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인물 포커스

사우디 왕실 주치의에서 성경고고학 탐험가 된 김승학 이사장

“모세가 ‘십계’를 받은 시내산은 이집트가 아니라 사우디에 있다!”

글 : 오동룡  조선뉴스프레스 취재기획위원·군사전문기자  gomsi@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베스트셀러 《떨기나무》 작가… 첫 번째 탐사 때 비밀경찰 손에 목숨 잃을 뻔
⊙ “이집트 시나이 반도의 시내산(자발무사)은 526년 로마 황제가 근거 없이 정한 것”
⊙ 홍해의 기적은 ‘사실’… 애급 병사들의 마차 바퀴와 인골도 발견
⊙ 광야 지역에 휴대용 절구들 무수히 나뒹굴어… ‘만나’를 갈았을 것으로 추정
⊙ 수백km에 이르는 초대형 스톤서클이 펼쳐져… 개인 주거용 돌무더기도 발견
⊙ ‘붉은 암송아지’ 암각화도 처음 발견… 성막의 메노라 금등잔대도
⊙ 하나님의 모습 새긴 ‘야훼 스톤’에는 고대 히브리어로 ‘YHWH(야훼)’ 표시
해발 2530m의 라오즈산(시내산) 정상 부근에 선 김승학 엑소아크선교회 이사장.
  《천일야화(千一夜話)》의 대표 격인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이야기,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영화화한 〈아라비아 로렌스〉의 배경 무대, 그리고 21세기에도 왕이 입법부와 행정부 및 사법부를 통치하는 나라. 사우디아라비아는 대한민국 국토의 무려 20배에 달하며 대부분이 사막이다. 지금 사우디는 무하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가 2035년까지 약 5000억 달러(668조원)를 투입해 서울시 면적의 44배나 되는 사우디 북서부 지역을 그린에너지 도시로 바꾼다는 ‘네옴’(NEOM) 프로젝트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주목할 것은 네옴 프로젝트가 펼쳐지는 사우디 북서부 사막이 구약성서의 새로운 성지(聖地)로 전 세계인이 몰려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 28일 이스라엘문화원에서 만난 엑소아크(Exo-Ark)선교회 김승학(金承學·66) 이사장은 구약성경 출애굽기의 핵심 무대인 시내산의 위치를 재조명한 베스트셀러 《떨기나무》의 저자다. 그는 1987년부터 16년간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한방주치의로 로열패밀리들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그는 2001년부터 가족과 함께 사우디 북서부 미디안 광야 지역을 탐사하면서 구약성경의 수많은 출애굽의 퍼즐 조각들을 현장에서 ‘사실’로 확인했다.
 
 
  의료인원으로 사우디행
 
김승학 엑소아크선교회 이사장.
  — 어떻게 고고학과는 거리가 먼 한방 주치의가 성서고고학적 탐험을 할 수 있었나.
 
  “서울에서 한의원을 해서 크게 성공했다. 옆에 치과병원도 하나 내고, 건설회사도 하나 세우고, 예식장 사업에도 손을 대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건설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모든 재산을 날려버렸다. 허탈한 마음으로 좌절하고 있을 때, 해외개발공사에서 연락이 왔다. 이곳은 당시 해외로 나가려는 인력들을 선발하고 훈련해서 해외로 취업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다. 1987년 사우디아라비아 보건사회부 차관이 와서 의료인원 700명을 선발하는데 의학용어를 통역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 역시 의료인원으로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다.”
 
  — 사우디에서는 선교 활동이 어려웠을 텐데.
 
  “사우디아라비아는 네 가지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술과 돼지고기, 노출이 있는 여자 사진, 그리고 성경, 찬송이었다. 다른 건 나와 무관하지만 내가 그래도 모태(母胎)신앙인데, 또 언제 한국으로 휴가 올지도 모르는데, 성경, 찬송은 꼭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잡히면 영창 간다니까 고민이 됐다. 고심 끝에 찬송, 성경책을 가방 맨 밑에 꽁꽁 숨겨 그 위를 옷가지와 음식 등으로 위장했다. 그러나 사우디의 세관 검사를 피할 수는 없었다. 관리가 ‘가방 맨 아래에 있는 책은 뭐냐’고 물었다. 아슬아슬하게 ‘한국의 역사책과 노래책’이라고 둘러대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사우디에서의 신앙 생활은 하루하루가 거의 순교자의 길 같았다.”
 
 
  사우디 왕자의 주치의가 되다
 
지난 2003년 작고한 17억 명 회교도 총수이자 메카 주지사 마지드 왕자. 그는 김승학 이사장을 주치의로 임명하고 아들처럼 대했다.
  — 사우디에 와서 어떤 활동을 했나.
 
  “아내도 사우디 의료인력으로 왔다. 나는 사우디 왕립병원에 최초로 한의원을 세우고 진료를 했다. 현지 신문에 ‘침으로 몸을 치료한다’는 내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나오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와서 침을 맞고 나으니 동양의학을 무척 신기하게 생각했다. 사우디왕립병원과 제다병원에서 침구한방과를 제1호로 개설해 운영했다. 어느 날, 내 기사를 보고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 나를 찾았다. ‘메카 주지사’였다. 그분은 나를 아들처럼 생각해주었다.”
 
  전 세계 66억 인구 중에서 17억이 이슬람교도다. 이슬람교도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메카를 향해서 절을 한다. 그곳에 알라 신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알라 신전에 17억 명 교도 중에서 유일하게 들어가는 딱 한 사람이 메카 주지사 마지드(2003년 사망) 왕자다. 모든 이슬람교도의 총수 역할을 하는 그는 사우디 국왕 살만 빈 압둘아지즈(88·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부친)의 동생이다. 두 사람의 아버지는 사우디를 통일하고 초대 국왕을 지낸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1875~1953년)다.
 

  — 마지드 왕자는 어디가 아파서 이사장님을 찾은 건가.
 
  “그분이 바늘로 이곳저곳 찔러 병을 낫게 한다는 내 얘기를 듣고 만나자고 한 거다. 그분이 목에 디스크가 있었다. 온갖 치료를 다 해도 차도가 없었는데, 내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생긴 거 같다. 여섯 번의 치료 끝에 목 디스크가 씻은 듯이 나았다.”
 
 
  왕실 차량 번호판의 힘
 
  — 어떤 계기로 시내산을 찾게 됐나.
 
  “왕자는 또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잠을 자려 해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날도 왕자 곁에서 대화를 나누며 다리도 지압해 드리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한참 기도하는데 코 고는 소리가 났다. 불면증이 나은 거다. 1992년부터 왕자의 주치의가 되어 왕실에서 16년간 일하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큰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왕자의 약재 구입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부친(김상태 장로)이 탐험가 론 와이어트가 촬영한 〈디스커버리〉란 비디오테이프를 주시며 시나이 반도의 시내산 성지순례를 다녀왔는데 성경과 너무 다르니 진짜 시내산을 찾아보라고 하셨다.”
 
  — 당시 사우디 정부가 성서 유적지로 추정되는 지역들을 일반에 개방했나.
 
  “시내산 지역에 이스라엘을 향한 미사일 기지를 만들고 엄중히 경비해서 아무도 그곳에 접근할 수 없었다. 이슬람국가인 사우디는 북서부 광야 지역이 구약성경의 성지(聖地)란 사실을 간파했는지, 시내산 지역에 철조망을 둘러치고, 잘 훈련된 비밀경찰과 특공대원들, 심지어 베두인들까지 삼엄하게 경계를 했다. 즉결 체포가 이뤄지는 지역이다. 그런데 나는 왕실 주치의로 있으면서 그곳을 탐험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얻었다.”
 
  — 좋은 조건이라니.
 
  “탐사를 위해 차를 사려고 하던 날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마침 왕자가 내게 차를 선물해주었는데, 왕자의 이름으로 등록된 ‘999 번호판’이라서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어느 지역이든 다닐 수 있는 금물 야자수 문양에 칼이 들어간 정부 로열패밀리의 통행허가증도 얻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론 그 지역의 언어와 문화에 이미 능통했고, 미디안(이스마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사우디 북서부 아라비아) 광야 지역에 사는 토착 원주민들과 친분을 쌓아두어 안내원 역할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사우디 북서부가 미디안”
 
모세가 애급 사람을 살해하고 미디안으로 도망했을 때 앉았던 모세 우물(에인 무사). 이곳에서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를 만나 결혼한다. 근처에 이드로 제사장의 흙집이 있다.
  — 어려움은 없었나.
 
  “탐사 중에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다. 코브라와 전갈보다 무서운 것이 사람이었다. 비밀경찰들에게 아내가 머리채를 붙잡혀 끌려가기도 했고, 딸들이 납치당할 뻔도 했다. 장난감 권총이 아니었다면, 첫 탐사에서 가족 모두를 잃을 뻔했다. 하루 1200km 거리를 주행하면서 주유소가 나타나기만 하면 무조건 기름을 넣어야 했다. 모래에 빠진 사륜구동 지프를 빼내려고 밤새도록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위험 속에서도 7년 동안 나침반과 지도 한 장만 들고 12차례나 탐사를 떠났던 건, 전율을 느낄 만큼 놀라운 출애굽의 증거들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거룩한 산으로 불리는 시내산의 위치는 오랜 세월 논란이 돼왔다. 사우디에 모세가 십계명(十誡命)을 받은 시내산(라오즈산)이 있을 것이라 어떻게 생각하게 됐나.
 
  라오즈산의 정식 명칭은 자발 라오즈(Jabal al-Lawz)로, ‘라오즈’는 아몬드를 뜻한다. 실제로 라오즈산에는 아몬드 나무들이 있다. 성경 국역자들에게 ‘아몬드’를 표현할 방법이 없던 이유로 성경에는 ‘살구’로 나온다.
 
  “성경 말씀에도 모세가 바로(파라오)를 피해 도망한 곳은 미디안 땅이고,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우디 북서부 땅은 그전부터 미디안이었고, 지금도 미디안이다. 미디안 사람인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이름이 지역에 표시된 곳도 지금 존재한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A.D. 37~100년)도 시내산을 아라비아의 미디안 땅에 있는 산으로 기록했다. 이곳에 있는 라오즈산(시내산)을 유목민들은 알라의 산, ‘모세의 산’이라고 불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오즈산 주위와 미디안 광야에는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수천 년 전의 발자취들이 실존하고 성경적으로도 일치하고 있다.”
 
 
  ‘시나이 반도엔 시내산이 없다’
 
  — 시나이 반도엔 애급 군대가 주둔했다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시나이 반도 북부를 횡단해 남부의 시내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을까.
 
  “시나이반도는 이스라엘에 의해 1967년 침공당하기 전까지 한 번도 외국에 점령을 당한 적이 없는 ‘애급의 영토’였다. 애급에서 탈출하고자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애급 영토인 그곳으로 돌아와 11개월을 살았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구나 이 지역은 예부터 터쿼이즈(터키석) 광산이 산재해 있어 애급 군인들이 진을 치고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애급 군인들이 출애굽 하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려고 따라 들어왔다가 홍해에서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모두 죽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애급인들 입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지 못하고 지금껏 시내산이라고 부르는 자발무사(Jabal Moussa·해발 2285m) 아래에서 11달 5일간 헤매고 있었다면, 애급 군인들이 과연 구경만 하고 있었을까? 그런 애급을 잘 아는 모세가 과연 이곳으로 인도했을까.”
 
  — 이스라엘이 6일 전쟁 승리 후 15년 동안 시나이 반도를 점령했다. 그때 이스라엘이 시내산에 대해 고고학적 조사를 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시나이 반도 지역은 이스라엘이 15년 동안 점령했던 곳이다. 점령기간(1967~1982년) 동안 이스라엘의 고고학자와 지질학자들이 이곳을 바둑판 쪼개듯 면밀히 조사했으나, 광야 생활 40년의 흔적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이곳이 진짜 시내산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이곳을 이집트에 돌려주며 《유대백과사전(The Jewish Encyclopedia)》 14권에서 ‘시나이 반도엔 시내산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결국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라오즈산이 성경에 나오는 진짜 시내산일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은 힘을 얻게 됐다. 유대인들은 더 이상 시나이 반도의 자발무사엔 가지 않는다.”
 
 
  《떨기나무》
 
  — 성경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시내산은 모든 기독교인에겐 신앙의 근원 같은 장소다. 그렇다면 왜 이런 오류가 생겼을까.
 
  “출애굽 후 1700년이 지난 후, 로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서기 526년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시나이반도 남부의 화강암 산악지대에 있는 ‘자발무사’를 시내산으로 공포했고, 북서쪽 언덕배기에 있던 캐더린 성당에 순례객들이 몰려들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기독교인이 혼선을 겪고 있는 것이다. 새벽에 낙타를 타고 가서 3750개 계단을 올라가 일출(日出)을 보고 내려오는 게 전부다. 자발무사 앞은 온통 협곡투성이라 250만 명이 아니라 2만 명도 앉을 공간이 없다. 그럼에도 ‘교황은 오류가 없다’는 교황 무오설(無誤說) 때문에 수많은 학자가 시나이 반도의 ‘시내산’을 묵인하면서 오류가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 ‘진짜 시내산’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다는 고고학적 증거를 발굴해 《떨기나무》라는 책을 썼는데, 그 반향은 어떤가.
 
  “최근 들어 나의 발굴과 학설을 지지하는 세계적 고고학 전문가들이 늘어가고 있다. 나를 포함해 하버드대 구약학 프랭크 무어 크로스 교수, 스웨덴 케로린스카대학의 레너드 몰러 교수 그리고 한국 학자로서 하버드대학 고대 근동학을 전공한 윤 사무엘 박사 등은 내 주장을 적극 지지하며, 가나안 접경 지역인 가데스 바네아의 위치를 처음으로 특정한 부분, 라오즈산이 시내산이라는 각종 증거들을 학술논문에 인용하고 있다.”
 
 
  라오즈산
 
금송아지 제단 위에서 바라본 시내산 봉우리와 호렙동굴이 있는 호렙산. 왼쪽 봉우리가 시내산, 오른쪽 봉우리가 호렙산이다.
  김승학 이사장은 시내산, 라오즈산의 정상이 이상하리만치 까만색이었다고 했다. 하나님이 모세와 만날 때 불과 천둥 번개가 산을 뒤덮었다는 성경의 기록 그대로다. 김 이사장은 그곳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올라갔을 때, 70인의 장로가 대기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5각형 분지도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해발 2530m의 라오즈산을 그동안 두 차례 올랐다”며 “워낙 가파르고 라오즈산맥의 두 개의 산봉우리를 넘어 9시간이나 걸리는 산행길인데, 정상 부근엔 눈도 쌓여 있고, 발을 헛디디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다”고 했다.
 
 
  ‘홍해의 기적’
 
세계적 DNA 학자인 스톡홀름대 레너트 몰라 박사팀이 홍해 누웨이바 바닷속을 금속탐지기로 탐사해 애급 병사들의 마차바퀴와 인골, 말발굽 뼈 등을 발굴했다. 사진은 홍해 아카바만의 누웨이바 반대쪽 사우디아라비아 쪽 해저에서 발견된 수레바퀴들. 애급 군대가 홍해 도하지점 거의 끝까지 쫓아왔었다는 확실한 증거다.
  — 영화 〈십계〉에서 모세역으로 나온 찰턴 헤스턴이 지팡이를 내밀자 강한 바람이 얼굴에 불고 머리가 흩날린다. 기독교인들조차 이 대목을 하나님의 ‘기적’보다는 ‘신화’로 넘기는 경우가 있다.
 
  “영화의 옥에 티다. 성경은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자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라고 했다. 다시 말해 서쪽바다가 아니라 바다 건너, 미디안 쪽 동쪽부터 바다가 갈라진 것이다. 기존에 이스라엘 건너 홍해로 알려진 곳은 일부에선 갈대바다(얌쑵)로 보고 있다. 자연히, 그렇게 낮은 늪지대를 건넌 것이 어떻게 ‘홍해의 기적’이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곳 바닷속에는 홍해 도하(渡河)의 증거가 지금까지도 오롯이 남아 있다.”
 
  — 증거라니.
 
  “세계적인 DNA 학자인 스톡홀름대 레너트 몰러 박사팀이 바닷속을 금속탐지기로 탐사해 애급 병사들의 마차와 바퀴, 인골, 말발굽 뼈 등을 발견해냈다. 이분을 비롯해 세계 여러 학자가 나와 협력해 명백한 출애굽 사건의 증거들을 책과 방송으로 전하고 있다. 산호초에 휘감긴 물체는 누가 보더라도 마차 바퀴가 분명해 보인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뒤쫓아오던 애급 병사들의 병거(兵車) 수는 특별병거만 600승이었다. 바큇살이 4개와 8개가 혼재한 것을 보고 일부 학자는 8개짜리 바큇살은 훨씬 후대에 나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얼마 전 이집트박물관에서 4개와 8개가 동시대에 존재한 마차 조종석을 발견하고, 미국의 ‘모세5경’을 전공한 교수를 불러 확인시켜주었더니 깜짝 놀라더라.”
 
 
  “화강석 표적 기둥 아직도 있어”
 
  김승학 이사장은 “이스라엘이 애급군대와 홍해 사이에 머물렀던 비하히롯(골짜기들의 입구)으로 여겨지는 바닷가 장소는 길이가 약 8km의 반원형으로 육지에서 밀려온 토사로 여의도 면적의 6배가 넘는 큰 삼각주를 형성하고 있다. 250만 명 이상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충분히 머물 장소가 된다”고 했다.
 
  — 홍해 건넌 표적도 양쪽 해안에 세워져 있다는데, 사실인가.
 
  “이집트 해안 쪽 누웨이바 지역의 화강석 표적 기둥은 솔로몬왕 때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다. 글씨는 오랜 풍화(風化)작용으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페니키아 글씨로 에돔, 홍해, 솔로몬, 이스라엘, 모세, 죽음, 야훼 등 여러 단어가 새겨져 있는데, 종합하면 솔로몬 왕이나 그 후대의 누군가가 홍해를 건넌 자리에 오래전의 기적을 기념하는 기둥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반대쪽 기둥은 1988년 사우디아라비아 측에서 뽑아서 바다에 던지고 해양경비대가 금속 깃발을 세워놓았다. 미국인 론 와이어트가 처음 알렸던 사우디 쪽 기둥 자리는 오류가 있었다. 이번에 현지인의 안내로 새로운 지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기둥이 섰던 자리에 돌무더기를 쌓아 표시를 해둔 곳을 확인했다. 물론 나는 현지인들을 통해서 바닷속 위치까지 파악하고 있다.”
 
 
  만나를 갈아먹었을 절구와 맷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갈 때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맷돌. 절구는 만나를 찧는 데 사용했다.
  김승학 이사장은 “시내산은 세계 3대 종교, 다시 말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밀집한 곳”이라며 “그 중심이 미디안 광야이며, 현재도 그때 당시의 제단이 있고, 그것을 증명할 암각화도 있다”고 했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급을 떠나 홍해를 건넜고, 수르 광야에 도착했다. 수르 광야의 쓴맛 나는 샘물을 하나님은 단물로 바꿔주셨고, 신(Sin) 광야에서는 양식이 떨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침에 만나와 저녁에 메추라기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한 달 모자라는 40년간 공급했다. 김 이사장은 “메추라기는 몸집에 비해 날개가 작아 움직임이 둔하고, 약 90cm 높이로 낮게 날아 아이들도 손으로 잡을 수 있다”며 “하나님이 회오리바람으로 몰아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급해주셨다”라고 했다.
 
  — 《떨기나무》 책을 보니, ‘만나’를 요리할 때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용 절구 사진도 보인다.
 
  “지금도 광야에 가면 절구와 맷돌이 수도 없이 눈에 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주워 천막 안에서 맷돌에 갈기도 하고, 절구에 찧어 먹기도 했을 것이다. 백성들은 이것을 ‘만나’라고 불렀다. 만나가 처음 내리던 날부터 약속의 땅 강변에 진을 칠 때까지, 40년 동안 광야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이유다. 남녀노소 모두 아침에 하나님을 만나러 나가야 얻을 수 있는 ‘공평한 양식’이었다.”
 
 
  초대형 스톤서클들의 不可思議
 
케이바 지역의 스톤 구조물 중 열쇠구멍 모양의 60m 구조물. 페루의 나스카 구조물과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광야에 머문 것으로 성경에 나온다. 그렇다면 그 흔적들이 그 지역에서 발견돼야 할 텐데.
 
  “북서부 아라비아의 광활한 지역과 요르단을 거쳐 시리아까지 펼쳐진 어마어마한 석조 구조물(Stone Structure)이 있다. 지상 그림들 중 케이바 지역의 그림은 7km에 이르고 수백km에 걸쳐 좌우 수백 개의 다양한 문양이 나타난다. 페루의 나스카(Nazca) 문명과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다. 물론, 시대를 알 수 없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석조 구조물은 분명히 인간이 돌로 축대를 쌓아 만든 기기묘묘한 지상 그림들이다. 열쇠구멍 모양, 삼각형 위에 달린 원 등 다양하다. 인간들이 신에게 기원을 한 것이 아닌가 추정할 뿐이다. 아마추어 연구가들은 ‘짐승몰이용’이라고 하는데, 돌담 높이가 30~50cm면 토끼도 뛰어넘을 높이라 짐승몰이일 가능성은 제로인 거다.”
 
김승학 이사장이 발견한 이스라엘 백성의 주거 흔적. 이 원형의 돌들은 유목민의 주거용으로 지붕 위를 나뭇가지나 초목으로 덮었을 것이다. 천막이 사라지니 돌만 남았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했던 주거 흔적도 발견했나.
 
  “구글어스 위성좌표(25도 58분 27.00초 N40도 28분 06.52초E)를 보면, 천막을 걷어낸 자리엔 3~5m 원형으로 동글동글한 스톤서클(stone circle)들이 무수하게 남아 있다. 이 원형의 돌들은 유목민들의 주거용으로 사용됐고, 지붕 위를 나뭇가지나 초목 등으로 덮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스톤서클은 BC4000~2000년의 주거용으로 입증이 됐고, 거의 출애굽 시대와 같은 시기로 밝혀졌다. 끈 풀린 신발도 발견했다. 지금 사우디아라비아 인구 1800만 명이 유대 광야에 들어가 6개월을 치워도 못 치울 정도로 방대한 양이다. 40년 동안 거주하면서 쌓은 구조물들이니까 그럴 것이다. 도시개발이나 도로공사로 이미 많이 훼손돼 안타까운 마음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하루빨리 등재돼야 한다.”
 
 
  ‘금송아지 제단’
 
하늘에서 바라본 아론의 금송아지 제단. 모세는 금송아지를 가져다 불살라 부숴 가늘게 갈아 산 앞 시내에 뿌려 백성들이 마시게 했다. 제단 정상의 둥근 부분은 금송아지를 갈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다.
  미디안 광야 주위에 산재한 수많은 암각화는 김승학 이사장의 집중 탐구 대상이었다. 광야 일대의 암각화는 사우디 고고학자들과 세계 최고의 권위 있는 학자들로 구성된 미국 스미스소니언국립자연사박물관팀들이 고증과 검증을 거쳐 밝혔듯, 출애굽 시대와 같은 시대인 3500년 전 청동기 후기 시대 히브리인들의 암각화와 고대 히브리어와 타무딕(Tamudic) 글자들로 밝혀졌다. 2010년에는 타북 지역 남단 타이마 지역에서 3100년 전 것으로 보이는 바로 왕(람세스 3세)의 인장이 새겨진 암각화가 발견되기도 했다.
 
  —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벌을 내렸다.
 
  “그 흔적이 금송아지 제단 옆 벌판에 존재한다. 십계명 돌판을 받고 돌아온 모세는 금송아지 제단을 목격하고 격분해 들고 온 돌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려버렸다. 하나님만 진노하신 것이 아니라 모세도 크게 화가 났던 것이다. 모세는 금송아지를 가져다 불살라 부수어 티끌처럼 가늘게 갈아 산 앞에 흐르는 물에 뿌려 백성에게 마시게 했다. 그러곤 레위 지파를 시켜 형제와 이웃을 죽이는데, 그날 칼로 죽인 자가 3000명가량 됐다고 한다. 송아지를 올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산 앞 제단, 산에서 흐르는 물, 입구 쪽에 동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수천 기의 거석 무덤군의 주인은 이들이 아닐까.”
 
  — 실제로 아론의 금송아지 제단 사진을 항공촬영한 것을 보면 움푹 팬 곳이 보인다.
 
  “이것이 금송아지를 갈았던 흔적인지, 송아지를 올렸던 제단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곳에 금송아지를 올렸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붉은 암송아지’ 암각화
 
지난해 11월 김승학 이사장이 발견한 붉은 암송아지. 돌에 채색한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붉은 암송아지는 번제와 정결, 나아가 예수의 재림을 상징한다. 유대인들은 빨간 소가 태어나면 메시아가 온다는 징조로 받아들인다.
  2022년 11월 김승학 이사장은 라오즈산 앞에서 구약성경(민수기 19:2)에 등장하는 ‘붉은 암송아지’가 그려진 고대 암각화를 발견했다고 했다.
 
  — 붉은 암송아지는 제사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됐나.
 
  “‘붉은 암송아지’는 번제와 정결 나아가 예수님의 재림을 상징한다. 이 그림이 금송아지 제단 바위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은 의미가 무척 크다. 보통 암각화엔 검은색 돌을 파서 소 형상을 그렸는데, 빨간색으로 페인팅한 소 그림을 찾아낸 것이다. 아론의 제단은 애급의 황소신 아피스, 암소신 하토르 그림들뿐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햇볕에 반사돼 가려졌던 움푹 팬 곳을 유심히 보니 붉은 송아지 그림이 보였다. 분명한 채색이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흠 없는 붉은 송아지를 내게로 끌어오라’는 말이 나온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빨간 소가 태어나면 메시아가 온다는 징조로 받아들일 정도로 신성한 존재다. 《월간조선》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지난 1월 16일 김승학 이사장이 3500년 전 성막의 메노라(등잔대) 암각화와 타무딕(3500년 전 글자)을 두 번째로 발견해 《월간조선》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 출애굽기에 나오는 성막(聖幕)의 등잔대, ‘메노라’ 암각화를 발견했다고 들었다.
 
  “아내가 와디 아타나에서 큰 바위에 새겨진 메노라(일곱 등잔대) 암각화를 발견했다. 등잔대 받침 위로 하나의 기둥이 올라가고 좌편에 세 가지, 우편에 세 가지를 합해 분명히 일곱 가지의 등잔대였다. 성막을 브살렐(세공 장인)과 오홀리압(직물장인)을 시켜 만들었는데, 그때 묘사된 등잔대 형상과 똑같다. 그 넓은 사막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12cm 크기의 등잔대 암각화를 찾는다는 건 하나님의 섭리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다음에 그곳을 찾았을 때 그 금등잔대를 누군가 파내버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것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메노라’를 지난 1월 16일 발견했다. 《월간조선》에 처음 소개하는 것이다.”
 
 
  12지파를 상징하는 돌도 출토
 
희생제단 통로 앞에 놓인 12지파를 상징하는 돌기둥의 흔적들. 12개 가운데 9개만 현장에 있다.
  — 제사를 지낸 자리도 발굴했다고 하던데.
 
  “소와 양으로 제사 지내던 곳도 발굴됐다. 표층을 까내니 번제(燔祭)를 드렸던 흔적, 구운 벽돌에 불탄 흔적이 하얗게 드러났다. 꺽쇠같이 생긴 두 개의 통로를 통과한 소들을 커다란 공간에서 잡아 불로 태워 향기로운 제물을 바쳤을 것이다. 산 앞에는 오랜 세월 불태웠던 화기와 열기가 한 칸의 쌓은 돌에 나타나 있다.”
 
  — 12지파(支派)를 상징하는 돌도 출토됐다.
 
  “성경에 나오는 대로, 그 옆에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돌기둥들이 놓여 있다. 그 크기나 높이가 서로 다른 이유는 지파가 각각 달랐고, 하나님도 지파대로 세울 것을 명하셨기 때문이다. 12개 중 3개는 아직 찾지 못했다. 그 돌들은 흰 대리석인데 호렙산 중턱에서 이런 대리석을 채취한 우묵한 구덩이와 채석장 시설의 흔적을 찾았다. 모세는 소의 피를 양푼에 담아 반은 단에 뿌리고, 반은 사람들에게 뿌리는 의식을 행했을 것이다. 순례객들이 그 자리에 앉기도 하는데, 절대로 앉지 못하게 한다.”
 

  김승학 이사장은 바위 위에 새겨진 낙서들도 무수히 찾아냈는데, 조사 결과 아랍 글자가 아니라 3500년 전 고대 히브리 글자로 밝혀졌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지리학지인 《내셔널지오그래픽》 2014년 7월호는 김 이사장이 탐사했던 북부 아라비아 일대(Hejaz)를 상세히 보도했다. 북서부 아라비아 알 마그나(엘림) 지역을 소개하면서 ‘에인 무사(모세 우물)’를 소개했는데, 알 바드(이드로, 모세의 장인) 지역에서 모세가 양 떼에게 물을 먹이며 아내 십보라를 만났던 우물이라고 소개해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 미디안 지역에서 발굴한 사람 형상의 돌 하나가 고고학계를 흥분시키기도 했다.
 
  “맞는 말이다. 시나이 반도에서 찾을 수 없었던 그 흔적을 나는 이곳에서 직접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건 마치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은데, 그런 기적을 여러 차례 체험했다. 그중의 하나가 ‘야훼 스톤’이다. 거무스름한 작은 돌에 얼굴과 함께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는 돌인데, 발견하는 순간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언어’
 
김승학 이사장이 수집한 3500년 전의 야훼 스톤. 얼굴에 보이는 타무딕(고대문자)을 해석하면 하나님의 본이름인 ‘야훼’가 된다. 마일러 존스 박사가 해독했다.
  — 야훼 스톤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야훼 스톤 전면과 후면에는 타무딕 알파벳이 있다. 구약에 6000번 이상 등장하는 하나님의 신성한 호칭은 함부로 부를 수 없었기에 모음을 빼고 자음만 사용했는데, 로마자로 치환하면 Y, H, W, H라고 해독된다. 하나님을 뜻하는 ‘야훼’인 것이다. 모세가 여호와께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묻자, 하나님이 ‘야훼’라고 했다. 야훼 스톤은 밥 코르누크 박사에게 전달돼 공동연구가 이뤄졌고, 미국 TBN에 공개됐다. 십계명을 받고 산에서 내려올 때 얼굴에 여호와의 광채(콰란)가 나는 것을 강조하려 했다는 설도 있다. 이 돌은 학자들 간에 ‘모세 스톤’ ‘야훼 스톤’으로 불린다.”
 
  — 야훼 스톤과 암각화들에 고대문자 ‘타무딕’이 적혀 있는데, 지금 해독이 되나.
 
  “아직 해독을 못 한다. 모세의 십계명을 쓴 것도 ‘타무딕’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타무딕은 ‘하나님의 언어’라고 한다. 타무딕은 출애굽 시대에만 통용된 고대 히브리어로, 이후엔 쓰이지 않는다. 타무딕의 알파벳을 보면 히브리 사람들이 고대에 썼던 알파벳과 유사점이 많다. 일부는 지금도 사용하는 것들이 있다.”
 
  김승학 이사장은 현재 야훼 스톤을 비롯해 20년간 미디안 지역 탐사를 통해 발굴한 이스라엘 관련 유물들을 인천광역시 부평에 있는 한국선교역사기념관 1층에 전시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최근 사우디 정부에 ‘사우디 정부가 관련 유물의 반환을 요청할 경우, 즉각 반환할 용의가 있다’는 서한을 보냈다”고 했다.
 
 
  ‘노아의 방주’를 찾아서
 
  왕실 주치의로 한껏 신임을 받았던 그는 한때 사우디 마지드 왕자의 양아들이 되어 어마어마한 부귀영화를 거머쥘 기회도 있었다. 단, 조건은 하나.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도로 개종해야 했다. 그는 그 제안을 깨끗이 거부했다. 신앙을 저버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2003년 4월 마지드 왕자 사후, 사우디의 감시망은 더욱더 조여왔다. 왕실 주치의라는 직위도 내려놓았다. 그는 실제 시내산이 미디안 땅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책 출간을 결심했고, 그것을 위해 2006년 사우디를 떠났다.
 
  김승학 이사장이 쓴 《떨기나무》 (1, 2), 그가 인터뷰한 영상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그는 ‘엑소아크선교회’를 설립해 출애굽 여정뿐만 아니라 성경 속 하나님의 심판 대홍수가 끝난 뒤 마지막으로 머물렀다고 알려진 터키 아라라트산(해발 5137m)에 있는 노아의 방주를 찾는 일에도 국내외 연구진과 협력하고 있다. 엑스아크선교회는 영어의 출애굽을 뜻하는 ‘엑소더스’, 노아의 방주를 의미한 ‘아크’의 줄임말이다.
 
  김 이사장은 “그동안 심지어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성경의 기적들을 한낱 ‘전설’로 치부했던 이들이 많았다”며 “성경에 있는 사건과 기적들은 분명히 다 사실”이라고 했다. 김 이사장은 2007년 첫 책 출간 이후 16년 만에 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개방 정책에 따라 사우디에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현재 사우디와 한국 사이를 오가며 ‘제2의 중동건설 붐’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405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북스토어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