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에서 만난 한국 기업인들, “아프리카는 우리가 버릴 수 없는 땅”
⊙ 케냐는 大選 둘러싼 종족 간 유혈충돌로 한 달 새 1500여 명 사망
⊙ 인종분쟁, 종교분쟁이 없는 자원 富國 탄자니아
⊙ 학살의 땅 르완다는 지금 새마을운동의 모델 국가로 변신 중
⊙ 중국인들, 자원확보 위해 대대적으로 아프리카에 투자
⊙ 케냐는 大選 둘러싼 종족 간 유혈충돌로 한 달 새 1500여 명 사망
⊙ 인종분쟁, 종교분쟁이 없는 자원 富國 탄자니아
⊙ 학살의 땅 르완다는 지금 새마을운동의 모델 국가로 변신 중
⊙ 중국인들, 자원확보 위해 대대적으로 아프리카에 투자
새벽 5시40분,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나이로비 공항을 빠져나오자 黎明(여명) 사이로 잔뜩 흐린 케냐의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해발 1700m에 위치한 나이로비는 연평균 기온이 17도, 하늘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을 제외하고는 금방 비라도 퍼부을 듯이 항상 구름에 가려 있었다. 필자가 도착한 날 아침 기온은 14도로 한국의 초가을 아침 같은 기운이 전해졌다.
40분 정도 고속도로를 달려 나이로비 시내에 있는 사파리 파크 호텔에 도착했다. 이 호텔은 故(고) 전낙원 파라다이스그룹 회장(2004년 작고)이 1974년 문을 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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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중심가. 나이로비는 동아프리카의 관문 역할을 하는 도시로 GE, 구글, 코카골라 등 많은 국제기업이 들어와 있다. |
나이로비는 인구 300만명, 700㎢의 면적을 가진 東(동)아프리카 최대의 도시다. 시내는 세상에 있는 일본 중고차는 모두 모아놓은 듯했다. 중고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커먼 매연 때문에 목이 금방 칼칼해졌다. 지난 수년째 극심한 가뭄까지 더해져 나이로비 시내는 먼지 공해까지 겪고 있었다.
도로변에는 두꺼운 겨울옷 차림을 한 사람들이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현재 케냐 인구는 3800만명 정도인데 실업률이 40%에 이른다. 장기간의 가뭄으로 케냐의 主食(주식)인 옥수수 작황이 좋지 않아 인구의 3분의 1인 1000만명 정도가 기아에 직면해 있다.
현지 교민들은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은 것은 교통비를 낼 여력이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이로비에서 후루사토라는 韓食(한식) 겸용 일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교민 이민수씨는 “음식값을 제외하고는 케냐의 물가가 한국보다 더 비싸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도시에 대한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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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로비의 모이 스포츠 센터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국제청소년연합(IYF) 케냐 세계대회 개막식 모습. |
하지만 나이로비 공항을 빠져나오는 순간, 이런 생각이 편견이었음이 드러났다. 행인과 자전거, 세발택시, 소와 개, 쓰레기가 뒤섞여 있는 인도의 거리보다 훨씬 정돈되고 깨끗한 모습이었다.
이는 탄자니아와 르완다의 首都(수도)도 마찬가지였다. 해변을 끼고 있는 탄자니아의 수도 다르에스살람은 여느 유럽의 휴양도시 못지않게 아름다웠으며, 르완다 수도 키갈리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깨끗하게 정돈된 도시 중의 하나였다. 이들 도시의 路面(노면) 상태도 비교적 양호해 교통체증이 없는 곳이라면 자동차는 충분히 자기 속도를 내면서 달릴 수 있었다.
필자가 아프리카를 찾은 것은 ‘국제청소년연합(IYF: International Youth Fellowship) 아프리카 월드캠프’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국제청소년연합(IYF)은 기쁜소식선교회를 이끌고 있는 朴玉洙(박옥수·65·기쁜소식강남교회 담임목사) 목사가 청소년 善導(선도) 사업을 위해 설립한 단체로, 해마다 국내외에서 대규모 청소년 세계대회(월드캠프)를 개최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말레이시아, 오스트리아, 아프리카 5개국 등 모두 11개 나라에서 월드캠프가 열렸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작년에 케냐에서 첫 세계대회를 개최했고 올해 가나, 토고, 케냐, 탄자니아, 르완다 5개 나라로 확대한 것이다.
IYF에서는 이번 아프리카 월드캠프 행사에 90명 정도의 의료봉사단을 구성, 5개 나라에 고루 파견했다. 이들 의료봉사단은 모두 自費(자비)로 월드캠프에 참여했다.
호텔에 짐을 푼 필자와 의료봉사단은 월드캠프가 열리는 곳으로 이동했다. 대회 장소는 호텔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기쁜소식선교회 나이로비 교회였다. 교회 부지는 군대의 1개 대대급 막사가 충분히 들어갈 정도로 넓었다.
세계대회의 일정이나 행사내용은 대회가 개최되는 나라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 내용은 대체로 비슷했다. 공연 프로그램은 청소년 댄스,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무용, 태권도, 통기타 공연(4인조 남성 보컬팀 리오몬따냐), 합창단 공연 등으로 꾸며져 있었다. 공식 행사 외에 각 나라에 파견된 의료봉사단이 지정된 장소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펼쳤다.
키쿠유족과 루오족의 유혈충돌
케냐에서는 2007년 12월 말 대통령 선거 후 부정선거 논란으로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키쿠유족의 키바키 대통령이 야당인 루오족의 오딩가 대통령 후보를 누르고 再選(재선)에 성공하자, 오딩가 후보 지지자들이 부정선거라며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케냐의 兩大(양대) 종족인 키쿠유족과 루오족 간의 격렬한 유혈 충돌로 한 달 만에 1500여 명이 사망했다.
2008년 4월 키바키 대통령은 오딩가를 총리로 기용, 양측은 대연정에 합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국 혼란으로 관광객이 급감하고, 외국 투자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었다. 이런 때 국제청소년연합이 케냐에서 세계대회를 열겠다고 하자 케냐 정부는 크게 환영했다고 한다.
IYF 아프리카 회장인 金載弘(김재홍) 목사(기쁜소식선교회 나이로비 교회 목사)는 “폭동 이후 처음 열리는 국제행사였고, 행사 내용도 自國(자국) 청소년들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케냐 정부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었다”고 말했다.
월드캠프 개막식은 부천 링컨하우스스쿨(링컨스쿨) 학생들의 전통 북 공연과 댄스 공연으로 시작됐다. 링컨스쿨은 국제청소년연합에서 세운 대안학교로, 이 학교 학생들은 이번 아프리카 세계대회에 공연팀을 꾸려 참여했다.
이날 개막식에는 현지 학생들로 구성된 태권도팀의 시범공연이 펼쳐져 큰 인기를 끌었다. 이 태권도 팀은 부산에서 온 한국인 사범 金鍾三(김종삼·38)씨가 지도한 것이다.
공연이 끝난 후 IYF 설립자인 박옥수 목사의 설교가 이어졌다. 개막식에는 케냐의 청소년부 부장관 와비냐 은데티(女)가 참석해 케냐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가질 것을 역설했고, 개막식 다음날에는 칼론조 무쇼카 케냐 부통령이 찾아와 참가자들에게 특강을 했다.
케냐에 온 의료봉사단은 교회 앞 공터에 텐트를 치고 진료를 시작했다. 가나와 토고에서 봉사를 마치고 온 의료진까지 합류하면서 의료봉사단 규모는 60명 정도로 늘었다. 이들은 전문의 1명에 간호사 1명과 통역 등 4~5명이 한 팀을 이루어 진료를 했다.
진료과목은 내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안과, 한방진료 등이었는데, 몰려드는 환자 때문에 일부 진료과목을 제외하고는 의사들이 거의 모든 종류의 환자를 다 봐야 했다.
다른 텐트 한 동은 간이 수술실로 사용됐는데, 현장에서 수술이 가능한 외과 수술이 진행됐다. 한 환자는 목 뒷부분에 주먹만하게 붙어 있는 지방종 제거술을 받았고, 어떤 환자는 무릎 염증수술을 받았다.
봉사에 중독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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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냐의 청년들이 한국에서 온 김종삼 사범에게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 |
대전의 김형근 안과 소속인 박진규 실장은 “케냐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보다 5~6년 정도 老眼(노안)이 빨리 오는 것 같다”며 “30대 중반인데 가까운 게 안 보인다고 호소하는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진료 첫날 안과 진료를 받은 사람이 250명”이라고 했다.
창원 파티마 병원 소속의 최환식 비뇨기과 전문의는 “평소 병원 구경도 못한 환자들이 이곳에 와서는 자기가 아픈 곳은 죄다 이야기하기 때문에 증세를 잘 살펴서 적절한 처방을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료봉사단 통역은 대부분 대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이었다. 한방과에 배치되어 영어 통역을 맡은 뉴욕대 재학생 김민주씨는 “봉사활동하는 것이 좋아 후배 4명과 함께 참가했다”고 말했다. 이들 의료봉사단은 하루에 1000여 명의 환자를 보았다.
개막식 다음날 의료봉사단 중 일부가 두 팀으로 나누어 인근 소도시와 농촌으로 이동 진료를 나갔다. 필자는 울산병원의 金梅子(김매자·내과전문의) 원장과 경남 통영에서 온 오앤박 소아청소년과의원의 朴眞弘(박진홍·48·소아과전문의) 원장 팀과 함께 나이로비 인근 티카라는 소도시로 향했다.
티카에 있는 작은 마을 교회에 의료진이 도착하자 현지 교회 목사가 주민들을 불러 모았다. 교회는 함석으로 벽과 지붕을 엮어 비바람과 햇볕을 피하는 수준이었고, 바닥은 흙으로 되어 있었다.
박진홍 원장의 첫 손님은 10세 정도의 소년이었다. 이 소년은 발등 부위가 5cm 정도 찢어져 심하게 곪아 있었다. 박 원장은 상처를 보더니 “꿰매야 한다”며 수술 장갑을 꼈다. 하지만 마취약을 가져오지 못해 생살을 꿰매야 했다. 처음에는 잘 참던 아이가 두 바늘째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발버둥을 쳤다.
간호사와 아이 아버지 등 5명의 어른이 달려들어 아이를 고정시킨 다음 봉합 수술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아이가 심하게 발버둥치는 바람에 수술 바늘에 박 원장의 왼손 검지 손가락을 찔렸다.
박 원장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그는 고무장갑을 벗고 찔린 부위를 살피더니 아이 아버지에게 “에이즈에 감염됐느냐”고 물었다. 아이 아버지가 “최근 에이즈 검사를 했는데 감염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박 원장은 아이와 아버지의 혈액 샘플을 채취한 다음 진료를 계속했다.
케냐에서 만난 한국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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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봉사활동 중인 오앤박 소아청소년과의원의 박진홍 원장. 마취제 없이 아이 발등의 찢어진 상처를 꿰매다가 바늘에 찔리기도 했다. |
박진홍 원장은 귀국 전날 필자에게 “솔직히 처음 바늘에 찔렸을 때는 잠시 동안 멍해졌으나 감염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아프리카 봉사활동입니다. 작년에 왔을 때 의사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진심으로 환영해 주어 그 신선했던 충격을 잊지 못해 올해 또 오게 됐어요. 여기 오면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이 행복합니다.”
케냐는 전 국민의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국가다. 필자는 케냐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의 축산기술을 케냐에 전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국 농촌진흥청 소속 공무원들을 만났다.
농진청 기술협력국 국외농업기술팀의 金載雄(김재웅) 아프리카 실장은 “농진청은 우유를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우수한 젖소를 케냐에 보급하고 있다”며 “우유 생산이 가능한 암소만 선별적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수정란 단계에서 性(성) 판별이 가능한 기술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선진국들의 막대한 원조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가 가난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이들에게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득증대를 할 수 있는 원조 중에서도 농업기술 전수가 가장 효과적입니다.”
김 실장은 “우리나라는 남에게 원조를 받던 세계 最貧國(최빈국)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된 개발경험을 가지고 있다”면서 “저개발 국가가 쉽게 배울 수 있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개발경험을 전해줄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김재웅 실장과 함께 만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아프리카를 대하는 올바른 시각 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이 수십 년 전부터 資源(자원)을 얻기 위해 아프리카에 막대한 투자를 해오고 있지만 아프리카 사람들도 중국의 속셈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아프리카를 진정으로 돕겠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들의 빈곤퇴치를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면 우리도 아프리카로부터 도움을 받을 날이 올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양계장으로 성공한 김기환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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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냐 나이로비 인근 도시 나쿠루에서 양계사업을 하고 있는 김기환 사장 부부. |
김 사장은 처음에는 병아리를 사서 農家(농가) 여러 곳에 분양을 했다. 그러다 보니 저품질 사료를 먹인 농가에서는 원하는 날짜에 상품성 있는 닭을 생산하지 못했고, 질병 관리도 되지 않았다. 이에 질 좋은 사료를 직접 사서 농가에 공급했다. 그가 닭고기를 처음 납품한 곳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사파리 파크 호텔이었다.
현재 김 사장은 6만3000평 규모의 부지에 부화장 두 개와 屠鷄(도계)공장을 운영 중이며, 사료사업 진출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가 계약을 맺고 병아리와 사료를 공급하는 하청 농가가 400곳이나 된다.
현재 김 사장의 양계공장은 주당 12만 마리를 부화할 수 있는 규모로, 케냐 닭고기 시장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말이다.
“양계업이 이렇게 커질지 몰랐습니다. 이곳의 닭고기 수요가 워낙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도 꾸준하게 발전하리라고 봅니다. 욕심이 있다면 한국의 젊은이들이 케냐 축산업에 많이 진출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케냐의 축산업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요.”
김 사장은 “케냐는 연중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일정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 축산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또 우리 정부가 식량안보 차원에서 해외 농지 개발에 나서고 있는데, 가능하면 이미 해외에서 성공한 농민들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해외의 땅을 구입하여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현지에 진출한 우리나라 농민들을 적절하게 활용해서 농사를 지으면 큰 돈 들이지 않고 식량자원을 확보할 수 있어요.”
우간다 랭킹 5위 그룹 환성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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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성가구 장재영 사장. 환성가구는 케냐 붙박이 가구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본사인 환성기업은 우간다에 있다. |
무역업을 하던 김성환 회장은 1980년 초 우간다의 빅토리아호에서 나일퍼치(민물농어) 가공·수출업을 시작했다. 환성기업은 생선을 가공해서 수출하다 보니 스티로폼 박스가 필요해 관련 공장을 지었고, 냉동시설에 필요한 샌드위치 패널이 필요해 패널 공장을 만들었으며, 패널을 하다 보니 알루미늄 창이 필요해 새시 공장에도 손을 대는 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환성기업은 현재 우간다 랭킹 5위 기업으로, 8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했다.
나이로비 공항에서 10분 거리의 고속도로 변에 있는 환성가구는 주택의 붙박이 장과 주방가구를 만든다. 장재영 사장은 “우간다 가구시장이 워낙 협소해 2004년 케냐에 진출해 현재 케냐의 주방가구와 붙박이 가구 시장에서 1위”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웬만한 다국적 기업은 케냐에 모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독일, 인도 회사입니다. 독일은 가구를 잘 만들지만 가격이 비싼 반면, 우리는 현지인이 원하는 디자인과 가격에 맞춰 가구를 제작해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장 사장은 “한국의 많은 사업가들이 아프리카에 들어왔다가 망하고 나갔는데, 이는 현지 적응력도 기르지 않고 너무 급하게 서두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는 식민지배를 했던 유럽에는 앞마당과 같고, 영국인이 중간 관리인으로 많이 데리고 왔던 인도인들에겐 옆마당 같은 곳입니다. 우리 기업인이 아프리카에서 성공하려면 반드시 유럽 및 인도인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합니다.”
장 사장은 “최근 3~4년 사이에 중국 정부의 원자재 확보 정책에 따라 중국인이 아프리카에 엄청나게 진출해 있다”면서 “개인적으로 아프리카에 와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도 정부가 아프리카 진출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서 기업인들을 잘 이끌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환성기업의 김성환 회장은 아프리카에서 번 돈을 아프리카인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병원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현재 부지까지 마련해 놓았다고 한다. 김 회장은 지난 2년 동안 100명 가까운 아프리카 어린이 심장병 환자에게 수술비를 제공하여 건강을 되찾아 주었다.
■ 인종분쟁, 종교분쟁 없는 탄자니아 ■
의료봉사단 중 일부는 귀국을 하고, 일부는 봉사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탄자니아로 이동했다. 필자도 의료봉사단과 함께 나이로비를 떠나 탄자니아의 수도 다르에스살람으로 향했다. 무대와 조명, 방송, 공연 등을 담당한 행사 진행요원들은 전날 산더미 같은 짐을 꾸려 탄자니아로 출발했다.
다르에스살람은 나이로비와 분위기가 뚜렷하게 달랐다. 고층 건물이 즐비한 나이로비와는 달리 다르에스살람에는 4층 이상 되는 건물이 거의 없었으며, 낮고 낡은 건물들이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바다를 끼고 있는 다르에스살람은 숲이 많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늘에 있으면 더위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하늘은 우리의 가을하늘처럼 청명했으며 뭉게구름이 높이 솟아 있었다. 공기가 맑아서 케냐에 있을 때보다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IYF 탄자니아 월드캠프는 우리의 코엑스처럼 각종 산업전시회가 열리는 ‘사바사바 홀’이란 곳에서 진행됐다. 장소는 탄자니아 정부가 월드캠프를 위해 빌려준 것이다.
탄자니아 정부는 행사장소뿐 아니라, 인근 대학 건물을 참가자들의 숙소로 제공했다. 이밖에도 여러 탄자니아 기업에서 음료수와 행사 물품을 지원했다.
사바사바 홀에는 이미 대형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개막식을 위해 조명팀과 방송팀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 교수 보리스 아발란이 수석 지휘자인 그라시아스 합창단은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합창단은 밥 먹는 시간 외에는 거의 연습에 매달렸고, 공연이 끝나면 다음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강행군을 하고 있었다.
이번 세계대회 행사를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팀들 중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의 활약이 돋보였다. 이 봉사단체는 1년간 해외에 파견돼 현지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지난해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은 세계 80여 개국에 600여 명이 파견됐다. 이들 중 아프리카에 파견된 학생들 대부분이 이번 세계대회에 참여하여 행사진행을 돕고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해외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는 부경대 금속학과 禹洙嬉(우수희·25)씨는 “전에는 그냥 시간가는 대로 살았는데 해외 봉사활동을 하면서 삶의 목적이 분명해졌고, 봉사활동 기간이 내 자신을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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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에게 청소년 댄스를 배우고 있는 IYF 세계대회 참가자들(탄자니아). |
중국인 2만여 명 거주
작년에 1년간 해외봉사 활동을 한 사람 중에 이번 대회에 봉사자로 참여한 사람도 많았다. 용인대 연극학과를 졸업한 박진아(24)씨는 “작년에 콜롬비아에 1년간 봉사활동을 다녀온 것이 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번 행사에서는 무대 디자인을 맡고 있었다.
도희권 국제청소년연합(IYF) 회장은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중에 아프리카에 파견된 학생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다”며 “파견되는 학생 입장에서는 봉사의 기쁨을 느낄 수 있어서 좋고, 아프리카인들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 역시 자비로 세계대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탄자니아 세계대회 개막식에는 음카파 前(전) 탄자니아 대통령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음카파 전 대통령이 입장을 하자 전원이 일어서서 환호를 하며 존경을 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탄자니아 캠프에는 약 1000명의 청소년들이 참여했고, 인근 국가인 말라위에서도 83명의 대학생이 참여했다고 한다.
1994년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파견된 후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지금까지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金鍾德(김종덕·53) 목사(기쁜소식선교회 탄자니아 교회)는 “아프리카에서 정치적 이해관계 없이 순수한 활동을 하는 비정부기구(NGO)를 찾기가 쉽지 않다”며 “우리는 진정으로 이곳의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미래의 지도자를 키우기 위해 세계대회를 개최하기 때문에 현지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탄자니아에는 중국인이 2만명가량 거주한다고 한다. 탄자니아 대회 개막식에는 중국인 사업가 100여 명이 참여했다. 김 목사는 “탄자니아 중국인들의 각종 행사 때 우리 자원봉사자들이 가서 댄스나 태권도 등의 공연을 많이 해 주었는데 중국인들이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이번 행사에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6시,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마라톤 코스는 사바사바 홀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중국 정부가 지어준 종합운동장이 있는데, 그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남자는 6.5km, 여자는 3.5km였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참가자들이 결승점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라톤에 참가한 많은 남녀 청소년이 운동화가 없어 슬리퍼를 신고 뛰는 모습이 아프리카의 현실이었다.
참가자들 중 1등은 TV, 2등은 MP3 플레이어, 3등은 휴대전화를 부상으로 받았다. 나머지 20등까지는 IYF로고가 찍힌 티셔츠를 받았다. IYF 사무국 측은 “이 셔츠는 통풍이 잘되는 2중 고급 원단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며 “이번 아프리카 세계대회에서 1만6000벌의 티셔츠가 소모됐다”고 밝혔다.
이 나라에 종족 분쟁이 없는 이유
점심식사 후에는 참가 청소년들의 반을 나누어 컴퓨터, 태권도, 댄스, 한국어 등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필자는 그늘에서 쉬고 있는 탄자니아 대학생 5~6명과 대화를 나누었다.
현재 탄자니아에는 주몽과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가 최고 인기라고 하는데, 韓流(한류) 드라마 덕분인지 학생들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았다. 그들은 한국이 어떻게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고, 북한이 최근 핵개발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나름 입장을 밝혔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취지로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남북한은 같은 민족이지만 남한은 지금 세계 10위권을 바라보는 경제대국이 됐고, 북한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해 인민들이 굶어 죽는 나라가 됐다. 같은 민족이 이렇게 하늘과 땅 차이가 난 것은 지도자의 차이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남한의 지도자는 국민을 위해 자기를 희생했으며, 북한의 지도자는 자기를 위해 주민을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도자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사회학이 전공인 윌헬미나라는 25세의 여대생은 “탄자니아에서는 연줄이 없으면 대학 졸업 후에도 직업을 가지기 힘든데 한국은 어떤가”라고 묻기도 했다.
탄자니아는 아프리카에서는 드물게 종족 분쟁을 한 번도 겪지 않은 나라다. 1961년 독립할 때도 영국과 대화를 통해 독립을 이루어냈다. 초대 대통령 줄리어스 니에레레 대통령은 종족 간 분쟁을 막기 위해 종족 간의 혼인을 장려했고, 스와힐리어를 강제로 공용어로 사용하게 했으며, 종족 간의 분열을 야기하는 발언을 금지시켰다.
케냐와 탄자니아에 오래 거주한 김종덕 목사는 “케냐인은 진취적이고 자기의식이 분명한 반면 탄자니아인들은 온화하고 친절한 성품을 지녔다”고 말했다.
“케냐에 있는 인도인은 케냐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들을 인도인이라고 하지만, 탄자니아에서 태어난 인도인은 자기들을 탄자니아인이라고 합니다. 탄자니아인들은 자기 나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라가 평화롭고 외부 원조도 많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피란민이 가장 많이 몰려드는 나라가 탄자니아입니다.”
탄자니아에서 만난 한국 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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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자니아에서 질병 진단 시약 판매사업을 하고 있는 SD 아프리카의 채풍석 전무(왼쪽)와 군수업 및 광물개발 사업을 하고 있는 나모 탄자니아의 김동길 사장. |
채풍석 전무는 한국에서 에이즈, 매독, 말라리아, 간염, 임질 등의 진단 시약을 수입해다가 탄자니아 정부에 판매하고 있으며, 김 사장은 자원개발 전문업체인 나모 탄자니아를 통해 금광산업과 탄자니아 국방부에 군수품을 납품하고 있다.
2002년 탄자니아에 진출한 채풍석 전무는 “말라리아, 에이즈 등은 국가가 관리하는 질병으로 이 분야 약품은 주로 해외 차관자금으로 구입하기 때문에 주문량도 크다”고 말했다. 채 전무는 2007년에 케냐 정부에 1000만 달러어치를 납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질병 진단 시약의 사업 허가를 받는 데만 5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김동길 사장은 섬유사업을 하기 위해 1996년 아프리카에 왔다가 현지에 눌러앉은 케이스. 김 사장의 말이다.
“제가 마흔 되던 해에 아프리카에 왔는데 사업에 가장 큰 걸림돌이 언어였습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원단을 이곳에 팔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상권을 인도인이 장악하고 있어서 그들과 경쟁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어요. 처음 6~7년은 엄청나게 고생을 했습니다.”
김 사장은 한국에서 개발한 연습용 수류탄을 탄자니아 국방부에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어느 나라든 군납은 그 나라 정부와 큰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해요. 일단 한 번 납품 루트가 뚫리자 탄자니아 국방부가 다른 분야에서도 사업 협조 요청을 하고 있어 사업이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워(전쟁) 시뮬레이터를 탄자니아 국방부에 제공하기 위해 협의 중입니다.”
김 사장은 금광 개발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탄자니아는 아프리카 3위의 금 수출국이고 우라늄, 니켈 등도 풍부합니다. 이런 광물 자원 대부분은 소유권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지 소유권자와 합작해야 개발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주 전에 개발권이 나왔는데 그것을 받는 데 4년이 걸렸어요.”
김 사장은 “금광 개발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별도의 한국 사업파트너를 찾아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채풍석 전무는 “탄자니아는 외국인이 투자하기에 매우 매력적인 나라”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탄자니아는 전자정부 사업과 전국민 IC(직접회로) 칩이 삽입된 주민등록증 제도를 도입 중입니다. 이 나라 인터넷 산업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중국 회사가 진출하고 있어요. IT 산업은 우리나라 기술이 최고니까 한국 기업인들이 이 분야에 많이 진출했으면 합니다. 탄자니아는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는 나라인데 단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굶어 죽는 아프리카라는 선입견 때문에 투자를 망설이는 경우가 많아요. 적어도 탄자니아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는 나라입니다.”
■ 종족 대학살 아픔 딛고 새마을 운동 모범국 된 르완다 ■
마지막 일정이 잡혀 있는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로 향했다. 르완다로 가기 위해서는 탄자니아에서 다시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오전 11시에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 도착했다. 세계대회가 열리는 장소는 공항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르완다 적십자사 본부 부지였다. 르완다에서는 실내가 아니라 야외에 대형 텐트를 치고 그곳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르완다 정부는 부지와 함께 적십자사의 게스트 하우스를 대회 참가자들 숙소로 제공했다.
르완다 세계대회에 참여한 인원은 1000명 정도. 그중에는 콩고 대학생 200명도 있었다.
키갈리는 구릉 위에 건설된 도시였다.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 머리를 맞대고 이어졌으며, 산 아래에서 꼭대기까지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거리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게 청소됐고, 언덕 위에 늘어선 집들은 구역별로 재개발이 한창이었다.
키갈리는 그동안 본 아프리카 세 나라 수도 중 가장 깨끗했다. 산과 나무와 숲이 울창하여 머릿속에서 그리던 아프리카 이미지와는 너무나 달랐다. 르완다가 이렇게 깨끗한 도시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열심히 배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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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완다 학살 전시관이 있는 언덕에서 바라본 맞은편 시내의 모습. 오른쪽 언덕의 주택가는 재개발이 된 모습이고, 왼쪽은 기존 도시의 모습이다. 르완다 수도 키갈리는 이처럼 구릉지역에 조성돼 있다. |
르완다는 전에는 프랑스어를 사용했으나 폴 카가메 現(현) 대통령이 집권한 후 親美(친미)정책을 펴면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했다. 현재 모든 관공서의 공식 언어를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바꾸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이는 1994년 벌어진 內戰(내전)과 끔찍한 대학살에 프랑스가 연루돼 있다고 보는 르완다 지도층의 반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르완다 학살은 1994년 4월부터 7월까지 약 100일 동안 당시 집권층이던 후투족이 군과 민병대를 동원해 소수족인 투치족 80만명(혹은 100만명)을 살해한 사건을 말한다. 이는 세계 인종 간 학살사건 중 가장 대규모로, 당시 르완다 인구 800만명 중 10%가 넘는 숫자가 희생됐다.
이 미치광이 같은 학살극의 狂風(광풍)은 르완다애국전선을 이끌던 폴 카가메 현 르완다 대통령이 수도 키갈리를 점령하면서 막을 내렸다. 폴 카가메 대통령은 프랑스가 후투족 정부를 도와 학살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면서 프랑스와 국교를 단절했다.
대학살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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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완다 학살 희생자들의 무덤. 학살 전시관 내에 있는 무덤은 콘크리트로 평평하게 만들어졌으며 사진에 보이는 창 부분만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유리로 만들어 놓았다. 안에는 보라색 천으로 덮은 관 두 개가 놓여 있다. |
르완다 학살은 전시관 지하에 꾸며 놓았으며 당시의 끔찍한 사진과 함께 사람들을 살해했던 총, 몽둥이, 관목 제거용 칼(마셰티) 등 각종 무기도 전시돼 있었다. 이곳 기념관이 지어진 계곡은 당시 25만명에 달하는 시신이 버려진 곳이라고 한다.
기념관 한쪽 방은 희생자들의 사진이 가득 붙어 있었고, 다른 방에는 어린이 희생자들을 위해 꾸며 놓았다. 아이들의 사진 아래에는 좋아하는 음식과 음료수, 마지막 남긴 말, 죽은 이유 등이 적혀 있었다.
전시관 밖에는 희생자들의 유골이 안치된 공동묘지가 조성돼 있었다. 묘지는 시멘트로 길고 평평하게 만들었으며, 묘지 지하에는 지금도 르완다 곳곳에서 발굴되는 희생자들의 유골을 안장하고 있다고 한다. 매장지 한편에는 검은색 빈 벽면을 조성해 놓았는데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을 예정이라고 한다.
르완다 정부는 대학살의 공식 희생자 수를 93만7000명이라고 발표했고, 유엔은 약 80만명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필자는 르완다 대학생들과 대화 도중 “당신은 후투족이냐 투치족이냐”는 질문을 했다. 그러자 그 학생뿐 아니라 주변에 있던 모든 학생이 약속이나 한 듯이 “우리는 르완다 사람이다”라고 대답했다.
2000년 발표된 르완다 정부의 통계에 의하면 생존자들의 99%가 폭력 현장을 목격했고, 전 국민의 79.6%가 가족을 잃었으며, 69.5%가 학살 장면을 보았다고 대답했다.
르완다에 해외봉사를 나온 안현정(22)씨는 “르완다 사람들에게는 종족을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며 “매년 4월에 희생자 추모대회가 열리는데 기절하고 오열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 나이로비의 사파리 파크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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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냐 사파리파크 호텔의 노영관 총지배인(전무). |
호텔 부지는 원래 영국군 막사가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어느 외국인이 막사를 개조해 호텔로 운영해 오던 것을 전낙원 회장이 1974년에 인수하여 사파리 파크 호텔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4년 화재로 호텔이 全燒(전소)되는 바람에 1992년 새로 지은 것이다.
이 호텔은 부지 면적이 16만5000m²(약 5만평)이 넘는 동아프리카 최대 규모다. 200여 개의 객실과 연회석 22개를 갖추고 있어 각종 국제회의와 케냐 정부의 공식 연회가 이곳에서 자주 열린다. 지난 8월 초 힐러리 클린턴이 케냐를 방문했을 때도 이 호텔에서 연회를 열었다고 한다.
호텔 측은 “관광객보다 행사 수입이 주를 이룬다”며 “특히 케냐의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인도계 부자들이 주말에 호텔에서 결혼식을 많이 올린다”고 설명했다.
2층 목조 건물로 지어진 객실은 넓은 부지 위에 흩어져 있는데, 곳곳을 잔디광장과 정원으로 꾸며놓아 도심 속의 휴양 호텔 성격을 띠고 있다. 호텔 주요시설과 객실, 카지노, 연회장 등은 아프리카의 전통미를 반영해 설계했다. 이 호텔은 3년 전 파견된 盧榮寬(노영관·58) 전무가 총지배인으로 있다. 노 전무는 “2007년 말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 이어진 케냐의 대통령 선거관련 소요사태로 관광객이 급감해 호텔 경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재는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으로 흑자를 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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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파리 파크 호텔. 한국인이 세운 이 호텔은 오랫동안 한국과 케냐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해왔다. |
전낙원 회장은 1989년부터 2004년 별세할 때까지 주한 케냐국 명예총영사를 지냈다. 2년 전까지 파라다이스그룹은 서울 본사와 케냐 현지의 사파리 파크 호텔에 사무실을 두고 케냐 정부의 駐韓(주한) 영사관 업무를 대행했다.
전 회장이 쌓은 아프리카 인맥은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 때 큰 힘이 됐으며, 전 회장은 그 공로로 국민포장을 받았다.
노 전무는 “고원지대인 나이로비보다 전지훈련을 하기 좋은 곳이 없다”며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할 대한민국 축구 팀이 우리 호텔에 머물면서 현지적응 훈련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李漢坤 주 케냐 대사
실제로 소득증대를 가져오는 원조를 해야
‘절대빈곤’이란 인간으로서 최저한의 생활도 영위해 나갈 수 없는 상태를 말하며, 대체로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갈 때로 정의한다. 유엔은 2000년 총회에서 2015년까지 아프리카와 기타 저개발국가의 절대빈곤자 숫자를 절반으로 줄일 것을 결의했다. 2008년 5월 케냐에 부임한 李漢坤(이한곤·54) 대사는 “절대빈곤의 主犯(주범)인 기아, 질병, 빈곤, 無知(무지)라는 네 가지 문제는 항상 같이 가는 것”이라며 “이 네 가지 문제를 당장 완전하게 퇴치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줄일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아프리카 국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가 지도자들이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종족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종족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라며 “국민도 국가보다는 종족에 대한 소속감이 더 높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가가 아니라 부족 중심으로 움직이는 국가 시스템은 반드시 부패와 연결되기 때문에 이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아프리카 국가의 최우선 과제라는 것이다. 이 대사의 설명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아프리카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 건전한 국가관리)를 강조했습니다. 아무리 국제사회가 원조를 해도 지도자와 정부가 정의롭지 못하면 모든 게 허사라는 것이죠.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발전 모델로 한국을 제시했습니다. 원칙 없는 원조는 아프리카의 대외 의존성을 높여 왔고,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 이전보다 더 가난해졌습니다. 서방 세계는 이제 굿 거버넌스가 되지 않는 나라에는 원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이 대사는 “가장 시급한 것은 70%에 이르는 농업인구에 우리의 농업개발 경험을 전해주어 만성적인 식량부족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농업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려면 灌漑(관개)사업이 필수적입니다. 사막 국가인 이집트, 리비아도 물관리를 하는데 아프리카가 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현재 우리 정부는 케냐의 수자원 개발과 농업기술 개발 지원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대사는 “아프리카인들에게 자주 자립하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조금만 노력하면 실제로 소득이 증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원조는 ‘소득증대 원조’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소득증대가 돈이 많이 들거나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기존의 농축산물 품종을 개량하거나, 재배환경을 조금만 개선하면 즉시 생산량이 서너 배로 늘어납니다. 예를 들어 이곳에서는 모를 눈대중으로 심는데 못줄만 잡아도 당장 10%의 생산량을 올릴 수 있고, 이모작 농사를 하니 전체로 보면 20%가 늘어나는 것이죠.”
이 대사는 “아프리카가 자주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이곳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신장시키는 것”이라며 “아프리카와 더불어 잘살아야 세계평화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아프리카를 절대빈곤 상태로 방치하면 이곳 젊은이들이 테러리스트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해적도 더 늘어나겠죠. 우리의 새마을 운동에 자주·자립할 수 있는 모든 비법이 담겨 있으니, 이 새마을 운동 정신을 잘 전해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어려울 때 국제사회로부터 받았던 빚을 갚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