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의 땅 북한을 변혁하려 했던 혁명가의 피어린 투쟁
⊙ 김정일의 최측근이 혁명에 나선 이유
⊙ “북한에는 실수에 대한 보상은 죽음이라는 말 있어”
⊙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사생활 자료 수집
⊙ “남한에 왜 노예사회인 北을 추종하는 한심한 무리가 많은지 도저히 이해 가질 않아”
도희윤
1967년생.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한국자유전선 사무총장, 뉴라이트 전국연합 북한인권특별위원장,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사무국장 역임
[편집자 註]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는 2019년 5월 16일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내부 혁명조직원 김씨와 2014년 중반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도 대표는 인터뷰에서 “혁명조직 일원은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방법은 그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며 “그는 ‘새로운 지도자가 또 독재를 하더라도, 그건 개발독재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신격화된 독재보다 낫다. 박정희 같은 사람으로 북조선을 끌고 가다 통일을 이루면 된다고 했다’”고 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도 대표는 《월간조선》 기고를 통해 혁명조직원과 나눈 대화 내용 등을 자세히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도 대표가 보내온 ‘北 혁명조직원과의 사생결단(死生決斷) 대화록’ 제목의 글에는 그가 혁명조직원 김씨와 메신저를 통해 나눈 대화 등이 담겼다.
⊙ 김정일의 최측근이 혁명에 나선 이유
⊙ “북한에는 실수에 대한 보상은 죽음이라는 말 있어”
⊙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사생활 자료 수집
⊙ “남한에 왜 노예사회인 北을 추종하는 한심한 무리가 많은지 도저히 이해 가질 않아”
도희윤
1967년생.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한국자유전선 사무총장, 뉴라이트 전국연합 북한인권특별위원장,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사무국장 역임
[편집자 註]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는 2019년 5월 16일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내부 혁명조직원 김씨와 2014년 중반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도 대표는 인터뷰에서 “혁명조직 일원은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방법은 그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며 “그는 ‘새로운 지도자가 또 독재를 하더라도, 그건 개발독재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신격화된 독재보다 낫다. 박정희 같은 사람으로 북조선을 끌고 가다 통일을 이루면 된다고 했다’”고 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도 대표는 《월간조선》 기고를 통해 혁명조직원과 나눈 대화 내용 등을 자세히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도 대표가 보내온 ‘北 혁명조직원과의 사생결단(死生決斷) 대화록’ 제목의 글에는 그가 혁명조직원 김씨와 메신저를 통해 나눈 대화 등이 담겼다.
《월간조선》 7월호를 통해 북한의 아우와 대화한 내용을 공개한 이후 많은 분의 격려를 받았다. 이런 일이 있었는지 정말 몰랐다며, 제대로 성공했으면 한반도의 역사가 바뀌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분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아우와의 대화록을 공개하기로 결심한 것은 벌써 1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 필자의 머릿속에는 오직 두 개의 개념만 남아 있었다. 하나는 나의 아우가 그래도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대대적인 정치적 숙청과 체제 탄핵이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엄중한 현실에서, 결코 용기를 잃지 말고 이름 없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우리의 동지들을 기억하자는 일념뿐이었다. 여전히 나의 아우의 안전 여부는 밝혀진 것이 없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도 아우는 물론이고 함께했던 혁명동지들이 살아남아 다시금 못다 한 일들을 도모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연재의 글에서는 그들 조직의 보위와 안전이라는 차원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고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그런 차원의 고민이 고려되고 있음을 독자분들이 충분히 이해하리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두 번째 대화록을 이어간다.
다시금 정리해보는 아우와의 이야기지만 이렇게까지 마음이 아파져올지 사실 몰랐다. 차분히 생각하며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늦은 밤 손가락으로 열심히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그 모습들이 오죽했을까. 마음은 급하고 주변에 신경은 신경대로 기울여야 했으며, 지우고 다시 쓰기보다는 그냥 한 글자라도 빨리, 많이 보내야겠다는 생각에서의 글들이 오늘도 이렇게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이 글은 단순한 수필이나 칼럼이 아니다. 어둠의 땅 북한을 변혁하려 했던 남북 혁명가들의 피어린 투쟁의 현장이자, 목숨을 건 전쟁터의 종군일기다. 부디 독자분들도 그런 마음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함께 걸어보기 바라보면서 1편에 이어 2편을 시작한다.
다음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필자는 아우에게 문자를 연신 보냈다.
목숨을 건 전쟁터의 종군일기
도: 박 선생님, 조직 차원에서 만들어둔 기관지가 있는지요? 만약 기관지든 아니면 대비하고 있던 내용의 자료나 메모 등이 있으면 사진을 한번 찍어보세요. 사진 찍는 방법은 제가 거기에 적어뒀습니다. 일단 사진을 찍으시면 저에게 보내는 방법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저에게 보여줄 물건이 있다고 하셨죠. 그것도 사진으로 찍어두세요. 제가 이번에 갈 때 조직을 보다 확실히 지원할 방법을 강구해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도: 또한 제가 그곳에 갈 때 꼭 필요한 것들을 말씀해주세요. 가능한 한 필요한 물품이나 지난번 말씀하신 깡통 물건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에 있는 저의 형님이 계속 보내주는 저놈들의 홍보물입니다. 물론 박 선생도 알고 계시겠지요. 저는 이 홍보물을 자주 검토합니다.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차원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보고 생각하고 있죠. 원하는 것들이 있으면 이렇게 사진으로 모두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최: 저희 조직은 이미 전에 존재했던 반독재 조직들과는 련관성이 없습니다.
아우의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이 어제의 이야기로 바로 진입했다.
최: 질문하신 것은 제가 오늘 말씀드리려던 내용입니다.
혁명조직이 그린 새 조국의 청사진
최: 우리 조직이 하려는 일은 간단합니다. 지금의 김정은 정권은 반인민적인 독재정권이라는 것을 폭로하고, 인민을 위한 자유롭고 민주주의적 정권의 수립을 위하여 ○○○○이 발족했다는 것을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혁명기관지를 발간하는 것입니다.
먼저 혁명기관지 ○○○○은
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과장되고 화려하게 꾸며진 력사를, 거짓으로 엮어진 내용과 진실된 내용을 병행하여 련재하여 인민들에게 알린다. 그리하여 인민들이 그들은 초인간적인 능력을 가진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보통 사람에 불구하며, 오늘날에 김씨 가문은 이 땅의 모든 것을 소유한 대지주이며, 대 독점 재벌이며, 대 노예 소유주들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1차 타도 대상이며, 민주주의의 원쑤라는 의식이 들게끔 대중을 계몽한다.
② 앞으로는 이러한 력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헌법을 가진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려고 한다. 이를 위하여 인민들 모두가 우리의 위업에 동참하도록 호소한다. 또한 앞으로 서게 될 국가가 실시하는 제반 민주개혁의 법령 초안들을 공개한다.(▲신분제도의 철폐 ▲려행과 거주지 이동의 자유 ▲개인재산권의 인정과 시장활동의 자유 ▲무보수 강제 로동제의 철폐와 주 40시간 로동제 ▲북과 남 사이의 자유로운 이동과 북과 남의 거주지 선택의 자유·정당 창립과 활동의 자유·5년제 의무군사 복무제의 실행 등)
③ 이러한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투쟁하는 방법에 대하여 알려준다.(▲혁명기관지 ○○○○의 내용을 읽어보고 가족끼리, 친구끼리, 동무끼리 서로 토론하며 의견들을 나눌 것 ▲합법적인 방법으로 독자적인 처사에 의견을 표시하며 각종 수탈과 무보수 강제 로동에 태만할 것 ▲독재체제에 동조하는 권력계층의 비리를 사회적으로 문제시하는 여론을 환기할 것 ▲앞으로의 새 생활은 누가 가져다주지 않으며, 우리가 꾸준한 로력과 은밀한 투쟁 및 공개적인 투쟁을 통하여 이루어야 함)
아우의 조직은 참으로 새로운 북한을 건설하려는 혁명조직임이 분명해 보였다. 말 그대로 혁명공약을 지금 필자에게 보내오는 게 아닌가. 이들은 자신들이 건립할 새 조국의 청사진을 그렇게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사생활 자료 요구
최: 이를 위하여서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정확한 략력과 그들의 사생활 자료가 필요합니다. 제가 인터넷을 통하여 자료를 모으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고 또 어떤 자료는 날조된 것도 있습니다. 정확한 자료만이 북 인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습니다.
도: 박 선생님, 알겠습니다. 자료는 여기로 보내드릴까요, 아니면 문서로 필요하신가요. 박 선생께서 활용하기 좋고, 운반하기 좋은 방법으로 염두에 두고 말씀해주세요.
최: 자료는 우선 제가 여기서 검토해보고 필요한 것만 골라야 하니까 대화방으로 보내주면 좋고, 제가 좋다고 하는 내용만 골라서 SD카드에 넣어서 대표님 오실 때 가지고 왔으면 합니다.
도: 알겠습니다. 빨리 준비하겠습니다.
최: 저녁에 다시 뵙겠습니다.
아우는 저녁에 다시 보자며 일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아우도 필자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직급이 높은 사람일지라도 항상 감시체계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외국과의 교신에 신경을 기울이는 것은 보통 결심이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또다시 대화는 시작됐다.
“남한에 왜 북한을 추종하는 한심한 무리가 많은지 이해 안 가”
도: 박 선생님, 어제 말씀하신 질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밤 아우는 남한에 왜 노예사회인 북한을 추종하는 한심한 무리가 많은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면서 그의 연유에 대해 물어왔었다. 필자의 평소 생각을 가감 없이 아우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도: 남한 종북(從北) 세력에 대해서입니다. 남한 종북 세력은 의외로 역사가 깁니다. 한마디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박 선생도 알고 계시겠지만 1947년 12월 북한은 극비리에 화폐개혁을 단행합니다. 물론 당시 남한의 이승만 정부는 전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죠. 그 후 4개월 후인 1948년 4월에서야 북한의 화폐개혁 사실을 알고 남한도 화폐개혁을 단행합니다. 하지만 거의 5개월 이상 남한에서 사용 가능한 북한의 이전 화폐를 어떻게 활용했겠습니까. 그것의 용처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당시 성시백이라는 무역업자로 위장한 고정간첩이 선박을 이용하여 북한에서는 무용지물이 된 화폐를 대량으로 실어 날라, 먼저 남한의 지하당 구축에 투입하고 두 번째 일본 조총련을 건립하는 데 투입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지금의 일본 조총련과 당시 남한 지하당 차원으로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은 세력이 세계적인 대기업이나 자산가가 되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이렇게 지금까지 암약하는 고정간첩의 뿌리는 아주 깊고 치밀하다고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소위 남한에서는 군사정권 시절을 거치면서 민주화 욕구가 처음에는 대학에서 그다음으로는 노동현장으로 이어집니다. 이때 북한의 직접 지령을 받는 소위 주체사상파라는 학생 종북 조직이 1980년대 만들어집니다. 이들에게 막대한 자금과 사상적 지도가 뒤따른 것은 당연하겠지요. 이들은 교묘하게 대중투쟁, 생활정치라는 명분으로 합법적 공간까지 그 영역을 넓혀나갔으며, 전체 숫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핵심 세력은 굳건히 김씨 왕조와 연결되어 한반도를 야금야금 좀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대로 북한의 통일전선부와 225국(대외연락부에서 명칭이 바뀐 조직으로 핵심 지하당 구축을 담당한 간첩양성 부서임)의 공작사업은 이런 식으로 우리 남한 내에서 성공을 거뒀다고 보시면 됩니다.
도: 그렇다면 대학생들이 왜 김일성 주체사상에 경도되었느냐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학생운동 세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먼저 주체사상파를 줄여서 주사파(NL파)와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따르려던 민중민주주의파(PD파)로 구분되는데, 주사파는 말 그대로 종북 세력들로 지속적인 암약에 성공했으며, PD파는 대부분 그들이 추구하는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의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세력으로 변화했습니다. 정치인으로 보면 얼마 전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부류가 바로 주사파, 경기도지사 출신의 김문수 전 의원이나 김용태 국회의원 등이 PD파로 보시면 됩니다. 저 자신도 PD 계열 소속으로 학생운동을 했다가 2년여의 감옥생활도 했습니다. 이들은 마르크스 이론 중 자본주의의 무한경쟁과 부패 등에 분노하고, 소위 말하는 휴머니즘에 매료되어 지하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소련과 동구공산권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과 휴머니즘과 하등 상관없는 공산 세력의 사악한 독재성을 목도하면서 스스로 변화해갔죠. 하지만 주사파는 북한이라는 그래도 하나의 국가라는 조직이 뒤에서 받쳐주는 관계로 지금까지 그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결국 북한 김씨 왕조와 운명을 같이하는 세력이라고 봐야겠죠. 숙주를 제거하면 나머지도 함께 소멸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 내부의 저항작가 반디 선생
아우 최이상은 잠시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하는 듯이 보였다. 조금 전에 보냈던 질문의 답장에는 바로 반응은 없었고 대뜸 사진을 보내는 방법을 물어왔다.
최: 대표님, 사진전송 방법 알려주세요.
도: 잠시만요.
사진 전송방법을 알려주자 금세 수십 장의 사진이 도착했다. 무언가 열심히 스스로가 제작한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아직도 이런 물건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대응이 확인된 바가 없기에 보내온 사진의 실물은 한 장 외에 비공개로 한다.
도: 우와 많이 옵니다.
도: 아 이거구나. 좋네요.
도: 제가 가면 선물로 꼭 주세요. 좋아요, 좋아.
최: 대표님께 드리겠습니다. 저희 조직의 고심이 어린 것이니 부디 소홀히 하지 말아주십시오.
도: 당연합니다. 참으로 귀한 겁니다. 깊이깊이 소중히 진행해보겠습니다.
최: 조금 전 대표님의 설명을 하나하나 음미해보았습니다. 20분 후에 상세히 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일단 아우 쪽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므로 무조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거의 30분이 지나서야 문자가 왔다.
최: 대표님 지금 통화 가능합니까?
도: 예 사진 보고 있어요. 볼수록 좋네요.
최: 물건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루고, 제 이야기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최: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대표님이 대북방송을 통해 반디 선생의 소설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대표님에게 전화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011년에 우리 조직의 수뇌부 중 한 사람이 나에게,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현실이 국가체제 자체의 특성으로부터 발생하는 필연적 결과라는 데 대하여 론문을 하나 쓰자고 저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실에서도 쓸 수 없고 집에 들어와서도 쓸 수 없는 환경이어서 여기 나올 때까지 쓰지 못했는데, 대표님 방송에서 반디 선생 이야기가 나와서 제가 서둘러 대표님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해외에서 한국으로부터 전해져오는 대북방송을 열심히 청취하던 최이상은, 필자의 방송분 중에 북한의 솔제니친 반디 선생의 《고발》 소설집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세심히 들었던 게 분명했다. 반디 선생은 한반도 역사 최초로 자신의 글을 북한 밖으로 보내 현재 30여 국가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최근에는 두 번째 작품인 시집이 발간되어 곧 영문으로 번역, 출판될 예정이다.
남한 사람 전화번호 하나 알려다 적발돼 북송된 북한인 처형
도: 예, 저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만남입니다. 반디 선생의 고발 책은 제가 SD카드에 담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반디 선생은 조직화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개인 차원의 의식화된 지식인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박 선생 조직에서 뭔가 일을 만드신다면 큰 성과물이 될 것입니다.
최: 실제로 여기서 한국 전화번호 한 개를 알려고 시도하다 적발되여 북송된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본인은 처형되었고 온 가족과 친척들은 수용소로 보내졌을 겁니다. 남한분들은 왜 이런 안타까움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까. 방송으로 전화번호 하나 알려주는 것이 그리도 품이 들어 아까운 사람을 죽게 한단 말입니까. 저는 대표님에게 처음 만나서 부탁한 다음 이제나저제나 전화번호 소개가 나올까 기다렸습니다.
도: 전화번호 소개요? 아, 한민족방송에 말이죠. 제가 방송할 때라도 일부러 전화번호를 넣도록 하겠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최이상은 조금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긴장이 풀렸는지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필자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해 여기저기 백방으로 전화를 걸었던 최이상은, 당시의 안타까움을 이렇게 쏟아냈다. 필자와의 연락도 방송국에서조차 가르쳐주지 않자 결국 사무실 전화번호 하나를 받아들고 조심스레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최: 작년에 북송되여 처형된 사람은 29살의 갓 결혼한 청년이고 1살짜리 아들이 있습니다. 체포되던 순간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한 줄 아십니까. 1살 난 아들은 이제 곧 죽겠구나. 그 친구는 남한에 있는 자기의 큰아버지를 찾아보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최이상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자신의 아들과 가족이 처형장에 끌려간 듯이 그렇게 말이 없었다.
도: 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최: 대표님, 우리가 왜 이 길에 나선지 아십니까. 우리 ○○○ 동무는 ○○○○년 김정일의 배려에 의하여 커다란 선물 주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눈뜨고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죽음과 수용소를 각오하고 이 길에 나선 겁니다.
도: 잘 압니다. 저도 학생 시절에 목숨을 각오한 적도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박 선생 조직과 같이 그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지요. 제가 왜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분위기는 숙연했다. 마치 서로의 신앙이든 신념이든 각자의 조건에서 기도를 올리듯이 말이다. 필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오랜만에 흘리는 뜨거운 눈물이었다. 최이상도 분명히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게 뻔했다. 다른 하늘을 바라보며 남북의 혁명가들은 그렇게 뜨거운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된 듯 최이상은 이내 특유의 단도직입적 태도로 돌아왔다.
실수에 대한 보상은 죽음
최: 그럼 본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도움을 받자는 것은 지하신문사, 말하자면, 손전화(휴대전화) 신문을 만들자는 것으로써, 다량의 mini SD카드가 필요해서입니다. 아직 이보다 더 작은 기억매체는 없고, 제가 돌아갈 때 다량의 mini SD카드와 여러 가지 김씨 가문의 실체를 북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자료와 약간의 프로그램, 그리고 우리가 계속 련계를 취할 수 있는 믿음직한 루트. 다시 말하여 우리는 다량의 SD카드를 정상적으로 공급받아야 머리 굴리는 조직에서 행동하는 조직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북한의 모든 상황에 대한 우리가 아는 정보입니다. 물론 독재체제를 무너뜨리는 범위에 한하여 말입니다.
도: 좋습니다. 박 선생 조직의 활동과 정보들이 공유된다면 참으로 귀한 연계가 됩니다. 저는 그것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든든한 후원그룹을 조직하고 말입니다. 믿음직한 루트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 거 같습니다. 그게 중요하지요. 단발로 끝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겁니다. 저 또한 어릴 때부터 보안의식에 대한 남다른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공개와 비공개의 부분을 철저히 조직과 함께 고민하고 진행할 것입니다.
최: 제가 대표님이 오시는 것을 조금 미루라고 한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생각해두었다가 한 번의 상면으로 해결해야지 대표님을 자주 오시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제가 귀국을 하면 20일 전에는 평양에서 통보를 해주니, 준비만 해주셨다가 제가 알려드리면 제때에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도: 예, 일단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고 신중히 고민해보겠습니다.
최: 우리 아직은 시간도 있는데 좀 더 토론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북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덤비면 죽는다. 실수에 대한 보상은 죽음이다.
여전히 최이상은 모든 것을 필자에게 말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돌다리도 두들겨보듯 그렇게 최이상은 한 발 한 발 필자에게 그리고 대한민국에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당시 필자의 머릿속에는 오직 두 개의 개념만 남아 있었다. 하나는 나의 아우가 그래도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대대적인 정치적 숙청과 체제 탄핵이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엄중한 현실에서, 결코 용기를 잃지 말고 이름 없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우리의 동지들을 기억하자는 일념뿐이었다. 여전히 나의 아우의 안전 여부는 밝혀진 것이 없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도 아우는 물론이고 함께했던 혁명동지들이 살아남아 다시금 못다 한 일들을 도모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연재의 글에서는 그들 조직의 보위와 안전이라는 차원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고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그런 차원의 고민이 고려되고 있음을 독자분들이 충분히 이해하리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두 번째 대화록을 이어간다.
다시금 정리해보는 아우와의 이야기지만 이렇게까지 마음이 아파져올지 사실 몰랐다. 차분히 생각하며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늦은 밤 손가락으로 열심히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그 모습들이 오죽했을까. 마음은 급하고 주변에 신경은 신경대로 기울여야 했으며, 지우고 다시 쓰기보다는 그냥 한 글자라도 빨리, 많이 보내야겠다는 생각에서의 글들이 오늘도 이렇게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이 글은 단순한 수필이나 칼럼이 아니다. 어둠의 땅 북한을 변혁하려 했던 남북 혁명가들의 피어린 투쟁의 현장이자, 목숨을 건 전쟁터의 종군일기다. 부디 독자분들도 그런 마음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함께 걸어보기 바라보면서 1편에 이어 2편을 시작한다.
다음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필자는 아우에게 문자를 연신 보냈다.
목숨을 건 전쟁터의 종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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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매번 전달받았던 북한의 대외홍보 선전물이다. 《로동신문》보다는 정치적 색깔이나 선동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국제사회에 북한의 이미지를 좀 더 우호적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로 제작되는 일종의 홍보물이라고 보면 되겠다. 사진=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제공 |
도: 또한 제가 그곳에 갈 때 꼭 필요한 것들을 말씀해주세요. 가능한 한 필요한 물품이나 지난번 말씀하신 깡통 물건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에 있는 저의 형님이 계속 보내주는 저놈들의 홍보물입니다. 물론 박 선생도 알고 계시겠지요. 저는 이 홍보물을 자주 검토합니다.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차원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보고 생각하고 있죠. 원하는 것들이 있으면 이렇게 사진으로 모두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최: 저희 조직은 이미 전에 존재했던 반독재 조직들과는 련관성이 없습니다.
아우의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이 어제의 이야기로 바로 진입했다.
최: 질문하신 것은 제가 오늘 말씀드리려던 내용입니다.
혁명조직이 그린 새 조국의 청사진
최: 우리 조직이 하려는 일은 간단합니다. 지금의 김정은 정권은 반인민적인 독재정권이라는 것을 폭로하고, 인민을 위한 자유롭고 민주주의적 정권의 수립을 위하여 ○○○○이 발족했다는 것을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혁명기관지를 발간하는 것입니다.
먼저 혁명기관지 ○○○○은
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과장되고 화려하게 꾸며진 력사를, 거짓으로 엮어진 내용과 진실된 내용을 병행하여 련재하여 인민들에게 알린다. 그리하여 인민들이 그들은 초인간적인 능력을 가진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보통 사람에 불구하며, 오늘날에 김씨 가문은 이 땅의 모든 것을 소유한 대지주이며, 대 독점 재벌이며, 대 노예 소유주들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1차 타도 대상이며, 민주주의의 원쑤라는 의식이 들게끔 대중을 계몽한다.
② 앞으로는 이러한 력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헌법을 가진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려고 한다. 이를 위하여 인민들 모두가 우리의 위업에 동참하도록 호소한다. 또한 앞으로 서게 될 국가가 실시하는 제반 민주개혁의 법령 초안들을 공개한다.(▲신분제도의 철폐 ▲려행과 거주지 이동의 자유 ▲개인재산권의 인정과 시장활동의 자유 ▲무보수 강제 로동제의 철폐와 주 40시간 로동제 ▲북과 남 사이의 자유로운 이동과 북과 남의 거주지 선택의 자유·정당 창립과 활동의 자유·5년제 의무군사 복무제의 실행 등)
③ 이러한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투쟁하는 방법에 대하여 알려준다.(▲혁명기관지 ○○○○의 내용을 읽어보고 가족끼리, 친구끼리, 동무끼리 서로 토론하며 의견들을 나눌 것 ▲합법적인 방법으로 독자적인 처사에 의견을 표시하며 각종 수탈과 무보수 강제 로동에 태만할 것 ▲독재체제에 동조하는 권력계층의 비리를 사회적으로 문제시하는 여론을 환기할 것 ▲앞으로의 새 생활은 누가 가져다주지 않으며, 우리가 꾸준한 로력과 은밀한 투쟁 및 공개적인 투쟁을 통하여 이루어야 함)
아우의 조직은 참으로 새로운 북한을 건설하려는 혁명조직임이 분명해 보였다. 말 그대로 혁명공약을 지금 필자에게 보내오는 게 아닌가. 이들은 자신들이 건립할 새 조국의 청사진을 그렇게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사생활 자료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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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는 필자에게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사생활 자료 수집을 부탁했다. |
도: 박 선생님, 알겠습니다. 자료는 여기로 보내드릴까요, 아니면 문서로 필요하신가요. 박 선생께서 활용하기 좋고, 운반하기 좋은 방법으로 염두에 두고 말씀해주세요.
최: 자료는 우선 제가 여기서 검토해보고 필요한 것만 골라야 하니까 대화방으로 보내주면 좋고, 제가 좋다고 하는 내용만 골라서 SD카드에 넣어서 대표님 오실 때 가지고 왔으면 합니다.
도: 알겠습니다. 빨리 준비하겠습니다.
최: 저녁에 다시 뵙겠습니다.
아우는 저녁에 다시 보자며 일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아우도 필자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직급이 높은 사람일지라도 항상 감시체계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외국과의 교신에 신경을 기울이는 것은 보통 결심이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또다시 대화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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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에게 직접 명령을 받고 남파된 성시백은 1948년 4월 백범 김구 선생을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협상에 참석하도록 설득한 장본인이다. 그는 북한에서는 무용지물이 된 화폐를 대량으로 실어 날라, 먼저 남한의 지하당 구축에 투입했다고 알려져 있다. |
지난밤 아우는 남한에 왜 노예사회인 북한을 추종하는 한심한 무리가 많은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면서 그의 연유에 대해 물어왔었다. 필자의 평소 생각을 가감 없이 아우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도: 남한 종북(從北) 세력에 대해서입니다. 남한 종북 세력은 의외로 역사가 깁니다. 한마디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박 선생도 알고 계시겠지만 1947년 12월 북한은 극비리에 화폐개혁을 단행합니다. 물론 당시 남한의 이승만 정부는 전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죠. 그 후 4개월 후인 1948년 4월에서야 북한의 화폐개혁 사실을 알고 남한도 화폐개혁을 단행합니다. 하지만 거의 5개월 이상 남한에서 사용 가능한 북한의 이전 화폐를 어떻게 활용했겠습니까. 그것의 용처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당시 성시백이라는 무역업자로 위장한 고정간첩이 선박을 이용하여 북한에서는 무용지물이 된 화폐를 대량으로 실어 날라, 먼저 남한의 지하당 구축에 투입하고 두 번째 일본 조총련을 건립하는 데 투입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지금의 일본 조총련과 당시 남한 지하당 차원으로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은 세력이 세계적인 대기업이나 자산가가 되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이렇게 지금까지 암약하는 고정간첩의 뿌리는 아주 깊고 치밀하다고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소위 남한에서는 군사정권 시절을 거치면서 민주화 욕구가 처음에는 대학에서 그다음으로는 노동현장으로 이어집니다. 이때 북한의 직접 지령을 받는 소위 주체사상파라는 학생 종북 조직이 1980년대 만들어집니다. 이들에게 막대한 자금과 사상적 지도가 뒤따른 것은 당연하겠지요. 이들은 교묘하게 대중투쟁, 생활정치라는 명분으로 합법적 공간까지 그 영역을 넓혀나갔으며, 전체 숫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핵심 세력은 굳건히 김씨 왕조와 연결되어 한반도를 야금야금 좀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대로 북한의 통일전선부와 225국(대외연락부에서 명칭이 바뀐 조직으로 핵심 지하당 구축을 담당한 간첩양성 부서임)의 공작사업은 이런 식으로 우리 남한 내에서 성공을 거뒀다고 보시면 됩니다.
도: 그렇다면 대학생들이 왜 김일성 주체사상에 경도되었느냐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학생운동 세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먼저 주체사상파를 줄여서 주사파(NL파)와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따르려던 민중민주주의파(PD파)로 구분되는데, 주사파는 말 그대로 종북 세력들로 지속적인 암약에 성공했으며, PD파는 대부분 그들이 추구하는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의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세력으로 변화했습니다. 정치인으로 보면 얼마 전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부류가 바로 주사파, 경기도지사 출신의 김문수 전 의원이나 김용태 국회의원 등이 PD파로 보시면 됩니다. 저 자신도 PD 계열 소속으로 학생운동을 했다가 2년여의 감옥생활도 했습니다. 이들은 마르크스 이론 중 자본주의의 무한경쟁과 부패 등에 분노하고, 소위 말하는 휴머니즘에 매료되어 지하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소련과 동구공산권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과 휴머니즘과 하등 상관없는 공산 세력의 사악한 독재성을 목도하면서 스스로 변화해갔죠. 하지만 주사파는 북한이라는 그래도 하나의 국가라는 조직이 뒤에서 받쳐주는 관계로 지금까지 그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결국 북한 김씨 왕조와 운명을 같이하는 세력이라고 봐야겠죠. 숙주를 제거하면 나머지도 함께 소멸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 내부의 저항작가 반디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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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최이상이 필자에게 보내온 요상한 사진들 중 하나. 스스로 뭔가를 제작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는데,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한 소중한 물건임은 분명해 보였고, 필자는 그의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사진=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제공 |
최: 대표님, 사진전송 방법 알려주세요.
도: 잠시만요.
사진 전송방법을 알려주자 금세 수십 장의 사진이 도착했다. 무언가 열심히 스스로가 제작한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아직도 이런 물건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대응이 확인된 바가 없기에 보내온 사진의 실물은 한 장 외에 비공개로 한다.
도: 우와 많이 옵니다.
도: 아 이거구나. 좋네요.
도: 제가 가면 선물로 꼭 주세요. 좋아요, 좋아.
최: 대표님께 드리겠습니다. 저희 조직의 고심이 어린 것이니 부디 소홀히 하지 말아주십시오.
도: 당연합니다. 참으로 귀한 겁니다. 깊이깊이 소중히 진행해보겠습니다.
최: 조금 전 대표님의 설명을 하나하나 음미해보았습니다. 20분 후에 상세히 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일단 아우 쪽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므로 무조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거의 30분이 지나서야 문자가 왔다.
최: 대표님 지금 통화 가능합니까?
도: 예 사진 보고 있어요. 볼수록 좋네요.
최: 물건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루고, 제 이야기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최: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대표님이 대북방송을 통해 반디 선생의 소설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대표님에게 전화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011년에 우리 조직의 수뇌부 중 한 사람이 나에게,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현실이 국가체제 자체의 특성으로부터 발생하는 필연적 결과라는 데 대하여 론문을 하나 쓰자고 저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실에서도 쓸 수 없고 집에 들어와서도 쓸 수 없는 환경이어서 여기 나올 때까지 쓰지 못했는데, 대표님 방송에서 반디 선생 이야기가 나와서 제가 서둘러 대표님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해외에서 한국으로부터 전해져오는 대북방송을 열심히 청취하던 최이상은, 필자의 방송분 중에 북한의 솔제니친 반디 선생의 《고발》 소설집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세심히 들었던 게 분명했다. 반디 선생은 한반도 역사 최초로 자신의 글을 북한 밖으로 보내 현재 30여 국가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최근에는 두 번째 작품인 시집이 발간되어 곧 영문으로 번역, 출판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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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 선생이 외부로 보낸 원고지 묶음과 김일성, 김정일 노작들이다. 그리고 옆의 사진은 고발 소설집을 번역·출판한 나라들의 국기와 책표지를 모아둔 자료들이다. 사진=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제공 |
최: 실제로 여기서 한국 전화번호 한 개를 알려고 시도하다 적발되여 북송된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본인은 처형되었고 온 가족과 친척들은 수용소로 보내졌을 겁니다. 남한분들은 왜 이런 안타까움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까. 방송으로 전화번호 하나 알려주는 것이 그리도 품이 들어 아까운 사람을 죽게 한단 말입니까. 저는 대표님에게 처음 만나서 부탁한 다음 이제나저제나 전화번호 소개가 나올까 기다렸습니다.
도: 전화번호 소개요? 아, 한민족방송에 말이죠. 제가 방송할 때라도 일부러 전화번호를 넣도록 하겠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최이상은 조금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긴장이 풀렸는지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필자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해 여기저기 백방으로 전화를 걸었던 최이상은, 당시의 안타까움을 이렇게 쏟아냈다. 필자와의 연락도 방송국에서조차 가르쳐주지 않자 결국 사무실 전화번호 하나를 받아들고 조심스레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최: 작년에 북송되여 처형된 사람은 29살의 갓 결혼한 청년이고 1살짜리 아들이 있습니다. 체포되던 순간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한 줄 아십니까. 1살 난 아들은 이제 곧 죽겠구나. 그 친구는 남한에 있는 자기의 큰아버지를 찾아보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최이상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자신의 아들과 가족이 처형장에 끌려간 듯이 그렇게 말이 없었다.
도: 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최: 대표님, 우리가 왜 이 길에 나선지 아십니까. 우리 ○○○ 동무는 ○○○○년 김정일의 배려에 의하여 커다란 선물 주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눈뜨고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죽음과 수용소를 각오하고 이 길에 나선 겁니다.
도: 잘 압니다. 저도 학생 시절에 목숨을 각오한 적도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박 선생 조직과 같이 그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지요. 제가 왜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분위기는 숙연했다. 마치 서로의 신앙이든 신념이든 각자의 조건에서 기도를 올리듯이 말이다. 필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오랜만에 흘리는 뜨거운 눈물이었다. 최이상도 분명히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게 뻔했다. 다른 하늘을 바라보며 남북의 혁명가들은 그렇게 뜨거운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된 듯 최이상은 이내 특유의 단도직입적 태도로 돌아왔다.
실수에 대한 보상은 죽음
최: 그럼 본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도움을 받자는 것은 지하신문사, 말하자면, 손전화(휴대전화) 신문을 만들자는 것으로써, 다량의 mini SD카드가 필요해서입니다. 아직 이보다 더 작은 기억매체는 없고, 제가 돌아갈 때 다량의 mini SD카드와 여러 가지 김씨 가문의 실체를 북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자료와 약간의 프로그램, 그리고 우리가 계속 련계를 취할 수 있는 믿음직한 루트. 다시 말하여 우리는 다량의 SD카드를 정상적으로 공급받아야 머리 굴리는 조직에서 행동하는 조직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북한의 모든 상황에 대한 우리가 아는 정보입니다. 물론 독재체제를 무너뜨리는 범위에 한하여 말입니다.
도: 좋습니다. 박 선생 조직의 활동과 정보들이 공유된다면 참으로 귀한 연계가 됩니다. 저는 그것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든든한 후원그룹을 조직하고 말입니다. 믿음직한 루트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 거 같습니다. 그게 중요하지요. 단발로 끝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겁니다. 저 또한 어릴 때부터 보안의식에 대한 남다른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공개와 비공개의 부분을 철저히 조직과 함께 고민하고 진행할 것입니다.
최: 제가 대표님이 오시는 것을 조금 미루라고 한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생각해두었다가 한 번의 상면으로 해결해야지 대표님을 자주 오시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제가 귀국을 하면 20일 전에는 평양에서 통보를 해주니, 준비만 해주셨다가 제가 알려드리면 제때에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도: 예, 일단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고 신중히 고민해보겠습니다.
최: 우리 아직은 시간도 있는데 좀 더 토론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북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덤비면 죽는다. 실수에 대한 보상은 죽음이다.
여전히 최이상은 모든 것을 필자에게 말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돌다리도 두들겨보듯 그렇게 최이상은 한 발 한 발 필자에게 그리고 대한민국에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