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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튀르키예공화국 100주년

인터뷰-무라트 타메르 튀르키예 대사

“튀르키예는 유럽·중동·아프리카 진출 전진기지로 활용도 높아”

글 : 류종수  연세대 보건대학원 겸임교수·서울의과학연구소(SCL Healthcare Group)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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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튀르키예공화국 건국 100주년 행사와 대한민국과의 수교 70주년
⊙ “제국의 흥망성쇠에서 배운 뼈아픈 가치들이 튀르키예인들의 DNA에 각인되어 있다”
⊙ “이스탄불을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 느리게 걸으며 고대·근대·현대가 어우러진 거리 즐겨야”
⊙ “딸을 가진 아빠로서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의 하나라는 사실에 무척 감사”

柳鐘守
1962년생. 연세대 보건학 박사 / 美뉴욕플러싱 YMCA 이사장, 뉴욕가톨릭재단 부총장, 유엔재단 새천년개발사업 고문, 現 바레인왕국 국가보건의료최고위원회 고문, 남미개발은행(IDB) 남미국가 진단검사역량 강화사업 수석책임역, 서울의과학연구소(SCL) 국제사업 고문, 연세대 보건대학원 초빙교수
사진=조준우
  튀르키예는 올해 공화국 건국 100주년, 한국과의 수교 70주년을 맞이했다. 정신없이 분주할 무라트 타메르 대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대사는 이렇게 답했다.
 
  “형제를 위해서는 만 리 길이라도 기꺼이 즐겁게 찾아가는 것이 우리 튀르키예 사람입니다. 형제를 위해 시간을 못 내겠습니까?”
 
  그는 대한민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했다.
 
  튀르키예는 한국전쟁 때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튀르키예는 육군 2만1212명을 파병해 2365명의 사상자를 냈다. 2개 사단 규모의 지상군을 파견한 것이다.
 
  세상을 돌아다녀 보면, 우리에게 형제라고 부르는 나라가 딱 두 나라가 있다. 몽골과 튀르키예다. 한국전쟁 때 병력을 파견한 유엔 회원국 16개국 가운데 우리를 형제의 나라로 부르는 참전국은 튀르키예뿐이다.
 
 
  형제의 나라
 
  수만 리 떨어져 살아온 우리와 튀르키예 사람들이 왜 형제지? 얼굴 생김새가 이렇게 다른데…. 필자 주변의 많은 이가 이런 얘기를 하곤 한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튀르키예를 방문해 에르도안 대통령을 예방했던 우리나라 정·관계 인사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주저 없이 ‘형제의 나라에서 온 분들’이라며 환영하는 데 놀랐다고 얘기한다.
 
  동서양의 역사에 밝은 필자의 벗이 얼마 전 튀르키예 사람들이 우리를 형제로 부르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지금까지 들어온 이야기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비잔틴 중심으로 1000년, 동서양을 통합한 오스만 제국을 중심으로 600년을 살아온 민족이다. 그 나라 사람들이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는 조그만 나라 대한민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형제라고 부른다? 턱도 없는 소리다. 이 사람들의 뇌리 깊숙이 자리 잡은 큰 서사(敍事)가 없다면,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고구려와 돌궐은 혈맹이었다. 두 나라는 중원을 장악한 수(隋)와 당(唐) 두 제국에 맞서 싸웠다. 혈맹인 고구려가 멸망하자 돌궐족들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됐다. 그래서 서쪽으로 민족 대이동을 했다. 중동 지역에서 이슬람 세력과 융합했고, 이들이 튀르크족이 되어 셀주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을 거쳐 오늘의 튀르키예공화국으로 이어진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민족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꾼 7세기의 대서사시를 잊지 않고 있다. 당나라 제국에 맞서 피 흘려 싸운 고구려의 후손인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런데 왜 우리는 튀르키예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지 않느냐? 승자인 신라는 고구려와 튀르키예 간 역사를 알기 어렵다. 조선 500년은 당 제국에 맞서 싸웠던 그 역사가 부담스러워 모든 사서에서 그 기록을 다 지워버렸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우리를 형제로 부르는데 정작 우리는 당황스러워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역사적 연원은 여기에 있다.
 
튀르키예는…
 
  수도: 앙카라
  언어: 튀르키예어
  화폐단위: 튀르키예 리라(YTL)
  면적: 7853만5000㏊ / 세계 36위 (2021 국토교통부, FAO 기준)
  인구: 8581만6199명 / 세계 18위 (2023 통계청, UN, 대만통계청 기준)
  GDP: 9059억8782만 달러 / 세계 19위 (2022 한국은행, The World Bank, 대만통계청 기준)
  1인당: GDP 1만1931달러 / 세계 71위
  접경국: 이란, 그리스, 시리아, 불가리아, 이라크,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종교: 이슬람교 99%, 기독교, 유대교 등
  역사: 1919년 5월 19일 튀르키예 독립전쟁, 1923년 10월 29일 튀르키예공화국 건국
 
  발품 부지런히 파는 대사
 
지난 5월 29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대선 승리 후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5년 더 재임하게 되었다. 사진=신화 / 뉴시스
  무라트 타메르 대사는 서울의 외교가에서 발품을 부지런히 팔기로 정평이 나 있다. 올해는 더군다나 ‘장날’이었다. 튀르키예공화국 건국 100주년 행사와 대한민국과의 수교 70주년 행사에 참석하는 양국 정부 고위 인사들을 맞이하고, 경제협력·문화교류 활동들을 지원하느라 분주했다.
 
  타메르 대사는 주한 외국 공관들이 개최하는 행사에 열심히 참석한다. 지난 6월 말 필자는 대구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문화의 밤 행사에 참석했다가 타메르 대사와 조우했다. 여러 나라의 행사장을 활기차게 누비는 타메르 대사의 모습을 보노라면, 모차르트가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11번 〈터키 행진곡(Rondo Alla Turca)〉의 경쾌한 음악이 들려오는 듯하다.
 
  타메르 대사는 건장한 체격이다. 오스만 제국의 최정예 부대이자 술탄의 근위대 ‘예니체리’ 소속의 장군이 힘차게 전장을 휘젓고 다니듯 그는 소리 없는 전쟁터인 국제 외교무대를 누비고 있다.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는 지난 2월 튀르키예의 중부와 남부를 강타한 진도 7.5의 대지진을 겪었다. 진앙(震央)은 가지안테프였다. 6만 명이 사망하고, 12만 명이 부상당한 끔찍한 대재앙이었다. 피해 규모가 100조원으로 추정된다.
 
 
  “튀르키예와 한국이 동고동락한 또 하나의 기억”
 
2021년 3월 18일 부산 남구 재한유엔기념공원 내 상징구역에서 튀르키예 전사자의 날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유엔기념공원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튀르키예 전사자 1100여 명 중 462명이 안장되어 있다. 튀르키예의 지상군은 1950년 10월 17일 부산에 도착했고, 휴전 이후에도 의장대가 남아 1971년까지 유엔의 평화 활동을 지지했다.
  ― 올해 초 엄청난 자연재해가 있었습니다. 지진 복구 작업은 잘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2월 6일 발생한 튀르키예 대지진은 불행하게도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지진이었습니다. 180km의 광범위한 길이로 발생한 지진은 10개 도시에 걸쳐 엄청난 피해를 끼쳤습니다. 세계적인 지진 전문가들조차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대형 지진이 발생했다고 했습니다. 일본에 투하된 핵폭탄의 300배에 달하는 파괴적 에너지를 보인 지진이었습니다. 1400만 명의 튀르키예 국민들이 피해를 입었지요. 여기에는 어린이 700만 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지진으로 파괴된 지역은 한국 영토보다도 큽니다. 어떤 도시는 전체 건물의 절반 이상이 무너졌고요. 너무나 고통스럽고 참담한 상황입니다.
 
  이런 불행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불행을 겪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우리 국민 모두가 튀르키예의 대재앙에 내 일처럼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납니다.
 
  “대한민국 국민, 언론, 정부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튀르키예 정부를 대신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감동했습니다. 한국 언론들이 형제의 나라를 돕자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한국 사회의 지원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목숨을 바치고, 전쟁 후에도 남아 수백 명의 한국 전쟁고아를 돌봤던 튀르키예 장병들의 진심이 한국 국민들에게 전해졌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과 튀르키예 사람들이 동고동락(同苦同樂)한 기억이 하나 더 추가됐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를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거고요.”
 
  대한민국 정부는 지진 발생 다음 날인 2월 7일 120명의 수색 구조대를 재난 현장에 파견했다. 열흘간 구조 활동을 진행하면서 수많은 귀중한 생명들을 구했다. 이후 85명의 2차 구조대도 파견했다.
 
  “저는 튀르키예로 떠나는 구조대원들을 배웅하면서, 모두가 건강하고 무탈하게 귀국하기를 기원했습니다. 여진의 위험을 감수하며,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다른 생명을 구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행동입니다.”
 
 
 
튀르키예 찾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은…

 
윤석열 대통령이 2월 9일 오후 튀르키예 대지진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해 서울 중구 주한 튀르키예 대사관을 찾아 무라트 타메르 대사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타메르 대사는 윤석열 대통령께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께서 지난 2월 9일 주한 튀르키예 대사관을 방문해 대지진 희생자를 위해 애도하셨습니다. 조문록에 ‘대한민국은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 국민이 슬픔과 좌절에서 용기와 희망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함께할 것입니다’라고 쓰셨어요. 윤석열 대통령님의 정중한 호의에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께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 대지진의 피해 지역이 우리 인류의 중요한 문화유산을 보유한 곳들이라 정말 안타깝습니다.
 
  “이번 지진의 진앙인 가지안테프를 비롯한 주요 피해 지역이 인류 문명사에 기록될 만한 지역입니다. 유네스코는 2015년 튀르키예 도시 중 최초로 이번 지진의 진앙인 가지안테프를 ‘미식(美食) 도시’로 지정했습니다. 지진 피해 지역인 하타이는 튀르키예 정교회의 첫 발생지이고요. 샨르 우르파는 1만 년 전에 인류가 살았던 도시 주거지 흔적이 발견된 곳입니다. 흔히 우리가 농경이 시작된 후 도시가 출현했다고 보는데, 농업혁명 이전에 도시가 출현했다는 놀라운 사실에 인류학자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구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지만, 파괴된 문화유산들을 완전히 복원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불가능한 작업이지요.”
 
  ― 우리나라의 미식가들이 많이 안타까워할 소식입니다.
 
  “이 지역은 실크로드가 지나던 곳답게 다양한 향신료를 사용한 요리들이 발달했습니다. 일반적인 튀르키예 음식보다 풍미가 아주 강합니다. 이곳을 찾았던 한국분들이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양고기 수프와 ‘베이란 초르바스’입니다.
 
  일반적으로 튀르키예식 아침 식사는 여러 종류의 치즈와 버터, 튀르키예식 스크램블 에그, 전통 빵 시미트와 차이로 구성됩니다. 가지안테프에서는 ‘베이란 초르바스’를 아침 식사로 즐깁니다. 잘게 찢은 양고기와 쌀, 마늘, 고추, 양고기 육수 등을 넣고 저온에서 10시간 이상 푹 끓이는데, 한국 여행객들은 여기에 매운 고춧가루를 첨가하면 한국에서 즐기는 육개장과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하더군요.”
 
 
  고향 이스탄불에서 외교부 대표 대사로 활동
 
2월 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에 위치한 중앙119구조단에서 61명의 국제구조대 대원들이 최악의 지진이 발생한 튀르키예로 급파되기 앞서 현지 상황을 듣고 있다.
  타메르 대사는 그간 주 쿠웨이트 대사, 우크라이나 오데사 총영사 등의 직책을 수행했다. 그는 고향인 이스탄불에서 외교부 대사를 지낸 경험이 특별했다고 소개했다.
 
  “우리 집안 선조들은 대대로 이스탄불에서 살았습니다. 저도 이스탄불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제 고향 이스탄불시에서 4년 가까이 튀르키예 외교부 대표로 활동했던 시간이 저를 더 성숙한 외교관이 되도록 했습니다.”
 
  한국에도 외교부 소속 외교관들이 서울, 부산 등 지자체 협력대사로 일하는 제도가 있다. 대개 은퇴를 앞둔 대사들이 2년 정도 받는 보직인 경우가 많다. 타메르 대사는 한국의 지자체 협력대사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지자체에 파견된 대사들은 지방자치 단체장의 예산과 지휘권에 속해 있는 것으로 압니다. 튀르키예 외교부의 이스탄불시 대표 대사는 외교부 장관의 지휘를 받습니다. 이스탄불은 튀르키예의 행정 수도 앙카라에서 465km 떨어져 있습니다. 서울과 부산 정도의 거리입니다. 매력적인 국제도시인 이스탄불에서는 국제기구와 정부 부처, 국제기업들이 주최하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됩니다. 튀르키예 외교부 대표 대사는 이스탄불을 공식 방문하는 모든 정상을 영접하고, 수많은 국제행사에서 튀르키예 외교부와 정부를 대표합니다. 이스탄불 대표 대사만큼 많은 국가 정상을 만나고, 국제기업과 국제기구 리더들을 만나는 외교관은 유엔본부에서 근무하는 고위급 외교관 외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스탄불을 가장 잘 즐기려면, 걸어라!
 
이스탄불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 전경. 6세기 세워진 비잔티움 제국 최고의 건축물로 꼽힌다. 사진=게티이미지
  ‘서울 사대문 안에서 대대로 살아왔다’는 사대부 집안의 자긍심이 살짝 느껴졌다. 이스탄불에서 나고 자라 이스탄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고, ‘이스탄불 대사’를 지내며, 이스탄불 골목골목에 정통한 타메르 대사에게 이스탄불을 찾는 한국인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타메르 대사의 이스탄불 문화유산 해설이 지체 없이 시작됐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기준으로 아시아와 유럽 두 개의 대륙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어요. 매년 4000만 명 이상의 여행객이 튀르키예를 방문하는데, 대부분의 관광객이 이스탄불을 먼저 방문합니다. 2016년 한국의 현대건설과 SK건설이 만든 보스포루스 제3 대교는 전 세계 현수교 중에서 최대 규모지요. 개통식에 참석한 에르도안 대통령이 ‘우리는 다리로 동서양을 잇고 있다’ ‘인간은 죽지만 업적은 불멸한다’는 멋진 말씀을 하셨어요.
 
  에르도안 대통령의 표현들이 이스탄불의 존재 의미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와 인종이 교차하는 허브 도시이자 문명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역사 도시, 전설 같은 고대 역사의 유물들을 간직한 도시입니다.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객들이 몸과 영혼을 건강하게 살찌우는 음식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도시, 머무는 매 순간 감탄을 선사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멋진 유산은 위대한 선조들이 혼과 호흡으로 만들어낸 불멸의 업적입니다.”
 
  보스포루스 제3 대교는 폭 58.5m, 길이 1408m, 왕복 8차선 도로에 복선 철로가 함께 깔려 있다.
 
  ― 이스탄불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입니까.
 
  “걸어 다녀야 합니다. 그게 이스탄불을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느리게 걸으며 고대와 근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거리를 즐겨야 합니다. 이스탄불은 버스, 지하철, 트램, 택시 등의 교통편이 잘 갖추어져 있긴 합니다. 멋진 카페와 식당들이 거리의 곳곳에 숨어 있어요. 작은 거리에서 은밀한 역사의 비밀들과 신비한 스토리들을 찾아내는 재미를 느껴야 해요. 이스탄불의 호텔이나 유명한 카페에서 브런치를 처음 먹어본 외국 손님 중에 튀르키예인들이 크루아상 빵을 즐겨 먹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옹졸하지 않다”
 
튀르키예 카파도키아. 사막에서 수행한 수도자들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영성을 풍부하게 만들어줬다. 사진은 튀르키예 카파도키아의 초기 그리스도 교인들의 유적이다. 사진=조선DB
  ― 크루아상이 튀르키예에서 시작된 빵인가요?
 
  “330년 전 오스만튀르크 군대가 오스트리아의 빈성을 공격했을 때, 튀르크 군대는 은밀하게 땅굴을 파서 성 내부로 들어가려고 했어요. 땅굴 파는 소리를 들은 제빵사가 재빨리 수비군에 신고를 해서 땅굴 공격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죠. 이에 합스부르크 왕실은 공훈을 세운 제빵사에게 영예로운 문장(紋章)을 수여합니다. 이 제빵사는 튀르크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으로, 먹을 때 오스만을 연상하며 잘근잘근 씹어 먹을 수 있는 맛있는 빵을 만들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탄생된 이 빵이 합스부르크 왕실에서 프랑스 왕에게 시집간 마리 앙투아네트에 의해서 프랑스로 전해졌습니다. 이게 크루아상 빵입니다.
 
  이런 스토리를 아는 외국인들은 튀르키예인들이 크루아상을 즐기는 모습을 의아해합니다. 이스탄불과 튀르키예의 역사는 1000년의 기독교 세력인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문화와 유산을 포용하고 있습니다. 크루아상 빵을 먹지 않을 만큼 튀르키예 사람들이 옹졸했다면, 이런 위대한 문명들의 공존이 가능했겠습니까? 튀르키예인들은 역사의 흥망성쇠를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역사적 사건들을 유연하게 현대적 해석으로 포용하고 조화롭게 만들어가는 것이 이스탄불의 정신입니다.”
 
  ― 한국과 싱가포르는 의료 서비스를 중동 지역과 아시아권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의료관광에 관심이 큽니다. 튀르키예가 양호한 의료의 질과 서비스로 의료관광에서 상당한 성과를 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019년 4500만 명의 외국인들이 튀르키예를 방문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2021년에는 2470만 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의료관광 또한 감소 추세를 보였고요. 말씀하신 대로 2019년까지 모발이식 등을 위해 유럽과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지에서 많은 환자들이 왔습니다.
 
  유럽과 미국에 비해 저렴한 가격, 국제기준을 충족하는 고품질 의료 시설, 최신 기술을 사용하는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 많은 시술 경험을 가진 의사와 전문가들이 우리의 강점입니다.
 
  제가 쿠웨이트 대사로 근무할 때 튀르키예 관광청과 의료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역사상 가장 많은 쿠웨이트인들이 이스탄불 관광을 하고, 의료관광 프로그램을 선택했습니다.
 
  튀르키예 관광청은 ‘튀르키예에서 치유를’이라는 웹 포털(healinTrkiye.gov.tr)을 2024년부터 국제 의료관광 소비자들에게 제공할 예정입니다. 모발 이식 클리닉, 웰니스 온천 센터, 노인 및 장애인 케어 센터, 헬스케어 에이전트 등이 이 포털에 공급자로 참여하여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튀르키예에서 치유를’
 
  ― 의료관광 이외에 제공 정보에는 어떤 게 있습니까.
 
  “이 포털에서는 특정 지역을 방문하면 무엇을 즐길 수 있는지, 무엇을 먹고 마셔야 하는지, 모든 숙박, 교통, 문화, 기후 정보 등이 함께 제공됩니다. 튀르키예에는 1500여 개의 온천이 있는데, 질 좋은 스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유럽의 온천 가운데 늘 1위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힐링이 필요한 한국분들이 몸과 마음의 치유를 받는 시간을 친지들과 함께 갖기를 추천합니다.”
 
 
  “생존과 번영을 위한 선택은 다양해야”
 
튀르키예 에페소의 로마시대 유적지 ‘셀수스 도서관’(왼쪽 건물)에 찾아온 관광객들 모습이다. 사진=조선DB
  ― ‘튀르키예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제재하는 데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다’는 서방 진영의 비판 여론이 거셉니다.
 
  “튀르키예와 러시아의 관계는 한국과 중국의 관계와 유사합니다. 국가의 생존을 보장하는 안보, 번영을 위한 전략에 한 가지 길만 있는 게 아닙니다. 다양한 선택이 있고, 유연하고 융합적인 전략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집사람이 우크라이나인입니다. 저는 우크라이나의 오데사에서 총영사를 지낸 우크라이나의 입장을 잘 이해하는 외교관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우크라이나인들의 자주권을 침해한 것은 분명히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처사입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합니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흑해를 통해 우크라이나 곡물들이 식량이 부족한 국가들로 운송되도록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중재하는 역할 또한 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국제사회의 분쟁 해소를 위해서 신뢰받을 수 있는 중재자 역할들을 해나갈 것입니다.
 
  한국도 미국 정부의 대중국 제재와 압박에 동참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까. 하지만 중국 시장과 한국의 지정학적인 환경,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대(對)중국 정책을 간단하게 결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타메르 대사는 “비잔틴 제국 1000년, 오스만 제국 640년의 역사 속에서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튀르키예(T)는 한국(K)과 더불어 멕시코(M), 인도네시아(I), 호주(A)와 연대하는 5 대 중견국 연합체(MIKTA)의 멤버입니다. 강대국들의 논리와 주장도 있지만, 중견국들도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돕기 위해서 우리의 목소리를 함께 내기 위해 협력하고 있는 겁니다.”
 
 
  “370여 개 한국 기업이 튀르키예 진출”
 
  ― 이제 곧 부임 1년을 맞습니다. 앞으로 몇 년 더 한국에서 튀르키예 대사로 일할 텐데 욕심 내는 사업이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우선 제가 쿠웨이트에서 의료관광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뤄냈듯이, 제 재임 기간 중에 가장 많은 한국인이 튀르키예를 방문하는 기록을 만들고 싶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지방자치 단체들과 민간 교류 플랫폼을 만들려고 합니다.”
 
  잠시 숨을 돌린 뒤 그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다음으로는 한국과 튀르키예 사이의 통상과 경제 협력을 확대하는 일입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한국 기업의 튀르키예 투자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튀르키예는 인접한 유럽 국가들과 중동 국가 아프리카 국가들에 진출할 수 있는 전진기지로 활용도가 높습니다. 현지 생산 후 제3국에 수출하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이미 튀르키예에 370여 개 한국 기업이 진출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튀르키예 학생들이 한국의 고등교육기관에서 유학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와 협의할 계획입니다. 대한민국에 와서 자신과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튀르키예의 젊은 동량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도록 길을 열겠습니다.”
 
  ― 한국 생활에는 만족하십니까.
 
  “딸을 가진 아빠로서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끔찍하게 사랑하는 아내와 서울의 국제학교를 다니는 중학생 막내딸이 서울과 한국 생활을 아주 좋아합니다. 서울은 무척 안전하고 교통이 편리한 K-문화의 메카입니다. 딸을 가진 아빠로서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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