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아들, 중국 유학 중… 이후 서방 국가에 나가 정통 후계자 교육 받을 계획”(북한 보위성 출신 탈북자)
⊙ 김정은에게 아들 없다는 주장도… “김정은 집권 이후 한 번도 남자 어린이 물품 댄 적 없다”
⊙ “김정은 아들의 이름은 ‘김영주’이며, 김주애의 진짜 이름은 ‘김은주’”(전 국정원 공작관)
⊙ “김정일 급사 배후에 김정은이 있다는 의심 나와”… 김일성 사망 때와 상황 비슷
⊙ “서자(庶子) 콤플렉스가 새로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설하는 창업주 되겠다는 욕망 확대”(김용신 박사)
⊙ 김정은에게 아들 없다는 주장도… “김정은 집권 이후 한 번도 남자 어린이 물품 댄 적 없다”
⊙ “김정은 아들의 이름은 ‘김영주’이며, 김주애의 진짜 이름은 ‘김은주’”(전 국정원 공작관)
⊙ “김정일 급사 배후에 김정은이 있다는 의심 나와”… 김일성 사망 때와 상황 비슷
⊙ “서자(庶子) 콤플렉스가 새로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설하는 창업주 되겠다는 욕망 확대”(김용신 박사)
- 지난해 11월 30일 항공절(11월 29일)을 맞아 공군 사령부를 방문, 시위 비행에 참관한 김정은과 김주애.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대남(對南) 전략을 완전히 전환했다. 김정은은 지난 연말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교전국(交戰國)으로 규정했다. 연초에는 대한민국을 주적(主敵)으로 지칭했다. 헌법에서는 ‘통일’ ‘민족’ 등의 용어를 삭제하도록 지시했다. ‘남조선’이라는 호칭도 사라졌다. 북한과 같은 뿌리라는 인식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대한민국’이나 ‘괴뢰한국’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 2월에는 남북 경제협력과 관련된 법안을 폐지하고 남북 간 체결한 경협 관련 합의서도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북한 평양의 지하철 ‘통일역’ 또한 ‘통일’ 자를 없애 지금은 ‘역’으로만 표시된다. 북한 관영방송인 조선중앙TV 날씨 프로그램에서는 기존 배경 이미지였던 한반도를 빼버렸다. 대신 북한 지역만 확대한 이미지를 사용 중이다. 외무성 웹사이트에 게재된 북한 애국가 가사에서 ‘삼천리’라는 표현도 삭제했다. 한편 통일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3개월 동안 김정은의 공개 군사 부문 활동은 과거보다 부쩍 잦아졌다. ‘통일은 강 건너갔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는 말이다.
“대놓고 선대 모욕한 처사”
대남 전략의 대전환 과정에서 김정은은 선대(先代)의 흔적도 지워나가고 있다. 북한 지도자가 50년 넘게 유지해온 선대의 유산을 지우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최근에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통일을 상징하는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도 철거했다. 기념탑은 김정일의 고려연방제 방식의 통일 방향을 기리기 위해 2001년 8월 설치된 조형물이다. 3대 헌장은 1974년 김일성 시절 남북이 공동으로 합의한 ‘조국통일 3대 원칙’과 김일성이 작성한 19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그리고 1993년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을 일컫는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3대 헌장 기념탑 철거는 대놓고 선대를 모욕한 처사”라고 했다.
지난 1월 23일(현지시각) 한 미국 언론에 따르면 1월 19일 오전 촬영된 위성사진에서 평양에 위치한 이 기념탑이 돌연 사라졌다. 김정은은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 연설에서 “수도 평양의 남쪽 관문에 꼴불견으로 서 있는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철거해버리고, 공화국의 민족 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김정은은 앞서 지난 2019년 10월 23일 금강산의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하며 김정일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날 《로동신문》은 김정은이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금강산이 10여 년간 방치돼 흠이 남았다. 땅이 아깝다. 국력이 약할 때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 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심각히 비판하셨다”고 했다. 아버지의 대남 정책을 정면 비판한 셈이다. 신(神)과 동일시되는 김정일의 정책을 공개 비판하는 건 이전까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강철환 대표는 “김정일 시대 구명줄 역할을 한 금강산 관광을 선대 수령이 팔아먹었다는 식으로 폄훼한 것”이라면서 “김정은은 이 밖에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도 ‘선대 수령이 행한 것을 왜 내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식으로 얘기했다고 한다”고 했다.
김정은 신격화
국가보위성 총무국 간부 출신 탈북민 이모(某)씨는 이에 대해 “김일성·김정일이 주체사상이었다면, 김정은은 독재사상”이라면서 “김일성·김정일의 우상화(偶像化)를 완전히 차단함으로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는 오직 자신밖에 없다는 독재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위대한 수령’의 유훈(遺訓)이 절대적 통치 이념이었던 북한에서 김정은의 이 같은 독자노선 구축은 향후 남북관계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면서 “한국에서는 무엇보다 통일을 전제로 세운 정책의 전면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선서문에도 이는 잘 드러나 있다. 선서문을 입수한 JM선교회 관계자는 “선대 수령의 업적보다 김정은 시대를 강조하고 있는 게 큰 특징”이라고 했다. 2020년 이후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선서문은 총 다섯 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위대한 김정은 동지를 정치사상적으로 지지하고 옹호할 것 ▲위대한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 령도에 절대 충성하고 복종하며, 백두혈통만을 따르는 충신이 될 것 ▲위대한 김정은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무장해 사회주의 건설에 힘차게 참여할 것 ▲위대한 김정은 동지께서 안겨준 정치적 생명을 귀중히 간직하고 반사회주의와 비사회주의에 대한 투쟁을 벌일 것 ▲마지막으로 위대한 김정은 조선의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국가의 존엄과 명예를 수호하며, 조국통일과 주체혁명의 최종 승리를 위해 싸워나갈 것을 맹세하고 있다.
JM선교회 관계자는 “선서문은 김정은을 완전히 신격화(神格化)하고 있다”면서 “북한 내부에 따르면 최근에는 상부로부터 선서문에 포함된 ‘조국통일’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 읽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고도 했다.
국정원 고위 간부 출신 한 인사는 “대한민국을 더 이상 같은 뿌리가 아닌, 남과 북은 완전히 이민족(異民族)인데다, 토벌(討伐)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라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주체사상 색채가 흐려지고, 물질적·정신적 토대가 와해돼 왕조세습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폐쇄적인 정책을 펼 것”이라고 했다. 북한지도부가 대남 열패감(劣敗感)에서 통일을 포기하고, 체제라도 보존하기 위해 ‘2국가론’으로 돌아섰다는 분석이다.
보위성 간부 출신 이씨 또한 “김정은의 선대 흔적 지우기는 갈수록 과감해질 것”이라면서 “해킹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여 해외 원조도 필요 없어진 만큼, 한국과의 단절을 통해 더욱 굳건한 폐쇄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했다.
庶子 콤플렉스
김정은이 유독 ‘독자노선’을 강조하는 데에 ‘출생 콤플렉스’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철환 대표는 “김정은이 겉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충성을 표하지만, 내면 깊이에는 증오, 분노와 같은 감정이 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정은은 서자(庶子)다. 김정일의 부인은 성혜림, 김영숙, 고용희, 김옥 등 네 명이 꼽힌다. 이 중 공식적으로 결혼한 사람은 김영숙뿐이다. 셋째 부인인 고용희가 김정은의 친모(親母)다. 고씨는 오사카 출신으로 9세 때 귀국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시절 김정일의 눈에 들었다. 이후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을 차례로 낳았다. 서자로 태어난 김정은은 은둔의 유년기를 보냈다. 생전 김일성의 인정도 못 받았다. 김정은이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는 이유가 그래서다.
고용희는 2004년 사망했다. 북한은 평양 대성산에 고씨의 무덤을 크게 만들어놨지만, 주민들에게는 이름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후지산 줄기’로 취급받는 재일동포 출신 생모의 존재를 공개할 경우 ‘백두혈통’의 정통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어서다. 김정은이 집권 후 김일성의 생일 태양절, 김정일의 생일 광명성절을 기념하면서도 본인의 생일은 공식적으로 챙기지 못하는 것도 출생의 비밀이 공론화되는 걸 꺼리기 때문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2012년 제정한 국가기념일 ‘어머니의 날’에서도 생모 고용희는 일절 언급된 적 없다.
부인 이설주와 공개 석상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김정은 우상화’의 가장 큰 취약점인 모친의 공백을 대체하기 위한 선전·선동술의 일환으로도 평가된다. 2022년부터 딸 김주애를 각별히 챙기는 모습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다. 사실상 숨어 지내야 했던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적 인문사회연구》 《지도력의 허상》 등을 펴낸 김용신(金容新) 정신분석학적 정치학 박사는 “김정은은 정통성에서 벗어난다는, 일종의 ‘서자 콤플렉스’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신분석학에서 콤플렉스는 퇴행(退行)으로 발현될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는데 김정은은 후자(後者)로 분석되며, 내적 콤플렉스를 이겨내기 위해 승부사적 기질을 키웠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집권 초기 아버지가 아닌 할아버지인 김일성 흉내를 냈다는 것은 원(原) 교주(敎主)와의 연결성을 강조한 것으로, 미약한 정통성을 회복하려는 무의식적 욕망이 발현된 것으로 해석된다”면서 “백두혈통으로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애쓰도록 한 콤플렉스가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선대를 벗어나 새로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설하는 창업주, 혹은 새로운 교주가 되겠다는 욕망으로까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정일에 충성했던 이들 숙청
집권 직후 고모부인 장성택을 고사포로 처형하는 등 철권통치를 벌인 것도 정통성이 의심받는 가운데 잠재적 위협 인물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김정은은 당시 장성택뿐만 아니라 장씨의 추종 세력도 대거 공개 처형했다. 이용하 당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 등이 대표적이다. 평양시 책임비서 문경덕을 비롯해 김정일 시신 운구차를 호송했던 리영호 당시 총참모장, 김정각 당시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전 인민무력부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당시 제1부부장 그리고 김기남과 최태복 당시 당비서 등 7인방 또한 차례로 숙청했다. 김정은 정권의 핵심으로 관측됐던 인물들을 모두 해임하며, 김정일이 구축한 후견(後見)체제를 철저히 와해시켰다.
강철환 대표는 “숙청 대상을 살펴보면 아버지에게 충성했던 사람이 많다”면서 “김정일 때만 해도 정치권력 투쟁이라든지 숙청의 명분이 있었는데, 김정은은 고모부 등 상식 밖의 처형도 자행했다. 이런 걸 보면 감정 주체가 안 되고 죄책감도 못 느끼는 소시오패스 기질도 있어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김정은은 2015년 초 이견(異見)을 제시했다는 이유로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 조영남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했고, 그해 4월에는 회의에서 졸았단 이유로 국방장관 격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공개 총살했다. 5월에는 김정은이 추진하던 산림녹화 정책에 불만을 표시했다는 이유로 최영건 내각 부총리를 처형했다. 2017년엔 암살조를 보내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했다. 김정은 집권 후 처형·숙청된 당·정·군 고위 인사는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급사 이유는…
강철환 대표는 이어 “최근 몇 년간 김정일의 급사(急死) 배후에 김정은이 있다는 의심도 여러 루트에서 나오고 있다”고도 했다. 김정일은 2011년 12월 17일 기차로 이동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강 대표는 “급사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24시간 응급처치가 풀가동되는 시스템하에서 후속 조치가 늦었다는 점도 의문이 남는다”면서 “묘향산에서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와 상황이 비슷하다”고 했다. 아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는 뜻이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당시 국가보위성 총무국에 재직했던 탈북민 이모씨는 “김일성의 죽음을 김정일이 앞당긴 건 사실”이라고 했다. 이씨에 따르면 김일성은 사망 전 평안남도 남포 지역 곡창지대 회의 참석차 평양역에서 이동했다. 그는 “출발 전 1호 열차 차량 점검을 해보니 식당, 잠자리, 의료집단 등 총 12대가 편성돼 있었는데, 김일성을 보좌하던 김정일이 의료집단이 들어가는 빵통(기차 화물칸)을 떼고 열차를 출발시켰다”면서 “7월 8일 묘향산에서 의료진 빵통이 없어 응급조치를 못 했고,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씨는 “독재 역사는 그렇게 죽고 죽이며 흘러온 것”이라고 했다.
김용신 박사는 “김정은의 공동 사회가 아닌 본인 체제 유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련의 행보를 보면 콤플렉스뿐만 아니라 반(反)사회적 성향 또한 두드러진다”면서 “이는 김정은을 합리적 인간으로 대할 수 없음과 동시에, 김정은 체제의 북한 또한 정치학적으로 합리적 선택 이론(rational choice theory)에 기반해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실제로 북한은 대북지원과 제재라는 양단(兩端)의 정책 모두 통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주애의 진짜 이름은 김은주”
정보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은은 현재 당뇨 합병증이 심각한 상태다. 이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2030년을 못 넘길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고 했다. 김정은의 후계 구도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대남 전략을 전면 전환한 상태라 더 그렇다.
북한이 대외적으로 공개한 김정은의 자녀는 딸 주애가 유일하다. 김주애는 지난 2022년 11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 발사 현장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김정은의 주요 군사·경제 행보에 함께하고 있다. 통일부와 정보기관은 김주애를 유력한 후계자로 보는 중이다. 등장 초기만 해도 가능성을 낮게 봤지만, 김주애의 의전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후계자설에 무게를 싣고 있다.
북한 고위층 등 탈북민 수천 명을 구출한 JM선교회 K목사는 “현재로서는 김주애가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군 사령관들을 김주애 앞에서 무릎 꿇리는 행위를 할 이유가 없다. 일찌감치 후계자를 내세워 북한 내부 인식 구조에 ‘백두혈통’의 명맥(命脈)을 심고자 한 것”이라면서 “북한 내부 핵심에 따르면 북한의 ‘핵 완성’ 이후 리더십 테마는 ‘우주’다. 김정은은 김주애를 훗날 ‘우주를 지배할 여장군’이라는 아이콘으로 새겨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용신 박사 또한 “북한 지도층 특성상 세습 체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시키고자, 또한 여성도 세습을 받을 수 있는 ‘유연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찍이 김주애를 등장시킨 것 같다”고 했다.
이 가운데 김정은에게 장남이 있으나, 왜소한 체격이어서 대중 앞에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지난 1월 23일(현지시각) 최수용 전 국정원 공작관의 말을 인용해 “김정은에게 아들이 있지만, 외모가 매력적이지 않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최씨는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통통하고 잘 먹은 아버지, 누이(주애)와 달리 아들은 창백하고 마른 편이라고 한다”며 “그의 아들은 증조부인 김일성을 전혀 닮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했다. 북한 지도자에게 김일성을 닮은 외모는 ‘필수 자질’로 여겨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계자 시절 마른 체격이었던 김정은이 김일성처럼 보이도록 체중을 늘린 것도 그래서다.
최수용 전 공작관은 《월간조선》에 “김정은 아들의 이름은 ‘김영주’이며, 김주애의 진짜 이름은 ‘김은주’로 파악됐다”고 했다. 주애란 이름은 지난 2013년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을 만났던 미국 프로농구 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이때 김정은이 ‘저희 애’라 소개한 게 ‘주애’로 와전(訛傳)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실제로 북한은 한 번도 ‘주애’란 이름을 언급한 적이 없다.
“김정은 아들, 모양새가 한심한 수준”
최 전 공작관은 이어 “김정은에게는 현송월, 재일조총련 출신 여성과 사이에서 낳은 혼외자도 둘 있다”고 했다. 현씨와 낳은 아들의 이름은 ‘김일봉’이며, 조총련 여성과 낳은 아들은 현재 5세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름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최 전 공작관은 “이에 따라 일봉, 영주 출생 이후 태어난 북한 주민들은 ‘최고 존엄’의 자녀와 같은 이름을 사용 못 하도록 돼 있다”면서 “서자인 김일봉은 번듯한데, 적자(嫡子)인 영주는 폐병 환자 수준으로 삐쩍 말라 북한식 표현으로 ‘모양새가 한심한 수준’”이라고 했다.
강철환 대표는 “김정은이 김정일처럼 처음부터 부인을 공개하지 않았으면, 더 뛰어난 서자를 적자라 주장할 수 있었는데, 이설주를 공개함으로써 이마저도 불가능하게 됐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의 아들이 중국 유학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국가보위성 총무국 간부 출신 탈북민 이모씨는 “김정은 아들이 마르고 변변치 않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김정은 아들은 2년 전부터 철통 보안 아래 중국에서 유학 중으로, 이후 서방 국가에 나가 정통 후계자 교육을 받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이어 “북한이 현재 김주애를 내세우는 것은 대외 연막(煙幕) 작전이자, 북한 주민들에게는 세습 통치를 각성시키는 차원”이라고 했다.
애초에 아들이 없다는 분석도 있다. JM선교회 K 목사는 “북한의 자녀 문제는 웬만한 중앙당 관계자들도 결코 알 수 없다. 공식적인 공개를 제외하고, 이름, 얼굴, 나이 등이 한 번도 유출된 적이 없다”면서 “다만 북한에 1호 물품을 납품하는 중국 영사부 핵심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후 단 한 번도 남자 어린이 물품을 댄 적이 없다고 한다”고 했다.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시절 단짝 친구였던 조아오 미카엘로 또한 지난 2023년 5월 미 자유아시아방송(RFA)에 “2012년 7월 방북했을 당시 리설주가 딸을 낳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아들에 대해서는 전혀 못 들었다”고 했다. 미카엘로는 김정은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외부 인사 중 하나로 꼽힌다.
북한 권력 체계 전문가인 미 해군 분석센터(CNA) 켄 고스(Ken Gause) 국장도 RFA에 “김정은에게 사실 아들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딸 주애를 군 행사에 동반하는 것은 후계자로 만들려는 행보일 수 있다”고 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종합감사에서 김정은 아들의 존재 여부에 관해 “아직 확인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정보기관의 엇갈리는 보고들
지금까지 김주애를 제외한 김정은의 다른 자녀들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지도부 자녀 관련 정보는 북한에서 극비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김정은 자녀의 숫자, 성별에 관한 엇갈리는 추측이 계속 나오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해 3월 국회 정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김정은의 첫째 자녀는 아들이며, 셋째도 출산했으나 성별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첫째가 아들이라는 구체적 물증은 없지만 외국 정보기관과 정보 공유 등을 통해 확인했다고 한다. 장남의 신체적·정신적 문제에 관해선 확인된 바 없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앞서 2017년 국회 정보위에서도 국정원은 김정은에게 2010년생 아들, 2013년생 딸, 성별 미상의 2017년생 셋째가 있다고 추정해 보고했다.
군 정보기관에서는 첫째 아들의 신체적 문제와 함께 ‘성별 미상의 셋째’를 ‘딸’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국가안보실에서는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자녀는 셋이지만, ‘첫째는 아들, 둘째와 셋째는 딸’이라는 정보와 다른 성별 구도를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김주애가 유력한 후계자이지만, 변수가 생길 여지도 있는 셈이다.
강철환 대표는 “현재로선 김주애가 누군가를 보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면서 “향후 후계 구도에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4대(代)에 이르러 후계자가 부실해지거나 족보가 꼬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했다.⊙
“대놓고 선대 모욕한 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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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올 초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철거했다. 사진은 북한 군악대가 2013년 7월 24일 평양에 있는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에서 행진을 하는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
최근에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통일을 상징하는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도 철거했다. 기념탑은 김정일의 고려연방제 방식의 통일 방향을 기리기 위해 2001년 8월 설치된 조형물이다. 3대 헌장은 1974년 김일성 시절 남북이 공동으로 합의한 ‘조국통일 3대 원칙’과 김일성이 작성한 19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그리고 1993년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을 일컫는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3대 헌장 기념탑 철거는 대놓고 선대를 모욕한 처사”라고 했다.
지난 1월 23일(현지시각) 한 미국 언론에 따르면 1월 19일 오전 촬영된 위성사진에서 평양에 위치한 이 기념탑이 돌연 사라졌다. 김정은은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 연설에서 “수도 평양의 남쪽 관문에 꼴불견으로 서 있는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철거해버리고, 공화국의 민족 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고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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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지난 2019년 10월 금강산 관광지구를 현지 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 사진=연합 |
김정은 신격화
국가보위성 총무국 간부 출신 탈북민 이모(某)씨는 이에 대해 “김일성·김정일이 주체사상이었다면, 김정은은 독재사상”이라면서 “김일성·김정일의 우상화(偶像化)를 완전히 차단함으로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는 오직 자신밖에 없다는 독재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위대한 수령’의 유훈(遺訓)이 절대적 통치 이념이었던 북한에서 김정은의 이 같은 독자노선 구축은 향후 남북관계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면서 “한국에서는 무엇보다 통일을 전제로 세운 정책의 전면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선서문에도 이는 잘 드러나 있다. 선서문을 입수한 JM선교회 관계자는 “선대 수령의 업적보다 김정은 시대를 강조하고 있는 게 큰 특징”이라고 했다. 2020년 이후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선서문은 총 다섯 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위대한 김정은 동지를 정치사상적으로 지지하고 옹호할 것 ▲위대한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 령도에 절대 충성하고 복종하며, 백두혈통만을 따르는 충신이 될 것 ▲위대한 김정은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무장해 사회주의 건설에 힘차게 참여할 것 ▲위대한 김정은 동지께서 안겨준 정치적 생명을 귀중히 간직하고 반사회주의와 비사회주의에 대한 투쟁을 벌일 것 ▲마지막으로 위대한 김정은 조선의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국가의 존엄과 명예를 수호하며, 조국통일과 주체혁명의 최종 승리를 위해 싸워나갈 것을 맹세하고 있다.
JM선교회 관계자는 “선서문은 김정은을 완전히 신격화(神格化)하고 있다”면서 “북한 내부에 따르면 최근에는 상부로부터 선서문에 포함된 ‘조국통일’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 읽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고도 했다.
국정원 고위 간부 출신 한 인사는 “대한민국을 더 이상 같은 뿌리가 아닌, 남과 북은 완전히 이민족(異民族)인데다, 토벌(討伐)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라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주체사상 색채가 흐려지고, 물질적·정신적 토대가 와해돼 왕조세습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폐쇄적인 정책을 펼 것”이라고 했다. 북한지도부가 대남 열패감(劣敗感)에서 통일을 포기하고, 체제라도 보존하기 위해 ‘2국가론’으로 돌아섰다는 분석이다.
보위성 간부 출신 이씨 또한 “김정은의 선대 흔적 지우기는 갈수록 과감해질 것”이라면서 “해킹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여 해외 원조도 필요 없어진 만큼, 한국과의 단절을 통해 더욱 굳건한 폐쇄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했다.
庶子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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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친모 고용희와 김정은의 어린 시절. 사진=조선DB |
김정은은 서자(庶子)다. 김정일의 부인은 성혜림, 김영숙, 고용희, 김옥 등 네 명이 꼽힌다. 이 중 공식적으로 결혼한 사람은 김영숙뿐이다. 셋째 부인인 고용희가 김정은의 친모(親母)다. 고씨는 오사카 출신으로 9세 때 귀국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시절 김정일의 눈에 들었다. 이후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을 차례로 낳았다. 서자로 태어난 김정은은 은둔의 유년기를 보냈다. 생전 김일성의 인정도 못 받았다. 김정은이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는 이유가 그래서다.
고용희는 2004년 사망했다. 북한은 평양 대성산에 고씨의 무덤을 크게 만들어놨지만, 주민들에게는 이름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후지산 줄기’로 취급받는 재일동포 출신 생모의 존재를 공개할 경우 ‘백두혈통’의 정통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어서다. 김정은이 집권 후 김일성의 생일 태양절, 김정일의 생일 광명성절을 기념하면서도 본인의 생일은 공식적으로 챙기지 못하는 것도 출생의 비밀이 공론화되는 걸 꺼리기 때문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2012년 제정한 국가기념일 ‘어머니의 날’에서도 생모 고용희는 일절 언급된 적 없다.
부인 이설주와 공개 석상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김정은 우상화’의 가장 큰 취약점인 모친의 공백을 대체하기 위한 선전·선동술의 일환으로도 평가된다. 2022년부터 딸 김주애를 각별히 챙기는 모습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다. 사실상 숨어 지내야 했던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적 인문사회연구》 《지도력의 허상》 등을 펴낸 김용신(金容新) 정신분석학적 정치학 박사는 “김정은은 정통성에서 벗어난다는, 일종의 ‘서자 콤플렉스’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신분석학에서 콤플렉스는 퇴행(退行)으로 발현될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는데 김정은은 후자(後者)로 분석되며, 내적 콤플렉스를 이겨내기 위해 승부사적 기질을 키웠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집권 초기 아버지가 아닌 할아버지인 김일성 흉내를 냈다는 것은 원(原) 교주(敎主)와의 연결성을 강조한 것으로, 미약한 정통성을 회복하려는 무의식적 욕망이 발현된 것으로 해석된다”면서 “백두혈통으로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애쓰도록 한 콤플렉스가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선대를 벗어나 새로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설하는 창업주, 혹은 새로운 교주가 되겠다는 욕망으로까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정일에 충성했던 이들 숙청
집권 직후 고모부인 장성택을 고사포로 처형하는 등 철권통치를 벌인 것도 정통성이 의심받는 가운데 잠재적 위협 인물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김정은은 당시 장성택뿐만 아니라 장씨의 추종 세력도 대거 공개 처형했다. 이용하 당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 등이 대표적이다. 평양시 책임비서 문경덕을 비롯해 김정일 시신 운구차를 호송했던 리영호 당시 총참모장, 김정각 당시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전 인민무력부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당시 제1부부장 그리고 김기남과 최태복 당시 당비서 등 7인방 또한 차례로 숙청했다. 김정은 정권의 핵심으로 관측됐던 인물들을 모두 해임하며, 김정일이 구축한 후견(後見)체제를 철저히 와해시켰다.
강철환 대표는 “숙청 대상을 살펴보면 아버지에게 충성했던 사람이 많다”면서 “김정일 때만 해도 정치권력 투쟁이라든지 숙청의 명분이 있었는데, 김정은은 고모부 등 상식 밖의 처형도 자행했다. 이런 걸 보면 감정 주체가 안 되고 죄책감도 못 느끼는 소시오패스 기질도 있어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김정은은 2015년 초 이견(異見)을 제시했다는 이유로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 조영남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했고, 그해 4월에는 회의에서 졸았단 이유로 국방장관 격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공개 총살했다. 5월에는 김정은이 추진하던 산림녹화 정책에 불만을 표시했다는 이유로 최영건 내각 부총리를 처형했다. 2017년엔 암살조를 보내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했다. 김정은 집권 후 처형·숙청된 당·정·군 고위 인사는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급사 이유는…
강철환 대표는 이어 “최근 몇 년간 김정일의 급사(急死) 배후에 김정은이 있다는 의심도 여러 루트에서 나오고 있다”고도 했다. 김정일은 2011년 12월 17일 기차로 이동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강 대표는 “급사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24시간 응급처치가 풀가동되는 시스템하에서 후속 조치가 늦었다는 점도 의문이 남는다”면서 “묘향산에서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와 상황이 비슷하다”고 했다. 아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는 뜻이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당시 국가보위성 총무국에 재직했던 탈북민 이모씨는 “김일성의 죽음을 김정일이 앞당긴 건 사실”이라고 했다. 이씨에 따르면 김일성은 사망 전 평안남도 남포 지역 곡창지대 회의 참석차 평양역에서 이동했다. 그는 “출발 전 1호 열차 차량 점검을 해보니 식당, 잠자리, 의료집단 등 총 12대가 편성돼 있었는데, 김일성을 보좌하던 김정일이 의료집단이 들어가는 빵통(기차 화물칸)을 떼고 열차를 출발시켰다”면서 “7월 8일 묘향산에서 의료진 빵통이 없어 응급조치를 못 했고,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씨는 “독재 역사는 그렇게 죽고 죽이며 흘러온 것”이라고 했다.
김용신 박사는 “김정은의 공동 사회가 아닌 본인 체제 유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련의 행보를 보면 콤플렉스뿐만 아니라 반(反)사회적 성향 또한 두드러진다”면서 “이는 김정은을 합리적 인간으로 대할 수 없음과 동시에, 김정은 체제의 북한 또한 정치학적으로 합리적 선택 이론(rational choice theory)에 기반해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실제로 북한은 대북지원과 제재라는 양단(兩端)의 정책 모두 통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주애의 진짜 이름은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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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27일 북한 해군절(8월 28일)을 맞아 해군사령부를 방문한 김정은 딸 김주애에게 거수경례하는 북한 김명식 해군사령관. 사진=연합 |
북한이 대외적으로 공개한 김정은의 자녀는 딸 주애가 유일하다. 김주애는 지난 2022년 11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 발사 현장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김정은의 주요 군사·경제 행보에 함께하고 있다. 통일부와 정보기관은 김주애를 유력한 후계자로 보는 중이다. 등장 초기만 해도 가능성을 낮게 봤지만, 김주애의 의전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후계자설에 무게를 싣고 있다.
북한 고위층 등 탈북민 수천 명을 구출한 JM선교회 K목사는 “현재로서는 김주애가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군 사령관들을 김주애 앞에서 무릎 꿇리는 행위를 할 이유가 없다. 일찌감치 후계자를 내세워 북한 내부 인식 구조에 ‘백두혈통’의 명맥(命脈)을 심고자 한 것”이라면서 “북한 내부 핵심에 따르면 북한의 ‘핵 완성’ 이후 리더십 테마는 ‘우주’다. 김정은은 김주애를 훗날 ‘우주를 지배할 여장군’이라는 아이콘으로 새겨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용신 박사 또한 “북한 지도층 특성상 세습 체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시키고자, 또한 여성도 세습을 받을 수 있는 ‘유연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찍이 김주애를 등장시킨 것 같다”고 했다.
이 가운데 김정은에게 장남이 있으나, 왜소한 체격이어서 대중 앞에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지난 1월 23일(현지시각) 최수용 전 국정원 공작관의 말을 인용해 “김정은에게 아들이 있지만, 외모가 매력적이지 않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최씨는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통통하고 잘 먹은 아버지, 누이(주애)와 달리 아들은 창백하고 마른 편이라고 한다”며 “그의 아들은 증조부인 김일성을 전혀 닮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했다. 북한 지도자에게 김일성을 닮은 외모는 ‘필수 자질’로 여겨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계자 시절 마른 체격이었던 김정은이 김일성처럼 보이도록 체중을 늘린 것도 그래서다.
최수용 전 공작관은 《월간조선》에 “김정은 아들의 이름은 ‘김영주’이며, 김주애의 진짜 이름은 ‘김은주’로 파악됐다”고 했다. 주애란 이름은 지난 2013년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을 만났던 미국 프로농구 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이때 김정은이 ‘저희 애’라 소개한 게 ‘주애’로 와전(訛傳)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실제로 북한은 한 번도 ‘주애’란 이름을 언급한 적이 없다.
“김정은 아들, 모양새가 한심한 수준”
최 전 공작관은 이어 “김정은에게는 현송월, 재일조총련 출신 여성과 사이에서 낳은 혼외자도 둘 있다”고 했다. 현씨와 낳은 아들의 이름은 ‘김일봉’이며, 조총련 여성과 낳은 아들은 현재 5세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름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최 전 공작관은 “이에 따라 일봉, 영주 출생 이후 태어난 북한 주민들은 ‘최고 존엄’의 자녀와 같은 이름을 사용 못 하도록 돼 있다”면서 “서자인 김일봉은 번듯한데, 적자(嫡子)인 영주는 폐병 환자 수준으로 삐쩍 말라 북한식 표현으로 ‘모양새가 한심한 수준’”이라고 했다.
강철환 대표는 “김정은이 김정일처럼 처음부터 부인을 공개하지 않았으면, 더 뛰어난 서자를 적자라 주장할 수 있었는데, 이설주를 공개함으로써 이마저도 불가능하게 됐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의 아들이 중국 유학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국가보위성 총무국 간부 출신 탈북민 이모씨는 “김정은 아들이 마르고 변변치 않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김정은 아들은 2년 전부터 철통 보안 아래 중국에서 유학 중으로, 이후 서방 국가에 나가 정통 후계자 교육을 받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이어 “북한이 현재 김주애를 내세우는 것은 대외 연막(煙幕) 작전이자, 북한 주민들에게는 세습 통치를 각성시키는 차원”이라고 했다.
애초에 아들이 없다는 분석도 있다. JM선교회 K 목사는 “북한의 자녀 문제는 웬만한 중앙당 관계자들도 결코 알 수 없다. 공식적인 공개를 제외하고, 이름, 얼굴, 나이 등이 한 번도 유출된 적이 없다”면서 “다만 북한에 1호 물품을 납품하는 중국 영사부 핵심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후 단 한 번도 남자 어린이 물품을 댄 적이 없다고 한다”고 했다.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시절 단짝 친구였던 조아오 미카엘로 또한 지난 2023년 5월 미 자유아시아방송(RFA)에 “2012년 7월 방북했을 당시 리설주가 딸을 낳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아들에 대해서는 전혀 못 들었다”고 했다. 미카엘로는 김정은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외부 인사 중 하나로 꼽힌다.
북한 권력 체계 전문가인 미 해군 분석센터(CNA) 켄 고스(Ken Gause) 국장도 RFA에 “김정은에게 사실 아들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딸 주애를 군 행사에 동반하는 것은 후계자로 만들려는 행보일 수 있다”고 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종합감사에서 김정은 아들의 존재 여부에 관해 “아직 확인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정보기관의 엇갈리는 보고들
지금까지 김주애를 제외한 김정은의 다른 자녀들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지도부 자녀 관련 정보는 북한에서 극비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김정은 자녀의 숫자, 성별에 관한 엇갈리는 추측이 계속 나오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해 3월 국회 정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김정은의 첫째 자녀는 아들이며, 셋째도 출산했으나 성별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첫째가 아들이라는 구체적 물증은 없지만 외국 정보기관과 정보 공유 등을 통해 확인했다고 한다. 장남의 신체적·정신적 문제에 관해선 확인된 바 없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앞서 2017년 국회 정보위에서도 국정원은 김정은에게 2010년생 아들, 2013년생 딸, 성별 미상의 2017년생 셋째가 있다고 추정해 보고했다.
군 정보기관에서는 첫째 아들의 신체적 문제와 함께 ‘성별 미상의 셋째’를 ‘딸’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국가안보실에서는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자녀는 셋이지만, ‘첫째는 아들, 둘째와 셋째는 딸’이라는 정보와 다른 성별 구도를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김주애가 유력한 후계자이지만, 변수가 생길 여지도 있는 셈이다.
강철환 대표는 “현재로선 김주애가 누군가를 보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면서 “향후 후계 구도에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4대(代)에 이르러 후계자가 부실해지거나 족보가 꼬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