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와 유전자 편집 기술 결합… 생명체를 설계하고 생산하는 생명 프로그래밍 시대 도래
⊙ 첨단 생물학이 안보 환경 재편… 확고한 AI·생물학 동맹 체제 안으로 들어가야
⊙ 크레이그 벤터,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 염기서열을 주입하여 인공 합성 세균 배양 성공
⊙ 유전체를 뜯어고친 미생물로 우유 생산하면, 축산업 사라질 수도
⊙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 HIV에 선천적 내성 가지도록 유전자 교정된 쌍둥이 출산케 하는 데 성공
박한슬
1991년생. 차의과학대 약학과 졸업, 연세대 통계·데이터사이언스 석사 / 《중앙일보》 《주간조선》 칼럼니스트, 서울시 청년정책자문단 / 저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숫자 한국》 외 다수
⊙ 첨단 생물학이 안보 환경 재편… 확고한 AI·생물학 동맹 체제 안으로 들어가야
⊙ 크레이그 벤터,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 염기서열을 주입하여 인공 합성 세균 배양 성공
⊙ 유전체를 뜯어고친 미생물로 우유 생산하면, 축산업 사라질 수도
⊙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 HIV에 선천적 내성 가지도록 유전자 교정된 쌍둥이 출산케 하는 데 성공
박한슬
1991년생. 차의과학대 약학과 졸업, 연세대 통계·데이터사이언스 석사 / 《중앙일보》 《주간조선》 칼럼니스트, 서울시 청년정책자문단 / 저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숫자 한국》 외 다수

- 사진=게티이미지
흥미로운 건 이와 엇비슷한 시기, 과학계에서도 생명의 비밀을 두고 유사한 수준의 희망 고문이 횡행했단 사실이다. 2000년대 초반, 인류는 30억 쌍에 달하는 인간 유전체(遺傳體)의 염기서열(鹽基序列)을 모두 읽어내는 인간 게놈(Genome) 프로젝트를 완료하며 생명의 지도를 완성했다고 자축했다. 설계도만 손에 쥐면 인간의 육체를 공학적으로 개량하는 웅장한 새 시대가 열릴 거란 기대가 들끓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물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기대했던 장밋빛 미래는커녕, 우려했던 통제 불능의 양상과도 거리가 멀어서다.
당시 인류가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부어 얻어낸 성과는 유전 암호의 구조적 이해라기보단, 그저 눈에 보이는 기호들을 맹목적으로 베껴 쓴 기계적 필사(筆寫)에 불과했다. 유전 염기의 서열만 간신히 확인했을 뿐, 기호들이 얽혀 만들어내는 복잡한 문법과 다차원적인 연산(演算) 기제는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가장 황망한 대목은 해독된 인간 유전체의 98%가량이 단백질을 만들어내지 않는 이른바 ‘잉여 암호’로 판명 났다는 사실이다. 유전자라는 설계도를 바탕으로 신체를 구성하는 부품을 찍어내는 것이 유전학의 핵심 전제인데, 설계도의 압도적 다수가 아무런 기능이 없는 공백으로 채워져 있었으니 열광하던 기대도 그만큼 차갑게 식어버렸다.
인공 게놈 프로젝트가 안겨준 실망과 경악
하지만 후속 연구가 누적되면서 섣부른 실망은 경악으로 바뀌었다. 쓸모없어 보이던 막대한 양의 잉여 암호들이 실제로는 부품 생산을 직접 지시하는 대신, 생산의 시기와 양을 정밀하게 통제하는 훨씬 상위의 조절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레고 블록 놀이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레고 블록의 형태와 색상은 몇 종류에 불과할지라도, 조립하는 방식은 무한하다. 조잡한 장난감부터 거대한 건축물 모형까지 빚어낼 수 있는 게 레고의 잠재력 아닌가. 생명의 본질 역시 물리적인 조립 블록인 단백질을 생산하는 개별 유전자가 아니라, 블록들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엮어낼지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조합(組合)의 규칙에 있었다는 논리다.
절망적인 것은 생명체가 지닌 암호 체계가 인간이 고안한 조립설명서보다 악랄할 정도로 난잡하다는 사실이다. 첫 장부터 순서대로 나열된 일반적인 지침서와 달리, 생명의 설계도는 결말의 일부가 3페이지에 파편화되어 있고 핵심 도입부가 250페이지 뒷면에 암호화되어 숨겨진 식이다. 기호의 필사는 마쳤을지언정 이를 논리적으로 재조립하는 작업은 인간의 두뇌로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런데 최근 거대한 장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막대한 연산 자원을 독점한 인공지능(AI) 모델들이 투입되면서, 파편화된 유전 설계의 이면을 통계적으로 꿰뚫어 보고 구조적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틈이 열려서다.
유전체 해석·예측 모델 알파지놈(AlphaGenome)
오랜 세월 생명과학을 지배해 온 핵심 정서는 자연을 향한 경외심과 수동적인 관찰(觀察)이었다. 생명을 인간의 지성으로 낱낱이 파헤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으로 치부하던 시절에는, 현미경 너머로 나타나는 현상을 건조하게 기록하고 종(種)을 분류하는 작업이 학문적 탐구의 정점이었다. 사실상 박물학(博物學)이다.
하지만 근대 생물학이 유전학의 수혜를 받아 분자생물학적 기틀을 다진 이후, 과학계는 생명체를 형이상학적인 신(神)의 피조물(被造物)이 아니라 언제든 분해하고 재조립할 수 있는 부품들의 정교한 집합체로 격하시켰다. 생물체를 미시적(微視的)인 분자 단위에서 뜯어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유전체를 직접 들여다보는 기술이 확보되자, 과학자들은 단순히 생명 현상을 묘사하고 기술(記述)하는 수준을 넘어 목적에 맞게 생물체를 새롭게 창조하는 설계(設計)의 영역으로 탐욕스러운 발걸음을 옮겼다.
다만 앞서 지적했듯 인간의 빈약한 인지 능력으로는 수만 개의 유전자가 찰나의 순간에 동시다발적으로 상호작용하며 빚어내는 비선형적 네트워크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재간이 없다. 특정 유전 형질 단 하나를 수정할 때 파생되는 생화학적(生化學的) 나비효과의 가짓수는 수리적(數理的)으로 무한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이 가진 폭력적인 수준의 연산적 우위가 판도를 뒤집는다. 과거 바둑판 위에서 당대 최고의 국수(國手)들을 차례로 꺾은 ‘알파고(AlphaGo)’의 충격이 있었듯, 유전체의 다차원적 연산에서 인간의 지적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새로운 형태의 알고리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서다.
그간 전 세계의 실험실에서 긁어모은 수조 개의 유전체 빅데이터는 반쯤 방치되어 왔다. 데이터 자체의 품질은 훌륭할지언정 이를 유의미한 정보로 엮어낼 연산 도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근 공개된 유전체 해석·예측 모델 알파지놈(AlphaGenome) 같은 도구를 이용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아직은 유전 변이(變異)의 기능적 결과를 예측하는 수준의 초기 기능을 구현하는 데 그치지만, 막대한 양의 자본과 연구 인력을 갈아넣어야 간신히 패턴을 찾아내던 분석 작업이, 이제는 인공지능의 연산을 통해 유전자 발현 패턴을 통계적 확률로 도출해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결코 작지 않다. 인간의 논리적 추론으로는 닿기 어렵던 곳에 도달하게 된 셈이다.
벤터, NHI보다 먼저 인간 게놈 프로젝트 완수
크레이그 벤터. 사진=AP/뉴시스단순한 이론적 가능성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무지막지한 연산 능력을 갖춘 알고리듬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 생명을 실험실에서 배양해 낸 선구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 셀레라 지노믹스(Celera Genomics)를 창립한 크레이그 벤터(Craig Venter)가 그 주인공인데, 벤터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베트남전의 참혹한 전장에서 위생병으로 구르다 뒤늦게 대학에 입학한 독특한 이력의 이단아(異端兒)다. 그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주도하던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비웃기라도 하듯, 게놈 프로젝트보다 훨씬 늦게 유전자 해독에 뛰어들었음에도 독자적인 유전체 해독 기술을 바탕으로 2001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미국 국립보건원보다 조금 이르게 완수했다. 늦게 출발한 민간기업이 막대한 양의 자본과 인력이 투입된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를 이겨버린 셈이다.
돌연변이를 프로그래밍하는 세상
벤터의 기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유전자를 단순히 읽어내는 단계를 넘어, DNA 염기서열 자체를 컴퓨터로 전송 가능한 데이터 문자열로 치환한 뒤, 마치 3D 프린터로 물건을 찍어내듯, 생명체를 설계하고 생산하는 생명 프로그래밍 시대를 열어젖혔다.
실제로 그는 2010년,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 염기서열을 주입하여 살아 움직이는 세계 최초의 인공 합성 세균을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역사상 최초의 인공 합성 박테리아인 ‘마이코플라스마 마이코이드(Mycoplasma mycoides) JCVI-syn1.0’다. 더 기가 막힌 건 새로 창조한 생물체의 유전 암호 한구석에 본인과 동료들의 이름, 특정 이메일 주소까지 워터마크처럼 각인(刻印)해 넣었단 사실이다. 마치 화가가 자기 작품에 낙관(落款)을 찍듯, 설계자가 자신이 조립한 생물체에 소유권과 개발 정보를 명시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런 기술적 전위(轉位)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작은 세균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는 인간의 세포조차 특정 기능이 임의로 삭제되거나 추가되는, 일종의 생체(生體)기계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단 얘기다.
이렇기에 현대의 제약과 바이오 패권(覇權)은 누가 더 방대한 양의 생명 데이터를 집어삼켰는지에 따라 철저히 승패가 갈리게 된다. 과거의 바이오 산업이 대규모 설비 투자를 통한 양산(量産) 능력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생명 현상의 방대한 데이터 덩어리 속에서 유효한 유전적 인과(因果)관계를 찾아내는 연산 능력이 곧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됐다. 양질의 데이터를 독점하고, 고성능 인공지능을 이용해 유전적 작동 원리를 파악한 극소수의 집단만이 천문학적 이윤을 독식하는 구조다.
제약이란 좁은 분야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닌 게, 생명체를 유전자 차원에서 개량하는 방법론은 인류를 지탱해 온 1차 산업의 근간을 해체할 막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수천 년을 이어온 목축업을 보자. 현재의 기술로도 우유에 들어가는 단백질 분자를 실험실에서 일일이 조합해 인공 우유를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럼에도 거대한 목축 산업에서 소를 키우는 이유는,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정밀 화학 공정이 소의 자연 대사(代謝)를 절대 이길 수 없어서다. 수억 년의 잔혹한 진화를 거쳐 최적의 에너지 효율을 달성한 소는 들판의 널린 잡초와 값싼 건초만 먹고도 고영양의 우유를 생산해 낼 역량이 있다. 실험실에서 배양한 배양육이나 합성 피혁이 전통적인 양돈과 낙농업의 경제성을 당장 압도하지 못하는 원리도 궤를 같이한다.
여기에 합성생물학이 개입하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 가령 태양빛을 흡수해 광합성(光合成)을 하는 값싼 미생물의 유전체를 뜯어고쳐, 대사 부산물로 우유 단백질을 배출하도록 설계한다고 가정해 보자. 거대한 발효조에 미생물을 쏟아붓고 적당한 햇빛만 쫴주면, 우유를 거의 공짜로 얻을 수 있다.
이렇게 고효율로 우유를 만드는 생물체를 만들어낸다면 더는 목축을 할 이유가 없다. 자연 상태 생물이 가진 조잡한 비효율을 제거하고, 인간이 원하는 고부가가치 물질만을 토해내도록 생물체를 개량할 수 있다면 전통적인 농축 산업을 유지할 이유가 사라진다. 말 그대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中 학자가 열어젖힌 인간 개량의 시대
유전자가 교정된 쌍둥이를 출산시키는 데 성공한 허젠쿠이.하지만 이 얄팍한 합의는 2018년,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賀建奎)에 의해 너무도 허망하게 산산조각 났다. 불법 시술을 통해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에 선천적인 내성(耐性)을 가지도록 유전자가 교정된 쌍둥이를 출산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만 보면 단순히 한 과학자의 일탈이라 여길 수도 있다. 중국 당국 역시 빗발치는 국제적 비난을 의식해 그를 구속하고 실형(實刑)을 살게 했다. 하지만 기술적 장벽이 돌파되고, 유전자 개량의 막대한 편익이 증명된 이상, 세계 각국은 생물학적 군비(軍備) 경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특정 국가가 인간 개량의 압도적인 효용에 굴복하는 순간, 나머지 국가들 역시 상대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인간 개량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구적 차원의 죄수의 딜레마다. 더군다나 지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수준의 복잡한 기능 개선이 아니더라도, 선천적 질병이나 결함을 ‘제거’하는 수준의 소극적 교정만으로도 국가 경쟁력은 폭발적으로 벌어질 수 있다.
자연선택을 거부한 문명사회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에 빛나는 프랑스 생물학자 자크 모노(Jacques Monod)는 저서 《우연과 필연》에서 현대 문명이 인류라는 종 전체에 가하고 있는 끔찍한 생물학적 부하(負荷)를 예리하게 짚어낸 바 있다. 가혹한 야생 상태였다면 도태되었을 부적응 형질들이, 현대 의학과 복지 제도라는 인위적 보호막 아래서 고스란히 보존되어 대물림되고 있어서다. 자연선택이라는 효율적인 진화의 원리를 거부한 문명사회가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할 후과(後果)다.
그런데 만약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이런 질병 유발 유전자를 깔끔하게 잘라내고 결함을 은밀하게 교정하는 수준의 개입을 묵인한다면 어떨까. 천문학적으로 치솟는 보건의료 재정을 줄이고, 인적 자원의 평균적인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완벽한 초인(超人)을 배양할 필요조차 없다. 심각한 결함과 질환의 싹을 사전에 도려내어 비용이 덜 드는 규격화된 인간을 양산하는 것만으로도, 국가 체제의 전반적인 유지 비용은 극단적으로 곤두박질치기 때문이다. 실로 우생학의 재림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가장 비관적인 공상과학(SF) 소설조차 묘사하길 꺼리던 퇴행(退行)도 예측할 수 있다.
공학의 진정한 본질은 기술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설계자가 피조물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억압하는 통제력의 확보에 있다. 정교하게 조립된 생체기계가 창조자의 통제에서 벗어나 반역하지 못하도록, 과학자들은 피조물의 목덜미에 절대 끊을 수 없는 생물학적 목줄을 채워둔다. 생물학에서는 이를 영양요구변이(Auxotrophy)라 부른다.
영양요구변이는 생존에 필수적인 특정 아미노산이나 비타민을 스스로 합성하지 못하도록 대사 경로를 고의로 누락시킨 생물체다. 이런 영양요구변이는 해당 양분이 없는 자연 상태에서는 스스로 생존이 불가능하므로, 해당 양분을 포함한 특수한 형태의 사료(飼料)를 배급하는 식으로 사육된다.
만일 해당 생물이 통제에서 벗어나 외부로 탈출하더라도 걱정은 없다. 인위적인 결함을 품은 생물체는 자연의 흙이나 물속에서는 며칠 버티지 못하고 사멸(死滅)한다. 설계자가 배합해 준, 결핍된 영양소가 듬뿍 담긴 특수 사료를 주입할 때만 숨을 부지할 수 있다. 만에 하나 이들이 보안을 뚫고 도망친다 한들 사회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 자연계에는 그들이 섭취해야 할 특수 물질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곧 끔찍한 대사 부전으로 굶어 죽을 수밖에 없어서다. 말하자면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공룡들이 탈출한다 한들, 자연환경에선 생존하지 못하게 만드는 강제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런 목줄을 인간에게 채운다면 어떨까.
유전적 목줄 채우는 새로운 전체주의
2020년 7월 보안법 반대 시위대원을 폭력으로 진압하는 홍콩 경찰. ‘유전자 목줄’을 채우면, 이런 일은 아예 벌어지지 않게 된다. 사진=EPA/연합뉴스이미 안면 인식 기술과 방대한 폐쇄회로(CCTV) 네트워크를 결합하여 거대한 디지털 감시망을 구축한 중국의 사례를 떠올려보자. 이들은 방대한 생활 빅데이터를 수집해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소수점 단위로 평가하는 신용 통제망을 가동 중이다. 길거리에서 무력으로 몽둥이를 휘두르지 않고도 대중의 체제 순응을 유도하는 압제를 완성한 셈이다.
하지만 현행 디지털 통제는 개인이 CCTV 밖을 벗어나는 순간 효력이 극도로 떨어진다는 한계도 명확하다. 만약 국가 권력이 정보기술(IT)을 넘어 시민의 육체 내부로 깊숙이 침투하여, 생존 자체를 볼모로 잡는 생물학적 제어권을 획득한다면 양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사각지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체제에 반항할 위험이 있는 집단의 유전체에 인위적인 결함을 심어놓았다고 치자. 국가가 배급하는 특수한 화학 물질이 체내에 주입되지 않으면 단기간 내에 대사가 정지되도록 세포 단위의 생물학적 자폭(自爆) 장치를 심어놓는 것이다. 순응하는 시민은 상수도를 통해 생명 연장 물질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겠지만, 국가에 대항하는 불온한 자의 경우 그저 수도 밸브를 잠그고 식량 배급을 차단하는 것만으로 삶을 끝내버릴 수 있다. 무협지에 나오는 고독(蠱毒) 같은 게 현실화되는 것이다.
경찰을 동원해 시위대를 짓밟거나 애써 거대한 수용소를 돌릴 이유 또한 사라진다. 치안 유지에 허비되던 예산을 극단적으로 줄이면서도, 체제를 위협하는 불순분자들의 통제가 가능하다. 전체주의 체제를 영구히 유지하기 위한 가장 저렴하고 확실한 방법이니, 권위주의 국가에선 이를 적극적으로 거부할 이유가 적다.
‘정글의 귀환’
미국 외교 전략의 뼈대를 설계해 온 전략가 로버트 케이건(Robert Kagan)은 《정글의 귀환》이라는 저서를 통해 뼈아픈 진실을 폭로했다. 우리가 공기처럼 당연하게 들이마셨던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역사가 진보하여 도달한 자연스러운 상태가 결코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현대의 평화는 패권국(覇權國)이라는 정원사가 막대한 피를 뿌려가며 다듬어 온 인위적인 온실에 불과하다. 정원사가 가위질을 멈추는 순간, 온실의 유리창은 깨지고 억눌렸던 폭력과 탐욕의 덤불이 피어오르는 야만적 정글로의 회귀가 필연적이란 뜻이다.
과거 안보 지형이 대륙 간 탄도미사일의 타격 거리나 바다를 가로막는 지정학적(地政學的) 방벽(防壁)에 의해 결정되었다면, 다가올 권력의 비대칭성은 유전데이터를 마음껏 분석할 수 있는 압도적 연산자원(演算資源)을 누가 틀어쥐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미국 행정부가 적성국을 향한 핵심 칩 수출을 틀어막는 작태가 IT 기업의 돈벌이를 지켜주기 위한 보호무역이겠는가. 당장 트럼프 행정부가 인공지능 기업 엔트로픽(Anthropic)을 윽박질러 모델 ‘클로드(Claude)’의 군사적 사용을 종용(慫慂)하고, 거부할 시 정부 차원에서 제재(制裁)를 가하겠다고 날뛰다, 결국 미국 전쟁부(옛 국방부) 장관 피트 헤그세스가 엔트로픽을 통상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적성국(敵性國) 기업에 적용하는 ‘공급망 리스크’로 지정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 직후 엔트로픽은 이란 공격에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다가올 기술 전쟁의 화려한 예고편이다.
AI·생물학 동맹
규범과 제재라는 환상으로 유지되던 국제사회의 연극은 급속히 막을 내리는 중이다. 재래식 물리력에 의존하던 핵 통제 체제는 거대한 우라늄 농축 시설의 움직임을 감시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파일 형태로 변환되어 무한 복제되는 유전 정보는 이러한 아날로그 시대의 감시망을 완벽하게 무용지물로 만든다. 게다가 적극적인 기능 획득 방향으로의 개선만이 아닌, 국가 전반의 유전적 하한(下限)을 끌어올리는 소극적이고 은폐하기 쉬운 접근은 더더욱 확인이 어렵다.
이런 과정을 물리적으로 차단할 방법은 전무(全無)하며,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앞서 언급한 압도적인 연산 역량뿐이다. 이런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면, 뾰족한 대응 방법 없이 유전적으로 뒤처진다.
결국 자력으로 거대 연산망과 방어막을 띄우는 것이 불가능한 체급의 국가라면, 애초에 선택지 자체도 적다. 최고급 인공지능 연산 모델과 유전체 방어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확고한 동맹 체계에 속하는 게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과거 냉전기에 미국의 핵우산(Nuclear Umbrella) 아래에서 우리가 안보를 보장받았듯, 첨단 생물학이 안보 환경을 재편할 수 있는 시대엔 낡아빠진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강대국들 사이에서 줄타기하려는 등거리(等距離) 외교는 더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정글의 귀환이 예고된 시대에 강력한 기술 연대(連帶)는 주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필연적인 선택이다.
물론 근래 정원사의 변덕이 극심한 수준이며, 기본적인 전지(剪枝) 작업이라도 제대로 되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미 강력한 인민 통제 체계를 완성한 중국과 비교할 사안일까. 막연한 희망에 기댄 낭만적 중립은 과거 철 지난 평화 공세에 속아 핵을 머리에 이게 된 오판보다 훨씬 파괴적이고 영구적인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다가오는 정글의 시대에는 시류에 휩쓸린 허망한 기대가 아니라, 현실적인 선택지를 빠르게 선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