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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동섭 강남세브란스병원장

모든 의사가 환자들을 더 잘 돌볼 수 있게 하려 병원장 맡아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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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독 환자 좋아한 췌장암 名醫
⊙ ‘국민안심병원’ 1호… 코로나19 첫 확진자 이후 선제적 바이러스 통제
⊙ 816병상으로 규모 작지만 ‘최대 효율’… 부임 이래 역대 최고 수익률 更新
⊙ 傾聽하는 병원장… “윤 병원장 부임 후 의료진 표정 밝아졌다” 評
⊙ 병원 규모 2배 확대 목표, “미래 준비한 병원장 될 것”

尹東燮
1961년생. 연세대 의학과 졸업 / 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교수, 연세대 의대 부학장, 강남세브란스병원 기획관리실장, 강남세브란스병원 췌담도암센터 소장, 연세대 의대 외과학교실 주임교수 / 現 강남세브란스병원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대한의학회 부회장
  전장(戰場)에는 파괴와 건설이 공존한다. 희생자가 생기는 한편, 그의 치료를 위해 의학 기술은 발전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라는 전쟁에서 최전방(最前方)은 병원이다. 지난 4월 1일, 강남세브란스병원은 그야말로 전시상황을 방불케 했다. 방호복을 입은 직원이 곳곳에 배치해 있었고 대부분의 출입문은 폐쇄된 상태였다. 단 두 곳, 개방된 출입구에서는 철저한 검역 절차가 이뤄졌다. 삼엄했다. 한데 묘했다. 가만히 보니, 혼돈 속에 엄연한 질서가 있었다. 안내에 따라 내원객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예고 없는 바이러스였지만 마치 대비한 듯했다. 지휘자 덕이다. 병원에도 수장(首長)이 있다. 전쟁 속, 건설적인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윤동섭(尹東燮·59) 병원장을 만났다.
 
 
  코로나19 선제적 防禦
 
2020년 신년사를 하는 윤동섭 병원장.
  시국(時局)이 이런 만큼 악수는 생략했다. 앉자마자 병원 앞 광경 얘기부터 꺼냈다.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후 즉각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연일 이어진 회의로 의료진분들이 정말 고생이 많았어요. 병원장으로서 제가 한 일은 동선(動線)을 분리한 겁니다. 1층 주출입구와 지하 1층, 두 군데만 열고 문진표 없이는 입장이 불가능하도록 했죠.”
 
  선제적 바이러스 통제였다. 이후 선별진료소, 안심진료소를 설치하고 특정 병동을 비워 공간을 확보했다. 망설임은 없었다. 윤 병원장은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당시 경험이 탄탄한 기반이 됐다”고 했다. ‘국민안심병원’ 제1호 타이틀도 그때 쥐었다.
 
  “의료진과 환자 모두 메르스 당시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조치한 통제 절차를 모두가 잘 이해했고, 잘 따라줬습니다. 물론 현재진행형이지만, 특히 간호사분들이 고생이 컸습니다. 확진 환자 한 명당 중환자 관리 경험이 있는 간호 인력 15~20명이 필요해요. 환자 두 명이면 서른 명이 필요한 셈이죠.”
 
  윤 병원장은 이어 “코로나 사태는 언젠가 종식될 것”이라면서 “다만 시기의 문제인데, 이를 앞당기기 위해 모든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사실 부담이었다. 이 난국(亂局)에 상급병원장을 만나는 게 말이다. 근심이 오죽하겠나 싶어서다. 괜한 염려였다. 그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있었다. ‘준비된 자의 여유’로 해석했다.
 
  실제로 강남세브란스병원은 평소 감염관리에 만반의 채비를 해왔다. 윤 병원장은 “감염관리는 메르스나 코로나19와 같은 유행성 바이러스 사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라면서 “평시(平時)에도 병원 내 감염은 가장 큰 화두”라고 말했다. 병원 내 감염은 환자, 직원, 면회객에서 진료기구까지 다양한 매개(媒介)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질병의 감염을 뜻한다. 이를 관장하는 곳이 감염관리실이다.
 
  “이곳 감염관리실에는 국내 감염관리학 부문의 리더급 인사들이 자리하고 계십니다.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장이신 송영구 감염내과 교수를 비롯해, 메르스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정석훈 감염관리실장을 예로 들 수 있어요.”
 
  참고로 정석훈 교수는 메르스 당시 두 차례 ‘음성’ 반응이 나온 환자를 끝까지 놓지 않은 인물이다. 다들 격리 해제를 하자고 했지만 불안하다며 세 번째 검사를 고집했다. 그 환자는 끝내 양성 판정을 받았다.
 
 
  ‘어벤저스급 의료진’ 자랑
 
윤 병원장은 간담췌외과 전문의인데, 까다롭기로 유명한 췌장암 수술 명의다. 사진은 수술 중인 그의 모습.
  자랑거리는 철저한 감염관리뿐만이 아니다. 윤 병원장은 “강남세브란스의 암병원, 척추병원, 심뇌혈관병원 등은 명성 있는 국제학회를 리드하는 수준”이라면서 “호흡재활과 미토콘드리아 질환 등 희귀 질병 분야의 경우 한국에서 가장 많은 연구 성과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갑상선암 수술은 전 세계 최고라 자부합니다. 대동맥 수술도 마찬가지예요. 국내 대동맥 환자의 3분의 1이 이곳에서 수술합니다. 심장혈관외과 송석원 교수팀은 이 분야에서 견주기 힘든 1등이죠. 지난해 모셔온 노성훈 교수 같은 경우 전 세계에서 위암을 가장 많이 수술하신 분입니다. 위암 분야 또한 최고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는 연세대 소속 270여 명의 교수진이 포진해 있다. 약사, 간호사, 의사까지 총 의료진은 2000명이다. 윤 병원장은 한동안 의료진을 일일이 호명하며 그들의 공을 기렸다. 그는 “척추치료, 전립선암도 명실상부 큰 자랑 중의 하나이며, 이영목 교수팀은 희귀난치성 질환, 정준 교수팀은 유방암 분야를 매우 잘 이끌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자찬(自讚)하지는 않았지만, 간담췌외과 전문의인 윤 병원장 자신도 췌장암 수술 명의(名醫) 중 하나다. 국내 최초로 췌장암 로봇 수술에 성공한 의사기도 하다.
 
  이 같은 ‘최고’는 무수히 뿌린 ‘최초’란 씨앗의 열매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1996년, 장기이식 수술 중에서 가장 힘들다는 폐이식 수술을 국내 최초로 성공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국내 최다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1999년에는 국내 최초로 난치병인 근육병 환자에게 근육세포이식 수술을 시행했다. 당시 의료계의 큰 반향이었다. 그 밖에도 2003년에는 국내 최초로 630g 극저체중아에 대한 장천공 수술에 성공했으며, 1984년에는 국내 최초로 화학적수핵분해(Chemonucleolysis) 기법의 척추수술을 시행해 의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아시아 최초로 수술용 로봇 ‘다빈치S’를 도입한 병원도 이곳이다. 2011년에는 강남 지역 최초 ‘국제의료기관평가(JCI)’ 인증도 받았다.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 관련, 무려 1200여 개 항목을 통과해야 되는 까다로운 인증이다.
 
 
  부임 후 역대 최대 실적 경신
 
현재 강남세브란스병원은 3만 평이 안 되는 부지를 쓰고 있다. 상급병원으로서 병상 수가 부족한 상황이라 증축이 필요하다. 윤 병원장은 장기적으로 병원을 2배 규모로 키울 계획이라고 했다.
  스스로 ‘말을 잘 못 한다’고 했지만 그는 달변가에 가까웠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전달력이 좋았다. 이를테면 ‘가, 나, 다’가 만져질 만큼 또박또박했다. 상대방이 마침표를 찍기 전 입을 떼는 법도 없었다. 그런 그는 주로 ‘사람’ 얘기를 했다.
 
  ‘실적’ 이야기는 좀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부임 이래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역대 최고 수준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취임한 해인 2018년 연간 진료수익은 최초로 4000억원을 돌파했다. 2019년 1월에는 월 진료수익이 역대 최고 기록을 달성했고, 같은 해 7월 11일에는 일 최고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일평균 외래 환자는 3500여 명으로 집계됐으며, 병상가동률은 91% 이상이다.
 
  국내 상급종합병원(3차 의료기관)은 총 42개다. 이들은 모두 병상이 1000개가 넘거나 육박한다. 강남세브란스는 816개다. 병상 수로만 따지면 42개 병원 중 37번째다. 하지만 진료수입은 10위권 내(9위)에 든다. 요컨대 규모는 작지만 효율이 좋다는 의미다. 여기서 안주(安住)할 생각은 없다.
 
  “병상률 90~95%는 남는 병실이 없다는 겁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모든 환자를 관리할 수는 없어요. 그 때문에 경증 외래환자들은 동네 병의원과 협의해 회송 시스템을 구축하고 우리는 중환자 병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어서 아시겠지만, 감염격리병상도 잘 구비해놔야 하고요.”
 
  윤 병원장은 “그러려면 지금 한정된 부지(敷地)로만은 부족하다”고 했다. 현재 병원은 3만 평(9만9173㎡)이 안 되는 공간을 쓰고 있는데, 주차공간도 부족한 형국이다. 그는 “합법적으로 증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지하 개발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 병원을 두 배 규모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 병원 앞 매봉산 부지 활용도 구상 중이다. 집무실 창 너머로 매봉산 기슭이 눈에 들어왔다. 윤 병원장은 “병원 소유의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인 ‘도곡근린공원’의 공공기여를 통해 종합의료시설을 확충할 것”이라면서 “여러 규제로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환자들에게 좀 더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려면 증축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당초 올해 목표 수익률이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주춤하게 됐다. 병원장으로서 수익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지만, 얽매이지는 않는다. 당장의 성과보다 향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병원장으로 있는 동안 결과물을 내놓기보다 10년, 20년 뒤 어떤 위상의 병원을 만들지가 더 큰 과제”라면서 “지금도 1등 분야가 많지만 앞으로 선도 분야를 10개 정도 더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지난해 전 사원과 ‘미래(MIRAE)’라는 키워드를 공유한 것도 그래서다. 물론 이를 통해 현재까지 낸 성과도 있다. 우선 병원 행정은 간소화하는 한편,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대폭 확대했다. 최신 MRI, 로봇수술기 ‘다빈치 XI’, 수술용 3D 내비게이션인 ‘O-Arm Navigation’을 도입해 수술 혁신도 꾀했다. 그 밖에 수술실과 상담실 공간을 확대했고, 전화예약시스템(CTI) 개선과 간편 진료예약시스템 도입으로 예약 혼잡 문제도 풀어냈다.
 
 
  환자 유독 좋아하던 의사
 
  오는 7월이면 병원장이 된 지 꼬박 2년이다. 의료기술에 더해 경영 마인드까지 겸비해야 하는 자리. 그래서 수술만 하던 의료진은 이 자리에 바로 오를 수 없다. 윤 병원장은 1997년 응급진료센터 부소장을 맡으면서 병원 행정에 발 디뎠다. 이후 적정진료관리실 부실장, 부소장, 기획관리실장을 거쳤다. 단위기관장 경험만 약 15년 동안 쌓았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가량 환자를 보긴 하지만, 대부분은 인계(引繼)한다.
 
  현역시절엔 누구보다 환자를 좋아하던 의사였다. 집보다 병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살았다. 희로애락은 모두 환자와 함께 느꼈다. 특히 그때 그 환자를 생각하면 아직도 목이 멘다. 1989년이니까 30년도 더 된 일이다. 아이 돌을 일주일 앞두고 유명(幽明)을 달리한 어느 엄마 환자다. 개복해보니 암 전이(轉移)가 너무 심하게 돼서 손도 못 쓰고 그냥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 기억에 발을 담그기가 조심스러워 말을 잇지 못하자, 그는 애써 웃으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기억이 많다”고 매듭지었다.
 
  실제로 췌장암은 특히 수술이 까다로운 질병이다. 16시간 동안 꼬박 수술한 적도 있다. 예후(豫後)도 좋지 않다. 합병증 발생률과 사망률이 높은 편이다. 윤 병원장은 이 두 가지 부분의 확률을 낮춘 데 기여한 인물이다. 그러기까지 고군분투한 시간은 감히 짐작하기 힘들다. 그래도 ‘외도’를 꿈꾼 적은 없다. 그런 그가 행정직에 가까운 병원장 자리를 고려하게 된 계기가 있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친한 선배님이 계십니다. 식사하다가 그런 얘기를 하시더군요. 윤 교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대화도 잘하는 한편, 맺고 끊는 것도 잘하니까 행정을 하면 잘하겠는데…라고요.”
 
  ‘아닙니다. 저는 환자 보는 게 좋습니다’라고 했더니 선배가 말했다.
 
  “이제껏 그랬다지만, 자네가 앞으로 환자를 보면 얼마나 더 보겠나. 그보다 환자를 치료하는 교수들을 보는 게 더 낫지 않겠나. 결과적으로 그들이 치료하는 환자들까지 보는 것이니, 더 많은 환자를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수긍이 갔다. 돌이켜보면 기획관리실장을 하면서 행정도 보람 있는 일이라 느꼈다. 일선에 있을 때 환자들에게 의사 권한만으로는 해줄 수 없는 일도 있었다. 병원장이 돼 의료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결과적으로 환자들의 편의를 더 잘 봐줄 수 있겠다 싶었다.
 
  직원들도 대번 알아챘다. 그가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걸. 윤 병원장 부임 후, 과장 조금 보태 병원장실 문지방이 닳다시피 했다. 의견을 개진(開陳)하려는 직원들이 드나들어서다. 인터뷰 이후 한 직원에게 ‘역대 병원장과 윤 병원장의 다른 점’을 묻자, 그는 주저 없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 직원은 “그러면서도 한 번 결정 낸 부분에 대해서는 추진력이 대단하다”면서 “윤 병원장 부임 이후 직원들 표정이 전반적으로 밝아졌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고 언급했다.
 
 
  미래 준비한 병원장 되고파
 
  한때 꿈은 수학교사였다. 공부를 잘했는데, 특히 수학이 좋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기도 했다. 교사가 끌리는 대로 꾼 꿈이라면, 의사는 수(數)를 좀 봤던 것 같다. 안정적인데다, 보람도 클 것 같았다. 양친(兩親)의 영향도 있었다. 물론 의대 수업은 만만치 않았다. 그는 “그럼에도 한 해도 쉬지 않고 졸업을 했으니까 ‘보통’ 정도는 한 것 같다”며 웃었다. 인턴시절 환자가 눈에 밟혀서 집에 안 가고 밤을 지새운 적도 많다. 그 마음은 연차가 쌓여도 변하지 않았다. 초심(初心)을 잘 지켜왔다고 자부하는 이유다. 자칫 어지러운 마음은 묵상으로 다스린다. 윤 병원장은 매일 새벽, 하루일과를 기도로 시작한다. 외는 기도문 중 일부다.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에 돌아가십시오. 선한 일에 용기를 가지시며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항상 연약한 자를 도우시며 병든 자를 찾아보시며 곤란 당하는 이웃을 위로하십시오.”
 
  1987년도에 강남세브란스(당시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한 그는 30년 동안 한 병원에 있었다. 병원 내 두루 아는 사람이 많고, 소통하기 수월한 것도 그래서다. 친분이 있는 직원들이 많지만, 그들을 ‘다 안다’고 말하는 건 경계한다. 그는 “한때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나를 이해해줄 거라 여긴 적도 있는데, 커다란 착각이었다”면서 “마음속에 담고 있으면 상대방은 절대 모른다.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행여 ‘요즘 사람’들 생각을 이해하지 못할까 싶어 얼마 전에는 《90년대생이 온다》를 정독하기도 했다.
 
  후배들에게도 ‘모르는 건 꼭 물어보라’고 강조한다. 그는 “‘대가(大家)’는 자기가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만큼 나머지를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의사로서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것 만큼 위험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 말과 함께 반드시 물어보라고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정년(停年)이 없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았기 때문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서 “더불어 기독정신, 협동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훗날 어떤 병원장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말에는 ‘잘생긴 병원장’이라며 농을 던졌다. 그러고 이내 첨언했다.
 
  “미래를 준비한 병원장으로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고생하면서 힘들게 살고 있어요. 너무 애를 많이 쓰고 계십니다. 그런 중에 기쁘고, 일의 보람도 느끼고, 발전의 기회도 줄 수 있는 그런 병원으로 만들고 싶어요. 직원들이 정말 행복한, 그런 병원이 됐으면 합니다.”
 
  사람들을 꿈꾸게 하고, 배우게 하고, 행동하게 하는 사람. 일찍이 존 퀸시 애덤스(John Quincy Adams)는 ‘진정한 리더’를 이렇게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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