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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와 앨범

김정수의 〈Memories#27〉,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2번

錯視와 ‘정서적 허기’, 감성 가득한 늦여름 難曲의 초대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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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외 사진영상과 교수·학생의 사진전… 하이퍼 매개를 통해 가짜 현실과 ‘샹들리에’
⊙ 피아니스트 브람스가 만든 4악장 피아노교향곡이 ‘피아노협주곡 2번’
일본 규슈산업대 모모세 도시야 교수의 〈아이노시마(藍島)〉.
  한국사진교육학회가 주관한 세계 주요 대학 사진영상과 교수·학생의 초청 전시회가 열렸다. 많은 작품이 출품된 만큼 인천 신포동 주변 갤러리 20곳에서 동시에 전시되었다.
 
  일본 규슈산업대 모모세 도시야 교수의 작품 〈아이노시마(藍島)〉를 마주했다.
 
  이 섬은 일본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에서 북쪽으로 4.2km 떨어져 있다. ‘고양이의 천국’으로 세계 5대 고양이 서식지다.
 
  사각형 공간. 컨테이너 박스. 그 속엔 무엇이, 누가 있을까. 짙은 붉은색 페인트. 합판으로 된 나무문(門). 낡은 문으로 말미암아 그곳에 사람이 살 것 같다. 고양이 두 마리가 보인다. 집고양이일까, 길고양이일까.
 
  애초에 길(들)고양이는 인간에게 아무짝에 쓸모가 없었다. 고양이는 소처럼 노동도, 개처럼 사냥도 할(도울) 수 없었다. 고기나 젖도, 알도 낳을 수 없었다. 인간이 그런 고양이를 길들인 이유는 하나였다. 곡식 창고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쌀이나 열매를 들쥐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고양이를 키웠다.
 
  붉은색 낡은 컨테이너를 지키고 있는 고양이. 그 고양이가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대구예술대 김정수 교수의 〈Memories#27〉.
  대구예술대 김정수 교수의 〈Memories #27〉은 흑백사진 두 장을 병치시켰다. 왼쪽은 야구(연습)장, 오른쪽은 활주로 사진이다.
 
  야구장의 그물은 억압적 장치를 연상케 한다. 지시와 금지라는 명령 체계와 함께 ‘할 수 있다’와 ‘해야 한다’는 조동사(助動詞)를 강제한다. 꿈의 실현은 장외 홈런처럼 저 그물망을 넘어야 가능하다. 흰구름이 가득한 하늘만큼이나 꿈이 멀어 보인다.
 
  오른쪽 사진에 경비행기 두 대(한 대는 헬리콥터 같기도 하다)가 있다. 한 대는 막 착륙했고, 다른 한 대는 막 이륙했다. 그러나 거꾸로 말해도 뜻이 통한다. 한 대는 막 이륙하려 하고, 다른 한 대는 막 착륙하려 한다. 착시(錯視)다.
 
  무엇이 진짜일까. 안과 밖, 적과 동지, 내부와 외부, 긍정과 부정, 동질과 이질 등의 도식은 어쩌면 착시일지 모른다. 이착륙의 경계가 모호한 하늘 위로 뭉게구름이 피어난다.
 
  왼쪽 사진을 보고 오른쪽 사진을 보고, 다시 오른쪽 사진을 보고 왼쪽 사진을 보았다. 비행체가 날지 못하고 야구장 그물에 걸릴 것 같다. 답답하다. 무기력증 시대의 한국인이 겪고 있는 ‘정서적 허기’처럼 느껴진다면 오독일까.
 
 
  파괴자가 되지 못하면 사냥꾼의 최후
 
웨스트민스터대 데이비드 베이트 교수의 〈독일 집(House in Germany)〉.
  영국 웨스트민스터대학 데이비드 베이트(David Bate) 교수의 사진 〈독일 집(House in Germany)〉은 그저 평범한 이미지일지 모른다. 하지만 뒤끝이 있다. 현대사회는 디지털 테크놀로지 사회다. 현장에 없어도, 그 순간을 낱낱이 지켜보는 비대면 온라인 장치가 의식·무의식을 지배한다. AI(인공지능)·VR(가상현실)·AR(증강현실)·빅데이터 등 IT(정보통신기술)의 다양한 결합, 즉 하이퍼 매개를 통해 가짜 현실을 진짜처럼 느낀다.
 
  그러나 연결 속도가 너무 빨라 의식이, 혹은 주변 환경이 변화 속도에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난다. 이를 ‘과잉연결 상태’라고 부른다. 가짜 세계에 빠져 진짜를 혼동하는 경우다.
 
  〈독일 집〉은 정적(靜的)이다. 커튼 사이로 샹들리에가 보인다. 진짜 샹들리에가 아니라 그림이다. 게다가 그림이 일그러져 있다. 뭔가 부자연스럽다. 진짜 샹들리에라면 안락한 느낌을 주는 베이지색 커튼과 멋진 조화를 이뤘을지 모른다. 이 사진은 베를리오즈(Louis Hector Berlioz)가 말한 것처럼, 이데픽스(Idee Fix·고정악상·고정관념)를 깨뜨리는 작품이 아닐까. 〈독일 집〉은 과잉연결 시대에 사는 인간을, 우리를 풍자하고 있다.
 
이란 응용과학기술대 파르자네(Fatemeh Sharifi Farzaneh) 교수의 〈정지(Suspension)〉.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위치한 공립대학인 응용과학기술대 파르자네(Fatemeh Sharifi Farzaneh) 교수의 〈정지(停止·Suspension)〉는 섬뜩하다.
 
  수십 층이 넘는 두 건물(아파트일까) 사이로 누군가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다. 가만히 보면 하늘로 치솟은 두 다리는 동상이다. 전체적으로 동상의 형태를 짐작하기 어렵다. 두 다리가 보이고, 한 손엔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다.
 
  건물 색깔은 잿빛(흑백사진 같기도 하다), 비정한 회색도시의 빛깔로 안성맞춤이다. 근대(近代)의 인간은 정원사처럼 도시를 계획하고 디자인해왔다. 마치 작은 신(神)처럼 자연을 마음껏 파괴했다. 그런 파괴자가 되지 못하면 사냥꾼 대열에서 기꺼이 추방돼야 했다. 사냥꾼의 사회에서는 아무도 남을 돌보지 않는다.(주창윤 《허기사회》 중에서)
 
  〈정지〉에서 추락하는 인간은 지금도 도시를 지배하는 사냥꾼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함부르크 출신 브람스의 아주 특별한 이탈리아 여행
 
요하네스 브람스.
  덥수룩한 수염 신사 브람스(Johannes Brahms·1833~1897)는 평생 두 개의 피아노협주곡을 남겼다. 두 작품의 간극(間隙)은 22년. 그 후론 피아노와 관현악의 앙상블을 작곡하지 않았다. 작곡가 이전에 뛰어난 피아니스트던 그는 이 두 곡에 피아노의 혼을 담았다.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2번은 ‘피아노가 있는 교향곡’이라 부른다. 보통 피아노협주곡은 3악장이다.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가 그렇고,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이 그렇다.
 
  하지만 브람스는 교향곡처럼 4악장으로 만들어버렸다. 2번 피아노협주곡에 얼마나 애착이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보통 피아노협주곡은 피아노와 관현악이 서로 싸우듯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다 독주(獨奏)의 카덴차(cadenza)로 한쪽에 힘을 실어버린다. 카덴차는 각 악장 끝 부분에 관현악을 멈추게 하고 혼자 화려한 기교를 독주 악기로 표현해 과시하는 부분을 말한다.
 
  그러나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은 피아노의 화려한 기교를 느끼게 하되 독주의 카덴차를 넣지 않았다. 피아노와 관현악을 대등하게 취급해 교향악적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
 
빌헬름 바크하우스(Wilhelm Backhaus)가 녹음한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2번》 앨범.
  그래서 브람스의 중후한 스케일이 묻어난다. 원로 피아니스트 안희숙(연세대 명예교수)은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2번은 화려함보다 무게감이 더 느껴지는 곡이다. 테크닉도 만만치 않다. 철학적이라고 해야 할까”라고 말했다.
 
  ‘중후함’ ‘원숙미’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마치 테너, 바리톤, 베이스 등으로 다양하게 녹음된 슈베르트 연가곡 〈겨울 나그네〉 중에서 테너바리톤으로 ‘보리수’를 듣는 사색의 느낌이랄까. 이 곡을 완성할 당시 브람스는 마흔여덟 살이었다.
 
  브람스는 1878년 4월 친구인 빌로트(Theodor Billroth)와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눈으로 덮인 알프스를 넘어 거대한 이탈리아의 풍광과 자연을 접한 그는 깊은 충격과 매혹을 느꼈다. 첫 만남, 첫인상, 첫 경험이 평생의 만남과 인상, 경험을 좌우하기 마련이다.
 
  이탈리아의 첫 느낌을 담은 피아노협주곡 2번은 브람스가 살아온 북유럽풍의 중후함(우중충함과 다른), 고집스러움과 함께 이탈리아의 이국적 낭만이 짙게 배어 있다. 브람스 전기(傳記)를 쓴 가일링거는 이탈리아 여행 당시를 이렇게 묘사했다.
 
  ‘이 기간만큼 자유롭게 마음대로 시간의 기쁨 속에 몸을 내맡긴 적은 일찍이 그의 운명에는 없었다.’
 
 
  難曲, 이탈리아, 피에타…
 
거장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가 남긴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2번》.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1번(1858년 발표)은 무겁고 어렵고 때로 음울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피아노협주곡 2번(1881년 부다페스트에서 초연)은 밝은 색채감으로 가득하다.
 
  1악장은 혼과 피아노가 대화하듯 화음을 주고받는다. 경쟁이나 비타협의 ‘협화음’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공유하는 ‘불협화음’이다. 그러나 피아노협주곡답게 엄청난 음량과 스케일을 1악장부터 과시하듯 드러낸다.
 
  2악장의 피아노 연주는 아름답고 서정성이 짙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한 몸이 되기 위해 질주하는 힘이 느껴진다.
 
  3악장은 미지의 세계 혹은 브람스가 꿈꾸는 관조(觀照)의 세계가 느껴진다. 느린 첼로가 마음의 음계를 두드리면 바이올린이 등장하고 이어 오보에와 첼로가 부드럽게 응수한다. 그 틈으로 피아노가 느리게 속삭이듯 건반을 매만진다. 이 3악장의 아름다운 선율에서 남부 이탈리아의 풍광이 느껴진다. 이어지는 첼로 독주. 피아노협주곡에 첼로 독주는 매우 낯설다. (사실 브람스는 피아노협주곡처럼 두 곡의 첼로 소나타를 작곡했다. 모두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만큼 무대에서 자주 연주된다.)
 
  첼로와 피아노의 조화는 미풍처럼 부드럽고 낭만적이다. 눈 감고 듣노라면 이탈리아의 전원이 그려진다. 가톨릭 수도원의 아침 성무일도, 옛 로마의 무너진 다리, 초저녁 포도원의 목책, 피에타 조각상 등을 떠올려본다.
 
  4악장은 시작부터 피아노의 섬세함과 우아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다가 관현악이 흘러나오고 다시 피아노가 받아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3악장과 4악장에서 피아노의 높은 기교를 엿볼 수 있는데 치밀하고 정교한 멜로디를 담고 있다.
 
  피아노협주곡 2번은 난곡(難曲)으로 알려져 있다. 혹자는 리스트나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보다 더 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비교적 많은 음반이 만들어졌다. 거장 피아니스트들의 다양한 디스코그래피(discography) 중에서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2번은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다. ‘넘지 못할 산’을 넘었다는 징표로 삼으려는 것일까.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에밀 길렐스(Emil Gilels), 빌헬름 바크하우스(Wilhelm Backhaus), 한스 리히터하저(Hans Richter-Haaser),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Vladimir Horowitz), 크리스티안 지메르만(Krystian Zimerman) 같은 장인(匠人)들이 ‘피아노의 교향곡’을 음반으로 내놨다. 늦여름 누구를 통해 브람스의 진면목을 느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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