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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중경 前 지식경제부 장관

“경제를 윤리로 접근하면 안 돼”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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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경제팀은 낙제점… 집권 3년 차가 궤도 수정의 마지막 기회”
⊙ “경제 위기는 아니지만, 위기로 가는 初入”
⊙ “소득주도 성장은 시장주의 경제학 기본 원칙에 어긋나”
⊙ “민주당이 입법화한다는 ‘협력이익 共有制’는 실행 불가능한 정책”
⊙ “理想이 지나치면 현실을 그르친다”
⊙ “한국이 미국과 북한을 중재할 수 있다는 건 난센스”

최중경
1956년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경영학 석사, 美 하와이대학 경제학 박사 /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세계은행 상임이사, 재정경제부 제1차관, 駐 필리핀대사, 청와대 경제수석, 지식경제부 장관, 동국대 석좌교수 역임. 現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석좌교수,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 저서《청개구리 성공신화》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조현호
  “하루빨리 궤도를 수정해야 합니다. 임금이 오르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이 입증됐습니다. 현(現) 정부의 경제정책을 더는 고집할 수 없습니다. 어느 정부든 집권 3년 차가 중요합니다. 진짜 일을 할 시간이 길어야 1년 남았습니다. 궤도를 수정할 타이밍을 놓치면 앞으로 무엇을 하려고 해도 잘 안 됩니다.”
 
  최중경 전(前) 지식경제부 장관은 단호했다. 인터뷰 내내 낮은 목소리의 모노톤으로 얘기하는 그였지만, 집권 3년 차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대목에서는 유독 힘을 줬다.
 
  경제학 박사인 최 장관은 행정고시에 합격해 옛 재무부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후 전(前)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제1차관·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거쳐 이명박(李明博) 정부에서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관료 시절 상당 기간 외환(外換)과 관련한 업무를 맡았다. ‘환율방어에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며 직접 행동에 나서 미국 월가로부터 ‘최틀러’(최중경과 히틀러의 합성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관료 시절에는 후배 직원들에게 신망이 두터워 ‘가장 닮고 싶은 상사(上司)’로 꼽혔을 정도로 소신이 뚜렷하고, 일을 시작하면 무섭게 몰아붙이는 스타일이다. 2016년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에 선출됐고, 지난해 연임에 성공했다.
 
 
  “경제 위기로 넘어가는 初入”
 
최중경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2011년 1월 27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는 최 전 장관. 사진=조선DB
  ― 경제가 나쁘다는 것을 체감하십니까.
 
  “패션거리에 가보면 폐업(廢業)을 한 곳이 많더군요. 요식업도 위기고 건물의 공실률(空室率)도 높고, 경기가 나빠지는 초입(初入)에 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 경제 위기는 아니라고 보십니까.
 
  “위기라는 단어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경제 위기로 갈 수 있는 초입에 서 있습니다. 잘 관리를 하면 위기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고, 이대로 계속 가면 위기가 올 겁니다.”
 
  ― 지난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마이너스에 너무 방점을 두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마치 큰일이 난 것처럼 말을 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나쁜 징조는 분명하니까 찬찬히 따져야죠.”
 
  ― 문재인 정부 경제팀에 몇 점 주시겠습니까.
 
  “정부의 얘기 중에 ‘임금은 높이고 일자리는 늘린다’는 말이 있죠. 경제의 기본에 어긋나는 말입니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든다’는 것이 경제 원칙입니다. 노동의 가격이 임금이고, 노동의 수요가 일자리입니다. 임금이 올라가면 일자리가 당연히 줄어듭니다.
 
  경제학 교수라면 문재인 정부 경제팀에 낙제점을 줄 겁니다. 경제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여태 우리가 배워왔던 서구의 시장주의 경제학이 아예 틀렸다고 하면 저 원칙이 틀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주의 경제학이 옳다는 전제하에 가격과 수요가 동시에 높아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정책 수정을 안 할 거면 ‘사회주의’ 신봉한다고 해야”
 
  ― 말도 안 되는 정책을 2년 동안 한 것이네요.
 
  “적어도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에 충실하지 않은 정책입니다. 정부 집권 3년 차에 접어들었으니 정부의 색깔을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지난 2년 동안 실패로 판명 난 정책을 수정하지 않겠다면 차라리 ‘나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을 신봉하는 자본주의자가 아니라 사회주의를 신봉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 말을 듣고서도 국민이 현 정부를 지지할지 물어야죠.”
 
  ― 현 정부는 사회주의인가요.
 
  “본인 스스로 사회주의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시장주의 경제를 한다고 합니다. 시장주의를 표방한다면서 세부적으로 가격 결정 체계의 기본인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니 정말 자본주의를 믿는다면 여태까지의 정책을 수정해야 하고, 수정을 할 수 없다면 ‘우리는 다른 것을 믿는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 소득주도 성장은 처음부터 실패할 정책이었을까요.
 
  “현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웨이지리드 그로스(wage-led growth)’ 정도겠네요. 정부는 ‘임금을 올려주면 성장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웨이지리드 그로스는 ‘노동 생산성의 향상을 전제로 임금을 올리면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노동 생산성이 늘어난 만큼 임금을 더 지급한다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누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겠습니까?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생산성이 늘어날 경우 임금을 올린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최저임금을 올리면 소비가 늘어난다고 오해한 것이죠.”
 
 
  “文 정부, 盧 정부와 달라”
 
이명박 정부 시절 ‘초과이익 공유제’ 주장을 한 정운찬 전 국무총리. 사진=조선DB
  ― 경제 프레임을 짠 이들이 몰랐을까요.
 
  “정말 큰 의문입니다. 국민도 이 정부에 대해 ‘시장주의를 하겠다는 것이냐’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2년 동안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는데 결과가 반대로 나타났으니 물어야죠.”
 
  ― 노무현 정부 때 당시 재경부에 계셨잖습니까. 문재인 정부 경제팀과 노무현 정부 경제팀을 비교해보면….
 
  “많이 다릅니다. 노무현 전(前) 대통령의 화두(話頭)는 ‘상생(相生)’이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기업과 노동자 간의 상생을 요구했습니다. 상생이라는 용어를 썼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일방적으로 기업들이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반성하고 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계에 대해서는 아무 소리를 하지 못하는 겁니다. 노동 시장의 유연성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계속 기업에만 뭐라고 하는 겁니다.”
 
  최중경 장관의 말을 들으면서 ‘협력이익 공유제(共有制)’가 떠올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11월 협력이익 공유제의 도입 및 확산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 법률안의 입법화를 추진한다는 입장도 발표했다. 협력이익 공유제는 대기업의 이익을 사전(事前) 계약한 기준에 따라 협력사에 분배하도록 하는 상생협력 방안이다. 이익공유 방식에 따라 ‘협력이익 배분제’와 ‘초과이익 공유제’로 구분한다.
 
  정부는 이 제도를 두고 이미 선진국에서 실행하는 보편적인 제도라는 입장이지만, 이를 입법화해서 법적 강제 조항으로 만든 국가는 없다. 또 이 얘기는 이번 정부에서 처음 나온 얘기도 아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 정운찬(鄭雲燦) 동반성장위원장이 초과이익 공유제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당시 이건희(李健熙) 삼성전자 회장 등 재계(財界)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최중경 장관의 생각은 어떤지 물었다.
 
  “실행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우선 초과이익의 정의가 무엇이며, 누가 계산하고,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겁니까.
 
  지난 미국 대선(大選) 때 민주당 대통령 후보던 힐러리가 ‘종업원 이익 참여제’ 얘기를 꺼낸 적은 있습니다. 그때 힐러리가 말한 것은 기업이 이 정책을 시행할 경우에 세제(稅制) 혜택을 준다는 것이지 법으로 강제화하겠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종업원 이익 참여제’는 실행 가능한 정책이고, 저는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법으로 지정한다는 협력이익 공유제는 반대합니다.”
 
 
 
“대기업 赤字도 협력사들이 共有할 건가”

 
  ― 10년 전에 비슷한 얘기가 나왔을 때도 반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이익을 중소기업에 나눠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대기업에는 1·2·3차 벤더(Vender·판매회사)들이 있습니다. 각각의 회사가 어떻게 대기업의 이익 창출에 이바지했는지 기준을 정할 수 없습니다. 이상적인 아이디어인 것 같지만, 실행이 불가능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R&D(연구개발) 공동투자 등은 가능하지만, 대기업의 이익을 중소기업에 나눠준다는 발상은 틀린 것입니다. 대기업에서 적자(赤字)가 나면 그 부분도 협력회사들이 공유해야 하는 것인가요?”
 
  ― 실행할 수 없는 일을 법으로까지 추진하는 거네요.
 
  “종업원 이익 참여제를 발전시킬 생각이라면 모를까…. 관료들은 실행이 가능한 선에서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학자들은 이상적(理想的)인 의견을 낼 수 있지만, 관료·정치인이 그러면 안 됩니다.”
 
  ― 요즘 밖에서는 ‘대통령이 인(人)의 장벽에 둘러싸여서 경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 문제에 신경 쓰느라 경제에는 관심이 없다’는 얘기들이 나돕니다.
 
  “둘 다 틀립니다. 그런 식으로 대통령을 희화화(戱畵化)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현 정부 경제팀은 ‘기업들이 부당한 이익을 취했고, 노동자들은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그런 이념론자들이 경제팀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 자신의 이념과 달라도 경제 지표가 계속 나빠지고 있다면 수정을 해야 맞는 거겠지요.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최저임금을 높여서 월급이 늘어나 일부의 소득 증대를 이끌었다고 자평할 것이 아니라, 최저 임금 상승으로 해고된 사람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오히려 극빈층(極貧層)이 고통받고 있다는 현실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利己心으로 움직인다”
 
  최중경 장관은 격한 표현을 사용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하지만 질문을 던질 때마다 답하는 어투는 단호하고 단단했다.
 
  ― 왜 그들은 대기업이 부당한 이익을 취했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을까요.
 
  “사람은 이기심(利己心)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운동권 이념론자들은 세상이 이기심이 아니라 선한 마음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세상이 선한 의도로 가야 하는데 왜 그렇게 가지 않느냐’고들 합니다.
 
  고용주 입장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20% 올려주면 자신의 이익이 줄어듭니다. 고용주들은 자신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임금 상승분 20%에 해당하는 직원을 해고합니다. 이것은 이기심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보통 사람들의 행위입니다.
 
  운동권 이념론자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나의 이익이 줄더라도 노동자들에게 돈을 더 많이 주고, 그러면서 고용은 계속 유지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말을 합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확대했던 영국식 복지제도는 한계 상황에 내몰렸습니다. 병원비를 무료(無料)로 하다 보니 과잉 진료가 많아졌고, 정작 위급한 환자가 수술 순서를 기다리다가 사망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세상은 운동권들의 생각대로 그렇게 착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 그들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습니까.
 
  “그들에게 ‘너희가 틀렸다’고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 소신에 따라서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을 믿는 것처럼 서로 생각이 다를 뿐입니다. 그들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틀린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 이상적인 사회인 것은 맞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현실에 맞게 수정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 적어도 경제는 더욱 그러해야 하겠지요.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국부론(國富論)》에서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이기심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원래 윤리학 교수였습니다. 통상 윤리학 교수는 ‘바르게 살라’고 가르치는 사람인데, 윤리와 경제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경제는 윤리적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현실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경제입니다. 이상이 없어서도 안 되지만 이상이 지나치면 현실을 그르치게 됩니다.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선량함과 너그러움이 아니라 무서울 정도의 냉정함입니다. 따라서 정책이 수립되고 시행됐을 때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최틀러’

 
  최중경 장관은 ‘환율’과 떨어뜨려 생각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그에 대해서는 외환 개입 정책가의 이미지가 강하다. 2003~2005년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이던 시절에 그는 외환에 적극 개입했다. ‘환율이 떨어지면 국내 수출 기업의 경쟁력이 약해진다’며 뉴욕 월가의 역외차액선물환시장(NDF)에 직접 개입했다. 당시 워낙 저돌적 환율 방어 정책을 펼쳐서 ‘최틀러’라는 별명이 붙었다. 나중에 무리한 환율 개입으로 1조원대의 국고(國庫) 손실을 냈다고 해서 좌천됐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과 함께 다시 기획재정부로 돌아와 강만수(姜萬洙) 기획재정부 장관을 도와 경제팀을 이끌었다.
 
  최 장관은 기획재정부 시절에도 “수출에 도움이 된다”며 다시 고(高)환율 정책을 밀어붙였다. 많은 비난에 시달렸지만 그는 당당했다. 기획재정부 차관에서 물러나면서도 “장관 대신 욕을 먹는 것이 내가 바라는 바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그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을까.
 
  ― 고환율 정책을 폈다는 평가에 대해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환율이 시장 원리에 의해서 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의 수요는 정상적인 기업 이외에 어느 정도 투기 세력이 개입합니다. 투기 세력이 과도하게 환율을 비트는 경우에는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투기꾼이 한국 경제를 헤집고 다니면서 환율이 왜곡되는데 그냥 지켜만 보고 있다면 그건 대한민국 공무원이 아닙니다.”
 
  ― 정부의 자본시장 관여가 ‘큰 정부’를 표방하는 것이 아니란 말씀이시죠.
 
  “절대 아닙니다. 2004년 투기꾼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은 한국 경제에 독(毒)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미국에 직접 진출해 뉴욕 역외차액선물환시장에 개입하다 보니 일이 커졌고 ‘대한민국 공무원이 월가 한복판까지 올 줄 몰랐고, 히틀러의 전격전과 흡사하다’고 해서 외국인들이 붙인 별명이 ‘최틀러’였습니다.”
 
 
  “화폐개혁 가능성도 환율에 영향”
 
  ― 15년 전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시죠.
 
  “전혀 후회하지 않고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옳았다는 것이 뒤에 증명됐습니다. 2004년 당시에 샀던 파생상품이 300억 달러 국고에 남아 있었고, 이것은 달러 매입권이었기 때문에 ‘제2선 외환보유고’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2008년 미국발(發) 경제 위기 때 미국이 통화 스와프를 허용해주면서 우리 경제가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는 데 시간을 벌어주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간혹 제게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는 사람은 있었지만 제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 현재 한화(韓貨)와 중국의 위안화만 평가 절하됐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경제적인 요인도 있고, 수급상의 문제도 있습니다. 하지만 화폐개혁 가능성도 환율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화폐개혁에 대해서 정부가 빨리 입장을 밝혀야 환율이 진정됩니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은 화폐개혁을 하고 싶어 합니다. 우선 조(兆)를 넘어서 경(京)으로까지 가는 단위가 너무 복잡하기도 하고, 중앙은행의 존재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화폐개혁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경제가 불확실할 때 화폐개혁까지 들먹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더 풀 모양입니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추경안(追更案)을 제출했습니다. 인위적 경기부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꼭 필요한 부양이 있습니다. 가령 외환위기가 났을 때와 같이 특정한 경우에는 누군가가 나서서 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경기부양책을 쓰면 그 자체가 크라우딩 아웃(crowding out·정부지출 증가가 이자율을 높여서 민간소비를 위축시키는 현상)을 초래하게 됩니다.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國債), 혹은 정부가 거둬들이는 세금은 엄밀히 말해서 민간에서 쓸 수 있는 돈을 끌어다 쓰는 것입니다. 민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못 하게 하니까 결과적으로 민간의 주름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쉽게 말해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느라고 돈을 쓰는 것이 사기업의 신(新)기술 개발을 막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기 때문에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이 일자리 만든다”
 
최중경 전 장관은 한국 외교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책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를 펴냈다. 사진=조선DB
  ― 모두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지만, 문재인 정부 경제팀은 유독 한 목소리를 내는 것 같습니다. 정말 생각이 같아서 그런 건지, 반대할 자신이 없어서 그런 건지 싶습니다.
 
  “관료들은 자기를 임명해준 사람에 대한 의리도 있지만, 국민에 대한 책임이 더 크다고 봅니다.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만일 자신의 소신과 상충(相衝)하는 일이 생기면 사표를 쓰고 나가야 합니다. 그나마 임명권자와의 의리를 지키는 것은 좀 낫습니다. 자기 출세를 위해서 보신(保身)하는 것은 가장 위험합니다.”
 
  ―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 실업이 사회적인 이슈로 대두했습니다.
 
  “사람이 필요 없는 산업 구조가 점차 늘어나게 돼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는 ‘생각하는 사람’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들고 뛰는 사람만 일을 하는 줄 압니다. 가만히 앉아서 고민하는 사람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데, 이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합니다. 컵 하나를 디자인해도 깊이 고민해서 혁신적인 디자인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먹고, 자고, 생각만 하는 사람도 직업으로 인정하고 이를 상업화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생각하는 사람이 결국 일자리를 만들 겁니다.”
 
  최중경 전 장관은 지식경제부를 떠난 후 2014~2016년 미국 헤리티지 재단 방문연구위원 신분으로 3년 동안 워싱턴에 머물렀다. 최 전 장관이 당시 느꼈던 일들을 세세히 기록하며 대한민국 외교의 현주소를 낱낱이 파헤친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안보가 경제에 우선”
 

  “경제뿐 아니라 안보·외교 문제 등 모든 과정에서 숙고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드 배치 과정은 정말 우리 외교의 미숙함을 보여줬습니다. 애당초 사드 배치는 협상이 불가능한 기밀 사항(confidential non negotiable military issue)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것을 정반대로 해석했습니다. 마치 협상이 가능한 외교적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에 우리가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사드 배치가 과연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딜(deal)을 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까?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고, 사드 배치 후에 중국에 양해를 구했으면 간단히 끝날 문제였습니다. 사드 배치에 관해 중국이 반대 입장을 내세우면 우리는 ‘조중(朝中) 상호방위조약을 폐기하고 나서 할 얘기’라고 응수하면 됩니다.”
 
  ― 문재인 정부에서 얘기하는 경제는 경제대로, 안보는 안보대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제와 안보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꼭 결정을 해야 한다면 안보가 경제에 우선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에 둘러싸인 한국에서 미국과의 군사동맹은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입니다. 중국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더라도 한미동맹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맞는다고 봅니다.”
 
  ― 헤리티지 재단에 있으면서 느낀 점이 많으셨던 모양입니다.
 
  “우리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중재(仲裁)는 힘으로 하는 것이지 논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원이 중재하는 것은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 사이에서 중재하는 것 역시 미국이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재할 수 있나요? 난센스입니다. 국제관계는 원칙, 우정, 정(情)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힘과 실익(實益)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명분과 의리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
 
  ― 전문가가 아니신데도 책의 내용은 꽤 깊이가 있던데요.
 
  “국제사회에서 구속력이 낮은 명분과 의리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해관계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서로 필요와 이익이 촘촘하게 얽혀 있다면 어느 일방이 끝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 오랫동안 유지됩니다. 미국이 우리에게 얻을 것이 적다고 느끼는 순간 이해관계는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해관계를 점검하고 더 공고해지도록 현실적인 대처 방안을 살펴야 합니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전략은 그야말로 우리 편한 식으로 생각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두 나라 모두로부터 비난받는 결과만 가져올 뿐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한창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정성을 덜 쏟고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직업 외교관 외에 비(非)외교관도 나가야 합니다. 미국을 너무 피상적으로만 파악하지 말고 정부가 나서서 필요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인재를 육성하고 예산을 투입해 미국을 읽는 체제를 갖춰야 합니다.”
 
 
  공인회계사회 회장
 
  관가(官街)를 떠난 이후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최중경 전 장관은 2016년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지난해 재선임됐다. 2만1000명의 회계사가 등록돼 있다.
 
  최 전 장관이 한국회계사회를 맡은 시기에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粉飾會計)가 문제가 됐다. 지난해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 논란마저 불거져 ‘회계법인이 외부 감사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최 전 장관은 지난해 10월 31일 ‘회계의 날’ 행사에서 “회계가 바로 서야 경제가 바로 설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그는 ‘공인회계사 외부감사 행동강령’을 제정했다. 공인회계사들이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다시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외부감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청탁·접대행위 금지 ▲과도한 감사보수, 감사자료 요구 등 부당행위 금지 ▲표준감사시간 준수 및 엄격한 감사절차 수행 등이다.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공공부문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감사공영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감사공영제는 공공주택·학교 등 비영리조직을 투명하게 운영하기 위해 공적(公的)기관이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이다. 최 장관에게 왜 회계가 중요한지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회계가 잘못되면 경제가 망한다”
 
지난 4월 30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2019 회계감사포럼’에서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회사의 생산량을 더하면 그것이 총생산입니다. 기업의 생산이 곧 국내총생산(GDP)입니다. 회계 정보를 모두 모으면 거시 경제 통계가 됩니다. 통계가 잘못되면 그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실행한 정책이 모두 엉터리가 됩니다.
 
  선제적 구조조정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구조조정의 타이밍도 결국 회계 정보를 분석하여 포착하게 됩니다. 대우조선의 경우에도 회계 정보가 정확했다면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조기에 포착해 혈세(血稅) 투입이 줄었을 겁니다.
 
  경제학은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학문인데, 자원 배분은 회계 정보를 보고 합니다. 결국 회계 정보가 잘못될 경우에 자원 배분이 엉망이 되어서 경제는 망합니다. 그래서 회계가 정말 중요한 겁니다.
 
  남북경제협력도 회계 통일이 우선입니다. 만일 처리법이 달라서 우리는 5억원이 났다고, 북한은 10억원의 이익이 났다고 할 경우에 향후 남북경협사업을 하더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 회계를 떠올리면 회계부정·분식회계 등 네거티브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우선 기업주들의 회계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았습니다. 국민들도 회계에 큰 관심은 없었습니다. 기업에 투자를 할 때 재무제표를 분석하기보다 풍문에 의해서, 내부 정보를 이용한 투자가 실제 이뤄졌습니다. 회계 정보가 투명하지 않으면 얼마나 큰 위험에 노출되는지를 알게 돼야 합니다.”
 
 
  “대기업 社主에 유리한 것은 惡?”
 
  ― 삼바의 분식회계는 여전히 논란입니다. 삼바의 회계 처리 문제가 삼성전자, 나아가 오너를 타깃으로 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회계업계도 수사를 받는 입장이라서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본질을 지켜봐야 합니다. 삼바 분식회계의 핵심은 삼바에서 회계 기준상 용인되는 회계 처리 방법을 택했느냐입니다. 처리 방법이 국제적 표준에 맞지 않고, 기업주가 탈세(脫稅)를 한 것이라면 제재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삼바 문제가 오너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서 일어났다는 시각은 문제가 있습니다. 대주주가 안정적으로 경영을 하기 위해서 주식을 사들이고, 기업 사냥꾼으로부터 기업을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대주주의 안정적 경영 확보를 위한 명분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대기업 사주(社主)에게 유리한 것은 무조건 악(惡)이라는 식의 프레임을 덧씌우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보다는 회계 처리 방법 자체의 적정성을 냉정하게 따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 외국 자본이 국내 시장에 많이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기업의 회계 정보를 믿지 못해서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감사 선임이 중요합니다. 저는 상장(上場)법인에 대해 주기적 지정제를 찬성합니다.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자율적으로 6년 동안 선임한 다음에 이후 3년은 금융위원회 산하의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감사인을 지정받도록 제도가 바뀌었습니다.
 
  기업이 회계법인을 장기간 자율적으로 선임하면 부실 감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나를 재판할 판사를 내가 정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개정 외부감사법에 따라 내년부터는 6년은 자율선임하되 그 이후 3년은 증권선물위원회에서 강제선임하게 되어 회계 투명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얘기로 하는 것보다 행동이 중요”
 
  ― 회계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지적을 합니다. 기업이 분식회계를 했다고 해도 회계법인이 여기에 동조하지 않았다면 훨씬 투명해졌을 텐데요.
 
  “회사들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하고, 회계사들도 직무의 중요성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개정 외부감사법이 시행되면 분식회계에 연루된 회계사는 최대 무기(無期)징역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을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소송 시효도 종전의 3년에서 8년으로 연장됐습니다. 외부감사를 맡는 회계사의 책임과 처벌이 그만큼 커졌습니다.
 
  회계 처리가 단순히 업계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직결된 문제로서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가질 때 투명 사회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중경 전 장관은 기고문을 통해 경제 안보에 대한 생각을 밝히지만 좀처럼 인터뷰를 하지 않는 편으로 유명하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최 전 장관이 답했다.
 
  “뭐 장황하게 얘기를 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고 제 얘기를 활자로 보면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요. 얘기를 하는 것보다 행동이 중요하잖습니까. 하기로 했으면 하는 것이고, 특히 그래요 관료나 정치인은. 실행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겁니다.”
 
  15년 전에 그에게 왜 ‘최틀러’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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