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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영화감독

‘봉테일’과 ‘삑사리’로 명감독이 되다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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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정욕구 가득한 속물로 보여도 어쩔 수 없겠다. 외국인이라도 지나가면 붙잡고 으스대고 싶을 지경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감독이 있다!
 
  지난 2월 9일(현지 시각), 92회 아카데미 시상식(OSCARS)이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렸다. 주인공은 봉준호(奉俊昊) 감독이었다. 수상이 얼마쯤은 예상됐던 각본상과 국제영화상 외에도 감독상에 작품상까지 그의 품으로 돌아갔다. 아시아 영화로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4개 부문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특히 작품상 수상이 뜻깊다.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어 영화로 작품상을 수상했다.
 
  봉준호의 세계를 세 가지 키워드로 풀어봤다. 첫째, ‘봉테일’이다. 봉준호와 ‘디테일(detail)’을 합친 조어(造語)다. 봉 감독과 일해본 이들의 얘길 들어보면, 천재형이라기보단 노력형에 가깝다고 한다. 일종의 강박증이 있다고 스스로도 말했다. 이를테면 축구 중계를 보다가도 마음에 드는 골인 장면이 나오면 수십 번 돌려보고, 머릿속에서 반복해 재연을 할 정도라고 한다. 영화 〈마더〉를 준비할 때는 아예 촬영배경이었던 마을에서 살면서 그 동네의 지리를 완벽히 숙지했다. 영화 〈괴물〉 때는 전문가용 컴퓨터 그래픽(CG) 잡지를 반년간 구독하며 공부했다. 직성이 풀릴 만큼 파악한 후 시작하는 유형이다.
 
  두 번째 키워드는 ‘삑사리’다. 사전적 의미는 ‘노래를 부를 때 흔히 고음에서 음정이 어긋나거나 잡소리가 섞이는 경우를 통속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괴물〉 속 변희봉이 송강호에게 비장하게 ‘마지막 한 발’이라며 권총을 건네주는 장면, 사실은 이미 비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되고 황당해하는 두 사람. 영화 〈설국열차〉 속 치열한 도끼 전투 중 생선을 밟고 넘어지는 크리스 에반스. 이런 게 바로 삑사리다. 프랑스 영화지 《카이에 뒤 시네마》와 인터뷰를 하며 봉 감독은 〈괴물〉의 뒷부분 장면을 설명하며 ‘화염병을 던졌는데 삑사리가 나면서…’라는 말을 했다. 기자가 이 말을 그대로 기사 제목으로 인용하며 한동안 영화계에 화제가 됐다. 기사 제목이 ‘L'art du Piksari(삑사리의 예술)’이었다.
 
  누구나 삑사리를 두려워하지만, 누구보다 더 많이 두려워하는 사람은 완벽한 준비 없인 뛰어들지 않는 사람일 거다. 바로 봉 감독 같은 이들이다. 어쩌면 그의 삑사리는 수천 번 리허설한 런웨이에서 스텝이 꼬일지 모른다는 내면의 불안을 해소하는 장치일지 모르겠다. 같은 이유로 엇박자 스타일로 대사를 하는 배우 송강호를 좋아하는 것일지도.
 
  세 번째는 ‘구보씨’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란 단편소설이 있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식민지 문학청년이 하루 동안 경성을 헤맨 얘기다. 이 소설이 한국 문학사에서 눈에 띄는 건 식민지라기보단 메트로폴리탄적 감성이 담겨 있어서다. 지금 읽어도 별로 낯설지 않은 스물여섯의 내면 풍경이다. 이 소설을 쓴 구보 박태원이 바로 봉 감독의 외할아버지다. 봉 감독은 오스카 수상 소감에서 두 명의 명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와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찬사를 돌렸다. 자막의 벽을 뛰어넘으면 좋은 영화의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거란 말도 했다. 약간은 냉소적이지만 마음 따뜻했던 ‘구보씨’가 했음 직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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