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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석춘의 한국사회 읽기 〈3〉 해방 전후 역사와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

글 : 류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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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투쟁뿐 아니라 반공투쟁을 거치면서 대한민국 건국
⊙ 헌법 전문(前文)의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은 1919년 건국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임시정부의 정신 계승한다는 의미
⊙ ‘한강의 기적’은 ‘내재적 발전사관’으로는 설명 못해

류석춘
1955년생.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미국 일리노이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
《전통과 현대》 편집위원,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장 역임. 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박정희기념재단 부이사장 / 《막스베버와 동양사회》 《발전과 저발전의 비교사회학》
《한국의 시민사회-연고집단, 사회자본》 《유교자본주의의 가능성과 한계》
《동아시아 유교자본주의 재해석》 등 저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으로 대한민국은 비로소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1. 대한민국 건국 = 항일 + 반공
 
  대한민국을 건국한 동력은 무엇인가?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국가 정체성 논란의 핵심에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답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이 세계 10위권 수준이라는 평가에 우리는 전혀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기준이나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기준은 물론이고 복지제도와 같은 사회적 기준, 나아가서 과학기술 및 생활양식으로 대변되는 문화적 기준에서도 우리는 세계 상위권 국가에 속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번영의 기초를 우리는 언제 놓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출발하면서부터다. 전통국가 조선도 아니고 일본이 지배한 식민지도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국가 기본 운영원리로 채택한 대한민국이 국회, 헌법, 정부를 순차적으로 만들어 나간 1948년이 그 출발이다.
 
  그렇다면 이를 만들어 낸 동력은 무엇이었나? 두 가지 힘의 결합으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대한민국을 건국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일본 제국주의와 싸운 ‘항일’(抗日)의 힘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 공산주의와 싸운 ‘반공’(反共)의 힘이다. 이 두 가지 힘 가운데 하나만으로는 대한민국이 건국될 수 없었다. 항일만 해서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고 치면 그 나라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나라가 되었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었다. 북한이 여기에 해당한다.
 
  잠시 역사를 되돌려 보자. 항일의 결과로 1945년 해방되고 나니 한반도에는 새로운 적이 등장했다. 다름 아닌 북한 공산 정권, 그리고 이 정권을 뒤에서 사주하고 있는 스탈린과 마오쩌둥이다. 그러나 당시 남한을 통치하던 미 군정은 이러한 사정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소련이 점령한 북한에서 공산 전체주의 국가가 차근차근 만들어지는 과정을 목격하면서도 미 군정은 신탁통치를 추진했다.
 
  또한 신탁통치를 두고 좌파의 찬성과 우파의 반대가 극렬히 대립하자 미 군정은 다시 좌우 합작을 추진했다. 박헌영과 같은 탈법적 좌파 그리고 이승만과 같은 반공 우파 지도자를 따돌리는 대신 미 군정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좌파인 김규식과 여운형을 군정 파트너로 삼았다. 이승만은 강력히 반발했다.
 
김원봉은 뛰어난 항일운동가였지만, 해방 후 북한정권의 요직을 지냈다. 오른쪽 앞에서부터 김일성, 박헌영, 김두봉, 김원봉, 김달현, 허헌.
  이승만은 동구(東歐)에서의 좌우 합작이 결국 소련의 위성국 건설을 위한 시간 벌기였다는 사실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1946년 6월 정읍에서 남한만의 단독 정부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1946년 3월 토지개혁을 하는 등 이미 사실상 공산국가를 건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구의 실패를 겪으며 다행히 미국도 정신을 차렸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곳곳에서 팽창하는 공산주의를 마주하며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1947년 3월 소련과의 냉전을 공식 선언했다. 이 선언에 따라 좌우 합작은 동력을 잃었고, 이승만의 반공 노선은 마침내 힘을 받기 시작했다.
 
  그 후 유엔은 1947년 11월 한반도에서 인구 비례에 따른 총선을 결의했고, 북한은 이를 거부했다. 그냥 단순히 거부한 것만이 아니었다. 1948년 5월 10일로 예정된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북한은 남로당과 좌익 계열을 총동원해 살인, 방화, 파업, 폭동을 일으켰다. 제주의 4·3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대한민국은 건국했다. 그러므로 반공은 항일만큼이나 대한민국을 건국한 동력이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힘에서 반공을 지우고 항일만을 내세우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원봉은 해방 전 공산주의 계열 항일 무장투쟁을 이끌며 임시정부 좌파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해방 후 남한으로 귀국했던 김원봉은 북한으로 넘어가 노동상 즉 노동부 장관을 했다. 그러므로 그는 항일운동을 했지만 대한민국의 건국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6·25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조력자가 되었을 뿐이다. 반공을 뺀 항일만으로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까닭이 이것이다.
 
  김구는 해방 전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가장 탁월한 항일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임시정부 우파의 중심 인물인 그는 중국에서 외교·군사·의열 등 모든 분야의 항일 투쟁을 지휘하는 최고 지도자였다. 귀국 후에도 1947년까지는 이승만과 더불어 반탁·반공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그는 1948년 1월 이후 대한민국 건국의 최종 단계에서 공산 세력과 남북 협상을 전개하면서, 5·10 선거를 부정했다. 그래서 김구는 대한민국 독립에 큰 기여를 했음에도 대한민국 건국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2. 2016년 광복 71주년, 대한민국 건국 논란
 
1948년 8월 15일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는 이승만. 이날 정부수립으로 1945년 해방부터 시작된 건국과정이 마무리되었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이 많다. ‘대한민국’이 언제 태어났는가 하는 문제도 그렇다. 특별히 따져 보기 전까지는 그저 8월 15일 ‘광복절’이 대한민국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대충 생각한다. 그러나 8월 15일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 이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광복절이라고 기념하는 8월 15일은 두 가지 역사적인 사건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였던 우리가 해방된 날이 1945년의 그날이기 때문이다. 그날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 항복했다. 다시 말해 미국의 승리 덕분에 우리는 일본의 통치 즉 식민지로부터 해방됐고, 한반도 남쪽을 관할하는 통치권은 승전국인 미국이 접수했다. 그래서 그날 남한에서 미 군정이 시작됐다.
 
  다른 하나는 해방이 되고 3년간 미 군정을 거치면서 천신만고 끝에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과제의 마지막 작업인 정부가 수립된 날이 1948년의 그날이기 때문이다. 그날 자정을 기해 남한의 통치권은 미 군정으로부터 대한민국으로 넘어왔다. 하지 미 군정 장관 대신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국민을 대표해 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날이 바로 그날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건국은 해방으로부터 시작해 미 군정이라는 과도기를 거치면서 1948년 5월 10일 선거를 통해 구성한 국회, 그렇게 구성된 국회에서 7월 17일 제정한 헌법, 그 헌법에 따라 8월 15일 수립한 정부가 출범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어떤 사건을 특정하여 대한민국이 건국된 날이라고 보아야 하느냐는 선택의 문제다. 해방 혹은 정부 수립을 각각 강조할 수 있다. 또한 이 두 선택 가운데 택일이 어려워 두 사건을 나란히 강조하는 방법도 있다. 예컨대 2015년 광복절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표현했듯 ‘해방 70주년, 건국 67주년’으로 두 사건의 의미를 병렬적으로 표기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도 시비가 벌어지고 있다. 일부에서 1919년 건국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근거로는 두 가지가 제시된다. 하나는 1987년 개정한 현행 헌법 전문(前文)이고, 다른 하나는 194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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