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경의 컬처토크 〈30〉 ‘새터민’이 ‘새 한국인’이 되는 날

  • 글 : 임도경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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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민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 인식으로 통합에 어려움
⊙ ‘새 한국인’으로 통일과정과 각종 선거에 예기치 못한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임도경
⊙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2011년 7월 7일 강원도 화천 제2하나원 착공식 기념공연에서 탈북 청소년들이 아이돌의 춤을 추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다문화와 관련한 연구를 맡게 된 이후 난 다문화 전문 연구가가 됐다. 한 연구가 또 다른 연구를 낳는 학문적 연결고리 속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첫 발걸음을 내디딘 이후 줄곧 다양한 논문도 쓰고, 정책을 뒷받침하는 다문화 연구를 진행해 왔다. 연구를 맡을 때마다 기자 출신 연구자라는 나름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 필드 인터뷰를 많이 진행하는 방식으로 방법론적인 방향을 잡아 왔다.
 
  자료수집차 연구 대상들과 직접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일이 보통 책임연구원들이 하는 일은 아니다. 대부분 함께 일하는 다른 연구원들이 이 역할을 맡는 게 학계의 대체적인 관행이다. 이들이 필드에서 얻어 온 정보를 종합해 연구방향을 잡는 것이 책임연구원의 몫이다.
 
  그래선지 내가 직접 이 일에 나서는 걸 다른 연구원들은 썩 탐탁해하지 않는다. 첫 번째 연구에서는 이렇게 ‘나대며’ 연구를 진행하다가 일반 연구원으로부터 은근한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쓸데없이 부지런한 상사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부하직원의 눈빛 같은 것을 어려도 한참 어린 그에게서 읽을 수 있었다.
 
  어쨌든,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현장에서 연구 대상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사회학적 연구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정이다. 다문화 문제처럼 사람을 연구해야 하는 분야에서는 더더군다나 연구자와 연구 대상이 직접 부딪치는 과정을 겪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과정 없이 진행되는 연구는 사실상 탁상공론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난 아직도 현장 인터뷰를 직접 진행한다. 그러면서 다문화의 얼굴을 현장에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
 
 
  새터민을 다문화가정 범주에 넣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탈북자 정착교육 시설인 하나원에서 탈북자들이 컴퓨터 교육을 받고 있다.
  사설이 길었는데, 연구를 통해 무수히 많은 다문화인들을 만나면서도, 아쉽게도 아직 북에서 넘어온 새터민(남한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은 직접 만나 보질 못했다. 사실 연구 초기에는 새터민을 다문화 문제 속에 포함시켜야 하는가에 대해서부터 고민을 한 적이 있다. 그들이 언어와 풍속을 공유해 온 같은 민족이라는 점에서 ‘다문화’ 범주 안에 넣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터민은 우리와 같은 말을 쓰지만 중국문화권에 속해 살아온 조선족보다 훨씬 더 우리들과 유사한 그룹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했다. 나의 양친이 모두 개성 출신으로 한국전쟁 당시 남으로 온 분들이라 북에서 와서 남쪽에 정착한 사람들에 대한 편가르기가 더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조선족보다 더 이곳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이 정착과정에서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으로 우리 사회에 통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다른 소수국가 출신 다문화인들이 겪는 어려움과 다를 바 없는 결과이지만, 이들이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며, 생김새도 같은 한 민족이라는 점에서 피부에 닿는 상실감은 더 크리라고 짐작된다. 이것이 새터민을 ‘다문화’ 범주에 넣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내가 본 새터민은 TV에 출연하는 몇몇 소수밖에 없다. 미디어에 드러나는 새터민의 이미지는 다른 다문화인에 대한 시선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동정의 대상이거나 과거 한국의 순수미를 간직한 형제자매로 재현되고 있다.
 
  이런 미디어적 이미지가 현재 이 땅에 정착한 새터민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돕는 데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나한테는 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TV에 출연하는 소수의 새터민들이 그들 전체를 대변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다른 다문화인들에 비해 한국사회 전면에 나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를 위한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다른 다문화인들과는 달리 주변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새터민을 찾아내는 일은 너무 어려웠다. 숨어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들을 주변에서 찾아내기 힘든 건, 일단 숫자상 적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새터민은 한국사회에서 구성된 다문화사회 안에서도 극히 소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50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 중 45만명이 조선족이고, 새터민은 그들의 6%를 조금 넘는 2만8000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새터민은 80% 정도가 노동인구라 174만명(2015년 1월 기준)이 넘는 전체 다문화 인구 속에서 보면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떨어진다.
 
  이렇게 숫자가 적은 건, 일차적으로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이 한국 취업비자를 받아 돈 벌러 오는 단순한 상황과 새터민들이 봉쇄된 북한을 목숨 걸고 탈출해 넘어오는 과정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새터민들의 남한 정착이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 많아
 
하나원 교육관 복도에 걸려 있는 탈북자 원생들의 소원이 담긴 편지들.
  하지만 적다고 미미하게 볼 일은 아니다. 과거 기자회견을 하며 한국사회에 정착했던 귀순용사 시절을 생각하면, 2만명이 넘는 새터민 인구는 사실 엄청난 규모이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1989년까지 북한이탈주민은 총 607명에 지나지 않았다. 소수인 이들은 1990년대 초중반까지 남한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존재로 국가적 영웅으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되는 등 냉전체제가 끝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북한을 근근히 지탱시키던 국제 사회주의 경제가 해체되고, 미국이 오랜 기간 경제제재까지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극심한 자연재해로 기근이 심해지자 중국을 경유해 남한으로 넘어오는 탈북자의 숫자가 급증했다. 1994년부터 입국자 수가 두 자리를 돌파한 이후 2007년 2월에 1만명을 넘어서면서 현재에 이르게 됐다. 1만명을 돌파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3만명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건 심상치 않은 조짐으로 해석될 만한 상황이다.
 
  이런 변화에 대응해 우리 정부는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초기 적응 지원시설인 ‘하나원’을 만드는 등 새터민 지원정책을 지속적으로 벌였다. 이 지원책은 정치적 쟁점에서 벗어나 폭넓게 탈북자들을 수용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긴 하지만,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지원은 예전 귀순용사 시절에 비하면 많이 축소됐다. 과거에는 국가적 영웅으로 보상을 받았다면, 이 법안을 만든 이후부터 새터민들은 스스로 남한에 정착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원을 받아 자립해야 하는 존재로 바뀌었다. 물론 정착금과 제도적 보호를 받는다는 점에서 다른 다문화인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실제 정착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정착금 때문에 사기의 표적이 되는 일까지 허다하다. 국내 물정에 어둡기 때문에 사업투자 사기 등에 걸려 생활정착지원금 1억5000만원을 고스란히 날린 새터민들도 적지 않다. 이런 범죄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탈북자 동료들이 가해자가 되는 케이스가 많다. 동료의식을 앞세워 어리숙한 초기 새터민의 정착금을 가로채는 것이다.
 
  이런 애로사항을 체험하며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까지 피부로 느끼니 새터민들에게 막상 이곳은 살기 어려운 곳이 된다.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28.3%)였으며, 그 뒤를 경제적 생활수준의 차이(25%)가 꼽혔다. 정치이념·사상·제도의 차이(10.9%) 등은 예상한 것만큼 큰 변수는 아니었다.
 
  물론 이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문화적 충격 속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과정일 수도 있다. 실제 새터민들을 겪어 본 사람들은 새터민들이 느끼는 혼란만큼 새터민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새터민들은 조선족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불평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부터 조선족과 탈북자들 사이에 갈등이 존재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통제됐지만, 느슨하게 돌아가는 북한사회를 고려하면, 경쟁과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심한 데다 빈부의 차이도 큰 이곳 사회에 적응을 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양비론(兩非論)적 입장에서 문제를 덮어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다문화사회 속에서 이들은 분명 수적으로 소수자이지만, 앞으로 한국사회를 뒤흔들 최대 변수가 ‘통일’이라는 화두를 놓고 본다면, 각별한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한 존재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교회 수준의 관심으론 한계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인 캐서린 문 박사는 최근 발표한 〈한국의 인구변화와 정치적 영향(South Korea's Demographic Changes and their Political Impact)〉이라는 논문에서 아직 수적으로 미미하지만 한국사회 내부의 새터민들이 통일과 관련돼 벌어질 수 있는 문제를 심도 깊게 다뤄 눈길을 끌었다.
 
  문 박사는 특히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국민으로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게 된 이들이 어떤 변수로 등장하게 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북한은 그동안 한국에 대한 정치적 정통성 주장의 근거를 ‘민족적 순수성’에 둬 왔기 때문에 극도의 종족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에 길들여져 온 북한주민들이 통일 이후 다문화국가로 변한 한국에 연착륙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새터민들 역시 목소리를 낼 시점이 오면 ‘새 한국인’으로서 통일과정과 각종 선거에 예기치 못한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과 남한 주민 사이에서 새터민들이 어떤 자리매김을 할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시점이 왔다는 이야기이다.
 
  해외에서 먼저 관심을 갖고 있는 이런 문제에 대해 정작 우리 사회 내부에서는 별로 고민하는 기색이 없는 것 같다. 그나마 가장 높은 관심을 보이는 단체는 기독교계이다.
 
  정부의 새터민 정책이 탈정치화하면서 한국 땅에 들어온 새터민들의 정착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게 되자, 언제부터인가 해외에서 시작하는 탈북과정에부터 정착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 교회가 새터민 지원과 선교에 투입하는 비용과 인력은 종합적인 계산이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다.
 
  이들은 중국 국경지역과 내륙지역, 베트남, 몽골, 태국, 캄보디아 등지에서 벌어지는 탈북자 지원 및 선교 활동, 남한 입국 새터민들을 위한 초기 물품 지원, 결연 맺기, 교육 프로그램, 장학 프로그램 등 다방면에서 거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기독교계가 새터민에게 이렇게 지대한 관심을 갖는 데는 이유가 있다. 새터민은 향후 통일시대 북한사회를 기독교 정신과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변화시키는 ‘선지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들을 교회 속에서 결속시키겠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 측은 새터민의 90%가 기독교신자라고 밝히고 있다.
 
  교회의 목적이 무엇이든, 일단 종교가 낯선 곳에서의 삶을 정착시켜 주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건 일편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해외동포 수가 가장 많은 미국에도 교회를 중심으로 한인사회가 구성돼 있다.
 
  하지만 교회가 선교사업 차원에서 이들을 지원해 준다고 해서 한국사회 내부로 뛰어드는 일까지 순조롭게 도와줄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 문제는 그들이 현실 속에서 풀어 나가야 할 새로운 숙제일 뿐이다. 그들은 교회 지붕 아래 뭉쳐서 타지 적응의 어려움을 극복한다 치고, 이들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각을 포용적으로 바꾸는 일은 또 다른 문제이다. 갈등 당사자 간의 화해가 이뤄지지 않으면 갈등은 끝나지 않는다.
 
  새터민이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몫은 분명히 있다.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가려면 거기에 합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사회 역시 이들에 대해 보다 관용적인 시각으로 적응을 도와주어야 할 몫이 있다.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헤어져 산 세월이 길었던 만큼 달라진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요즘 통일펀드 모금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자금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마음을 모으는 일이다. 부족한 건 채워 주고, 모르는 건 가르쳐 준다는 마음이야말로 통일에 대비하는 우리의 첫 발걸음일 수 있다.
 
  다음 연구에서는 이들의 문화적 적응을 위해 한국사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찾아내는 일을 해야겠다. 이제 이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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