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최후진술(下)

“노을이 한강에 깔리고 강물은 유유했다”

  • 글 : 강만수 작가(前 기획재정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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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지로 억울을 만드는 검사, 그 억울을 죄로 만드는 판사
⊙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법과 정의가 파괴당하는데도…
⊙ “건국 이후 사법제도의 개선을 위한 노력은 없었습니까?”
⊙ 정치인들이 툭하면 정치 문제를 검찰로 가져가 ‘제왕적 검찰공화국’으로 만들어
⊙ 최후진술서를 쓰다가 팔이 아파 그만두고 명상을 했다

[편집자 주]
강만수 전(前) 기획재정부 장관이 과거 옥중에서 쓴 소설을 《월간조선》에 보내왔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 수장이었던 그는 산업은행장 재직 당시 대우조선해양 비리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2016년 12월 구속돼 4년여간 옥고(獄苦)를 치렀다. 옥중에서 10편 이상의 소설을 쓴 그는 지난 2022년 11월 한국소설가협회가 주관하는 제73회 한국소설신인상 단편소설 부문에 〈동백꽃처럼〉을 투고해 당선됐다. 강 전 장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최후진술〉을 4월호에 이어 소개한다.

[작가 소개 | 姜萬洙]
서울대에서 법을, 뉴욕대에서 경제를 공부했고, 공직에서 일하였으며, 2022년 《한국소설》을 통해 단편 〈동백꽃처럼〉으로 등단하여, 2023년 단편 〈쪽새미 애가〉를, 2024년 한국소설가협회 ‘2024 신예작가’로 선정되어 〈세종로 블루스〉를 발표함. snowkang21@naver.com
검찰공화국에서 검찰 개혁이 이뤄질 수 있을까. 일러스트=조선DB
10분간의 모포 털이가 끝나고 운동장을 나섰다. 최고수들은 그들이 정해놓고 드나드는 마당에서 키운 상추, 쑥갓, 고추를 봉지에 싸서 들고 나왔다. 우리는 철문을 거슬러 지나서 각자의 사동으로 왔다.
 
  운동이 끝나면 항상 옆방 전직 검사장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큰 낙이었다. 오늘도 주임에게 시간을 좀 달라고 부탁했다.
 
  “주임님! 말 고픈 사람들 10분간만 이야기하다가 들어갈게요.”
 
  “그러세요. 긴 연휴라 더 길게 있어도 돼요.”
 
  우리는 주임의 허락을 받아 교도관실 앞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주임 교도관은 평소에도 우리의 처지를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었다. 옆방 검사장은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특수부에서 검사로 일하다가 미국 하버드 로스쿨까지 나온 엘리트였는데 오래전 친구를 도와준 일이 문제가 되어 구속된 사람이었다. 우리는 1년 가까이 서로 의지하고 얘기하며 지내면서 연민의 정을 느끼고 위로하는 관계가 되었다.
 
  “미국에서 법을 공부하셨는데 미국의 사법제도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나는 최후진술을 작성하는 데 선진국의 사법제도를 참고하고 싶어서 이렇게 물었다.
 
  “사법제도는 본래 인간의 사적인 복수를 금지하고 국가가 그 복수권을 대신 행사하게 되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근대 사법제도는 국가의 복수 대행권, 즉 국가의 형벌권은 로마 시대에 확립되어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를 거치며 지금의 제도로 발전하였지요. 열 명의 도둑을 놓쳐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는 로마 제국의 법철학을 근간으로 하였지요. 그리고 국가의 형벌권은 시민의 복수 청구, 즉 고발이 있는 때에, 시민의 대표가 정한 법과 절차에 따라 행사되어야 하고, 또 시민이 선출한 권력의 견제 아래 절제되어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 시민이 피 흘려 쟁취한 마그나 카르타의 정신입니다. 국가가 자의적으로 나서면 한 명의 도둑을 잡으려다가 열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배경에서 검찰은 시민의 편에서 기소권을 갖고, 수사기관의 과도한 수사와 인권침해를 견제하고, 재판은 상식을 가진 시민 배심원이 유무죄를 평결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종주국인 영국과 미국의 제도입니다.
 
  선진국의 사법제도는 처음부터 최선이 아니라 차선의 원칙이 채택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맑은 물에서는 물고기가 못 사는 법이니까요.
 
  검찰이 수사도 하고 기소도 하고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상소도 마음대로 하는 문명국가는 없습니다. 형벌권의 범위도, 윤리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도덕률의 영역, 징계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행정벌의 영역, 그리고 징역을 보내어 공동체로부터 격리시키는 형사벌의 영역은 엄격하게 구분하고, 형사벌도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의 경우로 절제되어 행사됩니다. 어떤 검찰총장은 대통령 부인이 300만원짜리 명품 가방을 받은 것이 문제가 되자 ‘현명치 못한 처신이 곧바로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지요. 문제는 그런 절제가 보통 사람에게는 적용이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의 사법제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우리가 처음으로 경험한 근대국가의 사법제도는 제국주의 일본이 식민지 조선을 통치하는 수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제국주의 일본은 식민지 조선인의 저항을 제압하기 위해 형벌권의 영역을 광범위하게 확대하고 형벌권의 적용도 가혹했습니다.
 
  나무를 베어서 불을 때면 영림서가, 담배를 키워서 피우면 전매서가, 농주를 담아서 먹으면 세무서가 잡아가고, 여기에다가 식민 지배에 협조하지 않으면 사상이 불온하다고 경찰서가 잡아갔지요. 4개의 ‘서’자 달린 기관 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가진 강력한 식민지 검찰을 두어, 사실상 잡아가고 싶은 사람은 마음대로 잡아가고 징역도 살게 할 수 있었지요.
 
  그때 그들이 말하는 내지(內地) 사람들, 즉 일본인들에게는 사실상 형벌권의 범위나 집행이 조선 땅과 달랐다고 합니다. 수사할 때도 일본 내지인에게는 가혹한 고문은 하지 않았다고 하지요.
 
  또 도쿄제국대학, 와세다대학과 게이오대학 등 일류대학 엘리트들은 주로 국가 정책을 다루는 행정부로 가고, 사법부에는 중간 정도의 주오대학 출신을 주류로 뒀다고 합니다. 조선인에게는 친일파의 자손이 아니면 국가 정책을 다루는 행정부의 진출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해요. 특히 도쿄의 중앙 부처는 사실상 문이 닫혀 있었고 기껏해야 서울에 있는 조선총독부 정도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조선 인재가 판검사가 되어 그들의 좋은 머리로 조선인을 옭아매는 법률 기술자가 되어 식민 통치의 도구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검찰과 법원은 기본적으로 일제 시대의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았고, 일제의 전통에 따라 우수한 인재들이 사법부에 많이 가게 되었지요.”
 
  “건국 이후 사법제도의 개선을 위한 노력은 없었습니까?”
 
  “건국 이후 남북이 분단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과도기적인 과정에서 일제 강점기의 유산을 정리할 만한 여유가 없었고, 이어지는 권위주의 통치 시대를 겪으면서 후퇴된 것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왕적 검찰’ ‘검찰공화국’
 
미국 연방대법원. 민주주의의 종주국 미국의 재판은 상식을 가진 시민 배심원이 유무죄를 평결한다. 자료=조선DB
  유신 통치 시대에는 식민 통치 시대보다 한 발 더 나갔지요. 사회에 긴장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경범죄처벌법을 고쳐서 경찰이 가위를 가지고 다니며 머리가 길다고 자르고 치마가 짧다고 단속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생들에게는 긴급조치를 만들어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데모를 못 하게 하고, 저항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공직자와 기업인들에게는 경제 범죄를 살인죄보다 더 가혹하게 처벌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만들어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서 권력의 하명을 받으면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여 반드시 죄를 찾아 구속 기소를 하는 특별수사부가 생겨났지요. 자기가 수사한 것을 아무 견제 장치 없이 자기가 기소하고, 판결이 검찰의 구형과 다르면 제한 없이 상소할 수 있는 검찰은 어느 선진국에도 없지요. 전직 대통령 두 명이 구속되고 100여 명이 넘는 사회 지도층이 100년이 넘는 징역을 받게 됨으로써 우리나라 검찰은 ‘제왕적 검찰’로 불리게 되었고, 정치인들이 툭하면 정치 문제를 검찰로 가져감으로써 ‘검찰공화국’으로까지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미국과 유럽은 어떠합니까?”
 
  “2000년 넘게 지중해를 내해로 삼은 로마 대제국은 포용과 관용의 로마법이 바탕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정치적 범죄에 대하여는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었고 국가에 공로를 끼친 사람은 로마 영내를 벗어나는 조건으로 사면을 하였다고 해요. 그 전통을 이어받은 서구 문명국에서는 정치사범에 대하여는 불구속으로 재판하고, 살인범 같은 흉악범보다 가중처벌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경제사범은 불구속으로 수사하고 오히려 징역보다는 벌금형을 중심으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재벌과 고위층에 대하여는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5년 이상 징역에 해당하는 살인죄보다 더 무겁게 징역형을 내리게 만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은 거꾸로 간 역사였습니다. 그 가중처벌법과 특별수사부를 주도한 통치자의 딸도 대통령이 되어서 살인죄의 5배가 넘는 30년의 징역을 선고받았으니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 아닙니까.”
 
  “그러면 검찰권의 과도한 행사를 견제하는 방법은 없습니까?”
 
  “물론 검찰제도를 선진국과 같이 개혁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현재의 법제도에서도 법원이 제대로 역할을 하였다면 검찰공화국이 되지는 않았겠지요. 법원이 엄정하게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사실적인 도피와 물리적인 증거 인멸의 경우에만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계좌 추적의 경우도 법이 정하는 취지대로 필요한 최소한으로, 즉 특정인의, 특정 점포의, 특정 기간의 거래에 대해서만 추적할 수 있는 영장을 발부한다면 검찰권의 과도한 행사를 견제할 수 있고, 사생활의 자유와 인권 보장의 대의가 확립될 수 있겠지요. 금융실명거래법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법으로서 당초 입법 때부터 금융거래 정보의 과도한 추적을 막기 위하여, 금융거래 조회는 수사의 단서가 아니라 범죄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하도록 제한적으로 마련된 제도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보석도 매우 어렵게 만들어 피의자의 방어권은 사실상 무력화되어 있습니다. 법원이 검찰의 수사권은 최대한으로 확대하고 피의자의 방어권은 최소한으로 축소함으로써 사실상 무죄 추정이 아니라 ‘유죄 추정’의 위헌을 저지르고 있지요. 한 명의 도둑을 잡으려다가 열 명의 보통 사람을 잡는 어리석음이 여기에서 나오지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검찰은 법이 정하는 일만 하기에는 너무 우수하고 힘이 강해졌습니다. 그림 맞추기와 같이 사건을 법과 판례에 맞추어 보면 되는 일에, 너무 우수한 인재가 몰려 너무 창의적으로 일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유죄의 판단도 평범한 시민으로 구성한 배심원들이 하도록 함으로써 상식에서 벗어난 재판이 없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두고 있습니다. 오히려 배심원에 전문가가 참여하는 것을 배제하고 있지요. 우리는 창의적인 머리로 사실을 인식하고 법률을 해석하여 새로운 죄를 창조함으로써, 피해자도 없고 고발자도 없는 일을 사건으로 만들고 죄를 부과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머슴이 주인을 다스리고, 설거지한다고 그릇 깨는 격이 되었지요.
 
 
  권위주의 권력에 순응한 굴종
 
  검찰권의 독립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이 선출한 권력 위에 서서 법의 지배라는 명분으로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창의적으로 법률을 해석함으로써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인권을 무력화시키고 자기 영역을 보호함으로써 ‘제왕적 검찰공화국’으로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선진국의 경우 창의적인 엘리트들이 검찰에 많지 않고 우리와 같은 특수부도 없습니다. 독일에서는 창의적인 법률 적용이 ‘법률왜곡죄’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반역·간첩·마약 등 피해자의 복수 청구가 없는 특별한 경우를 위해서는 특별수사부가 필요하겠지요.
 
  오늘의 ‘제왕적 검찰공화국’에까지 이른 데에는 일제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실수가 있었고, 그리고 권위주의 권력에 순응한 굴종이 있었습니다. 머슴이 주인을 다스려서는 안 됩니다.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법과 정의가 파괴당하는데도 그것을 견제하는 장치도 없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상황에서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지금 상황에서 현실적인 대안이 하나 있지요. 검찰을 수사검찰과 기소검찰로 분리하는 것이지요. 검찰의 수사 업무와 경찰의 수사 업무를 합쳐서 수사청을 신설하여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두면 업무도 효율적이고 검찰도 빼앗기는 것이 없으므로 반대할 이유가 없지요. 물론 경찰은 반대하겠지요. 그리고 과도한 수사권 행사에 대한 법원의 효율적인 견제가 필요하겠지요. 합리적으로 검찰권이 개편되고 수사권 행사에 대한 견제가 이루어지면 법조 카르텔의 시장 규모가 축소되니 검찰뿐만 아니라 법조 카르텔 참여자 모두가 소극적인 게 아닌가 합니다. 세상이 다 선진화되고 있으니 검찰도 언젠가는 그런 방향으로 개편되리라 생각해요.”
 

  누구나 열심히 살고도 당할 수 있음을 당하기 전에는 모른다. 수갑을 차고 구속당하는 사람을 남의 집 불로 구경하며 때로 열광하기도 한다. 당해보지 않은 민중은 정의와 법치를 외치는 검찰을 지지하고 헌법이 정하는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당하는 것을 보고도 침묵한다. 언론은 검찰과 합세하여 재판도 받기 전에 보통 사람의 인격 살인을 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피의 사실 공표가 엄격히 금지됨으로써 우리같이 수사 과정을 중계방송하는 것 같은 사회부와 법조팀이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시간이 흘러갔지만 식민 통치와 권위주의 통치의 슬픈 유산은 토속화되어 가고 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어떤 전직 대법원장이 직권남용으로 구속 수사를 당하자 ‘검찰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는 조물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47개 혐의에 증거 기록이 17만 쪽이나 되는 방대한 양의 ‘트럭 기소’를 당했지만 3200쪽에 달하는 대하소설 같은 판결문은 ‘전면 무죄’였습니다. 창의적인 사실 인식과 법률 해석으로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 L 회장이 계열 기업을 합병한 것을 상속세 회피를 위한 배임으로 기소하여 10년간 100회 넘게 재판함으로써 세계 최고 기업의 지위를 무너뜨리고는 전면 무죄가 되었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떤 검사가 금융감독원장이 되더니 많은 기업인이 검찰에서 문제 삼으면 배임죄로 잡혀가는 것을 보고 “배임죄는 삼라만상을 처벌한다”라며 폐지를 주장하기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희극이라고 아니할 수 없지요. ‘삼라만상’을 다스리는 ‘조물주’로 살다가 국회의원에 출마한 P 변호사는 검사장 출신의 남편 변호사가 1년에 40억원을 번 것이 문제 되자 전관예우를 받았다면 160억원은 벌었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어떤 전직 법조기자는 1000억원이 넘는 주택 개발 이권을 챙기기 위해 법조인에게 한 사람당 50억원을 뿌렸고 이로 인해 ‘50억 클럽’ 사건이 터졌지요. 검사, 판사, 변호사, 법조기자에게는 법조에서 공정과 상식이 통하지 않아 억울한 사람이 많을수록 시장의 파이는 커지는 역설이 있습니다. 요즘은 혐의가 짙은 피의자도 꼿꼿하고 당당하게 법원에 출두하고, 정치인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검사와 판사가 있다면 탄핵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공정과 억울을 함께 가진 법조 카르텔의 두 얼굴을 말하는 것이지요.”
 
 
  검사보다 말리는 시누이 같은 판사가 더 밉다고 한다
 
수감자들은 때리는 검사보다 말리는 시누이 같은 판사가 더 밉다고 한다. 자료=조선DB
  수감자들은 때리는 검사보다 말리는 시누이 같은 판사가 더 밉다고 한다. 검사들이 함부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기소하더라도 판사들이 헌법이 보장하는 무죄 추정 원칙과 피고인의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면 삼라만상을 다스리는 창의적인 조물주가 존재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다닌 고교 후배인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에서 의료 선교를 하다가 선종하였는데 그의 고귀한 삶을 기리기 위해 고교 동문들이 동상을 세우게 되었다. 나도 300만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했는데, 기업을 경영하는 어떤 동창이 대납한 일이 있었다. 그 동창이 과거 내가 일하고 있던 K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을 때 담보 비율을 통상 70%인데 80%(실무적으로 처리된 일이라 나도 몰랐던 일)를 적용한 것을 이유로 사후 뇌물수수로 기소하였는데 창의적인 검사보다 그것을 뇌물로 인정한 판사의 식견이 더 미웠다.
 
  나에게 창의적이었던 검사들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창의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을까? 검사를 조물주라고 부른 그 대법원장은 판사일 때 법과 원칙에 따라 재판했을까? 우리나라같이 사실상 제한 없이 금융 거래를 추적하고, 구속 수사를 통해 피고인의 방어권이 사실상 봉쇄되고, 우리나라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한다면, 미국에서는 얼마나 많은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와 대기업 회장이 감옥에 갈까? 전처를 살해한 심증이 확실한 데도 불구속 재판을 받고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은 미식축구 선수 OJ 심슨이 한국에서 재판받았다면 무죄가 되었을까? 억지로 억울을 만드는 검사, 그 억울을 죄로 만드는 판사, 그 억울을 미끼로 큰돈을 버는 변호사, 그 억울을 온 세상에 퍼 나르는 기자 그들은 지은 업을 저승에서 어떻게 감당하려는지…창의적인 법을 적용하는 검사와 판사를 처벌하는 세상은 올 수 없을까? 로마같이 열 명의 도둑을 놓쳐도 한 명의 억울한 시민을 잡지 않는 정의를 볼 수 없을까? ‘창의적인’ 법률 적용으로 ‘삼라만상’을 다스리는 ‘조물주’ 같은 저들 아래 살아야 하는 우리 국민이 박복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20분이 넘었다. 우리는 평소보다 길게 이야기할 수 있게 허락한 주임에게 특별히 감사하다고 말을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덟째 날 최후진술서 마무리에 매달렸다. 어제 옆방 검사장에게 배운 것들이 나의 주장을 펴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징역을 결정하는 판사에게 제출하는 문서이니 글씨는 정성을 들여 써야 했다. 한 부는 재판부에 제출하고, 한 부는 변호사에게 주고, 또 한 부는 내가 보관해야 하므로 3부를 작성해야 했다. 워드프로세서를 못 쓰니 구치소에서 파는 변론 용지 3장 사이에 먹지 2장을 넣고 볼펜으로 눌러썼는데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다.
 
  최후진술서를 쓰다가 팔이 아파 그만두고 명상을 했다. 명상에서 깨어나 찬송가를 부르며 흐느적거리는 내 영혼을 위로했다. 나중에는 일어서 팔다리와 몸을 흔드는 막춤을 추었다. 아무렇게나 추는 춤이라도 명상이나 노래보다 원초적 본능에 더 평화를 주었다. 해가 수리산을 넘었다. 또 하루가 흘러갔다.
 
  지난 원심에서 밤잠을 설치며 애통한 마음으로 작성한 최후진술서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때 소송 실무를 맡았던 젊은 변호사는 전면 무죄를 믿었고, 아니더라도 집행유예는 될 것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돈을 받은 것도 없고 득을 본 것도 없고 보통 사람으로 보통의 일상을 산 것이 죄가 되면 얼마나 되겠느냐고 생각했다. 그는 선고가 있기 전날 내 아내에게 내일 저녁 식사를 준비하라고까지 말했지만, 예상과 달리 4년 징역의 선고를 받았다.
 
  판사나 검사의 경력이 없는 그 젊은 변호사는 선고 며칠 뒤 접견을 와서 내 손을 잡고 울었다. 그는 전면 무죄가 될 수 있었으나 과거 검찰총장이 직접 지휘하여 수사하고 기소한 사건을 지방법원에서 전면 무죄 판결을 내린 전례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D 조선 관련 본건 4개는 무죄로 하고, 별건 8개 중 은행 대출 관련 배임 등을 유죄로 하여 징역 4년을 선고한 것은 항소심에 가서 통상의 관례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을 받으면 집행유예로 나간다는 뜻도 있다고 해석했다. 차라리 1차 구속영장 청구로 구속되었더라면 먼지떨이 수사를 당하지도 않고, 별건 8개 혐의는 추가되지 않을 수 있었고, 그랬더라면 집행유예는 확실했을 것이라 말하며 나를 위로했다.
 
 
  최고의 재밋거리
 
  연휴 아홉째 날 일요일! 시간은 조금씩 빨리 갔고 적막에도 익숙해졌다.
 
  사소가 아침 식사를 배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성이 울려 퍼졌다.
 
  “왜 깍두기 이렇게 조금 줘?”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 줘야 해서 그래요.”
 
  “그래도 너무하잖아. 좀 더 줘.”
 
  “어쩔 수 없어요. 안 돼요.”
 
  “뭐야 이 새끼!”
 
  그러고는 깍두기 그릇을 복도에 내동댕이치는 소리가 따당탕탕 하고 울렸다.
 
  “왜 새끼라고 해요.”
 
  그러자 교도관이 뛰어왔다.
 
  “뭐야 왜 그래?”
 
  교도관이 오자 조용해졌다. 교도관이 깍두기를 조금 더 주게 했다. 공평하게 배식하도록 항상 교도관이 감독하는데 오늘은 교도관이 없는 사이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아무것도 못 하는 교도소에서 말싸움이라도 일어나면 수용자들에게는 최고의 재밋거리가 된다. 모처럼의 재밋거리가 교도관 때문에 짧게 끝나 아쉬웠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혼자 주일예배를 드리고 명상과 독서로 하루를 보냈다.
 
  연휴 마지막 날은 한글날이었는데 햇살은 화사했고 하늘은 높았다.
 
  오후에 TV에서 옛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방영했다. 내가 대학생 때 보았던 영화였다. 사랑하는 여자를 탈출시키고 총을 쏘며 적진에 홀로 남아 최후를 맞는 게리 쿠퍼의 장렬한 모습은 가장 오래 남은 감동이었는데 또 보았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그때부터 최고로 좋아하는 배우였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릴까? 오늘은 나를 위해 울리지만, 내일은 너를 위해서도 울릴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세상의 모두를 위해!
 
  10일 연휴 내내 하늘은 높았고 햇빛은 찬란했고 달은 교교했다. 가난한 영혼은 죽음이 이웃한 컴컴한 계곡에서 쉬지 않고 기도하며 참았고, 곤고한 육신은 작은 공간에서 부지런히 허우적거리며 견디었다. 육신이 곤고할수록 영혼은 더 분주하게 움직였고 영혼이 분주할수록 육신은 더 깊이 가라앉았다.
 
  사람은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히면 체념을 배우고 체념은 새로운 차원의 평화를 준다. 빼앗기지 않으려 애쓸 때는 불안에 시달리고 결국 빼앗기면 그만큼의 빈 공간이 생긴다. 모든 것이 중지되고 금단의 벽에 갇힌 체념의 육신과 영혼에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무한의 허무와 영원의 소망이 채워졌다. 그리고 때 없이 흐르는 눈물!
 

  ‘어이타 녹수는 청산에 홀로 우는가!’
 
  그래도 허무와 소망과 눈물의 240시간은 그들이 정한 대로 그렇게 흘러갔고 끝이 났다. 접견 한 번과 사소들의 비빔밥 조금과 송편 두 개 그리고 모포 털이는 상큼한 청량제였다.
 
  10일 연휴가 끝난 다음 날도 여명은 청계산을 넘어 눈부시게 밝아왔다.
 
  연휴 다음 주에 애통의 절규를 담은, 볼펜으로 눌러쓴 〈최후진술서〉를 변호사를 통하여 재판부에 제출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판사님.
 
  의로운 재판관은 정의롭지 않게 매를 맞은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고 한을 풀어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피고인은 일제 시대 끝자락에 태어나 전쟁의 폐허 속에서 어린 시절 산골에서 자랐고 도시로 유학 와서 고교와 대학을 다녔습니다.
 
  한일회담을 반대하고 유신체제에 도전하는 데모를 하고, 그 데모를 막는 최루탄 속에서 대학을 마치고는, 아프리카보다 가난했던 조국을 잘사는 나라로 만드는 대열에 참여하여 평생을 살았습니다.
 
  우리 경제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풍전등화같이 위험할 때 온몸 부딪쳐 싸웠습니다.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자가 되는 위기였습니다.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한 엄혹한 위기였습니다.
 
  우리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회로 삼아 선진국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 플러스 성장을 했고, 수출은 위기 전 세계 12위에서 위기 후 7위로 5단계를 뛰었으며, 국가 신용등급은 유사 이래 처음 일본을 추월했습니다. 해외 언론은 우리의 위기 대응 정책을 “교과서적 사례”라 했고, 우리의 노력에 대해 “서울 관료들에게 경의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피고인은 공직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청조근정훈장을 받았습니다.
 
 
  재판도 하기 전에 두 차례나 포토 라인에 세워
 
  공직에서 은퇴한 후 조용히 살다가, 4대강 정비 사업에 참여한 건설회사의 비자금과 정치자금에 관한 자금 추적 조사에서부터 시작하여,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국책과제 선정 과정과 K 은행에서 다룬 대출 등 지난 정부 5년간에 행한 모든 일과 퇴직 후 있었던 골프와 해외여행까지 글자 그대로 먼지 털기 식의 검찰 수사를 받고 두 번에 걸친 구속영장 청구 끝에 배임과 직권남용 등 12개의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습니다.
 
  밤낮도 없이 주말도 없이 일하며 아파트 한 채에 눌러앉아 평생을 일했습니다. 돈을 받은 것도 없고, 득을 본 것도 없으며, 감옥을 각오하고 범죄를 저지를 만한 동기도 없습니다. 혐의들은 모두 중요한 일이 아니거나 너무 작은 일이라 기억에 없거나 잘 모르는 일들이었습니다. 지금 법정에 서고 보니 땅 한 평, 주식 한 장, 회원권 한 개 없이 살아온 한평생이 허무합니다.
 
  국가 권력이 개인을 표적으로 삼아, 구속 사유가 나올 때까지 압수수색을 하고, 구속될 때까지 동료와 친구와 친지와 종친을 무한정 불러 조사하는 경우가 어느 문명국가에 있을까요? 재판도 하기 전에 두 차례나 포토 라인에 세워 사진을 찍히게 하여 인격 살인을 하는 검찰이 어느 선진국에 있을까요? 수첩을 압수하여 기록된 행적과 사람들을 모조리 조사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닐까요? 피의자와 관련된 친지들까지 금융 거래를 광범위하게 추적 조사하는 것은 금융실명거래법의 취지를 위반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떤 사건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행적과 금융 거래를 샅샅이 조사하는 것이 문명국 검찰의 수사라 할 수 있을까요?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검찰은 누가 어떻게 처벌해야 할까요? 12개의 혐의가 있다는 것은 한 개도 확실한 혐의가 없다는 게 아닐까요? 조선인을 압제하던 일제 식민 통치와 반대자를 제압하던 권위주의 통치의 슬픈 유산을 보는 것 같아 한없는 슬픔을 느꼈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검찰은…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판사님.
 
  배임과 직권남용 등 12개 혐의에 대해 법정에서 모두 다투었지만 여기서 다시 하고 싶은 말만 간단히 드리겠습니다.
 
  먼저 D 조선의 경영 부실과 관련된 본건 4개 혐의는 원심에서 모두 무죄가 되었는데도 검찰이 항소하였기 때문에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피고인은 K 금융그룹 회장 겸 K 은행 은행장으로 근무할 때, 해조류에서 휘발유를 추출하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영위하는 B 벤처 기업의 대표를 K 은행이 채권은행으로 관리하던 D 조선 N 사장에게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B 벤처 기업의 대표는 피고인이 정부에서 일할 때 출입 기자였던 사람이며, 해조류에서 휘발유를 추출하는 기술은 원유가격이 배럴당 100달러가 넘을 때 정부 지원 자금으로 정부연구소에서 개발한 것이었고, D 조선은 당시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투자 대상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신재생에너지 벤처사업에 50억원을 투자하게 되었고, 이후 원유가격이 배럴당 50달러 이하로 하락함으로써 사업이 중단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이 시기에 D 조선 사장의 방만 경영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되어 국회의 요청에 따라 경영 컨설팅을 하였고 이를 통해 경영 부실을 발견하여 D 조선 사장을 다음 주주총회에서 해임 조치를 하였습니다. 검찰은 이것을 B 벤처 기업에 대한 50억원 투자를 압박하기 위해 경영감사를 하였고 이를 통해 발견한 사장의 비리를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고 연결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장을 배임과 횡령으로 수사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이 부당하게 투자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진술하게 함으로써 배임으로 기소된 것입니다.
 
  둘째, 피고인은 지난 국회의원 총선거 때 법률의 범위 안에서 여야 국회의원 7명에게 각각 300만원의 후원금을 주도록 새로 선임된 D 조선의 후임 사장에게 권유한 바가 있습니다. 당시 국회에서 항상 D 조선의 경영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다른 금융그룹도 관행적으로 후원금을 납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고인도 D 조선과 업무 관계가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을 지원하도록 한 것이며,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검찰은 피고인이 후임 사장에게 사장 선임의 대가로 2100만원 상당을 뇌물로 받아 후원금으로 지급한 것과 같다고 보고 뇌물죄로 기소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D 조선과 관계없이 추가로 수사한 별건 8개의 혐의 중 원심에서 유죄 판결이 난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피고인은 국회의원의 부탁으로 그의 지역구 기업인 W 산업의 K 은행 470억원 대출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습니다. 감정가격이 520억원인 공장부지를 담보로 잡고 부행장이 위원장인 대출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출이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3년 후 W 기업이 부도가 나고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검찰은 대출 당시 공장부지의 청산 가치(가격이 아닌 회사 청산 때의 추상적 평가액)가 270억원이었다는 이유로 은행에 200억원의 손실을 발생시켰다고 기소하였고 원심에서 유죄가 되었습니다. 피고인은 그 대출을 직접 결정하지 않았고, 그 국회의원과 지연도 학연도 없으며 그때 처음 만난 사람이었고, 대출 당시 감정가격이 대출금액을 상회하였으므로 배임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연도 학연도 없으며 그때 처음 만난…
 
재판에서 검사는 창의적인 법률 적용으로 삼라만상을 다스리는 조물주 같다. 자료=조선DB
  둘째, 피고인이 고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기업에 대한 K 은행의 대출을 챙겨본 일이 있습니다. 친구의 기업은 피고인이 K 은행으로 가기 전부터 거래하고 있었고, 요즘은 과거와 달리 은행 자금이 남아돌아 우량기업이나 담보대출의 경우는 금리를 입찰할 정도로 대출 경쟁을 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고객지원 차원에서 챙겨본 것이며 또한 선박을 담보로 잡았고 연체도 없었습니다.
 
  피고인은 K 은행에서 물러난 후 그 회사의 고문이 되었는데, 이때 고문료 대신 회사로부터 신용카드를 받아 사용하였고, 회사 골프 회원권으로 회원 대우를 받았고, 해외사업 때문에 그 친구와 함께 3번 해외로 출장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선교, 의료, 교육 활동에 헌신하다가 선종한 피고인의 고교 후배 이태석 신부의 동상 건립을 추진하면서 약속한 300만원의 기부금을 당시 동창회장이었던 그 친구가 나의 부탁 없이 대납한 적이 있습니다. 검찰은 K 은행의 선박 대출을 할 때 담보 비율을 통상 적용하는 선박 가액의 70%보다 높은 80%를 적용하여 특혜를 주고, 퇴직 후 3년간 회사 카드 사용, 골프 회원권 이용, 해외지사 방문, 기부금 대납 등으로 총 3000만원 상당의 사후 뇌물을 받았다고 기소하였고 법원은 유죄로 판결하였습니다.
 
  끝으로 피고인은 고향의 종친회장을 맡고 있는데, 고향에서 토건업을 하는 부회장이 종친회 기부금을 매년 50만원씩 6년에 걸쳐 300만원을 내 이름으로 납부하고, 피고인의 고향 생가 담장이 비로 무너진 것을 피고인 부탁 없이 수리하고 70만원을 지급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을 그 부회장이 그 지방에 있는 D 조선 계열 건설회사의 하도급 공사를 한 것과 연결해 370만원의 뇌물로 걸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법은 보통 사람들의 보통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요? 보통 시민의 생각과 너무 거리가 먼 검사들의 법 해석과 적용은 식민지와 권위주의 시대의 청산되어야 할 유산이 아닌가요?
 
  검찰이 두 번에 걸쳐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혐의가 12개나 된다는 것은 한 개도 확실하게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하는 게 아닌가요? 6개월여에 걸쳐 30여 곳을 수색하고 300여 사람을 수사한 것은 하명에 의한 표적 수사를 증거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를 기소한 것이 너무 과도하고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살인죄가 5년 이상의 징역인데 검찰은 7년을 구형하였으니 저의 죄가 살인한 것보다 더 나쁘다는 것입니까? 피고인의 사건과 관련된 기업인과 국회의원과 친구와 종친은 모두 집행유예나 불기소처분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피고인에게 적용된 혐의의 핵심인 배임죄는 문명국에는 없는 범죄이며 우리 국회에 이미 폐지 법률안이 제출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피고인이 가난한 조국을 잘사는 나라로 만드는 대열에서 평생 일했던 대가가 살인죄보다 더 무거운 감옥살이가 되었습니다.
 
  땅을 밟고 하늘을 보는 것을 감사하며 감옥살이한 지 1년이 흘렀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는, 진실로 정의로운 판결을 기도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꿇어 엎드려 진술 올립니다.〉
 
 
  간절한 최후진술에도 불구하고 원심에서 무죄가 된 D 조선의 배임까지 유죄가 되어 5년 징역에 벌금 5000만원과 추징금 7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나의 최후진술은 오히려 반성 없는 변명으로 받아들여지고 말았다. 그 재판장은 항소심에서 형이 경감되는 통례와 달리 고위층 사건에 대해서는 형을 높이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그 판사를 만난 것 또한 불운이었다.
 
  나는 대법원에 상고하였는데 담당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재판장을 잘못 만나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서 대법원에서는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만약 파기환송되지 않고 기각된다면 대법원 청사를 폭파하겠다고까지 장담하였다. 결과는 변호사의 예상과 달리 기각되었고 폭파도 없었다.
 
  한평생 못사는 조국을 잘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주말도 밤낮도 없이 일하며 돈을 챙긴 것도 득 본 것도 없는데 그들은 인격과 돈과 자유를 다 가져갔다. 검사와 판사는 5년의 자유와 함께 벌금과 추징금으로 1억2000만원을 뺏어갔고, 대검 부장 출신 변호사는 영장 심사 단판에 1억원을 챙겼고, 고법 부장 판사 출신 변호사는 지법과 고법 재판 두 판에 두 번만 직접 출석하고 3억원을 챙겼고,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최종심에 서류 한 번 제출하고 1억원을 챙겨갔고, 법조기자는 수없는 판에 걸쳐 부정확한 보도로 인격을 살해했다. 경제는 선진국이 되었고, 한류는 세계를 열광케 하는데, 법조는 억울이 클수록 시장이 커지는 문명 이전의 카르텔을 강고하게 지키고 있었다.
 
  이승에서 지은 죄를 저승에서 어찌하려는지 저들이 차라리 측은하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그래도 살던 아파트와 타던 자동차는 남긴 것에 감사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더라면 그나마 돈이라도 조금 아꼈을 텐데.
 
 
  ‘대박이 터진 배임죄’
 
  상고가 기각되고 서울남부교도소로 이감되어 징역을 3년째 살던 중 W 산업은 법정관리를 거쳐 다른 기업에 1400억원에 매각되었고, 별도로 470억원에 담보된 공장부지는 528억원에 매각되어, K 은행은 전체 대출금 1100억원을 모두 회수하고도 828억원을 남겨 ‘대박이 터졌다’라는 신문 보도를 감옥에서 보았다.
 
  징역 5년의 두 핵심 배임죄 중 D 조선의 배임은 무죄와 유죄를 오갔고 W 산업의 배임은 손실은커녕 대박이 터졌다. 나는 ‘대박이 터진 배임죄’에 대해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는데 그들은 판결을 미루며 2년이 지나 기각시켰다. 배임 행위를 할 때 손실 발생 가능성이 있으면 범죄는 기수가 된다는 판례가 근거였다.
 
  그렇게 4년 8개월 감옥살이를 하고 출옥하였다.
 
  노을이 팔당대교에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의 사각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열심히 살고도 왜 그렇게 되었을까? 돈 챙긴 것도 득 본 것도 없고 양심에 걸리는 것도 없었는데. 그런데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4년 넘게?
 
  누구나 열심히 살고도 당할 수 있음에도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슬픈 유산이 토속화시킨 ‘조물주’의 가혹에 대한 무관심! ‘비가 올 때까지’ 지내는 기우제의 제물로 잡혀가는 형제를 보고 환호하는 비정! 한 명의 도둑을 잡으려고 열 명의 시민을 잡는 반문명에 민중은 침묵하고 있다.
 
  법의 정의는 무엇일까? 복수할 수 없을까? 배상받을 수 없을까? 구속 수사 앞에 무력화된 방어권은 언제 살아날까? 재판도 하기 전에 인격부터 살인하는 검언유착은 누가 깰 수 있을까?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면 ‘조물주’의 힘을 뺄 수 있을까? 상식이 통하지 않고 억울함이 클수록 시장은 커지는 비정의 카르텔을 누가 깰 수 없을까? ‘조물주’에게 나처럼 그렇게 잡혀갈 내일의 시민을 생각하니 국민은 박복하다.
 
  강변을 그와 함께 걸었다. 체념의 대못으로 차가운 바닥에 못 박혔던 그곳에서 그만이 친구였다. 아흔아홉 양을 두고 길 잃은 나를 찾은 친구!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 그가, 지금까지 내가 잘된 것은 모두 내가 잘한 것으로 여긴 것이 교만이라고 했다. 그 교만의 대가가 이것이라고!
 
  그리고 말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예, 그렇습니다!
 
  노을이 한강에 깔리고 강물은 유유했다.
 
  내 삶의 최고 상급이었던 청조근정훈장을 한강에 던졌다.
 
  어둠이 내리는 잔잔한 윤슬 속으로 풍덩 사라졌다.
 
  일제와 전제가 남긴 슬픈 유산은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이렇게 끝났다.
 
  아! 사랑했던 나의 조국이여!
 
  2022년 겨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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