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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르포

'디프로그래밍 프로젝트'를 아십니까

고토 도루 씨의 잃어버린 12년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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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내에서 ‘종교 버리라’며 납치 감금된 신자 4300명… 지금도 진행 중인 ‘디프로그래밍’
⊙ 트럼프 美 대통령의 종교고문 폴라 화이트 목사, “미국 정부와 유엔이 일본 정부의 종교 자유 침해를 우려하고 있다”
⊙ “유엔 종교자유 특별보고관이 침해 실태 조사 위해 2024년 3월 공식 訪日 요청했지만 정부가 거부”
2024년 12월 8일 도쿄 신주쿠역 주변에서 ‘디프로그래밍 프로젝트’ 반대 시위가 열렸다.
  1638년 가톨릭 사제 3명이 포르투갈에서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밀입국한다. 당시 에도(江戶·지금 도쿄) 막부는 외래 종교인 가톨릭을 탄압했다. 이들은 기독교도들을 색출하고 배교(背敎)를 강요하기 위해 고문하고 죽였다. 배교 후에는 더 이상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예수가 그려진 동판화 그림을 발로 밟게 했다. ‘후미에(踏み繪)’다. 로드리고 신부는 일본인 신자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배교를 결심하고 예수의 그림을 밟는다.
 
 
  아베 암살
 
  로드리고 신부의 영적(靈的) 전쟁은 엔도 슈샤쿠(遠藤周作)의 소설 《침묵》에 잘 그려져 있다. 실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쓴 일본 종교소설의 백미다. 엔도 슈샤쿠는 태평양전쟁 기간 동안 기독교 신자라는 이유로 일본인이 아닌 것처럼 백안시(白眼視)당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외래 종교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러한 전체주의적인 거부감은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되살아나는 게 아닐까.
 
  400년 가까이 흐른 지금의 일본은 어떨까? 2022년 7월 8일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피살당했다. 비난의 화살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향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다. 흔히 ‘통일교’로 알려져 있다(이하 ‘통일교’ ‘가정연합’ 혼용). 사건 직후 일본 언론은 암살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山上徹也)가 통일교에 반감을 품고 아베 총리를 공격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기시다 정권은 통일교에 대한 법인해산명령을 법원에 청구했다. 법인 해산이 확정되면 법인이 소유한 재산은 모두 청산되고, 회수된 돈은 피해자들에게 배분된다.
 
  일본에서 종교법인이 해산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옴진리교(1996년 해산)와 묘카쿠지(明覺寺·2002년)가 해산된 적이 있다. 옴진리교는 1995년 도쿄 지하철에서 사린가스 테러라는 어마어마한 짓을 저질렀다. 묘카쿠지는 교단 간부들이 여러 건의 사기사건을 일으켰다. 두 사례 모두 형사사건에 연루된 경우다. 그러나 통일교는 단 한 건의 형사사건에도 연루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문제 삼은 건 고액 헌금 등 민사재판뿐이다.
 
  기시다 총리는 2024년 8월 사임했다. 지지율이 10%대로 급락한 후 올라갈 기미가 안 보였다. 그 결과 두 달 만인 10월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취임했다. 통일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기조에는 아직 변화가 없다. 통일교 해산명령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12년 5개월
 
12년 5개월 동안의 납치 감금에서 풀려난 직후인 2008년의 고토 도루 대표. 키 182cm에 45kg이었다. 사진=전국납치감금·강제개종피해자모임
  2024년 12월 8일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 한복판에서 시위가 열렸다. 신주쿠는 도쿄 중앙에 있다. 서울로 치면 강남이나 용산역 부근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신주쿠역 광장에 가정연합 신도 250여 명이 모였다. “일본 정부의 해산명령은 부당하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라.” 이들은 신주쿠역 주변을 돌면서 알렸다.
 
  기자는 현장에서 이들과 주변의 모습을 지켜봤다. 통일교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일본인들의 복잡한 시선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들의 주장을 유심히 듣는 이들도 있었고,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이 현장에 고토 도루(後藤徹·60)씨가 있었다. 그는 전국 납치감금·강제개종피해자모임 대표다. 여기서 말하는 납치감금·강제개종을 일본에선 ‘디프로그래밍(deprogramming)’이라 부른다. 누군가가 갖고 있는 특정한 신념이나 종교를 버리게 하기 위한 행위를 뜻한다.
 
  고토씨는 디프로그래밍에 청춘을 빼앗겼다. 31세에 감금돼 44세까지 집 안에 갇혀 있었다. 1995년 9월부터 2008년 2월까지 12년 5개월간이다. 그를 감금한 건 가족, 그리고 탈회(脫會)지도 전문가였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던 그는 4학년 때 통일교를 믿게 됐다. 먼저 믿고 있던 형이 동생 도루와 여동생을 함께 전도했다. 가족들은 통일교를 믿지 말라며 3남매를 감금했다. 이때 형은 종교를 버렸지만, 도루는 한 달간 감금되어 있는 동안 신념을 바꾸지 않았다. 한 달 후 풀려났지만, 몇 년 후 이번엔 형이 그와 여동생을 감금했다.
 
  어디에 위치한지도 모르는 빌라로 데려가 문과 창문에 잠금장치를 달고 가뒀다. 탈회 전문가들과 가족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에도시대 ‘후미에’와 같은 행위를 강요했다. 여동생은 중간에 ‘탈회’, 즉 통일교를 믿지 않기로 했지만 고토씨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의 저항은 12년 5개월간 이어졌다. 결국 두 손을 든 건 가족들이었다. 44세가 된 차남을 풀어줬다. 풀려날 당시 키 182cm인 그의 몸무게는 45kg밖에 나가지 않았다. 영양과 운동부족 때문이었다.
 
  풀려나자 가족들로부터 탈출한 그는 납치 감금으로 인한 인권 피해를 고발하기 시작했다. 형 부부와 여동생, 탈회 전문가 등을 상대로 소송도 제기했다. 2014년 도쿄지법은 피고들이 고토씨에게 약 490만엔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2015년에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고토씨가 승소한 후 디프로그래밍 사례는 줄어들었다고 한다. 고토씨에게 디프로그래밍 경험을 물었다.
 
  ― 12년 5개월을 어떻게 견뎠나요?
 
  “이전에 한 차례 감금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 감금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교리를 암기했고, 그걸 떠올리며 견뎠습니다.”
 

  ― 감금에서 벗어난 후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진 않았나요?
 
  “지금도 사람 발소리가 들리면 깜짝 놀라곤 합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찾아와 교회 관련 욕과 비판을 끊임없이 하던 기억 때문입니다.”
 
  ― 가족과 탈회 전문가가 함께 디프로그래밍을 한 건가요?
 
  “그렇습니다. 탈출 후에 소송을 하면서 조사가 진행됐는데, 저희 가족이 탈회 전문가들에게 건넨 디프로그래밍 비용이 1억엔(약 10억원) 이상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돈으로 뭘 했는지 의문입니다.”
 
 
  ‘탈회 전문가’
 
고토 도루 전국납치감금·강제개종피해자모임 대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제공
  ― 디프로그래밍 피해자 수는 얼마나 되나요?
 
  “1960년대부터 납치 감금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4300건 정도 일어났습니다.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사는 여성이 잠깐 일본의 친정에 다니러 왔다가 감금을 당한 경우도 많습니다. 진심으로 탈회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혼인무효, 이혼소송을 내라고 강요합니다. 교단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내라고 강요하기도 합니다. 2024년에도 1명의 피해자가 확인됐습니다. 20대 남성입니다.”
 
  ― 탈회했다가 다시 돌아온 신자도 있나요?
 
  “있긴 하지만 많진 않습니다. 감금된 채 교회 관련 욕과 비판을 계속 들으면 정신이 이상해질 정도로 혼란이 옵니다. 그렇게 서너 달을 보내면 ‘통일교는 악한 단체다’ ‘문선명은 악마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 통일교가 아닌 다른 종교의 신자도 이런 피해를 당하나요?
 
  “다른 종교의 신자가 일본에서 납치감금을 당한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 전문적으로 디프로그래밍을 하는 이른바 탈회 전문가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기독교 목사만 해도 100여 명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이 있지요. 일본 기독교는 좌익 사상에 물들어 있어요. 통일교는 일본에서 공산주의와 싸워왔습니다. ‘승공(勝共)운동’이라고 하지요. 이렇게 이데올로기가 분명한 종교도 잘 없을 겁니다. 통일교가 강렬하게 공산주의와 싸워왔기 때문에 좌익의 타깃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기독교 목사들이 통일교 신자들의 디프로그래밍에 나선 이유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는 기독교 역시 소수종교다. 일본의 기독교 신자는 전체 인구의 1%가 안 된다. 이렇게 기독교 신자 수가 적은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 중 일본이 거의 유일하다.
 
 
  “법률적 견지에서만 판결 이뤄지지 않을 수도”
 
나카야마 다쓰키 변호사.
  ― 만약 통일교가 최종적으로 종교법인 해산명령을 받는다면 신자들은 어떤 영향을 받나요.
 
  “일반인들에게 옴진리교처럼 인식될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렇게 되면 신자들이 또다시 가족에 의해 감금될 위협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가정연합 해산 청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 재판에서 가정연합의 변호를 맡고 있는 나카야마 다쓰키 변호사를 도쿄에서 만나 승소 가능성을 물었다. 그의 답이다.
 
  “법률적으로 봐선 (가정연합 측이) 99% 승소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2년 동안 정부와 가정연합 사이 재판이 진행돼 온 모습을 보면, 최종판단이 반드시 법률적 견지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입니다. 국가가 원고(原告)인 소송에서 국가가 이긴 전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관들이 국가 방침에 어긋나는 판결 하기를 두려워한다고 할까요. 이런 정황을 감안하면 승소 가능성은 50%라고 봅니다.”
 
  일각에선 이시바 시게루 현 총리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것도 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측한다. 어릴 때부터 기독교 친화적인 환경에서 자란 이시바 총리는 집안으로 보면 4대째 기독교를 믿고 있다.
 
 
  “日 종교자유 침해, 전 세계가 우려”
 
다나카 도미히로 일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회장.
  신주쿠에서 시위가 있던 날, 도쿄에서는 종교 자유에 대한 행사가 하나 더 열렸다. ICRF(국제종교자유연맹) 일본위원회가 연 순회강연회였다. 〈일본의 종교 자유와 민주주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종교 자유 침해 문제를 논하는 자리였다.
 
  먼저 미국의 폴라 화이트(Paula White) 목사가 영상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화이트 목사는 전미신앙자문위원회 회장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종교 자문위원이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서 여성 목사로서는 최초로 개회사를 하기도 했다. 한국도 여러 번 방문했다. 화이트 목사는 “미국 정부와 유엔이 일본의 종교 자유 침해를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 국무부 국제종교자유실은 2022년과 2023년에 낸 보고서에서 일본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의문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미 국무부 보고서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했다. 2022년 보고서는 “아베 전 총리 암살 이후 일본에서 가정연합이 차별·박해받으며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3년에는 “가정연합이 형사법을 위반하지 않았는데도 일본 정부가 법인 해산을 청구한 것은 지금까지의 규범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화이트 목사는 “나질라 가네아 유엔 종교자유 특별보고관이 가정연합과 여호와의증인 등 소수종교에 대한 종교 자유 침해를 조사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 공식 방문을 요청했지만, 일본 정부가 거부했다. 미국인들은 일본의 언론과 정부가 정보를 은폐하고 국민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에 우려하고 있다”며 “미국의 정부 각료들과 여러 전현직 정치인들이 일본 정부에 서한을 보냈다. 일본의 종교 자유 문제를 두고 전 세계가 우려하고 있다”고 영상 메시지를 마무리했다.
 
 
  탈퇴한 교인이 逆소송도
 
마르코 레스핀티 기자.
  뒤이어 이탈리아 언론인 마르코 레스핀티(Marco Respinti)가 강연을 했다. 레스핀티는 중국 내 종교 박해, 러시아의 종교 탄압 등 국제적으로 벌어지는 종교 자유 침해 문제를 취재해 왔다. 종교 자유 침해 문제를 다루는 온라인 언론 ‘비터윈터(Bitter Winter)’의 이사이기도 하다.
 
  레스핀티는 “아베 전 총리를 암살한 야마가미도, 아베 전 총리도, 누구도 통일교 신자가 아니었다”며 오히려 “야마가미가 암살 전 몇 년 동안 반(反)컬트 인터넷 포럼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그의 약한 마음을 자극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컬트란, 통일교나 여호와의증인 같은 소수종교를 ‘컬트(이단)’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걸 뜻한다. 레스핀티는 그러면서 “일본 정부의 가정연합에 대한 해산명령 청구는 중대한 인권 억압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근거로 ‘뒤발 보고서’를 들었다.
 
  뒤발 보고서는 국제인권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프랑스의 파트리샤 뒤발(Patricia Duval) 변호사가 작성해 2024년 9월 유엔에 제출한, 〈일본: 통일교회를 없애기 위한 마녀사냥〉이란 제목의 보고서다. 뒤발 변호사는 과거 가정연합의 회원들이 납치 감금되어 디프로그래밍된 상황을 지적했다. 보고서를 보면 유엔이 일본에서 일어난 종교 박해 문제를 심각하게 다뤄왔다는 걸 알 수 있다. 고토 도루씨를 비롯한 디프로그래밍 피해자들의 문제가 불거지던 무렵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일본 정부에 디프로그래밍 등 인권 침해 행위를 중단시키라고 권고했다.
 
  납치 감금은 줄었지만, 대신에 탈회한 가정연합 회원들이 가정연합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일어났다. 통일교의 문제점을 고발하기 위해 1987년 일본에서 조직된 전국변련〔전국영감상법(靈感商法·종교나 미신 등을 내세운 상술)대책변호사연락회〕이 이들의 뒤에 있었다. 이들은 탈회한 회원이 소송을 거부하면 완전히 디프로그래밍되지 않았다며 다시 구금하기도 했다. 그 결과 가정연합에 대한 민사상 불법행위 배상 소송이 늘어났다. 이 민사소송도 일본 정부가 법인 해산을 청구하는 근거가 됐다.
 
 
  “日정부 태도는 국제 ‘자유권 규약’ 위반”
 
  뒤발 변호사는 보고서에서 이런 소송 제기는 교회를 파괴하기 위한 행위이며, 종교의 자유에 관한 국제 원칙을 위반하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은 ‘자유권 규약’이라 불리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 규약 제18조는 종교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제18조 1항.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스스로 선택하는 종교나 신념을 가지거나 받아들일 자유와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공적 또는 사적으로 예배, 의식, 행사 및 선교에 의하여 그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2항. 어느 누구도 스스로 선택하는 종교나 신념을 가지거나 받아들일 자유를 침해하게 될 강제를 받지 아니한다.
 
  3항. 자신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는, 법률에 규정되고 공공의 안전, 질서, 공중보건, 도덕 또는 타인의 기본적 권리 및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받을 수 있다.
 
  4항. 이 규약의 당사국은 부모 또는 경우에 따라 법정 후견인이 그들의 신념에 따라 자녀의 종교적, 도덕적 교육을 확보할 자유를 존중할 것을 약속한다.〉

 

  3항을 보면 종교 표명은 ‘법률로써,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뒤발 변호사는 목록에 명시되지 않은 그 밖의 사유로는 종교 제한이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범죄外 이유로 종교 탄압, 나쁜 선례 될 수 있어”
 
  강연회가 끝난 후 다시 레스핀티를 만나 물었다.
 
  ― 일본 정부의 이번 사례처럼 형사재판 없이 종교법인을 해산한 사례가 다른 나라에 있나요?
 
  “제가 알기로는 민주 국가에서는 없었습니다. 일본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이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선례가 생기면 다른 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요?
 
  “나라들은 다른 나라를 보면서 따라 하는 경향이 있어요. ‘일본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서 다른 나라도 똑같이 종교단체에 해산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거예요. 특히 일본 정부의 해산명령 청구는 사실을 근거로 하지 않은 정치적인 결정입니다. 독재 국가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게 일어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는 민주 국가라 할 수 없습니다.”
 
  ― 이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뭔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꽤 보수적인 로마 가톨릭 신자예요. 다른 종교들도 이 문제에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2가지입니다. 첫째, 그들이 어려울 때 도와주지 않으면 내가 어려울 때 그들이 나를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둘째, 하느님을 믿을 때는 아무런 강제 없이 자유롭게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에도 막부 시대 일본에서 벌어졌던 종교 박해 ‘후미에’가 21세기 일본에서 ‘디프로그래밍’과 정부의 ‘종교법인 해산명령 청구’로 재현되고 있다. 강연 마지막에 레스핀티가 소개한, 독일 목사 마르틴 니묄러(Martin Niemller)의 시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내게 왔을 때……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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