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선수들, 일본 사회에는 아직도 ‘소명의식’ 살아 있음을 재확인시켜
⊙ 토론토의 투혼 vs 다저스의 저력
⊙ 로버츠 다저스 감독, 어머니가 일본인인 반(半)일본계
⊙ 오타니, 재능·체격 타고났지만 뼈를 깎는 노력과 자기 절제 더해 오늘에 이르러
⊙ 야마모토, 체격·재능 많이 모자라지만 살인적 노력으로 악조건 극복
⊙ 다저스 팀의 강점과 약점은?
⊙ 토니 ‘현수’ 에드먼, 무키 베츠에 버금가는 ‘야구 도사’ 스타일
⊙ 김혜성, 주루·수비 능력으로 활용 가치 높아질 것
⊙ 토론토의 투혼 vs 다저스의 저력
⊙ 로버츠 다저스 감독, 어머니가 일본인인 반(半)일본계
⊙ 오타니, 재능·체격 타고났지만 뼈를 깎는 노력과 자기 절제 더해 오늘에 이르러
⊙ 야마모토, 체격·재능 많이 모자라지만 살인적 노력으로 악조건 극복
⊙ 다저스 팀의 강점과 약점은?
⊙ 토니 ‘현수’ 에드먼, 무키 베츠에 버금가는 ‘야구 도사’ 스타일
⊙ 김혜성, 주루·수비 능력으로 활용 가치 높아질 것
- 11월 2일(현지시각) LA 다저스의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가 월드시리즈 우승 시상식에서 ‘윌리 메이스 월드시리즈 MVP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환호하고 있다. 팀의 4승 중 3승을 책임지며 우승의 주역이 됐다. 사진=AFP/연합뉴스
올해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는 역대급 명승부였다. 김병현이 뛰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D백스)와 ‘제국’의 위치에 있던 뉴욕 양키스의 2001년 월드시리즈에 버금가는, 아니 어쩌면 그 명승부전을 뛰어넘는 진검승부였다. 그래서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고, 야구 역사의 전설이 될 시리즈로 칭송될 것이다.
최종전인 7차전부터 살펴보자. 올해 마지막 경기이자 더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 대결이었기에, 양 팀은 사생결단 총력전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우리가 도저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장면이 속출하는 역사상 가장 재미있는 경기 중 하나가 됐다.
메이저리그 최종 시리즈가 월드시리즈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캐나다 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몬트리올 엑스포스(Expos)가 사라지고 나서는 토론토 블루제이스만 남게 됐다. 토론토는 1993년 월드시리즈 2연패 이후 무려 32년 만에 월드시리즈에 올라왔고, 그래서 캐나다 국가가 오랜만에 연주되는 영광도 누렸다.
토론토 선수들의 분투
먼저 토론토 선수들의 눈물 나는 분투를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토론토는 객관적인 전력(戰力)에서 약세였지만, 존 슈나이더 감독의 강력한 카리스마 아래 뭉친 끈끈하고 끈질긴 컬러의 팀이고 정규리그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둔 만만치 않은 구단이다.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잘 뛰지 못하는 보 비솃이 포스트시즌에서도 거의 결장하다가 월드시리즈에 출전을 강행했다. 절뚝거리는 다리를 가지고 그때까지도 잘해줬지만, 최종전에서 위대한 오타니 쇼헤이를 상대로 선제 3점 홈런을 날릴 때 나는 전율을 느꼈다.
보 비솃의 아버지인 단테 비솃은 콜로라도에서 홈런 타자로 유명했지만, 보 비솃은 홈런 타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망가진 다리를 가지고 홈런을 쳤고, 그러고는 베이스러닝이 거의 불가능한데도 끝까지 안타도 치고 죽어라 뛰는 모습을 보고는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조지 스프링어도 옆구리 부상이 심한 가운데 나와서 3안타를 때려내면서 토론토 공격을 이끌었고, 토론토의 핵심 공격수인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그의 아버지인 게레로 시니어도 전설적인 강타자였다)는 육중한 몸을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리면서 엄청난 수비를 해댔고 시리즈 내내 토론토의 공격을 이끌었다.
다른 토론토 선수들도 투수건 타자건 진짜 우승을 향한 일념으로 몸을 던지는 것을 보면서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졌지만 잘 싸웠다” 수준이 아니라 토론토는 진정한 월드시리즈 우승의 자격이 넘치는 팀이었다.
그리고 챔피언십시리즈에서 4연승으로 쉽게 올라온 팀이 4대3으로 가까스로 올라온 팀에 늘 지는 월드시리즈의 징크스가 올해도 이뤄질 뻔하다가, 그 저주는 기적적으로 깨졌다.
‘야마모토의 전설’
LA 다저스도 현역 챔피언이자 전통의 강호로서 질 듯 질 듯하면서도 계속해서 따라붙는 저력을 보여줬다. 다저스는 팀 내 기강이 있고, 분위기 좋은 팀으로 유명한데 이런 것이 순기능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최종전에서 예상대로 오타니가 오프너(opener·길게 던지지 않는 선발투수)로 나와서 잘 던져주다가 비솃에게 3점 홈런을 맞았지만, 선발투수로 뛴 지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 자기를 희생하는 짧은 선발을 해줬고, 타격에서도 선두타자 히트를 비롯해 정말 몸을 던지는 플레이로 시리즈 내내 다저스의 공격을 이끌어줬다. 타자와 투수로 공히 월드시리즈에 나온 선수들은 까마득한 옛날 전설의 베이브 루스 등이 있었지만, 오타니처럼 투타(投打)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선수는 역사상 처음이다. 이뿐 아니라 바로 전날 릴리프로 나왔던 타일러 글래스나우도 구원투수로 나와서 뛰었고, 이외에도 얼마 전에 선발투수로 나왔던 블레이크 스넬까지 구원으로 투입하는 총력전을 펼쳤다.
이러다가 막판에는 바로 전날 96구를 던진 선발투수였던 근성의 사나이 야마모토 요시노부까지 투입되면서 야마모토의 전설이 생기기까지 했다. 다저스의 구원투수진이 붕괴 상태라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었지만 선발진의 자기희생이 있었기에 우승이 가능했다.
토론토도 며칠 전 선발승 투수였던 신인선수 트레이 예세비지까지 불펜투수로 등판시키며 죽기 아니면 살기로 대응했다. 최종전 토론토 선발은 마흔이 넘은 ‘할아버지 투수’ 맥스 슈어저로, 필사적으로 잘 던져줬다.
로버츠 감독, ‘돌버츠’로 돌아갔나?
사실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시리즈 선수 운용은 문제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과거 로버츠가 어리숙한 감독이었을 당시의 별명인 ‘돌버츠’로 돌아간 느낌까지 들었다. 먼저 공격이 잘 안 될 경우에는 타순을 바꾼다든가 선수를 바꾸는 시도 등을 훨씬 더 먼저 했었어야 한다. 안 맞는 슈퍼스타 무키 베츠를 계속 2번 타자로 기용한 것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나중에야 타순과 선수를 바꾸니 그래도 타선이 터져주지 않았나.
6차전에서야 타순을 바꿔서 선두타자 오타니 다음에 윌 스미스를 배치하니 한결 쉽게 경기가 풀렸고, 부담이 적은 무키 베츠는 6차전에서야 결국 결승타를 때려줬다. 그러나 베츠는 최종전에서도 안타를 치지 못하고 심각한 타격 슬럼프를 겪으며 다저스 공격에 찬물을 끼얹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야구 도사’ 베츠의 이런 침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규시즌에서도 무기력했다. 베츠가 수비에서는 역할을 잘해준 것은 언급해야 할 듯하다. 야구 도사답게 나이가 들어서 유격수로 변신해 성공한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데 그것을 해냈다.
솔직히 다저스는 오타니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극심한 타격 침체 속에서 고전(苦戰)했는데, 그나마 꾸준히 쳐주는 윌 스미스와 토미 에드먼 같은 몇몇 선수가 있어서 승리한 것이다. 정규시즌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선수지만(올해 정규리그 타율은 2할3리에 불과했다), 포스트시즌만 오면 갑자기 ‘스타’로 변신하는 베테랑 키케(엔리케) 에르난데스도 공수(攻守)에서 필요한 순간에는 빛을 발했다. 참으로 재밌는 선수다. 손흥민 선수가 다저스를 방문했을 때, 그가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한 태도로 손흥민을 대한 것도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10월의 사나이’인 키케의 계약이 끝나는데 다저스로서는 그와 계약을 연장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김혜성을 좀 더 적극적으로 기용했으면…
또한 ‘믿음의 야구’라고 하지만 심한 무기력증에 빠진 앤디 파헤스, 1할도 되지 않는 그를 계속 기용한 것도 실착(失錯)이었다. 정규시즌에서 공수에서 좋은 활약을 한 파헤스가 포스트시즌에선 타격에서 망가진 건 다저스 고전의 이유 중 하나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최종전에서처럼 토미 에드먼을 중견수로 돌리고 미겔 로하스나 김혜성을 2루수로 기용했어야 했다. 최종전에서 로하스는 안타도 때리고 천금의 동점 홈런도 때리고, 수비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에드먼이 부상 상태이기 때문에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 중견수로 기용을 안 한 것인데, 에드먼보다 훨씬 더 심한 부상 상태인 토론토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뛰는 것과 비교했을 때 로버츠의 계속된 파헤스 타격 기용은 분명히 지적돼야 한다. 파헤스는 최종전 막판에 수비용으로 기용한 것처럼 대수비(代守備)용 외야수로 돌렸어야 했다. 에드먼을 중견수로 쓰고, 2루수에 로하스와 김혜성을 쓰는 것이 파헤스를 계속 쓰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김혜성이 마지막 경기 마지막 이닝에 로하스의 대수비로 나와서 2루수로서 1루 커버 아웃을 잡아내고 그 이후 승리의 순간에 필드 안에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김혜성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쓸 수는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수비와 주루 플레이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최상급이고, 타격도 부상 전에는 꽤 좋았던 김혜성이었기에 아쉬움이 크다. 부상 복귀 후 타격에서 부진했지만,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선 홈런을 터트려주기도 했었기에 김혜성이 포스트시즌에서 대주자 한 번, 대수비 한 번으로 끝난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김혜성의 내년 시즌이 기대된다.
다저스의 제일 큰 문제는 구원투수진 붕괴
다저스의 제일 심각한 문제는 역시 붕괴된 구원투수진(불펜진)이었다. 마무리(클로저·closer)로 4년간 1000억원이 넘는 계약을 하고 데려온 태너 스캇은 정규시즌에서부터 두들겨 맞고, 포스트시즌 로스터(roster)에서도 빠지는 쓸모없는 ‘먹튀’ 신세가 됐다. 믿을 구원투수는 알렉스 베시아, 딱 한 사람만 남은 기가 막힌 처지였다. 그런 베시아조차 현재 공개하지 않는 ‘가정 문제’로 월드시리즈에서 빠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베시아가 좌완으로 원포인트 릴리프나 한 이닝을 책임질 수 있는 다저스의 유일한 구원투수이기 때문에, 그가 월드시리즈에 참여했었으면은 다저스가 조금 더 편하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운명의 신은 그를 월드시리즈에서 빼버렸고, 믿을 구원투수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로버츠는 선발투수들을 당겨서 쓰는 방식으로 버텼다.
사실 포스트시즌 내내 선발투수진을 불펜으로 기용했고, 구원진 중 가장 중요한 마무리투수에는 일본 선수인 사사키 로키를 등판시키면서 위기를 이겨냈다. 사사키도 원래 선발투수였는데, 구원진이 붕괴되니 응급책으로 마무리로 기용됐고 나름 훌륭히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로버츠는 어떤 경우에는 믿을 수 없는 좌완 앤서니 반다 같은 구원투수들을 기용했고, 기용할 때마다 얻어터지는 것이 되풀이되는 것을 방지하지 못했다. 일단 붕괴된 구원진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부터 생각을 해야 할 것 같고, 그리고 선수들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과감하게 다른 방식을 택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왔다.
로버츠 감독 어머니는 일본인
많은 이가 잘 모르는 사실은 로버츠가 일본에서 태어난 하프 일본계라는 것이다. 오키나와에서 미국 흑인 병사 부친과 일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모가 완전히 흑인이라 일본계임을 외모로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체구가 작아서 메이저리그 시절에도 타격보다는 과감한 주루 플레이로 명성을 얻었다. 아직도 유튜브에는 그가 보스턴 선수 시절에 했었던 전설적 주루 플레이가 올려져 있다.
로버츠가 김혜성을 끝까지 기용 안 했으면 “일본계인 그가 의도적으로 김혜성을 소외시켰다”라는 음해가 한국에서 성행했을 것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최종 7차전을 앞둔 훈련에서 로버츠가 김혜성을 1루에서 2루를 돌아 3루로 뛰게 하고 본인도 김혜성을 따라 하다가 넘어져서 다저스 선수들이 전부 웃는 일이 있었는데, 이 에피소드가 의도했건 안 했건 팀의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로버츠를 복장(福將)이라 한다. 다저스 구단이 대단한 이유 중 하나. 사실 로버츠는 그동안 해임 위기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구단에서 로버츠의 실수나 미숙한 점을 덮어주면서 계속 맡긴 결과로 이제는 과거와 차원이 다른 야구를 전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구단이 믿고 맡겨준 결과인데, 과연 로버츠가 진작에 해임됐다면 지금과 같은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을 듯하다. 로버츠가 과거 너무 뻔하고 도식적인 야구를 하고 미숙한 감독이었을 때 한국에서의 별명이 ‘돌버츠’였을 정도였다.
그러나 여하튼 로버츠는 경기를 통해서 익혀 나가는 장점이 있는 감독이다. 그래서 요번 월드시리즈도 6차전에서 정말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되자 마지못해 택했던 변화가 결국은 승리를 가져오는 요인이 됐다. 그래서 그를 복장 또는 운장(運將)이라고들 한다. 비록 요번 월드시리즈에서는 여러 실수를 했지만, 전체적으로 봐선 이제 현직 메이저리그 감독 중 손꼽히는 감독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한국 야구에서는 조금만 잘못해도 감독 자르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데, 로버츠의 경우를 보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근성의 야구’
지구인이 아닌 듯한 오타니 쇼헤이는 투수와 타자로서 동시에 대활약을 하는 진기명기를 보여줬다. 전설적인 베이브 루스 이후에 처음으로 이런 것을 보여준 사람이고, 베이브 루스보다 훨씬 더 위대한 대기록들을 남기게 됐다.
여기서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일본 선수들의 투혼(鬪魂)이다. 오타니(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MVP), 그리고 마무리투수로 투입됐던 사사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연히 월드시리즈 MVP가 된 야마모토 요시노부의 경우 근성의 야구를 보여줬다. 세 사람 다 팀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야구를 보여준 것은 음미해 볼 만한 부분이 많다.
오타니와 야마모토는 매우 큰돈을 주고 장기 계약으로 데려온 선수들인데, 벌써 돈값을 다 한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리고 두 선수는 도인(道人)에 가까울 정도로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있다. 엄청난 부자인 두 사람 다 야구장의 휴지나 쓰레기를 줍는다. 좋은 일을 하면 복이 온다는 옛날식 가치관을 갖고 있다. 오타니는 부부가 다 소박한 삶을 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심지어는 오타니의 부모와 형제들도 예전처럼 일을 하고 오타니의 돈은 단 한 푼도 안 쓰기로 유명하다.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 처음 왔을 때 탄 차는 놀랍게도 현대 쏘나타였다.
야마모토 요시노부는 키 177cm에 날씬한 체격으로 메이저리그 투수로서는 물론이고 일반 야수로서도 아주 작고 왜소한 몸을 갖고 있다. 이것은 일본 리그에서조차 작은 키고, 다저스에 있어서도 전 선수 중에 김혜성과 더불어 가장 키가 작은 선수에 속한다. 그래서 두 선수가 가장 친한지도 모르겠다.
‘야마동원’ 야마모토
오타니는 재능과 체격을 갖고 태어났지만, 뼈를 깎는 노력과 자기 절제가 더해져 오늘에 다다랐다. 그런데 야마모토는 타고난 체격과 재능이 많이 모자라는데도, 이러한 악조건을 정말로 살인적인 노력으로 극복했다는 점이 더 인상적이다. 야마모토는 일본 프로리그에 입문할 때도 4라운드에 지명된 무명(無名) 선수였고, 누구도 그의 대성(大成)을 예측할 수 없었다. 그가 오타니보다도 더 열심히 노력한다는 계획을 갖고 정말 미친 듯이 연습해서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것은 야구팬들은 거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부르면 달려가서 몸이 으스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죽도록 뛰는 투혼을 보여줬다. 일본에 있을 때부터 그의 근성은 유명했다. 토론토 선수들의 투지는 정말 대단했는데, 야마모토의 투혼이 토론토 선수들 못지않았기 때문에 다저스는 기적 같은 승리를 갖고 올 수 있었다.
야마모토는 월드시리즈와 챔피언십시리즈에서 2연속 완투승을 거두었다. 선발-계투진-마무리투수로 분업화된 현대 야구에선 완투승이 희귀해졌고, 더군다나 총력전 체제인 포스트시즌에선 정말 드문 것이 완투승이다. 현재 다저스가 선발진이 오래 끌어줘야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불펜이 망가진 탓도 있지만, 야마모토의 투혼이 이런 진기록을 이끌어낸 것이다.
일본 선수들의 대활약을 보면서 일본 사회에는 아직도 ‘소명의식(召命意識)’이라는 미덕이 살아 있음을 재확인했다. 반면 한국에선 소명의식이나 명분은 구닥다리 얘기가 된 지 오래다.
최종전의 마지막 3이닝을 마무리하면서 야마모토는 한 해의 월드시리즈 3승이라고 하는 대기록도 세웠다. 그것도 바로 전날 선발투수 승리를 거두고 바로 다음 날 절체절명의 순간에 투수진이 고갈된 상황에서 9회에 구원 등판해서 연장 11회 말 승리까지 책임진 것은 만화에나 나올법한 얘기다. 마치 고(故) 최동원이 과거에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혼자 다 책임져서 롯데가 우승한 것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한국 야구팬들은 야마모토를 ‘야마동원’이라고도 부른다. 그가 요번 월드시리즈에서 이룬 위업은 야구사에 길이길이 기록될 전설이 됐다.
다저스는 새로운 ‘제국’이 될 수 있을까
앞에 언급한 애리조나와 뉴욕 양키스의 2001년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바로 전날 6차전의 선발 승리투수로 100구 이상을 던진 좌완 랜디 존슨이 8회 초에 2대1로 지고 있는 상황에 구원투수로 나와 역전승을 이끌고 애리조나의 창단 후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뤄내 길고 긴 양키스 ‘제국시대’를 종식시킨 것이 생각난다. 뉴욕 양키스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월드시리즈를 3연패했고 2001년도 이겼으면 4연패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사실 애리조나에선 마무리투수인 김병현이 나와야 했지만, 그가 전의 경기들에서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얻어맞아서 김병현 대신 선발투수인 존슨이 대신 나왔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요번 월드시리즈 7차전은 2001년 당시의 데자뷔처럼 보이기도 했다.
뉴욕 양키스가 20여 년 전에 했던 월드시리즈 연패(連霸)를 다저스가 했는데, 과연 다저스는 당시 조 토레 감독이 이끄는 양키스만큼이나 강한가? 월드시리즈 3연패를 점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게 쉽게 될까? 새로운 ‘제국’으로 평가될 수 있을까?
그런데 다저스는 팀으로서는 보완해야 될 점이 너무 많은 듯 보인다. 로버츠 감독의 경기 운영 방식도 좀 전에 지적했듯이 아직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 당시의 양키스와 같은 제국의 위치는 아니다.
다저스의 강점은 선수층이 두껍고, 마이너리그 팜 시스템(farm system)이 제일 좋으니 선수 수급이 원활하고 돈이 많은 부자구단이라는 점이다.
선발투수진은 워낙 막강하지만, 사실 시즌 초중반에는 거의 전원이 부상 때문에 역할을 하지 못했다. 마침 이들이 부상에서 돌아와 만개하는 시간이 포스트시즌이었던 행운이 따랐고, 타이밍을 포스트시즌에 맞춰서 선발투수진을 조율한 마크 프라이어 다저스 투수코치의 공도 크다. 다저스의 상징이었던 대투수 클레이튼 커쇼가 은퇴하니 그의 공백을 채워야 하고, 부상이 많은 섹션이 선발투수진이니 내년에는 새로운 구상을 해야 한다.
불펜진은 언급했듯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보완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요번에 땜빵 클로저 역할을 한 사사키는 원래 일본에서부터도 유명한 ‘유리 몸’이기 때문에 꾸준함과 강철 신체가 요구되는 선발보다는 한 번에 승부를 결정짓는 마무리투수가 더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무리에서 전력투구를 하면 강력한 투구를 보여주고 있다. 여하튼 마이너 유망주를 끌어올리든, 풍부한 자금력으로 영리한 외부 영입을 하든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
다저스의 포수들
포수는 다년 고액 계약을 한 윌 스미스가 완성형 포수로서 존재한다. 포수로서 공수가 조화된 드문 유형인데, 타격에서도 리그 수위타자를 넘볼 만한 능력이 있고 홈런도 잘 때리는 펀치력도 있다. 수비 능력도 뛰어나다. 투수 리드, 그리고 도루 저지 능력에 있어서도 일가견을 갖고 있다. 성품도 침착하고 온순한 성격이라 팀원들과도 잘 소통하는 그야말로 이상형 모범생 포수. 나이도 많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메이저리그를 대표할 포수로서, 특히 공수겸장(攻守兼掌) 포수로서 군림할 가능성이 크다. 요번 포스트시즌에서 부상 중임에도 그의 위력을 충분히 보여줬고, 결국 월드시리즈의 결승 홈런도 그가 때렸다.
백업 포수인 달튼 러싱은 대형 포수감인데 올 시즌 막판 부상으로 기량을 제대로 발휘 못 했고, 수비는 좋으나 공격력에서 미흡한 점을 보였다.
그런데 다저스는 위의 두 포수가 부상을 당하자 무명인 벤 로트베트를 마이너리그에서 끌어올렸다. 사실 다저스가 로트베트를 마이너리그에 둔 이유는 메이저리그 포수들이 전부 문제가 생겼을 때 콜업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기 위해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는 급의 포수를 쟁여둔 의미가 컸다.
그만큼 다저스는 자금력이 뛰어나고, 그 자금력으로 좋은 백업 포수를 마이너에 두는 전략 또한 이번에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정규시즌 말엽과 포스트시즌에서 작지 않은 부상을 당한 두 포수를 대신해 공수에서 전부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특히 투수 리드에 있어서는 출중한 능력을 보였다. 의외의 공격력도 보여줬다. 앞으로도 기대되는 포수로 메이저리그 어느 팀에서건 제2 포수로서 활약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다저스는 일단 이 세 포수로 2026년 시즌 안방을 책임지게 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11월 13일 LA 다저스는 “포수 벤 로트베트가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했다”고 발표했다. 다저스가 누구를 백업 포수로 충원할 지가 궁금하다.
토니 ‘현수’ 에드먼
내야를 보자면 ‘야구 도사’ 무키 베츠는 외야수로서 이름을 떨친 MVP 출신인데, 믿기 어렵게도 나이가 들어 유격수로 보직을 바꿔 수비에서 골든글러브급의 화려한 플레이를 해줬다. 그야말로 조그마한 체구에 공수를 다 잘하는 천재 흑인 선수인데, 올해는 심각한 건강 문제와 컨디션 난조로 타석에서는 극도로 부진했다. 베츠의 타격 회복이 절실하다. 만약 그가 회복이 잘 안 돼서 풀타임 출장이 무리면, 김혜성 등의 파트타임 대안을 찾아야 한다.
1루수 프레디 프리먼도 역시 MVP 출신으로 공수가 다 좋은 스타다. 1루수로서는 더 이상 수비가 좋을 수 없을 정도고 인성과 리더십까지 갖춘 선수다. 여기에 펀치력과 클러치(결정타) 능력까지 있다. 팀 내에서는 아무도 프리먼에게 들이댈 선수가 없다. 커쇼에게도 물론 들이댈 선수가 없었다. 둘 다 실력과 인품, 그리고 관록으로 압도하기 때문이다. 다저스가 기강 있고 분위기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다.
2루수에는 여러 선수를 기용했는데 한국계인 토니 ‘현수’ 에드먼은 무키 베츠에 버금가는 ‘야구 도사’ 스타일이다. 모친이 한국인이어서 WBC에서 한국 대표팀으로도 뛰었다. 공수주가 다 빼어나며 성실하다. 그리고 스탠퍼드대 컴퓨터 사이언스 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높은 IQ와 함께 높은 야구 지능까지 겸비한 선수로 역시 체격이 작은 편인데도 못 하는 것이 없다. 홈런도 곧잘 쳐내며 외야 수비까지 가능한 멀티플레이어로 그야말로 전천후 선수인데, 이번 시즌은 부상으로 많이 출전하지는 못했고, 포스트시즌에서도 발목 부상 때문에 결장하거나 부분 출전을 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공수에서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에드먼은 스위치 타자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왼손 투수에게는 오른쪽 타석에서 아주 잘 쳐줬지만, 오른손 투수일 때 왼쪽에서 치는 것은 그다지 빼어나지 않은 결점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결점도 거의 없어졌다. 그가 왼손 타자와 상대할 때는 베이브 루스처럼 친다고 하는 미국 캐스터의 칭찬이 있을 정도였다. 작년 챔피언스시리즈 MVP이기도 했다. 역시 인성과 리더십이 빼어난 모범생 스타일로 다저스가 팀워크가 좋은 강호가 되는 데에 역할을 하는 선수다.
3루수 맥스 먼시는 한국 프로야구(KBO)에서 뛸 뻔한 적이 있을 정도로 메이저리그에서 밀려났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다저스에서 재기해 자신의 야구 전성기를 펼쳐나가고 있다. 올해는 여러 부상으로 큰 역할을 하지는 못했지만, 자기 몫은 해내는 선수고 당당한 체구에 펀치력이 뛰어나다.
불펜도 문제지만 외야 또한 불펜만큼 심한 다저스의 약한 부분이다. 우익수 테오스카 에르난데스는 공격력은 좋으나 수비력에 문제가 있어서 중요한 순간에는 대수비를 쓸 정도다. 그리고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불성실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중견수 파헤스는 이미 언급했듯이 포스트시즌의 바닥 없는 침체에서 벗어나야 하는 과제가 있다. 젊고 타고난 야구 능력이 있는 선수이기에 재기할 가능성이 있다. 파헤스가 부진하거나 부상일 경우 에드먼이 요번 최종전처럼 나서줄 수는 있는데, 파헤스를 보완할 중견수 추가 요원이 필요하다.
좌익수는 다저스의 큰 구멍이다. 큰돈을 주고 데려온 마이클 콘포토가 그야말로 먹튀 수준의 실패작이었다. 1할대 타율에 수비도 불안해 포스트시즌에서는 아예 명단에서 제외됐고, 그 공백을 여러 선수가 메워야 했다. ‘10월의 사나이’ 키케 에르난데스가 포스트시즌에서 좌익수를 봤지만 (그는 먼시 대신 3루수를 보기도 한 멀티플레이어), 키케는 정규시즌에서는 타격에서 주전으로 쓸 수 없을 정도로 부진한 선수라서 역시 좌익수를 새로 충원해야 한다.
김혜성, 내년에는 더 자주 볼 수 있을 듯
이러한 다저스에서 김혜성의 위치는 어떠한가? 정규시즌 중에 에드먼이 부상일 때 2루수로 나와 공수에서 역할을 잘 해줬다. 한데 김혜성도 중간에 어깨 부상을 당해 재활 기간이 길었다. 그리고 부상에서 복귀하고 나서는 타격에서 극심한 부진을 보여 눈도장을 찍는 데 실패했다. 대수비와 대주자로서의 가치가 크기 때문에 월드시리즈까지 계속 로스터에는 올라갔다.
그러나 올해가 첫해라, 아직 큰 경기에 투입하는 건, 특히 타격에 투입하는 건 조심스럽다는 게 로버츠의 판단이었다. 무서운 주루 능력과 훌륭한 수비 능력, 그리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작은 체격에도 잘 때려주기에 그의 활용 가치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그는 2루수, 유격수, 중견수를 다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멀티플레이어다. 메이저리그에선 아직 중견수로 뛸 기회가 없었지만, 로버츠는 내년에 그를 중견수로 기용하는 실험을 할 것이다. 그러고는 내외야에서 구멍이 생길 경우엔 즉각 투입할 수 있는 대체요원으로 적극 활용할 것이다. 내년에는 김혜성을 더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다.
드라마 같은 올해 월드시리즈가 끝나고 메이저리그는 내년을 준비 중이다. 과연 다저스는 꿈의 월드시리즈 3연패를 이룰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시애틀, 디트로이트, 밀워키, 캔자스시티 같은 스몰마켓(small market) 언더독들이 꿈을 이룰 것인지, 토론토가 와신상담 재도전을 할 것인지, 아니면 뉴욕 양키스 같은 전통의 명문 팀이 권토중래(捲土重來)할 것인지, 흥미진진하다.
‘돈 매팅리의 저주’
마지막으로 진지한 농담 하나 전한다. 사람들이 간과하는 야구의 저주가 올해도 발휘됐다. ‘돈 매팅리의 저주’가 그것이다.
매팅리는 뉴욕 양키스의 간판타자로 오래 활동했는데, 그가 맹활약을 해도 양키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은커녕 진출도 못 했다. 그가 양키스에서 활동을 시작하기 직전과 은퇴 직후에 양키스는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그가 양키스의 타격코치일 때도 양키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 했고, 류현진이 LA 다저스 선수 시절 매팅리가 다저스 감독이었을 때도 물론 월드시리즈 진출을 못 했다. 마이애미에서 7년간 감독을 할 때는 월드시리즈는커녕 포스트시즌 진출조차 단 한 번뿐이었다. 토론토의 코치(한국인들은 그를 감독에서 코치로 강등된 것이라 표현하는데 메이저리그에선 흔히 있는 일이다)로서도 월드시리즈 진출을 못 하다가 올해야 드디어 대망의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는데, “매팅리의 저주 때문에 토론토가 질 것이다”라는 농담이 돌았고, 진짜 토론토는 아깝게 패배했다. ‘매팅리를 해임해야 토론토가 우승한다’는 농담도 그 후 있었는데, 며칠 전 매팅리는 진짜 자진 사임을 발표했다. 그 지독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밤비노의 저주’, 시카고 컵스의 ‘염소의 저주’조차 풀렸는데, 매팅리의 저주는 결국 풀리지 않을 것인가?⊙
최종전인 7차전부터 살펴보자. 올해 마지막 경기이자 더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 대결이었기에, 양 팀은 사생결단 총력전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우리가 도저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장면이 속출하는 역사상 가장 재미있는 경기 중 하나가 됐다.
메이저리그 최종 시리즈가 월드시리즈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캐나다 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몬트리올 엑스포스(Expos)가 사라지고 나서는 토론토 블루제이스만 남게 됐다. 토론토는 1993년 월드시리즈 2연패 이후 무려 32년 만에 월드시리즈에 올라왔고, 그래서 캐나다 국가가 오랜만에 연주되는 영광도 누렸다.
토론토 선수들의 분투
먼저 토론토 선수들의 눈물 나는 분투를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토론토는 객관적인 전력(戰力)에서 약세였지만, 존 슈나이더 감독의 강력한 카리스마 아래 뭉친 끈끈하고 끈질긴 컬러의 팀이고 정규리그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둔 만만치 않은 구단이다.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잘 뛰지 못하는 보 비솃이 포스트시즌에서도 거의 결장하다가 월드시리즈에 출전을 강행했다. 절뚝거리는 다리를 가지고 그때까지도 잘해줬지만, 최종전에서 위대한 오타니 쇼헤이를 상대로 선제 3점 홈런을 날릴 때 나는 전율을 느꼈다.
보 비솃의 아버지인 단테 비솃은 콜로라도에서 홈런 타자로 유명했지만, 보 비솃은 홈런 타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망가진 다리를 가지고 홈런을 쳤고, 그러고는 베이스러닝이 거의 불가능한데도 끝까지 안타도 치고 죽어라 뛰는 모습을 보고는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조지 스프링어도 옆구리 부상이 심한 가운데 나와서 3안타를 때려내면서 토론토 공격을 이끌었고, 토론토의 핵심 공격수인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그의 아버지인 게레로 시니어도 전설적인 강타자였다)는 육중한 몸을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리면서 엄청난 수비를 해댔고 시리즈 내내 토론토의 공격을 이끌었다.
다른 토론토 선수들도 투수건 타자건 진짜 우승을 향한 일념으로 몸을 던지는 것을 보면서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졌지만 잘 싸웠다” 수준이 아니라 토론토는 진정한 월드시리즈 우승의 자격이 넘치는 팀이었다.
그리고 챔피언십시리즈에서 4연승으로 쉽게 올라온 팀이 4대3으로 가까스로 올라온 팀에 늘 지는 월드시리즈의 징크스가 올해도 이뤄질 뻔하다가, 그 저주는 기적적으로 깨졌다.
‘야마모토의 전설’
LA 다저스도 현역 챔피언이자 전통의 강호로서 질 듯 질 듯하면서도 계속해서 따라붙는 저력을 보여줬다. 다저스는 팀 내 기강이 있고, 분위기 좋은 팀으로 유명한데 이런 것이 순기능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최종전에서 예상대로 오타니가 오프너(opener·길게 던지지 않는 선발투수)로 나와서 잘 던져주다가 비솃에게 3점 홈런을 맞았지만, 선발투수로 뛴 지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 자기를 희생하는 짧은 선발을 해줬고, 타격에서도 선두타자 히트를 비롯해 정말 몸을 던지는 플레이로 시리즈 내내 다저스의 공격을 이끌어줬다. 타자와 투수로 공히 월드시리즈에 나온 선수들은 까마득한 옛날 전설의 베이브 루스 등이 있었지만, 오타니처럼 투타(投打)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선수는 역사상 처음이다. 이뿐 아니라 바로 전날 릴리프로 나왔던 타일러 글래스나우도 구원투수로 나와서 뛰었고, 이외에도 얼마 전에 선발투수로 나왔던 블레이크 스넬까지 구원으로 투입하는 총력전을 펼쳤다.
이러다가 막판에는 바로 전날 96구를 던진 선발투수였던 근성의 사나이 야마모토 요시노부까지 투입되면서 야마모토의 전설이 생기기까지 했다. 다저스의 구원투수진이 붕괴 상태라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었지만 선발진의 자기희생이 있었기에 우승이 가능했다.
토론토도 며칠 전 선발승 투수였던 신인선수 트레이 예세비지까지 불펜투수로 등판시키며 죽기 아니면 살기로 대응했다. 최종전 토론토 선발은 마흔이 넘은 ‘할아버지 투수’ 맥스 슈어저로, 필사적으로 잘 던져줬다.
로버츠 감독, ‘돌버츠’로 돌아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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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다저스 로버츠 감독. 사진=연합뉴스 |
6차전에서야 타순을 바꿔서 선두타자 오타니 다음에 윌 스미스를 배치하니 한결 쉽게 경기가 풀렸고, 부담이 적은 무키 베츠는 6차전에서야 결국 결승타를 때려줬다. 그러나 베츠는 최종전에서도 안타를 치지 못하고 심각한 타격 슬럼프를 겪으며 다저스 공격에 찬물을 끼얹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야구 도사’ 베츠의 이런 침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규시즌에서도 무기력했다. 베츠가 수비에서는 역할을 잘해준 것은 언급해야 할 듯하다. 야구 도사답게 나이가 들어서 유격수로 변신해 성공한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데 그것을 해냈다.
솔직히 다저스는 오타니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극심한 타격 침체 속에서 고전(苦戰)했는데, 그나마 꾸준히 쳐주는 윌 스미스와 토미 에드먼 같은 몇몇 선수가 있어서 승리한 것이다. 정규시즌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선수지만(올해 정규리그 타율은 2할3리에 불과했다), 포스트시즌만 오면 갑자기 ‘스타’로 변신하는 베테랑 키케(엔리케) 에르난데스도 공수(攻守)에서 필요한 순간에는 빛을 발했다. 참으로 재밌는 선수다. 손흥민 선수가 다저스를 방문했을 때, 그가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한 태도로 손흥민을 대한 것도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10월의 사나이’인 키케의 계약이 끝나는데 다저스로서는 그와 계약을 연장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김혜성을 좀 더 적극적으로 기용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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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다저스의 멀티플레이어 김혜성. 사진=연합뉴스 |
김혜성이 마지막 경기 마지막 이닝에 로하스의 대수비로 나와서 2루수로서 1루 커버 아웃을 잡아내고 그 이후 승리의 순간에 필드 안에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김혜성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쓸 수는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수비와 주루 플레이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최상급이고, 타격도 부상 전에는 꽤 좋았던 김혜성이었기에 아쉬움이 크다. 부상 복귀 후 타격에서 부진했지만,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선 홈런을 터트려주기도 했었기에 김혜성이 포스트시즌에서 대주자 한 번, 대수비 한 번으로 끝난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김혜성의 내년 시즌이 기대된다.
다저스의 제일 큰 문제는 구원투수진 붕괴
다저스의 제일 심각한 문제는 역시 붕괴된 구원투수진(불펜진)이었다. 마무리(클로저·closer)로 4년간 1000억원이 넘는 계약을 하고 데려온 태너 스캇은 정규시즌에서부터 두들겨 맞고, 포스트시즌 로스터(roster)에서도 빠지는 쓸모없는 ‘먹튀’ 신세가 됐다. 믿을 구원투수는 알렉스 베시아, 딱 한 사람만 남은 기가 막힌 처지였다. 그런 베시아조차 현재 공개하지 않는 ‘가정 문제’로 월드시리즈에서 빠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베시아가 좌완으로 원포인트 릴리프나 한 이닝을 책임질 수 있는 다저스의 유일한 구원투수이기 때문에, 그가 월드시리즈에 참여했었으면은 다저스가 조금 더 편하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운명의 신은 그를 월드시리즈에서 빼버렸고, 믿을 구원투수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로버츠는 선발투수들을 당겨서 쓰는 방식으로 버텼다.
사실 포스트시즌 내내 선발투수진을 불펜으로 기용했고, 구원진 중 가장 중요한 마무리투수에는 일본 선수인 사사키 로키를 등판시키면서 위기를 이겨냈다. 사사키도 원래 선발투수였는데, 구원진이 붕괴되니 응급책으로 마무리로 기용됐고 나름 훌륭히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로버츠는 어떤 경우에는 믿을 수 없는 좌완 앤서니 반다 같은 구원투수들을 기용했고, 기용할 때마다 얻어터지는 것이 되풀이되는 것을 방지하지 못했다. 일단 붕괴된 구원진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부터 생각을 해야 할 것 같고, 그리고 선수들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과감하게 다른 방식을 택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왔다.
로버츠 감독 어머니는 일본인
많은 이가 잘 모르는 사실은 로버츠가 일본에서 태어난 하프 일본계라는 것이다. 오키나와에서 미국 흑인 병사 부친과 일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모가 완전히 흑인이라 일본계임을 외모로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체구가 작아서 메이저리그 시절에도 타격보다는 과감한 주루 플레이로 명성을 얻었다. 아직도 유튜브에는 그가 보스턴 선수 시절에 했었던 전설적 주루 플레이가 올려져 있다.
로버츠가 김혜성을 끝까지 기용 안 했으면 “일본계인 그가 의도적으로 김혜성을 소외시켰다”라는 음해가 한국에서 성행했을 것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최종 7차전을 앞둔 훈련에서 로버츠가 김혜성을 1루에서 2루를 돌아 3루로 뛰게 하고 본인도 김혜성을 따라 하다가 넘어져서 다저스 선수들이 전부 웃는 일이 있었는데, 이 에피소드가 의도했건 안 했건 팀의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로버츠를 복장(福將)이라 한다. 다저스 구단이 대단한 이유 중 하나. 사실 로버츠는 그동안 해임 위기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구단에서 로버츠의 실수나 미숙한 점을 덮어주면서 계속 맡긴 결과로 이제는 과거와 차원이 다른 야구를 전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구단이 믿고 맡겨준 결과인데, 과연 로버츠가 진작에 해임됐다면 지금과 같은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을 듯하다. 로버츠가 과거 너무 뻔하고 도식적인 야구를 하고 미숙한 감독이었을 때 한국에서의 별명이 ‘돌버츠’였을 정도였다.
그러나 여하튼 로버츠는 경기를 통해서 익혀 나가는 장점이 있는 감독이다. 그래서 요번 월드시리즈도 6차전에서 정말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되자 마지못해 택했던 변화가 결국은 승리를 가져오는 요인이 됐다. 그래서 그를 복장 또는 운장(運將)이라고들 한다. 비록 요번 월드시리즈에서는 여러 실수를 했지만, 전체적으로 봐선 이제 현직 메이저리그 감독 중 손꼽히는 감독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한국 야구에서는 조금만 잘못해도 감독 자르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데, 로버츠의 경우를 보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근성의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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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7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 LA 다저스의 이도류 선수 쇼헤이 오타니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NLCS) 4차전 승리 후 MVP 트로피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여기서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일본 선수들의 투혼(鬪魂)이다. 오타니(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MVP), 그리고 마무리투수로 투입됐던 사사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연히 월드시리즈 MVP가 된 야마모토 요시노부의 경우 근성의 야구를 보여줬다. 세 사람 다 팀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야구를 보여준 것은 음미해 볼 만한 부분이 많다.
오타니와 야마모토는 매우 큰돈을 주고 장기 계약으로 데려온 선수들인데, 벌써 돈값을 다 한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리고 두 선수는 도인(道人)에 가까울 정도로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있다. 엄청난 부자인 두 사람 다 야구장의 휴지나 쓰레기를 줍는다. 좋은 일을 하면 복이 온다는 옛날식 가치관을 갖고 있다. 오타니는 부부가 다 소박한 삶을 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심지어는 오타니의 부모와 형제들도 예전처럼 일을 하고 오타니의 돈은 단 한 푼도 안 쓰기로 유명하다.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 처음 왔을 때 탄 차는 놀랍게도 현대 쏘나타였다.
야마모토 요시노부는 키 177cm에 날씬한 체격으로 메이저리그 투수로서는 물론이고 일반 야수로서도 아주 작고 왜소한 몸을 갖고 있다. 이것은 일본 리그에서조차 작은 키고, 다저스에 있어서도 전 선수 중에 김혜성과 더불어 가장 키가 작은 선수에 속한다. 그래서 두 선수가 가장 친한지도 모르겠다.
‘야마동원’ 야마모토
오타니는 재능과 체격을 갖고 태어났지만, 뼈를 깎는 노력과 자기 절제가 더해져 오늘에 다다랐다. 그런데 야마모토는 타고난 체격과 재능이 많이 모자라는데도, 이러한 악조건을 정말로 살인적인 노력으로 극복했다는 점이 더 인상적이다. 야마모토는 일본 프로리그에 입문할 때도 4라운드에 지명된 무명(無名) 선수였고, 누구도 그의 대성(大成)을 예측할 수 없었다. 그가 오타니보다도 더 열심히 노력한다는 계획을 갖고 정말 미친 듯이 연습해서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것은 야구팬들은 거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부르면 달려가서 몸이 으스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죽도록 뛰는 투혼을 보여줬다. 일본에 있을 때부터 그의 근성은 유명했다. 토론토 선수들의 투지는 정말 대단했는데, 야마모토의 투혼이 토론토 선수들 못지않았기 때문에 다저스는 기적 같은 승리를 갖고 올 수 있었다.
야마모토는 월드시리즈와 챔피언십시리즈에서 2연속 완투승을 거두었다. 선발-계투진-마무리투수로 분업화된 현대 야구에선 완투승이 희귀해졌고, 더군다나 총력전 체제인 포스트시즌에선 정말 드문 것이 완투승이다. 현재 다저스가 선발진이 오래 끌어줘야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불펜이 망가진 탓도 있지만, 야마모토의 투혼이 이런 진기록을 이끌어낸 것이다.
일본 선수들의 대활약을 보면서 일본 사회에는 아직도 ‘소명의식(召命意識)’이라는 미덕이 살아 있음을 재확인했다. 반면 한국에선 소명의식이나 명분은 구닥다리 얘기가 된 지 오래다.
최종전의 마지막 3이닝을 마무리하면서 야마모토는 한 해의 월드시리즈 3승이라고 하는 대기록도 세웠다. 그것도 바로 전날 선발투수 승리를 거두고 바로 다음 날 절체절명의 순간에 투수진이 고갈된 상황에서 9회에 구원 등판해서 연장 11회 말 승리까지 책임진 것은 만화에나 나올법한 얘기다. 마치 고(故) 최동원이 과거에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혼자 다 책임져서 롯데가 우승한 것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한국 야구팬들은 야마모토를 ‘야마동원’이라고도 부른다. 그가 요번 월드시리즈에서 이룬 위업은 야구사에 길이길이 기록될 전설이 됐다.
다저스는 새로운 ‘제국’이 될 수 있을까
앞에 언급한 애리조나와 뉴욕 양키스의 2001년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바로 전날 6차전의 선발 승리투수로 100구 이상을 던진 좌완 랜디 존슨이 8회 초에 2대1로 지고 있는 상황에 구원투수로 나와 역전승을 이끌고 애리조나의 창단 후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뤄내 길고 긴 양키스 ‘제국시대’를 종식시킨 것이 생각난다. 뉴욕 양키스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월드시리즈를 3연패했고 2001년도 이겼으면 4연패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사실 애리조나에선 마무리투수인 김병현이 나와야 했지만, 그가 전의 경기들에서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얻어맞아서 김병현 대신 선발투수인 존슨이 대신 나왔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요번 월드시리즈 7차전은 2001년 당시의 데자뷔처럼 보이기도 했다.
뉴욕 양키스가 20여 년 전에 했던 월드시리즈 연패(連霸)를 다저스가 했는데, 과연 다저스는 당시 조 토레 감독이 이끄는 양키스만큼이나 강한가? 월드시리즈 3연패를 점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게 쉽게 될까? 새로운 ‘제국’으로 평가될 수 있을까?
그런데 다저스는 팀으로서는 보완해야 될 점이 너무 많은 듯 보인다. 로버츠 감독의 경기 운영 방식도 좀 전에 지적했듯이 아직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 당시의 양키스와 같은 제국의 위치는 아니다.
다저스의 강점은 선수층이 두껍고, 마이너리그 팜 시스템(farm system)이 제일 좋으니 선수 수급이 원활하고 돈이 많은 부자구단이라는 점이다.
선발투수진은 워낙 막강하지만, 사실 시즌 초중반에는 거의 전원이 부상 때문에 역할을 하지 못했다. 마침 이들이 부상에서 돌아와 만개하는 시간이 포스트시즌이었던 행운이 따랐고, 타이밍을 포스트시즌에 맞춰서 선발투수진을 조율한 마크 프라이어 다저스 투수코치의 공도 크다. 다저스의 상징이었던 대투수 클레이튼 커쇼가 은퇴하니 그의 공백을 채워야 하고, 부상이 많은 섹션이 선발투수진이니 내년에는 새로운 구상을 해야 한다.
불펜진은 언급했듯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보완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요번에 땜빵 클로저 역할을 한 사사키는 원래 일본에서부터도 유명한 ‘유리 몸’이기 때문에 꾸준함과 강철 신체가 요구되는 선발보다는 한 번에 승부를 결정짓는 마무리투수가 더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무리에서 전력투구를 하면 강력한 투구를 보여주고 있다. 여하튼 마이너 유망주를 끌어올리든, 풍부한 자금력으로 영리한 외부 영입을 하든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
다저스의 포수들
포수는 다년 고액 계약을 한 윌 스미스가 완성형 포수로서 존재한다. 포수로서 공수가 조화된 드문 유형인데, 타격에서도 리그 수위타자를 넘볼 만한 능력이 있고 홈런도 잘 때리는 펀치력도 있다. 수비 능력도 뛰어나다. 투수 리드, 그리고 도루 저지 능력에 있어서도 일가견을 갖고 있다. 성품도 침착하고 온순한 성격이라 팀원들과도 잘 소통하는 그야말로 이상형 모범생 포수. 나이도 많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메이저리그를 대표할 포수로서, 특히 공수겸장(攻守兼掌) 포수로서 군림할 가능성이 크다. 요번 포스트시즌에서 부상 중임에도 그의 위력을 충분히 보여줬고, 결국 월드시리즈의 결승 홈런도 그가 때렸다.
백업 포수인 달튼 러싱은 대형 포수감인데 올 시즌 막판 부상으로 기량을 제대로 발휘 못 했고, 수비는 좋으나 공격력에서 미흡한 점을 보였다.
그런데 다저스는 위의 두 포수가 부상을 당하자 무명인 벤 로트베트를 마이너리그에서 끌어올렸다. 사실 다저스가 로트베트를 마이너리그에 둔 이유는 메이저리그 포수들이 전부 문제가 생겼을 때 콜업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기 위해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는 급의 포수를 쟁여둔 의미가 컸다.
그만큼 다저스는 자금력이 뛰어나고, 그 자금력으로 좋은 백업 포수를 마이너에 두는 전략 또한 이번에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정규시즌 말엽과 포스트시즌에서 작지 않은 부상을 당한 두 포수를 대신해 공수에서 전부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특히 투수 리드에 있어서는 출중한 능력을 보였다. 의외의 공격력도 보여줬다. 앞으로도 기대되는 포수로 메이저리그 어느 팀에서건 제2 포수로서 활약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다저스는 일단 이 세 포수로 2026년 시즌 안방을 책임지게 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11월 13일 LA 다저스는 “포수 벤 로트베트가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했다”고 발표했다. 다저스가 누구를 백업 포수로 충원할 지가 궁금하다.
토니 ‘현수’ 에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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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다저스의 2루수 한국계 ‘현수’ 에드먼. |
1루수 프레디 프리먼도 역시 MVP 출신으로 공수가 다 좋은 스타다. 1루수로서는 더 이상 수비가 좋을 수 없을 정도고 인성과 리더십까지 갖춘 선수다. 여기에 펀치력과 클러치(결정타) 능력까지 있다. 팀 내에서는 아무도 프리먼에게 들이댈 선수가 없다. 커쇼에게도 물론 들이댈 선수가 없었다. 둘 다 실력과 인품, 그리고 관록으로 압도하기 때문이다. 다저스가 기강 있고 분위기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다.
2루수에는 여러 선수를 기용했는데 한국계인 토니 ‘현수’ 에드먼은 무키 베츠에 버금가는 ‘야구 도사’ 스타일이다. 모친이 한국인이어서 WBC에서 한국 대표팀으로도 뛰었다. 공수주가 다 빼어나며 성실하다. 그리고 스탠퍼드대 컴퓨터 사이언스 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높은 IQ와 함께 높은 야구 지능까지 겸비한 선수로 역시 체격이 작은 편인데도 못 하는 것이 없다. 홈런도 곧잘 쳐내며 외야 수비까지 가능한 멀티플레이어로 그야말로 전천후 선수인데, 이번 시즌은 부상으로 많이 출전하지는 못했고, 포스트시즌에서도 발목 부상 때문에 결장하거나 부분 출전을 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공수에서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에드먼은 스위치 타자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왼손 투수에게는 오른쪽 타석에서 아주 잘 쳐줬지만, 오른손 투수일 때 왼쪽에서 치는 것은 그다지 빼어나지 않은 결점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결점도 거의 없어졌다. 그가 왼손 타자와 상대할 때는 베이브 루스처럼 친다고 하는 미국 캐스터의 칭찬이 있을 정도였다. 작년 챔피언스시리즈 MVP이기도 했다. 역시 인성과 리더십이 빼어난 모범생 스타일로 다저스가 팀워크가 좋은 강호가 되는 데에 역할을 하는 선수다.
3루수 맥스 먼시는 한국 프로야구(KBO)에서 뛸 뻔한 적이 있을 정도로 메이저리그에서 밀려났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다저스에서 재기해 자신의 야구 전성기를 펼쳐나가고 있다. 올해는 여러 부상으로 큰 역할을 하지는 못했지만, 자기 몫은 해내는 선수고 당당한 체구에 펀치력이 뛰어나다.
불펜도 문제지만 외야 또한 불펜만큼 심한 다저스의 약한 부분이다. 우익수 테오스카 에르난데스는 공격력은 좋으나 수비력에 문제가 있어서 중요한 순간에는 대수비를 쓸 정도다. 그리고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불성실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중견수 파헤스는 이미 언급했듯이 포스트시즌의 바닥 없는 침체에서 벗어나야 하는 과제가 있다. 젊고 타고난 야구 능력이 있는 선수이기에 재기할 가능성이 있다. 파헤스가 부진하거나 부상일 경우 에드먼이 요번 최종전처럼 나서줄 수는 있는데, 파헤스를 보완할 중견수 추가 요원이 필요하다.
좌익수는 다저스의 큰 구멍이다. 큰돈을 주고 데려온 마이클 콘포토가 그야말로 먹튀 수준의 실패작이었다. 1할대 타율에 수비도 불안해 포스트시즌에서는 아예 명단에서 제외됐고, 그 공백을 여러 선수가 메워야 했다. ‘10월의 사나이’ 키케 에르난데스가 포스트시즌에서 좌익수를 봤지만 (그는 먼시 대신 3루수를 보기도 한 멀티플레이어), 키케는 정규시즌에서는 타격에서 주전으로 쓸 수 없을 정도로 부진한 선수라서 역시 좌익수를 새로 충원해야 한다.
김혜성, 내년에는 더 자주 볼 수 있을 듯
이러한 다저스에서 김혜성의 위치는 어떠한가? 정규시즌 중에 에드먼이 부상일 때 2루수로 나와 공수에서 역할을 잘 해줬다. 한데 김혜성도 중간에 어깨 부상을 당해 재활 기간이 길었다. 그리고 부상에서 복귀하고 나서는 타격에서 극심한 부진을 보여 눈도장을 찍는 데 실패했다. 대수비와 대주자로서의 가치가 크기 때문에 월드시리즈까지 계속 로스터에는 올라갔다.
그러나 올해가 첫해라, 아직 큰 경기에 투입하는 건, 특히 타격에 투입하는 건 조심스럽다는 게 로버츠의 판단이었다. 무서운 주루 능력과 훌륭한 수비 능력, 그리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작은 체격에도 잘 때려주기에 그의 활용 가치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그는 2루수, 유격수, 중견수를 다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멀티플레이어다. 메이저리그에선 아직 중견수로 뛸 기회가 없었지만, 로버츠는 내년에 그를 중견수로 기용하는 실험을 할 것이다. 그러고는 내외야에서 구멍이 생길 경우엔 즉각 투입할 수 있는 대체요원으로 적극 활용할 것이다. 내년에는 김혜성을 더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다.
드라마 같은 올해 월드시리즈가 끝나고 메이저리그는 내년을 준비 중이다. 과연 다저스는 꿈의 월드시리즈 3연패를 이룰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시애틀, 디트로이트, 밀워키, 캔자스시티 같은 스몰마켓(small market) 언더독들이 꿈을 이룰 것인지, 토론토가 와신상담 재도전을 할 것인지, 아니면 뉴욕 양키스 같은 전통의 명문 팀이 권토중래(捲土重來)할 것인지, 흥미진진하다.
‘돈 매팅리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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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매팅리 토론토 코치. 전 다저스 감독. 사진=게티이미지 |
매팅리는 뉴욕 양키스의 간판타자로 오래 활동했는데, 그가 맹활약을 해도 양키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은커녕 진출도 못 했다. 그가 양키스에서 활동을 시작하기 직전과 은퇴 직후에 양키스는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그가 양키스의 타격코치일 때도 양키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 했고, 류현진이 LA 다저스 선수 시절 매팅리가 다저스 감독이었을 때도 물론 월드시리즈 진출을 못 했다. 마이애미에서 7년간 감독을 할 때는 월드시리즈는커녕 포스트시즌 진출조차 단 한 번뿐이었다. 토론토의 코치(한국인들은 그를 감독에서 코치로 강등된 것이라 표현하는데 메이저리그에선 흔히 있는 일이다)로서도 월드시리즈 진출을 못 하다가 올해야 드디어 대망의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는데, “매팅리의 저주 때문에 토론토가 질 것이다”라는 농담이 돌았고, 진짜 토론토는 아깝게 패배했다. ‘매팅리를 해임해야 토론토가 우승한다’는 농담도 그 후 있었는데, 며칠 전 매팅리는 진짜 자진 사임을 발표했다. 그 지독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밤비노의 저주’, 시카고 컵스의 ‘염소의 저주’조차 풀렸는데, 매팅리의 저주는 결국 풀리지 않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