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경의 컬처토크 〈27〉 ‘유기농 라이프’의 즐거움

  • 글 : 임도경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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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보석상 하다 귀농한 탁정기씨 부부의 유기농 텃밭 매력
⊙ 상업적 유기농 식품을 보다, 정까지 담긴 먹을거리에 푹 빠져
⊙ 좋은 먹거리를 공유하는 행복공동체가 확대됐으면…

임도경
⊙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탁정기씨 부부(사진 왼쪽)의 강원도 고성 텃밭을 찾은 필자(가운데).
강원도 고성에 살고 있는 탁정기(68)씨는 두 살 위의 아내 서점심씨와 1000평 규모의 밭을 일구며 바쁘게 살아가는 농부이다.
 
  오랜 세월 서울 중심부에서 고급 시계와 보석을 파는 상점을 하던 그는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아내와 함께 8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 두 아들이 별 탈 없이 학업을 마치고 다 결혼해 자리를 잡자 나이가 들수록 땅과 가깝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곳에 들어왔다. 스스로 건강을 돌보기 위해 택한 귀농이라 수확량에 관계없이 밭에서 키우는 모든 작물은 유기농 재배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꽤 넓은 규모의 밭에는 동네 슈퍼마켓 농산물 코너 하나쯤 차릴 수 있을 만큼 많은 작물이 자라고 있다. 자급자족을 생각하며 결행한 귀농이라 채소와 과일은 거의 다 키워 먹겠다는 마음으로 다양하게 심다 보니 부부가 매끼 돌아가며 먹어내기 버거울 만큼 많은 농산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강원도니만큼 옥수수는 기본이고 매일 먹는 파와 상추, 가지, 토마토, 오이, 호박이 밭 가운데에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집 앞 앙증맞은 연못에는 고급 식자재인 연잎까지 무성하다. 텃밭 한편 구석에서는 셀러리가 진한 향을 풍기며 쑥쑥 크고 있다.
 
  텃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작물은 메주콩과 고추이다. 땅이 넓다 보니 그 옆에서 서리태, 들깨, 팥까지 잘 자라고 있다. 가을이 돼 추수가 끝나면, 이 밭에는 김장용 배추와 무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1000평 남짓 텃밭에서 키우는 다양한 먹을거리
 
밭에서 햇볕을 받고 자연스럽게 자란 과일과 채소들. 시중의 제품에 비하면 거칠다.
  집의 울타리와 쉼터를 만들어주는 건 유실수들이다. 복숭아 나무는 집으로 들어서는 길 입구를 지키고 있고, 사과, 배, 감, 자두나무는 자연 담장이 되어주고 있다. 앞마당 무화과 나무는 아내 서씨에게 좋은 간식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집에서 가장 큰 매실나무는 한여름 평상 위에서 두 부부가 식사를 하기에 충분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 나무에서 딴 매실은 서씨가 청과 장아찌를 담가 온 친척들에게 나눠줄 만큼 양이 충분하다.
 
  종류는 정말 다양하지만 매해 기후조건이나 병충해에 따라 수확량이 들쭉날쭉 제멋대로라 무엇을 얼마만큼 거둘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농약을 쓰는 농부들은 밭의 크기에 따라 대략적인 수확량을 예측할 수 있지만 자연에 의지해 키우는 탁씨의 밭은 늘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봐야 결론이 난다.
 
  지난해에는 애써 키운 고추밭이 막판에 병충해를 입어 고춧가루 한 근도 건지지 못했다. 뙤약볕을 피하지 않고 땀흘려 가며 공들인 고추 농사가 허무하게 끝났지만, 그래도 팔기 위해 키우는 작물이 아니라 혀 한 번 끌끌 차고 잊을 수 있다.
 
  이 텃밭의 작물은 철이 지나거나 벌레가 먹어 스스로 나무에서 떨어진 채소와 과일들을 썩혀 만든 퇴비를 영양분으로 자란다. 그래서 못생기거나 작다. 하지만 맛은 시중에 팔기 위해 대단위로 재배하는 어떤 유기농 작물에서도 느낄 수 없던 자연스러운 본연의 향을 품고 있다. 이 집의 못난이 과일과 채소를 먹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 옛날에 먹던 그 맛이야”라는 말을 한다고 한다. 각종 성장촉진제를 흡수하며 급하게 자란 과일과 채소의 과도하거나 혹은 밍밍한 맛에 길들었던 우리로 하여금 신선하게 다가오는 새로운 미각을 느끼게 한다.
 
  이 집 텃밭에서 나오는 작물 중 최고는 메주콩이다. 전라도 출신인 아내 서씨는 매해 직접 농사지어 수확한 이 콩으로 된장, 막장, 조선간장, 고추장, 청국장을 만든다. 서씨가 만든 구수한 장류는 친척들과 동네 이웃이 함께 나누는 특별한 선물이 되고 있다. 손맛 좋기로 이름난 그녀가 담근 장은 서로 눈치 봐가며 퍼간다.
 
  두 해 전, 잠시 서울에 올라와 머물고 있던 서씨의 옆집 아주머니를 우연히 알게 된 덕에 이 된장을 먹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후 나 역시 그녀의 장독을 노리는 사람 중 한 명이 돼버렸다.
 
  사실, 도시 아파트에 살면서 장을 직접 담가 장독을 관리하며 오랜 세월 두고 묵히는 맛 깊은 장을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장독대가 있는 한옥에서 자란 때문에 각종 장이 담겨 있는 독을 어머니들이 어떤 정성으로 보살펴야 좋은 장맛이 유지되는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는데, 시멘트 박스인 아파트에서는 아무리 솜씨 좋은 사람도 그 장맛을 만들어낼 수 없다. 모든 장은 적절한 바람을 맞고 때에 따라서는 강렬한 햇볕을 쏘이는 살균과정을 거치며 숙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재래 장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음식 좀 한다는 주부들의 공통적인 소망이다. 된장찌개가 기본반찬인 한국 음식에서 좋은 장을 확보한다는 건, 사실 음식 맛의 절반 이상이 해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도저히 알 수 없을 것 같은 두메산골 된장 명인들이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는 건, 바로 ‘된장 찾아 삼만리’를 마다하지 않는 열성 주부들 덕분이다.
 
 
  아예 농촌에 나만의 장독을 갖게 되기까지
 
고성의 장독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필자의 장독. 망사로 덮어놓은 장독 세 개가 우리 집 것이다.
  요즘 방송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백종원 셰프가 진행하는 tvN의 〈집밥 백선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는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가장 대중적인 메이커의 된장 제품을 음식에 쓴다. 아마 이 프로그램의 취지가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이용해 간편히 요리를 즐기는 요리 방법 전달에 있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정작 그는 집에 장독을 갖고 있으며, 이 속에서 숙성되는 재래된장을 먹고 있다. 김장김치도 땅속에 독을 묻어 전통 발효과정을 거친 후 먹는다고 한다. 그의 아내인 배우 소유진씨가 다른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밝힌 사실이다.
 
  나 역시 직접 살림을 하게 된 이후 어렸을 때 어머니가 담근 집된장의 맛을 찾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을 지출해 왔다. 개인이 국산 콩을 이용해 만든 재래된장은 마트에서 파는 된장과 비교해 값이 녹록지 않다.
 
  그래도 음식이 보약이라는 생각에서 유기농 국산 콩으로 만든 장류들을 수소문해서 구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기농 식자재 체인에서 판매하는 장도 여러 종류를 다 사보았지만, 맛이 따라주질 못했다. 식재료가 좋다 한들 맛없는 장으로 음식을 만들면 수저가 가질 않으니 결과적으로 헛수고이다.
 
  이런 고민을 고성에 사는 귀촌 부부를 만나면서 해결하였으니 정말 다행이다. 스스로 키운 유기농 콩으로 장을 담그는 곳도 많지 않지만, 맛 또한 해결했으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이 부부에게 감사한 건 또 있다. 욕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된장을 팔라고 조르는 내게 지난해 이 부부가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집 장독대에 여분의 자리가 있으니 우리 집용 된장과 막장을 각 한 말씩 따로 담가주겠다는 이야기였다. 된장을 담그면 재래간장은 저절로 생기니 좋지 않을 수 없다. 이 장을 우리 가족이 어느 세월에 다 먹을지 모르지만, 장은 묵힐수록 깊은맛을 내니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바람과 햇살이 좋은 곳에 내 장독이 있다는 건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올봄에 담근 우리 집 장들이 세 쌍둥이 자라듯 올망졸망 고성 장독대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맛나게 익어가고 있다. 이 독들은 이들 부부가 자신들의 독과 똑같이 관리를 해주고 있다. 앞뜰 황토방에서 잘 띄운 메주로 장을 담고, 날 좋을 때 장독뚜껑을 열어 햇볕과 바람을 쏘이고, 필요할 때 앞뜰 화덕에 걸려 있는 무쇠 솥에서 간장을 달여주는 수고로움까지 맡았다. 또 장이 익으면 원하는 만큼씩 덜어서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 수고로움과 귀찮음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액수의 장 값을 원했다. 메주 값과 장독 세 개 값 정도밖에는 안 되는 금액이었다. 시중에서 개인들이 포장 판매하는 국산 콩 재래된장의 가격을 생각하면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이다. 올가을부터는 내 독의 장을 덜어다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고성에서 갖고 온 된장 맛을 본 두 친구가 똑같은 방식으로 장을 부탁하고 싶다고 이야기해 왔다. 이들 부부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내년 봄쯤 장 담글 시기가 돌아오면 그 집 장독대에는 더 많은 독이 생길 것 같다.
 
 
  한 달 한 번 장 익는 것을 보는 즐거움 추가
 
  된장으로 맺어진 인연은 나날이 각별해지고 있다. 우리 집 장이 잘 익고 있는지 보러 간다는 핑계로 내년에 장을 담그게 될 친구 부부와 함께 한 달에 한 번은 고성에 간다. 그들 부부는 우리를 가족처럼 맞아준다. 이번 여름에는 갈 때마다 가마솥에서 익힌 쫄깃한 토종 씨암탉이 밥상에 올랐다. 텃밭에서 키워 최소한의 양념만으로 무친 나물도 감칠맛이 기가 막혔다. 큰 매실나무 밑 야외식탁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식사를 하는 기분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이 행복했다. 바로 얼마 전 여름휴가를 이용해 내려간 길에는 텃밭에서 갓 딴 찰옥수수를 가마솥에 잔뜩 쪄서 서울 올라오는 내내 먹기도 했다. 마치 또 다른 친정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떠나기 전에 텃밭을 한 바퀴 돌며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먹을 만큼 따서 갖고 오기도 한다. 슈퍼에서 산 야채와 과일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그런 맛이 난다. 나무에 붙은 채로 익은 황매를 장대로 툭툭 쳐내 주워 만든 잼은 향과 맛이 형용할 수 없이 그윽하다. 부부는 “같은 장독대를 쓰는 사람은 한 가족”이라며 매번 텃밭 작물을 차 트렁크가 닫히지 않을 정도로 챙겨 보낸다. 내년 봄 장을 담글 때면 세 가족이 다 모여 장 담그는 법도 배울 겸 아이들까지 다 데리고 와서 조촐한 파티를 하기로 했다. 마당 화로에 건 무쇠 솥 뚜껑에 삼겹살을 구워 먹어도 맛날 것 같다.
 
  이들 부부가 농사짓는 땅에서 수확하는 메주콩은 많은 양이 아니다. 노부부가 주변의 부탁을 받아 장을 담가준다고 해도 극히 한정된 가구만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더 가족 같은 느낌으로 함께 음식을 나누며 지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나는 또 한 가지의 꿈을 꾼다. 그들 부부와 같은 숨어 있는 유기농 농군들이 도시에서 좋은 먹거리를 찾는 10가구 정도의 가족들과 결연을 맺고 장독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널리 퍼졌으면 하는 것이다. 이런 공동체가 많아질수록 난 이 사회가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 믿는다.
 
  진정한 유기농 라이프는 단지 무농약으로 키운 음식을 구해 먹는 것이 아니라, 좋은 먹거리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정서적으로 서로 의지하며 행복 공동체를 만드는 데서 완성되지 않을까 한다. 유기농 식자재를 사기 위해 한살림조합원과 초록마을 회원으로 가입했지만, 이런 행복감이나 유대감을 맛보진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고성 귀농 부부의 장독대가 마치 좋은 이웃들이 어깨를 기대고 모여 있는 모양새처럼 고만고만한 장독들로 빼곡하게 찼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모습이 전국의 작은 유기농 농가로 확장돼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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