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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현진 자유한국당 송파을 당협위원장

“편 가르기, 상대편 비난과 음해, 복수… 작은 회사(MBC)에서 겪었던 부조리들이 국가에서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sj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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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MBC ‘가짜 파업’의 불쏘시개, 땔감이었다”
⊙ MBC 노조, 자신들에게 반대하면 적으로 몰아 공격하고 자기들끼리 환호했다
⊙ 파업에 동참 안 한 이유? “정치편향 파업,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파업에 동참할 수 없어”
⊙ ‘양치대첩’은 거짓말 “노조 단톡방에선 ‘내가 배현진에게 이랬다(괴롭혔다)’가 트로피였다”
⊙ 정치인 배현진으로 ‘제2의 인생’ 시작… 부담감 내려놓고 즐겁게 하고 있어

裵賢鎭
1983년생. 숙명여대 국어국문(정보방송)학과 졸업. MBC TV 〈뉴스데스크〉 앵커, 보도국 국제부 기자,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 / 現 자유한국당 송파을 당협위원장
사진=서경리
  배현진 전 MBC TV 〈뉴스데스크〉 앵커가 정치인으로 변신한 지 1년5개월이 지났다. MBC를 그만둔 직후인 지난 3월 9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그는 입당 직후 대변인과 서울 송파을 당협위원장직을 맡고, 6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지만 낙선했다. 12월에는 대변인직을 스스로 내려놓고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유튜브 채널 ‘TV홍카콜라’ 제작자로 일한다고 밝혔다. 그 후 8개월간 배현진은 다소 뉴스에서 멀어진 것처럼 보였다.
 
  무더운 날 광화문 TV홍카콜라 스튜디오 인근에서 배현진 위원장을 만났다. 주로 지역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스튜디오에는 촬영이 있는 날만 나온다고 했다.
 
  ―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매일 지역구에서 주민분들 만나고 있고요, 자유한국당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치인 배현진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 정치에 뛰어든 지 1년 반이 지났는데, 해보니 어떤가요.
 
  “직장생활을 10년 하고 나왔는데 정치는 정말 다른 세상이에요. 앵커는 매일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니었는데 정치를 하고 보니 매일 불특정 다수를 만나고 인사해야 하는 게 처음엔 많이 낯설고 힘들었습니다. 방송국 시절 선거방송도 많이 했고 정치인들도 많이 만났지만, 실제로 정치인이 이런 일을 하는 줄은 몰랐어요. 처음에는 부담감이 좀 있었지만 지금은 즐겁게 놀러 다니는 기분으로 하려 하고 있어요.”
 
 
  자유한국당의 ‘삼고초려’
 
2018년 3월 9일 오전 자유한국당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영입인사 환영식.
  입당하자마자 3개월 후 치러질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선거 준비에 돌입했던 배 위원장은, ‘너무 빨리 진행된다는 생각은 안 했나’라는 질문에 “그런 생각은 사치로 여겨질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며 웃었다. 원래 정치에 뜻이 없었던 그가 정치에 뛰어든 구체적인 계기가 궁금했다.
 
  ― 원래 정치적 성향이 있었습니까. 앵커 시절에도 정치 권유를 받진 않았는지요.
 
  “아뇨. 언론인으로 중립을 지키려 했고, 정치해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도 없었어요.”
 
  ― 홍준표 대표가 직접 영입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2018년 초 MBC에서 나온 직후 회사 선배가 식사하자고 해서 나갔는데, 모르는 분이 나와 있었어요. 자유한국당의 서용교 사무부총장(19대 국회의원, 2018년 작고)이었는데, 저에 대해 주변에서 정치할 재목이라고 추천을 많이 받았다며 입당을 권유하는 겁니다. 처음 듣는 얘기라 당황해서 그날은 별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그 후 강효상 의원, 홍준표 대표를 만나게 되면서 계속 영입 제안을 받았어요.”
 
2012년 MBC TV 〈뉴스데스크〉 메인앵커 시절 배현진 앵커의 모습. 그는 2012년 1월 MBC 파업에 참여했다가 5월 뉴스에 복귀했다.
  ― ‘삼고초려’ 끝에 영입됐군요.
 
  “제가 그럴 만한 인물은 아니고요, 고민하던 중에 서 부총장이 암 판정을 받았다고 얘기하시는데, ‘내가 너무 여러 사람을 고생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동안 내가 겪은 경험을 토대로 세상의 변화를 만들고 사회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결국 당에 들어오게 됐죠.”
 
  ― 파업사태와 ‘창고 발령’이 아니었다면 MBC에 계속 있었을까요.
 
  “네. 저는 입사해서 선후배와 동료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어요. 파업사태가 아니었으면 앵커를 그만두더라도 회사에 다른 식으로 기여하며 잘 지냈을 겁니다. 저는 앵커로서 할 일은 다했지만 조직원으로서는 못다 한 일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
 
  그는 “그동안 MBC에 남아 있는 동료들 때문에 말을 아껴왔다”며 “지면이 허락한다면 파업과 ‘양치대첩’ 등 잘못 알려진 당시 얘기를 가감 없이 써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 2008년 말 입사했는데, 그 후 MBC는 여러 번 파업을 했습니다.
 
  “제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일어난 파업에서는 그저 선배들을 따라 심부름하며 동참하는 정도였고,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건 2012년 파업이었어요. 저에겐 이미 네 번째 파업이었고 이런 파업을 왜 하는 건지 의문이 들던 시점이었습니다. 특히 2012년 파업에서는 제가 〈뉴스데스크〉 앵커이다 보니 노조에서 제가 ‘얼굴’로 나서주기 바랐죠. 근데 파업 주체의 핵심들을 보니 이 파업이 순수하게 회사를 정상화하고 부조리를 바로잡자는 게 아니고, 사내 정치싸움이 연계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또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모두 있었잖아요. 파업세력이 바라는 바가 있었어요. 파업 현장에 유명한 정치인들도 많이 왔고, 성향이 분명한 연예인들도 응원 왔습니다. 그런데 정치적 성향이 전혀 없는 제가 봐도 구호 같은 게 지나치게 편향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건 아닌 것 같다, 파업을 왜 이렇게 하느냐’고 질문했어요.”
 
  ― 편향된 집회라고 노조에 직접 얘기한 겁니까.
 
  “맞아요. 노조 입장에선 제가 〈뉴스데스크〉 앵커니 앞에 나서주면 좋겠지만, 제가 그분들이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저도 앵커로서 제 얼굴과 이름을 걸고 발언해야 되는데, 제가 이해가 되지 않는데 누굴 설득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파업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것들이 왜 갖춰져 있지 않은지, 왜 거짓말을 하는지 직접 물었어요. 그랬더니 저는 ‘적’이 된 거죠. ‘미쳤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 ‘동료들이 파업할 때 뉴스를 택했다’고 비난받았습니다.
 
  “100일까지는 파업에 동참하겠다고 했어요. 그 안에 저를 심정적으로 설득하지 못하면 저는 뉴스에 복귀하겠다고요. 그런데 오히려 거짓말로 저를 이용한 겁니다.”
 
  ― 거짓말이라뇨.
 
  “파업을 주도해온 한 선배가 SNS에 ‘경영진이 배현진 앵커를 강압적으로 (뉴스에서) 내려오게 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어요. 그래서 ‘왜 거짓말을 하시냐’고 항의를 했죠. 그랬더니 그 선배와 노조 핵심 인사들이 ‘넌 다시는 방송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분들은 총선과 대선에서 당시 야당(現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할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어요. ‘조금만 있으면 너는 끝’이라며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라고도 했고요. 그래서 ‘몇 달 후면 방송을 못 하겠구나’라는 각오를 하고 뉴스로 돌아왔습니다. 어렵게 아나운서가 되고 앵커가 됐는데,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내 뜻이 아닌 길로 가고 싶지 않았어요. 눈치를 보며 파업에 계속 동참했더라면 지금 좋은 자리에 계속 있을 수 있었겠지만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욕을 먹어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2017년 마지막 파업
 
  ― 2017년 MBC의 마지막 파업이 있었죠.
 
  “저와 주변인들은 그걸 ‘가짜 파업’이라고 불러요. MBC 노조가 김장겸 사장 퇴진 명분을 얻기 위해 일부러 파업을 벌인 겁니다. ‘양치대첩’도 파업의 명분을 얻기 위해서 여론을 선동하기 위해 나온 얘기고요.”
 
  ― ‘양치대첩’ 이야기는 어떻게 나온 겁니까.
 
  “입사 후 여름휴가를 간 적이 없는데 2017년 여름에 처음으로 엄마를 모시고 휴가를 갔어요. 그런데 친구들로부터 ‘네가 지금 실검(실시간 검색) 1위’라고 연락이 오는 거예요. 양모 기자가 방송 프로그램에서 얘기한 내용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는 거였죠. 사실 제가 린치를 당한 거였는데요.”
 
  그가 설명한 양치대첩은 이렇다. 2013년 가을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면서(수도꼭지를 틀어놓은 채)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선배인 양모 기자가 “왜 컵을 쓰지 않느냐”고 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종이컵이라도 쓰겠습니다” 하고 바로 사과를 했다. 이에 양 기자는 화장실을 나갔는데, 분이 안 풀렸는지 바로 다시 들어와서 수돗물을 탁 잠그고 다시 나갔다. 보도국으로 돌아왔더니 (배현진씨에게만 들리게) “너, 가정교육 못 받았냐?” 하기에 참지 못하고 “가정교육은 댁에 가서 하시죠!”라고 받아쳤다. 양 기자는 이 사건으로 본인이 인사조치됐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양 기자의 인사조치는 배현진 앵커가 뉴스에서 ‘잘린’ 지 4개월 후 이뤄졌다.
 
  ― 사내에서 미움을 받고 있던 때였군요.
 
  “노조원들이 제 책상에 소금 뿌리고 서랍 뒤지고 그러던 때였어요. 그때 노조 ‘단톡방’에서는 ‘내가 배현진에게 이렇게 했다’는 게 트로피로 여겨질 정도였어요. 양치대첩도 일부러 희화화해서 거짓말까지 한 거죠. 그래도 기자, PD, 아나운서 등 지성인이라는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 전 그 이후로 사람들에게, 특히 여성분들에게 ‘나쁜 여자’라고 각인됐어요.”
 
  ―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동료 중 혼자 ‘공공의 적’처럼 불렸는데 억울함은 없습니까.
 
  “당연히 있죠. 미혼의 젊은 여자 앵커가 노조에 반발했으니 그들 입장에선 얼마나 좋은 불쏘시개였겠어요. 전 가정폭력이라고 생각해요. 밖에서 보면 번듯한 가정인데 폭력이 일어나는 가정요. 지성인들이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소금, 진짜 굵은 소금을 뿌린다는 게 이해가 가세요? 파업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은 MBC 천몇백명 중 80명 정도였는데 그 극소수를 상대로 폭력을 저지른 겁니다.”
 
  ― 표현이 강한데요.
 
  “제가 보기엔 언론노조가 역대 어떤 노조보다도 투쟁동력이 강합니다. 전파를 갖고 있고, PD, 기자는 물론 연예인, 방송인들까지 동원해서 투쟁을 하잖아요.”
 
  그는 뉴스를 준비하던 중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하차 소식을 접했다. 이상현 앵커와 “우리 잘렸대”라며 한바탕 웃고 뉴스룸을 나섰다. 짐도 싸지 못한 채 나간 선배들에 비해 짐이라도 싸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최승호 사장 취임 후에도 당분간 〈뉴스데스크〉를 진행했죠.
 
  “사장 취임 전후에 하차 준비는 다 돼 있는 상태였고 모든 걸 인수인계하겠다고 했는데, 경영진과 노조가 받질 않는 거예요. 인터넷으로 하차 소식을 접할 때까지 그냥 했어요.”
 
  ― 왜 그랬을까요.
 
  “인사 날 때까지 쉬면서 월급만 받으려 한 게 아닐까요. 마지막까지 실망스러운 모습이었어요.”
 
  ― 요즘 MBC 뉴스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모니터링을 해야 돼서 보긴 보는데, 너무 편향돼 있으니까 보면서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어떻게 저렇게 뉴스를 만들지’라는 생각부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어려웠던 첫 선거

 
2018년 6월 국회의원 송파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자유한국당 배현진 후보가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배현진 위원장은 MBC 시절 이야기를 ‘이런 얘길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정치인이 되고 나니 지난 얘기를 다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도 했다.
 
  ―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까.
 
  “유권자들이 ‘저 사람을 채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정치인이 되려 합니다. 지역 문제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고요. 재보궐선거 후 지난 1년은 제 입장에서는 앵커 배현진을 버리고 정치인 배현진으로 변신하는 시간, 유권자 입장에서는 정치인 배현진에 대해 판단하는 시간이었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정치인 배현진에 대한 평가와 판단이 시작될 겁니다.”
 
  ― 재보궐선거 때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민심이 워낙 좋지 않았죠. 유권자들을 만나는 게 힘들지 않았습니까.
 
  “명함을 찢어서 제 얼굴에 던지는 분도 있었어요. 그러면 ‘그냥 (찢지 말고) 저 주세요’라고 했죠. 또 인사 다니고 있으면 이쪽으로 오지 말라는 듯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분들도 계신데, 일부러 가서 ‘다시 안 올게요 그러지 마세요’라면서 웃기도 했죠.”
 
  ― 차가운 이미지라는 말을 듣지 않습니까.
 
  “뉴스에서 보여준 이미지 때문에 그렇겠죠. 그런데 한동안 머리 질끈 묶고 운동화 신고 지역에 다니니까 친근한 이미지도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그래도 탄핵 후 첫 선거이고 자유한국당이 완전히 패배한 선거에서 신인 정치인이 29.6%의 득표율을 얻은 건 큰 의미가 있습니다.
 
  “많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엔 될 것 같아요.(웃음)”
 
  ― 홍준표 전 대표가 영입한 인물이고 ‘TV홍카콜라’ 제작자인데, 정치적인 견해도 잘 맞습니까.
 
  “거의 맞는 말씀을 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또 홍준표라는 사람이 대한민국 정치에서 갖고 있는 위상이 있기 때문에 다른 유튜버들처럼 맹목적인 비난 같은 걸 하지는 않습니다. 정확한 이야기만 전달하고 있고, 구독자 수에 대한 스트레스는 홍 전 대표도, 저도 받지 않아요. ‘홍준표 사람’이라는 이름이 붙어 다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걸 어떻게 극복하느냐도 제게 남은 숙제 같아요. 어떤 분들은 ‘이미 대표직에서 물러난 사람인데 그런 얘길 듣는 게 불리하지 않으냐’는 걱정도 해주시는데, 그런 걸 떠나서 홍준표라는 대한민국 정치인을 가까이서 겪고 배울 수 있었던 점은 저 같은 신인 정치인에게는 엄청나게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겪어보니 굉장히 좋은 분이고 아버지처럼 잘해주셔서 감사하고, 의리도 지키려 합니다.”
 
  ― 본인 유튜브는 안 하십니까.
 
  “선거 때 만든 채널은 있는데, 이제는 방송에 시간과 노력을 집중할 시점은 아닌 것 같습니다. 10년 넘게 계속 카메라 앞에 서 왔잖아요. 다만 지역구 분들이 원하는 소통은 유튜브를 통해 할 생각이에요.”
 
 
  자유한국당 정치인 배현진
 
2018년 7월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에 선임된 배현진 위원장.
  ― 홍준표 체제에서 입당했고, 김병준 비대위 체제에서 대변인을 지냈는데, 황교안 체제에서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당직 등 제안이 온 건 없는지요. 중앙정치무대에서 잘 안 보인다는 얘기도 많은데요.
 
  “당협위원장이다 보니 이런저런 요청과 제안은 들어와요. 당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청년TF를 담당해 총선공약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대변인처럼 얼굴 보이는 일이 아니다 보니 그런 생각들을 하시는 것 같아요. ‘낄끼빠빠’(낄 땐 끼고 빠질 땐 빠진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나설 자리와 안 나설 자리를 좀 가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지역구에 집중할 시점이기도 하고요.”
 
  ―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보수통합론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모두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수통합이라는 게 물리적 당 대 당 통합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정서적인 것, 사상, 신념의 통합도 중요하잖아요. 그 많은 이야기가 다 한 줄기이며 한 방향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필요하면 손잡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한국당 지지율은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문재인 정부에 실망하지만 자유한국당에 마음을 줘야 하는지 결정을 못 하고 있어요. 이런 민심을 잡으려면 정책이나 공약 같은 노력 외에도 우리 자유한국당에 신뢰가 올 수 있게 하는 명확한 슬로건이나 문구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고 있고, 제가 그런 일을 하고 싶습니다.”
 
  ― 보수 거대야당에서 젊은 신인 정치인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집니까.
 
  “사실 다들 ‘몸이 무거운 당’이라는 점은 인정할 거예요. 하지만 당이 계속 변하고 있다는 점이 느껴집니다. 느릿느릿해도 앞으로 나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 젊은 정치인들끼리 공감대가 있나요.
 
  “젊은 당협위원장들끼리 많이 모입니다. 스터디도 하고 좋은 책 있으면 공유하고, 토론도 하고요.”
 
  ― 여성 의원들이 챙겨주진 않습니까.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해 여성 선배 의원들이 정말 언니처럼 잘 챙겨주세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내년 총선을 위해 뛰고 있습니다만, 계파가 없는데 공천이 걱정되진 않는지.
 
  “우리 지역에 자유한국당 후보로 거론되는 분이 없어요. 그래도 주변에서 걱정은 해주십니다. 당원분들이 ‘배 위원장 무뚝뚝한 건 알겠는데 당 행사에 나서서 지도부에 잘 보이고 해야 되지 않겠냐’고 조언해주시곤 해요. 달려 나가서 친한 척도 하라고요. 그런데 아직은 좀 쑥스럽네요.”
 
  ― 젊은 여성 위원장이라 당협 조직 관리하기가 어렵진 않습니까.
 
  “대부분 지역구가 그렇겠지만 탄핵 정국 후 조직이 와해됐어요. 그래서 제가 조직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소맥’(소주+맥주)을 가르쳐준 회사 선배들께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는 저녁식사 자리에 참석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주량과 체력 관리도 소홀히 하면 안 돼요.”
 
  ― 정치인 중 멘토나 롤모델이 있습니까.
 
  “아직 제가 갖춰지지 않아 함부로 롤모델이 누구라고 말씀드리긴 어려울 것 같아요. 저는 그래도 운이 좋은 게 신인 정치인으로서는 드물게 주변에서 많은 정치인 선배들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어요. 그분들은 제게 좋은 선생님이 됐습니다.”
 
  ― 정치적인 견해나 목표가 비슷하거나 같이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나요.
 
  “흠모하는 정치인은 있어요. 나경원 원내대표는 여성 정치인 중에서도 담대하게 정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여성 정치인으로서 그만큼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하는 분입니다. 어려운 상황을 많이 극복하셨고, 공부를 많이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인터넷에 나 원내대표와 배 위원장이 함께 있는데 ‘언니 저 맘에 안 들죠?’라고 써놓은 사진은 봤습니까.
 
  “나 원내대표께서 그거 봤냐고 하시더라고요. 같이 웃었죠.”
 
 
 
“文 정부, 방법이 틀렸다”

 

  배 위원장은 내년 총선에서 서울 송파을에 출마할 계획이다. 작년 6월 재보궐선거에서는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이어 2위에 그쳤다. 당시 ‘문재인 측근’ 최재성 의원과 배현진 위원장, 방송인 박종진 바른미래당 후보가 맞붙은 송파을 선거는 전국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배 위원장은 29.6%의 득표율을 보였다.
 
  ― 총선이 1년도 안 남았는데, 어떤 이야기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고 있습니까.
 
  “지역구를 돌아보면 골목마다 심각한 상황이에요. 자영업자는 무너지고 겨우 집 한 채 갖고 있는 분들은 과한 세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국정의 키를 쥔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권 교체를 위해 자유한국당에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 요즘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문재인 탄핵’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탄핵을 이야기하는 사람 중 제가 좋아하는 선배 정치인들도 있지만, 저는 탄핵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문재인 정부가 임기 도중에 멱살 잡혀 끌려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귀를 열고 이야기를 듣고 반성하는 정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그동안은 ‘이 정부가 몰라서 저런 길로 가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의도적인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면서 공포심이 생기고 있어요.”
 
  ― 문재인 정부의 큰 문제점이 뭐라고 보십니까.
 
  “정부가 지향하는 장기적 목표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그 방법이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에 중단하라는 겁니다. 제가 작은 회사(MBC)에서 봤던 모습을 국가가 그대로 하고 있어요. 편 가르기를 통해 내 뜻과 다른 사람은 적으로 치부하고 음해와 모략, 공격적인 복수를 합니다. 그러면 내 편은 거기에 환호하겠죠. 그런 카타르시스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주면서 복지에 자리(지위)까지 풀어주는 거예요. 이걸 국가가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 정부의 ‘복지 퍼주기’가 결국 문제가 되겠죠.
 
  “우리 지역구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요. 7월에 재산세가 나왔는데 많게는 3배씩 세금 폭탄을 맞은 겁니다. 지역에 오래 사신 분들은 근로소득이 없어 세금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낸 세금이 어디로 갈까요? 정부 생색내기용 복지에 사용되는 것 아닌가요.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어요.”
 
 
  외환위기 때 가세 기울어
 
  그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MBC에 입사했을 때는 물론, 오디션을 거쳐 〈뉴스데스크〉 앵커로 선발됐을 때 엄청난 ‘빽(back ground・배경)이 있다’는 소문에 시달렸다. 장관 딸이라거나 MBC 임원이 뒤를 밀어주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러나 정치를 시작하고 재산공개가 되면서 소문은 급속히 사그라들었다.
 
  ― ‘빽이 있다’는 소문이 재산공개 이후 사라졌습니다.
 
  “2008년 MBC에서 여성 아나운서 한 명 뽑는데 제가 됐다는 건 저도 놀라웠어요. 앵커가 되고 나서도 ‘빽이 있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굳이 해명하지 않았죠. 솔직히 나쁘지 않은 소문이라고 생각해서(웃음) 해명할 필요도 못 느꼈어요.”
 
  ― ‘소녀가장’인 건 맞습니까.
 
  “네. 1997년 외환위기 때 부모님 사업이 완전히 망했어요. 집에 빨간딱지도 붙고, 풍비박산이 난다는 걸 직접 겪어봤죠. 제가 입사해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했고, 부모님도 모셔야 했고, 남동생 학업과 결혼 등을 뒷바라지하느라 모은 게 별로 없어요.”
 
  ― 학창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요.
 
  “어릴 땐 부유하진 않지만 부족한 것 없이 살았고, 아주 활발한 아이였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깊은 사춘기 우울증에 빠져들었어요. 시험 때 백지를 내기도 하고요.”
 
  ―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크게 방황하거나 사고를 친 건 아닌데 갑자기 성적이 전교 꼴등 수준으로 떨어지니 담임선생님이 불러서 얘기하시더라고요. ‘남자도 아닌 여자가 지금 잘못되면 나중에 인생이 너무 힘들어진다, 어쨌든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집안이 어려워졌는데 너무 먼 지방으로 대학을 갈 수도 없지 않으냐, 마음잡고 대학에 가라’고 조언해주셨죠. 정신이 번쩍 나서 고3 때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대학에 가서 열심히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어요.”
 
 
  주변 사람들 챙기는 ‘의리녀’
 
배현진 자유한국당 송파을 당협위원장(가운데)이 지난 5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문재인 선거법·공수처법·민생파탄 저지 토크콘서트’에서 발언하고 있다.
  배현진 위원장과 3시간 이상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점은, 알려진 이미지와 달리 ‘의리녀’라는 점이었다. 그는 MBC에서 나올 때 그와 뜻을 함께하며 나온 스태프와 선거 때 도와준 스태프들을 외면할 수 없어 기획사를 설립했다. 그 첫 번째 고객이 ‘TV홍카콜라’다.
 
  ― 대변인직을 스스로 그만두고 TV홍카콜라 제작자로 변신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요.
 
  “처음부터 제가 TV홍카콜라를 제작하기로 한 게 아니에요. 제가 스태프들을 데리고 기획사를 설립했는데, 그때 홍준표 전 대표가 유튜브를 하겠다며 스태프를 찾으시더라고요. 서로 시기가 맞아서 그렇게 됐어요.”
 
  ― 스태프라면 어떤 분들인가요.
 
  “제가 MBC에서 10년간 일하면서 저와 매일같이 일했던 분과 선거 때 도와주신 분 등 여섯 명입니다. 특히 MBC에서 같이 나온 메이크업아티스트는 제가 온갖 고난을 겪을 때 저와 뜻을 함께하며 힘이 돼줬어요. MBC에서 마지막으로 짐 싸서 나가던 날, ‘짐 들고 낑낑대며 나가는 모습을 저들에게 보이지 말고 가방만 들고 당당하게 나가라’며 제 짐을 들어준 사람이에요. 저를 믿고 선거 때도 많이 도왔고요. 선거가 끝나니 저를 도와줬던 분들에 대한 죄책감이 심했고, 이분들을 외면할 수 없어 같이 일해보자고 기획사를 세운 겁니다.”
 
  ― 영입했던 분이나 홍 전 대표에 대해서도 의리를 지키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그럼요. 인간적인 의리는 상대가 저를 거부하지 않는 이상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길지 않은 인생에 여러 번의 선택이 있었는데, 선택할 때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부모님이죠. 저 때문에 주변의 시선을 받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계속 자랑스러운 딸일 수 있었는데 워낙 딸이 유별나게 굴어서 불효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게 얼굴이 많이 편해졌다고 합니다.”
 
  그는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 제목이 사무치게 와닿았다고 했다. 옳은 길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길이라면 미움받을 용기가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후회하지 않는 길을 가겠다는 의지가 조막만 한 얼굴에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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