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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출신 우동집 주인장의 일본 物語 〈9〉 ‘요미우리’와 ‘히키후다’

에도시대 정보 유통의 총아, 요미우리’와 ‘히키후다’

글 : 신상목  기리야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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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시대의 신문 《요미우리(讀賣)》, 1615년 도쿠가와-도요토미 진영 대결 다룬 것이 최고(最古)
⊙ 취재원·기자 두고 치정사건 등 현장 취재
⊙ ‘히키후다(引札)’는 광고지의 효시, 일종의 CM송도 유행

신상목
1970년생. 연세대 법대 졸업, 외시 30회 합격 /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외교부 G20정상회의 행사기획과장, 핵안보정상회의 준비기획단 의전과장 역임.
현 기리야마 대표 / 저서 《일본은 악어다》
1855년 간토 지방에서 발생한 지진과 쓰나미 소식을 전하는 가와라반.
  에도(江戶)시대 말기인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출판시장이 활성화되고 서민 교육의 보급으로 문자해독 인구가 크게 늘어난다. 출판·인쇄 문화가 발달하고 문해율(文解率)이 높아지면 가장 왕성하게 소비되는 읽을거리는 무엇일까? 현대인의 경우는 신문일 것이다. 단행본이야 한 달에 한 권 읽을까 말까이지만, 신문의 경우 매일매일 보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요즘이야 인터넷이 발달해서 종이신문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장 흔하게 접하는 인쇄물은 신문이다.
 
  신문은 활자화된 정보전달 매체의 총아로서 근대화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까지 신문의 정보전달 매체로서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일본은 국민이 종이신문을 유별나게 사랑하는 신문대국이다. 2011년 세계신문발행부수 조사에 의하면 상위 10위권에 일본 신문사가 5개나 포진해 있다. 1위 《요미우리신문》(1000만 부), 2위 《아사히신문》(750만 부), 4위 《마이니치신문》(350만 부), 6위 《니혼게이자이신문》(300만 부), 9위 《주니치신문》(280만 부) 등이다.
 
 
  에도시대의 신문, 《요미우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요리우리로 알려진 〈大阪安部之合戰地圖〉.
  단일 신문으로는 세계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요미우리신문사의 사명(社名)인 ‘요미우리(讀賣)’의 유래는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는 17세기 초반부터 화재나 자연재해, 치정(癡情)사건 등 오늘날 사회면 뉴스에 해당하는 소식을 낱장 또는 몇 장의 지면에 담아 거리에서 파는 소식지가 있었는데 이를 ‘요미우리’라고 불렀다. 독매(讀賣)라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판매자가 큰소리로 내용을 읽으면서 가두(街頭)판매를 한 것에서 유래했다. 요미우리는 ‘가와라반(瓦版)’이라고도 한다. 기왓장(瓦)같이 생긴 점토판에 판각하여 인쇄하였다 하여 가와라반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실제 현존하는 요미우리는 거의 목판으로 인쇄된 것이어서 가와라반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요미우리는 1615년 에도 막부의 도쿠가와 진영과 도요토미 진영이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오사카 하계진(大阪夏の陣)의 모습을 담은 〈대판안부지합전지도(大阪安部之合戰地圖)〉로 알려져 있다. 천하통일의 대단원을 향해 벌어지는 두 진영 간의 전쟁은 당대 최고의 관심사였다.
 
  요미우리는 이렇듯 세상 돌아가는 일, 대중의 관심사에 관한 정보를 빠르게 전할 목적으로 유통된 상업 인쇄물이다. 내용과 형식 면에서는 현대의 신문과 많은 차이가 있지만, 독자의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고자 하는 수요에 대응하여 화젯거리, 즉 뉴스를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보도 기능을 수행하는 언론매체의 원형으로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 일본의 역사학자나 언론학자들의 주장이다.
 
 
  치정사건 등 뉴스거리 다뤄
 
가와라반은 괴담을 전하기도 했다. 인어가 잡혔다는 소식을 보도한 1805년의 가와라반.
  에도시대의 서민생활을 담은 풍속집 등에는 에도 중기(18세기 중반) 이후에 접어들면서 요미우리가 서민들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필수품이 될 정도로 활발히 제작되고 판매되었다는 기록들이 있다. 다만 1회성 소비를 목적으로 비공식적인 언더그라운드 인쇄물로 출간되는 속성상 그 실체와 전모에 대해서는 실증적 자료와 연구가 미흡한 측면이 있다. 특히 다수의 사료(史料)가 현존함에도 사료만으로는 작성 주체나 경위 등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연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요미우리를 간행하는 업자를 ‘요리우리야(讀賣屋)’ 또는 ‘가와라반야(瓦版屋)’라고 한다. 대개 대중오락물을 출간하는 소우시야(双紙屋) 계통의 출판업자들이 관여했으나, 인쇄 작업은 소우시야와 제휴하되 요미우리에 전념하는 전문업자도 있었다고 한다.
 
  요미우리의 주요 소재는 대화재나 지진, 홍수 등의 자연재해, 살인사건이나 치정사건 또는 기담괴담(奇談怪談) 등 저잣거리의 대중적 화제가 될 만한 일들이었다. 그러한 뉴스거리가 있을 때마다 부정기적으로 제작되고 통속적 흥미 본위의 내용을 주요 소재로 다루었기 때문에 신문과 타블로이드판의 중간 정도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작 과정은 현대의 신문 제작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뉴스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일이 발생하면 신속한 이동이 가능한 취재원이 현장에 파견되어 동향을 파악하고, 현장에서의 취재를 바탕으로 필력이 좋은 본사의 기자(물론 당시에는 ‘기자’라는 말은 없었다)가 기사를 작성해서 원고를 인쇄소로 넘기면, 인쇄업자가 재빨리 목판을 제작, 인쇄하고, 이를 전문 판매원들이 가두판매에 나서 유통시키는 것이 일반적 형태였다. 속보성(速報性)이 중시되는 인쇄물이었기에 전문 우키요에나 단행본에 비해 판각의 치밀함이나 섬세함은 덜했으나, 필사본이 아닌 목판 인쇄를 하였기에 한 번에 수백 장씩 인쇄하여 시장에 유통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니시키에 신문’의 등장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왼쪽)이 흑선(오른쪽)을 이끌고 와서 일본의 개국을 요구하자, 가와라반은 이 사실을 보도했다.
  요미우리는 막부로부터 공인받은 인쇄물이 아니었고, 따라서 원칙적으로 단속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단속을 피하기 위해 요미우리 판매상들은 2인 1조로 꾸려 한 명이 큰소리로 기사 내용을 읽으면서 호객을 하고, 다른 한 명은 관원들이 오는지 감시하면서 판매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간행업자들 스스로 정치적인 소재를 다루기를 꺼려 단속이 그리 심하지는 않았고, 단속도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치정살인 등의 내용 등을 걸러내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도쿠가와 막부 말기에 들어서 서양의 흑선(黑船) 내항 등으로 일대 정치적 격변 상황이 발생하자 요미우리의 콘텐츠도 현실을 반영하여 변화한다. 막부의 통제력 약화와 맞물려 국내외 정세를 소개하고 심지어 정치적 주장까지 담은 요미우리가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하였고, 이 시기의 요미우리는 근대적 신문으로 대체되기 전까지 정치 관련 뉴스와 오피니언의 시중 전달 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엽기적 살인사건을 다룬 《동경일일신문》 기사. 니시키에 인쇄술을 사용했다.
  19세기 중반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면서 우키요에 판화의 최후 형태인 ‘니시키에(錦畵)’ 인쇄술을 도입하여 더욱 정교해지고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니시키에 신문’이 등장한다. 니시키에 신문은 19세기 말 서양식 윤전기를 사용하는 근대적 신문의 도입으로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였지만, 정식 등록된 언론사가 간행한 신문으로서 비주얼 그래픽을 강조한 독특한 구성 등은 훗날 텍스트보다 시각적 자료가 강조되는 사진 주간지 같은 장르의 원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광고지의 효시 ‘히키후다(引札)’
 
에치고야에서 발행한 광고물 히키후다.
  신문이 대중의 뉴스 수요 충족을 위해 고안된 인쇄물이라면, 정보를 대중에게 전파하고자 하는 수요에 대응하여 고안된 인쇄물은 광고지라고 할 수 있다. 속칭 ‘지라시’라고 불리는 광고 전단은 현대인들도 일상적으로 접하는 매우 친숙한 인쇄물이다.
 
  에도시대의 인쇄물 유통 발달은 상업자본의 발달과 맞물려 광고지라는 새로운 종류의 인쇄물을 탄생시키는데, 에도시대에 유통된 상업 목적의 광고지를 ‘히키후다(引札)’라고 한다. 보통은 상점이 발행하였지만, 가부키 극장이나 신사(神社), 사찰 등에서 행사 소개나 관객 안내를 위해 발행하는 (일종의 팸플릿 같은) 인쇄물도 히키후다에 포함된다.
 
  히키후다는 개업, 이전 등 업체를 소개하는 단순한 내용을 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개중에는 단순한 소개가 아니라 판촉 마케팅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는 기업 전략의 산물인 경우도 있었다.
 
  히키후다의 시초로 알려진 것이 1683년 에치고야(越後屋·미쓰코시백화점의 전신)라는 포목점이 발행한 히키후다이다. 당시 포목점들은 다이묘(大名)나 유력 무가(武家) 등 큰손 고객이 1년에 한두 차례 대규모로 옷감을 구입해 가면서 대금을 외상으로 지불하고 가격도 후려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에치고야는 수요자군이 한정되고 현금 융통에 제약이 가해지는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현금 거래 시 할인, 정가 판매, 작은 단위로도 옷감 판매”라는 판매 전략을 수립하고 그러한 내용을 담은 히키후다를 제작하여 시중에 배포했다. 이러한 전략이 적중하여 에치고야가 일약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포목업의 기린아가 되자 매출 증대를 위한 전략을 고안하고 히키후다를 발행하여 광고 활동에 나서는 상점들이 뒤를 이었다. 일정 금액 이상을 구입하면 술 등의 경품을 지급한다거나, 대용량 덕용 상품을 구비한다거나 하는 새로운 판촉 기법이 활발히 고안되고 히키후다를 통해 선전됐다.
 
 
  기사와 광고의 결합
 
‘일본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리는 히라가 겐나이.
  히키후다는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였기 때문에 도안(圖案), 구성 등의 디자인적 요소와 문안(文案) 등 카피 라이팅에 공을 들였다. 개중에는 예술성 높은 히키후다도 꽤 있어 컬렉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에 더하여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당대 유명 작가 등을 고용하여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에도시대의 천재’ ‘일본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괴짜 발명가 겸 작가인 히라가 겐나이(平賀源內)는 당시 에도 장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사였는데, 그가 지인(知人)의 부탁으로 써준 ‘소세키코(嗽石香)’라는 치약 상품의 광고문은 장안의 화제가 되어 거리의 아이들이 광고문을 가사로 한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유명 연예인이 CF에 출연하거나 대중이 CM송을 흥얼대는 현대의 광고 기법이 연상되는 일화다.
 
  앞서 소개한 니시키에 신문의 개척자인 《동경일일신문》은 기사가 실린 본지(本紙) 외에 광고주의 의뢰를 받아 히키후다를 부록으로 곁들여 배포하였다. 신문업자는 광고주로부터 수익을 얻고 광고주는 신문업자를 통해 보다 광범위한 광고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상부상조의 비즈니스 모델이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양자 간의 협업(協業)은 신문(또는 잡지)의 정보 발신력과 전달력에 기초하여 신문의 불가결한 요소로 광고 게재가 자리 잡는 신문·광고지 통합으로 이어지는 한편, 배포 단계에서 광고지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도 진화하여 현대에 이르고 있다.
 
 
  민간 주도 정보 유통 시장의 형성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조선시대의 ‘조보(朝報)’라는 승정원 발행의 문서를 조선시대의 신문으로 평가한다. ‘조보’는 매일 아침 그 전날 조정에서 결정된 사항이나 제례(祭禮)와 관련된 사항 등을 승정원이 정리하여 발간하면 그를 필사하여 지방의 관아나 주요 사대부가에 배포하는 일종의 관보(官報)라고 한다. 문(文)을 숭상하고 인쇄술이 발달된 조선에서 조정의 소식을 문서로서 신속하게 유통하는 제도가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또 평가할 만한 일이다.
 
  다만, 일본의 ‘요미우리’를 ‘조보’와 비교할 때, 양자 간에는 정보 유통의 주체 및 메커니즘 측면에서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정부 간행물인 ‘조보’와 달리 ‘요미우리’는 철저한 민간 주도의 정보 유통 매체이다.
 
  비록 다루는 내용에 제약은 있었지만 민간 주도의 정보 유통이 가능했다는 것은 사회 발전 단계에 있어 큰 의미를 지닌다. 정보 통제 속성의 억압적 체제하에서도 정보 유통 서비스 시장이 자생적으로 형성되고 상업적 활력을 갖고 성장, 발전한 에도시대는 전(前)근대사회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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