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편지

대한민국을 지키는 사람들

  • 글 : 배진영 월간조선 편집장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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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말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나 저녁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신문 칼럼과 책을 통해 중국을 날카롭게 비판해 온 대학교수도 있었습니다. 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베이징대까지 나왔으면서 왜 그렇게 중국에 비판적이냐? 그러다가 중국 눈 밖에 나면, 중국 연구자로서 불리해지지 않겠냐?”
 
  사람 좋은 얼굴로 맥주를 마시던 그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나한테는, 대한민국의 이익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그다음 날에는 인지전(認知戰) 등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해 연구해 온 젊은 학자를 만났습니다.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런 연구를 하세요?”
 
  그는 약간 수줍어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나라에 보탬이 되고 싶어서요.”
 
  그들은 별 생각 없이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이런 시절에 아직도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대한민국을, 나라를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게 고마웠습니다.
 
 
  “어수선한 시대, 나라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11월 초 서울 인사동에서 열리고 있는 서예전을 보러 갔습니다. (재)강암서예학술재단이 주관한 〈2024 한국서예 변주전: 붓으로 쓴 우리말 노래〉라는 전시회였습니다. ‘만남’ ‘향수’ ‘봄날은 간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번지 없는 주막’ ‘아침 이슬’ ‘선구자’ ‘동무 생각’ ‘울고 넘는 박달재’ 같은 익숙한 대중가요·가곡의 노랫말들과 서예의 만남은 색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다른 서예전과는 달리 관람객들도 작품 앞에 서서 노랫말과 글씨를 음미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중 한 작품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하늘에는 밝은 달 기러기 날고 이름 모를 풀벌레가 슬피 우는데 이 밤도 잠 못 들고 나라를 위해 수많은 형제들이 전선에 섰다….”
 
  ‘나라 지키는 마음’이라는 1970년대 군가(軍歌)였습니다. 작품을 내놓은 분은 홍영순이라는 여성 서예가였습니다. ‘서예전에 군가를? 그것도 여성이?’
 

  전시 소개 책자에서 그분은 이렇게 밝혔습니다.
 
  “어수선한 요즘 시대를 살면서 나라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나라를 위해 수많은 형제들이 목숨을 바쳐 지킨 대한민국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김학송의 ‘나라 지키는 마음’을 글감으로 선택했다.”
 
  ‘애국가’를 출품한 분도 있었습니다. 전정우 선생이란 분입니다. 그분의 ‘출품의 변(辯)’입니다.
 
  “요즘 애국이란 말만 나오면 고루한 우파(右派)로 치부되거나, 태극기란 단어를 꺼내기만 해도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애국가와 태극기가 왜 거북한 느낌으로 다가와야 할까? 또한 서예가 누구 한 사람도 애국가를 작품으로 만든 것을 보지 못했다. 이 점을 꼬집고 진정으로 반성하는 의미에서 감히 애국가를 4절 모두 그 뜻을 제대로 새기고자, 한자어를 함께 넣어서 작품으로 남겼다.”
 
 
  한강 작가의 삼촌 한충원 목사의 편지
 
  《월간조선》 12월호를 한창 만들고 있던 11월 중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에게 보내는 삼촌의 편지’라는 글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글을 쓴 분은 한강 작가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85)씨의 17세 아래 친동생인 한충원 목사였습니다. 글이 하도 길어서 도대체 얼마나 긴지를 헤아려 보니 200자 원고지로 120매가 넘었습니다.
 
  이 글에서 한충원 목사는 한강 작가의 수상을 축하한 후, ▲4·3사건이나 5·18 등 현대사에 대한 한강 작가의 역사인식 ▲한강 작가의 작품 속에 나타난 성(性)에 대한 묘사 등을 통렬하게 비판했습니다. 모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후 한 달이 넘도록 논란이 되어온 문제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지적 못지않게 제 눈길을 끈 것은 한충원 목사가 밝힌, 글을 쓰게 된 동기였습니다. 한 목사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이후로, 국내에서 노벨문학상의 권위는 물론 조카의 작품에 대한 외설성 비판과 청소년 유해성 시비가 일어나고(전국 학부모단체의 반대와 국회에서 논란), 5·18 민주화운동과 4·3사건에 대한 평가 시비가 새삼 일어나고, 주한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노벨문학상 취소와 (스웨덴) 한림원 규탄 시위까지 벌어지며, 조카의 작품을 비판했던 어떤 작가가 특정 시민단체에 의해 고발되는 상황을 보면서 나는 이 나라의 장래가 심히 걱정되었다”면서 “온 국민이 함께 기뻐해야 할 일인데, 조카의 작품에 대한 극단적인 비난이 쏟아지고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지경에 이르니 그저 가슴이 아플 뿐”이라고 했습니다.
 
  한충원 목사가 자신과 형 한승원 소설가가 소원(疏遠)해지게 된 아픈 과거까지 드러내면서 ‘돌팔매질을 각오하고’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은 ‘나라의 장래가 심히 걱정’되고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지경’이 가슴 아파서였습니다.
 
 
  위기의 대한민국
 
  앞에서 소개한 분들은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이 아닙니다. 나름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리 유명한 분들은 아닙니다. 오히려 ‘보통 사람’에 가까운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서 ‘나는, 그리고 《월간조선》은 외롭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울러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겠다’는 다짐도 했습니다.
 
  지금 의미 있는 정치 세력으로서의 보수(保守)는 파편화되어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나라를 바로잡고 진정한 선진국으로 한 단계 더 도약시켜야 할 때에 정권을 잡고서도, 국민들로 하여금 나라의 존망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을 만든 현 집권 세력은 역사에 대죄(大罪)를 지었습니다.
 

  이럴수록 앞에서 언급한 ‘건강한 보수’들이 귀하게만 느껴집니다. 아마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저지른 가장 큰 정치적 과오는 이런 분들을 결집해 내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냉소(冷笑)하면서 등을 돌리게 만든 것일 겁니다.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생존과 번영의 근간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자유주의적 국제정세가 밑바닥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시대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국내 정치 리더십은 여야(與野) 할 것 없이 엉망입니다. 그나마 믿고 있던 기업인들 가운데도 선대(先代)가 보여줬던 도전 정신을 잃고, 기업에는 어울리지 않는 관료주의적 타성(惰性)과 무사안일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리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바다에 떨어뜨리는 물 한 방울’
 
  지난날 우리는 구한말(舊韓末) 외세가 침탈해 오던 시기에 정쟁(政爭)으로 날을 지새우다가 일제(日帝)에 나라를 빼앗긴 못난 조상들을 무척이나 원망했었습니다. 1960~70년대에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다시는 후손들로부터 ‘못난 조상’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하자” “후손들에게 ‘1970년대를 살았던 조상들은 일하고, 일하고, 또 일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하자”고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칫하면 현 세대가 못난 조상이 될 판입니다. 어쩌면 우리 세대는 현대사 이래 처음으로 자기가 물려받은 것보다 못한 나라를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첫 번째 세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잠이 안 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보존된다면, 그것은 온전히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의 할 일을 다하면서 나라를 생각하고, 나라를 걱정하고 있는 분들 덕택일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일이 바다에 떨어뜨리는 물 한 방울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한 방울이 없다면 바닷물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지요.”
 
  2024년 한 해 동안 《월간조선》이 대한민국이라는 바다를 존재하게 하는 ‘물 한 방울’의 역할이라도 해왔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저희는 ‘그 한 방울’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한 해 《월간조선》을 사랑하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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