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문장에 물들다 〈6〉 너희가 어찌 높이, 멀리 나는 도요새를 알겠느냐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인생은 아름답다. 우리 뒤에 올 세대들이 인생을 한껏 즐겁게 누릴 수 있기를’
⊙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어’
북쪽 지방으로 이동 중이던 도요새 10만여 마리가 모여든 전북 군산시 유부도 앞바다에서 짝짓기에 나선 민물도요들이 떼지어 날고 있다. 사진=조선DB
  멕시코에 망명해 있던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1879~1940년)는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레닌 사망 후 후계투쟁에서 스탈린에게 밀리자 1927년 무렵 식솔(食率)들을 모두 이끌고 해외 망명을 떠나 반스탈린 운동을 벌였다.
 
  사실, 트로츠키에 대한 사형선고는 그가 암살되기 오래전에 모스크바의 궐석재판에서 내려졌다. 암살자가 조만간 자신의 집을 찾아올 것이란 걸 알고서 그는 이런 유언장을 남겼다.
 
  〈마당에 있던 아내 나타샤는 방금 창가로 다가와서, 공기가 더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하기 위해서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나는 마당의 벽을 따라 자라고 있는 밝은 초록빛 풀들과 그 벽 위의 맑게 갠 푸른 하늘, 그리고 사방에 가득한 햇빛을 볼 수 있다. 인생은 아름답다. 우리 뒤에 올 세대들이 인생에서 죄악, 억압, 폭력을 말끔히 씻어내어, 인생을 한껏 즐겁게 누릴 수 있기를.〉
 
  사방에서 죽음이 점점 죄여오던 그가 ‘인생은 아름답다’고 한 말은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었다.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7) 제목 역시 그의 유언장에서 빌려온 말이라고 한다.
 
  트로츠키를 죽인 암살범 라몬 메르카데르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트로츠키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로츠키도 스탈린 시대가 낳은 한 희생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알듯 말듯한 고백을 했었다.
 

  메르카데르는 트로츠키가 쓴 책과 그의 옛 동료들이 남긴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그 결과 복잡한 내면세계를 가지게 됐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트로츠키에게 무수한 질문을 퍼부어댔을 때 그가 했던 대답을 늘 떠올렸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때는 완전히 다른 시대였고, 또 우리 모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음을 왜 이해하지 못하는가. 지금 그 같은 일들이 되풀이된다면 나는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메르카데르는 트로츠키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이 시대가 잘못된 선택을 했더라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믿었다. 선택하거나 회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훗날 메르카데르는 회고록을 남겼는데 책 서문에 이런 문장을 남겼다고 한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갈 시대를 선택할 수 없다. 인간은 주어진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또 죽는다.〉
 
  메르카데르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틀림없다. 아니 자신의 운명을 돌아보지 못한 채 잘못된 신념을 택하고 말았다. 트로츠키를 죽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누가 함부로 사람의 생명을 훔칠 수 있단 말인가.
 
 
  “4·3의 글쓰기도 조금은 너그러워야”
 
소설가 현기영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 《순이 삼촌》을 쓴 작가 현기영(玄基榮)은 한때 “4·3사건을 말하지 않고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역대 정권들에 의해 발설 못 하게 철저히 금압 당해왔기 때문에 그로서는 4·3사건에 서정도 웃음도 들어갈 수 없다고 여겼다. 보도연맹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 사건들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자신의 부모가 왜 죽었는지, 그 사건이 무엇인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트로츠키가 ‘인생은 아름답다’고 했듯이 현기영 역시 생각이 달라졌다. 산문집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2016)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렀다. 군사독재는 물러나고, 그에 따라 그 사건도 금기의 음습한 그늘을 벗어나 자신의 모습을 어느 정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4·3의 글쓰기도 조금은 너그러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모든 걸 엔터테인먼트와 쇼로 만들어버리는 이 경박한 시대에 해묵은 엄숙주의만을 고집하다간 비웃음을 당하기 십상이지 않겠는가. (중략)
 
  글 쓰는 자는 어떠한 비극,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독자에게 확신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각성이 생겼다.〉

 
시인 이성복
  현기영의 산문을 읽다 보니 이성복(李晟馥) 시인의 시론 《불화하는 말들》(2015)에 나오는 문장이 떠올랐다.
 
  〈동산병원 의사로 계시는 임만빈 선생님이
  수필집을 내셨는데 제목이 참 예뻐요
  《선생님, 안 나아서 미안해요!》
 
  이렇게 책임을 자기 쪽으로 돌려놓으면 예뻐져요
  ‘의미 있는 나’라는 것은 ‘깨지는 나’예요
  내가 깨져야 세상이 달라져요.〉

 
  무조건 책임을 ‘자기 쪽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늘 평행선을 달리는 시각의 차이를 한 번쯤 상대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닐 테지만…. 먼저 ‘나’를 돌아보고 상대를 응시해야 한다. 그것이 당장은 손해가 될지라도. 《불화하는 말들》에 나오는 다른 글이다.
 
  〈가려운 데를 박박 긁으면 쾌감이 있지요.
  그러나 긁고 싶은 대로 다 긁고 나면
  온통 피투성이가 되지요.
 
  시 쓸 때 들어가는 문은 가려움,
  나가는 문은 따가움,
  들어가는 문은 부질없음,
  나가는 문은 속절없음이에요.
 
  언제나 가까운 데서 찾고
  다른 데서 가져오려 하지 마세요.
  무엇보다 자기에게 절실해야 해요.
  쓰고 나서 많이 아파야 해요.〉

 
  이성복 시인은 “예술은 불화에서 나와요. 자기와 불화하고, 세상과 불화하고 오직 시하고만 화해하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를 헐벗게 하고 (동시에)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을 안겨다 줄 거예요”라고 말한다. 세상과 불화해야 한다는 강권(强勸)을 납득하기 어렵지만, 그런 힘든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당장은 그 선택이 힘들고 괴롭지만 결국엔 선(善)을 이루고 아름다움이 될 때가 있다.
 
 
  “너희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소설가 이문열
  이문열의 중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을 다시 읽어보았다.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억압과 착취, 힘에 편승하여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들의 기회주의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자유당 시절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좌천으로 서울의 명문 초등학교에서 Y읍의 초라한 학교로 전학을 간다. 그곳에서 학급 반장 엄석대가 담임선생님의 두터운 신임과 아이들의 절대적 복종을 받으며 군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는 저항을 하지만 결국 포기하고 만다. 그러나 새로운 담임이 부임하면서 엄석대의 권력도 무너진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석대의 강압에 못 이겨 시험지를 바꿔준 것 자체는 용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너희들의 느낌이 어떠했는가를 듣게 되자 그냥 참을 수가 없었다.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것도 한 학급의 우등생인 녀석들이….
 
  만약 너희들이 계속해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는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이 소설의 주제가 ‘절대 권력의 허구성과 소시민의 안이한 대응에 대한 비판’이라고 하지만, 새로 부임한 담임선생님의 용기를 가볍게 여길 수 없다. 불의에 순응하지 말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학생들은 엄석대라는 권력에 계속 기대었을 것이다. 그들은 졸업 후에도 불편, 부당함의 다른 권력에 순응하며 살았을 것이다.
 
  편하고 익숙한 불의와 결별할 수 있게 용기를 준 선생님이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 있다. 정치적 편향을 강요하기보다 편향을 넘어서는 진실을 가르치는 선생님 말이다. 다음은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마지막 부분이다.
 

  〈“놔, 이거 못 놔?”
 
  무심코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니 대여섯 발자국 뒤에서 사복형사인 듯싶은 두 사람에게 양팔을 잡힌 어떤 건장한 젊은 남자가 그들을 뿌리치려고 애쓰며 지르는 고함이었다. 미색 정장에 엷은 갈색 넥타이를 점잖게 받쳐 맸으나 왼쪽 소매는 그 실랑이로 벌써 뜯겨져 있었다. 나는 그런 그의 선글라스 낀 얼굴이 이상하게 눈에 익어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튀어봤자 벼룩이야. 역구내에 쫙 깔렸어!”
 
  형사 한 사람이 차갑게 내뱉으며 허리춤에서 반짝반짝하는 수갑을 꺼냈다. 그걸 보자 붙잡힌 남자는 더욱 거세게 몸부림쳤다.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 못 차려?”
 
  보다 못한 다른 형사가 그렇게 쏘아붙이며 한 손을 빼 남자의 입가를 쳤다. 그 충격에 선글라스가 벗겨져 날아갔다. 그러자 비로소 온전히 드러난 그 남자의 얼굴, 아 그것은 놀랍게도 엄석대였다.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건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 우뚝한 콧날, 억세 뵈는 턱, 그리고 번쩍이는 눈길….
 
  나는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질끈 두 눈을 감았다.〉

 
 
  “내 사고의 닫힌 문을 날카로운 부리로 쪼는”
 
긴부리도요새
  김원일(金源一)의 중편 《도요새에 관한 명상》(1979)을 읽는다. 이 소설은 도요새의 도래지로 유명한 동진강 하구에 사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생 병식은 용돈을 벌기 위해 먹이에 약을 타서 새들을 죽이고 사체를 박제사에게 판다. 형 병국은 명문대 출신의 수재지만 퇴학을 당해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병국에게 도요새는 자유와 이상의 상징이자, 지켜야 할 소중한 생명의 대상이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병국과 병식을 통해 저마다의 도요새를 마음속에 그리게 된다. “내 사고의 닫힌 문을 날카로운 부리로 쪼는”, 낡고 길들지 않은, 그래서 엉뚱한 모습으로 굳어진 생각의 틀을 깨는 도요새를 마음에 품게 된다. 다음은 소설 속 병국이 도요새의 음성으로 하는 말이다.
 
소설가 김원일
  〈우리는 여름을 한대 추운 지방에서 번식해 가을이면 지구 반을 가로지르는 여행길에 오른다. 우리는 떠나야 할 때를 안다. 얇은 햇살 아래 파르스름하게 살아 있던 이끼류와 작은 떨기나무가 잿빛으로 시들고, 긴 밤이 북빙의 찬바람을 몰아올 때쯤이면 여정의 채비를 차린다. 여름 동안 자란 새끼도 날개를 손질하며 출발의 한때를 기다린다. 우리의 여행은 생존에 필요불가결한 자유를 찾기 위한 고통의 길고 긴 도정이다. 처음 떠날 때, 우리는 무리를 이루지만, 창공을 가로질러 쉬지 않고 날 때는 혼자 날 뿐이다. 마라톤 선수가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할 때 오직 자신과 싸우듯, 작은 심장으로 숨 가빠하며 혼자 열심히 난다. 그렇다고 방향이나 길을 잃는 법은 없다. 혼자 날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고, 내 유전자 속에는 조상새로부터 물려받은 선험적인 길눈이 따로 있다. 우리는 각각 떨어진 개체지만 나는 속도가 일정하고, 행로가 분명하기에 낙오되거나 헤어지지 않는다.〉
 
시인 정호승
  이 글을 읽자니 정호승(鄭浩承) 시인의 시 ‘도요새’가 생각난다. 염전에 눈이 내리는데 도요새 혼자서 소금밭에 앉아 울고 있다. 염부들은 다 집으로 돌아가고 아무도 소금을 만들지 않는다. 도요새는 염전으로 날아오르던 순간을 꿈꾸며 허공에 무수히 발자국을 찍는다. 그 발자국이 소금이 되고, 눈물이 소금이 되는 꿈을 꾼다는 게 이 시의 전체적인 얼개다. 읽으면 읽을수록 맛이 있는 시다.
 
  옥구염전에 눈 내린다
  수차가 함부로 버려진 소금밭에
  눈발이 빗금을 치고 지나가다가
  무너진 소금창고 지붕 위에 힘없이 주저앉는다
  나는 일제히 편대비행을 하며
  허공 높이 무수히 발자국을 찍어대다가
  외로이 소금밭에 앉아 울고 있다
  이제는 아무도 내 눈물로 소금을 만들지 않는다
  염부들은 모두 다 집으로 돌아가
  화투나 치고 소주나 마시고
  길가의 칠면초만 저 혼자 붉다
  만조 때 갯벌 가득 일몰이 차 오르면
  쫑쫑 찡찡 쉿 소리치며
  일제히 염전으로 날아오르던 나의 사랑은
  언제 다시 소금으로 빛날 것인가
  나는 다시 허공에 무수히 발자국을 찍는다
  멀리 새만금 방조제가 가물거린다
  칠산 앞바다도 수평선이 사라졌다
  염전에 물을 대던 경운기도 녹슨 잠이 들고
  옥구염전에 눈은 그치지 않는데
  나는 몇마리 장다리물떼새와 함께
  외로운 소금밭을 서성거린다
  나의 발자국이 소금이 될 때까지
  나의 눈물이 소금이 될 때까지
 
  -정호승의 시 ‘도요새’ 전문

 
 
  정호승의 ‘도요새’, 정광태의 ‘도요새’와 박경리
 
정광태의 앨범 〈도요새의 비밀〉
  정호승의 시 ‘도요새’를 읽자니 갑자기 가수 정광태(鄭光泰)가 부른 노래 ‘도요새의 비밀’(1983)이 생각난다. 한때 이 노래를 열심히 불렀던 기억이 난다. ‘너희들은 모르지 우리가 얼마만큼 높이 나는지’로 시작하는 노랫말을 음미해본다.
 
  너희들은 모르지 우리가/ 얼마만큼 높이 나는지/ 저 푸른 소나무보다 높이/ 저 뜨거운 태양보다 높이/ 저 무궁한 창공보다 더 높이
 
  너희들은 모르지 우리가/ 얼마만큼 높이 오르는지/ 저 말없는 솔개보다 높이/ 저 볕 사이 참새보다 높이/ 저 꿈꾸는 비둘기보다 더 높이
 
  도요새 도요새 그 몸은 비록 작지만/ 도요새 도요새 가장 높이 꿈꾸는 새
 
  -작곡 강인원, 작사 박문영, 노래 정광태

 
소설가 박경리
  소설가 박경리(朴景利·1926~2008년) 선생은 서울 가는 차 안에서 정광태의 ‘도요새의 비밀’을 듣고 마음속으로 흐느꼈다고 고백한 일이 있다. 도요새의 애처로운 비상(飛上)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신랄한 당부를 했다. 1983년 4월 6일 자 《중앙일보》에 실린 시평 “높이, 멀리 나는 도요새” 중 일부다.
 
  〈가장 높이 나는 새, 가장 멀리 나는 새, 그 노래를 듣는 젊은이들은 과연 높은 곳이 무엇인지, 먼 곳의 뜻을 어떻게 헤아리는지 나는 몹시 궁금하다.
 
  새는 날갯죽지 하나로 망망대해, 수만리 장천을 목마름과 배고픔과 또 무서운 폭풍을 견디며 자신의 삶을 구현하는데 그 높고 먼 곳을 행여 야망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것이나 아닐는지.
 
  높은 곳은 출세요, 먼 곳을 정복이라 생각하는 것이나 아닐는지.
 
  오늘처럼 많은 부모나 사회 전반에서 젊은이들을 야망으로 내모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중략)
 
  날갯죽지 하나로 자신의 삶 전체를 구현하는 새, 하면 대학의 문안과 문밖의 차이가 있을 수 없으련만 생명의 원천인 흙 한 줌보다 지폐 한 장이 소중하다는 생활에 찌든 현실에서는 문안과 문밖이 있을 뿐 하늘도 없고 땅도 없다.
 
  따라서 문안에서는 쓸모없는 지식을 채워 머리통만 컸지 삽자루 하나 안 잡는 왜소한 인간을, 한 분야만 파고들어서, 한 부분밖에는 볼 수 없는 무식한 전문가를 양산하고 문밖에서는 자신의 삶을 장난감 망가뜨리듯 어렵잖게 내동댕이치는 추세가 현저한데 이들 양자가 어찌 높이, 멀리 나는 도요새를 알까보냐.〉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