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祕話

金寬鎭 전 국방부 장관이 말하는 아덴만 여명 작전

“두 명 이상 사상자 나오면 장관 물러나겠다”고 MB설득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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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출작전 준비하고도 돈으로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사건 해결한 노무현 결정 보고 느낀 점 많아
⊙ 아덴만 여명 작전 주장하자, 측근들 “장관으로 취임하신 지 한 달 반밖에 안 됐다”며 만류
⊙ “국민 목숨이 달린 일에 職은 의미 없다”
⊙ ‘‌작전 중 해적에게 총알 6발을 맞은 석해균 선장이 완쾌돼야 이번 작전이 끝나는 것’
⊙ 보수정권에서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졌던 김관진, 문재인 정부에선 피고인 신분으로 전락
  청해부대는 한국군 최초의 전투함 파병부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근거해 2009년 3월부터 아덴만 해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소말리아와 접해 있는 아덴만은 지중해~수에즈운하~홍해~인도양을 통해 아시아와 유럽, 중동,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주요 해상 교통로다. 한 해 3만3000척의 선박이 통행하고 있고, 전 세계 원유의 30%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要衝地)다. 우리나라도 수출입 물량의 99%가 해상을 통해 수송되고 있으며, 그중 20%가 아덴만과 소말리아 근해를 통과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유 수입의 8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어, 이 지역의 해상 교통 상황이 해적 활동으로 인해 불안해질 경우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청해부대 창설 의미는 유엔 안보리결의안에 따라 해상 수송로의 안전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기 위해 우리 해군 전투함을 해외에 파병한 사례라는 데 의의가 있다. 청해부대 창설은 우리 군이 한반도 차원을 넘어선 영역에서도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발전한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민 공격하면 반드시 응징받는다”
 
  청해부대 임무는 ‘소말리아 해역 한국 선박의 안전운항 지원’이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주요 작전으로 ▲선박호송 작전 ▲해양안보 작전(MSO·Maritime Security Operation) ▲우리 선박 안전항해 지원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작전이 있다.
 
  선박호송 작전은 소말리아 해역 아덴만 내에서 운항하는 한국 선박 및 기타 국적 상선에 대해 실시하는 작전이다. 호송신청서를 제출한 상선을 근접 동행하면서 해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해양안보 작전은 소말리아 아덴만 근해를 통항하는 선박의 안전항해를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 선박 안전항해 지원은 CMF 지정 해적 활동 위험구역(경도 70°E, 위도 15°S 이내)을 단독 항해하는 선박과 소말리아 동북부 및 모잠비크 동방에서 조업하는 우리 원양어선 등 근접호송하지 못하는 선박을 대상으로 통신수단을 이용하여 해적 활동 위협 및 정·첩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작전은 재외 우리 국민이 위험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철수 지원 또는 구출하는 것을 뜻한다.
 
  청해부대는 2011년 삼호주얼리호(이하 ‘주얼리호’)가 해적에게 피랍되자 ‘아덴만 여명’ 작전을 통해 구출해냈다. 이 작전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인질 구출 작전으로 평가된다. 작전 성공을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과 재산을 공격하면 반드시 응징을 받는다’는 메시지를 해적에게 전달했음은 물론, 전 세계에 대한민국 해군의 우수성과 작전 능력을 입증했다.
 
  4000t급 이상의 구축함인 문무대왕함과 링스(Lynx) 헬기, 최정예인 해군 특수전 요원(UDT/SEAL)을 보유하고 있는 청해부대는 지난 3월 13일 파병 10주년을 맞았다. 그보다 앞선 지난 1월 21일은 아덴만 여명 작전이 있은 지 만 8년이 되는 날이었다.
 
  청해부대 파병 10주년, 아덴만 여명 작전 성공 8주년을 맞아 《월간조선》은 김관진(金寬鎭) 전 청와대 안보실장을 비롯한 아덴만 여명 작전 성공 주역들의 증언, 해군의 아덴만 여명 작전 관련 백서 등을 종합해 우리 군 사상 최초의 해적 퇴치 작전을 재구성했다.
 
 
  고요함을 깬 “해적이다!” 비명
 
아덴만 여명 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들(왼쪽 아래부터). 김종욱 부사관 188기, 박상준 부사관 214기, 강준 부사관 215기. 사진=해군제공
  2011년 1월 15일 오전 7시45분 북위(北緯) 22도, 동경(東經) 64도 아라비아해는 몬순의 계절이 지난 뒤여서 고요했다. 당직근무 중이던 손재호 1등 기관사는 오전 7시47분 정도에 날카로운 비상벨 소리를 들었다.
 
  “따르르 따르르!”
 
  선교(船橋·브리지·배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운항 등 선박을 전체적으로 컨트롤하는 곳)에서 근무 중이던 이기용 일등 항해사가 비상상황을 알린 것이다. 손 기관사가 선교로 긴급 전화를 걸자 “해적이다!”라는 비명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화학물질을 싣고 스리랑카로 항해하던 1만1000t급 주얼리호 앞에 해적선이 나타났다. 해적 모선(母船)에서 내려진 소형 모터보트 두 척이 주얼리호로 바짝 다가갔다. 최진경 3등 항해사는 바로 “배에 해적이 탔으니, 즉시 피란실로 대피하라”는 선내 방송을 했다. 한국인 8명 등 선원 21명 전원은 3~4분 만에 비상통신기와 물·음식 등을 챙겨 피란실로 대피, 철제 출입문을 걸어 잠갔다. 철문은 안쪽에서만 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곧바로 회사 등으로 긴급 구조요청을 했다. 손 기관사는 “행여나 해적들이 철문을 열어 붙잡힐까 봐 피란실 안쪽 소화장치를 보관하는 별도 공간(CO₂룸)으로 더 깊이 들어가 문을 잠갔다”고 말했다.
 
  소형 고속정을 탄 소말리아 해적 13명이 높이 5~6m인 주얼리호 오른쪽 중앙 측면에 알루미늄 사다리를 걸어 선박에 올라, 주얼리호를 순식간에 장악했다. 해적들은 피란실 천장에 있는 해치(화물을 싣고 내리거나 사람이 출입하기 위해 뚫어놓은 구멍)를 대형 해머로 부수고 들이닥쳤다. 그들은 AK소총과 생선칼로 선원들을 위협했다.
 
  이런 상황은 선사(船社) 삼호해운에 의해 군수(軍需) 적재차 지부티(Djibouti) 항으로 이동 중이던 청해부대에 전파됐다. 선사는 “약 3시간 전에 주얼리호의 선박보안경보장치(SSAS·Ship Security Alert System) 신호를 수신했으며, 전화통화가 불가하다”는 내용을 신고했다.
 
  청해부대는 상황을 접수한 후 신속히 합동참모본부(합참)에 보고하는 한편, 연합해군사령부에 피랍 상황을 전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선박보안경보장치는 2001년 미국 9·11테러 이후, 해상테러에 대한 전(全) 세계적 대응 방안으로 탄생한 해상테러 대응 통신시스템이다. 국제해사기구(IMO)가 정한 해상인명안전협약(SOLAS)에서 2004년 7월 1일 이후 건조한 모든 국제 항행 여객선 및 500t급 이상의 모든 화물선, MODU(Mobile Offshore Drilling Units·이동식 시추선)는 이를 반드시 탑재해야 한다.
 
 
  美 SEAL도 실패한 구출 작전
 
  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됐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재발방지 대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가 해상 수송로를 보호하지 못하면 국가 경제에 지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나아가 피랍이 발생할 때마다 돈으로 해결하면 해적들에게 한국 선박은 항상 표적이 될 것이 뻔했다.
 
  당시 국방부 장관인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은 군사작전을 통해 인질을 구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가 심했다. 청와대는 물론, 군 내에서조차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인질과 해적이 섞여 있어 불상사가 생길 가능성이 농후했다.
 
  지난 2005년 6월 28일 미 해군 최정예 특수전 부대인 ‘실(SEAL)팀’도 인질 구출 작전에 실패했다. SEAL팀 16명을 태운 미군 MH-47 특수전 헬기 1대가 탈레반의 RPG 로켓 공격을 받아 추락, 탑승자가 몰사(沒死)한 것이다. 이들은 오사마 빈 라덴의 측근인 아마드 샤를 체포 또는 사살하기 위해 파견된 정찰조가 탈레반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보자 그들을 구조하기 위해 긴급 출동했다가 변을 당했다. 이 작전은 아프가니스탄전 최악의 특수전 작전으로 기록됐다.
 
  러시아 최정예 알파 부대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004년 9월 1일 러시아 남부 북오세티아 공화국에서 체첸 반군이 베슬란 학교에 침입, 1200여 명을 인질로 붙잡았다. 러시아 최정예 알파 부대 등이 구출 작전을 펼쳤지만, 인질 가운데 366명이 사망, 역대 최악 인질사건으로 기록됐다. 사망자 중 156명이 어린이였다.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사건 떠올린 이유
 
  김관진 장관 등 군사작전에 찬성한 일부 군(軍)·청와대 관계자들은 2007년 7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사건을 떠올렸다. 당시 우리 군은 구출작전을 준비하고도 통수권자가 결심을 안 해줘 돈으로 해결했다. 당시 김 장관은 합참의장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김만복 국정원장을 내세워 구출협상을 했다. 납치된 목사·신자 23명 중 배형규 목사와 신자 심성민씨가 살해됐다.
 
  군사작전을 강행하려는 김 장관을 측근들은 말렸다.
 
  “장관님, 장관으로 취임하신 지 한 달 반밖에 안 됐습니다. 조금만 잘못되어도 ‘직(職)’을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호남(전라북도 전주) 출신인 김 장관이 TK(이명박) 정부에서 힘들게 장관직에 오른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부하의 충정이었다. 실제 다수의 이명박 정부 인사는 호남 출신인 김 장관이 국방부 장관이 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합참의장이었던 김 장관은 가시밭길을 뚫고 2010년 12월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다.
 
  김 장관이 측근들에게 이야기했다.
 
  “국민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직’이 중요한 게 아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국민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직은 수백 번도 넘게 내려놓을 수 있다.”
 
  김 장관의 단호함에 측근들도 더는 그를 말리지 못했다.
 
  군사작전에 찬성한 이들은 작전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군의 수장(首長)인 김 장관의 믿음은 더욱 확고했다. 수도기계화보병사단 26기계화 보병여단장, 육군 제35보병사단장,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 제2군단장, 합참 작전본부장, 제3야전군 사령관, 제33대 합참의장 등을 지내면서 특전사 중의 특전사로 불리는 707 특임대 등 최정예 부대의 훈련 모습을 숱하게 봐왔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양쪽 눈을 모두 가리고도 각종 무기로 목표물을 정확히 맞히는 등 액션영화에서나 볼 만한 모습들에 감탄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국민의 목숨이 달린 일에 ‘군’을 믿고 단호한 결정을 내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실제 대(對)테러 작전과 요인 경호, 응징보복 외에도 ‘X파일’이라 불리는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707 특임대는 실내에서 불을 꺼놓고 방탄조끼를 입은 지휘관이 앉아 있는 자리 바로 옆에 매달아놓은 풍선을 향해 조준경이 달린 소총이나 권총으로 실탄(實彈) 사격을 하는 훈련을 한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지휘관 얼굴에 총탄이 맞아 사망할 수 있는 위험한 훈련이다.
 
 
  ‘人間兵器’ UDT/SEAL
 
아덴만 여명 작전 주역인 특수전 요원들이 선박 검문 검색 장악훈련을 펼치고 있다. 사진=해군제공
  다만, 해군 특수전 요원(UDT/SEAL)의 훈련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김 장관은 해군 고위급 장성들에게 물었다.
 
  “해군 특수전 요원도 707 특임대 정도로 강한가?”
 
  대통령이 군사작전 결단을 내릴 경우, 청해부대 내 해군 특수전 요원들이 작전에 투입되는 만큼 그들의 능력에 대해 알아본 것이다.
 
  “우리가 더 셉니다.”
 
  다시 물었다.
 
  “게네 훈련하는 모습 보니까, 대단하던데?”
 
  “그건 기본입니다”라는 자신감 넘치는 답이 돌아왔다.
 
  해군 UDT/SEAL은 미군 수중폭파대(UDT)를 본떠 창설됐다. 임무 성격상 초인적(超人的)인 능력을 요구하다 보니 UDT/SEAL의 훈련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교육생들은 맨몸 수영 3.6km 이상, 오리발 수영 7.2km 이상, 턱걸이 40개 이상, 구보 40km 이상을 거뜬히 해내야 한다. 훈련기간 중 ‘지옥주(地獄週)’로 불리는 기간에는 138시간 동안 잠을 한숨도 자지 않고 고무보트 조정훈련·갯벌훈련·구보 등을 쉴 새 없이 해야 한다. 식사도 무게 85kg의 고무보트를 머리에 이고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교육생들은 ‘인간병기(兵器)’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대통령의 결단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은 “사상자가 두 명 이상 나오면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며 아덴만 여명 작전 개시를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은 “철저히 준비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차질 없이 작전을 수행하라”고 지시했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만 남았다. 이 대통령은 향후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무력(武力) 진압에 공감했지만, 인질의 안전을 우려했다. 당연했다. 2011년 1월 20일 이명박 대통령이 김관진 장관을 불러 물었다.
 
  “작전을 한다면 어느 정도의 인명 피해를 예상하나요.”
 
  해상 인질구출 작전이 사상자 없이 성공하는 것은 해외에서도 예가 드물었다.
 
  김 장관이 대답했다.
 
  “사상자가 두 명 이상 나오면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습니다.”
 
  우리 국민 목숨이 걸린 결단이었다. 이 대통령은 새삼 대통령직이 무겁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내일 새벽 작전을 진행하도록 하세요. 철저히 준비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차질 없이 작전을 수행하세요.”
 
  이 대통령이 김 장관에게 ‘아덴만 여명’ 작전을 승인한 것은 이날 오후 5시12분이었다.
 
  작전을 최종 승인한 날 이 대통령은 온갖 상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 “그저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썼다.
 
  이 대통령이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은 2010년 11월 몸값 950만 달러(약 105억원)를 낸 삼호드림호 사건 때문이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해적들은 몸값을 공개해 우리를 조롱했다”며 “이 대통령은 이것을 대한민국이 당한 국제적 모욕으로 받아들였고 ‘다시는 이런 식으로 해결해선 안 된다’는 뜻을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해군의 협조
 
  피랍 7시간30분 후인 2011년 1월 15일 오후 6시30분 긴급 출항하여 현장으로 이동한 청해부대에 20일 ‘아덴만 여명’ 작전이 하달됐다.
 
  청해부대는 대통령 명령 하달 전부터 철저한 대비를 해왔다. 이동 중 철저히 작전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선사에 선원명부, 주얼리호 설계도면 등 관련 정보를 요구해 확보했다. 그리고 연합해군사령부에는 피랍 현장으로 전력(함정·P-3C)을 투입, 정찰사진을 촬영해달라고 요청했다. 청해부대는 선사로부터 무장해적 약 13명과 선원들이 모두 선교에 있으며, 해적 모선이 인근에 대기 중이라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청해부대는 2011년 1월 13일 덴마크 상선 피랍 시 선원들만 납치되어 더는 구출 작전이 불가했던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해적작전부대(CTF 151) 사령관에게 ‘인근에 있는 파키스탄 호위함(BABUR함)을 현장에 투입하여 피랍 상선을 감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를 수용한 파키스탄 해군은 인근에서 BABUR함을 피랍 현장으로 급파, 청해부대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했다.
 
 
  아덴만 여명 작전 5단계
 
  청해부대는 구출 작전을 5단계로 기획했다.
 
  ① 먼저 고속 단정(RIB·Rigid Inflatable Boat)과 해상작전헬기(Lynx)를 출격시킨다.
 
  ② 전자공격으로 청해부대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하도록 하고, 해적이 외부로 나오지 못하게 링스 헬기와 함정에서 제압사격을 하며, 지속적으로 위협사격을 시행해 해적의 시선과 관심을 유인한다.
 
  ③ 이어 RIB 공격팀이 등반한다.
 
  ④ 해적을 제압, 선박을 장악하고 인질을 구출한다.
 
  ⑤ 마지막으로 선박 내부를 정밀 검색하여 잔존 해적을 제압한다.

 
  작전 당일인 2011년 1월 21일 새벽 아덴만 해역 기상은 북동에서 남동풍이 10~15kts(시속)로 불었으며, 시정 5마일에 구름이 약간 있었다. 파고는 1~1.5m로 구출 작전을 수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작전 개시 10분 전인 04시36분 청해부대는 국제상선공통망을 통해 우리 선원들에게 한국어로 ‘공격이 임박했으니 안전지대로 대피하고 외부로 나오지 마라’는 방송을 2회 실시했다. 소말리아 해적이 한국말을 못 알아들었기에 가능했다.
 
  05시18분 청해부대는 함정을 은폐물로 삼아 RIB 2척을 우현(右舷), RIB 1척은 좌현(左舷)으로 침투시켰다. 우현 RIB(2척)가 침투할 때 청해부대는 주얼리호에 전자공격을 감행하여 레이더를 마비시키고, 함정의 기동을 주얼리호 쪽으로 바꾸어 RIB 침투를 해적이 눈치채지 못하게 했다.
 
  UDT/SEAL 공격팀은 함정과 링스 헬기의 엄호사격을 받으며 주얼리호 선미로 은밀하게 접근했다. 공격팀이 주얼리호에 접근함에 따라 함정과 링스는 위협사격을 멈추고 정밀 저격사격을 했다.
 
  공격팀이 선교로 이동하는 동안에 최영함(4500t급), RIB, 링스는 지속적인 위협기동으로 해적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이때 선미 브리지 데스크에서 해적 1명이 공격팀을 발견, 총을 쐈다. 공격팀은 즉각 MP-5 기관단총으로 사살했다. 해적과의 교전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독일제 MP-5는 1965년 개발된 세계 최초의 4세대 기관단총으로, 1980년 영국 특수부대 SAS가 주영 이란대사관에서 인질범을 제압하는 데 활약했다. 분당 발사속도는 800발이다.
 
  김 장관 등은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대통령과 함께 진압 과정을 지켜봤다. 작전에 투입된 청해부대 UDT/SEAL 공격팀 대원들의 헬멧에 소형 카메라가 장착돼 있어 현장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달됐기 때문이다.
 
  모두 숨죽이고, 가슴 졸이며 현장 상황을 지켜봤다. 야전을 누빈 김 장관도 긴장했다.
 
  “작전을 지켜보면서 참견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끝까지 꾹 참았다. 담배를 끊었는데, 가슴이 담배를 부르더라.”
 
  김 장관이 작전에 참견하지 않은 이유는 부하들에게 ‘임무형 지휘’를 보장해줬기 때문이다.
 
  임무형 지휘란 지휘관이 명확한 의도와 임무를 제시하고 필요한 자원과 수단을 제공하면 부하가 이를 기초로 자율적, 적극적으로 임무수행 방법을 찾아 완수하도록 재량권을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김 장관은 “일단 과업과 작전계획이 하달되면 현장에 맡기고 (지휘부는) 참견하면 안 된다”며 “장관이 (작전을) 지시하면 아래가 흔들리고 장관만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공격팀은 선교를 목표로 전진하면서 통로 인근 격실에 최루탄과 섬광폭음탄을 투척하여 은닉하고 있을지 모를 해적에 대비했다. 선교 근처에 도착한 공격팀은 선내의 해적과 인질의 위치를 다시 한 번 정확히 확인했다.
 
  이어 창문 너머로 최루탄과 섬광폭음탄을 투척한 뒤, 기관단총으로 선교 천장에 위협사격을 가해 해적들을 당황하게 한 뒤 5명이 재빨리 선교에 진입했다. 최루탄의 매캐한 연기로 인해 시야가 제한적이었지만, 공격팀은 해적과 선원을 구분할 수 있었다. 해적들은 공격팀의 진입에 당황한 모습을 보이며 근처에 있는 선원들에게 다가가 공격하려 했다.
 
  찰나의 순간 공격팀은 재빨리 급소를 정밀사격하여 해도대와 조타기에 있던 해적 4명을 모두 사살하고, 선원 3명의 안전을 확보했다. 선원들은 며칠간 계속된 해적들의 난폭한 행동, 총성과 연기로 인해 공포에 휩싸인 표정이었다. 공격팀은 “안심하십시오. 대한민국 해군입니다”라고 진정시킨 후, 좌현 윙브리지로 긴급 대피시켰다. 선원들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뒤 담요 밑에 숨어 있던 해적 1명과 선내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갑자기 나타난 해적 2명이 사격을 가해왔고 공격팀은 교전을 통해 해적을 사살했다. 곧이어 외부 통로에서 해적 1명이 나타나 총격을 가하며 저항하자 추가 사살했다. 이렇게 하여 공격팀은 06시45분부로 선교를 완전히 장악했으며, 해적 8명을 사살하고 선원 13명을 구출했다. 공격팀은 화장실 앞의 선원들을 구출한 후, 선원들로부터 석해균 선장이 해적에게 총격을 받았다는 것을 듣고 즉시 응급조치를 하면서 최영함에 보고, 후송 조치토록 했다.
 
  석씨는 무장 해적의 위협 속에서도 기지를 발휘해 작전을 도왔다. 해적들은 최대한 빨리 자신들의 근거지인 소말리아 연안으로 이동하려 했지만, 석씨가 배를 ‘지그재그’로 기동하며 우리 군이 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시간을 번 것이다.
 
 
  석해균 선장의 부상
 
아덴만 여명 작전 완료 보고에도 김관진 전 장관은 “작전 중 해적에게 총알 6발을 맞은 석해균 선장이 완쾌돼야 이번 작전이 끝나는 것”이라고 했다. 2011년 11월 4일 오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약 9개월간의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는 석 선장이다.
  선교 장악이 완료되고 공격팀은 주얼리호의 57개 모든 격실을 수색했다. 수색이 완료된 격실 출입문에는 스프레이를 이용하여 표시함으로써 중복 수색을 방지했다. 타기실과 기관실을 정밀 수색 중 숨어 있던 해적 2명을 생포했고, 갑판(Boat Deck)에서는 해적 1명을 먼저 생포했다. 공격팀은 이 생포 해적 1명을 이용하여 나머지 해적 2명을 투항토록 유도하고 성공했다. 이로써 청해부대는 해적 13명을 완전 진압하고 피랍 선원 전원을 구출했다.
 
  한국시각 1월 21일 15시. 해군작전사령관이 합참의장과 국방부 장관에게 작전 수행 결과를 보고했다.
 
  “아덴만 여명 작전 완료했습니다.”
 
  4시간58분간 사투를 벌인 끝에 얻은 쾌거였다.
 
  김 장관은 ‘작전 중 해적에게 총알 6발을 맞은 석해균 선장이 완쾌돼야 이번 작전이 끝나는 것’이라고 했다. 석 선장은 288일의 사투 끝에 2011년 11월 병상에서 일어났다. 그의 말이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듯했어요. 의식을 차렸을 때, 예전 몸 상태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좌절도 했죠. 하지만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순간, 제 인생이 달라졌어요. 긍정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덴만 여명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난 후, 또 한 건의 우리 선박 피랍 신고가 접수됐다. 2011년 4월 20일 아라비아해를 통항 중이던 ‘한진톈진호(MV HANJIN TIENJIN)’가 해적에 피격된 것이다. 국토해양부는 청해부대를 현장에 보내줄 것을 국방부에 요청했다.
 
  김 장관은 출격을 명했고, 신고 상선과 멀리 떨어져 있던 청해부대는 상황 발생 지점으로 이동 중 우선 현장과 가까이 있던 CTF-508(NATO) 소속 터키 기레슨함에 현장 이동 요청을 했다. 이후 3개월 전 아덴만 여명 작전의 경험을 상기, 신속히 선박 도면을 확보하고 인근의 연합 전력과 정찰 결과를 공유하여 작전계획을 수립했다.
 
  다음 날 현장에 도착한 청해부대 공격팀은 선교를 먼저 장악 후, 안전구역(CITADEL)에 대피해 있던 선원들을 구출했다. 다행히 해적은 한진톈진호를 포기하고 인근의 다른 상선을 납치하기 위해 이동한 상태였다. 한국인 14명을 포함한 선원 20명은 무사히 구조됐다.
 
 
  “엔테베 작전 성공한 이스라엘군이 부러웠다”
 
보수정권에서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졌던 김관진 전 장관. 그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던 2015년 8월 25일 황병서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북측의 지뢰 도발 유감 표명과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당국 회담 개최 등에 합의했다.
  우리 군이 해외에서 국민의 생명을 구한 첫 작전을 성사시키고, 성공하게 한 김 장관은 가끔 군 초년생 시절을 떠올린다고 했다. 그는 우리 군도 엔테베 작전을 성공한 이스라엘군처럼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 생활 초반인 1976년 들려온 이스라엘 특수부대의 엔테베 작전 성공은 김 장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김 장관은 육사 28기를 졸업하고 1972년 3월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1976년 6월의 엔테베 작전은 현대 인질 구출 작전 중 가장 성공적인 ‘전설’로 꼽힌다.
 
  그해 6월 27일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이 24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이스라엘을 떠난 에어프랑스기를 납치,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으로 향하도록 해 인질사건이 시작됐다. 이스라엘의 대표적 특수부대인 사이렛 매트칼(Sayeret Matkal·대테러 부대)은 3대의 C-130 수송기로 이스라엘에서 4000km 가까이 떨어진 엔테베 공항까지 날아가 100여 명의 자국민 인질을 구출해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사이렛 매트칼은 베냐민 네타냐후, 에후드 바라크 총리를 비롯하여 국방장관, 합참의장, 모사드 국장 등 국가 지도자를 배출했다.
 
  영국의 SAS를 본떠 만들어진 사이렛 매트칼은 이스라엘 최정예 낙하산 부대원 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훈련을 통과한 요원들로 구성돼 이스라엘군에서 가장 어려운 임무들을 수행해왔다.
 
  김 장관은 요즘도 사석에서 “내 재임 중 가장 기뻤던 일이 아덴만 작전 성공이었다”면서 “군 생활 초기 엔테베 작전을 보면서 이스라엘 군대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우리 군도 꼭 그렇게 만들고 싶었는데, 군 생활 마무리 짓기 전에 가장 전투를 잘하는 군대의 모습을 봐서 흡족하다”며 당시 기억을 떠올린다는 전언이다.
 
 
  죄인이 된 대통령과 국방장관
 
공교롭게도 ‘아덴만 여명 작전’을 강력하게 밀어붙여 우리 군의 실력을 전 세계에 알린 김관진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 들어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 2017년 11월 13일 오전 김 전 장관이 구속된 뒤 첫 조사를 받기 위해 포승줄에 묶인 채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김 장관의 장관 취임 첫 일성은 “군인 정신이 약화되고 군 조직이 행정 조직처럼 변해버렸다. 새로운 마음으로 군 기강을 재확립할 필요가 있다”였다.
 
  김 장관이 떠난 군은 정신교육시간에 장기자랑을 할 정도로 기강이 해이해졌다. 지난 1월 《국방백서》에 이어 3월 정신전력 기본교재에서도 ‘북한은 주적(主敵)’ 개념이 완전히 사라졌다.
 
  국방부는 ‘북한에 대한 주적 개념을 유지해야 한다’는 한국정치학회의 용역보고서를 받고도 장병의 정신교육 교재에서 주적 관련 표현과 내용을 대거 뺀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과의 군사 합의와 교류 협력을 추진해온 청와대 기류에 맞추려고 보고서를 묵살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아덴만 여명 작전’을 강력하게 밀어붙여 우리 군의 실력을 전 세계에 알린 김관진 전 장관과 국군 통수권자로서 최고의 결단을 내려 최고의 성과를 이끌어낸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들어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와 횡령 등 16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5개 혐의 무죄).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김 전 장관은 여섯 가지 다른 혐의로 검찰·경찰·감사원·청와대 조사를 받았다. 보수정권에서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졌던 두 사람이 이른바 진보정권에서 피고인 신분으로 전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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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1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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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주의자    (2019-05-22) 찬성 : 1   반대 : 0
오직 강한 힘만이 평화를 보장한다.
군복무중에 정신교육 시간에 배운 글귀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을 피하지 않아야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킬수 있다는것을 왜 저쪽 사람들은 모를까 답답합니다.
지원을 하면 할수록 북괴는 그 자본을 직접적으로 무기개발에 사용하거나
아니면 인민들에게 배급할 식량을 우리가 준 식량으로 대체하고 아껴진 돈으로 무기개발을 한다는것은 삼척동자도 알수 있는것을 저쪽 사람들은 왜 알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적앞에서 가장 용감하고 군인들에게 힘이 되어줘야할 사람인 국방 장관으로서
김관진 장관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 장관임에 틀림 없습니다.
  백현욱    (2019-05-08) 찬성 : 11   반대 : 0
김관진육군대장 당신은 이시대의 참군인 이었습니다 좌파들이 당신의 명예를 추하게 격하시켰으나 대다수의 국민들께서는 장군을 응원하고 또 응원합니다 썩은 정권은 곳사라질겁니다 그때 다시 조국을위해 힘주세요 존경합니다 건강하세요
  ㅇㅇ    (2019-05-04) 찬성 : 0   반대 : 0
문정권 초기에 사드 들여올때 다 짊어지고 들여와줬는데 이따위로 하다니
.
  ㅇㅇ    (2019-05-04) 찬성 : 5   반대 : 0
이시대 마지막 군인..
  좌파친일행각    (2019-04-29) 찬성 : 10   반대 : 0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손자 - 홍영표 더불당원내총무가 한국당의원들 그냥 안둔다 벼러고 있고,
친일파재산국고환수 재판에서 친일파 김지태의 변호를 맡아 국고환수를 무산시킨 문재인 - 더러운 재판 변호였으니 아마 상당한 변호사비를 챙겼을 거임.
친일파 아들이자 친일파를 변호하고도 자기들의 친일행각은 아무 문제없다는 내로남불 문통이 있어, 우파들이 더 크게 당할수도 있을 듯.

************ 문재인대통령 아버지 문용형씨도 일제때 흥남읍 농업과장으로서 식량수탈에 관련된 인물임 ---6.25전쟁당시 흥남철수때 김일성의 친일파 숙청을 피하기위해 남한으로 왔을것으로 추정 (과장이면 아주좋은 자리인데 친일파 숙청없이는 고향의 그 좋은자리 버리고, 혹한의 겨울에 흥남부두에서 맨몸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거제도로와 고생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임). ****************************************************************


  문죄인    (2019-04-28) 찬성 : 6   반대 : 0
처음에는 뭉가가 자신이 말한대로 정말 잘할줄, 정말 좋은 나라를 만들줄 알았다.
그러나, 순진한 믿음이었을뿐 전혀 아니었다. 선한 가면을 쓴 사기꾼이었다.
믿음을 가차없이 속인 정치 사기범 뭉구라, 언젠가 구속되었다는 뉴스를 꼭 보게 되길... 꼭- 보게 되어야만 한다.
  자유대한인    (2019-04-26) 찬성 : 8   반대 : 0
김 장관님은 우리군의 참 군인중의 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종북반역의 무리들의 거짓선동으로 강탈당한 정권이지만 이 폭압적인 정권도 잠시일뿐.
장관님의 국가와 국민을 위한 올바르고 정확한 평가는 역사가 기록해 줄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언제나 김장관님과 같은 참 군인을 원하고 지지합니다.
  김도도    (2019-04-23) 찬성 : 7   반대 : 0
존경하는 김관진 장관님!
부디 힘내셔서 이 고초를 이겨내셔야 합니다.
진정한이 나라의 지도자이십니다.
존경합니다. 힘내십시요.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장관님같으신 분이 계셔야 이 나라의 안보가 튼튼해지고, 북괴가 두려워 할 겁니다
  소팽약선    (2019-04-23) 찬성 : 13   반대 : 0
한 평생을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공을 세운 사람에게 무슨 죽을 죄를 지었는지 모르지만, 저런식으로 모욕을 줘도 되나? 설사 그런 죄를 지었더라도, 그간의 공적을 보아서라도 저렇게 모욕을 해서는 안된다. 히틀러조차도 롬멜이 자신의 암살음모 혐의가 있자, 명예를 지켜주고 자살하게 했다. 저사람이 죽을 죄를 지었다면, 차라리 자결할 기회를 줘라
  자유대한민국사랑    (2019-04-23) 찬성 : 51   반대 : 0
댓글을 달지 않을수 없는 좋은글이네요. 김관진 장관님 제가 이순신 장군 이후로 가장 존경하는 참군인이십니다. 우국충정으로 마음으로 인고의 시간을 잘 견뎌내십시오. 빛과 진리는 결국 승리할것입니다. 이 거짓 종북 정권은 언젠가 국민의 심판을 달게 받게 될 것입니다.
  내나라내조국    (2019-04-22) 찬성 : 47   반대 : 0
김관진 이 분은 정직하고 참된 국가의 인재로서 비할자가 없는 올곧은 인물이다.. 이 분을 흠집내는 얼간이가 사람은 아닌 듯하다.
  맛집리센세    (2019-04-21) 찬성 : 15   반대 : 0
멋진 지도자이시죠.. 더욱 든든한 국가 안보의 리더가 되어주십쇼.
성원합니다. 화이팅!
  Crisis    (2019-04-20) 찬성 : 26   반대 : 0
대한민국이 저렇게 자랑스러웠던 시절도 있었죠 ! 납치범들에게 돈을 쥐어주지 않고 오로지 특수부대와 해군의 작전만으로 적들을 소탕할수 있었던 전무후무한 승리.

현재는 저런 시절조차 잊혀질만큼 암흑의 나날만 되풀이 되고 있으나, 이런 자랑스러운 기억을 상기시켜준 기자님 감사합니다. 마음속에 작은 희망의 씨가 심어진것같습니다.. 이런 좋은 기사 많이 내주시십오..
  짱구    (2019-04-19) 찬성 : 18   반대 : 0
김 장관님 장하십니다!!
너무 멋지십니다!!
  이마호    (2019-04-19) 찬성 : 36   반대 : 0
김 장관님같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 주시는 분들이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이십니다. 끝까지 이 나라의 안위를 지켜 주십시요.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20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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