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권의 책

동유럽사(1·2·3) (존 코넬리 지음 | 허승철 옮김 | 책과함께 펴냄)

동유럽의 여러 민족은 어떻게 발명되었나?

  •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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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동유럽 등과 관련된 좋은 책들을 많이 번역해온 허승철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전 주우크라이나 대사)가 묵직한 역사서를 번역해 냈다. 존 코넬리 미 버클리대 유럽사 교수의 《동유럽사》다. 세 권 모두 합쳐서 1412쪽에 달하는 거작이다.
 
  이 책은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같은 동유럽 여러 나라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 19세기 초만 해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만튀르크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동유럽 여러 민족이 언어와 전통과 문화, 역사를 자각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라는 정치체(政治體)를 만들어온 과정을 다룬다.
 
  제국의 지방민으로 살아가던 동유럽 여러 민족이 자신들의 정체성(正體性)을 찾아가는 첫걸음을 내딛게 만든 이는 자국의 언어를 연구하기 시작한 일단의 선각자들이었다. 독일의 사상가 헤르더의 세례를 받은 이들은 사라져 가던 토착어를 되살리고 더 나아가 ‘민족’을 발명해냈다. 이 민족들은 1878년 베를린회의, 제1차 세계대전, 그리고 최근의 냉전체제 붕괴를 거치면서 15개가 넘는 독립국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된 사라예보 암살 사건, 1990년대 초의 구(舊)유고슬라비아 내전 등과 같은 피비린내 나는 비극들이 벌어졌고, 오늘날 널리 쓰이는 제노사이드(genocide), 즉 인종학살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제국과 소비에트연방의 지배 때문에 ‘민족의 발명’ 과정에서 지각했던 우크라이나인들이 뒤늦게 민족국가 건설에 나서면서 벌어진 사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제 식민 지배와 분단을 거치면서 여전히 ‘민족’이라는 단어에 예민한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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