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컴퓨터 문외한이 단칸방에서 ‘책과 컴퓨터’ 접목한 사업 시작
⊙ IMF로 모두가 힘들 때 도서관에 데이터베이스 판매해 ‘대박’
⊙ POD 개념 중 하나인 디지털 인쇄 도입 “책 한 권도 인쇄 가능”
⊙ 日語 번역 프로그램 자체 개발… 번역부터 배열까지 원스톱 해결
⊙ “인쇄업이 사양산업? 발전 가능성 무궁무진”
⊙ 채종준 대표가 말하는 ‘先진화론’이란?
蔡鐘俊
1959년생. 숭문고등학교 졸업 / 1992년 한국학술정보(KSI) 설립. 現 한국학술정보(KSI) 대표
⊙ IMF로 모두가 힘들 때 도서관에 데이터베이스 판매해 ‘대박’
⊙ POD 개념 중 하나인 디지털 인쇄 도입 “책 한 권도 인쇄 가능”
⊙ 日語 번역 프로그램 자체 개발… 번역부터 배열까지 원스톱 해결
⊙ “인쇄업이 사양산업? 발전 가능성 무궁무진”
⊙ 채종준 대표가 말하는 ‘先진화론’이란?
蔡鐘俊
1959년생. 숭문고등학교 졸업 / 1992년 한국학술정보(KSI) 설립. 現 한국학술정보(KSI) 대표

- 사진=KSI 제공
채종준 대표가 이끌고 있는 KSI는 국내 최초로 학술정보 원문 검색 시스템인 KISS(Koreanstudies Information Service System)를 개발해 현재 약 3320여 종의 간행물과 137만여 건의 학술논문을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어 전 세계에 제공하고 있다.
해외 대학 100여 곳은 물론, 국내 공공기관과 기업연구소 300여 곳, 국내 대학 300여 곳이 KSI가 제작한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고 있다. KSI가 학술정보 데이터베이스만큼은 국내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KSI는 ‘북토리(Booktory)’ ‘스탑북(STOPBOOK)’ ‘카드큐(CARDQ)’라는 자체 인쇄 브랜드도 보유하고 있다.
채종준 대표는 말투도 조곤조곤하고, 시종일관 겸손했다. 본사를 포함해 사업장 네 곳, 직원 340여 명을 거느리고 있는 기업 대표라는 생각이 거의 안 들었다. 심지어 “고등학교 때 반에서 늘 50등 밖이었고, 영어 실력은 중학생보다 못했다”고 실토(?)하며 웃었다. ‘고졸 학력’으로 ‘학술정보 데이터 부자(富者)’가 된 그를 경기도 파주시 KSI 본사에서 만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 탐독
― 대학에 안 간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안 간 것이 아니라 공부를 못해 못 갔습니다. 대신 다른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 뭔가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신문 기사를 많이 봤어요. 초등학교 때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봤으니까요. 그때는 한자가 많아 재미도 있었고 공부도 많이 됐습니다.”
―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투성이인 신문을 탐독했다니 대단합니다.
“공부는 안 하고 신문은 열심히 봤던 것 같습니다.(웃음) 공부는 하기 싫고 할 일이 없으니 신문을 매일같이 꼼꼼하게 읽었죠. 신문이 제 시각에 오지 않으면 불안 증세를 느낄 정도였어요. 인터넷 시대인 지금도 종이신문은 저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원입니다.”
― 세속적인 질문입니다만 ‘고졸 학력’과 ‘학술정보 데이터’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비록 학력은 짧지만 변화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변화의 흐름이라면, 사업과 관련이 있겠군요. 학술정보와 연을 맺은 계기는 뭡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시작한 일이 전자오락실 사업이었습니다. 1980년대 초였어요. 1년도 안 돼 3000만원가량 빚을 지고 문을 닫았어요.”
― 막막했겠습니다.
“다행히 외국 원서(原書)를 복사해 판매하는 출판사의 외판원으로 취직할 수 있었죠. 외판원을 하면서도 신문은 끊임없이 읽었어요. 당시엔 신문마다 ‘해외토픽난’이 있었습니다. 해외토픽난엔 새로운 정보가 많이 소개됐죠. 1988~89년경 해외토픽 기사로 ‘미국 국방부 직원들은 컴퓨터와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일한다’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앞으로는 컴퓨터로 일하는 시대가 온다’는 게 요지였죠.”
― 신문에서 영감을 얻었군요.
“네. 기사 내용이 너무 신기했어요. 직업이 출판사 외판원이다 보니 그 기사를 보고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책을 컴퓨터에 넣으면 전국을 돌아다니며 판매할 필요가 없겠다.’”
― 직업적 필요의식 속에서 아이디어가 나온 셈이네요.
“몇 년 뒤 신문에 첨단 기술에 밀려 사라진 스캐너(scanner)라는 기계가 소개됐습니다. ‘신문이나 책의 내용을 통째로 컴퓨터에 입력할 수 있다?’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그러던 중 다니던 출판사가 해체됐고, 결국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 이후 창업에 나섰나요.
“네. ‘내가 직접 컴퓨터로 그동안 생각해왔던 아이디어를 실현시켜보자’는 생각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한 겁니다. 그게 1992년입니다.”
‘책과 컴퓨터’ 접목해 상상한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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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종준 대표는 1990년대 초, ‘책 내용을 데이터베이스화할 필요가 있다’고 착안했던 주역이다. 사진은 당시의 상황을 카툰(cartoon) 형식으로 제작한 것이다. 사진=KSI 제공 |
“수중에 돈이 없긴 했죠. 당시 서울 은평구 수색에서 철거를 앞두고 있던 재개발 단지 안에 방 한 칸을 얻어 일을 시작했습니다.”
― 정확히 무슨 일을 한 겁니까.
“마침 그 당시 초고속 통신망 사업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왔어요. 전국에 초고속망을 깔면 앞서 미국 국방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컴퓨터와 컴퓨터가 연결된다는 것이었죠. 우리나라에서는 ‘정보 고속도로’라고 표현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지금의 인터넷 같은 개념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판매하는 사람이니 초고속 통신망을 이용해 책을 판매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당시 우리나라는 ‘정보 불모지’였는데, 획기적인 발상이었네요.
“저는 세 가지 이유에서 승산이 있다고 봤습니다.”
― 그 세 가지가 뭡니까.
“한 번은 어느 교수 연구실을 찾은 적이 있는데 좁은 공간에 책이 쌓여 있더라고요. 교수가 제가 판매하러 온 책을 보며 ‘이 책 샀으면 좋겠는데, 꽂아 놓을 자리가 없다’고 해요. 결국 고객의 공간 문제를 해결해줘야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번째는 기술 서적의 경우 교수들이 지금껏 책을 사 왔는데 막상 필요한 내용을 찾으려고 하니 어느 책에 관련 내용이 있는지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더라고요. 책이 있으나 마나 한 겁니다. 이 부분도 판매에 영향을 끼친다고 파악했죠. ‘어떻게 하면 관련 내용을 빨리 찾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 나머지 하나는 뭡니까.
“세 번째는 자동차가 늘어나니 교통 체증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자동차가 늘기 전만 해도 하루에 서너 군데를 찾아갔는데, 차가 밀리니 두 군데밖에 못 가게 되더라고요. 10년, 15년 후에는 하루 한 군데 방문하기도 어렵겠다고 판단했죠. ‘일일이 돌아다니지 않고 판매할 방법이 없을까’ ‘직접 대면하지 않고 판매할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했죠.”
― 그래서 책과 컴퓨터를 접목하기로 한 거군요.
“그렇습니다. 공간이 없어 사야 할 책을 못 사는 고객들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책 내용을 컴퓨터에 저장하면 해결되죠. 책에 관련 내용이 있는지 찾을 때 컴퓨터의 검색 기능을 활용해 목차나 인덱스로 검색할 수 있도록 하면 문제가 풀리죠. 또한 컴퓨터와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연결하면 방문 영업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었죠. 모두 컴퓨터를 이용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컴퓨터를 10미터 이내에서 본 적 없어”
― 이미 그때부터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았겠네요.
“아니에요. 1990년대 초반까지 컴퓨터를 10미터 이내에서 본 적이 없었어요.”
― 네?
“당시만 해도 컴퓨터는 대학과 기업에서나 사용하고 일반화되지 않았죠. 컴퓨터라는 게 있다는 것만 알고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서나 봤지, 실제 접해보진 못했죠. 학교에서도 컴퓨터 관련 교육이 없었죠. 그래서 없는 돈을 들여 컴퓨터를 겨우 샀는데, 퇴근해서 컴퓨터를 켜놓고 좀 익히려고 하는데 뭐가 뭔지 알 수가 있어야죠. 그 당시 운영체제는 거의 다 도스(Dos)였어요. 도스는 명령어를 알아야 하잖아요. 주변에 물어볼 데도 없고…. 너무 답답해 컴퓨터를 몇 번 발로 걷어차기도 했죠.(웃음)”
― 여러 가지로 막막했겠네요.
“그러다가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어요. 어느 컴퓨터 관련 전시회에서 제가 원하는 프로그램과 비슷한 걸 개발할 수 있다는 미국 회사를 만났습니다.”
― 원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책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그런 프로그램을 말하는 건가요.
“네. 스캔(scan)을 해서 책처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요. 당시 국내엔 이런 프로그램이 없었습니다. 사장이 한국인이라 제가 갖고 있는 아이디어를 솔직하게 이야기했죠. ‘하고 싶은 의욕만 있을 뿐이지 개발비를 드릴 돈은 솔직히 없습니다’라고요. 그랬더니 사장이 ‘아이디어가 좋은 것 같다’며 3개월 후에 답을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 결국 성공했나 보군요.
“그 회사와 프로그램 개발을 하긴 했는데, 문제가 있었어요.”
― 뭐였나요.
“책이나 학술지를 스캔해 컴퓨터에 저장해도 이를 내다 팔 시장(市場)이 거의 없었습니다. 데이터라는 게 축적이 돼야 빛을 발하는데, 초기 단계라 제가 갖고 있는 데이터 역시 풍부하지 않았죠. 처음 4~5년 정도는 데이터베이스 구축만을 목표로 하고 1996년부터 판매를 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때 직원 2명과 함께 일을 했는데 고생이 많았죠.”
― 책은 몰라도 학술지는 고정적인 수요가 있으니 사정이 좀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그나마 초기에 학회와 프로그램 저작권 계약을 체결할 수 있어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당시는 학회에서도 디지털 파일, 디지털화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학회 젊은 교수 중 유학한 사람이 많아 이분들을 계속 설득했죠. 도서 스캔 프로그램을 개발한 직후인 1993년부터 학회와 계약을 체결해나갔습니다.”
‘하늘이 준 기회’ IMF 구제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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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초반의 채종준 대표. 사진=조선DB |
“1995~1996년에 국내 초고속 통신망 사업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가 도래한 것이죠. 제가 예상한 대로 대학 도서관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한 학술지 서비스를 도입하려고 했습니다. 1996년 가을부터 영업을 시작했죠.”
― 3년 만에 빛을 발한 셈이네요.
“그런 셈입니다. 1993년부터 저작권 확보를 시작했고, 1996년부터 ‘풀 텍스트(full text·전문)’ 서비스를 시작했으니까요. 당시엔 풀 텍스트이긴 했지만, 스캔본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때 미국이나 영국의 세계 최고 출판사들도 자료를 요약본(abstract)으로만 제공하고 있었어요. 저희가 전체(풀 텍스트)를 제공했으니 상당히 앞섰던 거긴 하죠.”
― 획기적이긴 했지만 말씀하신 대로 수요가 따라줬을지 궁금하네요.
“학회에 가서 이런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했더니 제게 ‘미쳤냐’고 하더라고요. 도서관에서도 비슷한 소리를 들었죠. 제 생각은 달랐어요. 디지털화된 자료를 볼 수 있는 여건만 만들어준다면 충분히 판매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학문 수준이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고 그 과정에서 국내 학술지가 가장 중요한 지식정보 자원이 될 것이다’라고 계속 설득했죠.”
― 학술지를 판매하는 전자상거래를 국내 최초로 도입한 거네요.
“그렇지만 곧 위기가 닥쳤어요. 1997년 12월에 IMF가 터졌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거의 패닉 상태인데, 저는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 도서관 정보화 사업을 위해 국가가 도서관 육성을 위한 자금을 많이 내려줬습니다. 학술 자료 데이터베이스를 구입하라는 용도였죠. 한데 당시 데이터베이스는 거의 다 해외 자료였습니다.”
― 도서관 육성 자금은 다소 생소합니다.
“도서관에서 해외 데이터베이스를 구입하면 그 비용의 일부를 국가가 지원해줬습니다. 도서관은 IMF로 고환율이 지속되니 해외 자료 10개를 살 수 있던 돈으로 5~7개밖에 못 사는 형편이었어요. 그 바람에 도서관마다 도서관 육성 자금 일부가 남는 상황이 발생했어요. 저는 이 자투리 예산을 집중 공략했어요.”
― 어떻게요.
“어쨌든 도서관 입장에서도 예산을 남길 수 없으니 국내 데이터베이스라도 구입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그 덕에 IMF 2년 차에 8억원어치를 판매할 수 있었죠. 전국 도서관을 죽도록 뛰어다녔습니다. 그 결과 빌린 사채(私債) 등을 모두 변제하고 회사는 큰 이익을 볼 수 있었습니다.”
POD 개념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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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SI가 취득한 각종 기술인증만 수십여 개에 달한다. 사진=KSI 제공 |
“그 과정에서 틈새 하나를 발견하는 운도 따랐습니다.”
― 뭐죠.
“도서관에서 종이책을 사지 않아 종이책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것이죠. 종이책 수요가 줄면 아주 소량으로 책을 만들어야 하니까 ‘소량을 인쇄하는 시스템이 앞으로 나올 것이다’라고 생각했죠.”
― 단행본을 제작해본 경험상 책은 500~ 1000부가 기본 부수인데요.
“그렇죠. 근데 안 팔릴 책을 굳이 그만큼 찍을 필요가 있을까요. 수요가 줄어들면 그에 따라 생산도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 책을 소량 인쇄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구체화해나갔습니까.
“일단 복사기에 주목했습니다. 당시에는 복사기 기술이 고도화하던 시절이었어요. 복사기 기술은 계속 ‘속도가 빨라질 것이고 품질이 좋아지면 소량으로 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 생각하고 있는 기술과는 어떻게 연(緣)이 닿은 겁니까.
“일본 학회지들을 수집하기 위해 일본 출장을 간 적이 있습니다. 주말에 할 일이 없어 도쿄도서전을 둘러봤는데 미국 제록스(Xerox)사(社)에서 만든 복사기 같은 기계를 설치해놓고 (제가 평소 생각해오던 식으로) 인쇄를 하더군요. 제가 평소 생각했던 그런 시스템이더라고요. 제록스에 물어보니 POD(Publish On Demand)라는 새로운 출판 인쇄 시스템이라고 하더군요.”
― POD 인쇄 시스템 도입 과정이 궁금합니다.
“그 자리에서 일본 후지제록스 직원에게 제 명함을 주고는 ‘이 기계를 사고 싶으니 한국에 있는 제록스 직원에게 전달해달라’고 했습니다. 한 달 만에 연락이 오더라고요. 코리아 제록스 영업사원에게 ‘왜 이제 연락하느냐, 기계를 살 테니 갖고 오라’고 했죠. 당시 시세로 3억5000만원짜리 기계였습니다. 1년 동안 영업해도 팔지 못했는데, 전화하자마자 기계를 갖고 오라고 하니 제록스도 황당했겠죠. 나중에 들어 보니 크고 쟁쟁한 회사에서도 사지 않는 기계를 들어보지도 못한 소규모 회사를 운영하는 제가 사겠다고 하니 제록스 측에서도 ‘이거 연락해봤자 소용없다’ 생각하곤 계속 미뤘답니다.(웃음) 그렇게 기계를 사서 디지털 인쇄 사업을 시작했죠.”
― 대단한 추진력이네요. 그런데 디지털 인쇄란 게 정확히 어떤 개념입니까. 기존의 오프셋(offset) 인쇄랑은 어떻게 다른가요.
“오프셋 인쇄는 인쇄 과정에서 인쇄판을 뽑는 과정이 있지만, 디지털 인쇄는 인쇄판이 필요 없어요. 따라서 오프셋 인쇄에 비해 공정이 단순하죠. 당연히 인쇄비용을 줄일 수 있어요. 가장 큰 장점은 책 한 권도 인쇄할 수 있다는 겁니다. 고객의 요청에 맞게 책을 제작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진화론’ 앞에 ‘先’을 붙인 ‘先진화론’이란?
― 그 당시 한국은 디지털 인쇄 불모지였죠.
“당시 한국엔 디지털 인쇄 사업이라는 시장 자체가 없었습니다. 외국도 마찬가지였고요. ‘앞으로 한 10년 동안 이 분야에 집중하면 시장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디지털 인쇄 사업에 매진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마흔하나였고 데이터베이스 사업도 안정돼가던 무렵이었어요.”
― 돈이 점점 불어났겠군요.
“솔직히 갈등도 많이 했어요. 없던 돈이 생기니 남들과 비슷한 생각이 들었어요. 부동산 같은 데 투자할까 하는 생각요. 그런데 그 생각은 이내 접었죠. ‘남들이 하지 않은, 그리고 아직 세상에 없는 사업에 도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래서 디지털 인쇄라는 소량 인쇄 시스템에 도전한 겁니다. 여기에 모든 역량을 투입했습니다. 10년이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20년이 걸려서야 시장도 생기고 사업도 안정화를 이뤘네요.”
― 미래를 보는 남다른 안목(眼目)이 있나 봅니다.
“저는 항상 두 가지를 생각해요. 디지털 기술에 기반해 사업 비즈니스를 찾는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다윈의 진화론(進化論)에 따라 일한다는 겁니다. 진화론이란 환경이 변하면 생물도 살아남기 위해 그 환경에 맞춰 진화한다는 거잖아요. 지금의 디지털 기술은 너무 급속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디지털 환경에서 사업하기 위해서는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는 정도로는 안 됩니다. 그럼 도태됩니다. 앞으로 변화될 환경을 예측해 진화해 있어야 합니다.”
― 한 발짝 더 앞서나가야 한다는 얘기군요.
“제가 엄청난 자본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지적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잖아요.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했습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나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 수준에만 맞춰 나가면 100% 실패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분야가 5년, 10년 후에는 어떻게 변해 있을지를 추정하고 미리 변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5년, 10년 뒤에 변해 있을 환경을 염두에 두고 미리 진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환경에 적응한 게 아니라 미리 진화한 셈이죠. 저는 진화론 앞에 선(先)을 붙여 ‘선진화론’을 주창(主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시장이 생기기 전에 데이터베이스와 디지털 인쇄 분야에 뛰어들었고, 지금은 독보적인 영역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국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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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종준 대표는 2012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세계에서 가장 큰 인쇄 전시회 중 하나인 DRUPA에서 소개된 적도 있다. 사진=KSI 제공 |
“한국에는 240명이 중국에는 상근직 약 60명을 포함해 100명이 있습니다. 직원 수는 총 340명 정도 되죠. 소프트웨어 개발과 관련된 직원만 20명입니다. 일반적으로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 회사도 20명이 되는 회사가 많지 않습니다. 즉 다른 인쇄 회사들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거의 없다는 겁니다. 저희는 데이터베이스 사업을 해왔기에 (소프트웨어와 관련해) 경쟁력이 있죠.”
― 중국 진출도 했나 보네요.
“2000년에 코엑스에서 서울 국제도서전이 열렸어요. 신문을 보니 중국 조선족 출판사가 온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중국에서 사업을 해야 하는데 함께 사업할 파트너가 왔다고 생각했죠. 조선족 출판사들이 통합 부스를 마련해서 참여했습니다. 부스에 찾아가서 제가 물어보는 것에 성의 있게 설명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붙잡아 사업 파트너로 삼을 생각이었습니다. 마침 그런 사람이 있어 내가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내가 중국어를 못하고 중국에 가본 적이 없으니 당신이 중국으로 갈 때 나와 같이 사업을 해볼 의향이 있으면 같이 가자고 했고 급하게 비자를 발급받아 중국으로 갔죠.”
― 성과가 있었습니까.
“중국에서 귀국하면서 ‘한 달 보름에서 두 달쯤 지나 돈을 보낼 테니 회사를 설립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보낸 돈으로 비품도 사고 직원을 뽑고 월급도 주라고 했죠. 그런 후 중국 옌볜(延邊)대학교 출판사와 일을 시작했습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한 지 20년째인데, 중국 사업도 앞선 사업과 마찬가지로 충동적인 것 같지만 사전에 면밀하게 준비했죠.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에서도 IT 기술을 접목해 업무 효율을 굉장히 높였습니다.”
― 옌볜대학교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중국 출판사 직원 수준은 한국 언론사 기자들의 수준과 맞먹는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출판사 직원들은 중국에선 최고의 엘리트죠. 더구나 대학 출판사면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죠. 20여 년 동안 한국 기업이 옌볜에 많이 진출했습니다. 이들 기업이 현지에서 스카우트 대상으로 노리는 인력이 바로 우리 회사 직원들입니다. 우리 회사에서 1년만 일해도 더 좋은 대우를 받아 이직할 수 있죠. 그럼에도 국내 직원을 파견해 관리하지 않았어요. 중국 현지인들을 고용해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했죠. 저도 1년에 2~3일 일정으로 서너 차례 방문하는 정도입니다. 현지 책임자도 10년 넘게 바뀌지 않고 있고요. 단단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일하도록 한 것입니다.”
“인쇄업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 KSI가 자체 개발한 번역 소프트웨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이버의 인공지능 번역 프로그램인 ‘파파고(Papago)’를 활용해서 일본 만화를 번역하는 프로그램을 우리가 작년부터 개발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화에 말풍선이 있지 않습니까. 저희가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말풍선에 적힌 일본어를 지우고 번역한 내용을 삽입하는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만화책 한 권이 150~170페이지면, 모든 말풍선을 번역하고 교체하는 데 수정을 3만6000번 정도 거쳐야 합니다. 일본은 세로쓰기인데, 우리는 가로쓰기잖아요. 이것도 바로잡아줘야 하고, 글씨 크기도 말풍선 크기에 알맞게 줄여야죠. 저희가 만든 프로그램은 번역부터 배열까지 원스톱으로 끝낼 수 있습니다.”
― 신기하네요.
“일본 최대 인쇄 회사에서도 최근 만화 번역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번역과 디자인에 소요되는 시간이 46%나 줄었다고 합니다. KSI는 올해 약 100종의 일본 책 번역 출판계약을 체결했습니다. 2023년부터는 한 해 200종씩 번역할 계획입니다. 저희가 개발한 번역 프로그램으로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KSI엔 일본어 전문 번역자들만 6명이 있습니다. 앞으로 20명까지 늘릴 생각이고요.”
― 학술정보뿐 아니라 첨단 인쇄 시설, 그리고 소프트웨어까지 토탈 시스템을 갖췄군요.
“일본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출판물 번역 프로그램을 개발한 회사는 모두 KSI 같은 인쇄 회사입니다. 이 일본 회사는 매출액이 14조원에 이르는 거대 기업입니다. 이처럼 인쇄 사업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는 새로운 사업환경이 계속 구축되고 있습니다.”
―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KSI에 관심을 가질 것 같은데요.
“다른 건 몰라도 POD 분야는 외국에서도 저희 회사를 최고 수준으로 인정합니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한 해 약 60개 외국 업체가 저희 회사를 견학할 정도였죠. 물론 디지털 인쇄기 제조업체에서 홍보 목적으로 견학단을 꾸려 방문하는 것이긴 하지만, 가치가 없으면 견학까지 하진 않겠죠?”
기자는 채종준 대표의 안내를 받아 회사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KSI는 신문사와 비슷한 구조였다. 신문사 편집국에 해당하는 ‘학술 데이터베이스’ 부서, 신문사 윤전기 시설과 비슷한 ‘인쇄 시설’, 그리고 ‘출판’ 부서가 갖춰져 있었다. 특히 KSI의 인쇄 시설은 최첨단 장비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채 대표는 이런 말을 했다.
“남들은 인쇄업이 사양산업이라고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인쇄업에 IT를 접목하면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저는 인쇄업만큼은 국내 상위로 성장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무일푼으로 시작해 세계가 주목하는 CEO로 거듭난 채종준 대표.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어 보였다. 그가 구상하는 미래 청사진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