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공수사권 폐지는 文 정부가 김정은에게 건넨 선물”
⊙ “수사국은 국정원 내에서도 험한 직무… 고집스러운 충성심과 사명감 하나로 일했다”
⊙ “밀실서 북한공작원과 단둘이 있었는데, 그 사진을 어떻게 갖고 있나, 귀신이 곡할 노릇”(전 통진당원)
⊙ “짤막한 단서로도 국정원 수사관들은 대상자 신원 정확히 특정”
⊙ “평양 한복판에서 간첩 잡는 심정이었다”(일심회 수사한 이한중 전 국정원 수사국장)
⊙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래 간첩 사건의 90% 국정원이 전담
⊙ “국정원은 정보기관+방첩기관… 정보 가치 판단과 분석 빠르고 대응력 높아”
⊙ “경찰청 안보수사과 4개 과에 불과… 정상적 시스템 구축에 수년 걸릴 것”
⊙ “대공수사, 비밀·장기간 수사 필수적… 경찰, 공개수사와 ‘수사 일몰제’ 적용”
⊙ “대공수사 有가치 단서 95%는 수사권한 가진 상태에서 얻어진다”
⊙ “수사국은 국정원 내에서도 험한 직무… 고집스러운 충성심과 사명감 하나로 일했다”
⊙ “밀실서 북한공작원과 단둘이 있었는데, 그 사진을 어떻게 갖고 있나, 귀신이 곡할 노릇”(전 통진당원)
⊙ “짤막한 단서로도 국정원 수사관들은 대상자 신원 정확히 특정”
⊙ “평양 한복판에서 간첩 잡는 심정이었다”(일심회 수사한 이한중 전 국정원 수사국장)
⊙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래 간첩 사건의 90% 국정원이 전담
⊙ “국정원은 정보기관+방첩기관… 정보 가치 판단과 분석 빠르고 대응력 높아”
⊙ “경찰청 안보수사과 4개 과에 불과… 정상적 시스템 구축에 수년 걸릴 것”
⊙ “대공수사, 비밀·장기간 수사 필수적… 경찰, 공개수사와 ‘수사 일몰제’ 적용”
⊙ “대공수사 有가치 단서 95%는 수사권한 가진 상태에서 얻어진다”
작전이 끝나면 비로소 허기가 돈다. 해외 출장 마지막 날. 전직 국정원 수사관 우모(某)씨는 “그제야 쌀국수 맛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노가다가 따로 없었다. 간첩 행위를 채증(採證)하는 일은 국경을,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몇 년 전 정찰총국 간첩 사건으로 동남아 한 국가에 갔다. 대상자가 모처에 도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나서다. 차 안에서 카메라를 들고 대기했다. 예기치 않게 비행기가 몇 시간 연착했다. 페트병에 볼일을 봐가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간첩에겐 ‘퇴근’이 없다. 일주일여 출장 기간 동안 잠은 스무 시간도 못 잤다.
“수사 책임자였던 터라 요원들을 먼저 귀국시키고, 마지막 비행기를 탔다. 편한 비행이란 없었다. 인천국제공항 도착방송이 들리면, 그제야 긴 숨을 뱉었다. ‘살았다.’”
이제 다 지난 얘기다. 2024년 1월 1일 대공(對共)수사권이 폐지된다. 이를 앞두고 전직 국정원 수사관 5인(人)을 만나봤다. 모두 이 분야에서 약 30년 이상 활동한 요원들이다. 작년까지 근무했던 이도 있다. 국정원의 간첩 수사 과정은 철저히 기밀이다. 이들은 “수사 과정을 조금이라도 알면 국정원 수사권 폐지가 곧 안보 참사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창과 방패의 싸움’
“베이징(北京) 소재 식당 밀실(密室)에서 북한공작원과 단둘이 있었는데, 그 사진을 어떻게 갖고 있나.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지난 2014년 1월 구속기소된 전식렬이 한 말이다. 통합진보당(통진당)원이었던 전씨는 북한의 대남(對南) 공작 기구인 225국(현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과 접촉하고 정보를 넘긴 인물이다. 전식렬 사건을 맡았던 하모(某) 전 수사관은 “수사국을 주축으로 여러 부서와의 공조(共助)가 유기적(有機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물증’의 확보다. 요즘 간첩들은 해외에 거점을 두고 대상자를 포섭하고 지령을 내린다. 2004년 12월 잠수함을 이용한 직접 침투가 막히면서 대남 공작원들은 중국·동남아 등을 거친 우회 침투 작전을 쓰기 시작했다. 때문에 해외 대공망(網)은 필수다.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 등을 담당했던 남모(某) 전 수사관은 “국정원에서는 첨단기술 역량을 동원해 전반적인 간첩 활동을 포착한다”고 했다.
회합 장면과 물건을 주고받는 장면 등을 확보하는 과정은 말처럼 순탄치 않다. 간첩들은 잡히지 않는 것을 생명처럼 여기고, 요원들은 사력(死力)을 다해 쫓는다. 창과 방패의 싸움인 셈이다. 우 전 수사관의 말이다.
“이들은 A 지점에서 다음 장소의 정보를 공유하고, B 지점으로, 이후 최종 목적지로 이동하는 식으로 움직인다. 도보서부터 오토바이, 자전거, 툭툭, 택시, 예비 교통수단에 대한 온갖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 총기, 독침 소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방탄조끼는 필수다.”
KAL 858기 폭파 사건 등을 수사했던 윤모(某) 수사관의 말이다.
“피의자를 따라 해외로 출국할 때 상호 간 암묵적으로 극도의 경계 상태가 된다. 자칫 역(逆)감시를 당할 수도 있다. 수사관을 해당국 기관에 넘긴 사례도 있었다.”
“합법적으로 수집해야 증거 채택”
친북(親北) 국가에선 목숨도 걸어야 한다. 2014년 3월. 한 공산권 지역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이때 인근에서 간첩을 쫓던 국정원 요원들은 손에 땀을 쥐어야 했다. 전역 주요 시설에 실탄을 가진 경찰이 2인 1조로 배치됐기 때문이다.
우 전 수사관은 “공산권 국가들은 방첩(防諜)이 워낙 강해 정보기관에서 북한 공작원도 감시한다”면서 “더군다나 국가 비상 상태였던 터라 눈에 띄면 바로 끌려가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하 전 수사관은 “사건 때마다 이들의 접선 수법은 진화했다”고 했다.
“접선 몇 시간 전 돌연 장소를 바꾸기도 했다. 식당, 호텔이 주요 접선지였는데, 독채 방갈로에서 모이기도 했다. 24시간 동안 일절 출입도 없었다. 그럼에도 요원들은 회합 장면을 채증해 법정에 제출했다. 이들이 철통 보안을 강화할수록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증거를 수집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위법(違法)하게 수집한 증거는 효력이 없다. 하 전 수사관은 “2008년 공판중심주의로 바뀌면서 아무리 확실한 물증이라도 합법적으로 수집해야 증거로 채택된다”고 했다.
합법적으로 물증을 수집했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이적지정(利敵知情·적을 이롭게 함을 인식하는 것) 또한 함께 입증해야 한다. 하 전 수사관은 “일반 형사범들은 범죄행위의 증거만으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은 대상자의 범죄행위, 예컨대 북한 공작원을 만났다는 것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면서 “‘대한민국의 이익을 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만났다’는 걸 함께 입증해야 해서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라고 했다.
한 줄의 첩보로도 대상자 특정
수사의 시작은 ‘단서’다. 목숨을 건 채증은 첩보(諜報)에서 출발한다. 국정원은 휴민트(HUMINT·인간정보)·시긴트(SIGINT·신호감청)·테킨트(TECHINT·기술정보)를 통한 고급 첩보망을 보유 중이다.
그러나 최초 첩보 내용은 다소 막연한 수준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주사파 출신인 남성 사업가가 수년째 제3국을 오가며 간첩 활동 중.’ 때문에 치밀한 검증 절차가 뒤따라야 한다. 하 전 수사관은 “이러한 짤막한 단서만 가지고도 국정원 수사관들은 대상자의 신원을 정확히 특정해낸다”면서 “물론 그 과정에서 들이는 공력(功力)은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지하혁명조직 RO’ 사건도 마찬가지다. 국가 체제 전복을 시도해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간첩 사건 또한 처음엔 단 몇 줄의 첩보였다. 당시 RO 조직원 이모(某)씨는 국정원에 “굶어 죽는 북한 주민들은 도외시한 채 이념적으로 주체사상만을 맹종하는 이 집단에 회의를 느낀다”며 그 실체를 알렸다. 하 전 수사관의 말이다.
“RO 조직원들은 모두 1998년 국정원이 수사한 반국가단체 민혁당 출신이다. 한 번 재판을 받으면 기록이 남는데, 압수수색을 갔더니 과거 수사기록을 모두 복사해 증거 수집 방법 등을 밑줄 그어가며 학습한 상태였다. 당연히 더 은밀히 회합했고, 증거 수집 과정이 특히 까다로웠다. 특히 RO의 우두머리가 당시 현역 국회의원인 이석기였기 때문에 수사 보안 누설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결정적 증거는 끝내 얻어냈다. 2013년 5월. 이석기가 소집한 ‘RO 조직원 마리스타 회합’에서다.
“2013년 3월 남북휴전협정 폐기 선언으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자 이석기는 조만간 북한이 남침할 것으로 속단했다. RO 조직원들은 전쟁 발발 시 대한민국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교란해야 승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안을 모색했다. 이를 위해 2013년 5월 10일 자정경 마포구 소재 마리스타 수사회 강당에서 비밀리에 회합했다. 새벽까지 대한민국 정부 전복을 위한 내란 실행 방안을 모의했다. 평택 LNG 기지 폭파, 분당·혜화전화국 파괴, 코레일 철도 마비, 경기 북부 지역 미군부대 교란, 사제폭탄 제조방법 등 다양한 주제를 발표했다. 적기가·혁명동지가 제창을 끝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날 회합 현장의 생생한 음성은 수십 개의 녹취 파일로 남았다. 하 전 수사관은 이석기 압수수색 현장에도 직접 나갔다. 현직 국회의원의 압수수색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1988년 서경원 평화민주당 의원의 밀입북 사건이 있었지만, 시대가 달랐다.
“간첩 사범은 보통 극렬히 저항하기 때문에 압수수색 때 경찰 1~2중대를 대동한다. 이석기 때는 5개 중대가 갔다. 국회에 경찰이 진입하려면 국회의장이 경찰권을 발동해야 한다. 한데 당시 국회의장은 해외출장 중이었고, 수사관 40명만이 이석기 의원실로 갈 수밖에 없었다. 입구에 다다르자, 요원들이 살짝 멈칫했다. 현직 국회의원을 압수수색하는 건 우리에게도 부담인 게 사실이다. 선배 입장에서 같이 망설일 수는 없어서 앞장섰는데, 보좌관들을 비롯해 수십 명의 통진당 관계자들이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몸싸움을 해가며 간신히 진입했더니, 이석기 방 앞에는 의도적으로 여성 당직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밟고 가라’고 했다. 강제집행이 가능했지만, 여성 당직자와는 부딪칠 수 없었다. ‘논점 흐리기’를 당할 게 분명해서다.”
그사이 100여 명의 통진당 측 인원이 더 합세했고, 국정원 직원들은 한동안 갇힌 신세가 돼야 했다.
“2013년 8월 말, 한여름이었다. 당직자들이 선풍기도 다 치워버린 방에, 통진당 수세(守勢)에 몰려 이틀간 감금당해 있었다. 그때 이석기 방을 출입하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변호사가 있었다. ‘영장 집행에 왜 협조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저는 대한민국 법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그럼 사법고시는 왜 쳤냐’고 하니, ‘그만하세요!’라고 하더라.”
이 과정을 거쳐 얻어낸 압수물과 회합 당시 음성 파일은 이석기 포함 조직원 10명 구속에 이어 2013년 12월 통진당 해산 선고까지 끌어냈다.
일심회 수사 후 국정원 떠난 수사국장
“평양 한복판에서 간첩 잡는 심정이었다.”
이한중 전(前) 양지회(국정원 퇴직자 모임) 회장의 말이다. 국정원 수사국장 출신인 그는 노무현 정부 당시 ‘일심회’ 사건을 총지휘했다. 일심회는 1980년대 대학 운동권 출신들이 2002년 결성, 북한 지령에 따라 통일전선 체제 구축을 기도한 사건이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최대 간첩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들은 2004년 총선, 2006년 지자체 선거 동향 등 국내 정세와 민주노동당(민노당) 내부 동향 및 개성공단 입주기업 경영실태 등 각종 국가 기밀을 수집, 총책인 재미동포 장마이클(장민호)을 통해 대북 보고했다. 장씨 등 일당 5명은 2006년 6월 구속 송치됐다.
정권의 외압으로 인해 특히 난항(難航)이었던 수사였다. 원칙대로 수사를 밀어붙였던 김승규 당시 국정원장은 경질됐고, 이 회장 또한 국장 신분으로 청와대에 불려 갔다 와야 했다. 이 회장은 “그날 원(院)에 복귀해 펑펑 울었다”고 했다.
“대한민국 공산화를 막기 위해 국정원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겠다는데 하지 말라니, 억장이 무너져 눈물까지 났다. 국정원 수사국장은 경찰, 방첩사령부 포함 대한민국 대공수사의 실무 총책임자다. 인생에서, 국정원사(史)에서, 대공역사에서 비겁한 존재로 남고 싶지 않아 강행했다.”
이 회장은 일심회 잔당 처리 계획서까지 만들었지만, 수사 완료 이듬해인 2007년 6월 국정원을 떠나야 했다.
이처럼 간첩 수사는 부득불(不得不) 정권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하 전 수사관은 “수사관들은 정부 성향에 상관없이 꾸준히 대공 활동을 하지만, 특정 정권 때는 수사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교묘한 방해와 압박이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인사 대부분이 국보법 위반 사범들이었다. 간첩 전력자(前歷者)들에게 간첩 현황을 보고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간첩들의 동향(動向) 또한 정권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남 전 수사관은 “‘대한민국 제거’의 본질적 목표 활동에는 차이가 없으나 보수 정권에는 반(反)정부 치명타 강도를 더 높여 공세적으로 활동하고 진보 정권에서는 통일전선, 즉 ‘대남포용침투전략’에 치중하며 반국가 세력 확장·결집을 위해 ‘위장평화’ 선동에 나선다”고 했다.
사상범, 목적범, 고의범, 확신범
이한중 전 회장은 “북한에서는 대남 공작의 만조(滿潮)기와 간조(干潮)기를 구분한다”면서 “문재인 정부처럼 남북 화해 분위기가 높을 때를 만조기로 친다. 그때 대남공작은 더 강렬하고 과감하게 이뤄진다”고 했다. 하 전 수사관은 “문재인 정부 때 방치된 국가안보 환경 속에서 간첩들이 활개를 쳤으니 ‘이제 수사 건수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간첩 피의자는 사상범(思想犯)이다. 목적범(目的犯)이자, 고의범(故意犯)이고 확신범(確信犯)이다. 일반 범죄자와는 다르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당연히 우리 법도 무시한다. 주체사상의 신념을 가족보다 중요하게 여기며, 충성하는 대상에게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을 신문(訊問)한다는 건,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신념을 무너뜨리는 과정이다.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이념으로 완전무장한 확신범에 대한 신문은 곧 ‘이론 논쟁’이고 그 논쟁에서 수사관이 이겨야 하는 일”이라면서 “일반범을 대하듯 언제, 어디서, 뭘 했느냐고 하면 답도 안 한다. 다문 입을 앞에 두고 자유민주주의 이론을 지속적으로 설파해야 한다”고 했다.
피의자들은 대부분 고(高)학력자인데다, 누범(累犯)이라 국가보안법과 형사소송법 제반 절차도 꿰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허점을 보이면 고소·고발을 당하기 십상이다. 하 전 수사관은 “입사 이후 국보법, 형사소송법을 마르고 닳도록 학습하는 이유”라면서 “거기에 386세대 운동권 계보, 사회주의 및 북한 주체사상에 대한 배경지식과 뛰어난 언변까지 갖춰야 신문이 가능하다”고 했다.
“수사와 관련된 사안에는 묵비권(默秘權)을 행사하지만, 다른 질문에는 대답을 한다. 예컨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진정한 조국 통일’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내 꿈도 조국 통일이다’는 말로 동질감을 형성한 다음, ‘그러나 그 방식이 다르다’며 설득에 들어가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와 인간적인 유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우 전 수사관은 “인간 대(對) 인간으로 대하면 전후 사정을 다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동갑내기던 한 간첩의 경우 중국서 활동하는 간첩을 노출해주기도 했다”고 했다. 이렇게 신문 중 전향(轉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法도 눈물이 있다’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피의자 동의 아래 야간수사가 가능했던 과거에는 한 공간에서 먹고 자며 정(情)이 들기도 했다”고 했다.
“수사관과 피의자로 만나 단죄(斷罪)는 해야지만, 인간적으로 미워하지는 않았다. 공감대도 있었다. 나이가 비슷하고, 똑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인 경우가 많았다. 추울 때 모포를 덮어주고, 야식도 나눠 먹는 과정에서 진술이 나오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이어 “법(法)도 눈물이 있다”고 했다.
“1980년대 초반이니, 옛날 얘기다. 지방에서 우체부를 하던 청년이 있었다. 일본 조총련 소속 외삼촌이 어느 날 그를 일본으로 불러 돈을 주며 ‘한국에서 내 지시대로 움직여라’고 주문했다. 공작원을 하라는 의미였다. 첩보를 입수하고 그 지방으로 내려갔다. 해안가 10평 미만 아파트에 부인과 어린 남매, 여동생, 그리고 아픈 노모(老母)까지 함께 살고 있더라. 대소변을 받아내며. 차마 데려 나오기 망설여졌다. 가장(家長)을 잡아가면 이 가족들은 어쩌나. 그렇다고 안 잡을 수 있나. 어린 아이들에게 용돈을 건네주며 ‘아빠 금방 올 거야’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수사 과정에서 큰 복병(伏兵)은 따로 있다. 이른바 ‘신문투쟁’이다. 피고인 측 변호인들이 지대한 역할을 한다. 이한중 전 회장의 말이다.
“일심회 사건의 경우 피의자가 5명인데, 민변 소속 변호사 17명이 따라붙었다. 구속수사 당시 오후 6시가 되면 유치장에 데려다주고, 아침 9시면 데리고 나왔는데, 변호인들이 돌아가면서 접견신청을 했다. 수사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신문에 직접 참여해 진행을 방해하기도 했다. 조사실 CCTV로 신문 과정을 지켜봤더니, 피의자 진술에서 ‘그 얘기를 왜 하느냐’며 막는 식이었다. 법적으로 변호인은 동석은 가능하나 관여해서는 안 된다. 수사관이 변호인을 제지하자, ‘당신 이름이 뭐야?’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하 전 수사관 또한 “왕재산 총책의 최초 신문 때도 변호인들의 극렬한 방해가 있었다. 이들은 ‘무조건 모른다고 하라’고 알려주고, 전자증거 열람 확인서에조차 서명하지 말라고 한다”면서 “기소 후에는 ‘국정원의 간첩 조작’으로 몰고 가는 게 그들의 레퍼토리”라고 했다.
남 전 수사관은 “신문투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다 사법부 구속기간인 6개월이 넘어가면 풀어줘야 한다”면서 “그때 풀려난 조직원들이 타(他)조직원과 다시 회합하며 활개를 치기도 한다.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우 전 수사관의 말이다.
“수사에 비협조적인 정도가 아니라 수사의 본질을 흐리는 비열한 전략을 구사한다. 이들은 회합 때부터 ‘사법방해’ 방식을 구체적으로 공유한다. 묵비권 행사는 양반이고, 어떻게든 악질 수사관으로 만들며 불법 수사를 유도한다. 여성 피의자의 집에 압수수색 가면, 수사관을 일부러 몸으로 막는 식이다. 우리 법을 인정 안 하면서, 이 법에 근거해 수사관들을 고소·고발하는 셈이다.”
안보사범 특례법 도입 필요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우리나라는 안보사범과 일반 형사범의 처벌 과정이 차이가 거의 없다”면서 “때문에 국가적 위협 요인에 대한 효과적 대응이 어렵다”고 했다.
“변호인들은 증거인멸, 묵비 등을 사주하고, 수사 방해 목적으로 명분이 미약한 준항고를 수시로 제기한다. 정당한 수사 절차를 과잉수사로 왜곡 선전하기도 하며, 재판관 기피(忌避) 신청 등 노골적 시간 끌기도 한다.”
실제로 북한의 지령을 받고 지하조직을 꾸린 혐의로 2021년 9월 기소된 ‘자주통일충북동지회’ 사건은 피고인들이 법관 기피 신청, 위헌 심판 신청 등 지연책을 동원해 아직 1심 재판 중이다. 그사이 피고인들은 구속기간 만료와 보석 등으로 다 석방됐다.
“여러 선진국은 국가안보사범에 대한 특례법이 있다. 분단국가이거나 적화(赤化)통일 위협이 있는 나라도 아닌데, 일정 한도 내에서 감청과 영장주의 예외를 허용하며 증거인멸 등 국가적 손실 예방을 위해 변호인 접견권, 외부인 접촉, 교통권도 제한한다. 또한 가택이나 사무실을 폭넓게 수색하는 것도 허락한다. 특히 독일의 경우 안보사범에 있어서는 도주 우려와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더라도 구속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점을 우리나라도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 전 수사관은 “미국은 스파이방지법에 따라 국가안보를 해쳤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을 때, 피의자가 묵비권을 행사하면 ‘더 큰 범죄를 숨기기 위한 의도가 명확하다’고 판단, 법정 최고형을 내린다”고 했다.
“우리는 법정에 가면 피고인 측 변호사가 이렇게 말한다. ‘국정원의 감시로 피의자는 수년간 사생활이 없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입을 열지 않겠느냐, 묵비권의 행사도 억울함을 항변하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러고 최저형을 받는다. 미국은 또 안보형사법에 따라 판사가 명(命)하면 모든 공판 절차가 비공개다. 우리는 증인석에 앉을 때 칸막이 하나가 전부다. 증언 내용이 다 들린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나중에 이를 두고 ‘거짓 증언을 했다’며 물고 늘어진다.”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이처럼 수사관들은 근성과 끈기로 총성 없는 대공사범과의 전쟁을 사건마다 극복해왔다”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간첩 천국”
흔히 ‘언제 적 간첩 얘기냐’고 한다. 모르는 소리다. 간첩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내사(內査) 중인 건이 있어 구체적 수치는 기밀이지만, 경우에 따라 수백 명에서 수만 명까지 추산한다.
우 전 수사관은 “지구상 모든 국가에 기술, 무기 정보 등을 위한 간첩이 있는데, 분단국인 우리나라는 오죽하겠느냐”면서 “A·B급 정범(正犯)에 호응 세력까지 포함하면 수만 명 이상 될 것”이라고 했다. 윤 전 수사관은 “최근 적발된 세력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자생적 종북(從北) 세력을 포함하면 이적(利敵) 세력이 수십만은 될 것”이라면서 “사회 곳곳에 뿌리박고 암약(暗躍) 중으로, 지금 대한민국은 간첩 천국”이라고 했다.
남 전 수사관은 “간첩 얘기가 구(舊)시대 냉전논리, 색깔논쟁, 공안몰이라는 건 대남간첩 정체를 숨기기 위한 북한의 위장선전과 안보여론조작 전술”이라고 했다.
“해방 정국 성시백 간첩 사건부터 올해 민노총 침투 간첩까지, 북한은 지난 75년간 대남침투 간첩 활동을 중단한 적이 없다. 김정은 체제가 존속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민주, 평화, 진보, 인권, 통일, 양심인사로 위장한 골수 종북 세력들은 간첩 얘기만 나오면 구시대적 발언이라 주장하지만, 이들 핵심 인사 뒤에는 북한 간첩이나 고첩이 있다. 국정원이 그동안 수사한 반국가단체 및 이적단체가 도합 수십여 개가 넘고 개별 사건 관련자도 부지기수(不知其數)다.”
이들을 잡아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남조선혁명’은 조선노동당 규약 맨 위에 걸린 문구다. 자유대한민국을 제거하고 공산화·초강경 독재 체제화하는 게 최대 목표라는 거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사회혼란과 인명피해도 일으킨다. 남 전 수사관의 말이다.
“KAL 858기 사건으로 중동근로자 등 115명이, 천안함 폭침으로 46명의 용사가 전사했다. 고첩 조창희에 의해 51명이 탄 KAL기와 동·서해상에서 수천 명 이상이 납북됐다. 대량의 군사기밀뿐만 아니라 내·외국인이 납치됐고, 청와대 디도스(DDoS) 공격, 금융망 사이버 공격 등으로 극심한 혼란도 겪었다. 북한은 사과는커녕 자작극이라 선동했으며 반국가 세력은 이를 그대로 따라 주장하며 극심한 분열 상황까지 조장한다.”
이들이 정치권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치명적인 점이다. 왕재산 총책 김덕용의 주거지에서는 ‘야당이 힘을 합쳐 반정부 단일대오를 형성토록 여론 조성하라’는 내용의 지령문이 발견됐다. 실제로 당시 통진당과 민주통합당은 합당해 총선 때 통합 공천했다. 일심회 총책 장마이클 압수물에서 발견된 지령은 민노당 당직자 명단과 일치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마찬가지다. 북한 대남공작원과 연계한 충북동지회, 민노총 침투조직 등과 또 다른 북한공작원과 연계한 제주 ‘ㅎㄱㅎ’, 경남 지역 자통민중전위 등은 진보정당, 지역부문조직 및 민노총에서 상당 기간 암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한중 전 회장의 말이다.
“조합원 100만 명이 넘는 국내 최대 노동단체의 조직국장으로 있던 사람이 20년간 북 대남공작기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가 핵심 시설 등 기밀을 수집했다.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전원의 휴대전화 번호와 노동단체 내부 통신망 아이디(ID) 및 비밀정보를 북한에 전달했다. 전달된 국회의원의 전화를 북한에서 해킹한다면 얼마나 많은 국가기밀이 빠져나갈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이석기 RO 사건처럼 결정적 시기만 온다면 그들은 언제든 체제 위협 세력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다. 간첩들의 위험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윤 전 수사관은 “이번에 문제가 된 모(某) 국회의원뿐 아니라 국회의원 보좌진도 국보법 위반 혐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국회 내에 그만큼 정체성을 숨긴 간첩 또는 종북 주사파가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굳건하게 조직돼 있을 입법 간첩망도 색출해내야 한다”고 했다.
“입법 간첩망 색출해야”
이들 간첩조직들은 각종 시민단체장(長)으로 활동하거나 핵심적 위치에서 국내 집회를 주도하기도 한다. 남 전 수사관의 말이다.
“최근 검거된 간첩단에게 북한이 내린 지령을 살펴보면 ‘진보당 지지 활동을 하라’ ‘통치기관 송전선망 체계 자료를 입수하라’ ‘한미 군사 훈련 중단을 요구하라’ ‘일장기 화형식을 하라’ ‘제2의 촛불 국민 대항쟁을 일으켜라’ 등이 있다. 특히 ‘국민이 죽어간다’ ‘이게 나라냐’ ‘퇴진이 추모다’ 등 피켓 구호까지도 정해줬고, 이는 집회 현장에 그대로 등장했다. 반국가 세력의 여론조작, 선동공작과 시위의 규모가 커지는 추세로 볼 때 정예 핵심 간첩이 상당수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인민학교(초등학교) 때부터 남파공작원을 집중 양성한다. 교육은 김정일정치군사대학으로까지 이어진다. 호송, 침투, 지원 병력 등을 합치면 이 인원은 대략 수십만 명으로 추산된다.
대남공작 기법도 날로 진화한다. 대표적인 게 간첩 통신이다. 과거에는 난수방송, 두뇌난수 등의 아날로그식 지령을 내렸는데, 이제는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를 쓴다. 기밀 정보를 파일, 메시지, 이미지 등에 숨기는 심층 암호기술을 의미한다. 윤 전 수사관은 “북한의 스테가노그래피는 난수 암호까지 이중으로 잠겨 있어 해독하기 굉장히 힘들다”면서 “암호 분야 세계 최고인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에서도 난수 때문에 이를 풀지 못했다”고 했다.
스테가노그래피가 처음 등장한 건 일심회 사건 때다. 총책 장씨의 노트북 압수물에서 발견된 한 대학 캠퍼스 사진 속에 지령문이 들어 있었다. 이한중 전 회장은 “당시 이를 풀기 위해 외국 정보기관에 협조를 요청했는데, 처음 보는 형식이라고 했다”면서 “그사이 국정원 과학수사팀에서 이를 3일 만에 해독했고, 외국 정보기관에서는 국정원의 과학수사 능력이 세계 최상위라고 인정했다”고 했다.
스테가노그래피도 고도화를 거듭했다. 올해 적발된 민노총 간부의 압수물에서 발견된 스테가노그래피는 무려 삼중으로 잠겨 있었다. 슈퍼컴으로도 1만 년 걸리는 수준으로 알려졌는데, 국정원은 이 또한 결국 해독해냈다.
‘文 정부가 김정은에게 주는 선물’
이들의 공(功)은 아무도 치하하지 않았다.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 폐지’가 핵심인 국정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2024년 1월 1일부로 시행된다. 이때부터 대공수사는 경찰이 전담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자, 숙원(宿願) 사업이었다. 2017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그는 연설에서 국정원을 언급하며 ‘혁명’ ‘대청소’라는 단어를 각각 95번, 25번 썼다.
국정원은 1961년 6월 중앙정보부로 창설 이래 63년간 북한 대남공작에 대응해온 ‘컨트롤타워’였다. 국내 대공수사의 90% 이상을 국정원이 전담했다. 우 전 수사관은 “국정원은 국가정보기관과 방첩기관이 함께 들어 있는 형태다. 미국으로 치면 CIA와 FBI를 묶어놓은 격”이라면서 “정보에 대한 가치 판단과 분석이 빠르고 대응력도 높기 때문에 분단된 국가에서는 최적의 조합”이라고 했다. 남 전 수사관의 말이다.
“버마(미얀마) 아웅산 폭탄 테러와 KAL 858기 폭파가 북한 소행임을 신속히 규명할 수 있던 것도 그래서였다. 전국에 걸친 사노맹, 남한조선노동당 같은 사건의 경우 일거에 50~70명을 수사했고, 관련 참고인도 수백 명을 조사했다. 이 밖에도 30~40명 단위 이적단체 등 역대 대규모 사건을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은 국정원의 ‘완전 검증된 수사 능력’ 때문이었다.”
흔히 ‘경찰로의 대공수사권 이관(移管)’이라 표현한다. 한데 경찰은 원래 대공수사권이 있다. 따라서 이관이 아닌 ‘국정원 대공수사권의 폐지’가 맞다. 요컨대 기존 1+1이었던 대공수사가 이제 0+1이 되는 거다.
전직 수사관들은 “이 같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는 ‘대공 참사이자 안보 참사’”라고 했다.
윤 전 수사관은 “대공수사권 폐지는 종북(從北) 주사파 정권에서 자행한 대한민국 자해(自害) 행위이자 문 정부가 김정은에게 주는 선물”이라면서 “검찰과 군(軍) 수사권 박탈에 이은 ‘국가안보기관 무력화(無力化)’의 완결판”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을 통해 국회에 침투한 제5열 세력이 시민사회에 기생하고 있는 종북 주사파 세력들과 연대한 결과다. 대공수사권 폐지에는 정상적이고 순리에 입각한 절차도 없었고, 국민적 합의나 충분한 논의 과정도 없었다. 강한 반대 여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힘을 동원해 북한 김가 세력의 ‘3대(代) 염원’을 한 번에 해결해 갖다 바친 반국가 행위다. 이 땅을 북한과 그 추종 모리배들이 마음 편히 활약할 수 있는 ‘적구화(敵區化) 놀이터’로 만들어버렸다.”
“민주당 주류 의원들에게 수사국은 눈엣가시”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법 개정 당시 “그야말로 비분강개(悲憤慷慨)했다”면서 “2017년 11월부터 1만 명의 양지회원들과 함께 수사권 폐지 반대를 위해 방송국, 국회, 세미나 발표 등 동분서주(東奔西走)했지만 허사였다”고 했다.
법 개정의 근거는 ‘국정원의 간첩조작과 인권침해, 그리고 정치개입’이다. 남 전 수사관은 “국정원을 무력화하려는 집단은 국가안보는 염두에 두지 않고 그 점만 집중 부각하는데, 수치상으로 따지면 1% 미만으로 여태 쌓아온 역량을 일순간 빼앗을 만큼 중대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과거 임무 수행 중 몇몇 뼈아픈 실수를 한 요원들은 처벌받았고, 국정원법에 정치관여금지, 직권남용금지 등의 제한장치도 면밀히 뒀다. 자정(自淨) 노력에 더해 검찰 및 사법부의 인권보장, 입법부의 심도 높은 견제까지 받으며 본연의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데, 다수 권력의 민주당 정권이 대책 하나 없이 무조건 밀어붙여 버렸다.”
민주당이 대공수사권 폐지에 필사적인 데 대해 하 전 수사관은 “전제는 북한”이라고 했다.
“민주당 주류(主流) 의원들 상당수가 국보법 위반자들이다. 386세대 민변 변호사 중에서도 국보법 전력자들이 있다. 이들에게 국정원 수사국은 눈엣가시다. 자신들의 통일 열망과 청춘을 빼앗아간 철천지원수로 여기며 적대시(敵對視)한다. 수사국 무력화는 북한의 간절한 희망사항이었다. 입법 폭주로 얻은 결과에 그들은 지금도 환호한다.”
남 전 수사관은 “수사국 폐지를 위한 이들의 움직임은 상당히 용의주도했다”고 했다.
“1998년 민주화 보상심의위와 간첩 장기수 정보사범의 대거 사면, 2000년 비전향장기수 63명 북송과 의문사 진상규명위, 2003년 준법서약제도 폐지, 2004년 과거사진실발전위, 2019년 보안관찰법 폐지까지. 지난 세 번의 진보 정권은 이를 통해 국정원의 인권침해 등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켰다. 국정원 무력화를 위한 집요하고 끈질긴 세력의 힘이 대공수사권 폐지에까지 닿은 거다. 다음 단계는 국가보안법 철폐임이 분명하다.”
경찰, 해외 수사 불가능
윤 전 수사관은 “이 상태로 대공수사 폐지는 무리”라면서 “이는 (앞으로 수사를 전담할) 경찰 폄훼(貶毁)가 아니라, 지금처럼 국가수사 역량을 보존하는 게 국가안전보장 시스템의 무결성(無缺性)을 유지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 전 수사관은 “경찰들이 본분을 다해주길 진심으로 바라지만, 미비점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단적으로 경찰청 안보수사국은 단 4개 과만 편제된 상태다. 안보기획관리과, 안보수사지휘과, 안보범죄분석과, 안보수사과다. 이 체제로는 간첩 수사의 특수성을 극복할 수 없다. 해외정보자산, 대북정보자산, 과학정보자산, 사이버정보자산 및 휴민트 구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경찰이 대공수사 시스템을 갖추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해외 수사 활동이 막혀 있다는 게 큰 문제다. 경찰이 외국에서 정보 수집이나 내·수사 활동을 하면 주권(主權) 침해가 된다. 경찰 조직에도 해외 파견 인력이 있지만, 이는 범죄인 인도 차원의 행정직이다. 이한중 전 회장은 “과거 직파간첩 위주일 때는 경찰도 간첩을 잘 잡았다”면서 “그러나 중국, 동남아 심지어 유럽, 남미 등 세계를 무대로 한 대남공작에 대응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과학·사이버 수사 분야도 마찬가지다. 윤 전 수사관은 “이 분야는 경찰도 훌륭한 조직과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지만, 북한이라는 대상에 대한 경험과 숙련도 차이가 있다”면서 “현재 대부분의 대북 정보와 대북 사이버 견제 활동은 국정원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도 있는 간첩 사건 발표 안 될 것”
경찰 조직 특성상의 한계도 있다. 윤 전 수사관은 “대공수사는 철저한 비밀 활동을 기반으로 하며 장기간 수사가 필수적인데 경찰은 공개 수사가 원칙이고 거기에 익숙해져 있다”면서 “때로는 십수 년이 걸리는 사업을 비공개로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간첩 수사는 그야말로 장기전이다. 윤 전 수사관은 “수사 발표를 하면 국민들은 그저 ‘간첩 하나 잡았구나’ 하지만 한 사건 처리에 10년, 20년이 걸리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수사 일몰(日沒)제’ 등에 따라 진척이 없으면 ‘수사기간 도과(徒過)’로 사건을 종결하기도 한다. 입건 전 장기 조사를 하는 경찰은 승진도 잘 안 된다.
잦은 직렬(職列) 이동도 걸림돌이다. 하 전 수사관은 “국정원 수사관은 입사 후 간첩 수사에만 올인하는 반면, 보안경찰은 정보경찰이나 치안 전담으로 계기마다 전보(轉補)되는 경우가 많아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윤 전 수사관은 “북한 공작망은 엄중한 비(非)노출의 ‘단순연계 복선포치(單純連繫 複線抛置)’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어 통상적 수사 활동으로는 연계망 색출이 곤란하다”면서 “게다가 북한의 대남공작과 국내 주사파 종북 세력에 대한 많은 경험과 이해도 수반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단언컨대 앞으로 민혁당, 일심회, 왕재산, RO와 같은 심도 있는 사건들은 발표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은 간첩 수사 하지 말라는 얘기”
‘국정원과 경찰이 공조하면 되지 않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한 민주당이 주장하는 바이기도 하다. 민주당 측은 “개정 국정원법상 국정원은 수사권만 사라졌지 정보 수집이나 조사 권한은 보유한다”면서 “경찰과 정보 공유만 잘하면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 전 수사관은 이에 “‘양쪽 발목을 잘라놓고 최선을 다해 달리라’는 것처럼 매우 비현실적인 말”이라고 했다.
“공판중심주의로 바뀌면서 법정에서는 정보 증거를 정당한 절차를 통해 확보했는지, 또 권한 있는 자가 제대로 수집했는지가 관건이 됐다. 수사권이 없는 국정원 직원은 간첩 혐의자나 그 관련자의 자발적 협조가 전제된 면담조사를 통한 정보만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떤 정신 나간 간첩 혐의자가 수사권 없는 국정원 직원에게 자발적 조사 협조를 하겠나. 결국 국정원은 간첩 수사의 가장 중요한 분야인 수사권이 수반되는 증거 수집과 피의자 내·수사는 하지 말고 사이드 업무만 하라는 건데, 이건 간첩 수사를 하지 말라는 얘기다.”
설사 유의미한 정보를 얻더라도, 외부 기관인 경찰과의 공유는 쉽지 않다. 윤 전 수사관은 “정보 활용이 편재화(수사는 경찰, 정보는 국정원)되는 것은 대공수사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으로 상호 불신과 불만을 키울 수 있다”면서 “대공수사는 가외성(加外性)의 원칙이 충분히 적용돼야 할 영역”이라고 했다. 남 수사관은 “그 말은 대공수사 메커니즘 및 적법절차 사법 시스템과 북한의 대남공작 역량 및 보안수칙을 간과한 채 둘러댄 정치적 수사(修辭)”라고 했다.
“대공수사 유(有)가치 단서 95%는 수사 권한을 가진 상태에서 얻어진다. 수사 권한 없이 획득하는 대공정보 및 조사서류는 분석·판단·조정·기획 정도에만 활용되는 게 다반사(茶飯事)다. 이를 성급하게 사법처리에 현출(現出)하면 당사자 변호인 및 공판중심주의에 따른 정보 출처나 직권남용, 증거 능력 등 위법 소지에 휘말릴 위험성이 다분하다.”
우 전 수사관은 “지금처럼 이원화(二元化)된 상태에서의 공조는 국가 예산의 낭비일 뿐”이라고 했다. 이한중 전 회장은 “정보기관의 특성상 정보망의 출처 보호로 인해 정보 협력이 완벽하게 이뤄지기 어렵다”면서 “타 기관으로 자료를 이관하는 불필요한 절차를 거치다 보면 수사의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생명이 걸린 국가안보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할 정치인들이 국가안보를 자신들의 정파(政派)에 이용하는 현실이 가슴 아플 뿐”이라고 했다.
“北, 총선 앞두고 대남공작 총가동할 것”
‘안보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 특히 총선을 앞둔 내년 혼란이 예상된다. 남 수사관은 “그때 북한은 대남공작을 총가동해 사회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내년 선거가 시금석(試金石)이 될 거다. 북한은 기존망 정비와 함께 새로운 지하당을 구축해 남한 내 통일전선 전위 세력을 확장하는 한편 노동단체, 시민단체, 진보정당 등에 침투한 간첩과 종북 세력을 조종해 각종 시위를 선동할 것이다. 지령을 받고 시위를 주도하는 자를 잡는 기관이 무력화됐으니, 시위의 규모는 더욱 커질 게 분명하다. 들불이 퍼져나가듯 사회 혼란을 부추기면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강도로 국가보안법 철폐,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국정원 철폐 등을 비롯 자유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행동이 빈발(頻發)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평화협정 체결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대규모 사이버테러 및 교란도 예견된다. 윤 전 수사관은 “김정은은 집권 초기 사이버전(戰)을 ‘만능의 보검(寶劍)’이라고 했다”면서 “북한은 인터넷 공간을 남조선 혁명을 완수할 수 있는 해방구로 여기며 이를 ‘전 한반도의 공산화’를 위한 전위 공간으로 이용한다”고 했다.
“북한은 우리 정부나 안보기관의 핵심 인물을 대상으로 정보 절취를 위한 해킹 메일 유포, 국가 핵심 시설에 대한 디도스 공격과 악성웨어 유포를 통한 마비·파괴 등과 침해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는 트로이목마 공격을 수단으로 허위사실 유포나 여론조작, 여론의 왜곡 등 갖은 방법을 동원, 종북 인물을 제도권으로 진출시키기 위한 진보 세력 단일화 등 사이버 정치 공작을 더욱 강화하고 나설 것이다.”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법 개정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안보 공백을 막으려면 적어도 대공수사권 폐지 시점을 연장하는 등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남 수사관은 “자유대한민국 국가안보를 위해 여야(與野)가 합의해 하루빨리 원상회복하는 것이 최상이고, 차선은 원상회복에 공감하는 당의 의석이 다수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로 국가 대공수사 역량은 명백히 약화됐다. 국정원과 경찰 협업 등 그 어떤 보완 조치로도 만회하기 어렵다. 하루속히 복원돼야 하며, 관련 법 정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분단 현실과 간첩 활동 실태에 제대로 대응하는 국가 대공수사 역량을 갖추게 된다. 국가 안보기관의 정상화를 통해 동독 슈타지 문서를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살아 있는 동안 평양의 대남공작문서를 꼭 열어볼 수 있길 바란다.”
‘눈과 귀는 있고 입은 없다’
남 전 수사관은 “임용 당시 훈육관에게 들은 말이 아직도 맴돈다”고 했다.
“이제 여러분은 눈과 귀는 있고 입은 없다. 국정원장을 대신해 대외 활동을 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간첩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
하 전 수사관은 “국정원 수사관들은 문무(文武)를 갖춘 최정예 안보전사들로 양성된다”고 했다. 수개월의 신원조사 후 임용 때는 원장 앞에서 국가에 헌신하겠다고 맹세했다. 실무 투입 전에는 상당 기간 연수를 받았다. 공수 훈련, 해양 훈련, 권총 사격, 태권도, 합기도 등 무술뿐만 아니라 법률, 휴민트 및 테킨트를 활용한 수사정보 수집과 활용 능력, 어학 및 소양을 익혔다.
윤 전 수사관은 “이를 통해 확고한 국가관, 대적(對敵)관과 보안의식을 장착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출근 1개월간은 볼펜 선 똑바로 긋기, 종이 바로 자르기, 스테이플러 규격대로 찍기 등을 했고, 보안상 청소부를 쓰지 않아 선배들 책상 닦기, 재떨이 비우기를 직접 했다”면서 “그 단계를 지나니 선배들이 작성한 수사서류를 열람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교춤과 악기 같은 것도 배웠다.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대상자가 갑자기 나이트클럽에 들어가면 따라 들어가야 하는 게 우리 직업”이라면서 “엉거주춤 서 있다가는 금세 들통 나니 배운 것”이라고 했다.
‘하느님, 대한민국을 지키고 싶습니다’
하 전 수사관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신력 무장”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분을 위장하여 뭐든 돼가며 살아야 했다. 사업가로, 회사원으로, 노점상으로, 때로는 노숙자로. 다만 ‘아버지 직업란’에만큼은 늘 무직(無職)이었다. 만일 순직(殉職)하더라도 ‘이름 없는 별’이 된다.
성장기 아들딸에게 공연한 자랑이 못 된 애석함은 끼어들 새가 없었다. 365일 중 휴가를 단 하루도 못 간 해도 있었다. 야근 없는 날은 ‘땡잡은 날’이었다. 이 전 회장의 말이다.
“수사국은 국정원 내에서도 험한 직무다. 누군들 양복 빼 입고 다니고 싶지 않겠나. 훈육관이었을 때 후배들에게 강조한 말이 있다. ‘힘들 때마다 뿌리 깊은 큰 나무를 생각하라.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 모두들 오직 북한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켜 국민의 생명과 자유, 행복을 지켜주겠다는 고집스러운 충성심과 사명감 하나로 일했다.”
수년이 지났지만 미결(未決) 사건은 여전히 사무친다. 우 전 수사관은 “출장 당시 채증에 실패한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장탄식이 나온다”고 했다.
“저 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뻔한데, 역적질을 눈앞에서 보고도 수집을 못 하면 약이 오르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다. 북한 주민들은 굶어 죽는데, 간첩에게는 거액의 공작금을 줘가며 이런 활동을 시킨다는 역사적 현실이 한편으로 참담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런 기도까지 해봤다.
“어릴 때 《어깨동무》라는 어린이 잡지가 있었다. 거기서 ‘도깨비감투’ 이야기를 봤다. 감투를 쓰면 투명인간이 되는 거다. 갑자기 그게 떠오르더라. 이렇게 빌었다. ‘하느님, 대한민국을 지키고 싶습니다. 목적에 부합하는 행동만 할 테니, 도깨비감투 하나만 주세요.’”
동남아 어딘가에서 밤을 지새울 때 한 기도였다. 돌아보면 숱한 불면(不眠)의 밤이었다. 이제 이들은 다른 이유로 잠 못 들게 됐다.⊙
노가다가 따로 없었다. 간첩 행위를 채증(採證)하는 일은 국경을,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몇 년 전 정찰총국 간첩 사건으로 동남아 한 국가에 갔다. 대상자가 모처에 도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나서다. 차 안에서 카메라를 들고 대기했다. 예기치 않게 비행기가 몇 시간 연착했다. 페트병에 볼일을 봐가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간첩에겐 ‘퇴근’이 없다. 일주일여 출장 기간 동안 잠은 스무 시간도 못 잤다.
“수사 책임자였던 터라 요원들을 먼저 귀국시키고, 마지막 비행기를 탔다. 편한 비행이란 없었다. 인천국제공항 도착방송이 들리면, 그제야 긴 숨을 뱉었다. ‘살았다.’”
이제 다 지난 얘기다. 2024년 1월 1일 대공(對共)수사권이 폐지된다. 이를 앞두고 전직 국정원 수사관 5인(人)을 만나봤다. 모두 이 분야에서 약 30년 이상 활동한 요원들이다. 작년까지 근무했던 이도 있다. 국정원의 간첩 수사 과정은 철저히 기밀이다. 이들은 “수사 과정을 조금이라도 알면 국정원 수사권 폐지가 곧 안보 참사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창과 방패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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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단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마친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이 지난 1월 18일 오후 서울 민노총에서 압수물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
지난 2014년 1월 구속기소된 전식렬이 한 말이다. 통합진보당(통진당)원이었던 전씨는 북한의 대남(對南) 공작 기구인 225국(현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과 접촉하고 정보를 넘긴 인물이다. 전식렬 사건을 맡았던 하모(某) 전 수사관은 “수사국을 주축으로 여러 부서와의 공조(共助)가 유기적(有機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물증’의 확보다. 요즘 간첩들은 해외에 거점을 두고 대상자를 포섭하고 지령을 내린다. 2004년 12월 잠수함을 이용한 직접 침투가 막히면서 대남 공작원들은 중국·동남아 등을 거친 우회 침투 작전을 쓰기 시작했다. 때문에 해외 대공망(網)은 필수다.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 등을 담당했던 남모(某) 전 수사관은 “국정원에서는 첨단기술 역량을 동원해 전반적인 간첩 활동을 포착한다”고 했다.
회합 장면과 물건을 주고받는 장면 등을 확보하는 과정은 말처럼 순탄치 않다. 간첩들은 잡히지 않는 것을 생명처럼 여기고, 요원들은 사력(死力)을 다해 쫓는다. 창과 방패의 싸움인 셈이다. 우 전 수사관의 말이다.
“이들은 A 지점에서 다음 장소의 정보를 공유하고, B 지점으로, 이후 최종 목적지로 이동하는 식으로 움직인다. 도보서부터 오토바이, 자전거, 툭툭, 택시, 예비 교통수단에 대한 온갖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 총기, 독침 소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방탄조끼는 필수다.”
KAL 858기 폭파 사건 등을 수사했던 윤모(某) 수사관의 말이다.
“피의자를 따라 해외로 출국할 때 상호 간 암묵적으로 극도의 경계 상태가 된다. 자칫 역(逆)감시를 당할 수도 있다. 수사관을 해당국 기관에 넘긴 사례도 있었다.”
“합법적으로 수집해야 증거 채택”
친북(親北) 국가에선 목숨도 걸어야 한다. 2014년 3월. 한 공산권 지역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이때 인근에서 간첩을 쫓던 국정원 요원들은 손에 땀을 쥐어야 했다. 전역 주요 시설에 실탄을 가진 경찰이 2인 1조로 배치됐기 때문이다.
우 전 수사관은 “공산권 국가들은 방첩(防諜)이 워낙 강해 정보기관에서 북한 공작원도 감시한다”면서 “더군다나 국가 비상 상태였던 터라 눈에 띄면 바로 끌려가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하 전 수사관은 “사건 때마다 이들의 접선 수법은 진화했다”고 했다.
“접선 몇 시간 전 돌연 장소를 바꾸기도 했다. 식당, 호텔이 주요 접선지였는데, 독채 방갈로에서 모이기도 했다. 24시간 동안 일절 출입도 없었다. 그럼에도 요원들은 회합 장면을 채증해 법정에 제출했다. 이들이 철통 보안을 강화할수록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증거를 수집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위법(違法)하게 수집한 증거는 효력이 없다. 하 전 수사관은 “2008년 공판중심주의로 바뀌면서 아무리 확실한 물증이라도 합법적으로 수집해야 증거로 채택된다”고 했다.
합법적으로 물증을 수집했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이적지정(利敵知情·적을 이롭게 함을 인식하는 것) 또한 함께 입증해야 한다. 하 전 수사관은 “일반 형사범들은 범죄행위의 증거만으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은 대상자의 범죄행위, 예컨대 북한 공작원을 만났다는 것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면서 “‘대한민국의 이익을 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만났다’는 걸 함께 입증해야 해서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라고 했다.
한 줄의 첩보로도 대상자 특정
수사의 시작은 ‘단서’다. 목숨을 건 채증은 첩보(諜報)에서 출발한다. 국정원은 휴민트(HUMINT·인간정보)·시긴트(SIGINT·신호감청)·테킨트(TECHINT·기술정보)를 통한 고급 첩보망을 보유 중이다.
그러나 최초 첩보 내용은 다소 막연한 수준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주사파 출신인 남성 사업가가 수년째 제3국을 오가며 간첩 활동 중.’ 때문에 치밀한 검증 절차가 뒤따라야 한다. 하 전 수사관은 “이러한 짤막한 단서만 가지고도 국정원 수사관들은 대상자의 신원을 정확히 특정해낸다”면서 “물론 그 과정에서 들이는 공력(功力)은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지하혁명조직 RO’ 사건도 마찬가지다. 국가 체제 전복을 시도해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간첩 사건 또한 처음엔 단 몇 줄의 첩보였다. 당시 RO 조직원 이모(某)씨는 국정원에 “굶어 죽는 북한 주민들은 도외시한 채 이념적으로 주체사상만을 맹종하는 이 집단에 회의를 느낀다”며 그 실체를 알렸다. 하 전 수사관의 말이다.
“RO 조직원들은 모두 1998년 국정원이 수사한 반국가단체 민혁당 출신이다. 한 번 재판을 받으면 기록이 남는데, 압수수색을 갔더니 과거 수사기록을 모두 복사해 증거 수집 방법 등을 밑줄 그어가며 학습한 상태였다. 당연히 더 은밀히 회합했고, 증거 수집 과정이 특히 까다로웠다. 특히 RO의 우두머리가 당시 현역 국회의원인 이석기였기 때문에 수사 보안 누설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결정적 증거는 끝내 얻어냈다. 2013년 5월. 이석기가 소집한 ‘RO 조직원 마리스타 회합’에서다.
“2013년 3월 남북휴전협정 폐기 선언으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자 이석기는 조만간 북한이 남침할 것으로 속단했다. RO 조직원들은 전쟁 발발 시 대한민국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교란해야 승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안을 모색했다. 이를 위해 2013년 5월 10일 자정경 마포구 소재 마리스타 수사회 강당에서 비밀리에 회합했다. 새벽까지 대한민국 정부 전복을 위한 내란 실행 방안을 모의했다. 평택 LNG 기지 폭파, 분당·혜화전화국 파괴, 코레일 철도 마비, 경기 북부 지역 미군부대 교란, 사제폭탄 제조방법 등 다양한 주제를 발표했다. 적기가·혁명동지가 제창을 끝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날 회합 현장의 생생한 음성은 수십 개의 녹취 파일로 남았다. 하 전 수사관은 이석기 압수수색 현장에도 직접 나갔다. 현직 국회의원의 압수수색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1988년 서경원 평화민주당 의원의 밀입북 사건이 있었지만, 시대가 달랐다.
“간첩 사범은 보통 극렬히 저항하기 때문에 압수수색 때 경찰 1~2중대를 대동한다. 이석기 때는 5개 중대가 갔다. 국회에 경찰이 진입하려면 국회의장이 경찰권을 발동해야 한다. 한데 당시 국회의장은 해외출장 중이었고, 수사관 40명만이 이석기 의원실로 갈 수밖에 없었다. 입구에 다다르자, 요원들이 살짝 멈칫했다. 현직 국회의원을 압수수색하는 건 우리에게도 부담인 게 사실이다. 선배 입장에서 같이 망설일 수는 없어서 앞장섰는데, 보좌관들을 비롯해 수십 명의 통진당 관계자들이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몸싸움을 해가며 간신히 진입했더니, 이석기 방 앞에는 의도적으로 여성 당직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밟고 가라’고 했다. 강제집행이 가능했지만, 여성 당직자와는 부딪칠 수 없었다. ‘논점 흐리기’를 당할 게 분명해서다.”
그사이 100여 명의 통진당 측 인원이 더 합세했고, 국정원 직원들은 한동안 갇힌 신세가 돼야 했다.
“2013년 8월 말, 한여름이었다. 당직자들이 선풍기도 다 치워버린 방에, 통진당 수세(守勢)에 몰려 이틀간 감금당해 있었다. 그때 이석기 방을 출입하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변호사가 있었다. ‘영장 집행에 왜 협조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저는 대한민국 법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그럼 사법고시는 왜 쳤냐’고 하니, ‘그만하세요!’라고 하더라.”
이 과정을 거쳐 얻어낸 압수물과 회합 당시 음성 파일은 이석기 포함 조직원 10명 구속에 이어 2013년 12월 통진당 해산 선고까지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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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수사국장 출신인 이한중 전 양지회(국정원 퇴직자 모임) 회장. 간첩단 사건 일심회를 총지휘했다. 사진=월간조선 |
이한중 전(前) 양지회(국정원 퇴직자 모임) 회장의 말이다. 국정원 수사국장 출신인 그는 노무현 정부 당시 ‘일심회’ 사건을 총지휘했다. 일심회는 1980년대 대학 운동권 출신들이 2002년 결성, 북한 지령에 따라 통일전선 체제 구축을 기도한 사건이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최대 간첩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들은 2004년 총선, 2006년 지자체 선거 동향 등 국내 정세와 민주노동당(민노당) 내부 동향 및 개성공단 입주기업 경영실태 등 각종 국가 기밀을 수집, 총책인 재미동포 장마이클(장민호)을 통해 대북 보고했다. 장씨 등 일당 5명은 2006년 6월 구속 송치됐다.
정권의 외압으로 인해 특히 난항(難航)이었던 수사였다. 원칙대로 수사를 밀어붙였던 김승규 당시 국정원장은 경질됐고, 이 회장 또한 국장 신분으로 청와대에 불려 갔다 와야 했다. 이 회장은 “그날 원(院)에 복귀해 펑펑 울었다”고 했다.
“대한민국 공산화를 막기 위해 국정원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겠다는데 하지 말라니, 억장이 무너져 눈물까지 났다. 국정원 수사국장은 경찰, 방첩사령부 포함 대한민국 대공수사의 실무 총책임자다. 인생에서, 국정원사(史)에서, 대공역사에서 비겁한 존재로 남고 싶지 않아 강행했다.”
이 회장은 일심회 잔당 처리 계획서까지 만들었지만, 수사 완료 이듬해인 2007년 6월 국정원을 떠나야 했다.
이처럼 간첩 수사는 부득불(不得不) 정권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하 전 수사관은 “수사관들은 정부 성향에 상관없이 꾸준히 대공 활동을 하지만, 특정 정권 때는 수사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교묘한 방해와 압박이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인사 대부분이 국보법 위반 사범들이었다. 간첩 전력자(前歷者)들에게 간첩 현황을 보고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간첩들의 동향(動向) 또한 정권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남 전 수사관은 “‘대한민국 제거’의 본질적 목표 활동에는 차이가 없으나 보수 정권에는 반(反)정부 치명타 강도를 더 높여 공세적으로 활동하고 진보 정권에서는 통일전선, 즉 ‘대남포용침투전략’에 치중하며 반국가 세력 확장·결집을 위해 ‘위장평화’ 선동에 나선다”고 했다.
사상범, 목적범, 고의범, 확신범
이한중 전 회장은 “북한에서는 대남 공작의 만조(滿潮)기와 간조(干潮)기를 구분한다”면서 “문재인 정부처럼 남북 화해 분위기가 높을 때를 만조기로 친다. 그때 대남공작은 더 강렬하고 과감하게 이뤄진다”고 했다. 하 전 수사관은 “문재인 정부 때 방치된 국가안보 환경 속에서 간첩들이 활개를 쳤으니 ‘이제 수사 건수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간첩 피의자는 사상범(思想犯)이다. 목적범(目的犯)이자, 고의범(故意犯)이고 확신범(確信犯)이다. 일반 범죄자와는 다르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당연히 우리 법도 무시한다. 주체사상의 신념을 가족보다 중요하게 여기며, 충성하는 대상에게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을 신문(訊問)한다는 건,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신념을 무너뜨리는 과정이다.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이념으로 완전무장한 확신범에 대한 신문은 곧 ‘이론 논쟁’이고 그 논쟁에서 수사관이 이겨야 하는 일”이라면서 “일반범을 대하듯 언제, 어디서, 뭘 했느냐고 하면 답도 안 한다. 다문 입을 앞에 두고 자유민주주의 이론을 지속적으로 설파해야 한다”고 했다.
피의자들은 대부분 고(高)학력자인데다, 누범(累犯)이라 국가보안법과 형사소송법 제반 절차도 꿰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허점을 보이면 고소·고발을 당하기 십상이다. 하 전 수사관은 “입사 이후 국보법, 형사소송법을 마르고 닳도록 학습하는 이유”라면서 “거기에 386세대 운동권 계보, 사회주의 및 북한 주체사상에 대한 배경지식과 뛰어난 언변까지 갖춰야 신문이 가능하다”고 했다.
“수사와 관련된 사안에는 묵비권(默秘權)을 행사하지만, 다른 질문에는 대답을 한다. 예컨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진정한 조국 통일’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내 꿈도 조국 통일이다’는 말로 동질감을 형성한 다음, ‘그러나 그 방식이 다르다’며 설득에 들어가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와 인간적인 유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우 전 수사관은 “인간 대(對) 인간으로 대하면 전후 사정을 다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동갑내기던 한 간첩의 경우 중국서 활동하는 간첩을 노출해주기도 했다”고 했다. 이렇게 신문 중 전향(轉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피의자 동의 아래 야간수사가 가능했던 과거에는 한 공간에서 먹고 자며 정(情)이 들기도 했다”고 했다.
“수사관과 피의자로 만나 단죄(斷罪)는 해야지만, 인간적으로 미워하지는 않았다. 공감대도 있었다. 나이가 비슷하고, 똑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인 경우가 많았다. 추울 때 모포를 덮어주고, 야식도 나눠 먹는 과정에서 진술이 나오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이어 “법(法)도 눈물이 있다”고 했다.
“1980년대 초반이니, 옛날 얘기다. 지방에서 우체부를 하던 청년이 있었다. 일본 조총련 소속 외삼촌이 어느 날 그를 일본으로 불러 돈을 주며 ‘한국에서 내 지시대로 움직여라’고 주문했다. 공작원을 하라는 의미였다. 첩보를 입수하고 그 지방으로 내려갔다. 해안가 10평 미만 아파트에 부인과 어린 남매, 여동생, 그리고 아픈 노모(老母)까지 함께 살고 있더라. 대소변을 받아내며. 차마 데려 나오기 망설여졌다. 가장(家長)을 잡아가면 이 가족들은 어쩌나. 그렇다고 안 잡을 수 있나. 어린 아이들에게 용돈을 건네주며 ‘아빠 금방 올 거야’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수사 과정에서 큰 복병(伏兵)은 따로 있다. 이른바 ‘신문투쟁’이다. 피고인 측 변호인들이 지대한 역할을 한다. 이한중 전 회장의 말이다.
“일심회 사건의 경우 피의자가 5명인데, 민변 소속 변호사 17명이 따라붙었다. 구속수사 당시 오후 6시가 되면 유치장에 데려다주고, 아침 9시면 데리고 나왔는데, 변호인들이 돌아가면서 접견신청을 했다. 수사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신문에 직접 참여해 진행을 방해하기도 했다. 조사실 CCTV로 신문 과정을 지켜봤더니, 피의자 진술에서 ‘그 얘기를 왜 하느냐’며 막는 식이었다. 법적으로 변호인은 동석은 가능하나 관여해서는 안 된다. 수사관이 변호인을 제지하자, ‘당신 이름이 뭐야?’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하 전 수사관 또한 “왕재산 총책의 최초 신문 때도 변호인들의 극렬한 방해가 있었다. 이들은 ‘무조건 모른다고 하라’고 알려주고, 전자증거 열람 확인서에조차 서명하지 말라고 한다”면서 “기소 후에는 ‘국정원의 간첩 조작’으로 몰고 가는 게 그들의 레퍼토리”라고 했다.
남 전 수사관은 “신문투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다 사법부 구속기간인 6개월이 넘어가면 풀어줘야 한다”면서 “그때 풀려난 조직원들이 타(他)조직원과 다시 회합하며 활개를 치기도 한다.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우 전 수사관의 말이다.
“수사에 비협조적인 정도가 아니라 수사의 본질을 흐리는 비열한 전략을 구사한다. 이들은 회합 때부터 ‘사법방해’ 방식을 구체적으로 공유한다. 묵비권 행사는 양반이고, 어떻게든 악질 수사관으로 만들며 불법 수사를 유도한다. 여성 피의자의 집에 압수수색 가면, 수사관을 일부러 몸으로 막는 식이다. 우리 법을 인정 안 하면서, 이 법에 근거해 수사관들을 고소·고발하는 셈이다.”
안보사범 특례법 도입 필요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우리나라는 안보사범과 일반 형사범의 처벌 과정이 차이가 거의 없다”면서 “때문에 국가적 위협 요인에 대한 효과적 대응이 어렵다”고 했다.
“변호인들은 증거인멸, 묵비 등을 사주하고, 수사 방해 목적으로 명분이 미약한 준항고를 수시로 제기한다. 정당한 수사 절차를 과잉수사로 왜곡 선전하기도 하며, 재판관 기피(忌避) 신청 등 노골적 시간 끌기도 한다.”
실제로 북한의 지령을 받고 지하조직을 꾸린 혐의로 2021년 9월 기소된 ‘자주통일충북동지회’ 사건은 피고인들이 법관 기피 신청, 위헌 심판 신청 등 지연책을 동원해 아직 1심 재판 중이다. 그사이 피고인들은 구속기간 만료와 보석 등으로 다 석방됐다.
“여러 선진국은 국가안보사범에 대한 특례법이 있다. 분단국가이거나 적화(赤化)통일 위협이 있는 나라도 아닌데, 일정 한도 내에서 감청과 영장주의 예외를 허용하며 증거인멸 등 국가적 손실 예방을 위해 변호인 접견권, 외부인 접촉, 교통권도 제한한다. 또한 가택이나 사무실을 폭넓게 수색하는 것도 허락한다. 특히 독일의 경우 안보사범에 있어서는 도주 우려와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더라도 구속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점을 우리나라도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 전 수사관은 “미국은 스파이방지법에 따라 국가안보를 해쳤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을 때, 피의자가 묵비권을 행사하면 ‘더 큰 범죄를 숨기기 위한 의도가 명확하다’고 판단, 법정 최고형을 내린다”고 했다.
“우리는 법정에 가면 피고인 측 변호사가 이렇게 말한다. ‘국정원의 감시로 피의자는 수년간 사생활이 없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입을 열지 않겠느냐, 묵비권의 행사도 억울함을 항변하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러고 최저형을 받는다. 미국은 또 안보형사법에 따라 판사가 명(命)하면 모든 공판 절차가 비공개다. 우리는 증인석에 앉을 때 칸막이 하나가 전부다. 증언 내용이 다 들린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나중에 이를 두고 ‘거짓 증언을 했다’며 물고 늘어진다.”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이처럼 수사관들은 근성과 끈기로 총성 없는 대공사범과의 전쟁을 사건마다 극복해왔다”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간첩 천국”
흔히 ‘언제 적 간첩 얘기냐’고 한다. 모르는 소리다. 간첩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내사(內査) 중인 건이 있어 구체적 수치는 기밀이지만, 경우에 따라 수백 명에서 수만 명까지 추산한다.
우 전 수사관은 “지구상 모든 국가에 기술, 무기 정보 등을 위한 간첩이 있는데, 분단국인 우리나라는 오죽하겠느냐”면서 “A·B급 정범(正犯)에 호응 세력까지 포함하면 수만 명 이상 될 것”이라고 했다. 윤 전 수사관은 “최근 적발된 세력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자생적 종북(從北) 세력을 포함하면 이적(利敵) 세력이 수십만은 될 것”이라면서 “사회 곳곳에 뿌리박고 암약(暗躍) 중으로, 지금 대한민국은 간첩 천국”이라고 했다.
남 전 수사관은 “간첩 얘기가 구(舊)시대 냉전논리, 색깔논쟁, 공안몰이라는 건 대남간첩 정체를 숨기기 위한 북한의 위장선전과 안보여론조작 전술”이라고 했다.
“해방 정국 성시백 간첩 사건부터 올해 민노총 침투 간첩까지, 북한은 지난 75년간 대남침투 간첩 활동을 중단한 적이 없다. 김정은 체제가 존속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민주, 평화, 진보, 인권, 통일, 양심인사로 위장한 골수 종북 세력들은 간첩 얘기만 나오면 구시대적 발언이라 주장하지만, 이들 핵심 인사 뒤에는 북한 간첩이나 고첩이 있다. 국정원이 그동안 수사한 반국가단체 및 이적단체가 도합 수십여 개가 넘고 개별 사건 관련자도 부지기수(不知其數)다.”
이들을 잡아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남조선혁명’은 조선노동당 규약 맨 위에 걸린 문구다. 자유대한민국을 제거하고 공산화·초강경 독재 체제화하는 게 최대 목표라는 거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사회혼란과 인명피해도 일으킨다. 남 전 수사관의 말이다.
“KAL 858기 사건으로 중동근로자 등 115명이, 천안함 폭침으로 46명의 용사가 전사했다. 고첩 조창희에 의해 51명이 탄 KAL기와 동·서해상에서 수천 명 이상이 납북됐다. 대량의 군사기밀뿐만 아니라 내·외국인이 납치됐고, 청와대 디도스(DDoS) 공격, 금융망 사이버 공격 등으로 극심한 혼란도 겪었다. 북한은 사과는커녕 자작극이라 선동했으며 반국가 세력은 이를 그대로 따라 주장하며 극심한 분열 상황까지 조장한다.”
이들이 정치권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치명적인 점이다. 왕재산 총책 김덕용의 주거지에서는 ‘야당이 힘을 합쳐 반정부 단일대오를 형성토록 여론 조성하라’는 내용의 지령문이 발견됐다. 실제로 당시 통진당과 민주통합당은 합당해 총선 때 통합 공천했다. 일심회 총책 장마이클 압수물에서 발견된 지령은 민노당 당직자 명단과 일치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마찬가지다. 북한 대남공작원과 연계한 충북동지회, 민노총 침투조직 등과 또 다른 북한공작원과 연계한 제주 ‘ㅎㄱㅎ’, 경남 지역 자통민중전위 등은 진보정당, 지역부문조직 및 민노총에서 상당 기간 암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한중 전 회장의 말이다.
“조합원 100만 명이 넘는 국내 최대 노동단체의 조직국장으로 있던 사람이 20년간 북 대남공작기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가 핵심 시설 등 기밀을 수집했다.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전원의 휴대전화 번호와 노동단체 내부 통신망 아이디(ID) 및 비밀정보를 북한에 전달했다. 전달된 국회의원의 전화를 북한에서 해킹한다면 얼마나 많은 국가기밀이 빠져나갈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이석기 RO 사건처럼 결정적 시기만 온다면 그들은 언제든 체제 위협 세력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다. 간첩들의 위험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윤 전 수사관은 “이번에 문제가 된 모(某) 국회의원뿐 아니라 국회의원 보좌진도 국보법 위반 혐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국회 내에 그만큼 정체성을 숨긴 간첩 또는 종북 주사파가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굳건하게 조직돼 있을 입법 간첩망도 색출해내야 한다”고 했다.
“입법 간첩망 색출해야”
이들 간첩조직들은 각종 시민단체장(長)으로 활동하거나 핵심적 위치에서 국내 집회를 주도하기도 한다. 남 전 수사관의 말이다.
“최근 검거된 간첩단에게 북한이 내린 지령을 살펴보면 ‘진보당 지지 활동을 하라’ ‘통치기관 송전선망 체계 자료를 입수하라’ ‘한미 군사 훈련 중단을 요구하라’ ‘일장기 화형식을 하라’ ‘제2의 촛불 국민 대항쟁을 일으켜라’ 등이 있다. 특히 ‘국민이 죽어간다’ ‘이게 나라냐’ ‘퇴진이 추모다’ 등 피켓 구호까지도 정해줬고, 이는 집회 현장에 그대로 등장했다. 반국가 세력의 여론조작, 선동공작과 시위의 규모가 커지는 추세로 볼 때 정예 핵심 간첩이 상당수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인민학교(초등학교) 때부터 남파공작원을 집중 양성한다. 교육은 김정일정치군사대학으로까지 이어진다. 호송, 침투, 지원 병력 등을 합치면 이 인원은 대략 수십만 명으로 추산된다.
대남공작 기법도 날로 진화한다. 대표적인 게 간첩 통신이다. 과거에는 난수방송, 두뇌난수 등의 아날로그식 지령을 내렸는데, 이제는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를 쓴다. 기밀 정보를 파일, 메시지, 이미지 등에 숨기는 심층 암호기술을 의미한다. 윤 전 수사관은 “북한의 스테가노그래피는 난수 암호까지 이중으로 잠겨 있어 해독하기 굉장히 힘들다”면서 “암호 분야 세계 최고인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에서도 난수 때문에 이를 풀지 못했다”고 했다.
스테가노그래피가 처음 등장한 건 일심회 사건 때다. 총책 장씨의 노트북 압수물에서 발견된 한 대학 캠퍼스 사진 속에 지령문이 들어 있었다. 이한중 전 회장은 “당시 이를 풀기 위해 외국 정보기관에 협조를 요청했는데, 처음 보는 형식이라고 했다”면서 “그사이 국정원 과학수사팀에서 이를 3일 만에 해독했고, 외국 정보기관에서는 국정원의 과학수사 능력이 세계 최상위라고 인정했다”고 했다.
스테가노그래피도 고도화를 거듭했다. 올해 적발된 민노총 간부의 압수물에서 발견된 스테가노그래피는 무려 삼중으로 잠겨 있었다. 슈퍼컴으로도 1만 년 걸리는 수준으로 알려졌는데, 국정원은 이 또한 결국 해독해냈다.
‘文 정부가 김정은에게 주는 선물’
이들의 공(功)은 아무도 치하하지 않았다.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 폐지’가 핵심인 국정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2024년 1월 1일부로 시행된다. 이때부터 대공수사는 경찰이 전담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자, 숙원(宿願) 사업이었다. 2017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그는 연설에서 국정원을 언급하며 ‘혁명’ ‘대청소’라는 단어를 각각 95번, 25번 썼다.
국정원은 1961년 6월 중앙정보부로 창설 이래 63년간 북한 대남공작에 대응해온 ‘컨트롤타워’였다. 국내 대공수사의 90% 이상을 국정원이 전담했다. 우 전 수사관은 “국정원은 국가정보기관과 방첩기관이 함께 들어 있는 형태다. 미국으로 치면 CIA와 FBI를 묶어놓은 격”이라면서 “정보에 대한 가치 판단과 분석이 빠르고 대응력도 높기 때문에 분단된 국가에서는 최적의 조합”이라고 했다. 남 전 수사관의 말이다.
“버마(미얀마) 아웅산 폭탄 테러와 KAL 858기 폭파가 북한 소행임을 신속히 규명할 수 있던 것도 그래서였다. 전국에 걸친 사노맹, 남한조선노동당 같은 사건의 경우 일거에 50~70명을 수사했고, 관련 참고인도 수백 명을 조사했다. 이 밖에도 30~40명 단위 이적단체 등 역대 대규모 사건을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은 국정원의 ‘완전 검증된 수사 능력’ 때문이었다.”
흔히 ‘경찰로의 대공수사권 이관(移管)’이라 표현한다. 한데 경찰은 원래 대공수사권이 있다. 따라서 이관이 아닌 ‘국정원 대공수사권의 폐지’가 맞다. 요컨대 기존 1+1이었던 대공수사가 이제 0+1이 되는 거다.
전직 수사관들은 “이 같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는 ‘대공 참사이자 안보 참사’”라고 했다.
윤 전 수사관은 “대공수사권 폐지는 종북(從北) 주사파 정권에서 자행한 대한민국 자해(自害) 행위이자 문 정부가 김정은에게 주는 선물”이라면서 “검찰과 군(軍) 수사권 박탈에 이은 ‘국가안보기관 무력화(無力化)’의 완결판”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을 통해 국회에 침투한 제5열 세력이 시민사회에 기생하고 있는 종북 주사파 세력들과 연대한 결과다. 대공수사권 폐지에는 정상적이고 순리에 입각한 절차도 없었고, 국민적 합의나 충분한 논의 과정도 없었다. 강한 반대 여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힘을 동원해 북한 김가 세력의 ‘3대(代) 염원’을 한 번에 해결해 갖다 바친 반국가 행위다. 이 땅을 북한과 그 추종 모리배들이 마음 편히 활약할 수 있는 ‘적구화(敵區化) 놀이터’로 만들어버렸다.”
“민주당 주류 의원들에게 수사국은 눈엣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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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7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남북공동선언 국회비준동의 및 종전선언 평화협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송영길 전 대표 등 민주당 인사들. 사진=조선DB |
법 개정의 근거는 ‘국정원의 간첩조작과 인권침해, 그리고 정치개입’이다. 남 전 수사관은 “국정원을 무력화하려는 집단은 국가안보는 염두에 두지 않고 그 점만 집중 부각하는데, 수치상으로 따지면 1% 미만으로 여태 쌓아온 역량을 일순간 빼앗을 만큼 중대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과거 임무 수행 중 몇몇 뼈아픈 실수를 한 요원들은 처벌받았고, 국정원법에 정치관여금지, 직권남용금지 등의 제한장치도 면밀히 뒀다. 자정(自淨) 노력에 더해 검찰 및 사법부의 인권보장, 입법부의 심도 높은 견제까지 받으며 본연의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데, 다수 권력의 민주당 정권이 대책 하나 없이 무조건 밀어붙여 버렸다.”
민주당이 대공수사권 폐지에 필사적인 데 대해 하 전 수사관은 “전제는 북한”이라고 했다.
“민주당 주류(主流) 의원들 상당수가 국보법 위반자들이다. 386세대 민변 변호사 중에서도 국보법 전력자들이 있다. 이들에게 국정원 수사국은 눈엣가시다. 자신들의 통일 열망과 청춘을 빼앗아간 철천지원수로 여기며 적대시(敵對視)한다. 수사국 무력화는 북한의 간절한 희망사항이었다. 입법 폭주로 얻은 결과에 그들은 지금도 환호한다.”
남 전 수사관은 “수사국 폐지를 위한 이들의 움직임은 상당히 용의주도했다”고 했다.
“1998년 민주화 보상심의위와 간첩 장기수 정보사범의 대거 사면, 2000년 비전향장기수 63명 북송과 의문사 진상규명위, 2003년 준법서약제도 폐지, 2004년 과거사진실발전위, 2019년 보안관찰법 폐지까지. 지난 세 번의 진보 정권은 이를 통해 국정원의 인권침해 등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켰다. 국정원 무력화를 위한 집요하고 끈질긴 세력의 힘이 대공수사권 폐지에까지 닿은 거다. 다음 단계는 국가보안법 철폐임이 분명하다.”
경찰, 해외 수사 불가능
윤 전 수사관은 “이 상태로 대공수사 폐지는 무리”라면서 “이는 (앞으로 수사를 전담할) 경찰 폄훼(貶毁)가 아니라, 지금처럼 국가수사 역량을 보존하는 게 국가안전보장 시스템의 무결성(無缺性)을 유지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 전 수사관은 “경찰들이 본분을 다해주길 진심으로 바라지만, 미비점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단적으로 경찰청 안보수사국은 단 4개 과만 편제된 상태다. 안보기획관리과, 안보수사지휘과, 안보범죄분석과, 안보수사과다. 이 체제로는 간첩 수사의 특수성을 극복할 수 없다. 해외정보자산, 대북정보자산, 과학정보자산, 사이버정보자산 및 휴민트 구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경찰이 대공수사 시스템을 갖추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해외 수사 활동이 막혀 있다는 게 큰 문제다. 경찰이 외국에서 정보 수집이나 내·수사 활동을 하면 주권(主權) 침해가 된다. 경찰 조직에도 해외 파견 인력이 있지만, 이는 범죄인 인도 차원의 행정직이다. 이한중 전 회장은 “과거 직파간첩 위주일 때는 경찰도 간첩을 잘 잡았다”면서 “그러나 중국, 동남아 심지어 유럽, 남미 등 세계를 무대로 한 대남공작에 대응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과학·사이버 수사 분야도 마찬가지다. 윤 전 수사관은 “이 분야는 경찰도 훌륭한 조직과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지만, 북한이라는 대상에 대한 경험과 숙련도 차이가 있다”면서 “현재 대부분의 대북 정보와 대북 사이버 견제 활동은 국정원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도 있는 간첩 사건 발표 안 될 것”
경찰 조직 특성상의 한계도 있다. 윤 전 수사관은 “대공수사는 철저한 비밀 활동을 기반으로 하며 장기간 수사가 필수적인데 경찰은 공개 수사가 원칙이고 거기에 익숙해져 있다”면서 “때로는 십수 년이 걸리는 사업을 비공개로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간첩 수사는 그야말로 장기전이다. 윤 전 수사관은 “수사 발표를 하면 국민들은 그저 ‘간첩 하나 잡았구나’ 하지만 한 사건 처리에 10년, 20년이 걸리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수사 일몰(日沒)제’ 등에 따라 진척이 없으면 ‘수사기간 도과(徒過)’로 사건을 종결하기도 한다. 입건 전 장기 조사를 하는 경찰은 승진도 잘 안 된다.
잦은 직렬(職列) 이동도 걸림돌이다. 하 전 수사관은 “국정원 수사관은 입사 후 간첩 수사에만 올인하는 반면, 보안경찰은 정보경찰이나 치안 전담으로 계기마다 전보(轉補)되는 경우가 많아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윤 전 수사관은 “북한 공작망은 엄중한 비(非)노출의 ‘단순연계 복선포치(單純連繫 複線抛置)’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어 통상적 수사 활동으로는 연계망 색출이 곤란하다”면서 “게다가 북한의 대남공작과 국내 주사파 종북 세력에 대한 많은 경험과 이해도 수반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단언컨대 앞으로 민혁당, 일심회, 왕재산, RO와 같은 심도 있는 사건들은 발표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은 간첩 수사 하지 말라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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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2월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발언 중인 문재인 전 대통령. 이날 국정원법 개혁 등에 대한 의견을 논의했다. 사진=뉴시스 |
“공판중심주의로 바뀌면서 법정에서는 정보 증거를 정당한 절차를 통해 확보했는지, 또 권한 있는 자가 제대로 수집했는지가 관건이 됐다. 수사권이 없는 국정원 직원은 간첩 혐의자나 그 관련자의 자발적 협조가 전제된 면담조사를 통한 정보만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떤 정신 나간 간첩 혐의자가 수사권 없는 국정원 직원에게 자발적 조사 협조를 하겠나. 결국 국정원은 간첩 수사의 가장 중요한 분야인 수사권이 수반되는 증거 수집과 피의자 내·수사는 하지 말고 사이드 업무만 하라는 건데, 이건 간첩 수사를 하지 말라는 얘기다.”
설사 유의미한 정보를 얻더라도, 외부 기관인 경찰과의 공유는 쉽지 않다. 윤 전 수사관은 “정보 활용이 편재화(수사는 경찰, 정보는 국정원)되는 것은 대공수사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으로 상호 불신과 불만을 키울 수 있다”면서 “대공수사는 가외성(加外性)의 원칙이 충분히 적용돼야 할 영역”이라고 했다. 남 수사관은 “그 말은 대공수사 메커니즘 및 적법절차 사법 시스템과 북한의 대남공작 역량 및 보안수칙을 간과한 채 둘러댄 정치적 수사(修辭)”라고 했다.
“대공수사 유(有)가치 단서 95%는 수사 권한을 가진 상태에서 얻어진다. 수사 권한 없이 획득하는 대공정보 및 조사서류는 분석·판단·조정·기획 정도에만 활용되는 게 다반사(茶飯事)다. 이를 성급하게 사법처리에 현출(現出)하면 당사자 변호인 및 공판중심주의에 따른 정보 출처나 직권남용, 증거 능력 등 위법 소지에 휘말릴 위험성이 다분하다.”
우 전 수사관은 “지금처럼 이원화(二元化)된 상태에서의 공조는 국가 예산의 낭비일 뿐”이라고 했다. 이한중 전 회장은 “정보기관의 특성상 정보망의 출처 보호로 인해 정보 협력이 완벽하게 이뤄지기 어렵다”면서 “타 기관으로 자료를 이관하는 불필요한 절차를 거치다 보면 수사의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생명이 걸린 국가안보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할 정치인들이 국가안보를 자신들의 정파(政派)에 이용하는 현실이 가슴 아플 뿐”이라고 했다.
“北, 총선 앞두고 대남공작 총가동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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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11월 12일 ‘퇴진이 추모다’라는 피켓을 들고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 이 구호는 북한의 지령문에서도 등장했다. 사진=뉴시스 |
“내년 선거가 시금석(試金石)이 될 거다. 북한은 기존망 정비와 함께 새로운 지하당을 구축해 남한 내 통일전선 전위 세력을 확장하는 한편 노동단체, 시민단체, 진보정당 등에 침투한 간첩과 종북 세력을 조종해 각종 시위를 선동할 것이다. 지령을 받고 시위를 주도하는 자를 잡는 기관이 무력화됐으니, 시위의 규모는 더욱 커질 게 분명하다. 들불이 퍼져나가듯 사회 혼란을 부추기면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강도로 국가보안법 철폐,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국정원 철폐 등을 비롯 자유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행동이 빈발(頻發)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평화협정 체결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대규모 사이버테러 및 교란도 예견된다. 윤 전 수사관은 “김정은은 집권 초기 사이버전(戰)을 ‘만능의 보검(寶劍)’이라고 했다”면서 “북한은 인터넷 공간을 남조선 혁명을 완수할 수 있는 해방구로 여기며 이를 ‘전 한반도의 공산화’를 위한 전위 공간으로 이용한다”고 했다.
“북한은 우리 정부나 안보기관의 핵심 인물을 대상으로 정보 절취를 위한 해킹 메일 유포, 국가 핵심 시설에 대한 디도스 공격과 악성웨어 유포를 통한 마비·파괴 등과 침해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는 트로이목마 공격을 수단으로 허위사실 유포나 여론조작, 여론의 왜곡 등 갖은 방법을 동원, 종북 인물을 제도권으로 진출시키기 위한 진보 세력 단일화 등 사이버 정치 공작을 더욱 강화하고 나설 것이다.”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법 개정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안보 공백을 막으려면 적어도 대공수사권 폐지 시점을 연장하는 등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남 수사관은 “자유대한민국 국가안보를 위해 여야(與野)가 합의해 하루빨리 원상회복하는 것이 최상이고, 차선은 원상회복에 공감하는 당의 의석이 다수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로 국가 대공수사 역량은 명백히 약화됐다. 국정원과 경찰 협업 등 그 어떤 보완 조치로도 만회하기 어렵다. 하루속히 복원돼야 하며, 관련 법 정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분단 현실과 간첩 활동 실태에 제대로 대응하는 국가 대공수사 역량을 갖추게 된다. 국가 안보기관의 정상화를 통해 동독 슈타지 문서를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살아 있는 동안 평양의 대남공작문서를 꼭 열어볼 수 있길 바란다.”
‘눈과 귀는 있고 입은 없다’
남 전 수사관은 “임용 당시 훈육관에게 들은 말이 아직도 맴돈다”고 했다.
“이제 여러분은 눈과 귀는 있고 입은 없다. 국정원장을 대신해 대외 활동을 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간첩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
하 전 수사관은 “국정원 수사관들은 문무(文武)를 갖춘 최정예 안보전사들로 양성된다”고 했다. 수개월의 신원조사 후 임용 때는 원장 앞에서 국가에 헌신하겠다고 맹세했다. 실무 투입 전에는 상당 기간 연수를 받았다. 공수 훈련, 해양 훈련, 권총 사격, 태권도, 합기도 등 무술뿐만 아니라 법률, 휴민트 및 테킨트를 활용한 수사정보 수집과 활용 능력, 어학 및 소양을 익혔다.
윤 전 수사관은 “이를 통해 확고한 국가관, 대적(對敵)관과 보안의식을 장착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출근 1개월간은 볼펜 선 똑바로 긋기, 종이 바로 자르기, 스테이플러 규격대로 찍기 등을 했고, 보안상 청소부를 쓰지 않아 선배들 책상 닦기, 재떨이 비우기를 직접 했다”면서 “그 단계를 지나니 선배들이 작성한 수사서류를 열람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교춤과 악기 같은 것도 배웠다. 이한중 전 양지회장은 “대상자가 갑자기 나이트클럽에 들어가면 따라 들어가야 하는 게 우리 직업”이라면서 “엉거주춤 서 있다가는 금세 들통 나니 배운 것”이라고 했다.
‘하느님, 대한민국을 지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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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요원들은 업무 중 순직하면 ‘이름 없는 별’이 된다. 사진은 순직자들의 추모석. 사진=뉴시스 |
성장기 아들딸에게 공연한 자랑이 못 된 애석함은 끼어들 새가 없었다. 365일 중 휴가를 단 하루도 못 간 해도 있었다. 야근 없는 날은 ‘땡잡은 날’이었다. 이 전 회장의 말이다.
“수사국은 국정원 내에서도 험한 직무다. 누군들 양복 빼 입고 다니고 싶지 않겠나. 훈육관이었을 때 후배들에게 강조한 말이 있다. ‘힘들 때마다 뿌리 깊은 큰 나무를 생각하라.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 모두들 오직 북한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켜 국민의 생명과 자유, 행복을 지켜주겠다는 고집스러운 충성심과 사명감 하나로 일했다.”
수년이 지났지만 미결(未決) 사건은 여전히 사무친다. 우 전 수사관은 “출장 당시 채증에 실패한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장탄식이 나온다”고 했다.
“저 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뻔한데, 역적질을 눈앞에서 보고도 수집을 못 하면 약이 오르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다. 북한 주민들은 굶어 죽는데, 간첩에게는 거액의 공작금을 줘가며 이런 활동을 시킨다는 역사적 현실이 한편으로 참담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런 기도까지 해봤다.
“어릴 때 《어깨동무》라는 어린이 잡지가 있었다. 거기서 ‘도깨비감투’ 이야기를 봤다. 감투를 쓰면 투명인간이 되는 거다. 갑자기 그게 떠오르더라. 이렇게 빌었다. ‘하느님, 대한민국을 지키고 싶습니다. 목적에 부합하는 행동만 할 테니, 도깨비감투 하나만 주세요.’”
동남아 어딘가에서 밤을 지새울 때 한 기도였다. 돌아보면 숱한 불면(不眠)의 밤이었다. 이제 이들은 다른 이유로 잠 못 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