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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경의 컬처토크 〈33〉 응답하라 1988

‘응팔’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

글 : 임도경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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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똘똘 뭉친 가족, 살가운 이웃이 함께하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
⊙ 잘났든 못났든 집안의 중심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추억

임도경
⊙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이 드라마가 나에게 준 감동은 아마 10대들이 열광하는 포인트와는 다를 것이다. 바로 폭넓은 세대의 흥미를 다 담아놓은 스토리 구성에 있지 않을까 한다.
  TV에서 연속극을 찾아본 지 꽤 오래됐다. 나이 들수록 영화같이 한 번에 끝내는 이야기가 좋지 시간 맞춰 보기를 한동안 이어가야 하는 연속극 시청은 부담스러웠다. 막장 드라마 전성시대 속에서 사실 음모와 배신이 딱 질색인 나의 단순한 취향을 맞출 스토리도 별로 없었다.
 
  그러던 중 온갖 매체에 하도 tvN의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은근슬쩍 나도 뒤늦게 몰아보기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결론적으로 이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 콧물 좀 쏟았다.
 
  이 드라마가 나에게 준 감동은 아마 10대들이 열광하는 포인트와는 다를 것이다. 난 이 드라마의 주제인 주인공 덕선의 남편 찾기에는 그다지 관심이 많이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나 같은 사람까지 끌어들이며 케이블 TV 드라마 사상 최초로 20%의 시청률을 넘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건, 바로 폭넓은 세대의 흥미를 다 담아놓은 스토리 구성에 있지 않을까 한다.
 
  친구의 딸인 중2 학생은 드라마에서 ‘상남자’ 정환으로 나오는 탤런트 류준열 앓이에 빠졌다. 드라마의 여세를 몰아 만들어진 ‘응팔 콘서트’와 그 친구의 팬 미팅 표를 못 구했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단다. 특히 4월에 예정된 류준열 팬 미팅 표는 폭발적인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2분 만에 1500장 표가 매진됐다니 아주 치밀한 사전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손에 쥐기 힘들었을 것이다. 내년에 환갑인 친구 남편은 지금까지도 늦둥이 막내의 성화에 못 이겨 웃돈을 주고라도 구할 수 있는 표를 찾느라 고심하고 있다.
 
  이런 인기 덕분에 여기에 등장한 주연급 청춘들과 주요 출연진은 요즘 모두 고액의 개런티를 받고 CF를 찍는 귀한 몸이 됐다. 별 관심을 받지 못하던 조역들이 똘똘 뭉쳐 만들어낸 드라마에서 하루아침에 얼마나 많은 신데렐라가 등장했는지 모른다. 그다지 멋있거나 예쁘지 않은 평범한 배우들이 일궈낸 극적인 성공이 내심 흐뭇하다.
 
  10대들은 이 드라마를 통해 등장한 스타에 열광하고 있지만, 40~50대 중년들이 이 드라마에 푹 빠진 이유는 따로 있다. 그때 이웃이 있고, 정을 주고받던 시절의 삶이 너무 그리워서이다. 막장적인 내용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 드라마에서는 지금 관점에서 보면 판타지와 같은 몇 가지 주제가 등장한다. 우리 사회가 급속한 발전을 향해 분화하는 숨 가쁜 과정 속에서 너도나도 뒤질세라 앞만 보며 달리던 중 내팽개친 소중한 것들을 깨우쳐주었다고나 할까?
 
 
  집에 가면 강아지만 반기는 세상과는 너무도 다른 ‘응팔’
 

  첫째는 소소한 일상을 함께하며 똘똘 뭉친 가족의 모습이다. 응팔에서 네 가족은 철저히 식사를 같이한다. 밥상에서 서로를 기다려주고 함께 식사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에게 용돈을 애교스럽게 부탁하기도 하고, 운동화를 바꿔달라는 떼도 쓴다. 엄마가 잠시 불가피하게 집을 떠나면 아버지가 밥을 하는 한이 있어도 식구들은 모두 모여 밥을 먹으며 하루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눈다.
 
  또 불편한 재래식 부엌에서 석유난로에 냄비 밥을 지을지언정 뚜껑이 있는 밥 바리에 아버지 밥부터 담아 아랫목에 따뜻하게 보관하는 정도 있다. 아버지가 식탁에 조금 늦게 도착할 상황이면, 된장국이 식지 않도록 얕은 불에 끓여가며 식구들이 모여앉아 기다린다. 주책없는 아버지가 이유 없이 시무룩하면 온 가족이 비상이다. 이유를 찾아서 해결해 주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지금 우리에겐 처음 지은 밥의 온도와 맛을 반나절 정도는 그대로 보존해 줄 정도로 기능이 놓은 전기 압력밥솥이 집마다 있는 상황이 됐지만, 가장에게 새 밥을 먼저 떠서 먹게 하는 것이 도리라는 엄마는 거의 없을 듯싶다. 아버지가 퇴근해 돌아오면 같이 식사를 하기 위해 잠시라도 식탁에서 참고 기다려주는 자식도 없을 것 같다. 모두 자기 일로 바쁘다며 서로에게 무심하다. 요즘 집안에서 대체적으로 아버지는 서열이 거의 맨 끝이거나 소외된 존재인 것 같다.
 
  얼마 전에 만난 대학교수인 친구가 그랬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식구들은 각자 자기 방에 틀어박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강아지만 변함없이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 안기니 나이 먹을수록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건 개란다.
 
 
  멸치 똥 따고 나물 다듬던 이웃
 
  둘째로는 함께 문 열어놓고 살 수 있는 살가운 이웃이다. 동네 아이들은 형제처럼 자라고, 어른들은 서로 의지하며 함께 울고 웃고 살아가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조금 넉넉한 집에서 더 어려운 집을 거두고, 시시한 반찬 한 가지라도 나눠 먹고 사는 그런 이웃이 있다면, 어떤 부자도 부럽지 않을 것 같다.
 
  엄마들은 눈만 뜨면 모여앉아 마른 멸치 똥을 따고, 나물을 다듬으면서 집안에 일어난 대소사를 이야기하면서 시름과 기쁨을 함께 나눈다. 손 많이 가는 만두도 여러 집이 같이 먹을 양만큼 모여앉아 빚어 나눠 먹으니 힘들지 않다. 뭐든 함께하니 살림은 엄마들이 이웃 아줌마들과 재미있게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요즘 젊은 엄마들 아이들 누리과정에 맡겨놓고 카페에 모여 앉아 시간 보내며 비생산적인 주제로 수다를 떨다 시간 되면 냉동식품 사 가지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이웃 간 흉허물이 없으니 다 모여앉아 전축에 최신 유행곡을 틀어놓고 동네가 떠나가라 뒤섞여 흔들어도 부끄럽기는커녕 재밌고 즐겁기만 하다. 동네를 찾아온 ‘전국노래자랑’에 도전하는 용기도 이웃이 있으니까 가능하다.
 
  내 집 앞 네 집 앞을 가리지 않고 아침이면 골목을 청소하는 정도 있다. 모처럼 찾아온 친정어머니에게 구질구질한 꼴 보이지 말라고 주저 없이 자기가 입은 고운 옷 벗어주는, 친언니보다 더 살가운 이웃언니가 있다.
 
  어려운 살림에 매번 급할 때마다 푼돈 꾸고 잘 갚지도 못했지만, 수학여행 가는 아이 용돈 없이 보내기 미안해 또 떨어지지 않는 다리를 끌고 억지로 주인집 층계를 올라간 아래층 셋집 엄마.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끝내 입이 떨어지지 않아 돌아서자 눈치 빠른 주인집 여자가 아랫집으로 슬며시 찾아와 아이 용돈을 놓고 가는 눈물겨운 정도 있다.
 
 
  이웃집과 흉허물없이 지내던 기억을 되살려준 ‘응팔’
 
  이 드라마의 시대 배경보다 훨씬 앞선 1960~70년대 서울 골목길 삶의 모습은 확실히 그랬다. 서울 부심에 새로 조성된 한옥촌에서 유일하게 TV와 전화기, 냉장고가 있었던 우리 집 대문은 늘 열려 있었다. 저녁 시간에 TV를 보려고 모인 동네 어른들과 마루에서 수박 한 통 깨 사이다 타서 화채를 해먹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또 동네 사람들 전화가 다 우리 집으로 걸려왔기 때문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하다 말고 엄마 심부름으로 집마다 전화받으라고 돌아다니는 게 일이었다. 그렇게 안면을 튼 덕에 난 동네 어느 집이든 가서 가족들이 모여앉은 밥상에 자연스럽게 끼어들 ‘자격’ 같은 게 있었다.
 
  그때는 어린 나조차 이웃집 사돈의 팔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른들이 나누는 밥상머리 대화를 통해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웃들이 다 가족 같았다.
 
  지금 나는 그때보다 훨씬 더 편한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져 있지만, 몇 년간 문을 나란히 하고 있는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립된 삶이 바로 이런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질적 삶은 문명의 혜택을 보고 있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메마르고 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나 같은 생각을 또래 친구들도 하고 있나 보다. 며칠 전에 길 건너 아파트에 사는 여고 동창생한테 전화가 왔다. 이 동네 적당한 아파트를 골라서 같이 옮겨볼 생각이 없느냐는 이야기였다. 응팔을 보고 나니 이웃이 그립단다. 찌개 하나 끓여놓고 전화만 하면 금방 달려와서 같이 먹을 수 있는 이웃과 살고 싶단다.
 
  현실 속에서 집을 옮기는 일이 너무나 복잡해 그 친구의 구상이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 마음을 충분히 알 것 같다. 나도 갓 부쳐낸 따끈한 부침개를 나눌 살가운 이웃이 너무나 그립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는 못나도 잘나도 집안의 중심이었던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너무나 평범한 모습의 아버지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친구 빚보증 섰다가 망하고 월급까지 차압당해 가족들을 반 지하 셋방살이로 몰아넣은 후 막말에 술 없이 살 수 없어졌지만, 속정만은 늘 흘러넘치는 아버지. 복권 당첨으로 벼락부자가 됐으면서도 철가방을 들던 시절의 가난한 모습을 버리지 못해 통 큰 아내에게 구박덩어리로 살지만, 마음속은 늘 가족의 울타리가 되려고 애쓰는 아버지. 홀아비로 어린 아들 키우지만, 엄마 몫까지 해내려고 자신의 인생을 올인하는 아버지.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영(靈)으로나마 커가는 자식 곁을 지키는 아버지.
 
  우리 시절의 아버지는 대부분 이랬다.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커다란 기둥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요즘 젊은 아버지들은 다른 것 같다. 제 분에 못 이겨 자식을 죽을 때까지 때리고, 시체를 유기하는 젊은 아버지들에 대한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아버지나, 게임에 빠진 아버지나 다 폭력으로 자식을 죽이는 가혹함은 같았다. 투자에 실패했다고 아내와 자식을 살해한 뒤 자신도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구속된 아버지도 있었다. 게임 마니아인 아버지가 가두고 방치해 제대로 자라지 못한 아이가 집을 탈출해 슈퍼마켓에서 먹을 것을 훔치다 발견된 경우도 있었다.
 
 
  가족과 이웃이라는 가치를 일깨워준 소중한 드라마
 
시대를 통틀어 냉전지대인 한국에서 붉은 한반도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화통일이다. 굳이 드라마 내용상 필요하지도 않은 이 미장센(Mise-en-Scene)을 왜 첫 회에 등장시켰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극악한 경우를 들지 않더라도 요즘 아버지들은 과거처럼 강인하고 희생적인 부성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역으로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식의 아버지 중심 육아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는 듯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이 분야 전문가들은 학교에서 이제는 부모가 되는 데 필요한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과연 그게 학교교육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일까 싶다. 우리의 아버지들도 아버지가 되는 교육을 따로 받지는 않았다. 그냥 순리대로, 대가족 속에서 자라면서 보고 들은 대로 나름 최선을 다해 자식을 돌봤다.
 
  요즘 젊은 아버지들이 대체적으로 부성애 부족인 건 가족 속에서 보고 들은 것 없이 혼자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핵가족화가 남긴 상처 같은 것이 아니겠느냐는 이야기이다. 요즘 20~30대들은 외동이거나 한 명 정도의 형제(혹은 오누이)와 함께 컸다. 조부모와 같이 살아온 경우도 매우 드물다. 아이가 적다 보니 부모로부터 과도한 애정 혹은 통제를 받고 자랐다. 맞벌이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너무 어린 시절부터 남의 손에서 커서 불안장애를 가진 경우가 적지 않다. 통계적으로 이들의 부모 셋 중 한 명 정도는 이혼을 한다니 그나마 결손가정 속에서 성장했다는 말이다.
 
  이런 환경 속에 있는 아들이 성장해서 아버지가 돼가고 있으니 과거 우리의 아버지들과 같은 뿌리 깊은 부정을 가졌을 리가 없다. 옛날의 그런 정 깊은 아버지를 되찾기 위해서 우리가 다시 해야 할 일은 소박하더라도 가족이 함께 얽혀서 살아가는 삶을 택하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 한다.
 
  응팔은 잃어버린 가족애와 이웃에 대해 많은 생각을 던져주었다. 그 생각이 단순히 스치는 바람처럼 끝나지 말고, 잃어버린 가치를 다시 찾아나서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살림살이가 언제는 팍팍하지 않았나. 동그란 밥상에 모여앉아 된장 뚝배기 가운데 놓고 숟가락 넣어가며 떠들썩하게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삶이 바로 진정한 행복이다.
 
  응팔은 이런 의미에서 좋은 드라마였다. 단지 한 가지 드라마 내용과는 무관하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이 드라마를 만든 신원호 PD에게 묻고 싶다. 응팔 첫 회, 면도하다가 턱이 벤 상처를 반창고로 가린 선우가 이유를 밝히지 않자 엄마 선영은 아들이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의혹을 가지고 아들의 방을 뒤져보는 장면이 나온다.
 
  선영의 시각으로 카메라가 방 전체를 쭉 훑어 내려가는 장면에 붉은 한반도의 모습이 선명하게 등장한다(영상 캡처 참조). 이 드라마 곳곳에 반정부적인 시각이 등장하는 건 당시 상황으로 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시대를 통틀어 냉전지대인 한국에서 붉은 한반도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화통일이다. 왜 굳이 드라마 내용상 꼭 필요하지도 않은 이 미장센(Mise-en-Scе`ne)을 첫 회에 등장시켰는지 답을 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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