 발견했다. 스탠포드 대학에 유학 중인 1995년 修能 전국 수석 鄭盛澤(정성택)씨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가 근무하는 연구실에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은 사람이 다름 아닌 李正元씨였다. 서울大 전기공학부 선후배인 鄭盛澤씨와 李正元씨는 같은 연구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李씨는 하루 8시간의 충분한 수면이 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첫 번째 비결이라며 모두가 알다시피 수면 부족은 최적 능력발휘에 많은 장애를 유발한다고 설명한다.
두 번째 비결은 자신만의 교과서 학습법이다. 李씨는 『고등학교 교과서는 고등학생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쉽게 잘 설명해 준다. 따라서 여러 번 정독함으로써 핵심사항은 반드시 암기하였고, 다양한 책과 신문을 읽음으로써 교과서가 자세히 다루지 못한 부분을 보충했다』고 말한다.
李씨는 영어공부를 위해 평소 외국문학원서를 즐겨 읽었다. 특히 고등학년 2학년 여름방학 때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원서로 독파했다고 한다. 그는 영역본까지 포함해 이 소설을 무려 다섯 번이나 읽었다.
음악에 남다른 관심과 재주를 가지고 있던 李씨는 언제나 헨델의 「메시아」를 틀어 놓고 공부할 정도로 클래식 음악광이었다. 李씨는 공부할 때 클래식 음악이 집중력을 향상시켜 준다고 말한다.
李씨는 고등학교 시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개인적으로 사교육을 받았을 거라고 말한다. 李씨는 『사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사교육이 공교육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주고 있는 건 사실이다. 조기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특별한 재능을 가진 학생들에게 조기교육을 시키는 것은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李씨는 미국의 대학교들은 산업체와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李씨는 스탠포드 대학에서도 한국 학생들의 수준이 다른 나라 학생들에 비해 우수해 한국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며 기술强國 한국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고 밝혔다.
◈ 1995 修能 전국 수석 鄭盛澤


鄭씨는 자신의 학습방법에 특별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우선 주어진 과제에 대해 파악하고 그 일을 위해 어떤 일들이 필요한지 생각해 본 후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들을 가려내 능률적인 학습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나갔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鄭씨는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이 일을 왜 하고 있나」를 먼저 생각해 보고,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그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 만족스러운 답변을 내리지 못하면 과감히 그만두고, 아니면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정진한다고 말한다. 鄭씨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야심에 찬 무리한 학습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도중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실수를 저지른다』고 말한다.
鄭씨는 특별한 조기교육이나 사교육을 받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대학입시 준비를 위해 시중의 거의 모든 학습지를 독파했다고 한다. 아무리 과학高 학생이라 해도 다른 수험생들과 같은 대학입시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대학에 가기 위한 입시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鄭씨의 아버지 정구용(49)씨는 부산에서 소아과 의사이고, 어머니 이복순(46)씨는 전직 생물교사다. 공부와 관련해 부모님의 특별한 지도는 없었지만 부모님의 평소 생활습관이 鄭씨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鄭씨는 부모님으로부터 『늘 계획해서 노력하되 주위를 돌아보며 인간다움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鄭씨는 중학교 시절 법조인이나 언론인을 희망하였다. 과학高로 진학하는 바람에 이 꿈은 멀어져 갔지만 기자직에 대한 동경과 관심은 아직도 많다고 한다. 대학 시절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행사기간 일간스포츠 학생기자 활동을 하였고, 마지막 학기에는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강좌를 수강하기도 했다.
鄭씨는 미국 학생과 한국 학생의 다른 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노는 애들은 한국 애들보다 더 미친 것처럼 놀고, 공부하는 애들은 한국 학생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노는 애들에게 공부하라는 사람들도 없고, 공부하는 학생한테 세상도 좀 알고 살라고 충고하는 사람도 없다는 점이다』
◈ 1994 修能·본고사 서울대 수석 崔智錫

1994년도 수능과 본고사를 합쳐 서울大 법학부에 수석으로 입학한 崔智錫(최지석·28)씨. 기업체에 다니는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을 두고 있으며 잠실高를 졸업했다. 崔씨는 현재 원주에 있는 모 부대에 법무관으로 복무하고 있다.
공부에 대해서 묻자 『고등학생 때는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지 않습니까. 당시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기 싫다고 생각하면 그 다음 선택이 난감해져요.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이왕이면 즐겁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답한다. 崔씨는 입시공부하는 것 자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가지 할 줄 아는 것 중에서 공부가 제일 나았고 공부가 가장 경쟁력 있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고등학생 때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을 빨리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崔씨는 최근 몇 년간 「재수생들이 강세」라고 나오는데,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며 재수할 때 강북 종로학원에서 공부했는데 그 해에도 역시 재수생들이 강세였다고 설명한다. 修能 수석 최고참인 崔智錫씨에게 입시 문제와 조기교육 문제, 사교육에 대한 생각 등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재수 때 입시제도가 바뀌어서 두렵지는 않았나.
『입시제도가 바뀌어서 오히려 좋았다. 공부한 걸 또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공포심을 갖는다고 해서 시험을 안 볼 수도 없지 않은가』
―修能과 본고사, 학력고사를 다 경험했는데 비교한다면.
『학력고사와 수능의 성격이 다르다고 하는데 학력고사든 수능이든 객관식이라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학력고사 체제에서 공부한 것들이 수능으로 바뀌면서 전혀 쓸모없게 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나의 경우엔 매우 유용했다. 학력고사가 암기 위주라면 이때 암기했던 지식들이 수능에서 매우 유용했던 것이다. 응용, 이해하기 위해서는 암기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입시문제의 방향은 암기 위주가 아닌 응용 위주여야 하겠지만 학생들은 암기를 기본으로 해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조기교육에 대해서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어릴 때부터 수학·영어를 배워서 남들보다 조금 앞서나가는 것이 자신감 측면에서 보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영어는 초등학교 때 어머니한테 기초적인 것을 미리 배웠지만 이렇다 할 조기교육은 받지 않았다. 그때는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그랬다. 조기교육 열풍도 없었고 그냥 평온하게 어린 시절을 잘 놀면서 보냈다』
―후배 수능 수석자들이 어릴 때부터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해 신문이나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는데.
『읽는 게 중요하다는 것에는 찬성한다. 영상매체보다는 활자매체가 중요하다.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재미를 익혀 주는 것이 필요하다. 글을 많이 읽고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야 공부하는 능력이 커진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