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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수필 속으로

수필가 이강민의 감동사연 ‘아버지와 소’

“싱거운 얘기지만 열흘 안으로 결혼해주실 수 있나요?”

글 : 이강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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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암 치료를 위해 기르던 소를 판 아버지
⊙ 베트남에 있는 아들과 채팅으로 글을 주고받던 국제파 장모님
⊙ 까까머리 애송이가 멋모르고 지원한 해병대… “누나 있어?” “네, 있습니다”

[편집자 註]
지난 2020년 2월 우리나라 서해 끝자락 함박도가 북한 땅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월간조선》은 〈말도·함박도의 추억〉을 보도하며 예비역 해병대원 이강민(李康敏·67·해병 263기)씨를 만나 증언을 들었다. 그는 1973년 12월부터 75년 초까지 말도 소대(인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에서 근무했다.
인천 부평에서 화물용 승강기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씨가 최근 저서 《아버지와 소》(생각나눔 刊)를 펴냈다.
그는 2014년 《문예사조》로 등단했으며 짚신 문학상(2016), 지필 문학상(2017)을 수상한 중견 수필가다. 부천 ‘생명의 전화’ 39기 대표이자 부천 필로스 시민 교향악단 대표, 부천교육청 소속 ‘청소년 꿈의 학교’ 교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무슨 대기업 승강기 회사 회장도 아니고 군대서 별 달고 제대한 것도 아닌 병장 출신의 이력이 전부이지만” 육십 인생을 살아오며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온 인생의 흔적을 글 속에 고스란히 담았다. 책에는 해병대 시절 경험담도 담겨 있다.
지난 3월 개정판(4쇄)을 내놓을 정도로 입소문을 타면서 책이 스테디셀러가 되고 있다. 동네 복사 집에서 원고를 제본해 지인들끼리 돌려 보다가 정식 출판 계약을 맺고 책으로 발간했단다. 그의 말이다.
“제 부족한 글이 독자의 삶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빛내주는 그런 반딧불 같은 역할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이며 진짜 책을 낸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에 《월간조선》은 책에 담긴 감동적인 수필 3편을 소개한다.
아버지와 소. 일러스트=조선일보DB
  아버지와 소
 
《아버지와 소》의 저자 이강민씨.
  어머님께서 암으로 3개월밖에 못 사신다는 의사의 통보를 받고, 어머님을 병원에서 구급차로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같이 타신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63세의 나이가 630 정도나 들어 보이는 농부의 슬픈 얼굴, 내 아버지 이기진 님은 하얀 시트에 누워 눈만 둥그러니 떠 바라보시는 어머니 남기순 님의 손을 잡고 천둥 같은 한숨을 토해내며 울음을 삼키고 계십니다.
 
  다음 날, 아버지와 아들이 소를 팔기 위해 새벽길을 나섭니다. 그 병원에서는 3개월이라 하지만, 서울 큰 병원에 한 번 더 가보자는 아버지의 말씀에, 집에서 기르던 소를 팔기 위해 아버지는 어미 소, 나는 송아지를 잡고 새벽의 성황당 길을 오릅니다. 아버지는 저만큼 앞에서 어미 소를 끌고 앞서 가시고 나는 뒤에서 송아지를 끌고 뒤를 따르는데,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이상한 흐느낌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새벽의 산새 소리 같기도 하고, 새벽바람에 스치는 갈대 소리 같기도 하고….
 
  내가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낸 것은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아버지가 연신 팔뚝으로 얼굴을 닦으시는 모습을 보고 난 뒤였습니다.
 
  아버지가 소의 고삐를 잡고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소의 고삐를 움켜쥐고 흐느끼며 우시는 늙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도 송아지를 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처음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고, 아버지가 우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랴!” 소리로 울음을 숨기시던 아버지
 
이강민 수필가의 《아버지와 소》.
  일본강점기와 6·25 피란 시절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셨다는 아버지가 이 새벽 장터로 가는 성황당 고갯길에서 새벽을 깨우며 흐느끼십니다. 아버지는 울음을 자식에게 보이기 싫으셨던지 연신 “이랴!” 소리로 울음을 숨기시며 길을 재촉하십니다.
 
  내가 해병대 훈련소 수료식 날, 청자 담배 두 보루를 들고 인천에서 머나먼 진해까지 밤새 기차를 타고 면회 오시어 멋쩍은 듯 자식에게 담배를 주시며 “이거 네 엄마가 사준 거니까 조금씩 피워!” 하시던 나의 고마운 아버지.
 
  너무 마른 나의 모습을 보고 “이놈아, 힘들면 높은 사람에게 힘들다고 얘기해” 하시며 근심 어린 모습으로 내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 아! 그때 처음 아버지의 손을 잡아보았고, 그때 처음 아버지의 슬픈 눈망울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안개가 걷히고 우시장이 나타납니다. 소를 팔고 시장의 순댓국집에 아버지와 앉았습니다. 순대 한 접시를 시켜놓고 소주 한 병을 주문했습니다.
 
  “송아지 끌고 오느라 애썼다. 참 정이 많이 든 소인데 이 소들이 네 엄마를 살릴지 모르겠다.”
 
  아버지께서 소주잔을 나에게 주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강민아! 네 엄마 소원이 뭔 줄 아느냐?”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엄마와 28년을 살면서 아직 엄마 소원을 들어본 적도 없었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조금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한참을 망설인 후 입을 여셨습니다.
 
 
  소를 팔아 치료한 보람도 없이
 
  “너 장가가는 거 보고 눈감는 거야.”
 
  아! 어머니 소원이 내가 장가가는 거라니….
 
  아버지에게 몇 잔의 소주를 더 청해 마시며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그래, 어머니의 소원을 한번 들어드리자. 하지만 결혼은 여건이나 현실로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우선 결혼할 상대 여자가 없고, 가진 돈과 직업도 없으며, 인물도 변변치 못해 약속은 그저 약속에 그칠 수밖에 없는 씁쓸한 현실이었습니다.
 
  소를 팔아 치료한 보람도 없이 어머니는 큰 병원에서도 가망이 없어, 다시 퇴원하여 집에서 쉬시며 이제 병원에서 제시한 3개월에서 한 달이 남은 상태입니다. 그런 와중에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라는 하나님의 도우심인지 형님이 다니는 교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여자가 있으니 선을 한 번 보라고.
 
  어두컴컴한 부천역 지하 다방에서 딱 한 번 얼굴을 보았습니다.
 
  나는 사실 그때 무엇을 따지고 무엇을 내세울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여자의 얼굴을 쳐다볼 용기도 없었습니다.
 

  다음 날 빠른 엽서 한 장을 보냈습니다.
 
  “우리 어머님께서 앞으로 한 달밖에 못 사십니다. 그래서 나는 한 달 안으로 결혼해야 합니다. 이것이 어머님 소원이며 유언이기 때문입니다. 싱거운 얘기지만 열흘 안으로 결혼해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답신이 왔고, 우린 결혼을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예식을 하는데 어머님께서 병원차를 타고 오셨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앉으신 어머님께서 웁니다. 아버지도 울고, 나도 울고, 내 아내도 울고…
 
  사정을 아시는 하객들과 주례 목사님도 울었습니다.
 
  신혼여행을 뒤로 미루고, 인천 연안 부두에 가서 김소월 시인의 시 ‘엄마야 누나야’를 부르며 친구들과 어울렸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어머님은 보름 후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그해 가을 어머니를 그리다 어머니 곁으로 가셨습니다.
 
 
  우리 부모님의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동갑 나이에 한동네에서 태어나시어 63세의 같은 해 봄과 가을에 돌아가신 두 분. 남들은 복받은 분이라 얘기하지만 허울 좋은 이야기요, 그 힘들고 아프게 살아온 삶 하늘밖에 누가 알리오.
 
  부모님의 산소를 양지바른 곳에 모시고 비석에 “하나님 아버지, 불쌍한 우리 부모님의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이렇게 새겨놓고, 그래도 이제라도 효도하는 것은 형제들끼리 잘 지내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작은 책임 아닌가 하며 다짐하며 살고 있습니다.
 
  나는 결혼 후 장모님을 어머니처럼 생각하며 30년을 함께 한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젠 장모님과도 함께 늙어갑니다. 그리고 신혼여행도 못 가고 결혼 첫날부터 어머님 곁에서 정성을 다한 아내를 위하여 10여 년 전부터 해마다 해외 신혼여행을 다녀오곤 합니다.
 
  아버님! 이제 낙엽이 지고, 그 낙엽이 아버지 산소에 눈처럼 쌓이는 겨울이 오면 아버님의 산소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장모님의 일기
 
90세 생신날의 장모 차덕례 여사.
  2007년 음력으로 12월 30일, 양력으로는 12월 7일, 내 동생 차정호 하늘나라 갔다. 정말 슬프다.
 
  2010년 2월 24일, 시계 밥을 주었다. 나도 고깃국에 밥 먹었다.
 
  2011년 4월 5일, 새벽기도 시간 집에서 5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교회 간다. 잠은 자정에 깨었지만, 교회 가면 6시 딱 맞아서 기분이 좋다.
 
  2011년 7월 11일, 우리 손자 이욱제, 할머니 용돈 5000원 줘서 감사하다. 첫째는 건강하고, 차 조심하기를 할머니는 기도한다.
 
  2011년 8월 19일, 우리 둘째 며느리 선율 엄마, 감사하다. 두꺼운 옷도 사주고 가벼운 옷도 사주어 잘 입고 있다. 잘 살아라!
 
  2012년 2월 8일, 순천향병원에서 약 타 왔다. 내가 정신이 없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한다. 나는 정신이 있는데 의사 선생님은 왜 그럴까? 그렇지만 약을 먹었다.
 
  80이 넘으신 장모님의 일기장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처럼 색이 노랗게 바랬다. 책이 오래된 것은 물론이고, 거기 일기장 속에는 장모님의 삶이 아프게 묻어 있는, 한 편의 기막힌 역사가 배어 있다. 나이 40대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5남매를 업고, 이고, 둘러메고 한 세상 힘겹게 살아오신 장모님이다.
 
  내 나이 스물여덟에 나의 어머님은 돌아가시고, 스물여덟에 결혼하여 서른 살부터 모시고 살았으니, 살아온 시간으로 계산하면 내 친어머님보다 긴 시간 동안 나와 같이 사신 장모님이다. 이젠 서로의 나이가 60을 넘고 80을 넘어 반바지 속옷 바람에 마주 앉아도 부끄러울 것이 없고, 장모님이 화장실 목욕탕에서 늘어진 젖통을 드러내고 흔들어도 전혀 감각이 없는 우리는 함께 늙어가는 한가족이다.
 
 
  우리는 함께 늙어가는 한가족
 
  장모님의 휴대전화기 단축 번호가 아들딸, 며느리, 다 제쳐놓고 큰 사위인 내가 1번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장모님과 나는 한 몸이다.
 
  이런 장모님이 요즘 치매가 심해져 온 집안을 긴장시키고 있다. 저녁을 아침으로, 아침을 저녁으로 기억하시어 해 뜨고 해 지는 감각이 떨어지시고, 문 열고 잠그는 것부터 시작해 불 끄고 켜는 것까지 너무 가르치고 연습시키는 일이 많다.
 
  아내가 “엄마, 그건 그게 아니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하고, 하나라도 알려주려 하면 괜히 슬퍼 우신다.
 
  너도 늙어보라며 늙은이 무시한다고, 아내는 아내대로 스트레스가 쌓여 엄마 보기를, 최영 장군이 돈을 돌처럼 보듯이 보며 쌀쌀맞게 돌아선다.
 
  아! 우리 어머님, 나의 장모님이 어쩌시다가 이렇게 되셨을까?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줄줄이 쓰시며 매일 외우시던 장모님, 70이 넘어서도 나보다 컴퓨터를 더 잘하시어 베트남에 있는 아들과 채팅으로 글을 주고받으시던 국제파 장모님. 장모님의 빛바랜 일기장을 보며 그간 살아오신 긴 여정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나는 장모님을 보호하는 1번 참모로서 그 사명을 다하고 싶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황혼의 별장과 홍순이
 
  1973년 겨울, 찬 바람이 몰아치는 서부 전선 최북단 섬 말도, 보통 지도에는 흔적이 없고 큰 지도를 펼치고 자세히 보아야 표시된 작은 섬. 여객선이 없어 앞의 섬 보름도에서 내려 뗏목을 타고서야 진입할 수 있는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 DMZ 남측 한계선 안에 있는 홀로 된 작은 섬 말도.
 
  까까머리 열여덟 애송이가 멋모르고 해병대에 지원했고, 훈련을 마치고 팔리고 팔려 그곳까지 가게 됐습니다. 620명의 동기생들이 진해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사단, 여단, 연대, 대대, 중대, 소대를 거쳐 각각의 근무지로 곤봉을 싸들고 ‘나가자 해병대’ 군가를 힘차게 부르며 나갈 때, 나 혼자 이런 무인도 같은 섬에 배치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부대원들이 열댓 명, 모두 내가 보았던 늠름한 대한민국 국군 같지 않은 시커먼 복장이었고, 마을은 민가가 서너 채 보이는데, 그야말로 만화 속에나 나오는 그런 작은 섬 말도였습니다.
 
  해 질 녘 서해바다로 이글거리며 넘어가는 해는 정말 그림 잘 그리는 화가가 하얀 도화지에다 빨간 홍시를 확 터트려놓은 듯 멋지게 색칠을 하였고, 누구든 저녁노을 앞에서는 시인이 되었으며, 그래서 선배들은 그곳을 ‘황혼의 별장’이라는 기막힌 이름을 지어 붙였나 봅니다.
 
 
  ‘황혼의 별장’이라는 기막힌 이름
 
  “아! 저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하는 박재삼 시인의 애끓는 탄식 소리가 절절하게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청마 유치환 시인도 이런 이글거리는 바다를 보고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나는 정말 어쩌란 말이냐” 하며 그 몸서리치는 아름다움에 붓을 들지 않았을까요?
 
  내가 김포 청룡부대 여단본부에서 각 부대로 차출되기 전 조금 들은 얘기로는 말도라는 섬이 있는데, 거기는 북한 넘어가는 실미도 부대원들이 훈련하는 곳이라는 것과 거기는 해병대의 골통 특급 사고자들만 보내는 청송교도소보다 더 험한 살벌한 곳이라는 것 정도만 얼핏 들었지, 지금 내가 가는 곳이 그런 말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북한이 자기네 땅이라고 박박 우기는 함박도가 말도와 한 뼘 차이로 삐딱하게 보이는 해병대에서도 0.1%만 가볼 수 있다는 민간인 통제 지역.
 
  나는 그곳에서 근무하며 월급날이 언제인 줄도 몰랐고, 아니 우리 같은 졸병은 월급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 생각하니 선임하사가 중대 다녀오면 건빵 한 봉지씩을 선심 쓰듯 주었는데 그날이 군인의 월급날인 것 같습니다. 군인의 생일이라는 국군의 날도 미역국은커녕 오래된 고추장이나 비벼 먹는, 보급품을 줄래야 줄 수도 없는 대한민국 최전선 고독한 섬 말도에서 군 생활을 보냈습니다.
 
  가끔 모자에 별 몇 개 단 미국의 높은 분들이 헬기 타고 찾아와 기껏 주고 간다는 것이 운동 열심히 하라고 준 야구공과 야구방망이였는데, 어라! 선임들이 치라는 공은 안 치고 졸병들 엉덩이만 후려쳐 한동안 미군을 원망한 적도 있었습니다.
 
  컴컴한 지하 벙커에 들어서니 월남 전쟁에서 철수한 선임병들이 줄지어 앉아 참으로 신기하다며 마치 동물원 안 원숭이를 보듯이 나를 쳐다봅니다.
 
 
  “개나리 아리랑 남포, 감 잡았다. 나오라”
 
해병대 시절 이강민. 5대 1의 체력 시험을 뚫고 자원 입대했다.
  벙커 밖에서는 앙칼진 여자 아나운서가 떠들어대는 북한의 대남방송이 생생하게 들려오고, 벙커 안에서는 “개나리 아리랑 남포, 감 잡았다. 나오라” 하며 잡음 나는 무전 소리가 공포에 공포를 더해줍니다. 나는 너무 긴장하고 무서워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수없이 외고 또 외웠습니다. 서울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강원도 최전방의 로켓이 평양으로 날아간다는 전자 컴퓨터 시대에 전기가 안 들어와 부대에서 호롱불을 켜고 지내는 군대가 있다니….
 
  내가 그래도 5대 1의 체력 시험을 통과해 멋지다는 해병대에 지원 입대했지만, 여긴 해병대가 아니라 당나라 군대다 하며 크나큰 실망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군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신고합니다. 이병 이강민은…” 하는 신고식을 열댓 번 하고서야 최고 선임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계급은 분명 작대기 네 개 병장인데 턱에 털이 부스스하게 난, 호롱불에 희미하게 비치는 그의 얼굴은 오십 먹은 사단 주임상사쯤으로 보이고, 반바지에 팔각모를 삐딱하게 쓰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껌을 씹는 그는 대한민국 군인이 아니라, 조선인민공화국의 빨치산 부대원이었습니다. 지리산의 빨치산 부대….
 
  “누나 있어? 누나 있냐고, 이놈이 귀가 먹었나?”
 
  “네, 있습니다.”
 
  아! 동물의 세계를 보면 사슴이 사자에게 쫓기다 막다른 코너에 몰리면 사자가 물지도 않았는데 제풀에 쓰러져 신음하는 것처럼, 아니 영화를 보면 고문당하는 사람이 참다 참다 못 견디어 아무 말이나 마구 해대는 것처럼 나는 공포에 짓눌려 없는 누나를 있다고 토설하는 급박한 사정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나의 소원은 내일 죽어도 오늘 제대하는 것
 
  “있습니다” 하는 한마디에 내무실 상황은 급반전했고, 빨치산은 나에게 “앉아, 힘들지? 자식, 겁먹기는” 하며 씩 웃었습니다.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성범죄자 그 모습이었습니다. TV에서 가끔 보면 흉악한 범인이 현장 검증 갈 때 수갑 차고, 씩 웃는 모습처럼. 넌 오늘부터 내 옆에서 잔다. 빨치산은 늙은 마누라를 버리고 무슨 새 첩이나 들인 것처럼 날 보고 히쭉거렸고, 내 군 생활의 출발은 거기서부터 삐걱거리고 있었습니다. 잠을 자려고 모포를 덮었지만 잠이 올 리 있나요?
 
  처음 온 신병이라 오늘은 보초도 안 세운다며 내 집처럼 편히 푹 자라고 하는데, 잠이 오느냐 말이에요. 벙커 밖에서는 북한 놈들의 대남방송이 윙윙거리지, 벙커 안에서는 통신병의 무전 소리가 소란스럽지….
 
  나보다 1개월 빠른 선임병이 겁에 겁을 더해줍니다.
 
  “여긴 말이야, 예전부터 국방부하고 즉시 연결이 안 되는 지역이야. 적과 교전을 해도 우린 지원 못 받고 적이 침투하면 이 자리에서 모두 자폭하라고 부대 주위에 클레이모어를 벌집처럼 깔아놓았어. 그러니 함부로 밖에 나가 혼자 돌아다니지 마. 또한 저기 보이는 저곳이 북한 땅 연백이고, 저 철조망 보이는 곳이 북한 최정예 김신조가 훈련받은 124군 특수부대야. 서로 넘어와 목도 따 가는 특별한 곳이야.”
 
  참으로 그때 나의 소원이 있다면 통일이 아니고, 내일 죽어도 오늘 제대하고 싶은 것이요, 정말 할 수만 있다면 해병대 탈영해서 동네 동사무소 가서 방위 생활하고 싶은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아! 내 친구 홍순이는 동네 동사무소에서 예쁜 미스들과 농담 나누며 아메리카노 커피를 홀짝거리며 아침저녁 어머님께서 싸 주시는 달걀 덮인 도시락을 맛있게 먹으며 희희낙락 방위 생활하는데 나는 이게 뭔가? 해병대가 모양새 나서 입대한다고 동네에서 송별회 뻐근하게 하고 왔건만, 지금 여기 비참하게 떨며 자라는 잠도 못 자고 끙끙 앓고 있는 나의 모습은….
 
  “누나 이름이 뭐야?”
 
  빨치산이 한 단계 낮은 음으로 물었습니다. 무의식적인 공포 속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온 나의 말.
 
  “네, 사촌 누나이고요. 이름은 이홍순입니다. 나이는 스무 살이고 대학생입니다. 예쁩니다….”
 
  한번 거짓말에 2탄, 3탄의 거짓말이 더해지고 보태집니다. 잘은 모르지만, 스무 살이고 대학생이고 예뻐야 빨치산이 흐뭇해할 것 같아 빨치산이 다시 물어보기도 전에 미리 내가 알아서 재차 대답을 해버렸습니다.
 
 
  살찐 토끼를 발견한 배고픈 늑대처럼
 
해병대 2사단 말도 근무 예비역 해병대원들. 왼쪽부터 이강민(해병 263기), 김성덕(해병 180기), 김돈하(해병간부 75기), 정남균(해병 507기), 김흥석(해병 262기), 김종환(해간 34기), 김무일(해간 35기)씨 등이다.
  며칠 산속을 헤매다 살찐 토끼를 발견한 배고픈 늑대처럼, ‘사촌 누나 이홍순’ 하며 누런 이를 드러내는데, 아! 불쌍한 내 친구 방위병 이홍순이란 이름이 여기 최전방 GOP에서 굴러다닐 줄은 녀석이나 나나 꿈에도 몰랐습니다.
 
  간덩이가 부어갑니다.
 
  다음 날, 선임이 손수 끓인 보약보다 귀한 라면을 내 허기진 배에 꾸역꾸역 밀어 넣습니다. 사람이 죽으려면 뭔 꿈을 못 꾸겠는가? 뜨끈한 국물이 있으니 독한 소주가 한 잔 생각났습니다. 독한 소주 한 잔에 오늘 이 복잡하고 정리 안 되는 상황을 모조리 잊고 싶었습니다.
 
  ‘꿀꺽’ 하고 마지막 남은 국물을 비우는데 빨치산은 회장님이 식사 마치시는 것을 공손히 기다리는 비서처럼 “여기 담배” 하며 화랑 담배 장초에 불까지 붙여 주는 것이 아닙니까?
 
  며칠 후,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감을 인식한 나는 휴가 가는 대원을 통해 한 통의 편지를 전보처럼 날렸습니다.
 
  〈이홍순 보아라!
 
  너는 오늘부터 내가 제대하는 날까지 내 사촌 누나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이유는 묻지 마라. 혹시 해병대에서 너와 사귀자고 편지 가면 “야, 이 미친놈아, 나는 남자다” 하지 말고 공손하게 답장해줘라. 너희 집 주소 알려줬으니 네가 편지 보고 알아서 상황을 잘 판단하고 부디 건투와 건승을 빈다. 만약 이 모든 사실이 폭로되면 나는 발각과 동시에 동작동 국군묘지로 가니, 네가 진정 내 친구라면 우리 거기 동작동에서 절대 만나지 말자. 내가 너한테 좆도 방위 이홍순이라고 놀린 것 진심으로 사죄한다.
 
  -전방에서 조국을 지키는 둘도 없는 너의 친구 강민〉
 
  빨치산은 신이 났습니다. 홍순이가 보내온 답장을 보고 희희낙락 역시 대학생 문장력은 다르다며, 오늘부터 어느 놈이 이강민이 건드렸다가는 여기서 살아서 못 나간다고 소대에 지침까지 내려놓았습니다.
 
  더욱 기막힌 것은 녀석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는지, 아니면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자기 모습이라고 사진 한 장을 턱 보내왔는데 그 사진 때문에 지하 벙커 안 소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점잖으신 소대장님까지 편지 속 사진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모습에 이건 사건이 보통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지하 벙커 안 소대가 발칵 뒤집혀
 
  아! 드디어 이홍순 이놈이 동네 친구 이강민이를 여기서 죽이는구나. 이놈이 동사무소에서 여자들과 시시덕거리더니 해병대 선임병 알기를 예비군 중대 선임 정도로 아나 보다 하고 분을 삼켰습니다.
 
  녀석이 보내온 사진을 보고 나는 경악을 했습니다. 그 사진 속 여자는 녀석이 지갑에 꽂고 다니며 자기 스타일이라고 늘 엉큼스럽게 훔쳐보던 일본 여자 배우 사진으로, 반나체 자세로 입을 헤벌쭉하고 찍은 사진을 자기라고 보냈으니 벙커가 뒤집힐 수밖에요.
 
  시간은 그렇게 그렇게 지나 사건은 상상의 수준을 넘어 소설 속의 꼬이고 엉킨 지경에까지 도달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완전 범죄는 없다 하고 수사반장 최불암이가 밝혀내듯이 드디어 터지고야 말 비극의 사건이 한 발자국씩 먹구름처럼 내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빨치산이 말년 휴가를 간다며 휴가 가서 홍순씨를 만나고 온다는 것입니다. 휴가 가서 이홍순이를 만난다? 아! 드디어 내가 국립묘지 갈 날도 멀지 않았구나. 도대체 이 참사를 어쩐다나? 만약 사실이 폭로되면 선임은 이홍순이는 물론, 동사무소 방위병들까지 월남에서 베트콩 잡듯이 모조리 짓뭉개고 올 텐데 밥이 목에서 넘어가질 않았습니다. 잠이 올 리 있나요? 아! 선임이 휴가 가기 전 목을 길게 내려놓고 “잘못했습니다” 죽일 테면 죽이라고 이실직고해야 했는데 그만한 배짱도 없고, 선임이 휴가 간 일주일은 내 군 생활 36개월보다 길었고, 솔직히 에라, 전쟁이나 터지라고 자포자기했으니까요.
 
 
  이실직고해야 했는데 그만한 배짱도 없고…
 
  며칠 후! 선임이 말년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나는 속으로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하며 장례 찬송을 불렀는데, 선임은 신기하게도 웃었습니다.
 
  부대에 오자마자 ‘야, 이 기합 빠진 졸병이 선임을 가지고 놀아?’ 하며 곡괭이 자루를 집어 들어야 순서가 맞는데, 선임이 웃으며 잘 있었느냐고 어깨까지 두드려주다니, 아! 이게 어찌 된 사건인가?
 
  사건의 개요는 이러했습니다. 선임이 홍순이 집을 찾아갔습니다. 우리의 홍순이는 선임이 휴가 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작전에 작전을 전개했습니다.
 
  동네 해병대 출신 선배 몇 분에게 이러쿵저러쿵 잘못하면 이강민이가 선임 손에 맞아 제대도 못 하고 죽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한 다음, 자기 집을 찾은 선임을 만나 술 한잔하자고 유인한 뒤, 자기는 홍순이 오빠인데 홍순이는 이미 약혼자가 있으니 포기하라며, 자기 동생이 편지를 쓴 이유는 강민이가 군대 생활 좀 편하게 하도록 하려고 그런 거라며, 다른 여자 소개해준다는 약속으로 기분 좋게 헤어졌다 이겁니다.
 
  선배 말이라면 껌벅 죽는 해병대에서 동네 선배들이 빙 둘러앉아 얘기하는데, 거기서 그래도 나는 기어이 홍순씨 만나고 가야겠노라고 반항했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 같아 선임도 웃으며, 홍순씨 결혼해서 잘 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왔다는 거죠.
 
  이 말을 듣는 순간 아!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과 내 친구 홍순이의 작전과 용병술은 이순신 장군의 노량대첩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전역한 지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몇 년 전 선임의 소식을 알았습니다. 태국에서 한국 식당을 운영한다는 선배님. 선배님, 그때 그 시절 제가 빨치산으로 부른 것 죄송합니다. 선배님, 홍순이보다 더 멋진 형수님과 잘 사시리라 믿습니다. 선배님,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 친구 홍순이는 지금도 늘 내 옆에 남아 나의 든든한 나무가 되어 잘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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