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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경의 컬처토크 ⑭ 속초를 아시아의 베니스로

글 : 임도경  한국영상자료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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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경
⊙ 경희대 언론학 박사.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물의 도시’ 베니스. 갯벌에 말뚝을 박아 도시를 건설한 베니스에서는 水路가 다른 도시의 도로 역할을 한다.
  이번 여름휴가 때는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서 로마까지 유명 도시를 쭉 둘러봤다. 모처럼 시간을 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혈기 왕성하던 20~30대 시절 해외여행 일정엔 그 지역 유명 아웃렛 몰에서 보내는 하루 정도의 쇼핑시간이 꼭 들어가 있어야 했다. 명품을 생산지에서 싼값에 구하는 일을 마치 돈 버는 일처럼 느꼈던 나이였다. 사실은 아무것도 사지 않는 것이 가장 절약하는 방법인데도, 그땐 그랬다.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무엇인가를 갖고 싶은 욕망이 한풀 꺾이고 나니 ‘진짜 여행’이 가능해진 듯하다. 명품으로 가방을 채우는 일보다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스케줄로 마음을 기쁘게 하는 여행이 훨씬 좋다. 그래서 이번 여행 역시 그 지역의 시장을 둘러보고, 그곳에서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작은 음식점들을 찾아다녔다. 또 관광지에서 유람선을 타려고 뙤약볕 아래 줄 서 있기보다는 그 지역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고생을 안 한 건 아니다. 현지의 모습을 한눈에 담고 싶어서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성당의 돔 꼭대기는 놓치지 않고 올라갔다. 소라 속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는 돌계단을 숨차게 올라가야 도달하는 돔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도시와 어떻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지 골똘히 비교해 보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처럼 반도 국가라서 내륙의 도시와 바다에 접한 도시 간 문화적 차이가 뚜렷하다. 베니스는 바다에 접한 지리적 환경 때문인지 건물 크기와는 무관하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북부 대륙의 중심지 밀라노는 다른 유럽 국가와 인접한 지역적 특징 때문인지 다른 유럽 국가와 건축 양식 등에서 큰 차이가 보이질 않았다.
 
  음식의 차이도 확연했다. 지역마다 즐겨 먹는 올리브 오일 브랜드가 다를 정도였다. 우리나라에 지역 소주가 있듯, 이탈리아엔 지역 올리브 오일이 따로 있다. 물론 맛도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이탈리아산 수입 올리브 오일이라고 판매하는 제품들에서는 도저히 느끼지 못하는 풀향, 사과향, 쓴맛, 매운맛이 다 느껴지는 신선한 올리브 오일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쓴맛이 바로 폴리페놀이라는 항산화 성분의 맛인데, 피렌체가 속해 있는 토스카나 지방의 올리브 오일 맛이 가장 썼다. 이탈리아 최고의 올리브 오일로 토스카나 지방 제품이 꼽히는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인 듯하다.
 
  도시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는 여행을 하려면 렌터카는 필수다. 요즘 현지인들도 적응이 잘 안 된다는 유례없는 폭염이 들끓고 있어 짐을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탈리아 시골 도시의 맛난 음식
 
  이번 이탈리아 여행은 12박 13일이었다. 밀라노에서 코모-베니스-피렌체-로마로 이어지는 일정을 잡았다. 이런 일정을 짠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도시마다 다 역사적인 배경을 달리하고 있지만 문화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 밀라노와 베니스는 르네상스 이전에 전성기를 누리던 지역이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의 문화나 박물관에 보존된 작품들도 모두 ‘신적인 것’에 중심을 두고 있다. 반면 메디치 가문의 지원으로 아름다운 문화와 경제적 풍요를 꽃피운 르네상스 시대를 상징하는 도시인 피렌체에는 ‘인간’에 관심을 둔 작품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 때문에 이 순서대로 각 도시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면, 중세 문화의 변천사를 한눈에 꿰뚫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떠났고, 각 도시의 역사적 건축물과 조형물, 그리고 그 건물 내부에서 전시되고 있는 진품 걸작들을 보며 가슴이 요동치는 기쁨을 맛봤다.
 
  지역 맛집 역시 좋은 기억을 남겼다. 쌓여가는 여독에 지친 여행객에게 원기를 불어넣어 주는 충전소 같은 곳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춘천과 같은 호반 도시인 코모에서 찾아간 해산물 전용 레스토랑이 인상 깊었다. 한 가족이 4대째 운영하는 작은 동네 식당이었는데, 그 지역 어부가 시작한 유서 깊은 곳이었다. 따뜻한 기온에, 잡은 생선의 신선도를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절임 방법을 써서 고기를 오래 보존하는 방법을 찾아냈고, 이 음식이 이웃에 입소문이 나 식당까지 열게 되었다고 한다. 동네 음식점이다 보니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았는데, 소금과 허브에 절인 생선 필레는 생선회에 길들어 있는 우리의 입맛에도 독특한 풍미를 남길 정도로 맛있었다. 또 빵에 얹어 먹는 무스 역시 일품이었다. 이런 종류의 음식을 처음 먹어보는 이방인의 입맛에도 전혀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공인된 맛을 찾아낸 그들의 솜씨가 대단해 보였다.
 
  베니스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거주 지역 내에 있는 주막도 인상 깊었다. 우리의 음주문화와는 다르게 그곳에서는 늦은 저녁 동네 사람들이 모여 스파클링 와인이나 맥주에 곁들이는 안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메뉴가 다양했다. 스시바 카운터에서 흔히 보이는 유리 선반에 각종 즉석 해산물 튀김을 일렬로 줄 세워놨다. 원하는 튀김을 사서 집에 가져가든지 테이블에서 한 잔 하면서 즐겁게 먹고 가면 되는 그런 분위기였다. 외부인은 달랑 우리뿐이었다.
 
  갓 튀겨낸 새우는 한 입 깨물면 살이 툭 하고 터지면서 입안에 가득 찰 만큼 신선했다. 한치 통 한 마리 튀김, 밀가루 집이 얇은 오징어 다리 튀김도 맛났다. 한 개씩 먹어보는 걸로는 부족해 아예 오징어 다리 튀김 한 접시를 시켰더니 정말 쟁반만 한 그릇에 흘러넘치게 갖다주는 통에 행복한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식탐이 발동해 입가심으로 주문한 해산물 스파게티는 서울의 어느 호텔에서도 맛보지 못한 최고의 맛이었다. 스파클링 와인 한 병에 이 모든 것을 먹은 식사비가 겨우 5만원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의 악몽들
 
베니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걸려 있는 옛 베니스의 전경을 주제로 한 그림 앞에 선 필자. 작품 속에 보이는 다리가 유명한 리알토 브리지다.
  이탈리아 여행의 추억을 꺼낸 것은 단지 여행 후기를 적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이탈리아처럼 관광 대국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단지 조금 더 정돈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갖고 있는 것을 극대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우리가 이탈리아보다 더 잘 갖추고 있는 걸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첫 번째는 공항이다. 렌터카를 빌려 다시 반납하는 곳이 바로 공항인데, 이탈리아는 관광객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놓지 못했다. 우리가 오후 비행기로 현지에 도착했기 때문에 렌터카 역시 오후 6시로 예약을 해놓았다. 전화를 했더니 퇴근해야 하므로 5시 반까지 와서 차를 찾아가란다. 혹시나 늦을까 하고 부랴부랴 사무실에 들어선 시각이 5시10분. 여직원이 신용카드로 황당한 예치금을 결제해서 돌려주는 게 아닌가. 이유인즉, 차를 돌려주는 시각을 오후 6시로 예약해 놨으므로 한 시간이 지나면 하루를 더 쓰는 것으로 결제할 수밖에 없단다. 본인이 퇴근해야 하므로 일찍 가져가라더니 결국 손님에게 덮어씌우는 것이었다.
 
  옥신각신 끝에 로마공항에 5시까지 반납하겠다고 하고 다시 영수증을 발급받았다. 물론 예치금은 말 그대로 예치금이므로 취소하지 않았는데, 만일 자동차 기름을 인수받을 당시와 똑같이 채워놓지 못하면 예치금을 못 찾는다는 황당한 조항이 따라붙었다.
 
  이런 경험 탓에 로마공항엔 조금 더 일찍 도착하기 위해 서둘렀는데, 피렌체에서 로마공항으로 가는 길도 험난했다. 표지판이 적절하게 설치돼 있지 않아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공항에 도착해서도 렌터카 반납장소가 전혀 표시돼 있질 않아 20분을 헤맸다. 결국 내가 먼저 내려 수소문한 끝에 약속 5분 전에 겨우 차를 반납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공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겪은 것이다.
 
  다음은 이탈리아의 치안 문제이다. 어느 곳을 가든 관광객을 노리는 소매치기와 막무가내식 잡상인이 들끓었다. 가방을 관리하느라 과도하게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게 여행의 즐거움을 반감시켰다. 우리나라를 다녀간 관광객 중 이런 문제를 경험한 사람은 극히 드문 것으로 안다.
 
  또 관광객을 봉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너무 노골적이라는 것도 문제다. 유럽의 유명 관광도시에는 도시 전체를 정해진 기간 동안 마음대로 돌아볼 수 있도록 관광지 입장과 대중교통을 묶어놓은 카드를 판다. 이탈리아에서는 특이하게도 시간에 쫓기는 관광객들에게 ‘우선 입장’이라는 달콤한 조건을 달아놓고 비싼 값에 카드를 팔았다. 이 카드를 사도록 유도하고 결국은 ‘우선 입장’이 아니라 카드소지자용 줄을 세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등대전망대에서 바라본 속초
 
영랑호와 청초호가 있는 속초는 잘만 개발하면 ‘아시아의 베니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지 2주일 정도 지나 여독이 풀릴 기미가 보이자 설악산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2시간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광고문구에 자극을 받아서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출발하니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와 미시령터널을 통과하는 코스로 정확히 2시간 만에 설악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서울에서 설악산이 이렇게 가까워졌다니. 길도 깔끔하고 주변 산세도 아름다웠다.
 
  이번 설악산행은 등산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권금성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간 뒤 내려와 속초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설악산이 품고 있는 도시인 속초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간 설악산까지 오가는 데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하는 탓에 속초 시내에 대한 관심은 늘 뒷전이었기 때문이다. 속초를 제대로 보기 위해 등대전망대 꼭대기로 올라갔다. 놀라운 것은 속초의 지정학적 여건이 베니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청초호와 영랑호를 잇는 수로를 만들고, 도시를 관통하는 대로를 뱃길로 바꾼다면 아시아의 베니스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모습이었다. 단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별로 아름답지 못한 원색으로 알록달록하게 제멋대로 자리 잡은 주택의 지붕들이었다. 유럽을 멋있는 풍경으로 만드는 것은 마을 단위로 통일된 건축 양식이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어느 작은 마을을 지나가면서 봐도 주택 지붕을 이렇게 개인이 제멋대로 알아서 올리게 내버려둔 나라는 없다. 건물도 마찬가지다. 어느 건물이든 신축 혹은 개축허가를 내줄 때 지역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형태로 지어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면, 우리나라처럼 생뚱맞은 건물들이 도시 곳곳에 출몰해 도시미학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개발돼 가는 안타까운 현상은 없을 것 같다. 우리에게 아쉬운 건 바로 따로 또 같이 만들어내는 ‘통일된 이미지’다.
 
  속초는 우리가 키워낼 수 있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베니스는 단지 상업의 중심인 항구였을 뿐, 그 주변을 조금만 벗어나면 그냥 삭막한 일반 중소도시의 모습이다. 주변에 설악산처럼 위풍당당하면서도 아름다운 산자락 하나 갖고 있질 못하다. 더군다나 속초는 한국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서울까지 겨우 2시간 거리에 있다. 또 길 중간에 익스트림 스포츠의 중심지인 인제가 자리 잡고 있으며, 호반 도시인 춘천에 들를 수도 있다.
 
  앞으로 발전될 여지가 많아 보이는 속초를 백년대계하에 계획된 관광도시로 바꿔나갔으면 한다. 베니스를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으면 좋을 듯하다. 단, 관광객들이 즐길 것이 많아야 하는데, 특히 음식 개발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베니스에서 먹어본 각종 해산물 튀김은 속초에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단, 덥고 좁은 분식점에서 파는 우리나라식 튀김이 아니라 좀 더 국제화된 요리방법으로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새 단장한다면, 좋은 음식점에서 제공하는 명물 먹거리가 될 수 있다. 속초에서 유명한 먹거리인 곰치매운탕, 전복뚝배기, 닭강정 등은 국제적인 명성을 갖는 음식이 되기엔 전반적으로 너무 맵거나 뜨거운 국물 베이스라 서양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언론의 역사를 봤을 때, 매스커뮤니케이션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존재는 바로 ‘길’이었다. 길이 났기 때문에 그 길을 타고 뉴스가 동네를 벗어나 세상으로 전파될 수 있었다. 그래서 길이 주는 의미는 대단하다.
 
  새 길이 속초라는 도시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속초가 갖고 있는 여건을 잘 활용해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지혜를 모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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