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더 당하겠지만 문제 없다』
[출생 의혹]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사실을 숨긴 적 없다. 1995년 발간한 자서전에 그 사실을 밝혔다』, 『明博이란 이름은 어머니가 태몽에 달이 너무 밝아서 지은 이름이다』
[병역 의혹]
『나는 기관지 확장증 등으로 면제됐고 기록도 있다. 내 아들들이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하지만 아들은 하나이고, 전방부대에서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다스」 實 소유주說]
『큰형님이 회사를 설립할 당시 주변에 약간의 도움을 부탁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와는 전혀 관계없다』
[봄 위기說]
『소송 중인 재미교포 김경준을 하루빨리 한국으로 송환해서 재판한다면 나로서는 더욱 좋다. 나는 그에게서 돈만 돌려받으면 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에리카 김 관계]
『재미교포 에리카 김과 부적절한 관계라는 것은 음해다. 남편이 있는 그녀는 성공한 재미교포 2세로 한국에 知人들이 많다』
[숨겨 놓은 아들]
『자신 있다면 구체적으로 몇 살이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누구인지를 밝혀라. 사실이 아니니까 못 밝히는 것 아닌가』
李明博
1941년 경북 포항 출생. 고려大 경영학과 졸업. 현대건설·인천제철·한국도시개발·현대엔지니어링 사장, 현대건설·현대엔진 회장, 아시아수영연맹 회장,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국회의원, 6·3동지회장, 서울시장 역임. 저서 「신화는 없다」,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 등.
金演光 月刊朝鮮 편집장〈yeonkwang@chosun.com〉
金成東 月刊朝鮮 기자〈ksdhan@chosun.com〉
[출생 의혹]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사실을 숨긴 적 없다. 1995년 발간한 자서전에 그 사실을 밝혔다』, 『明博이란 이름은 어머니가 태몽에 달이 너무 밝아서 지은 이름이다』
[병역 의혹]
『나는 기관지 확장증 등으로 면제됐고 기록도 있다. 내 아들들이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하지만 아들은 하나이고, 전방부대에서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다스」 實 소유주說]
『큰형님이 회사를 설립할 당시 주변에 약간의 도움을 부탁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와는 전혀 관계없다』
[봄 위기說]
『소송 중인 재미교포 김경준을 하루빨리 한국으로 송환해서 재판한다면 나로서는 더욱 좋다. 나는 그에게서 돈만 돌려받으면 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에리카 김 관계]
『재미교포 에리카 김과 부적절한 관계라는 것은 음해다. 남편이 있는 그녀는 성공한 재미교포 2세로 한국에 知人들이 많다』
[숨겨 놓은 아들]
『자신 있다면 구체적으로 몇 살이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누구인지를 밝혀라. 사실이 아니니까 못 밝히는 것 아닌가』
李明博
1941년 경북 포항 출생. 고려大 경영학과 졸업. 현대건설·인천제철·한국도시개발·현대엔지니어링 사장, 현대건설·현대엔진 회장, 아시아수영연맹 회장,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국회의원, 6·3동지회장, 서울시장 역임. 저서 「신화는 없다」,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 등.
金演光 月刊朝鮮 편집장〈yeonkwang@chosun.com〉
金成東 月刊朝鮮 기자〈ksdhan@chosun.com〉
李 前 시장은 지난 3월12일 오전, 그의 大選 캠프인 서울 종로구 견지동 소재 「안국포럼」 사무실에서 月刊朝鮮과 인터뷰를 갖고 재산형성 과정, 자신과 아들의 병역 문제, 어머니의 일본人 의혹 등 각종 의혹에 대해 답변했다. 시중에 떠돌고 있는 在美 여성 변호사 에리카 김과의 염문說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답변했다.
검증공방이 이루어진 이후 언론매체와는 첫 공식 인터뷰다. 각종 의혹에 대해 『음해성 루머』라고 강력하게 부정하는 李시장의 모습은 작심한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검증공세가 두 달 가까이 이어져 오면서 「요즘 1대 9로 싸우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도 했죠.
『앞으로 좀더 당하겠지(웃음)』
―검증공방을 거치면서, 大選에 괜히 나와서 李 前 시장께서 지금까지 쌓아올린 「현대의 신화」, 「근대화의 신화」에 먹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는 안 했습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저는 국민의 의식이 정치인의 의식보다 더 미래지향적이고 더 앞서가고 있다고 봐요. 검증공방이라는 게 과거 지향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거든요. 저는 오히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국민들로부터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죠』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그런 느낌을 받나 보죠.
『현장을 다니면서 많이 느끼죠. 저는 기업인으로서 최선을 다한 사람이고 또 거기에서 성과를 이루었던 사람입니다. 검증하는 과정이 길어지면 상처를 입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 과정을 통해 오히려 단단해지고 검증과정에서 상처가 회복 가능하다고 봐요』
―제기된 의혹 가운데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사실을 李시장이 숨겨 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제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숨긴 적이 없어요. 제가 쓴 자전적 에세이집인 「신화는 없다」에 그 사실을 밝혔어요. 1995년 1월에 나온 책이에요.
일제시대 때 부모님이 일본에서 사셨기 때문에 거기서 태어난 것은 당연한 거죠. 아버지는 일본에서 남의 집 목장에서 牧夫(목부)로 계셨어요. 광복 후 온 가족이 귀국하다가 대마도 앞에서 배가 침몰해 가족이 목숨은 건졌지만 그나마 얼마 되지 않던 재산을 다 잃어버리게 된 사실까지 적어 놨어요』
―왜 그런 의혹이 제기됐을까요.
『인터넷에서 그 소문이 퍼졌어요. 제가 스스로 밝혔는데도 그 사실을 제가 비밀에 부쳤다는 식으로 허위 폭로한 거죠. 어느 인터넷 매체에서 연락이 왔기에 사실을 설명했는데 또 다른 사람이 그것을 계속 재생산해 내고 있어요. 저는 지금 나올 것은 다 나오는 게 오히려 좋다고 봅니다』
李시장은 일본 혈통?
―「어머니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李시장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 나왔는데요. 李明博이라는 이름도 그래서 일본식으로 지은 것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어머니는 일본여자고 아버지는 조총련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더군요. 저를 음해하려는 아주 저질적 음모라고 봐요. 우리 어머니가 생모인지 아닌지는 근거를 찾으려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이잖아요. 인터넷을 보니까 제 이름이 明治維新(명치유신)의 「명」 자, 伊藤博文(이등박문)의 「박」 자로 이명박이 됐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제 이름은 어머니 태몽에 보름달이 너무 밝아서 밝을 明(명), 넓을 博(박)을 써서 이름이 붙여진 거예요』
―아드님의 병역기피 의혹도 나오는데.
『우리 아들이 멀쩡히 전방부대에서 사병으로 軍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했는데도 군대를 안 갔다고 해요. 아무리 사실을 이야기해도 계속 의혹이 있는 것처럼 생산해 내요. 한국정치의 저질 폭로를 통한 네거티브 공격의 전형적인 방법이라고 봐요. 의혹을 제기했다가 「아니면 말고」식으로 갑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이른바 汎여권의 후보는 빨라도 10월 말이나 11월 초쯤 정해질 전망입니다. 한나라당 경선을 통과하더라도 여권 후보가 정해질 때까지 링 위에서 상대도 없이 혼자 매를 맞는 상황이 올 텐데 걱정되지 않습니까.
『거듭 말하지만 저는 검증 자체에 대해 걱정되는 것은 없습니다. 늘 돌아다니던 이야기에 뭐가 보태지는 식인데 그건 완전 음해성이기 때문에 그때마다 바로 밝혀질 수 있는 거다 이거죠』
―소설가 김진명씨가 그의 소설 「나비야 청산가자」에서 등장인물 가운데 일본인의 입을 빌려 「한국 사람들이 지금 가장 치를 떠는 게 부동산 문제인데 땅부자가 대통령 선호도 1위라는 것은 非이성적 선택」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소설이기는 하지만 李시장을 겨냥한 비판으로 보이는데 국민의 정서를 반영하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부동산 등 재산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부동산 사본 적 없다』
『재산 문제에 관한 한 서울시장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등을 통해서 충분히 검증됐다고 봐요. 저는 깨끗한 재산이 많은 사람은 존경받아야 하고, 적은 재산이라도 부정한 방법으로 벌었다면 그것은 지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업의 CEO로 있으면서 정당하게 세금을 냈습니다. 부동산 투기를 한 것도 아니고 당시 몸담고 있던 회사에서 제공한 그 재산 외에는 없어요. 저 스스로 부동산을 사본 일도 없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부동산은 모두 회사에서 일한 것에 대한 代價와 관련돼 나온 것밖에 없거든요.
제가 부동산 투기를 했다고 하는데 이런 이야기는 정치적 목적이 있어서 나오는 거라고 봐요. 그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제 재산형성 과정을 제대로 알고 썼으면 오히려 감동적으로 들었을 거예요. 그 소설가가 재산형성과 관련된 사실을 알아보기 위해서 단 1분의 노력도 안 했을 거예요』
―35세에 대기업 사장이 되고 기업인으로서 富(부)를 쌓았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않고 일반인들보다 많은 재산을 가졌다는 이유로 공격당하는 게 서운하다는 뜻인가요.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재산을 전부 합쳐도 현재 유수의 국내 대기업 CEO 1년 연봉보다 적어요. 지금 CEO를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갖기도 하죠. 제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최장수 CEO가 아닙니까. 제 재산 형성과정에 당시 관련했던 사람들이 다 살아 있어요.
제가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를 했다면 그분들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겠습니까. 재산형성 과정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당당해요. 제기된 의혹을 보니까 강남에서 부동산을 사고팔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서울에서 부동산 투기를 전문으로 한 사람이 서울시장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현대건설의 개발계획이 있는 곳에 미리 땅을 사서 큰돈을 벌었다」는 요지의 부동산 투기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답답한 이야기죠. 저는 기업에 있을 때, 鄭周永(정주영) 회장과 협의해서 회사의 장기 개발계획에 관련된 부근에 땅을 가졌던 모든 회사 간부들에게 그 땅을 전부 회사에 내놓도록 지시했습니다. 본인들의 상당한 반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부 회사가 회수했어요. 제가 그런 일을 했던 사람이에요. 그랬던 사람이 그렇게 투기를 했겠어요?』
―「사고팔고를 안 했다」고 했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부동산을 갖고 있었습니까.
『1972년에 구입한 조그마한 땅은 35년이 넘었고, 다른 것도 보유한 지 20년, 30년 넘는 재산이에요. 그 후에는 취득한 재산이 없어요. 당시에는 가격이 얼마 되지 않았던 게 지금은 높아져서 재산이 늘어난 것이지 제가 어디에 투자해서 만든 재산이 아니잖아요.
제가 부동산 투기를 했으면 재산은 엄청나게 늘어났겠죠. 투기를 하려면 사고팔아야지 지금까지 그 재산을 뭐 하러 갖고 있었겠어요. 저는 사고 팔 시간도 없었어요』
―「李시장의 큰형(상은)과 처남(김재정)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인 (주)다스(DAS·舊대부기공)의 실제 소유주가 李시장이다」라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1987년 다스 설립 당시 李시장은 현대건설 사장으로 있었습니다. 다스가 현대자동차 협력업체로 선정되는 데 힘을 쓸 수 있는 입장이지 않습니까.
『그 당시 저는 정치하려는 생각이 없던 때예요. 그때는 자동차 부품 국산화 정책이 추진될 때여서 회사가 권해 간부들 여럿이 그런 회사를 만들기도 했어요.
鄭周永 회장과 정세영 회장이 다 합의해서 그렇게 한 거예요. 그때 제가 형님이 하는 공장을 현대건설이 못 짓게 했어요. 쓸데없는 오해받을까 봐서요. 鄭周永 회장이 그 소리를 듣고 「돈 받고 하는 건데 왜 못해 주느냐」고 하셔서 현대건설이 건물을 지어 준 겁니다.
제가 위장해서 운영하는 회사라면, 鄭周永 회장이 「왜 공장을 현대가 안 짓느냐, 형인데 어떻겠느냐, 돈 받고 지어 주는데 왜 안 지어 주느냐」, 심지어 「실비로 지어 주라」고까지 이야기했겠어요? 그리고 제가 실질적 소유주라면 뭐하러 복잡하게 형님 명의라고 거짓말을 하겠어요』
최고의 검증은 「재벌 총수의 검증」
![]() |
| 현대건설 신입사원 수련회에 참석한 鄭周永과 李明博. |
『검증 가운데 최고의 검증이 무엇인지 아세요. 재벌 총수의 검증이 최고의 검증이에요. 재벌회사의 전문경영인에 대한 검증제도는 정부나 감사원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강해요. 만약 삼성그룹의 CEO가 위장으로 자기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면 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LG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다스의 실소유자라고 하는 소리는 大기업의 메커니즘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다스가 제 소유라면 그룹 오너가 어떻게 해서 그걸 지어 주라고 했겠어요. 서초동에 있는 집은 현대건설이 지은 건데 원래 그곳이 공한지였어요. 공한지면 세금이 나와요. 鄭회장한테 「땅 도로 가져가고 대신 돈으로 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집을 짓게 된 거예요. 집을 다 지어 갈 때 제가 회사를 그만둔 거예요. 그래서 그 옆에 있는 땅을 변호사협회에 팔아서 공사대금을 나중에 갚은 거예요. 회사를 그만뒀는데 외상으로 할 수 없잖아요. 제가 부동산 투기를 했으면 회사가 집을 지어 줬겠어요? 사람들이 그런 것을 이해 못 해요. 저로서는 너무 상식적이기 때문에 변명을 안 하는 거예요』
―1996년 총선에서 종로에 출마했을 때 다스 소속 사람들이 와서 선거운동을 지원한 사실이, 李시장이 실소유주라는 방증으로 인용됩니다.
『우리 선거운동원 중 한 사람이 다스 소속이었죠. 동생이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는데 형님이 그 정도도 안 도와주나요. 선거운동원 하나 안 보내 주면 형하고 저하고 원수졌다는 얘기밖에 더 되겠어요. 그걸 위법·불법이라고 하면 鄭周永 회장이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지원활동 벌인 그 형제들과 자식들을 처벌해야 하는 건가요. 아무리 정치공세지만 금도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에리카 김과의 만남
![]() |
| 1989년 소련 방문시 레닌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한 李明搏 당시 현대건설 회장, 鄭周永 현대그룹 회장, 안충승 현대중공업 부사장(오른쪽부터). |
李시장은 2000년 2월 김경준씨와 공동으로 각각 30억원씩을 투자해 「LKeBank」라는 회사를 설립, 공동대표를 맡았다. 다스도 190억원을 투자했다. 2001년 3월 금감원 조사에서 김경준씨가 LKeBank에 투자한 30억원은 BBK의 회사자금으로 드러났고, 金씨는 이 외에도 각종 서류를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이 밝혀진 직후 李시장은 공동대표직을 사임했다. 金씨는 BBK의 상호를 「옵셔널벤처스」로 바꾼 후 회사자금 384억원을 빼돌린 뒤 위조여권으로 출국했다.
김경준씨는 미국 검찰에 체포돼 한국 송환 판결을 받은 상태다. 李시장과 다스 측은 미국에서 金씨를 상대로 각각 30억원과 140억원의 피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李시장은 김경준씨와 LKeBank의 공동대표를 했습니다. 30억원을 개인적으로 투자했고, 李시장의 처남이 대주주로 있는 다스는 19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김경준씨에게 피해를 당하고 투자금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미국에서 진행 중인 걸로 압니다. 에리카 김이라는 여성과 그의 동생을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그때 보니까 삼성·현대 등 많은 기업들이 그 회사에 돈을 맡겼더라구요. 그 당시 1, 2위 회사와 거래했으니까 믿었죠. 제가 알기로는, 에리카 김이라는 여성 변호사는 이전부터 한국사회 여러 지도층 인사들을 많이 아는 사람이에요. 엊그제 김덕룡 의원을 만났더니 에리카 김을 저보다 먼저 알았다고 하더군요. 자기가 에리카 김에 대해 더 많이 안다면서 말이죠.
에리카 김은 교포사회에서 성공한 2세로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 출판기념회도 했고요. 제가 가서 보니까 김덕룡 의원 등 국회의원들이 많이 왔더군요. 에리카 김 남편도 테이프 커팅하는 데 같이 있더라고요』
에리카 김 부모의 요청
―에리카 김의 동생과는 어떻게 사업을 함께 했습니까.『에리카 김의 부모님이 교회의 장로이고 권사였어요. 한국에 오셨을 때 저를 찾아왔어요. 「우리 아이들을 어렵게 공부시켰다. 어느 정도 성공했으니까 한국에 진출하는 데 좀 도와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부모님들이 믿을 만하고, 에리카 김도 한국사회에서 알려졌으니까 그 동생을 별로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 후에 동생이 새로운 분야의 일을 한다고 찾아왔어요. 저는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이지만, 그가 전문가이기도 하고 그의 부모님의 당부도 있고 해서 투자했어요. 그때 제가 놀고 있던 때라 뭐라도 해야 했어요. 그런데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취소가 된 거죠』
―김경준씨와 왜 결별하게 된 겁니까.
『그 당시 회사가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받는다고 해서 제가 「금융감독원에서 조사해 지적받을 정도면 같이 일을 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가 헤어지는 게 좋겠다고 해서 헤어진 거죠.
헤어지면 당연히 금전관계를 청산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돈을 안 돌려 줘요. 국내에 있는 줄 알았더니 나중에 보니까 미국에 가서 구속이 되었더라고요. 또 다른 건으로 고발이 되었던 모양이죠. 그 사실을 알고 제가 고소한 거죠』
김경준 한국 송환과 3월 위기說
―市中(시중)에는 김경준씨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강제 송환되면 李시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봄 위기說」이 나돌았습니다. 金씨의 변호인이 법정에서 『BBK는 이명박 시장의 회사다』라고 주장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빨리 오면 더 좋죠. 국내에서 재판하면 진실이 더 빨리 밝혀질 것 아닙니까. 정치적으로 누가 뭐라고 이야기해도 먹힐 수 없어요. 투자했는데 청산을 안 하고 도망을 갔고, 그래서 제가 손해를 봐서 고발했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더 이상 뭐가 있겠어요.
BBK는 제가 투자하기 전부터 그 친구(김경준)가 운영하던 회사예요. 시기적으로 맞지 않아요. 2002년에 「시사저널」에 그 기사가 나간 적이 있는데 언론중재위에서 「이명박 시장은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라는 결정이 내려졌어요. 저는 그 친구가 미국 법정에서 그런 주장을 해도 미국은 법이 공정하니까 있는 사실 그대로 판결이 나올 거라고 봐요』
―李시장과 에리카 김이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냐,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덕룡 의원이 그 이야기를 듣고 웃더라고요. 金의원이 에리카 김을 잘 아는지 사실은 나도 몰랐었어요. 에리카 김은 남편이 있는 사람이에요. 무슨 그런 관계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것까지 음해하는 것을 보니까 참 한심해요』
―김경준씨와의 소송은 계속할 겁니까.
『그렇죠』
―「大選 출마와 상관없이 소송을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말씀이시죠.
『법은 법대로 하는 거죠. 송환돼 오면 한국에서 하는 것이고. 그가 사실을 인정하고 잘못을 인정하면 저는 그것으로 끝이고, 손해 본 것을 찾으면 되는 거예요. 그 손해 본 돈을 찾으면 좋은 일에 쓰려고 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네요. 이제 오래가지 않을 거예요. 막바지에 온 것 같아요』
김유찬의 폭로와 「이명박 리포트」
―김유찬씨의 「이명박 리포트」를 읽어 봤는데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상의 특별한 내용은 없더군요. 그래도 「내가 사람을 잘 못 봤다」 하는 자책은 있을 것 같습니다. 김유찬씨 이야기 중 『이명박씨 아래서 일했던 사람이 다 곤궁하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심정은 어떻습니까.『그 친구의 말일 뿐이죠. 그 친구가 제 밑에서 일하게 된 것은, 본인이 직접 편지를 보냈어요. 자기는 서울大를 나와 정보장교를 했고, 평소 존경하는 이명박씨를 돕고 싶다는 장문의 편지를 사무국장에게 보냈어요.
그때 우리는 사람이 모자랐으니까 이 사람 저 사람 가릴 것 없이 다 모아야 할 형편이었어요. 왜냐하면 이종찬씨가 사람을 다 데려갔기 때문이죠. 그렇게 해서 쓰게 된 거예요.
국회 보좌관을 겸임하고 있던 사무국장이 「서울大까지 나온 사람을 소속도 없이 월급도 주지 않는 자원봉사자로만 쓸 수 없다」며 자기 밑에 6급인가 7급인가 자리가 비어 있으니까 임시로 거기에 소속을 두게 했어요. 그 친구는 국회에서 일한 것은 아니고 선거 현장에서 일했어요. 선거 끝나자마자 이종찬씨를 찾아가더군요』
―그렇다면 왜 김유찬씨와 鄭寅鳳 변호사가 종로 선거관련 폭로를 할 때 반박하지 않았습니까.
『그 친구는 제가 직접 뽑은 것이 아니고 제 밑에서 정식으로 일해 본 경험도 없어요. 이번에 김유찬 문제가 나왔을 때 제가 일언반구도 안 했어요. 「이명박의 국회 비서관으로 있었다」고 하니까, 국민들은 국회에서 비서관으로 오래 데리고 쓴 것으로 아는데,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변명같이 보이잖아요. 그냥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번에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김유찬이 「이명박 시장의 대리인」이라고 하면서 돌아다녔다는 사실입니다. 저로서는 큰일 날 뻔한 거죠. 실무 과장 선에서 자격여부를 따져서 김유찬씨에게 상암동 DMC 사업권을 안 주는 것으로 결정했다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큰 실수를 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암동 사업권을 주고 일하게 했더라면 큰일 날 뻔한 거죠』
『김유찬과 한 시간도 마주 앉은 적 없다』
―김유찬씨가 쓴 「이명박 리포트」의 원고를 읽다 보니 김유찬씨가 李시장의 비서관을 지낸 이광철씨를 「인격이 훌륭한 분」이라고 극찬했던데, 그분은 지금 무얼 하고 있습니까.
『나중에 안 이야기인데, 이광철 비서관이 「김유찬이 살기 힘드니까 배신은 했지만 좀 도와줘야 하지 않느냐」고 사무국장에게 권유했다고 해요. 다른 사람은 사람 취급을 안 해주는데 이광철씨가 그 친구를 불쌍하게 여겼던 거죠. 그 사람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거든요. 참 마음이 여리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미국에 이민 간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 선교 계통의 일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김유찬씨가 당초 의혹을 제기할 때는 「李시장 쪽에서 해외로 도피하라고 돈을 줬다」고 했는데 「이명박 리포트」에는 자기가 선거자금 관련 폭로를 하고 나니까 미안해서 「이광철 비서관을 찾아가 외국에 나가겠다고 했다」고 썼더군요.
『나중에 알았어요. 그래서 이광철 비서관을 나무랐죠. 「한 번 배신한 사람은 또 배신할 텐데 왜 그렇게 했느냐」고. 그 후로 李비서관이 면목이 없으니까 저한테는 말을 못 하고 사무국장한테 이야기해서 김유찬씨를 도와준 것 같아요』
―김유찬씨가 「영등포 구청장에 출마할 때 선거 비용은 李시장 진영에서 사실상 끌어다 쓴 것」이라고 썼더군요
『저는 그 친구와 단 한 시간도 마주 앉아서 이야기해 본 경험이 없어요. 선거 때 보니까 여자들 앞에서 마이크 들고 연설을 하는데 말을 참 잘하더군요』
―열린당 민병두 의원이 지난해 12월 『1주일에 한 건씩 李시장 검증을 하겠다』고 하더니 수개월째 조용하네요.
『한 건 했잖아요. 박정희 선글라스(웃음)』
―열린당은 최근 『앞으로 李시장의 부동산 문제 검증에 집중하겠다』고 합니다.
『여당이 너무 무책임하게 하는 것은 보기 안 좋네요. 왜 여당이 한나라당까지 관여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어요(웃음). 민병두 의원이 그랬던 것처럼 한번 해본 소리겠죠』
―검증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공식적인 증거를 내놓는 것도 아니고 폭로성으로 일관하니까 그렇죠. 정인봉씨의 폭로를 봐요. 폭로한다고 서류 들고 왔는데 신문기사였잖아요. 사실 명예훼손인데 그렇게 폭로해 놓고 이제 와서 사과했어요. 저는 사과를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잠시라도 국민에게 의심을 준 일인데 얼마나 무책임해요. 폭로 서류라는 게 신문 카피를 떠서 그것도 네 부를 떠서 두껍게 해서 들고 다닌다는 게 사실 좀 황당하지 않아요? 황당한 것까지 일일이 이야기할 수 없어 그 후에 제가 입을 다물고 있었죠.
지난 번 국회에서 정책 포럼할 때 우리 당원들에게는 이야기를 했죠. 「아무튼 당원들 마음을 걱정스럽게 만든 것에 대해서 제가 참 미안하다」고 말이죠』
―鄭東泳(정동영) 前 열린당 의장이 『이명박 시장은 사장 돈 벌어 주기 위해서 일한 사람이지 공익을 위해서 일한 사람이 아니다』고 공격했습니다. 비즈니스 섹터의 사람이 퍼블릭 섹터에서 일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문제제기인데.
『자기가 장관하면서 盧武鉉 대통령만을 위해서 일했나요? 盧武鉉씨 밑에서 일했지만 국민을 위해 일한 거 아니에요? 제가 鄭周永 회장을 부자 만들려고 밤 잠 안 자고 일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논리가 여러 가지 네거티브를 만들어 내는 거죠. 그래서 우리 정치권이 발전을 못 하는 거예요. 페어플레이를 해야 하고 경쟁을 해야 하거든요. 제가 大운하를 하겠다고 하면, 자기도 뭘 하겠다고 해야지, 자기는 정책을 내놓지 않고 계속 물고 늘어지는 것은 곤란하죠』
―이른바 검증공방, 난무하는 의혹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 각 부문의 자율성, 자체 정화능력 이런 것들을 너무 무시하는 태도가 아닌가, 그런 느낌이 듭니다.
『말은 검증이라고 하지만 너무 음해성·폭로성이라서 유치하기 때문에 제가 대응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혹시 너무 대응 안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는 하죠』
『이명박은 한방에 날린다』는 주장들
―검증공방이 벌어지면서 李시장의 지지율이 약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은 느끼시죠.
『그게 아니더라도 3% 정도는 아래 위로 움직일 거라고 봤죠. 47%에서 43%식으로 말이죠. 2~3%는 움직이더라고요』
―검증공세 와중에 李시장 측에서 강하게 대응을 안 하니까 일반 국민들은 「뭔가 숨기는 게 있으니까 저렇지」 하는 생각이 증가하는 것 같습니다.
『검증 논란에 직접 대응해서 「아니다」고 하는 게 좋은 것인가, 그냥 놔둬서 「그렇게 떠들고 시끄럽던 게 알고 보니 아니다」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바꾸어 놓는 게 좋은지는 생각의 차이일 거예요』
―여권은 물론 경쟁자인 朴槿惠 의원쪽에서 『이명박은 네거티브 한방이면 간다』는 얘기가 계속 나옵니다. 李시장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는 방법을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건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어요. 이번에는 당내에서 검증 문제가 나왔잖아요. 예를 들면 박근혜 대표께서 「검증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제가 김유찬·정인봉 문제가 朴 前 대표하고 관련 있는 것처럼 공격을 해보세요. 제가 나서면 朴 前 대표와 바로 대응을 하는 것으로 보이잖아요.
사실 저는 朴 前 대표를 의식해서 아무 대응을 하지 않았어요. 김유찬이가 떠드는데, 거기에 대해 대응을 하면 朴 前 대표와 바로 대응되는 것으로 보이잖아요』
―여론조사 지지율 1위 후보로서의 자신감입니까.
『아무튼 제가 앞서가는 사람으로서 당이 화합해 같이 가자는 입장이니까, 맞대결하는 상황을 피하려고 합니다』
―김유찬 사건을 보면 李시장 입장에서 「대응 안 한 게 잘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일이 대응을 했다면 그 사건이 한두 달은 끌었을 테니까요.
『김유찬씨 폭로 얘기를 듣고 정말 황당했습니다. 김유찬씨의 폭로를 뒤에서 기획한 사람이 있다면, 김유찬씨가 얼마 후에 그 사람을 또 폭로하지 않을까요』
『부동산 임대 소득의 세금 제대로 냈다』
―부동산에서 나오는 임대수익의 세금은 정확히 내십니까.
『세금 안 냈으면 서울시장 4년을 어떻게 했겠어요. 서울시장 재직 때 저에 대해 투서하고 모략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무슨 부탁을 했다가 안 들어 주면 여당에 투서하고. 한번은 어떤 잡지사에서 제가 큰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취재를 한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어요. 문제가 있다면 제가 서울시장을 무사히 마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국민 정서상 재산이 많다는 게 약점으로 작용할 텐데.
『국민들은 부를 어떻게 쌓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으로 봅니다. 저는 기업에 있을 때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던 사람이에요. 제가 부자라고 시비를 거는 사람과 비교한다면, 아마 같은 1년을 벌어도 저는 그 사람이 10년을 번 것과 같을 거예요.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지금 무슨 돌아다니는 소문을 가지고 검증한다고 해서 흔들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요즘 세상에 숨긴다고 숨겨지나요? 月刊朝鮮에 나왔지만, 숨겨진 아들이 LA에 있다는 말도 있었잖았아요(웃음)』
―아직 숨겨진 아들은 안 나타났습니까.
『있어야 나타나지(웃음). 사실이라고 주장한다면 자신 있게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고, 나이는 얼마고, 무얼 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죠. 사실이 아니니까 못 밝히잖아요』
『리더에 따라 경제상황 달라진다』
화제는 李明博 시장이 자신 있는 경제문제로 옮겨졌다. 검증공방 관련 이야기 때처럼 그의 답변은 거침없었다.
―최근 李健熙(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우리나라가 5~6년 후에는 아주 혼란스러워질 것』이라면서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경제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李회장은 우리 경제뿐만 아니라 삼성까지도 5~6년 후에 어려워질 거라고 했는데요.
『삼성이 5~6년 후에 위기를 맞는다는 얘기는 정권에 대한 경고일 겁니다. 왜냐, 삼성조차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고 하면 다른 데는 어떻게 되겠어요? 말할 게 없잖아요? 경고성으로 발언했다고 보는데, 상당히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고 봅니다』
―盧武鉉 정부에서도 4% 정도의 경제성장은 이룩했지 않습니까.
『지난 4년간 盧武鉉 정권에서 4% 정도의 경제성장을 한 것은 우리 내부의 경제성장 동력이 있어서 된 게 아니고, 세계경제가 좋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세계경제가 전례없이 좋으니까 수출산업이 잘된 것이죠. 우리의 성장은 수출에 의지해서 이룩된 겁니다. 반면 내수시장은 침체돼서 체감 경제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기업들은 앞으로 5~6년 내에 세계경제가 지난 4~5년 만큼 좋지 않을 것으로 보는 거죠. 게다가 환율이 굉장히 위험 수준에 다가왔단 말이에요. 우리가 수출경기에 의해 경기가 유지되었는데, 수출산업마저 어려워지고 환율 문제 때문에 수익이 떨어진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거예요』
―수출산업에서의 수익률 저하가 우리 경제를 급속도로 위축시킬 것이라고 보십니까.
『물론이죠. 첨단 산업이라고 하는 것은 기술개발과 再투자가 계속되어야 합니다. 옛날 제조업은 이익이 10% 이하로 발생해도 돼요. 5% 이하까지도 괜찮은데 첨단과학기술 분야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계속 투자를 해야 되고, 시설투자를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이익률이 떨어졌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지는 것이죠. 일반 제조업하고는 달라요. 그러니까 위기감을 안 느낄 수 없는 거죠.
삼성그룹은 첨단업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끊임없이 기술개발을 해서 다른 데 보다 앞서가야 하고, 앞서간다는 것은 더 많은 연구투자비를 써야 된다는 거 아니에요? 거기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李회장이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표현을 했다고 봅니다』
―닥쳐올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지고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죠. 새로운 시작은 어디서 오느냐, 분위기 개선이 굉장히 중요한데 분위기 개선은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져요. 기업의 CEO가 누구냐에 따라 기업 분위기가 달라지죠. 학교 총장이 누구냐에 따라서 학교 분위기도 달라지는 거죠. 분위기의 개선이 없으면 우리 경제는 굉장히 어려워져요』
―투자가 너무 위축되고, 기업인의 사기가 꺾인 게 경기 침체의 가장 큰 원인이겠죠.
『투자라고 하는 것은 우선 과학적으로 생각해서 되는 투자도 있지만, 투자 환경, 분위기에 많이 좌우되잖아요. 우리 기업들의 투자가 해외에서 이뤄졌습니다.
국내의 투자를 보면 투자율이 연 1%거든요. 사상 유례없는 투자 불황이에요. 과거 우리 투자율이 15~17%에서 지금은 1%가 돼 버렸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2000~2005년간 인건비는 50% 올랐어요. 일본은 불과 1%밖에 안 올랐어요』
―우리 기업의 임금이 그렇게 많이 올랐습니까.
『주로 大기업이 주도한 것이죠. 투자는 1% 늘어났는데, 임금은 150%가 되었단 말이에요.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거죠. 이것을 극복하고 살 길은 高성장은 아니더라도 中성장, 적어도 5~7% 정도의 성장은 유지해야 하죠.
그 정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우리 경제가 와 있단 말이에요. 회사가 위기를 만나면 꼭 CEO를 바꿉니다. 똑같은 원리로 나라가 위기를 극복하려면 국가의 CEO를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 제 말은 정치적 논리가 아니고 경제적 논리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7% 성장이 가능하려면
―우리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한 복안으로 향후 10년간 7% 성장을 지속해서 4만 달러 시대를 열고, 7大 강국에 진입하겠다는 국민운동 「대한민국 747」을 제안하셨는데, 7% 수준의 성장론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봅니까.『이론이 많습니다. 盧武鉉 대통령이 7% 한다고 하면, 그 7%는 달성 못 할 목표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할 수도 있고요. 「7%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여건이 어려운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현재의 우리 경제 패러다임으로는 맥시멈 5% 성장은 할 수 있어요. 7% 성장을 위해서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데, 결국은 투자 확대거든요.
세계화하고 개방하면서 국내외 투자가 있어야 해요. 그걸 하기 위해서는 노사문화의 개선과 기초질서의 확립이 필요해요. 기초질서가 확립되고 법질서가 확립되는 것만으로도 1% 성장을 할 수 있어요. 나머지 1%는 리더의 몫입니다』
―법질서 확립도 리더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면, 결국 리더의 역할에 따라 2%의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말씀이군요.
『패러다임을 바꾸고 어떻게 경제를 이끌어 가느냐가 중요하죠.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경제성장률 1~2%는 달려 있어요. 5~6% 성장까지는 제도 개선 등을 통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어요. 현재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으려는 마인드를 바꿔서 적어도 4~5%까지는 투자를 해야 해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하죠.
「현재로서는 7%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사람의 주장이 맞아요. 그냥 노력하면 5%까지 할 수 있지만 제도를 고치고 하면 6%까지 성장할 수 있어요. 그래도 목표는 7% 성장으로 잡아야죠. 우리가 함께 하면 할 수 있어요. 근대화하면서 「우리 한번 잘살아 보자」고 뭉쳤잖아요. 한번 뭉치면 7% 성장, 나아가 8% 성장도 이룩할 수 있어요. 그렇게 국민을 뭉치게 하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죠』
李明博 시장에게 現代는 운명이다. 현대는 李시장에게 「이명박 신화 탄생」의 터전을 제공했고, 李시장은 故(고) 鄭周永 회장과 함께 현대그룹의 성장을 이끌었다. 李시장은 인터뷰에서 현대그룹 재직 시절 鄭회장과 얽혀 있던 인간관계에 대해 담담하게 술회했다.
현대와 鄭周永 그리고 李明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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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초반 현대건설 사장 시절 鄭周永 회장과 경영문제를 협의하고 있는 李明博 前 시장. |
『제가 입사 5년 만에 이사가 됐어요. 결국 제 회사 생활의 거의 전부가 CEO였죠. 사실상 부사장·전무 때 벌써 CEO를 했으니까, 20년 가까이 CEO를 한 거죠』
―月刊朝鮮이 지난 2월호에서 「수출 3000억 달러, 기적을 만든 사람들」이라는 별책부록을 냈습니다. 무역 종사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3000억 달러 수출에 가장 기여한 사람으로 「鄭周永 회장」이 선정됐습니다. 현대종합상사 陰龍基(음용기)씨가 鄭周永 회장을 기리는 글을 써주셨습니다. 「鄭周永 회장이 호랑이 같아서 화를 내면 형제들도 오금을 저렸다」는 내용이 있던데, 그런 분하고 어떻게 호흡을 맞추셨습니까.
『동생들이 鄭회장님을 무서워한 건 사실이죠. 그건 아마 형과 동생 관계였기 때문에 그랬을 거예요. 저와는 어쩌면 상호보완적인 비즈니스 관계였다고 볼 수 있어요』
―어떤 면에서 두 사람이 잘 맞았습니까.
『우리 두 사람이 비슷한 게 많다고들 했는데, 비슷했으면 오래 같이 못 했을 거예요. 재벌 회사를 보면 CEO들이 계열사 내에서 이리 저리 옮기는데 저는 현대에 들어가서 母기업인 현대건설의 CEO를 하면서 다른 기업 CEO를 겸직했지 母기업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어요. 鄭周永 회장님이 母기업의 명예회장이면 저는 회장, 회장이면 저는 사장, 이런 관계를 일평생 유지해 왔어요.
제가 현대건설에 들어갈 때는 종업원 98명의 건설회사였어요.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 「서로가 도움이 되었다」고 봤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鄭회장과 다퉈서 열흘씩, 보름씩 말을 안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상호 필요성에 의해서 서로 인정했죠』
鄭周永이 친필로 써준 감사장
―鄭周永 회장은 李시장의 어떤 점을 높이 샀습니까.
『같이 일해 보면 자기 생색내기 위해 자기 공로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죠. 전문경영인 위치에서는 오너의 인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차원은 뛰어넘었다고 생각하죠.
鄭周永 회장이 오너로서 생각하는 회사에 대한 마음을 저도 똑같이 갖고 있었다고 봐야죠. 그때는 제 개인과 회사의 관계에서, 「先(선)회사」의 개념을 가졌던 거죠. 그러니까 회장께서는 부담이 없었죠. 회사가 위기를 맞고 장남인 정몽필 회장이 돌아가셨을 때 鄭회장이 감사장을 저한테 친필로 써 주셨어요.
「회사의 위기 때마다 이명박 회장이 위기관리를 잘 해서 오늘날까지 회사가 안전하게 발전할 수 있었다. 정말 진심으로 나는 이명박 회장에게 감사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아마 장남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회사에 대한 마음을 한번 정리하려고 그런 글을 써 주셨던 것 같아요』
―친필 감사장을 지금도 갖고 계십니까.
『어디 있을 거예요. 저는 사실 중소기업인 현대에 들어갈 때는 임시로 들어갔다가 나오려고 했지만 거기서 그 시대의 걸출한 기업인을 만났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운명이라고 볼 수 있겠죠. 鄭周永 회장은 개발연대의 巨人(거인)이었고, 無에서 有를 창조한 분 아니겠어요?』
―李시장이 「처세의 달인」이라는 말도 있는데 鄭周永 회장을 모실 때 그분의 심기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 신경 쓴 것이 있었습니까.
『비위를 맞춘다든가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鄭周永 회장이 저를 인정하고, 저는 또 鄭周永 회장을 존경하니까 그런 바탕 위에서 일했어요. 서로 딱 몇 마디만 하면 알아들었죠.
어떻게 보면 鄭周永 회장이 저를 전문경영인의 봉급생활자로 인정을 한 게 아니고 비즈니스를 해 나가는 가운데 뭐랄까… 서로 협력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신뢰의 대상도 될 수 있는 그런 관계로 우리 사이를 설정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鄭周永 회장이 大選 출마할 때 李시장은 반대하셨죠.
『많이 반대했었죠』
―지금은 李시장이 大選 출마를 준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鄭회장은 오너시고 저는 전문경영인이니까요. 전문경영인은 그 자리를 떠나면 입장도 떠나지만, 오너는 떠나더라도 大주주로서 남는 거잖아요』
『「인천제철 달라」고 한 적 없다』
―현대에서 떠날 때 「인천제철을 달라」고 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제가 鄭周永 회장을 얼마나 잘 알고 현대를 얼마나 잘 아는데, 또 인천제철을 달라고 한다고 해서 주겠어요? 그리고 기업을 어떻게 주고 그래요. 그건 상식의 문제예요. 저하고 헤어진 다음에 月刊朝鮮 기자가 鄭周永 회장을 보름간 따라다니면서 그 이야기를 물어봤다더군요. 그건 상식에 안 맞는 이야기죠.
그 이야기는 이렇게 추측이 되네요. 제가 그룹의 발전에 기여한 공이 너무 크니까 어떻게 그냥 나올 수 있겠느냐, 하는 생각에서 누가 지어 낸 말인 것 같아요.
저는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관계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CEO를 오래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 허튼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 鄭周永 회장이 저를 키웠겠어요. 호랑이를 키웠겠어요? 그래서 의견이 달라서 헤어지고 난 다음에도 서로 존중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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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前 시장과 인터뷰하고 있는 김연광 편집장, 김성동 차장, 백승구 기자(사진 왼쪽부터) |
북한을 다루는 기준은 글로벌 스탠더드
―지난번 인터뷰에서 『북한도 글로벌 스탠더드로 다뤄야 한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남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크리스토퍼 힐을 만났을 때 「6者회담 관련 국가들이 북한 核을 제거하는 것까지 합의를 이루면, 동시에 개방도 하도록 해라. 북한이 살길이 그게 아니겠느냐. 金正日이 개방되면 자신의 위치가 흔들려서 개방 안 할 거라고 하는데 그것을 안심시켜 줘라」고 했어요. 북한이 개방된다는 것은 결국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간다는 거죠. 인권 문제에서부터 법령의 문제까지 모든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化하는 거죠. 그러면 우리도 비즈니스 관점에서 투자할 수 있죠.
일본도 청구권에서부터 有·無償(유·무상)의 돈이 들어갈 것이고요. 그렇게 해서 북한도 자립경제로 살아야 되죠. 북한이 적어도 국민소득 3000달러 정도로 올라가야 해요. 북한은 과거 800달러까지 올라갔던 경험 있기 때문에, 중국이 100달러도 안 되는 데서 3000달러에 올라가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빠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重慶(중경) 인구가 3500만 명, 上海(상해)가 1400만 명, 하얼빈이 800만 명입니다. 「인구 2500만의 북한 경제를 3000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별것 아니다」고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겠네요.
『우리가 전부 부담해서 살리려고 하면 그건 어렵지만 경제를 자립시키는 것은 가능하거든요. 우리는 100달러에서 시작해 2만 달러 가까이 간 노하우가 있으니까, 우리의 노하우를 가르쳐 주자는 거죠 . 우리가 밀가루와 쌀을 계속 대주면 북한은 앞으로도 10년, 20년 늘 저렇게 살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가 볼 때는 개방하는 길밖에 없어요』
한반도 운하 건설, 정치논리로 왜곡 마라
―「한반도 大운하」에 대해서 親與성향의 인터넷 뉴스매체가 취재단을 구성해서 독일 현지 취재를 한 후 연일 거세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정치적으로 가장 반대되는 입장에 있는 언론기관이고, 청계천 복원·교통개혁을 할 때도 가장 심하게 반대했던 매체이기도 해요. 하지만 청계천 복원과 교통개혁은 성공했어요. 그 후에는 그 분들이 스스로 인정했어요. 「한반도 大운하」에 대해서도 정치적 관점에서 보는 눈이 있죠.
제가 청계천을 복원할 때, 대중교통을 개혁할 때 가장 괴로웠던 것은 정치적 논리를 가지고 대했을 때였어요. 저는 기술적인 문제나 경제적 논리에 대해 서로 토론하는 것은 건강한 토론이라고 보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요』
―「한반도 大운하」 건설에 기술적인 문제는 없는 겁니까.
『기본이 「환경」과 「물」, 「기술적」인 문제 아니겠어요? 물 문제는 홍수 때 넘치는 물의 일부만 이용할 수 있으면 충분히 가능해요. 독일이 향후 50년간 운하를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우리는 더 첨단 기술로 할 수 있죠. 현재 기술적 문제 몇 가지는 전문가들이 검토하고 보완하면 됩니다』
검증공세 속에서도 李시장은 여전히 자신이 넘쳐 보였고, 약속시간을 제대로 지키기 힘들 정도로 그의 캠프는 손님들로 붐볐다.●
사진 : 이오봉
▣ 李시장 父子의 병역기피 의혹
李시장에게 따라다니는 의혹 중에 하나가 병역 기피다. 李시장 본인뿐만 아니라 외아들도 병역을 기피했다는 의혹이 인터넷을 떠돌았다.
李시장은 징집 면제가 아니라 1963년 8월 대학 3학년 때 논산훈련소에 자원입대했다가 질병이 발견돼 귀향조치된 뒤, 국가기관에서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실시한 신체검사에서 폐질병(기관지 확장증 등)이 확인되면서 징집면제 판정을 받았다.
외아들은 1999년 3월 현역으로 입대해 전방에서 근무하다 2001년 5월 만기 제대했다. 李시장 부자의 병역과 관련해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네티즌 1명은, 지난해 6월 서울지법에서 정보통신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죄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 李明博의 재산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李明博 前 서울시장의 재산은 2006년 8월31일 기준으로 총 179억6750만원이다. 서울市報 8월31일자에 따르면, 李 前 시장의 재산은 서울 서초동·논현동·양재동 등 강남권 부동산(빌딩 2채, 상가, 주택, 대지)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재산 명세는 서울 서초동 영포빌딩(건평 1753평) 62억8769만원, 서초동 상가(252평) 46억6646만원, 양재동 영일빌딩(830평) 43억181만원, 논현동 단독주택(대지 203평, 건평 99평) 12억2527만원, 논현동 대지(105평·배우자 명의) 6억830만원, 견지동 서흥빌딩 사무실(79.8평) 전세권 4000만원, 2006년식 에쿠우스 자동차, 2006년식 그랜저TG 자동차, 1998년식 쏘나타Ⅲ 자동차, 본인 예금 9억4576만원, 배우자 예금 및 보험 6728만원, 제일컨트리 클럽 골프회원권 1억원, 두양산업개발클럽700 골프회원권 9200만원, 호텔롯데 헬스회원권(배우자) 570만원, 「LKebank」 출자지분 30억원 등이다.
▣ 자동차 부품업체「다스」
「(주)다스」(舊대부기공)는 현대자동차에 자동차 시트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다. 다스는 일본 후지키코와 합작형태로 1987년 7월10일 설립됐다. 초기 자본금은 6억원이며, 한국 측이 3억6000만원을 투자했고 일본 측은 2억4000만원을 댔다. 설립 당시 李 前 시장은 현대건설 사장이었다.
회사 등기부등본을 보면, 설립 당시 임원은 이상은(李 前 시장의 큰형)·김성우·박헌진(두 명 모두 현대건설 出身)·일본인 한 명이다. 현재는 이상은 씨와 李 前 시장의 처남 김재정씨가 다스의 최대 주주다.
다스는 2002년 40억원, 2003년 10억원대의 당기 순이익을 올렸다.
▣ 김유찬의「이명박 리포트」는 어떤 내용인가
李 前 시장이 국회의원 시절 비서였던 김유찬씨가 출판을 위해 준비했다는 이 리포트는 李시장의 사생활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이명박 그는 아니다」, 「누가 배반자인가」, 「나는 밥보다도 정치가 더 중요해」, 「이제야 진실을 밝힌다」 등 4개 단락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유찬씨는 지난 2월16일 기자회견에서 『1996년 총선 후 재판과정에서 李시장 측으로부터 위증 代價로 돈을 받았고 협박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이 책의 출간을 예고했다.
한나라당 경선준비 기구인 「국민승리위원회」 검증위원회는 지난 3월12일 『李시장에 대한 검증 결과 법적·도덕적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