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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29〉 엘런 코트의 <초심자에게 주는 助言>

다시 시작하라! 휘파람을 배우고 빵 대신 詩를 먹어라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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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여류시인 엘런 코트… ‘완벽주의자가 아닌 경험주의자가 되라’
⊙ 최하림의 〈아침 詩〉… 병마와 싸우는 시인의 희망 노래
미국 여류시인 엘런 코트. 사진=wfop.org
  초심자에게 주는 助言
  엘런 코트
 
  시작하라. 다시 또 다시 시작하라.
  모든 것을 한입씩 물어뜯어 보라.
  또 가끔 도보 여행을 떠나라.
  자식에게 휘파람 부는 법을 가르치라.
  거짓말도 배우고.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은 너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만들라.
  돌들에게도 말을 걸고
  달빛 아래 바다에서 헤엄도 쳐라.
  죽는 법을 배워 두라.
  빗속을 나체로 달려 보라.
  일어나야 할 모든 일은 일어날 것이고
  그 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흐르는 물 위에 가만히 누워 있어 보라.
  그리고 아침에는 빵 대신 시를 먹어라.
  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 말고
  경험주의자가 되라.

 
 
  ADVICE TO BEGINNERS
  Ellen Kort
 
  Begin. Keep on beginning. Nibble on everything.
  Take a hike. Teach yourself to whistle. Lie.
  The older you get the more they'll want your stories.
  Make them up. Talk to stones. Short-out electric
  fences. Swim with the sea turtle into the moon. Learn
  how to die. Eat moonshine pie. Drink wild geranium
  tea. Run naked in the rain. Everything that happens
  will happen and none of us will be safe from it.
  Pull up anchors. Sit close to the god of night.
  Lie still in a stream and breathe water. Climb to the top
  of the highest tree until you come to the branch
  where the blue heron sleeps. Eat poems for breakfast.
  Wear them on your forehead. Lick the mountain's
  bare shoulder. Measure the color of days
  around your mother's death. Put your hands
  over your face and listen to what they tell you.

 
 
새해 일출 모습. 부산 해운대를 찾은 시민들이 소망풍선을 하늘로 날려보내고 있다.
  한 해의 시작이다. 누구나 초심자(初心者)가 되는 시간이다. 새해의 출발선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미국의 여류시인 엘런 코트(1936~2015)의 시 〈초심자를 위한 조언〉만큼 새해와 어울리는 시는 없다.
 
  시인은 말한다. ‘시작하라, 다시 또 다시 시작하라’고. ‘휘파람’과 ‘거짓말’을 배우며 ‘돌들’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아도 좋다. 가끔 ‘달빛 아래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빗속을 나체로 달려보는’ 것 또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행위다. 마지막 행의 ‘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 말고 경험주의자가 되라’는 말은, 한 해의 시작을 다지는 멋진 표현이 아닐까.
 
  국내 번역시는 영어 원문에 비해 산뜻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다만, 시적 상상력을 제한하고 있다. 원문은 때로 몽환적이고 감각적이다.
 
  1행의 ‘모든 것을 한입씩 물어뜯어 보라’는 ‘의심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원문(Nibble on everything)은 ‘양보하라’는 뜻이 강하다. 동사 ‘nibble’은 ‘음식을 조금씩 먹다’, ‘약간 관심을 보이다’는 의미다.
 
  8행의 번역시는 ‘돌들에게도 말을 걸고’다. 그러나 원문은 ‘돌들에게도 말을 걸고 전기 울타리를 끊어라’(Short-out electric fences.)다. ‘누전된 전기 울타리’는 유추하건대 어떤 장벽이나 방어적 경계를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듯하다.
 
  9~10행에서 시인은 ‘달빛 아래 바다에서 헤엄도 쳐라, 죽는 법을 배워 두라’고 말한다. 원문과 다른 점은 ‘바다거북(sea turtle)’이 없다는 점이다. ‘달빛’과 ‘바다거북’이 번역시에 들어갔다면 시가 몽환적으로 느껴졌을지 모른다.
 
  원문에 나오는 ‘Eat moonshine pie. Drink wild geranium tea’ 역시 번역 과정에서 생략됐다. 번역자가 보기에 ‘밀주 파이’와 ‘야생 제라늄 차(茶)’가 생뚱맞다고 느꼈나 보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시를 아기자기하고 생동감 있게 만든다. 위스키가 들어간 파이, 들꽃 제라늄으로 만든 차는 매우 감각적이다.
 
  또 원문의 ‘Climb to the top of the highest tree until you come to the branch where the blue heron sleeps(푸른 왜가리가 자고 있는,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의 나뭇가지에 올라가라)’도 국내 번역시에 빠져 있다. 하지만 상상만 해도 즐거운 표현이다. 푸른 왜가리를 향해 조심조심 나무에 올라가는 모습이 장난스럽게 느껴지고, 호기심을 쫓아가는 소년 같은 이미지가 연상된다. 그런 호기심으로, 그런 초심자로 한 해를 시작하면 얼마나 좋을까.
 
 
  최하림의 〈아침 詩〉와 美 의지
 
최하림 시인.
  최하림의 시 〈아침 시(詩)〉는 감각적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침의 자연을 마음의 눈으로 관찰하는 시다. 자연의 위대한 활력(活力)은 눈에 안 보인다. 공기와 햇빛, 숲과 새소리는 늘 익숙한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그 소중함을 알면 신(神)이 빚어낸 자연의 위대함에 겸손하게 된다. 시어인 ‘굴참나무’와 ‘아이들’은 활력 넘치는 삶의 표상이다. ‘아침’이라는 시간적 배경도 활력 넘치는 장면을 보여준다.
 
  굴참나무는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해만 뜨면 솟아오르는 일을 한다
  늘 새롭게 솟아오르므로 우리는
  굴참나무가 새로운 줄 모른다
  굴참나무는 아침 일찍 눈을 뜨고
  일어나자마자 대문을 열고 안 보이는
  나라로 간다 네거리 지나고 시장통과
  철길을 건너 천관산 입구에 이르면
  굴참나무의 마음은 벌써 달떠올라
  해의 심장을 쫓는 예감에 싸인다
 
  그때쯤이면 아이들도 산란한 꿈에서
  깨어나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검은 숲 위로
  오른다 볼이 붉은 막내까지도 큼큼큼
  기침을 하며 이파리들이 쏟아지듯 빛을
  토하는 잡목숲 옆구리를 빠져나가
  공중으로 오른다 나무들이 일제히
  손을 벌리고 아이들이 일제히
  손을 벌리고 아이들은 용케도 피해 간다
  아이들의 길과 영토는 하늘에 있다
  그곳에서는 새들과 무리지어 비행할
  수가 있다 그들은 종다리처럼 혹은
  꽁지 붉은 비둘기처럼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포르릉 포르릉 날며 흘러
  내리는 햇빛을 굴참나무처럼 느낄 수 있다
 
  - 최하림의 〈아침 시〉 전문

 
  8행의 ‘천관산’은 시인이 한때 요양을 하며 지냈던 충북 영동군에 소재한 산이라고 한다. 1990년대 초 건강이 나빠져 산골로 내려가 자연을 벗 삼아 지낼 때 쓴 작품이다. ‘굴참나무가 공중으로 솟아오른다’는 표현은 병마(病魔)에 시달린 시인의, 활력 넘치는 삶을 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움직이지 않는 사물에서 움직임을 읽어 내는 것을 시학(詩學)에서는 ‘역동적 상상력’이라 부른다. 서정시는 ‘풍경의 미(美)’가 아닌 ‘풍경의 미화(美化)’를 본질로 하는 장르다. 굴참나무가 있는 풍경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굴참나무를 아름답게 하고, 살아 움직이게 하는 시인의 ‘미 의지’로 인해 자연이 아름다운 것이다. 시인은 요양 중이지만 시인의 마음은 절망이 아닌 희망을 노래한다. 아이러니다. 희망과 도전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절망과 포기가 부끄러운 것이다.
 
 
  안도현의 〈연탄 한 장〉, 법정스님의 《무소유》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 전시된 연탄재와 생화 장미꽃이 어우러진 〈뜨거울 때 꽃이 핀다〉는 작품.
  올 한 해를 안도현의 〈연탄 한 장〉처럼 살아 보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연탄에 불이 붙는 것처럼 온몸이 타오르는 일이다. 연탄이 한 줌의 재가 된다는 것은 사랑의 흔적이 깊다는 것을 뜻한다. 다 타 버린 연탄은 폭설이 내린 산비탈 달동네 언덕과 골목에 뿌려진다. 아낌없이 자신을 태우고 기꺼이 길 위에 뿌려지는 연탄이야말로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존재다. 법정 스님이 《무소유》에서 하신 ‘다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채워진다’는 말씀이 연상된다. 연탄이야말로 무소유의 존재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안도현의 〈연탄 한 장〉 전문

 
  안도현 시인의 비슷한 ‘연탄 시’로 〈너에게 묻는다〉가 있다. 3행의 짧은 경구에 가까운 시지만 감동은 3000행, 3만 행 이상이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水槽와 거울 이야기
 

  중견 소설가 구효서의 단편소설 〈이발소 거울〉이 문득 생각난다. 소설 줄거리는 이렇다.
 
  ‘나’는 해고를 당해 이발소 건너편 건물에 건강보조 식품가게를 열었다. 그곳에서 맞은편의 이발소를 바라보곤 했다. ‘나’에게 이발소는 마치 커다란 수조(水槽) 안을 떠도는 물고기 같아 보였다. 어느 날 우연히 들른 정수기 판매원의 입을 통해 이발사가 ‘나’의 가게를, ‘내’가 이발사를 바라보듯 그렇게 바라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느 날 20년간 다니던 이발소가 갑자기 문을 닫았다. ‘나’는 허전함을 느꼈지만 왜 이발소가 폐업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철거된 그 자리에 깨끗하게 단장한 이발소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나’는 달려가 이발사를 만난다. ‘나’는 이발사와 함께 이발소 거울을 쳐다보며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낯선 타인처럼 수조의 대상으로 이발사를 바라보지 않는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조’와 ‘거울’ 이미지는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나’에게 이발사는 수조와 같다. 수조는 보는 사람과 분리된 관상용 공간이다. 타인의 삶이지 내 삶의 일부가 아니다. 하지만 거울은 다르다. 거울은 보는 사람과 마주한 공간이다. 거울 속 ‘나’는 나를 빼닮은 ‘또 다른 나’이자 이웃이다.
 
  작품 결말에서 ‘나’는 이발사의 존재를 더 이상 ‘수조’가 아닌 ‘거울’로 인식하게 된다. 타인이 아니라 내 이웃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가까운 주변을 ‘수조’가 아닌 ‘거울’로 바라보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가 그에게서 수조를 보았을 동안 그는 나에게서 거울을 보고 있었던 거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열패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끝내 궁금했던 것은 그가 어째서 그 자리, 그 일로 다시 돌아왔느냐는 거였다. 묻는다면 그는 무어라고 대답할까.
  새로 건 이발소 거울은 이전 것보다 두 배나 컸다. 정면이 매끄럽고 밝았다. 이발사가 거울 앞으로 가 섰다. 나는 거울이라면 무조건 싫었다. 그러나 거울 앞에 말없이 서 있는 그의 모습이 거절할 수 없는 기운으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거울이 크니까… 실내가 훨씬 훤하네요.
  내가 한 말이었다. 여전히 거울을 외면한 채
  그는 오랫동안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나도 어느새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울 속에서 그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부정하지 않기로 했지. 부정할 수 없었어. 부정되지도 않는 거니까. 인정하면 낯설 것도 고통스러울 것도 없고 외려 정겨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소. 내 가운이 어울리지 않소?
 
  - 구효서의 단편 〈이발소 거울〉의 결말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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