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장엽, “‘자기 이익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것’이 북한의 협상전략”
⊙ 이동복, “南, 남북대화의 기본성격이 ‘적대적 협상’이라는 사실 망각,
非전문적(amateurish) 접근방법에 의존”
⊙ 김정일, “외교는 高자세 외교가 최고”
孫光柱
⊙ 54세. 고려대 불문학과 졸업.
⊙ 동아일보 기자,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이념연구센터장 역임.
현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저서 : 《다큐멘터리 김정일》(공저) 《김정일 리포트》 등.
⊙ 이동복, “南, 남북대화의 기본성격이 ‘적대적 협상’이라는 사실 망각,
非전문적(amateurish) 접근방법에 의존”
⊙ 김정일, “외교는 高자세 외교가 최고”
孫光柱
⊙ 54세. 고려대 불문학과 졸업.
⊙ 동아일보 기자,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이념연구센터장 역임.
현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저서 : 《다큐멘터리 김정일》(공저) 《김정일 리포트》 등.

- 지난 2월 열린 남북군사실무회담은 남북간에 접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됐다.
남북 당국자회담이든 6자회담 같은 국제회담이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북한은 언제든 자리를 떴다. 북핵 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에서도 북한은 툭 하면 회담장을 떠났다. 한국·중국 등은 북한을 다시 6자회담에 불러내기 위해 여러 차례 경제지원을 해 주었다. 의장국인 중국을 비롯해서 관련 당사국들은 늘 ‘북한을 다시 회담으로 불러내기 위한 회담’을 해야 했다.
2003년 8월 시작된 6자회담은 5년여를 끌다가 제6차 회담 2단계 회의 6자 수석대표회의(2008년 12월 8일) 이후 2년3개월간 열리지 않았다. 회담은 벌써 8년차에 접어들었다.
국제회담은 대체로 예비회담에 이어 본회담이 진행된다. 전쟁을 종료하는 문제 등 매우 특별한 회담이 아니면 예비회담보다 본회담 차수가 당연히 더 많다. 하지만 북한이 들락거린 6자회담은 본회담보다 예비회담, 당사국 협의, 수석대표 긴급협의 등이 훨씬 많다. 배보다 배꼽이 서너 배는 더 크다.
북한의 이 같은 전과(前科) 때문인지 전문가들은 이번 북측의 일방적 퇴장(退場)도 앞으로 몇 차례 이어질 회담의 ‘첫 번째 깽판’ 정도로 보는 것 같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는 6·25 정전(停戰)협상 때부터 일관되게 보여준 전술(戰術)이다.
사실, 국가 간 큰 이익이 걸린 회담에서 장소, 시간, 의제설정, 회담방식, 대표단 구성 등을 둘러싸고 쌍방 간에 밀고 당기는 협상은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것이다. 가까이는 한미(韓美) FTA 협상이나 미·중(美中) 경제회담에서도 보이지 않는 커튼 뒤의 수 싸움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하지만 전통적 공산주의 협상전술을 감안하더라도, 북한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일반적 상식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왜 그럴까. 그 근본이유는 무엇인가.
“상대방 것을 더 잘 빼앗아 먹는 것”
필자는 1999년 경, 황장엽(黃長燁·2010년 10월 타계) 전 북한 노동당 비서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북한의 외교노선을 지도하는 노동당 국제비서를 지낸 바 있다.
“북한이 1960년대 중소(中蘇) 이데올로기 분쟁 때부터 소위 ‘주체외교’를 통해 이익을 추구해 온 것으로 외부에 알려져 있는데, ‘주체외교’에 대외(對外)협상의 전략전술적 측면에서 어떤 이론적 체계 같은 것이 있습니까?”
다음은 그의 답변이다.
“무슨 이론적 체계 같은 게 있겠어요? 없어요. 그저 자기 이익을 끝까지 관철시키자는 거, 상대방 것을 더 잘 빼앗아 먹자는 거, 그거지요.”
그의 답변은 쉽고 명쾌했다. 남북회담을 주무하는 북한의 통일전선사업부(약칭 통전부)나 외교부에 ‘회담의 전략전술’ 같은 책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황장엽 전 비서가 말한 “자기 이익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것” “상대방 것을 더 잘 빼앗아 먹는 것”이라는 매우 압축적인 설명의 배경에는, 결코 간단치 않은 북한의 협상전술이 놓여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1953년 정전협상 이후 주요 남북회담은 1971년 이산가족 해결을 위한 적십자 회담을 시작으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1990년부터 시작된 남북고위급회담(총리회담)의 결과 19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남북 간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같은 해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그리고 2000년 6·15 공동성명, 10·4 선언이 있다.
이 중 총체적으로 보아 ‘협상’의 기준에서 우리의 이익을 관철시킨 회담은 남북기본합의서 정도일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와 인도주의 회담인 이산가족상봉 외에는 남북 간 협상의 결과를 놓고 보면 거의 대부분 북한이 이익을 관철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남북기본합의서조차도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곧 사문화(死文化)됐다. 황 전 비서에 따르면 당시 김일성(金日成)이 남북고위급 회담을 받아들인 이유도 따로 있었다고 한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동(東)유럽 공산권의 붕괴 도미노와 세계사적 변화의 큰 흐름이 한반도 북쪽까지 불어닥치는 것을 우려한 김일성이 남북 간 회담을 함으로써, 적어도 남북 간에 ‘화해와 불가침에 관한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만큼은 한미 양국이 북한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역사적인 대변화의 시기에 세(勢) 불리를 크게 느낀 김일성이 남북회담을 통해 소나기를 피하려 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따라서 김일성은 애초부터 남북기본합의서를 지킬 뜻이 없었던 셈이다.
‘우호적 협상’과 ‘적대적 협상’
통상적으로 ‘회담’이나 ‘협상’이라고 하면, 예를 들어 FTA처럼 서로가 이익이 되는 부분을 찾아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하는 정치·경제적 외교행위로 볼 수 있다.
이상하게도 북한과의 협상 결과는 도무지 그렇지 않다. 남북 간 회담은 그렇다 쳐도, 미·북(美北) 간 1차 북핵(北核) 협상의 결과인 1994년 제네바합의는 정말 한심했다. 당시 ‘합의의 틀’(Agreed Framework)은 북한이 핵비확산조약(NPT) 체제에 잔류한다는 아무 것도 아닌 ‘말로만 하는 약속’을 해 주고 경수로(輕水爐) 2기와 중유(重油)를 얻어 내는 승리를 거두었다. 유도(柔道)로 치면 완벽한 한판승이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은 “미국은 제네바 합의에 따라 경수로의 주요 부품이 북한에 제공되는 시기(합의 발효 7년 후)에는 북한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 결정적 이유이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한 설명방식이 될 수 있을까. 포괄적으로 북한의 협상전술과 관련이 없을까.
남북회담의 ‘살아 있는 역사’인 이동복(李東馥) 전 남북고위급회담 대표가 공산국가 및 북한의 협상전략을 다룬 논문에서 그 하나의 힌트를 볼 수 있을 듯싶다.
<일반적으로 협상은 두 가지 유형으로 대별된다. ‘우호적 협상’과 ‘적대적 협상’이 그것이다. ‘우호적 협상’은 비록 만족의 정도에 있어서 차이는 있을지언정 협상의 결과에 의하여 협상 당사자들이 일정한 비율로 만족을 ‘공유’(win-win)하게 되는 협상이다. (중략) 반면 ‘적대적 협상’은 그와 반대로 협상에 임하는 어느 일방이 협상의 결과를 ‘독식’(zero-sum)하려 하는 경우가 통례이다. 따라서 ‘적대적 협상’은 타결 그 자체가 매우 어렵기도 하지만 비록 타결되는 경우라도 타결된 합의 내용이 성실하게 이행·준수되기보다는 일정한 시일이 경과하는 과정에서 ‘파기’되거나 아니면 ‘사문화’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사실이다.>(<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협상전략> 1995년)
“‘원칙적 합의’를 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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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복 전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
또 지난 10여 년간 남북 간 협상도 남측은 ‘우호적 협상’을, 북한은 ‘적대적 협상’을 하다 보니, 무엇인가 협상의 결과를 얻어 내려고 조바심을 내는 남측이 항상 북측에 일방적으로 갖다 바치는 결과를 가져온 게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남측이 ‘우호적 협상’을 버리고 ‘적대적 협상’을 하든가, 아니면 북측이 ‘우호적 협상’으로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황장엽 전 비서가 말한 “자기 이익을 끝까지 관철시키고 상대방 것을 더 잘 빼앗아 먹는” 북한의 협상전술에 구조적으로 말려들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는 셈이다.
이동복 전 대표는 북한 협상전술의 원형(原形)을 구(舊)공산권의 협상기술에서 찾고 있다. 그는 미·소 간 1단계 전략무기 감축협상(SALT)시 미국 대표단의 전략고문으로 참가한 찰스 이클레의 경구(驚句)를 들었다. 이클레는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에서는 ‘원칙적 합의’를 피하라”고 충고했다. 그들과의 협상에서 ‘원칙적 합의’에 도달해도 후일 공산주의자들은 ‘원칙적 합의’를 실천·이행하는 단계에서 일방적 해석을 내세워 실천을 방해하거나 ‘재(再)해석’을 위한 ‘재협상’을 요구하고 이 과정에서 합의사항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이 통례라는 것이다.
또 알프레드 윌헬름 주니어는 냉전 시기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사용한 다양한 용어와 그 용어들 간에 존재하는 개념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즉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영어 ‘Negotiation’을 중국어로 ‘담판(談判)’으로 보지 ‘협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담판’에는 ‘우호적 협상’과 ‘적대적 협상’의 개념이 같이 있으나 ‘적대적 협상’에 더 가까운 의미를 갖는다. ‘적대적 협상’의 경우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협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 하면 ‘협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전(事前)에 ‘협상’ 당사자들 간에 “상당한 상호 신뢰와 원칙에 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협상’을 한다고 해도 상대방과 서로 중간지점에서 만난다거나 공평성의 차원에서 주고받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협상’이란 결국 상대방이 자기 측의 입장을 수용하도록 설득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만 그 가치가 인정된다고 한다.
공산주의자들의 ‘협상’ 개념
이클레나 윌헬름이 본 공산주의자들의 협상기법은 냉전 시대의 전술이다. 러시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미국과 적대적 협상을 계속했다면 쌍방 간에 ‘합의’된 것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냉전 시기의 전술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동복 전 대표는 북한이 사용하는 ‘협상’이라는 개념도 기본적으로 냉전 시기 중국의 ‘협상’ 논리와 같다고 본다.
그는 ‘협상’이라는 용어는 상대방(남측)과 상호 신뢰와 원칙에 관한 공감대가 미리 형성되어야 하기 때문에 ‘협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대화’ ‘접촉’ 같은 용어를 주로 쓰고 ‘회담’이라는 말도 인색하게 사용해 왔다고 한다. ‘협상’은 남북 ‘정치협상’ 같은 경우 사용하는데, 이는 남쪽의 ‘정부 당국자’들을 배제하고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윌헬름은 공산 중국의 협상단계를 5단계로 나누었다.
▲1단계(협상이전 단계)=상대방의 의도와 입장 파악을 위한 우회적 활동을 전개한다. 특정 현안에 관한 성명전(聲明戰)을 전개하고 정계·언론· 재계(財界) 등 제3자를 활용하여 중국 측 입장에 대한 여론 순화공작을 전개한다. 회담이 실현되지 않거나 결렬까지 대비하여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조치를 강구한다.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가장 유능한 대표단을 구성한다.
▲2단계(회담개최 단계)=중국 공산주의자들은 바둑을 둘 때처럼 ‘선수’(先手)를 중시한다. 그들은 항상 상대방이 ‘후수’(後手)를 두도록 협상전략을 운영한다.
▲3단계(상대방에 대한 평가단계)=자신들의 속셈은 최대한 감추고 상대방의 입장이 최대한 드러나도록 회담전략을 운영한다. 무력의 사용이나 위협, 결렬 협박, 상대방에 중상 비방 등 심리전을 전개하고, ‘담담타타’(談談打打) 전술을 쓴다. 회담을 중지시키는 등 서방세계의 인내심 결여를 활용하며 상대의 정계·학계·종교계를 이간시켜 상대 대표단의 입장을 약화시킨다.
▲4단계(흥정과 종결 단계)=자신들이 견지해 온 ‘원칙적 입장’을 재천명하면서 이미 상대방이 ‘원칙적 입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기정사실화하여 이를 ‘합의사항’으로 정리하고 신속한 공식화 절차를 촉구한다. 합의에 도달하지 않으면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轉嫁)한다.
▲5단계(회담이후 단계)=합의사항을 ‘일방적 해석’에 입각하여 실천·이행함으로써 합의 내용을 변질시킨다. 합의서의 문면보다 ‘합의의 정신’을 빙자하여 그들의 ‘일방적 해석’을 상대에게 강요한다.(이동복 위 논문 재인용)
윌헬름이 제시한 5단계를 보면 북한 협상전술의 밑그림이 온전히 드러나며 지금까지 북한이 해 온 협상기법과 완전히 판박이다.
“南, 非전문적 접근에 의존”
이동복 전 대표가 이 논문을 발표한 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그러나 북한의 협상기법은 아직 그대로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뀌었나. 바뀐 쪽은 북한이 아니라 우리 측이다.
이 전 대표는 15년 전에 “남북대화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남북대화의 기본성격이 아직도 ‘적대적 협상’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고, ‘민족’의 신화(神話)에 도취한 나머지 피아(彼我) 식별기능이 마비됐으며, 전문적(professional)이 아니라 비(非)전문적(amateurish) 접근방법에 의존했고, 역대 정권이 남북대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우리는 좌절의 연속이었다”고 술회했다.
1995년에 이동복 전 대표가 느낀 좌절감은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 북한과의 대화가 시작되면 근거 없는 일방적 낙관론으로 ‘비전문적’ 회담 요원들이 이 전 대표 같은 ‘프로’들의 말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의 협상전술이 과연 지금까지 아무런 변함이 없는 것일까. 1990년대 이후 배급제 붕괴와 김일성의 사망, 그리고 김정일(金正日)의 체제생존을 위한 핵전략이 등장했다. 그렇다면 김일성 시기와 김정일 시기 협상전술에서 차이는 없는 것일까. 북한에 전체주의 수령(首領) 독재가 존재하는 한 윌헬름이나 이동복 전 대표가 언급한 협상의 전략이 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협상을 끌고 가는 스타일에서 차이는 없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지난 2월 8일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시작되자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출신 장철현씨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김정일의 협상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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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서울 불바다’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박영수 대표. |
김일성은 남북대화에서 절제와 원칙을 중시했다. 김일성은 대남협상에서 큰 목표가 정해지면 구체적인 운영방식은 대표에게 일임했다.
김정일은 즉흥적이다. 그러면서 일일이 지시한다. 회담 중에도 질책이 많다. 이 때문에 회담 일꾼들은 사소한 것도 김정일의 눈치를 보게 되며 ‘질책을 받느니 모든 것을 비준(批准)받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회담 일꾼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횟수(回數)가 빈번해진 것도 사소한 것까지 재량권이 없으니 무조건 퇴장한 뒤 비준을 받으려 한다. 결국 김정일의 스타일 때문이다.”
북한의 대외협상 중 최대 성과물은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전개된 핵협상이다. 각종 자료를 종합해 보면 핵협상은 처음부터 김정일이 주도해온 편이다. 이때부터 ‘벼랑끝 전술’이란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김정일은 “외교는 고(高)자세 외교가 최고” “한 번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은 언제나 완승(完勝)을, 상대방에게는 완패(完敗)를 요구한다. 대표적 성과물이 1994년 제네바 합의, 2000년 6·15 공동선언이다.
김정일의 핵협상 전략은 체제생존과 맞물려 있다. 1990년대 초 1차 핵위기에서 미국과 양자(兩者) 회담(담판)을 끌어내 제네바 합의를 성사시키고 경수로 건설, 중유, 식량 등을 받아냈다. 이후 우라늄 농축 핵개발을 시작했고 2차 핵위기 이후 6자회담을 들락거리면서 2006년, 2009년 2차례 핵실험을 강행했다.
핵개발 긴장 조성-회담-경제지원-회담 퇴장-경제지원-회담복귀-핵개발 업그레이드-회담 퇴장-경제지원-회담 복귀 사이클을 보여 왔다. 외부로부터 받을 것은 받고, 핵개발은 계속해 온 것이다. 쉽게 표현해서 ‘도적(盜賊) 심보’의 전형이다.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정부는 현재까지는 “북한의 나쁜 짓에 보상 없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양국 정부의 ‘깨달음’은 좀 늦은 듯한 감이 없지 않다.
김정일의 핵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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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대외협상 중 최대 성과물은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전개된 핵협상이다. 1994년 10월 갈루치 미국 핵협상대사와 강석주 북한 외교부 부부장이 제네바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
황장엽 전 비서의 증언에 따르면 “1996년 가을 경 북한은 파키스탄에 미사일 기술을 주고, 파키스탄은 북한에 원심분리 우라늄 농축기술을 주는 비밀협정을 맺었다”고 한다. 북한이 세계적인 우라늄 광석 보유국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언제나 그랬듯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기술은 외부세계가 추지(推知)하고 있는 수준에서 항상 한발 더 앞서 나가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평소에 북한의 능력을 무시하다가 막상 당하고 나서 놀라는 식이다.
지난해 11월 9∼13일 방북해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시찰한 지그프리드 헤커 미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은 “얼핏 보아도 1000개가 넘는 원심분리기 시설에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필자는 이 보도를 보고 솔직히 쓴웃음이 나왔다. 잘못되면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북한 기술자와, 높은 연봉과 사회적 대우를 받으며 여유 넘치는 웰빙 고급 기술자의 얼굴 표정이 교차 대비되면서 눈앞을 스쳤다.
북한의 농축 우라늄 기술은 우리가 예상하는 단계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안보(安保)란 암(癌) 수술과 비슷하다. 의사가 환자의 암세포 부위가 자신의 예상보다 더 넓고 깊을 것으로 추지하고 수술 준비를 해야 하듯이 안보도 그렇게 대비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김정일이 핵전략 2단계인 핵무기 양산과 핵탄두 경량화 및 미사일 사거리 연장, 핵무기 실전배치의 3단계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2012년까지 그 시기를 앞당기려 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김정일은 두 차례 핵실험을 배경으로 하여 천안함 폭침(爆沈), 연평도 포격 등을 일으켰다. 김정일은 한편으로 대남 핵협박을 하고 한편으로 핵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신(新)모험주의 노선으로 가고 있다. 김정일의 신모험주의 전략은 한반도 평화협정을 강제하는 국제적 환경과 조건을 계속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각종 도발을 무조건 김정은 후계세습 구도와 관련지어 해석하는 것은 시야가 넓지 못한 측면이 있다. 김정일로서는 ▲ 현존 자신의 체제를 결속하고 ▲ 안정적인 권력세습을 해 주어야 하며 ▲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한반도의 군사긴장 수위(水位)를 계속 높여 가야 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통해 김정일은 자신이 죽기 전에 어떻게 하든 중국과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 보장을 받아 놓으려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는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상호 작용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 마치 계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계속 군사긴장을 높여 가지 않으면) 언제든 좌우로 추락할 수 있는 벼랑 위 외줄에서의 자전거 타기와 비슷한 것이다.
김정일은 이 생존게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김정일은 중국이 도와주어도 진정으로 감사하다고 생각지 않을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당연히 받을 것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시간표대로 갈 것이다. 이런 김정일에게 만만한 희생양은 언제나 그렇듯 ‘남조선’이다.
북한을 변화시켜라
따라서 우리 대북전략의 원칙은 북한이 대남 군사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강력히 틀어막고 억지(抑止)하는 바탕 위에서, 북한의 내부를 적극적으로 변화시켜 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 북한 내부를 변화시켜야 우리가 더 안전해진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김정일이 ‘남조선’을 다루는 데 오히려 여유 있는 시간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끊임없이 북한 내부의 정보 자유화를 활성화하고 주민들의 시장화(市場化)를 확대해 가는 방안들이 강구되고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한 국가의 외교는 그 본질에서 국내 정치의 연장(延長)이다. 김정일 식 국내 정치의 핵심은 주민들에 대한 폭압, 기만, 프로파간다로 요약된다. 압축하면 공포정치와 속임수다.
김정일의 대외협상 ‘얼굴’은 무엇인가. 그 역시 근본은 ‘궤도(詭道)’, 즉 ‘속임수’라고 생각한다. 1990년대 초 1차 핵위기 때부터 한국 미국 등은 항상 김정일의 궤도에 당해 왔다. 협상하면서 늘 뒤통수를 맞았고 또 이 같은 김정일의 궤도는 대체로 성공해 왔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대북정책에서 나름대로 원칙을 고수해 온 것은 이런 악순환(惡循環)을 끊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끊임없이 ‘햇볕정책’으로의 회귀(回歸)를 요구하는 민주당과 친북(親北) 좌파세력, 남북관계로 ‘한 건’ 하려는 여권(與圈) 일각의 압력, 자신들이 주도하는 틀 안으로 한국정부를 끌어들이려는 북한의 책동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잘 버텨 왔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그리고 이번 남북 군사실무회담의 결렬은 자신들의 뜻대로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는 데 대한 초조감의 반영이라 할 것이다.
그럴수록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남북대화에 임하는 북한의 전략전술을 명철하게 들여다보면서, 북한의 변화와 연결시키는 방향으로 남북대화에 임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