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李 대통령, “늘 우리가 목매야 하는 상황 바뀌어”
⊙ 北 후계구도 매듭 위해 남북관계 풀 필요성
高景彬 전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
⊙ 1957년 서울 출생.
⊙ 경복고, 서울대 사회교육과 졸업.
⊙ 행정고시 23회 합격. 통일부 정책총괄과장, 감사관, 사회문화교류국장,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
정책홍보본부장,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장 역임.
⊙ 北 후계구도 매듭 위해 남북관계 풀 필요성
高景彬 전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
⊙ 1957년 서울 출생.
⊙ 경복고, 서울대 사회교육과 졸업.
⊙ 행정고시 23회 합격. 통일부 정책총괄과장, 감사관, 사회문화교류국장,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
정책홍보본부장,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장 역임.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핵협상 과정에서 미국과의 담판, 화폐개혁 이후 경제 정상화, 후계구도 매듭 등 초대형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대남(對南)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북한은 신년 공동사설에서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우리의 입장은 확고부동하다”고 밝혔고,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를 “올해 극적인 사변을 예감케 하는 의지 표명”이라 풀이했다.
반면 우리 측 입장은 절박함과는 달라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 연설을 통해 “올해는 남북관계에도 전기(轉機)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기자들이 정상회담과 관련해서 묻자 “콘텐츠가 문제다. 나머지는 협상하기에 달렸다”, “늘 남쪽에서 목매야 하는 상황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런 여유 있는 태도는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우리의 대북(對北) 입지를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현 단계에서 정상회담의 추진은 북한 요구를 수용한다는 차원이라기보다 한반도 정세변화의 요구에 책임 있게 대응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한반도 정세변화는 우선 핵문제가 과거와는 다른 중대국면에 들어서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단순히 협상국면이 회복됐다는 것이 아니라 협상의 배경이 되는 핵 비(非)확산 관련 세계정세의 큰 흐름이 바뀌었다는 점, 이번 협상국면에서는 우리가 핵심역할을 해야 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핵문제의 진전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전제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핵협상이 본격화되면 거꾸로 남북관계의 진전이 핵협상 근본적 타결의 전제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지금의 핵협상 관련 중대국면은 그 과도기를 탐색하는 셈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추진되는 남북정상회담은 매우 중대한 의의가 있다. 따라서 정세변화의 요구에 자신감과 적극성을 가지고 대응해야 할 것이다.
오바마의 ‘핵무기 없는 세계’는 고무적
핵 비확산과 관련된 세계정세의 변화는 북핵문제 타결을 위한 협상의 명분과 가능성을 새롭게 해 주고 있다. 히로시마 이후 인류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해 끈질긴 노력을 해 왔으나 미국과 구(舊) 소련을 축으로 한 냉전은 이를 비현실적인 꿈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행히 20세기의 마지막 10년, 탈냉전을 배경으로 미국과 구 소련 간에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한 실천적 합의가 이뤄진다. 인류사에 값진 합의들이었다. 1986년 고르바초프는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자고 미국에 제의한다.
그의 전격 제안은 미국의 ‘별들의 전쟁계획’(SDI)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해석이지만, 여하튼 양국은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을 시작하게 된다. 실제로 1992년까지 해외배치 중거리 핵무기를 모두 폐기 또는 철수시킨다. 한반도 배치 핵무기도 철수하고 이를 배경으로 남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서명한다. 1994년에는 북한도 미국과 제네바합의를 통해 핵개발 계획 포기를 약속했다.
이런 흐름은 21세기 들어 중단되고 만다. 2001년 9·11테러는 미국의 핵정책을 크게 바꾸어 버렸다. ‘불량국가’들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대처해 ‘미사일 방어체제’(MD)를 수립하기로 하고 러시아의 반대를 무릅쓰며 ‘요격미사일 제한협정’(ABM)에서 탈퇴한다.
START의 이행이 중단되고, 미국 의회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비준도 거부했다. 또한 미국은 불량국가에 핵무기를 선제 사용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 와중에 인도, 파키스탄,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 이 시기 핵태세를 강화하는 미국과 핵개발을 추진하는 북한과의 핵협상은 인류의 비핵화 노력에 비추어 보면 공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21세기 첫 10년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어수선하게 시행착오를 겪어 온 미국이 최근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드는 노력에 다시 솔선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별스런 업적도 아직 없는 오바마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을 가지고 말이 많지만, 그가 “유일하게 핵무기를 사용한 미국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드는 데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말한 것만으로도 평가받을 만하다고 본다.
작년 9월 오바마 대통령 주도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브라운 영국 총리 등 핵 강국 정상이 유엔 안보리에 참석해 ‘핵 비확산과 핵군축을 위한 결의안 1887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안보리에서 5대 상임이사국 정상들이 직접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올해는 핵 비확산과 핵군축을 위한 정상회의가 미국을 중심으로 준비되고 있다.
10·4 정상회담도 남북관계 진전과 핵문제 해결 先後논쟁 있었다
이러니 북핵문제도 새삼 주목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김정일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다. 조·미 사이에 적대관계가 평화관계로 전환돼야 하며,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이루려는 목표는 변함이 없다”라고 했다.
중요한 시점에서 한 발언이었다. 북한의 핵개발 의도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핵 강국에 포위된 형편에서 인도, 파키스탄, 브라질,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지역 패권을 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 “조·미 사이의 평화관계”가 이뤄지면 비핵화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은 나름 계산한 결과이지 않겠는가.
작년 10월 관훈토론회에서 정몽준(鄭夢準) 한나라당 대표가 “북한의 핵개발은 나름 합리적 판단”이라고 언급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도 2004년 “북핵개발이 자위적 조치라는 북한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해 비슷한 치도곤을 당한 적이 있었다.
북한의 계산, 즉 비핵화의 대가 또는 조건이 ‘평화’라면 이는 한반도에서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을 끝내고(정전협정은 아직 전쟁 중이라는 뜻이다) 평화를 수립하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체제보장’과 같은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 관점에서 보면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체제’ 아래에서 남북 간 기본관계를 어떻게 정하느냐 하는 문제로 연결된다. ‘평화’라는 단어가 양쪽에 모두 들어가 있지만 평화체제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어찌됐든 북한의 핵 포기 결단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와 연결돼 있고, 이 문제는 우리가 반드시 주도해야 한다. 북한만의 결단이나 미·북 간 타협에 맡기고 기다릴 문제가 아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판단에 입각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해 북한과 어느 정도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즉 남북관계가 평화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진전돼 있어야 핵문제도 풀 수 있는 상황이 된다는 얘기다.
2007년에도 정부 안에서 남북관계와 미·북관계(핵문제의 진전)의 선후관계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그해 10·4남북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종전(終戰)’에 대한 첫 논의가 있었다. 물론 결론이 내려진 것은 없었지만 앞으로의 남북정상회담 추진방향을 예고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우리 ‘시간표’ 따라 북한을 움직여 볼 수 있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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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9월 11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
대통령의 언급대로 콘텐츠가 문제인 상황에서 장소에는 구애받지 않으리라고 본다. 시기문제도 여러 가지 전략적 입장에서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나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우리가 매우 융통성 있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 오히려 너무 신중한 자세로 인해 시기를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은 북핵문제의 본질적 해결이나 한반도 장래문제에 관한 기본방향을 설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기이며, 따라서 우리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한다면, 한반도 평화체제의 직접 당사자인 남북한이 먼저 평화체제의 논의에 착수하는 계기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마련하는 것이 핵문제 해결이나 남북관계 개선 어느 쪽이든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의 움직임을 놓고 시기를 선택하기보다 우리가 원하는 시간표에 의해 북한을 움직여 볼 수 있는 기회다.
남북대화에서 상대를 믿는다거나 믿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주의(Real politics) 입장에서 본다면 의미 없는 말이다. 결국 자신의 기대나 신념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북한은 절대로 믿지 못할 상대”라는 그 자체가 하나의 믿음이다. 현실 정책에서는 실질적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은 말이다. 우리가 북한과 협상을 하는 것은 북한을 신뢰하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문제를 풀어 우리의 이익을 보호하고 증대할 ‘필요’ 때문이다. ‘상대를 신뢰한다’는 말은 협상 분위기를 좋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협상의 실질적 내용 자체를 좌우할 수는 없다.
정상회담 제도화해야
1989년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지지를 받은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김대중(金大中)·노무현 정부는 물론, 현재 이명박(李明博) 정부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기본입장이다.
이 방안은 통일의 과도단계로 남북연합 단계를 상정하고 있는데 이때 남북은 대외적 주권을 유지하면서 남북한 간 평화체제와 분야별 공동체의 제도화를 추진하기 위한 연합기구를 두게 된다. 남북각료회의, 남북평의회, 남북공동사무처와 남북정상회의를 예정하고 있다.
남북정상회의는 남북연합의 핵심기구이고 현실적으로 정상회담을 제도화한다는 뜻이다. 정상회담을 제도화한다는 것은 자주 만난다는 것이다. 제도화는 행위의 반복이고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상호관계를 예측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라도 남북관계의 특성상 근본문제를 푸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남북관계의 근본문제는 분단의 근본모순과 연결돼 있고 이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최고 수준의 정치결단은 충분조건에 불과하며 현실적 조건의 성숙, 즉 민족 전체의 인식전환과 완충시간의 경과라는 필요조건이 함께 요구되고 있다. 2000년 정상회담에서 쟁점 중 하나였던 통일방안의 문제는 궁극적 해결을 보지 못했다. 여전히 북한은 연방제를, 남한은 연합제를 주장한다. 당시 합의의 의의(意義)는 통일방안을 당장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장래의 문제로 합의해서 미뤄 놓았다는 데 있다.
2007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개성공단 사업에 진전이 없는 것은 상대 탓이라는 공방이 시작됐다. 남측은 북측이 3통(통행·통신·통관) 문제 등 제도적 보장에 소극적이라고, 북측은 민감한 군사지역을 통째로 내주었는데 남측이 계속 양보만 요구한다며 우선 투자에 성의를 보이라고 했다.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상황이 누적되면서 결국 북측은 근본문제라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즉 남북교류협력 확대의 조건으로 국가보안법, 한미군사동맹, 대북전략물자통제 등 소위 근본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항상 이런 식이다. 그렇다고 이명박 정부 초기처럼 문을 닫아 걸어야 하느냐 여부는 치열하게 내부 논쟁을 거쳐서 결론을 내야 한다. 다만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올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미루어 만나서 길을 열겠다는 자세로 전환한 것 아닌가 짐작된다.
先制的 자세로 남북정상회담 준비하자
올해 경인년은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100년의 역사를 돌아볼 때 지금처럼 국운이 상승하고 주변국과의 관계가 지금처럼 우호적인 때가 없었다.
우리는 세계가 놀라는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남의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남을 돕는 나라로 국운을 역전시킨 세계 유일의 나라이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분단 초기 대북 수세적 입장에서 압도적인 국력의 우위로 바꿔놓은 지 오래다.
오히려 북한 경제의 회생 가능성은 점점 멀어지고 대한민국과의 정통성 경쟁에서도 승부가 판가름난 지 오래다. 분단 이후 상당히 오랫동안 우리는 대북관계에 있어 북한의 행동에 수동적이고 방어적으로 대응해 왔다. 그러나 이제 남북 간의 국력 격차로 보나 내부 체제유지에 급급해 하는 북한 상황을 고려해 보나 우리가 좀 더 많은 부분을 책임진다는 자세로 선제적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남북한을 포함한 민족 전체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책임을 적극적으로 짊어진다는 점이 전제가 돼야 남북관계에서의 유리한 상황전개에 보이는 여유가 든든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러한 책임감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돼야 한다.
북한도 남북정상회담을 단순히 미국과의 협상 분위기를 좋게 끌고 가기 위한 장식품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북한이 말하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는 실제론 남북관계의 범위 안에서 실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