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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공개취재 - 李恩英 기자의 감옥 체험 48시간

서울구치소의 밤은 길다

이은영    chosun30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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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살이 고통의 절반은 잠자리

쾌활한 李仁濟, 수척한 鄭大哲

● 가꾼 꽃이 망가졌다고 우는 組暴
● 비만에 시달리는 여자들
● 공무원·봉급생활자·조폭이 적응 잘해
● 교도관에게 『커피 한잔 하세요』라고 권하는 수감자들


구치소에는 철문이 많다.
죄수들은 자신이 갇혀 있는 감방의 문을 포함해 모두 5개의 철문 속에 갇혀 있다. 철문마다 자물쇠가 있고, 그 문은 교도관이 열쇠로 열어 주지 않는 한 절대 열리지 않는다.
다섯 개의 문이 모두 열리게 만드는 것은 시간이다.
죄수들은 몸뚱이 하나로 외로움과 시간이 부과하는 시련을 견뎌내야 한다. 누구나 인간의 한계에 직면한다. 무너지는 사람이 있고, 꿋꿋이 버텨내는 사람이 있다. 감옥을 「인생의 막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죄수들은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린다. 시간은 느리게 혹은 빠르게 흐른다.
법무부의 허가를 얻어 48시간 동안 그 禁斷의 땅에 罪를 짓지 않고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서울구치소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교도관들은 『기자가 서울구치소의 구석구석을 이틀 동안 취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罪 짓지 않고 이틀간 감옥생활
여자 수감자들이 이용하고 있는 운동장 화단.
  지난 6월23일 오전 11시 30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정문.
 
  경비를 서고 있는 전투경찰들이 면회객들의 차량을 정문 바깥에 있는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몇몇 고급 승용차는 정문을 통과해 곧바로 구치소의 행정棟으로 향했다. 전경들은 차에다 대고 경례를 했다.
 
  정문을 통과하는 이들은 「특별면회」를 신청한 사람들이다.
 
  일반면회는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10분 이내에 면회를 끝내야 하지만, 특별면회는 면회객이 수감자와 무릎을 맞대고 20분 가까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구치소에 수감 중인 거물급 인사들의 가족과 知人들이 「특별면회」를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구치소 측은 『시설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면회객의 편의를 봐주는 것이지, 특혜를 주는 것은 아니다』며 『특별면회를 신청한다고 다 허용해 주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이틀간의 「감옥 투어」를 안내해 줄 千聖珪(천성규·44) 교도관을 구치소 청사에서 만났다. 17년째 서울구치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千교도관은 행정직 7급에 해당하는 교위 계급이다.
 
  그는 『좋은 곳도 많은데 왜 이런 험한 곳을 찾아왔느냐』면서도 『생각과 다르게 여기에도 좋은 사람이 많고, 다들 사연이 있다』고 했다.
 
  청사 건물을 나오자 구치소 입구가 보였다.
 
  큰 철문이 중앙에 서 있었고, 아이보리색의 높은 담이 삥 둘러 쳐져 있었다. 감옥이 있는 구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입구에서 신분증과 휴대전화를 맡기고, 금속탐지기를 통과했다. 千교위는 『여기부터가 진짜 구치소』라고 했다. 안에는 학교 운동장 크기의 광장이 펼쳐졌다.
 
 
 
 李仁濟 의원과의 조우
 
   교도소의 담장은 높았다. 어림잡아 6m 정도 돼 보였다. 장대높이뛰기를 하더라도 뛰어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장의 정확한 높이를 묻자, 千교위는 『시설보안상 알려 줄 수 없다』고 했다.
 
  서울구치소 안에는 모두 56개의 감옥이 있다. 서울구치소에서는 감옥이라는 말의 어감이 좋지 않다고 「수용사棟」이라는 말을 쓴다.
 
  수용사棟 56개와 수감자 3400여 명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곳이 「보안청사」다. 서울구치소에 들어서는 모든 수감자들은 이곳에서 囚衣(수의)를 받고, 기록을 정리하고, 감옥생활을 시작한다.
 
  보안청사에 들어가려는 순간, 낯익은 남자가 청사를 막 나오고 있었다. 하늘색 囚衣의 오른쪽 가슴에는 「1982」라는 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 남자는 내게 다가오더니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여기는 웬일입니까?』
 
  『서울구치소를 취재하러 왔습니다』고 했더니, 그는 『구치소 안에 들어와서요』라며 깜짝 놀랐다.
 
  그는 내 손을 잡고 흔들며 『우리는 정말 인연이 있는 모양이에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취재차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李仁濟(이인제) 의원이었다.
 
  李의원은 2002년 大選 직전 한나라당으로부터 2억5000만원을 수뢰한 혐의로 지난 5월 구속됐다.
 
  교도관 한 명과 함께 「특별면회」를 나가던 李의원은 감옥생활이 한 달을 넘겼는데도 얼굴빛이 바깥에 있을 때보다 좋아 보였다. 囚衣는 구김하나 없이 깔끔했다.
 
   李仁濟 의원이 다른 수감자들과 달리 하늘색 囚衣를 입고 있는 게 신기해서 물어봤더니, 千교위는 『개인적으로 사서 입은 옷』이라고 했다. 구치소에서 일반 수형자들에게 지급하는 囚衣는, 황토색(미결수)과 푸른색(기결수) 두 가지다.
 
  千교위는 『李仁濟 의원이 밥도 잘 먹고, 말도 잘하고, 교도관들에게 「힘들지 않느냐」며 인사를 잘한다』며 『수감생활에 잘 적응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라고 했다.
 
  李의원을 면회하고 나온 정치인을 나중에 만났다. 그는 『李의원이 「교만을 씻어버리고 백지로 돌아왔다」고 했다』며 『마음을 정리하고 편안하게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李仁濟 의원은 면회오는 사람들에게 『나는 단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 곧 결백이 드러날 테니 두고 보라』며 여전히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千교위는 『朴智元 비서실장, 權魯甲 고문, 鄭大哲 고문 같은 이는 수형생활을 무척 힘겹게 해내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기자가 여러 사람을 만나서 종합한 有名인사들의 감옥생활은 대강 이러했다.
 
 
 
 鄭大哲·朴智元의 수감생활
 
   <鄭大哲씨는 눈물이 많다. 편지를 받거나, 비가 와도 금방 마음이 울적해지는 게 눈에 보인다. 소년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할아버지처럼 보인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마음의 기복이 심하다. 괴로움을 잊으려고 엄청난 독서를 한다. 구속 수감된 지 160일 만에 150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朴智元씨는 들어와서 말을 하지 않았다. 「물 달라」는 소리조차 없었다. 교도관이 다가가서 「물을 드릴까요」, 「성경을 드릴까요」 하고 물으면, 『아니, 내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며 깜짝 놀라곤 했다. 너무 침울해서 자살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얼마 전 백내장으로 바깥 병원으로 나갈 때까지 아무런 요구가 없었다. 모든 걸 우리가 알아서 챙겨 주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많이 안타까웠다>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거물급 인사로는 鄭大哲, 金榮馹, 崔燉雄, 李仁濟, 金雲龍, 李相洙, 孫吉丞, 崔元碩, 宋斗律, 安熙正씨 등 3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을 면회하려는 동료 의원, 지지자들이 연일 줄을 서고 있고, 휴대전화를 두 개씩 든 보좌관들이 구치소 밖 청사에 머물면서 면회 스케줄을 조정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거물급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독방이 모자라지는 않을까?
 
  千교위는 이렇게 설명했다.
 
  『구치소에 독방이 300개가 넘기 때문에 모자랄 염려는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일반 재소자들까지 독방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독방이 꼭 좋은 게 아닙니다. 혼자 있는 걸 즐기는 사람은 독방이 편하겠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혼거방이 좋습니다. 1~2년을 옆에 아무도 없이 혼자 지내는 게 얼마나 외로울지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교도관들은 대개 혼거방을 권합니다』
 
  구치소의 거물급들은 대여섯 부류로 나뉜다.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말을 잃는 「좌절형」, 책과 신문을 열심히 읽고 부지런히 편지를 쓰며 짜임새 있게 보내는 「학구파형」, 틈날 때마다 교도관을 붙들고 이야기를 하는 「수다형」, 교도관들을 만날 때마다 90도 각도로 허리를 꺾으며 인사를 하는 「예의범절형」….
 
 
 
 예의범절 깍듯했던 張世東
 
   張世東(장세동) 前 경호실장은 전형적인 「예의범절型」이었다고 한다. 한 교도관의 얘기다.
 
  『張世東씨는 교도관이 지나가면 항상 90도로 절을 했고, 방 안에 앉아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그러지 말라고 하면 「지금은 내가 수용자고, 나는 교도관의 말을 잘 따라야 하는 사람이다. 이게 내 도리다」고 얘기를 했다. 「방을 점검합시다」고 하기 전에 正坐(정좌)하고 교도관을 기다렸다. 너무 규칙을 잘 지켜서 별명이 「시계」였다. 교도관들에게서 존경을 많이 받았다』
 
  교도관들은 거물급 수감자들에게 『의원님』이나 『회장님』으로 불러 예의를 지킨다고 한다.
 
  구치소內에서 수감자들의 富를 상징하는 것이 구치소에 맡겨 두는 「영치금」이다. 갇혀 있는 동안 의약품, 식품, 생활용품, 신문을 살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수백억원대 재산을 가진 사람도 한 달에 쓸 수 있는 영치금은 15만원 정도다. 재소자들이 불필요하게 돈 쓰는 걸 막으려고 한도를 정했기 때문이다.
 
  격일로 음식 2만원, 생활용품 3만원까지 구입할 수 있다.
 
  그런데도 영치금으로 인한 貧富격차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軍에 입대한 것도 아니고, 감옥에 간 가족을 위해 매달 15만원을 넣어 주는 가정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잡범들은 대부분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들이다. 물론 전기요금이 밀려서 단전이 되더라도, 빚을 내서 영치금을 넣고 접견물을 넣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기죽지 말라고.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사람은 함께 방을 쓰는 사람들의 먹거리를 얻어 먹게 된다.
 
  오전 11시 50분, 수용소 관리동 뒤편의 「보안과 통용문」에 도착했다.
 
  경비교도대원이 철문을 지키고 서 있다. 千교위와 함께 통용문을 지나가자 뒤에서 철문이 닫혔다. 창살로 된 철문은 위 아래로 오르내린다.
 
  『쿵』하는 육중한 울림이 커서 움찔했다.
 
  통용문에 긴 복도가 이어져 있었다.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 「신입실」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귓속·항문까지 검색

 
   신입실은 40평쯤 되는 빈 방이었다. 징역살이가 시작되는 곳이다. 여기서 재소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귀금속과 돈 등을 領置(영치)시키고, 몸수색을 철저히 한다. 구치소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自殺(자살) 방지다.
 
  경찰이나 검찰 수사 과정에서 가혹 행위를 당한 흔적이 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몸에 마약 등 금지된 물품을 숨겼는지, 자살에 쓰일 쇠붙이를 갖고 있는지, 귓속·항문까지 샅샅이 뒤진다.
 
  몸수색이 끝나면 목욕을 시키고, 식사를 시킨다.
 
  식사를 마치면 담당 교도관이 간단한 교육을 하고, 囚衣를 내준다. 그리고 교도관을 따라 지정된 감방으로 향한다. 감옥살이는 이제 시작이다.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여 구치소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千교위의 얘기다.
 
  『법정에 나갔다가 법정구속이 돼서 들어오는 수감자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습니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며칠 밤을 지낸 사람들은 그래도 태연합니다. 15년 동안 노숙자 생활을 하다 구속된 사람은 「어서 들어가고 싶다」고 해요. 거물급들은 명예와 자존심이 허물어지는 게 참을 수 없어서인지 입소절차를 「빨리 끝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선지 교도관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잘 따릅니다』
 
  오후 1시. 감옥으로 가는 복도에 들어섰다. 복도는 길었다. 100m가 넘어 보였다.
 
  가운데 노란선이 그어져 있었고, 노란 선 위에 꽃 화분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벽에는 사진과 그림이 촘촘히 걸려 화랑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이 길을 걸어 처음으로 감옥에 들어가는 이들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을 게 분명하다.
 
  囚衣를 입은 몇몇 재소자와 맞닥뜨렸다.
 
  그들은 구치소 안에까지 평상복을 입은 여자가 들어온 게 이상했는지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내 곁을 지나갔다. 수감자 중에는 李仁濟 의원이 입었던 하늘색 私製(사제) 囚衣를 입은 사람이 가끔 눈에 띄었다. 열 명에 한 명꼴 정도였다.
 
  사제 囚衣는 한 벌에 2만~3만원 정도. 하지만 이 하늘색 囚衣는 「나는 다르다」를 과시할 수 있다.
 
  거물급 재소자들은 대개 하늘색 囚衣를 입는다고 한다. 빨래하기가 귀찮아서, 계속 새 囚衣를 사 입는 사람도 종종 있다. 일반 재소자들은 몇만원이 없어서 官製(관제)인 푸른색 囚衣를 입는다. 구치소에도 빈부의 격차는 엄연히 존재한다.
 
  오후 1시30분,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쌓인 20평 남짓한 운동장에 도착했다.
 
  운동시간은 하루에 한 시간. 걷거나 뛰면서 운동을 한다고 했다. 기자가 도착했을 때는 운동장이 비어 있었다. 서울구치소에는 콘트리트 벽으로 막힌 운동장이 30여 개 있다.
 
  수용사棟별로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은 격리돼 있다. 공범일 경우는 거실이 다르고, 운동할 때 서로 만날 수 없게 조치를 한다.
 
 
 
 범죄에 따라 囚人 번호표 색깔 달라
 
   운동하러 나온 재소자들을 만났다.
 
  囚人 번호표의 색깔이 제각각이었다.
 
  저지른 범죄에 따라 색깔이 구분된다. 千교위의 얘기다.
 
  『사기·횡령·절도범 등 일반 범죄는 흰색, 마약 사범은 파란색, 정신질환자는 초록색, 강력범은 노란색, 공안사범은 적갈색,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붉은색입니다』
 
  그 얘기를 듣는 동안 노란색 번호표와 황토색 囚衣를 입은 수감자가 한 명 지나갔다. 강력범죄를 저지른 미결수라는 표시다.
 
  ─수형표를 보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알 수 있는데, 수감자들에 대한 편견이 생기지는 않습니까.
 
  『처음 교도관 생활을 할 때는 자연히 경계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교도관 생활을 5년 이상 하고 나면 「노란 딱지」, 「빨간 딱지」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사라집니다. 죄명을 가지고 수감자를 멀리하면 교화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파렴치한 놈으로 손가락질당한 범죄자도 겪어 보면 보통사람보다 순진하고 단순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사람을 죽인 죄수를 보면 겁날 것 같은데요.
 
  『죽여야겠다고 계획을 세워서 살인을 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개 우발적으로 살인을 한 경우예요. 감옥에 들어와서 「내가 왜 그랬을까」 죄의식에 몸부림을 칩니다. 그래서 전에는 살인죄로 들어온 범죄자들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수갑을 채웠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초범인가 재범인가 누범인가를 구분하고 나이 등을 고려해서 거실을 정해 줍니다』
 
  오후 2시. 감옥棟 밖의 꽃밭으로 나왔다. 구치소에는 꽃이 많았다.
 
  복도에도 창틀에도 꽃을 담은 화분이 놓여 있다. 꽃들은 싱싱했다. 철창과 꽃, 왠지 어울리지 않았지만, 구치소에는 꽃이 흔했다.
 
  千교위는 『꽃구경을 시켜 주겠다』며, 수용사棟 밖의 공터로 기자를 데리고 갔다. 수용사棟 사이사이 빈 터마다 재소자들이 가꾸는 꽃밭과 텃밭이 있었다.
 
  꽃밭과 텃밭으로 나가기 위해서도 철창문을 하나 통과해야 했다. 아이보리(象牙)색 감옥 건물 사이가 온통 꽃밭이었다. 꽃밭에는 꽃들이 키를 맞춰 제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상추·오이·깻잎·파를 재배하는 비닐 하우스도 있었다.
 
  꽃밭과 텃밭에는 고양이와 비둘기 떼가 거닐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뚱뚱했다.
 
  꽃밭 모퉁이에 기결수 다섯 명이 모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꽃밭과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은 기결수들이다. 『미결수들은 재판을 받느라 꽃을 돌볼 여유가 없지만, 기결수에게는 꽃 한 송이와 풀 한 포기가 소중하다』고 한다.
 
  꽃밭에 앉아 있는 40代 기결수들의 얼굴은 시골 아저씨들처럼 평온해 보였다. 꽃밭, 텃밭을 가꾸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노란색 딱지가 붙어 있었다.
 
  무엇 때문에 이들은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이곳에 들어왔을까? 왜 이 사람들의 얼굴은 지금 이렇게 평온해 보일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꽃이 망가졌다고 우는 組暴 출신 수감자

 
   서울구치소에서 만난 한 교도관은 『조직폭력으로 구속된 수감자가 자신이 가꾼 꽃이 장마 때문에 뿌리째 뽑혔다고 속상해 우는 걸 봤다』며 『인간을 惡하게 만드는 것이 본성인지, 아니면 환경인지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꽃밭을 거닐고 있는데 갑자기 『훠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양이 두 마리가 번개같이 감옥 건물 쪽으로 뛰어갔다. 수용사棟의 수감자가 창문을 통해 던진 음식을 받아 먹으러 간 것이다. 고양이들이 비만이 된 이유를 알게 됐다.
 
  『재소자들이 먹다 남은 과자나 음식물을 고양이나 비둘기의 먹이로 던지는 것이 여기서는 평범한 일상 중에 하나입니다. 고양이들이 배가 불러서 맛있는 음식밖에 먹지를 않아요. 그래서 쓰레기가 쌓이는 게 우리의 골칫거리입니다. 예전에 서대문구치소에서는 독방 재소자들이 쥐를 키우기도 했습니다. 쥐나 비둘기도 반가운 친구가 되는 거죠』
 
  구치소 고양이들은 재소자들의 식사시간이 되면 수용사棟 근처를 배회한다. 情을 줄 데가 없는 재소자들은 고양이를 외면하지 않는다. 千교위는 『서울구치소 고양이는 눈치가 9단이라 재산범 방이나 독방을 좋아한다』고 농담을 했다.
 
  오후 3시, 일반 접견실로 이동했다.
 
  서울구치소에는 40여 개의 일반 접견실과 4개의 특별면회실이 있다. 대부분의 재소자들은 일반 접견실에서 면회를 한다. 일반면회 대기실에서는 기결수들이 긴장된 얼굴로, 자신의 囚人번호가 방송으로 불리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야윈 얼굴의 鄭大哲을 만나다
 
  서울구치소에는 거물급 수감자가 늘면서 구치소 면회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이들에게도 하루 1회 면회가 허용되지만, 면회 요청이 하루에 수십 건씩 들어와 구치소 측이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면회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결정권은 수감자 본인에게 있다.
 
  요즘 특별면회실이 좀처럼 비지 않는다. 20여 분 동안 탁 트인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보면서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면회는 수감자에게 정말 특별한 만남이다.
 
  특별면회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루에 많아야 30여 명 정도이고, 구치소장의 허락으로 결정된다. 많은 거물들이 일반 접견실에서 면회를 하고 있다. 거물 정치인들이 대기실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는 광경이 종종 목격된다.
 
  기자가 접견 대기실에 들어설 때 鄭大哲 前 의원이 면회를 마치고 빠른 걸음으로 접견실을 나오고 있었다. 많이 야위어 보였다. 교도관은 『鄭의원 체중이 최근 10kg 정도 빠졌다고 들었다』고 했다.
 
  『鄭의원은 權魯甲 前 민주당 고문과 함께 서울구치소에서 「고참급」인데 며칠 전에부터 얼굴이 꺼칠하다』는 것이다. 鄭의원은 고통스럽게 수감생활을 하는 쪽에 속한다.
 
  지금 政界에서 떠도는 이야기로는 鄭씨가 면회 온 金元基(김원기) 국회의장에게 『한나라당에서 李會昌 대표, 朴槿惠 대표가 면회를 왔다. 盧武鉉 대통령은 비서실장도 없느냐』고 거칠게 항의했고, 『광복절 전까지 해결을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崔元碩과 장은영
 
   접견실이 갑자기 붐비기 시작했다. 하루에 900명에서 1000명 가까이 면회를 해, 늘 초만원인 접견실이 오후 시간이 되면 더욱 붐빈다고 한다.
 
  접견실을 담당한 한 교도관은 『면회시간이 7분인데 할 말은 다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신입 재소자들은 몇 마디 못 하고 면회시간을 끝냅니다. 나중에 요령이 생기면 그 짧은 시간에 엄청난 얘기를 쏟아 냅니다. 밖에서 힘깨나 쓰시던 분들이 「시간을 더 달라」고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사소한 일로 교도관에게 이런 저런 부탁하기가 싫어서인지, 그런 사람들이 더 정확하게 시간을 지킵니다』
 
  거물 정치인, 경제인들은 주로 오전 시간에 면회를 한다.
 
  오전에는 면회시간이 10분으로 3분 더 길기 때문이다. 한 교도관은 崔元碩 前 동아건설 회장의 부인 장은영씨 얘기를 하면서, 『崔회장 구속 후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오전에 일반면회를 온다』고 했다.
 
  『장은영씨가 매일 오는데, 지극 정성입니다. 처음에는 화장기가 없는 얼굴로 와서, 많이 울다 갔는데 요즘은 마음이 안정되었는지 화장을 곱게 하고 옵니다. 차가 밀려서 예정된 면회시간에 늦으면 숨을 헐떡거리면서 달려 옵니다. 가급적 면회를 시켜 줍니다』
 
  ─崔元碩씨는 수감생활을 잘 하는 쪽입니까.
 
  『崔회장은 1심에서 집행유예가 나왔는데도 「억울하다」고 한 사람입니다. 2심에서 「법정구속」이 됐으니 얼마나 상심이 컸겠어요. 들어와서 얼굴이 붓고 푸석푸석하고 적응을 잘 못했어요. 보름쯤 지나고서야 부인 장은영씨와 이야기를 곧잘 해요. 「여기 와서 인생의 귀중한 것들을 알았다」며…. 요즘은 장은영씨를 더 걱정하고 있습니다. 정말 저렇게 두 사람이 사랑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다정합니다』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미결수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세 가지는 면회와 편지, 재판이라고 한다. 교도관들은 『힘들 때는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위안을 받는다』며, 가족이나 친구가 감옥에 가면 많이 면회하라고 권했다.
 
  『금전적인 일로 구속이 됐을 경우, 도와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으로 찾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험한 곳에 초라한 모습으로 있는데 가면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찾아 주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됩니다. 지방에 거주하는 면회객들을 위해 「화상 접견실」이 돼 있습니다. 연중무휴로 이용이 가능하니 많이 이용해 줬으면 합니다』
 
 
 
 독방 크기는 1.5평에서 0.93평까지
 
   6월24일 오전 11시. 수용사棟을 다시 찾았다. 전날 저녁 구치소 안에서 자려고 했더니 교도관들이 『판사의 영장 없이 사람을 감옥에서 재웠다가는 난리가 난다』며 펄쩍 뛰었다. 『교도관 숙직실에서 자는 것도 안 되느냐』고 했더니, 교도관들이 기자의 등을 떠밀었다.
 
  이틀째 들어오는 구치소라 제법 낯이 익었다. 「제1管區(관구)」는 미결수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이날도 여러 개의 철문을 지나 수용사棟에 들어갔다. 열쇠는 「T자」형 쇠고리 모양이었다. 구치소의 모든 열쇠가 똑같다. 서울구치소에는 353개의 독거방(독방)과 541개의 여럿이 생활하는 혼거방이 있다.
 
  교도관은 비어 있는 미결수의 독방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이 방의 수감자는 「출력」을 나갔다고 한다.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미결수는 구치소 안에서 청소 등을 할 수 있다. 구치소에서는 이들을 「사소(사동청소부)」라고 부른다.
 
  ─이 방의 주인은 누군가요.
 
  『경제사범으로 들어온 재산범입니다. 「힘깨나 쓰던」 분들이 들어오면 대개 독방에 수용됩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거물급 수감자들은 여러 수용사棟에 흩어져 수감돼 있기 때문에, 접견 대기실이 아니면 서로 만나기 어렵습니다』
 
  ─방 크기가 얼마나 됩니까.
 
  『이 방은 큰 편입니다. 서울구치소의 독방은 1.5평에서 0.93평까지 5등급으로 나뉘어져 있어요』
 
  독방은 「175cm 키의 남자가 누우면 딱 맞겠다」 싶을 정도로 작았다. 180cm가 넘는 사람은 대각선으로 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방에 들어가서 누워 봤다. 내 눈이 정확했다. 긴쪽의 길이가 내 키(170cm)보다 조금 길었다.
 
  방에는 벽걸이용 선풍기 한 대와 14인치 텔레비전, 밥상, 책꽂이 등이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다. 장편소설들이 스무 권 정도 꽂혀 있었다. 月刊朝鮮 6월호가 보여 반가웠다.
 
   이 방 수감자는 독서광인 것 같았다.
 
  교도관은 『독방 사람들은 거의 독서로 시간을 보낸다』며 독방 수감자의 하루 스케줄을 이렇게 설명했다.
 
  『독방 수감자들은 대개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서 이불을 각을 맞춰서 개고, 오전 7시쯤 식사를 합니다. 오전 9시쯤 신문이 배달되고, 오전 내내 신문을 읽습니다. 낮 12시에 점심이 배식됩니다. 그러고 나서 오후 시간에 책을 읽고 편지를 씁니다. 오후 5시에 저녁을 먹고, 취침점검을 오후 9시에 합니다. 밤에도 불을 안 끄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밤새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도관들이 일찍 자라고 재촉을 합니다. 독방 수감자들은 특별면회, 일반면회, 변호사 접견을 나가다보면 하루가 언제 가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독방의 벽에는 약과 음식물, 생활용품 리스트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모두 영치금으로 구입할 수 있는 물품이다. 없는 게 없었다. 두통약에서 고무장갑, 면도기까지 모두 리스트에 포함돼 있었다.
 
  수납장에는 밥그릇 등의 플라스틱 용기, 팬티와 러닝셔츠가 가지런하게 정리돼 있었다. 방 주인이 깔끔한 스타일이라는 것이 짐작됐다.
 
 
 
 누구나 세 끼 설거지는 해야
 
   재소자들은 방 안에서 빨래를 할 수 있다. 교도관의 설명이다.
 
  『이불은 가족에게 내보내 세탁을 할 수 있지만, 자기 囚衣는 직접 세탁해야 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囚衣를 세탁하는 게 귀찮아서 사제 囚衣를 사입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감방 안쪽의 화장실은 다용도실이었다. 변기에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고, 반짝반짝했다. 한 평의 협소한 공간이니, 화장실 청소를 게을리했다가는 냄새 때문에 살 수 없을 지경이 될 것이다.
 
  화장실 바닥에 설거지용 식기 세제와 샴푸, 빨랫비누, 세숫비누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수감자들은 밥을 먹고 나서 변기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설거지를 합니다. 혼거방에 있는 사람들은 당번을 정해 설거지를 하고, 젊은 사람들이 도맡아 합니다. 독방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 세 끼 설거지를 직접 해야 합니다. 그걸 보면 독방살이하는 사람이 서글퍼 보이죠』
 
  감방 출입문 옆에 「식구통」이라는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세로 20cm, 가로 18cm 크기다. 재소자들은 하루 세 끼 이 구멍을 통해 밥을 받는다. 「징역살이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는 얘기는 바로 이런 데서 나오지 않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생겼다.
 
  교도관은 『각 구치소마다 다른데 영등포 구치소는 문을 일일이 열어서 배식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징역살이를 흔히 「콩밥 먹는다」고 한다.
 
  요즘 재소자들은 콩밥을 먹지 않는다. 쌀과 보리를 8:2로 섞은 밥을 먹고 있다. 1식 3찬이다. 독방의 벽에는 월별 식단표가 붙어 있었고, 「생선가스」, 「소시지 오뎅 볶음」 같은 메뉴가 나오는 날에 별표를 그려 놓았다.
 
  아마도 방 주인이 좋아하는 반찬인가 보다.
 
  메뉴를 자세히 읽어 보니 요일별로 달랐다. 국과 김치가 기본이고 요일별로 닭개장, 감자조림, 오징어야채무침, 두부조림 등이 차례대로 나왔다. 반찬이 부족하면 영치금으로 사 먹을 수 있다.
 
  「음식물 구매 신청서」에 사고 싶은 물품을 적어 내면, 「사소(사동청소부)」들이 영치금으로 구입해서 나눠 준다.
 
 
 
 서울구치소는 전기 난방
 
   부산구치소에서 자살한 安相英 前 부산시장은 면회오는 이들에게 『얼어 죽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의 자살 이후 구치소 난방 문제에 여론의 관심이 쏠렸다.
 
  서울구치소는 겨울에 감옥 바닥의 전기 패널을 통해 난방을 해준다. 동상에 걸릴 염려는 없다.
 
  安시장이 수감됐던 부산구치소는 건물이 낡아 외풍이 세기로 유명하다. 수용거실 복도에 설치된 연탄난로 외에는 별도의 난방장치가 없다. 그래서 「얼음장 구치소」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구치소는 난방 시설이 잘 돼 있어서, 솜내의를 입지 않고도 겨울을 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두꺼운 내의가 필요하다.
 
  왜 부산구치소는 安相英 시장 가족들이 솜바지 저고리를 安시장에게 전해 주는 것을 막았을까? 교도관들의 설명이다.
 
  『솜바지 저고리 안에 무얼 넣을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마약이나 담배 등은 솜바지 저고리를 다 뜯어 내지 않고는 찾아 낼 수 없습니다. 「왜 솜바지 저고리 반입을 금지하느냐」고 하는데, 솜바지 저고리가 필요없도록, 감옥시설을 현대화하는 게 답입니다』
 
 
 
 半징역살이하는 교도관들의 고통
 
   우리나라의 교정시설은 30년 이상 된 건물이 전체의 70%를 넘는다. 건물 자체가 흉물인 경우가 많다. 안양교도소는 1960년대에 지어져, 수용사棟 바닥 곳곳에 물이 고여 非위생적이다. 부산구치소처럼 난방은 복도에 놓인 난로가 전부라고 한다.
 
  영등포구치소는 2003년 겨울에 감옥 바닥에 전기 패널을 깔았지만, 건물이 30년이나 돼 난방의 효율이 떨어진다. 누우면 등은 뜨겁고 콧등은 시린 경우다.
 
  최근에 완공된 충주구치소는 각 수용사棟에 냉·난방이 완비돼 있는, 미국 펜타곤 형식의 5각형 최신식 건물이다.
 
  수감자들의 주거환경만 걱정할 일이 아니다. 교도관의 근무환경도 처지가 비슷하다. 법무부 교정국의 한 사무관은 이렇게 얘기했다.
 
  『똑같은 월급을 받지만 안양교도소 교도관은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 사는 꼴이고, 여주나 충주구치소의 교도관은 「국립 호텔」급에서 산다. 열악한 환경에서 수감자와 함께 「半징역살이」를 하는 교도관의 어려운 처지에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한다』
 
  서울구치소에서 수용사棟 한 동을 책임지는 교도관을 「주임」이라고 부른다. 주임들은 수용사棟 입구의 조그만 초소 같은 방에서 선풍기 한 대 없이 근무하고 있었다.
 
  오후 2시, 혼거방을 둘러봤다.
 
  혼거방은 독방과는 전혀 달랐다. 사람 사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혼거방 벽에는 사진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여자 연예인들의 사진이 붙어 있는 방이 있는가 하면, 아기들 사진이 가득한 방이 있었다. 재소자 아이들의 사진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했다.
 
  아기 사진을 유심히 보자 교도관이 『이게 이 사람들을 견디게 하는 힘』이라고 했다.
 
   千聖珪 교위는 『구속된 재소자들은 가족 때문에 괴로워하고, 괴로움을 견딘다』며 『행복은 욕심을 버려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현실에 만족하는 데서 온다』고 말했다.
 
  욕심을 버리고 만족하는 것…. 하지만 1평짜리 독방에서, 혹은 4평도 안 되는 방에서 7명 이상이 부대끼면서, 이 더운 여름날에 어떻게 욕심을 버리고 만족할 수 있을까?
 
  내가 들른 7인용 혼거방은 다섯 명 정도가 누울 수 있는 크기였다. 그것도 서로의 몸을 최대한 붙여야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거기서 7명이 살고 있다. 그래서 『겨울 감옥살이가 여름 징역살이보다 훨씬 낫다』는 말이 감옥 안을 돌아다닌다.
 
  혼거방 벽에 어느 재소자가 손으로 써서 붙여 놓은 詩가 하나 있었다.
 
  <살아서 얼마나 자유롭고 싶었으랴/ 죽어서 제 몸을 쪼개 새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은/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으랴/홀가분한 영혼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자유에 익숙해진 날개와 깃털 바람에 맡긴 채/사랑하고 사는 일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면/그까짓 살덩이 누군들 주고 싶지 않으랴/그 영혼의 깃털 하나만이라도 될 수 있다면>
 
  詩는 도종환의 시집 「슬픔의 뿌리」 안에 실린 鳥葬(조장)이었다. 육신을 다 쪼개서 새에게 주고서라도 자유롭고 싶은 비원을 담고 있는 詩다. 새장에 갇힌 새의 심정과 같을 재소자의 답답함이 내게 다가왔다.
 
 
 
 다이어트가 流行
 
   혼거방에는 재소자들을 통솔하는 「방장」이 있다. 구치소에서는 이들을 「봉사원」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부른다. 방장이 누구냐에 따라 감방 분위기가 하늘과 땅처럼 달라진다.
 
  「먹는 방」, 「노는 방」, 「싸우는 방」, 「책 읽는 방」, 「여자 생각만 하는 방」 ….
 
  1980년대 초반에 소설가 이철용이 쓴 「어둠의 자식들」에는 재소자들이 먹을 것을 놓고 아귀다툼하는 광경이 생생하게 등장한다.
 
  2004년 한국의 구치소에서는 그런 광경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돌아본 혼거방마다 먹을거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컵라면, 초콜릿, 과자, 오징어, 우유, 육포, 훈제 닭 등 바깥 세상에서 먹을 수 있는 평범한 먹거리들이 수납장마다 가득했다. 요즈음 서울구치소에서는 「다이어트」를 하는 수감자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교도관들의 얘기다.
 
  『미결수들이 처음 와서 살이 빠지다가 시간이 지나면 평균 5kg에서 심지어는 10kg 이상까지 체중이 늘어납니다.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려는 경향이 있어요. 생활에 여유가 생겨서인지 들어오는 먹거리를 수감자들이 같이 나눠 먹습니다. 제때 먹지 못해 버리는 음식이 적지 않습니다. 요즘은 커피와 녹차 등 기호식품을 재소자들이 많이 구입해 먹습니다. 교도관들이 복도를 지나가면 재소자들이 「커피 한잔 하시고 가세요」, 「크림빵 좀 들고 가세요」 하고 부릅니다』
 
  감방 안에서 재소자들이 密酒(밀주)를 만들어 檢房(검방: 감방 조사)에 걸리는 일이 가끔 있다고 한다. 감방에서 술을 어떻게 만들까?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 불가능은 없다. 교도관들에게서 들은 밀주제조법이다.
 
  <밥에 요구르트를 넣고 이불 속에 넣어서 발효를 시킨다. 알코올 도수가 5도 이상이 나온다. 식빵으로 만들기도 한다>
 
  千聖珪 교위는 『감옥도 학교 생활과 똑같다』며 『공부 잘하고 못하고에 관계없이,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한 사람은 감옥생활을 무난히 소화한다』고 했다.
 
  『공무원이나 큰 회사에 다녔던 사람들이 감옥생활을 잘 해냅니다. 사회에서의 생활이 규칙적일수록 수용생활을 잘 적응해 이겨내는 것입니다. 조폭들도 감옥생활을 잘하는 직업群입니다. 명령체계 아래 일했던 습관 때문에 교도관의 지시에 잘 따릅니다』
 
 
 
 禁男 구역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지만 모두가 죄를 뉘우치지는 않는다. 교도관들은 『종교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 비해 수감생활에 빨리 적응하는 편이다』라고 했다.
 
  오후 3시, 여자 수용사棟 입구에 섰다.
 
  여자들이 수감돼 있는 사동은 구치소 오른쪽에 격리돼 있다. 벨을 눌렀다. 여자 수용시설에는 남자 교도관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인터폰으로 여자 교도관의 음성이 들린다.
 
  ─무슨 일이죠?
 
  『고충처리반에서 나왔습니다』
 
  여자 수용사棟은 감옥이라기보다 깔끔한 주택을 연상케 했다. 들어가는 입구에 꽃과 잔디가 잘 가꿔져 있었다. 이곳에는 300여 명의 여성 재소자가 살고 있다.
 
  千교위는 여성 재소자 고충상담을 하기 시작했고, 다른 여성 교도관의 안내를 받아서 여성 감방을 돌아봤다.
 
  여자 수용사棟에서 일하는 교도관은 전원이 여성이었다. 완전 남자 금지구역이었다.
 
  여성 교도관과 함께 독방과 혼거방, 운동장을 차례로 찾았다.
 
  감방에는 싱크대와 좌변기가 설치돼 있었다.
 
  『최근 보수공사를 마쳐서 시설이 좋아졌습니다. 비록 범법자가 돼서 수감되었지만 인간다운 생활은 보장해야 하니까요』
 
  여성 교도관은 혼거방에 들어가기 전에 재소자들을 잠깐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
 
  『사복을 입은 외부사람이 들어오면, 그걸 보고 여자 재소자들의 마음이 어수선해질 수 있습니다. 여자들은 남자들과 달라서 감수성이 무척 예민합니다』
 
  여자 재소자들이 사용하는 운동장에 갔다. 뜨거운 햇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 재소자들이 반바지와 흰색 T-셔츠를 입고 가볍게 걷고 있었다. 주로 20~30代 여성들이었다.
 
  남자 재소자들과 달리 뛰는 사람이 없었다. 둘이서 팔짱을 끼고 이야기하면서 걷는 것이 고작이었다. 운동을 하지 않고 그늘에 앉아 있는 이도 있었다.
 
  운동장 좌측에 마련된 줄에다가 빨래를 너는 재소자가 보였다. 주로 회색과 흰색 T셔츠였다.
 
  여성 교도관은 『수감자들이 운동을 적게 하고, 많이 먹어 비만에 시달리고 있다』며 『대부분 입소할 때보다 10kg 이상 체중이 불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여성 수감자들의 몸짓이 둔해 보였다.
 
  오후 5시 폐방 직후 여자 수용사棟 1층에 있는 여성 전용 의무과에 갔다. 의무실은 의무과장인 내과전문의 한 명과 간호사가 배치돼 있다. 시골병원 같은 분위기다.
 
  『왜 기다리는 환자가 한 명도 없냐』고 물었더니 『폐방 이후라 그렇다』고 했다.
 
 
 
 폐쇄공포증과 우울증이 구금성 질환
 
   「폐방」은 구치소에서 쓰는 용어다. 구치소는 오후 5시면 수감자들의 이동을 중지하고 특별한 일이 아니면 거실의 문을 열지 않는다. 「폐방점검」을 시작하려는 교도관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잘하던 고위 정치인·경제인들이 감옥에 가면 병에 걸려, 병보석이 되거나, 들것에 실려 재판장에 출두한다. 꾀병을 부리는 걸까? 아니면 감옥생활로 건강이 급작스럽게 악화되는 것일까?
 
  한 교도관의 설명이다.
 
  『협소한 공간에 갇히면 폐쇄공포증과 우울증이 발병합니다. 일종의 구금성 질환이죠. 밖에서 돈 버느라, 일 하느라 정신 없이 살다가, 감옥에 와서 자기 병을 찾아 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심적으로 좌절하면서, 잘 나갈 때는 신경도 안 썼던 건강이 급작스레 악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나이든 거물급 인사들 중에는 당뇨나 협심증, 신장질환을 많이 호소합니다』
 
  돈 없는 미결수들은 「의료비 부담」에 고통을 받는다. 수감되는 즉시 의료보험 혜택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법」(제49조 4항)은 「교도소 기타 이에 준하는 시설에 수용돼 있는 때」에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감옥에 갇혔다고, 최소한의 인도적 혜택인 의료보험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잔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 교정국 관계자는 『1991년부터 보건복지부에 법령 개정을 건의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의사들이 교정시설에 들어와 진료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도 문제』라며 『교정시설은 범법자들을 가두는 곳이 아니라 그들이 건강한 몸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했다.
 
  오후 7시, 고충처리반 사무실. 이틀간 구치소 안내를 도맡아 준 千聖珪 교위는 『초라한 사무실이지만 커피 한 잔 대접하겠다』고 했다. 구치소를 벗어나 구치소 청사로 나왔다.
 
  고충처리반 사무실은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밀실 같았다. 너무 칙칙하고 쾨쾨해 속이 메슥거렸다. 5명의 교도관들이 모여서 비디오를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구치소 안에서 정신질환자 미결수가 교도관을 폭행하는 장면이었다. 마침 근처에 있던 동료 교도관이 캠코더로 현장을 촬영했다고 한다. 지난 1월에 있었던 사건이다.
 
  교도관들은 『구치소에는 사람이 천차만별이라 일일이 맞추고 대응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한 교도관이 캐비닛을 열어 보였다.
 
  서류뭉치가 수십 개 쌓여 있다. 지금까지 고충처리반에 접수된 재소자들 간의 폭행·자살 사건에 관련된 자료들이다. 이틀간 돌아본 구치소의 평온한 겉모습과 달리, 그 어느 구석에선가는 이런 험악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교도관들은 『한 달에 70건 정도의 폭행 사건이 접수돼 일일이 상담하고 조사하지만 인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발 뻗고 잘 수 있는 幸福의 소중함
 
   수감자들 간에 폭행이 발생하는 이유는 천태만상이다.
 
  <한 번은 신입 재소자가 「내가 이래도 사회에서 볼보를 탔다」고 자랑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이 「볼보 차에 냉장고가 있냐」고 물었다고 한다. 신입이 대답을 못 하고 어물어물하자 「에라이, 타보지도 않고 사기친다」는 비아냥이 돌아왔고, 두 사람은 피 터지게 치고 받았다>
 
  <미결수들은 재판 중이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그걸 이용해서 「내 변호사를 소개해 주겠다」고 현혹해 돈을 챙기는 사람이 있다. 먼저 출소하는 재소자한테 「합의를 대신 좀 주선해 달라」고 부탁하며 돈을 맡겼다가 고스란히 날려 버리는 경우도 있다>
 
  오후 10시, 재소자들이 취침에 들어갔다. 보안과 사무실로 이동했다. 구치소 순시를 마친 교도관이 들어서며 『조용합니다. 별일 없어요』라고 말한다.
 
  교도소의 밤은 길다.
 
  『거물급 재소자의 상당수가 처음에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잠을 못 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도 사람 나름이에요. 뇌물수수로 들어와서 길길이 무죄를 주장하던 한 고위직 공무원은 들어오는 날부터 누운 지 5분 만에 코를 골아요. 혼거방에서는 코를 고는 것 때문에 싸움이 잦습니다. 밤새 몸싸움이 벌어지고, 아침에 검방을 해보면, 감방 안이 엉망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징역살이 고통의 절반은 잠자리」라고 합니다』
 
  「편안하게 두 다리 뻗고 잠자는 게 행복」이라는 말이 실감으로 다가왔다.
 
  이틀 동안의 구치소 취재를 마친 후 기자는 「리걸 마인드(Legal Mind)」에 대해 생각해 봤다. 리걸 마인드는 인간 생활의 모든 것들을 법적 관점에서 생각하고 해석하는 심상으로 법질서의 기초가 된다. 囚衣는 『리걸 마인드를 가지라』는 법이 주는 경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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