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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단체장에게 듣는다

포항 최초 3선, 이강덕 포항시장

“포항을 지방 소멸 극복한 최초의 도시로 만들고 싶다”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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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 최초 3선 이강덕 포항시장, “대통령제 유효기간 다 된 것, 이원집정부제·4년 중임제 등 권력 구조 개편해야”
⊙ 2차전지가 포항시 수출품 중 40% 가까이 돼… 이제는 전지보국(電池報國)의 도시 된 포항
⊙ “부가가치 높은 바이오 산업 육성해야… 의과학자 양성, 최고의 공학 연구 대학이라면 가능하다”
⊙ 친환경 녹색도시로 가는 포항, UN에서 주목
⊙ “현재 한국에 지방자치는 없다. 도시 경쟁력 위해 중앙 정부는 지방 정부에 권한 이양해야”

李康德
1962년생. 경찰대 법학과 졸업, 고려대 정책대학원 석사 / 경기지방경찰청장, 서울지방경찰청장, 해양경찰청장 역임. 現 포항시장
사진=포항시청
  “속이 답답합니다.” 이강덕 포항시장의 첫마디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포항은 비상사태입니다. 중국 때문에 철강 산업은 힘을 못 쓰고 있고, 전기차는 캐즘(Chasm) 상태에 빠져 있어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체감상 하루에 한 번씩 중국을 때리고 있어요. 중국 철강재가 미국과 유럽으로 못 들어가니 동남아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이 제일 피해를 많이 봅니다. 2차전지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데 여야는 정쟁(政爭)만 일삼으며 민생에 신경을 안 쓰고 있으니 현장에 있는 경제인들이나 지자체장들은 답답한 노릇입니다.”
 
 
  포항시 최초 3선 시장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졌다.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중국의 철강재 덤핑과 전기차 캐즘을 신경 쓰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캐즘’은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이 개발돼 대중에게 소개된 뒤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수요가 후퇴하거나 정체하는 현상을 뜻한다. 원래는 지리 용어다. 최근 전기차가 캐즘 상황에 있다고 한다. 자연히 전기차에 들어가는 2차전지도 수요 정체를 겪고 있다.
 
  이 시장은 포항시 최초의 3선 시장이다. 경찰대 1기 출신으로 포항시장 직전엔 해양경찰청장을 지냈다. 2014년 첫 취임한 후 12년째 포항시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 11월 27일 포항시청에서 그를 만난 참이었다. 12월 3일 탄핵 정국이 시작된 후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포항이 어떤 곳인가. 포항제철 설립자 박태준(朴泰俊)의 꿈 ‘제철보국(製鐵報國)’이 태동한 곳이다. 박태준은 지금의 포스코인 포철 착공식에서 이런 말을 했다. “조상의 혈세로 짓는 제철소다. 실패하면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자.” 그 영일만에는 지금 석유를 찾는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위한 시추선이 떠 있다.
 
  바뀐 영일만 풍경처럼 포항의 주력 산업도 바뀌었다. 철강 단일이었던 것이 철강과 2차전지로 다변화됐다. 이 시장의 재임 기간 일어난 변화다. 그가 세계 경제 상황을 주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과 미국 경제는 앞으로 나아가는데 우리는 주춤거리고 있어요. 이 상태가 고착화되면 영 못 따라가게 됩니다. 그게 제일 겁납니다. 지금 정쟁을 벌일 때가 아닌데 말입니다. 지방은 지금 말라가고 있어요. 과거를 갖고 다툴 때가 아니에요.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대통령 중임제로 바뀌어야”
 
  ― 경상북도 경제 현장에서도 우려들이 많나요?
 
  “굉장히 걱정들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경제 펀더멘털이 약해질까 봐 상당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중소 자영업자들은 죽을 지경입니다. 다들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한국이 선진국인 줄 알았는데 리더십 공백 상태, 정치 난맥상이 이리 장기화되고 있으니 이해가 안 되는 거죠. 현재의 대통령제는 이제 유효기간이 끝난 겁니다. 계속 실패하고 있지 않습니까.”
 
  ― 그러면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4년 중임제든 권력 구조 개편 논의를 시작해야 해요. 특히 현재의 5년 단임 대통령제는 분명히 문제입니다. 너무 짧아요. 대통령직을 한 번 더 수행할 수 있다면 권력이 지금보다 겸손해지지 않겠습니까. 여야 간 대화를 잘 해서 권력을 재창출하려 노력하지 않을까요? 현 대통령제는 사회 분열만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지금 여의도엔 생존만을 위해 달려가는 두 개의 세력만이 존재하는 겁니다.”
 

  ― 지자체장 3선 해보니 중임제가 필요하다 느낀 겁니까.
 
  “공무원 사회라는 게 잘 안 바뀝니다. 초선 첫 한두 해는 공무원들에게 무슨 얘기를 해도 전달이 잘 안 됩니다. 재임을 하니 일이 탄력을 받더군요. 3선을 하니, 이제는 일이 착착 진행됩니다. 만약 제가 4년 단임으로 마쳤다면 아무 일도 못 했을 겁니다. 기껏 해도 소용돌이나 한 번 일으키고 끝났을 겁니다. 모든 단체장이 그렇게 끝난다면 우리 시민들이, 우리 국민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나요. 성과를 내서 앞으로 나아가야지요. 5년 단임제는 이번에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철보국에서 電池報國으로
 
  그의 임기 동안 포항에서는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 앞서 말한 산업 다변화다. 포항은 이제 제철보국에서 전지보국(電池報國)으로 가고 있다.
 
  “예전의 포항은 철강 단일 도시였습니다. 수출에서 철강재가 95%를 차지했어요. 그러니 철강 경기가 좋을 땐 좋지만 안 그럴 땐 대책이 없었습니다. 다른 산업이 있어야 요동이 덜 심한데 말이에요. 이제는 2차전지가 있습니다. 포항 수출 비중에서 2차전지 산업이 2015년 1%였던 것이 2023년 말 기준 38.5%로 급성장했어요. 전기차 캐즘만 아니었다면 2차전지 수출액이 철강의 몇 배가 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포항은 2차전지 도시가 되는 거지요.”
 
  ― 2차전지의 비중이 꽤 크네요.
 
  “2차전지 다음은 수소와 바이오입니다. 관련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특화단지 안에 R&D 기관을 많이 만들어놨어요. 수소와 바이오 산업이 융성할 수 있게 기틀을 짜놓은 겁니다.”
 
  이 시장은 바이오 산업 얘기를 하면서 의대 얘기를 꺼냈다.
 
  “현재 정부가 의료 개혁을 추진 중이잖아요. 그 방향이 의료 인력 증원에 치우쳐져 있습니다. 의과학자 양성안은 빠져 있어요. 바이오 산업은 철강·반도체·자동차의 대여섯 배 혹은 그 이상의 부가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이오 쪽이 너무 약해요. 이 상태로는 미국, 중국, 유럽의 주요 국가들을 못 따라잡습니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바이오 산업 양성이 필수적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의과학자 양성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다. 한국의 경우 의대생이 의과학을 택할 유인이 적다. 거의 없다시피 하다. 미국은 국립보건원(NIH) 한 곳에서 수행하는 의과학 연구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1년짜리 연구가 아니다. 5년, 10년짜리 장기 연구도 수두룩하다. 의과학 연구만 하면서 충분히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
 
 
  “포스텍에서 의과학자 양성해야”
 
  우리나라는 다르다. 의과학 연구에만 몰두할 경제적 유인이 없다. 힘들게 의과학 연구를 하느니 보톡스, 리프팅 시술 등 미용 시술로 빠지는 게 편하다. 한마디로 의과학자가 자랄 환경이 못 된다. 이 시장에게 이런 지적을 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그러니 이걸 바꿀 때가 됐다는 겁니다. 지금 서울대, 연세대, 경북대에서 의과학자를 양성하겠다고 하는데 잘 안 되고 있어요. 이게 제대로 되려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공학 연구와 관련 시설이 집적되어 있고, 의대와 대학병원이 협업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공학 연구 대학은 카이스트와 포항공대(포스텍)입니다. 그런데 카이스트는 국립이잖아요. 바이오 같은 신규 산업은 연구에 있어서 규제보다는 자율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어요. 국립 기관은 아무래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사립인 포스텍에 더 이점이 있지요.”
 
  포스텍이 의과학에 투자할 만큼 재정이 넉넉할까. 그렇다고 포스코그룹에서 대규모 지원을 기대하기도 힘들 터다. 지난 2021년 당시 포스텍 이사장이자 포스코 회장이었던 최정우 전 회장은 국가에 포스텍을 기부채납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원을 하기는커녕 포스텍을 국립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단 얘기다.
 
  ― 포스텍이 의과학에 큰 투자를 할 수 있을까요. 포스코그룹이 포스텍에 대규모 지원을 할 것 같지도 않은데요.
 
  “포스코는 국민 기업입니다. 그러니 CEO의 임기가 있어서, 대표가 3년에서 6년 단위로 바뀌어요. 그렇다 보니 단기 성과에 매달리게 됩니다. 삼성 같은 기업은 다르죠. 회장 재임 당시가 아니라 그 후계자 때에 결과를 낼 수 있는 장기 정책도 추진할 수 있지요. 바이오 산업 같은 건 장기적으로 육성해야 하거든요. 10년, 20년을 봐야 합니다. ‘내가 회장일 때는 계속 투자만 하더라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국가적으로 큰 이득이 될 거다’, 선조들의 피와 국민의 땀이 들어가 있는 기업이라면 이런 장기 비전을 갖고 사업을 펴나가야 해요.”
 
 
  “포스코 장기 비전 가져야”
 
포항 영일만산단 내의 에코배터리 포항 캠퍼스. 에코프로의 2차전지 소재 생산 공장이 밀집해 있다. 사진=포항시청
  ― 국민 기업이라 장기적인 사업은 추구하지 못한다는 말이군요.
 
  “제철이나 화학, 정유공장처럼 중후장대한 공장은 설비를 대대적으로 보강해야 합니다. 주기적으로요. 이걸 안 하면 그 결과가 당장은 괜찮지만 삼사 년 뒤에 나타나요.”
 
  포항제철소는 지난해 11월에만 두 차례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2023년 12월에도 화재를 겪었다.
 
  ― 의대를 만들면 대학병원도 설립해야 할 텐데요.
 
  “좋은 병원은 전부 수도권에 있잖아요. 지방에도 양질의 병원이 있어야 합니다. 의과학을 중심으로 지방에 좋은 병원을 만들면 서울에서 진료받으러 내려올 수도 있습니다. 포스텍 병원을 텍사스의 MD 앤더슨처럼 키우면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바다가 보이는 곳에 그런 병원이 서 있는 모습을. 하도 답답해서 조례까지 만들었어요. 병원을 세우면 어느 단계에 오를 때까지 시에서 재정적으로 지원하도록 말이죠. 바이오 산업이 중요하다는 걸 스위스 바젤에 가보고 느꼈습니다.”
 
  ― 스위스 바젤이요?
 
  “스위스 바젤은 원래 화학 공장 지대였어요. 지금은 세계적인 바이오 산업 클러스터가 됐지요. 노바티스, 로슈 같은 기업이 다 바젤에 있어요. 노바티스도 원래 화학 기업이었던 것이 제약으로 진출한 겁니다. 이렇게 다변화할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포항에 있는 에코프로 같은 화학 기업이 나중에 어느 단계 이상 되면 노바티스처럼 사업 분야를 다변화하는 겁니다.”
 
 
  바젤과 포항의 공통점
 
  바젤과 포항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지진이다. 2017년 11월 15일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청 관측 이래 두 번째로 큰 규모였다. 규모 5.8이었던 경주 지진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피해는 경주 지진의 6배였다. 135명이 부상을 입고 17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일까지 연기됐다.
 
  문제는 이 지진이 자연 지진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2019년 정부 조사연구단은 포항 지진이 지열발전으로 촉발됐다고 결론 내렸다. 지열발전소에 지열정을 뚫고 물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규모 2.0 미만 미소 지진이 일어났고 이 영향으로 규모 5.4 지진이 발생한 것이었다. 이후 국가배상 소송이 줄을 이었다. 경상북도에서만 500여 건이 넘는 지진 관련 국가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다.
 
  바젤에서도 2006년 말 지진이 일어났다. 규모 3.4였다. 역시 지열발전소를 짓던 중 일어난 지진이었다. 피해는 크지 않았다. 정부가 빠르게 대응한 덕이다.
 
  ― 재임 중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인가요.
 
  “지진 났을 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지진 때문에 그 정도의 대규모 피해가 일어난 건 처음이었잖아요. 워낙 피해가 광범위하니 이걸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절망감마저 들었어요. 누구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피해를 입은 시민들도 어디에 하소연을 해야 할지 몰랐고요. 정밀 조사를 한 후 자연 지진이 아니라는 게 2019년에 밝혀졌어요. 그러면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잖아요. 정부 때문에 일어난 사고니 보상을 해줘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걸 안 해주려고 하는 겁니다.”
 
  ― 정말 문제였군요.
 
  “그래서 제가 머리를 깎고 시민들과 시위에 나섰지요. 너무 힘들었어요.”
 
 
  포항 지진과 힌남노
 
  결국 국회는 ‘포항 지진의 진상조사 및 피해구제 등을 위한 특별법’(포항 지진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 시장의 말이 이어졌다.
 
  “2022년 태풍 ‘힌남노’ 때도 힘들었습니다. 인명피해와 재산피해(약 1조7300억원)가 컸지요. 피해가 크다 보니 책임 소재를 찾는 겁니다. 포항시가 지목됐지요. 경찰이 저와 직원들을 조사했어요. 수사가 1년 6개월가량 이어졌습니다. 힌남노 당시 시간당 100mm 이상의 집중호우가 내렸어요.”
 
  수사 결과 9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4년 2월 대구지검 포항지청 형사2부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포항시 정수과 공무원과 농어촌공사 포항울릉지사 직원, 사고가 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 등 9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포항 냉천이 범람하면서 12명(사망 9명, 상해 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서였다. 대부분의 사상자가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차를 빼러 갔던 이들이었다.
 
  ― 참 안타까운 사고였지요.
 
  “당시 범람했던 냉천 천변에 고수부지가 있었습니다. 꽃도 심어놓고 운동기구도 설치해 놓았어요. 그 부근에 소득이 낮은 시민들이 많이 살고 있었어요. 그런 분들이 고수부지에서 아침저녁으로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삶의 소소한 행복을 찾던 곳이었지요. 천이 범람하면서 그곳이 싹 쓸려갔어요. 새벽 두세 시쯤 망가진 그 길을 혼자 걷다가 엉엉 운 적이 있습니다. ‘왜 하늘은 어려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런 곳까지 망가뜨리나’ 야속한 마음이 드는 겁니다. 돌아보면 재난에 대응하고 후속 처리하던 그때가 참 힘들었습니다.”
 
 
  UN이 인정한 친환경 녹색도시
 
포항시는 친환경 녹색도시를 만드는 그린웨이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9.3km에 이르는 폐철도 옆에 나무를 심어 도심 속 철길숲을 조성했다. 사진=포항시청
  이 시장의 재임기간 중 두 번째 변화는 도시 환경 개선이다. 이 시장의 말이다.
 
  “처음 취임했을 때, 일부 지역에서 냄새 때문에 민원이 많았습니다. 공장이나 여러 요인 때문에요. 현지 방문 다니면서도 가슴이 참 아팠어요. 상당 부분 개선했고, 앞으로 더 개선할 겁니다.”
 
  시청 직원들에게 들어보니 이 시장은 냄새 민원이 심한 지역으로 아예 이사를 갔다고 한다. 현지에서 거주하며 직접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러면 개선이 안 될 수가 없겠다. 포항의 ‘그린웨이 프로젝트’도 눈에 띈다. 포항을 철강도시에서 친환경 녹색도시로 바꾸는 계획이다. 당장 폐철도길 9.3km가 철길숲으로 바뀌었다. 부근에 직접 가보니 폐철도를 따라 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그 아래에서 산책하는 행렬이 눈에 띄었다. 서울의 경의선 숲길을 떠올리면 된다.
 
  이런 노력은 한국보다 외국에서 먼저 알아봤다. UN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 포항시 사례를 소개했다. 이 시장은 지난해 11월 12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산업 다변화, 도심 녹지 확충, 신재생에너지 도입’ 등 포항시의 정책들을 소개했다. 그린웨이 프로젝트 같은 녹지 조성을 통해 탄소를 흡수하려는 노력도 소개했다. 총회 참석자들은 철강산업도시였던 포항이 2차전지·수소환원제철 등 다양한 분야의 신산업 육성으로 산업 구조 다변화를 이룬 것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한국엔 지방자치 없어”
 
  ― 3선 시장으로서 한국의 지방자치를 어떻게 봅니까. 중앙 정부가 너무 관여한다는 시선도 있는데요.
 
  “자치라는 건 스스로 주도해 결정하고 책임을 진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나라에 지방자치는 없습니다. 한국은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예요. 중앙집권 행정을 하고 있고, 지자체는 선량한 관리자 정도의 역할만 할 뿐입니다. 제대로 된 자치 입법권이 없어요. 조례를 제정할 수 있는데 조세 등 권한·의무에 관련된 건 못 정합니다. 일 처리를 어떻게 할 건지 그런 것에 관해서만 정할 수 있어요. 제일 중요한 부문에서 결정권이 없는 겁니다. 특히 재정은 거의 중앙 정부가 관할한다고 보면 됩니다. 뭘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으니 답답합니다.”
 
  조례에 관한 건 이렇다. 조례는 지방 정부가 정할 수 있는 일종의 법령이다. 헌법은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권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제117조 제l항)고 규정해 놨다. ‘주민의 권리에 관한 사무’로 조례 범위를 한정 지어 놓은 거다. 이래서야 지방자치라고 하기 힘들다. 행정학자들도 오랫동안 이 문제를 지적해 왔다.
 
  ― 듣고 보니 그렇군요.
 
  “‘지방 정부가 나쁜 짓을 할 수 있다’, 극히 불신하며 권한을 조금 옮겨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지방자치라고 하면 잘되든 못되든 스스로 책임지라며 권한과 책임을 지방 정부에 넘겨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진 않고 서울에 권한을 모아두니 거기만 쳐다봅니다. 권한이 있는 곳으로 사람이 몰리잖아요. 다 수도권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기업들을 보세요. 지난 10년 사이에 지주회사(홀딩스) 만들어서 서울로 가버렸어요. 그러니 일자리도 서울에만 있는 겁니다. 한국이 살려면 권한을 지방에 넘겨줘야 해요.”
 
 
  서울로 몰리는 기업
 
지난해 11월 22일 포항 포스코국제관에서 ‘배터리 선도도시 포항 국제컨퍼런스 2024’가 열렸다. 사진=포항시청
  포스코 역시 2022년 지주사(포스코홀딩스) 체제로 전환하며 본사를 서울에 두기로 했다. 그러자 포항 시민들이 서울로 상경해 시위를 하는 등 항의가 이어졌고, 2023년 3월 지주사 주소지를 포항으로 옮기기로 했다. 주소지는 포항이지만 임직원은 서울에서 근무한다. ‘법무·재무·대관·홍보 등 업무 특성상 서울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다’고 포스코는 설명했다.
 
  ― 기업이 지방을 떠나는 건 정말 큰 문제네요.
 
  “글로벌 기업이 되겠다는 건 좋습니다. 포항에 있으면서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어야지요. 독일은 기업이 주별로 퍼져 있습니다. 스위스도 그렇고요. 그렇게 되도록 여건을 만들어야지요.”
 
  ― 지자체들이 광역 시·도 행정 통합을 추진 중인 것도 그런 문제의식 때문일까요.
 
  “하도 중앙에서 권한을 안 넘겨주니 우리끼리 통합이라도 해보려는 거죠. 그것도 하나의 방편은 될 수 있어요. 그러나 중앙 정부가 지금까지 해왔던 관행이나 의식을 보면, 권한 이양 절대 안 할 겁니다. 역대 정부들을 보면 출범할 때는 ‘연방 국가 수준의 지방자치를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정권 끝날 때 보면 중앙집권 체제를 더 강화시켜 놓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해서는 안 돼요. 서울, 부산, 포항, 목포 자체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져야 해요. 그럴 수 있게 정부가 권한을 지방 정부에 이양하고 뒷받침을 해야 합니다.”
 
  ― 그러기 위해선 어떤 제도 변화가 가장 시급할까요.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해 권한을 대통령과 총리(내각)가 나누고, 외교와 국방은 강력한 중앙집권 아래 두되 경제, 행정, 교육, 복지 부문은 지방정부가 자치권을 가지는 연방제로 가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라 생각합니다.”
 

  ― 지방 정부가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려 해도 걸리는 게 많겠네요.
 
  “사실상 못 합니다. 중앙 정부와 도에 가서 빌어서 겨우 하나씩 바꾸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세계적인 포항시, 목포시, 창원시가 되어야 합니다. 도시가 크다고 경쟁력이 있는 게 아닙니다. 경쟁력 있는 기업, 문화 수준을 갖추면 되는 겁니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중앙 정치는 다투고 있으니 정말 큰일입니다.”
 
  여의도 정치 진흙탕 싸움에서 이 시장의 이름이 잠시 언급된 적이 있 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포항시장 공천 과정에 개입했다’고 지난해 11월 주장했다.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의힘 대표였던 자신에게 도당위원장이 이야기하는 대로 포항시장 후보를 공천하라고 이야기했다는 얘기다. 당시 경북도당 위원장은 김정재 의원(포항 북구)이었다. 3선에 도전하던 이 시장은 공천 심사 과정에서 컷오프됐다. 중앙당에 재심을 신청했고, 받아들여졌다. 결국 경선을 거쳐 최종적으로 시장으로 선출됐다.
 
 
  “지방 소멸 극복한 도시로”
 
  ― 공천 논란은 어떻게 된 겁니까.
 
  “유럽 선진국들이 지자체장 공천을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보세요. 왜 우리는 공천받으려면 서울에 올라가 얼쩡대야 합니까. 그러니 명태균 논란 같은 거에 휘말리는 겁니다.”
 
  ― 명태균씨가 포항시엔 안 왔나요?
 
  “그러게요. 저한텐 안 왔네요.”
 
  ― 남은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게 있나요.
 
  “포항을 지방 소멸을 극복한 도시로 만들고 싶습니다. 다른 도시들이 따라 할 수 있는 롤모델이 되도록요. 포항이 지방 소멸 타파에 실패하면 대한민국에 희망이 없는 겁니다. 그러면 지방은 모두 폐허가 되고 다들 서울 가서 살아야 해요. 희망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경제자유구역에 국제학교를 유치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예요. 고급 인재를 유치하려면 교육 여건 개선이 꼭 필요합니다.”
 
  ― 어떤 시장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지금 어떤 평가를 받는지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의 평가가 중요합니다. 제 존재가 잊히는 것도 좋습니다. 과일나무를 누가 심었는지 몰라도, 후손들이 맛있게 따먹으면 좋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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