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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 토로

김정은 제거 등 ‘박근혜 통일 프로젝트’ 동참했던 민간인 조기철

“국정원, 親 문재인 인사로 채워지더니 스탠딩 오더 상태인 나를 버리더라”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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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조선》 보도 보고 자신이 ‘김정은 제거’ 등 최고 등급 작전에 투입됐다 확신
⊙ 나 때문에 공안의 구속 수사까지 받은 지인들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
⊙ 국정원 자금→조기철 운영 회사→나스카상무유한공사(국정원 자금 설립)→북한 내 反김정은 혁명조직
⊙ 작전 실무진 한○○는 국정원 내 대북파트 에이스… 문재인 정권 들어 한직으로 좌천됐다더라
⊙ 스탠딩 오더 사실에 충격, 국정원에 신변보호 요청했더니 “경찰에 연락하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함구하라더라”
⊙ 자의든 타의든 국가 위해 일하다 목숨 위협받는 신세 됐는데, 文 대통령은 내 호소 편지에 아무 답 없어
⊙ 현 국정원에 하소연하면 前 정권 작전이라 우린 상관없다며 일축
북한 내 반김정은 세력 지원한 ‘박근혜 통일프로젝트’에 동참했던 민간인 조기철씨. 스탠딩 오더 상태라 그의 얼굴은 공개하지 않는다. 사진=《월간조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통일을 꿈꿨다. 김정은 정권이 붕괴하면 새로운 세력과 협상을 통해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핵심 측근들이 말한 바로는 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 고위 관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통일만큼 중요한 과제는 없습니다. 북한과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북한 인민의 인권과 삶의 질(質)을 높여주는 일만큼 같은 민족으로서 보람찬 의무도 없지요. 그래서 말인데 김정은 체제 붕괴를 앞당길 방법이 없을까요?”
 
  그렇게 ‘박근혜의 통일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프로젝트에는 국정원이 북한 내 반(反)김정은 세력을 지원하는 내용도 있었다. 이 세력은 ‘김정은 제거’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월간조선》은 2018년 6월호의 “북한판 10·26을 계획한 北 내부 혁명조직과 국정원”이란 제하의 기사를 통해 당시 상황을 특종 보도했다. 당시 보도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반대 세력은 ‘소설’로 치부했다. 그러나 이 보도가 사실이란 것은 《월간조선》 2018년 10월호의 “이병호를 체포해 ‘공화국으로 넘겨라’고 한 北, 이유는?”이란 기사를 통해 재확인됐다.
 
  청와대에 국정원장 특수활동비를 상납해 국고를 손실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던 이병호 국정원장(2015년 3월~2017년 6월 재임)은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보충서’에서 다음과 같이 ‘북한 혁명 조직 지원’ 사실을 밝혔다.
 
  “그건 비밀이기 때문에 제가 전모(全貌)를 말할 수는 없어요. 정보기관은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군대와는 달라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남북의 정보전에서 북한을 뒤흔들고 압박해야 하는 겁니다. 북한 내부에서도 자유사회의 문화나 정보가 들어가면서 주민들이 달라졌어요. 김정은 독재에 반발하는 기류가 생긴 거죠. 국정원이 그를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건 당연합니다. 자생적인 그런 저항집단에 돈을 주고 여건도 만들어주었는데 그런 시도가 중간에서 발각되는 바람에 제가 북의 최고 존엄의 생명을 해치려는 테러리스트가 되고 김정은이 저를 지구 끝까지 따라가서 죽이겠다고 한 거죠.”
 
  보도 후 3년이 지났다. ‘박근혜의 통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민간인 조기철씨가 《월간조선》을 찾아왔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이 자신을 버렸다”면서 말이다. 2017년 5월 북한은 ‘미 중앙정보국 조직자들과 남조선 전 국정원 원장 이병호, 국정원 팀장 한가놈(한모씨), 국정원 요원 조기철, 나스카상무유한공사 사장 허광해,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도희윤 놈들은 마땅히 공화국 형법에 의하여 가장 무거운 형사책임을 져야 할 대상들’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국정원 직원이라고 나온 조기철씨가 인터뷰이인 조씨다. 그와 며칠에 걸쳐 많은 이야기를 나눈 이유다.
 
 
  일반인이 국정원 비밀작전에 동참한 이유
 
  ― 정체가 뭡니까.
 
  “사업가죠. 일반 사업가. 2000년 ‘야미’라는 애니메이션 전문 기업을 운영하면서 남북합작 애니메이션 사업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실패했는데 2008년 (주)유○○○ 인수의 참여를 계기로 2011년 전문 토목회사인 (주)디○을 인수하여 경영자로 재기했습니다. 2012년에는 소액주주 대표로 ㈜엔○○○○ 대표이사를 맡아 회사를 상장폐지로 몰고 간 사람들을 응징하기도 했습니다. 또 중국에서 여러 사업을 하면서, 그 일이 있기까지 나름 잘살고 있었죠.”
 
  ― 그 일이라는 게 ‘박근혜 통일 프로젝트’를 말하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 일반인이 국정원의 비밀작전에 왜 동참한 겁니까.
 
  “제가 2000년 남북합작 애니메이션 사업에 뛰어든 것은 북한 고위 당국자인 김 회장이란 사람을 소개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정원에서 저에게 이 김 회장을 통해서 북한 측 동정을 살피고 싶다고 요청을 해왔습니다. 국정원 특보와 정무차관을 지내신 당숙(조만후)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죠. 당숙께서 ‘국가를 위해 국정원을 도와주라’고 했죠. 그래서 돕기로 했는데 당시 제 담당관이 ‘한○○’이었습니다. 김 회장을 통해 북한의 고급 정보를 국정원에 전달했는데, 제 애니메이션 사업이 잘 안됐고 김 회장과도 연락이 끊겼죠. 그래도 ‘한○○’와는 그때 맺은 인연으로 이후 가끔 술도 마시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가장 힘들 때라 저를 챙겨주던 ‘한○○’에게 고마움을 많이 느꼈죠. 그런 ‘한○○’가 2016년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더군요.”
 
  ― 무슨 도움을?
 
  “북한 내 친한 인사들(북한 내 혁명조직)의 안정적인 수입 제공과 연락 유지를 위해 중국에 임가공 회사를 설립, 운영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 임가공 회사를 통해 ‘돈세탁’을 한 뒤 북한 내 혁명조직에 자금을 지원하는 작전에 투입된 것이네요.
 
  “그렇죠. 그래서 제가 아끼던 중국동포 후배인 허광해를 통해 ‘나스카상무유한공사’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북한의 박학림이라는 사람을 만나 임가공 계약을 하고 소위 국정원 자금을 세탁해 북한으로 보냈죠.”
 
 
  《월간조선》 보도 후 자신이 북한판 10·26 세력 지원 작전에 투입된 것 알게 돼
 
나스카상무유한공사 사업자 등록증(왼쪽)과 북한 박학림과 비밀리에 접촉하기 위해 단둥의 주요 식당에 비치해 놓은 암호가 담긴 명함(오른쪽). 사진=조기철씨 제공
  ― ‘나스카상무유한공사’는 어떤 자금으로 설립, 운영했습니까.
 
  “국정원 자금으로 했죠.”
 
  ― 위험한 작전인 줄 알았나요.
 
  “실질적으로는 대북사업을 하는 것이니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또 제가 너무 힘들 때 옆에 있어 줬던 한○○가 16년 만에 처음으로 도움을 요청한 것이기도 해서….”
 
  ― 이 일이 ‘김정은 암살’까지도 바라본 작전인지는 언제 알았습니까.
 
  “한국으로 귀국한 뒤인 2017년 6월 말 일본 언론(《아사히신문》)에서 비슷한 보도를 해 긴가민가하고 있었는데, 《월간조선》이 ‘북한판 10·26을 계획한 北 내부 혁명조직과 국정원’이란 보도를 하면서 확신을 갖게 됐죠.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작전의 실체를 인정했으니까요. 국정원에 확인하니 ‘알면서 뭘 묻느냐’고 하더군요.”
 
  ― 북한의 박학림은 누굽니까.
 
  “한○○는 저에게 박학림은 우리(국정원)가 도와줘야 하는 북한 팀 중 한 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의 고위층 자제라고 했죠. 사업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 허광해(나스카상무유한공사 대표)와 김해동(나스카상무유한공사 이사)이 하나하나 가르쳤죠.”
 
  조씨가 말을 이었다.
 
  “저는 한국인이라 북한 사람인 박학림을 만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허광해와 박학림을 만나게 해줬는데, ‘007작전’ 같았습니다. 북한 사람이 많이 다니는 단둥의 식당과 상점 몇 군데에 허광해의 연락처를 광고물처럼 위장해 비치해 놓으면 그것을 보고 박학림이 연락하는 방식이었죠. 단둥에서 발간하는 《메아리》라는 잡지를 통해 박학림에게 암호화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고요.”
 
 
  조기철이 만난 北 고위급 자제 박학림
 
  ― 박학림을 직접 만난 적이 있습니까.
 
  “2017년 4월 단둥 완다호텔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이때 한○○가 박학림에게 전해 달라는 미화 4만 달러 등을 전달했죠. 그날 박학림이 기념사진을 찍자고 해서 찍기도 했습니다. 국정원에서는 고위급 자제인데다가 아주 스마트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제가 느끼기에는 그다지 스마트하지 않았습니다.”
 
  ― ‘나스카상무유한공사’ 대표 허광해는 어떤 인물입니까.
 
  “친동생이라 할 만큼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이 사건에 휘말려 상황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 김해동은?
 
  “허광해의 고향 친구로 대북사업을 하는 중국동포였습니다. 2010년부터 북한과 일을 했죠. 북한 신의주에서 ‘붉은별’이라는 액세서리 가공 공장과 인조보석 가공 공장을 운영했습니다. 돈을 꽤 번 친구였죠. 허광해가 도와달라고 하여 이 작전에 투입됐는데, 두 사람(허광해와 김해동)은 작전이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죠. 진짜 대북사업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은 박학림을 소위 물주의 친척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국정원이 작전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두 사람은 제가 말해주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었죠. 저는 작전 성공을 위해 철저히 침묵했고요.”
 
  ― 어디서부터 일이 틀어진 겁니까.
 
  “북한 혁명 조직을 지원하는 데 쓰이는 설비와 자재를 2017년 5월 20일경에 박학림에게 전달하는 작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4월 말 박학림이 국정원 한○○에게 급히 설비를 보내달라고 요청을 해왔죠. 한○○가 저에게 급히 설비를 박학림에게 보내 달라고 해서 허광해와 함께 우여곡절 끝에 설비의 70%를 보냈죠. 그게 5월 5일이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선양 공항에서 칭다오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저녁을 먹으려 하는데 한○○에게 전화가 오더군요. 받았더니 ‘이상한 기사가 떴으니 빨리 한국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무슨 소린가 했는데 무조건 빨리 중국을 탈출해 한국으로 돌아오라더군요. 전화를 끊고 한국으로 가려 했는데, 선양에서 한국으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가 이미 떠난 상태였습니다.”
 
  2017년 5월 5일 한 좌파 성향 인터넷 언론은 ‘북한이 수년 전부터 생화학물질을 이용해 최고 수뇌부에 대한 국가테러를 획책한 범죄 일당을 적발했다. 한모라는 국정원 팀장과 조기철이라는 요원이 작전을 집행했다’고 보도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15시간30분
 
조씨는 2017년 5월 5일 국정원으로부터 당장 중국에서 탈출하라는 말을 듣고 6일 첫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음은 당시 한국행 비행기표. 조씨는 중국 공안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칭다오-서울, 다롄-서울 비행기표를 샀다. 그는 다롄-서울행 항공기를 탔다. 사진=조기철씨 제공
  ―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한○○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한국으로 갈 수 없다고 하니 ‘차량을 구해서 몽골이나 러시아 쪽으로 빠져라’고 하더군요. 시급하니 무슨 수를 쓰든지 간에 빨리 중국에서 나오라고요. 놀라서 알아보니 북한의 체포조가 저를 잡으려 하는 것 같더군요. 떨리는 마음으로 차를 렌트를 해 몽골이나 러시아 쪽으로 가려 했는데 도저히 여의치 않는 겁니다. 그래서 한○○에게 선양에 있는 한국 총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죠. 그런데 절대 안 된다는 겁니다. 자신들(국정원)이나 총영사관이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자력으로 어떻게 해서든 중국에서 탈출하라는 말만 반복했죠.”
 
  ― 등골이 오싹했겠습니다.
 
  “죽음의 무서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죠. 정신 차리고 6일 가장 빨리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습니다. 칭다오와 다롄에서 서울 가는 비행기를 각각 1장씩 예매했죠. 북한 체포조들의 시선을 분산시켜야겠다는 나름의 발버둥이었습니다.”
 
  ― 그래도 비행기를 무사히 탔네요.
 
  “칭다오에서 서울 가는 비행기표는 위장이었고, 다롄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선양에서 다롄으로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죠. 신분증을 제시해야만 탈 수 있는 기차를 이용할 수 없어 택시를 타고 400km 달려 다롄으로 갔죠. 다롄공항 근처 숙소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비행기를 타러 갔는데, 비행기가 30분 연착을 한다는 겁니다. 겁이 나서 화장실에 숨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때 한○○와 계속 연락을 했는데, 그는 제가 국적기를 타기 때문에 비행기 내부로만 들어가면 괜찮다면서 만약 비행기에 탔는데 중국 공안이 내리라고 하면 절대 내리지 말고 버티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더 겁이 나더군요. 탑승 방송이 나오자마자 승강장으로 뛰어가 비행기를 탔습니다. ‘어서 오세요’라는 스튜어디스의 인사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군요. 2017년 5월 5일 저녁 7시부터 다롄공항에서 항공기가 이륙한 5월 6일 오전 10시30분까지 약 15시간 반은 저의 생애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흔적을 지우다
 
  ― 한국에 도착해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허광해에게 한국에 잘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했고, 바로 잠실의 한 호텔에서 한○○를 만났죠.”
 
  ― 뭐라던가요.
 
  “국정원에서 제공하는 호텔에서 지내라더군요. 그리고 신변보호 등을 이유로 전화번호와 제가 사용하던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상의 저의 흔적을 모두 지웠습니다.”
 

  ― 그게 끝인가요.
 
  “한○○는 자신 때문에 제가 중국의 모든 기반을 잃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다면서 대단히 미안해했습니다. 거의 매일 찾아와서 잘 지내는지 체크했죠. 또 평소 제 수입과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을 물은 뒤 그에 맞춰 생활비를 지원해줬습니다.”
 
  ― 생활비는 월급처럼 꼬박꼬박 나왔나요.
 
  “일정한 날짜에 주지는 않았습니다. 1~2개월마다 불규칙적으로 돈을 줬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활비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중국에 있는 사업체가 다 날아간 상황이라.”
 
  ― 중국에서 어느 정도 규모의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까.
 
  “크게 5가지 사업을 했습니다. 첫 번째가 화장품 사업인데, 중국 칭다오에 법인을 설립하고 한국 화장품을 팔았죠. 약 5억원 정도를 투입한 사업이었습니다. 중국 내 업체들과 판매 계약을 맺었었는데, 다 중단됐죠. 두 번째가 선전에서 한 TV 패널, 휴대폰 액정 필름, 휴대폰 액정 글라스 사업입니다. 저의 홍콩법인을 통해 중국 선전 7개 회사의 TV 패널, 휴대폰 액정 필름, 휴대폰 액정 글라스 등을 홍콩에 공급하는 것이었죠. 세 번째가 위챗을 활용한 물품 판매, 네 번째가 선전 지하철 상가에 ‘식객촌(삼청동 북촌 음식 전문점)’이란 푸드코트 사업, 마지막 다섯 번째가 제가 인수한 특수 토목업체 ㈜디○이 가진 특허를 중국 실정에 맞게 수정, 중국에서 특허를 받은 건설 기법을 활용한 사업인데 모두 무용지물이 됐죠. 제가 중국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까요. 이게 제일 큰 사업이 될 수 있었는데….”
 
 
  2018년 6월 1일 마지막 생활비 지원
 
  ― 대략 들어도 피해 금액이 어마어마하겠네요.
 
  “금액을 떠나 저는 10년 이상 중국에서 사업해온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중국에 들어가지 못하니 난감한 것이죠.”
 
  ― 국정원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보상은 해주지 않았나요.
 
  “한○○에게 보상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적폐청산 문제로 국정원이 정신이 없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저를 달랬습니다. 참다못해 2017년 6월, 중국 내 사업 손실에 관한 자료를 국정원에 제출했습니다. 한 달 뒤인 7월에는 서훈 국정원장(현 국가안보실장)에게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죠. 배상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좀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요.”
 
  ― 답이 없었습니까.
 
  “오히려 그나마 해주던 생활비 지원도 끊더군요.”
 
  ― 언제가 마지막 지원이었습니까.
 
  “2018년 6월 1일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마지막 지원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에 뛸 듯이 기뻤죠. 자금 등 문제가 해결되고, 이 지겨운 호텔 생활도 마침표를 찍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호텔도 이전에 머물던 곳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곳으로 보내더군요.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는데, 호텔에서 1년 이상 생활하다 보면 그 구조나 크기가 중요하긴 하거든요.”
 
  조씨는 “돌이켜보면 왜 지원을 2018년 6월 1일까지만 했는지 알 것 같다”며 “1차 미북정상회담(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때까지 내 입을 막을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의 제안
 
  ― 생활비 지원이 끊기고는 어떻게 됐습니까.
 
  “2018년 7월 한○○가 국정원에서 제 위로금으로 현금 4억1500만원을 책정했다고 알리더군요. 법리검토 결과 ①피해 규모를 입증하는 자료가 없고 ②사고 이전에 기지출된 비용으로 재산상 피해가 사고와 상당인과관계가 없고 ③사고 없을 시 일실 수입이 반드시 발생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재산상 피해에 대한 귀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기 곤란하긴 하지만 국정원에 협조한 것으로 인해 사업이 무산된 점은 인정되는 만큼 생계비 상당 위자료로 4억15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 제안을 받아들였나요.
 
  “아니요, 바로 반박했죠. 우선 피해 규모 입증 자료 전무 주장과 관련해서는 제가 중국에 들어가면 입증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고 이전 기지출 비용에 대해 사고와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작전을 위해 설립한 ‘나스카상무유한공사’를 통해 직접 ‘돈세탁’을 했으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국정원에서 ‘나스카상무유한공사’에 보내는 자금을 제가 운영했던 회사를 거친 뒤 북한에 지원하려 했기 때문에 제 회사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죠. 한○○에게 국정원의 이 제안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더니, 다시 협의해보겠다고 하더군요.”
 
  ― 국정원의 입장이 바뀌었나요.
 
  “2018년 10월 한○○이 담당관이 바뀔 거라면서 자신과 연락이 안 될 수도 있으니 잘 지내고 협의 잘하라고 하더군요. 수소문해보니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완전히 좌천된 모양이더라고요. 이 작전을 수행할 때만 해도 국정원 내에서 대북 공작 ‘에이스’로 불리던 사람이었는데…. 어쨌든 새로운 담당관이란 사람이 연락이 왔고, 11월 15일에 처음 만났습니다.”
 
  ― 4억1500만원에 합의를 했습니까.
 
  “계속 맞서다가 하게 됐습니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에게 하소연했더니 청와대에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해주더군요. 청와대 관계자도 저에게 걱정하지 마라. 국정원에 이야기 잘해놨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는데, 국정원에서 제게 연락을 하더니 ‘아무리 다른 쪽을 통해 연락해도 결론은 같다’는 식으로 답하더군요. 2019년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는데 아무런 답도 없고. 제 몸부림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느꼈죠. 2018년 6월부터 2019년 9월까지 16개월 동안 보안과 신변보호 때문에 어떠한 일도 할 수 없었기에 수입도 없었습니다. 주변 지인에게 돈을 빌리는 것도 한계에 달해 굶는 경우가 허다했죠. 유학 중이던 제 딸도 등록금 때문에 학교에서 제적당할 위기에 처했고요. 너무 절박해서 국정원에 돈을 좀 빌려달라고 하니 절대 안 된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합니까. 등 떠밀리듯 합의를 했죠.”
 
 
  나 때문에 작전에 투입된 지인들이 보상 문제로 찾아다녀
 
조씨와 호형호제하는 동포 허광해씨는 작전 실패로 인해 중국 공안에게 구속 상태로 조사를 받았다. 조씨와 허씨가 나눈 문자 대화 캡처. 사진=조기철씨 제공
  ― 혹시 제안을 안 받아들이면 재미없을 것이라는 식의 협박이 있었나요.
 
  “국정원에서 소송으로 가면 더 많은 돈을 보상받을 순 있겠지만, 소송 기간이 대략 10년은 될 것이고, 그 기간 어떻게 살 것이냐. 아이들은 학업을 중단하고, 부모님들도 걱정만 하시다가 돌아가실 수도 있는데. 나중에 돈을 더 받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식의 이야기는 했죠.”
 
  ― 어쨌든 위로금을 수령했네요.
 
  “네. 위로금을 수령하면서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도 했고….”
 
  ― 혹시 돈 때문에 폭로하는 겁니까.
 
  “국정원이 소송을 걸면 제 돈을 써야 할 상황입니다. 제가 폭로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받은 위로금이 어떻게 책정된 것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대통령과 국정원장에게 여러 번 편지를 보내고, 수많은 정보공개 청구를 해도 근거 없이 그냥 모든 것이 정당하게 이루어졌다는 답만 옵니다. 그리고 작전인지도 모르고 저를 돕다가 큰 피해를 본 허광해와 김해동은 위로금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은 저를 엄청 원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 허광해와 김해동은 어떻게 됐습니까.
 
  “우선 2017년 5월 6일 옌타이를 통해 칭다오로 간 허광해는 저에게 몇 번 문자를 보냈습니다. 5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조사를 받는다더군요. 그 후 국정원이 신변보호를 이유로 전화번호를 바꾸고 중국 내 제 인맥과 모두 연락을 끊으라고 해 자연스럽게 허광해와도 연락이 끊겼습니다. 제가 지인들을 통해 들은 바로는 허광해는 6개월간 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부인도 함께요. 당연히 직장도 잃었고. 지인들은 저에게 허광해가 벼르고 있으니 꼭 피해 다니라고 충고해주더군요. 저는 제 친동생 같은 허광해가 꼭 보상을 받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김해동은 제 지인들에게 혹시 ‘조기철이랑 연락되느냐’고 계속 캐묻고 다닌다더군요. 아마 인터뷰 기사가 나가면 연락이 올 것 같은데….”
 
  조씨는 “공작은 실패할 수도 있다”며 “실패할 때를 대비, 참여했던 사람들을 보호해줘야 하는데 우리 국정원은 그렇지 않다. 자국민과 그 지인들을 소모품으로 사용한다는 데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그는 이어 “국정원은 나처럼 국가를 위해 활동하다 위험에 빠진 인물을 돕는 시스템이 전무한 상황”이라며 “내 경우 신변보호를 위한 1차 작업인 개명 등도 직접 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의 스탠딩 오더
 
  ― 북한 절대 권력자의 ‘스탠딩 오더’가 떨어진 상태인가요.
 
  “네. 중국에서 탈출할 때는 몰랐는데, 한국에 와서 알았죠. 저를 보는 즉시 죽이라는 김정은의 ‘스탠딩 오더(암살 실행 때까지 유효한 명령)’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김정은이 철회하기 전까지 전 계속 암살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하죠.”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김정은이 어떤 상황에서 ‘손봐줘라’ ‘싫다’ ‘제거해라’ 이런 표현만 해도 그건 스탠딩 오더가 되는 것”이라며 “자신의 신변을 위협하는 작전에 관여했으니 죽이기 전까지 작전 철회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 고위 탈북자들 보면 경찰이 신변보호를 해주던데요.
 
  “사실 제가 폭로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 신변보호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국정원은 어떠한 신변보호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2018년 9월 서울경찰청 허○○ 경위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신변보호를 요청하라더군요. 그러면서 이 사건과 관련한 이야기는 절대 경찰한테 하지 말라는 겁니다. 전화를 하니, 왜 보호를 받아야 하는지 묻더군요.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고 하니, 황당해하더라고요. 너무 무섭고 답답해서 국정원에 내 신변은 내가 직접 보호할 테니 총기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황당한 부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차가 없습니다. 사고로 위장해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 인터뷰를 통해 제가 국정원 요원이 아닌 일반 사업가라는 게 밝혀지면 혹시 김정은이 스탠딩 오더를 거둬들이지 않을까요. 저의 허황한 바람이겠죠?”
 
  ― 이야기를 들어보면 박근혜 정부 때는 나름 보호를 받다가 문재인 정부로 바뀌면서 홀대를 받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은 김정은을 제거하고 북한 주민을 구하는 통일을 이루려 했고, 문재인 정부 국정원은 북한 주민은 무시하고 김정은과 같이 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방향이 다르다 보니, 국가를 위한 통일 프로젝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참여하게 된 저에 대한 처우도 다를 수밖에 없죠.”
 
  ― 이 작전이 왜 실패했다고 보십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후(2017년 3월 10일)부터 일이 꼬여 갔습니다. 박근혜 탄핵 직후 혁명조직원이자, 북한 고위층 자제로 알려진 박학림을 허광해와 김해동이 만났는데 이날 누군가 영상을 찍었고, 이것이 북한으로 넘어가 작전이 들통나게 됐죠. 저는 국정원 내 ‘비둘기파(온건파)’ 쪽에서 정보를 북한에 흘린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5월 말 하기로 한 작전이 북한 측 요청으로 당겨지기도 하고. 하여튼 몇 가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는 대선 전부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설 게 거의 확실하지 않았습니까. 문재인 정부에 줄 서려는 국정원 핵심 관계자들 입장에서는 북한의 심기를 건들기 싫었겠죠.”
 
 
  문재인 정부 국정원 신변보호에 신경도 안 써
 
  조씨는 국정원으로부터 4억여원을 위로금으로 받았지만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4억원 중 보상금을 받기 전 빚을 청산하고, 자식들 등록금을 제외하다 보니 1억원 남짓 남아 옥탑방 하나를 얻어 생활하고 있다. 만약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지 않고, 이 작전이 성공했다면 우리 주도하에 통일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컸다. 그랬다면 최소한 조씨는 지금 같은 삶을 살진 않을 것이다. ‘토’ 달지 않겠다는 서명을 하고 위로금을 받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서는 조씨도 할 말은 없다. 다만 신변보호에 대해선 그렇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 정부 국정원은 조씨를 눈엣가시처럼 여긴다고 한다. 억울함을 표시할 때면 “전 정권에서 있었던 작전인 만큼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고 한다.
 
  조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 탄핵당하고 문재인 정부가 5월 들어섰지만, 국정원의 태도가 변한 것은 2018년 6월, 마지막 생활비를 지원한 직후”라고 했다.
 
  “적폐청산 작업이 2018년 6월 즈음에 마무리됐다고 들었다. 이 시기 제 담당관이 교체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1년 동안은 전 정권 때와 비슷한 대우를 받았는데, 정권이 바뀌자마자 국정원의 태도가 변했다고 하면 오해가 있을 것 같아 명확히 밝히는 것이다. 다만 내 입장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완료된 직후 국정원의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박근혜 국정원과 문재인 국정원이 저를 바라보는 시각이 180도 다르다고밖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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