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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탈북민 최초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 기록 세운 태영호

‘뿌리 없는’ 탈북민에서 ‘강남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그 40일의 기록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thegood@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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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례대표 제안받았지만 모양새 좋지 않아 ‘지역구 출마’ 논의
⊙ 4년간 강남 누빈 ‘4선 국회의원’ 對 정치 초보 ‘탈북민’
⊙ 지역 현안과 대책 정리해줄 ‘책사’ 없어 고심
⊙ 온라인 채널 이용한 ‘공중전’… 경험 부족, 조직 열세 극복 시도
⊙ ‘강남을 강남답게’로 시작한 태영호의 유튜브 선거운동… 압도적 우위 점해
⊙ 선거운동보다 더 힘든 ‘강남갑’ 당협 내 파벌 정리
⊙ 태영호 출마 이후 시작된 북한과 국내 좌우 세력의 ‘네거티브 공세’
⊙ 여유 있는 선거운동 하다가 ‘민심’ 접하고 재빠르게 비상 태세로 전환
⊙ ‘미국식 타운홀 미팅’ 모방한 소통형 유세 도입
⊙ “광화문광장에 드러눕더라도 종부세 개정안 통과시킬 것”
⊙ 북한인권재단 출범시키고, 강제북송 금지법 만들어야
사진=태영호 당선자 제공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 태영호씨가 미래통합당의 서울시 강남구 갑 국회의원 후보로 나와 선거에서 당선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4선 의원’ 경력의 김성곤 후보가 2016년 총선 당시 같은 지역구에서 득표율 45%를 기록했고, 낙선 이후 4년 동안 배낭을 메고 강남 골목 곳곳을 다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태 후보의 당선을 소위 ‘보수 텃밭’에서 거둔 통상적인 성과라고 치부하긴 어렵다. 더구나 그가 대한민국에 ‘뿌리’가 없는 탈북민이고, 갑자기 ‘전략공천’을 받아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 의미가 크다.
 
  지난 2월 10일,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은 태씨를 ‘영입’한다고 밝혀 세간의 이목을 모았다. 소위 ‘북한 엘리트’ 출신이 국회에 들어가는 일은 우리에게 더는 낯선 풍경이 아닌데도 그랬다. 탈북민 출신으로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한 이는 북한에서 김일성대 교수를 하다가 귀순한 조명철씨다. 조씨는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바 있다. 또 당시 자유한국당은 이미 탈북민 출신 북한인권 활동가 지성호씨를 ‘1호 인재’로 영입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태영호 영입’이 주목받은 건 ‘태영호’라는 인물의 인지도와 함께 그가 파격적으로 ‘탈북민 최초 지역구 출마’를 자원했기 때문이다. 태 전 공사의 출마 유력 지역구로는 강남・서초・송파, 이른바 ‘강남 3구’가 꼽혔다.
 
  다음 날, 태씨는 자유한국당에 입당하며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에 도전하겠다”고 공식 선언을 했다. 그는 “평생 북한 외교관을 한 저 같은 이도 대한민국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으로,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지역 대표자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북한 주민과 엘리트가 확인하는 순간, 진정한 통일은 성큼 다가올 것으로 믿는다”며 “저는 대한민국의 그 누구보다 북한 체제·정권을 깊이 알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의 통일 정책이 무조건적 퍼주기나 무조건적 대립 구도가 아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현실적인 안이 나올 수 있도록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혈연·지연·학연 없는 탈북민의 ‘도전’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 후신, 2월 17일 창당) 공관위는 2월 27일, 태영호씨를 ‘서울시 강남구 갑’ 지역구에 ‘전략공천’한다고 밝혔다. 강남갑은 ▲압구정동 ▲청담동 ▲논현 1·2동 ▲신사동 ▲역삼 1·2동 등이 속한 지역구다. 강남구 안에서도 소위 ‘보수적 색채’가 상대적으로 짙은 곳이다.
 
  한때 북한 독재정권을 위해 복무했던 태씨가 대한민국 제일의 ‘부촌’이면서 보수 성향이 강한 강남갑에 나간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세간의 반응은 갈렸다. “빨갱이를 강남에 공천하는 게 말이 되느냐? 강남을 무시하느냐?”란 비난 여론도 상당했다. 개인적으로 아무리 ‘텃밭’이라고 하지만, 태씨가 출마한다면 표심이 어디로 갈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예상했다. 이후 태씨가 출마하는 강남갑은 21대 총선의 ‘격전지’이자 ‘관심 지역’으로 부상했다.
 
  태영호씨는 남한에 ‘뿌리’가 없다. 혈연・지연・학연이 없다. 선거에 동원할 수 있는 ‘사조직’이 전혀 없다는 얘기다. 강남에 연고도 없다. 아무리 미래통합당의 ‘표밭’으로 일컬어지는 강남갑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북한 출신 태씨에게 해당 선거는 ‘무모한 도전’일 수 있었다.
 
  《월간조선》은 태영호씨의 ‘국회의원 도전기’를 밀착 취재하기로 했다. 그의 당락과는 무관하게, 탈북민 최초 지역구 출마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가 만일 당선된다면, ‘탈북민 최초 지역구 당선자’란 기록을 세우는 것은 물론 ‘자유 대한민국의’ 포용력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낙선한다면 ‘강남 텃밭론’의 허구성을 밝히는 사례가 될 수 있었다. 이에 《월간조선》은 3월 3일부터 그의 선거운동이 끝난 4월 14일까지 약 40일 동안 태씨 개인 사무실과 선거사무소, 유세 현장에서 그를 만나 선거 과정의 시행착오, 전략 수립 상황, 선거를 치르며 느끼는 소회 등을 세세하게 취재했다. 다음은 태영호 당선자가 선거 과정에서 겪었던 주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전략공천’으로 뒤늦게 선거판에 뛰어든 태영호
 
  3월 3일, 태영호씨는 강남구 선거관리위원회에 ‘태구민’이란 이름으로 ‘미래통합당 강남구 갑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태 후보는 이후 국회로 가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북한 출신 최초의 지역구 후보자로서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의 모든 것이 처음이고 어려움의 연속이지만,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자유민주주의 선거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북한에서도 ‘강남스타일’ 노래를 통해 강남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강남은 대한민국의 핵심 지역”이라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그것도 자유시장경제를 상징하는 지역에서 북한 출신 후보가 잘할 수 있을지 많은 분이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분이 저에게 ‘보수 텃밭이라고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죽기를 각오하고 뛰라’고 따가운 충고를 해주셨다”며 “죽음을 무릅쓰고 대한민국으로 넘어오던 당시보다 더욱 비장한 각오와 사명감을 갖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8시쯤 서울시 송파구 소재 태 후보의 개인 사무실에 갔다. 기자와 마주앉은 그는 갖가지 시행착오를 얘기하면서 “힘들다”고 토로했다.
 
  “전혀 준비를 하지 않고 이 판에 뛰어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느끼는 게 뭐냐 하면 ‘너무 힘들다’는 겁니다.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내가 껴들지 않고, 그냥 편하게 살았을 겁니다. 일단 출사표를 던졌으니 끝까지 해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한 시간 정도 가만히 생각한 끝에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우리가 분단된 지 70년이 넘었고, 탈북민은 지금 3만5000명 가까이 됐는데, 왜 나처럼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진 사람이 없을까.”
 
  — 왜 없었을까요.
 
  “오늘 선거사무소 임차 계약을 하고 왔어요. 오늘 700만원을 지불하고, 다음 달에 또 700만원을 내는 조건인데요, 선거에 나가려고 하니까 돈이 매일 나가요. 그걸 보면서 나 같은 ‘고소득자’가 아니면, 출마는 꿈도 못 꾸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돈을 많이 벌었습니까.
 
  “《3층 서기실의 암호》(2018)가 21쇄까지 나갔습니다. 인세를 꽤 받았고, 강연도 많이 다녔어요. 신문에 칼럼 기고하면서 받은 원고료도 있고요. 작년부터 내가 ‘고소득자’가 된 거예요. 그 밑천이 있으니까 내가 도전도 한번해보는 거지. 오늘은 사무실 얻었고, 내일은 선거 기간에 이용할 차를 알아봐야 하고. 탈북민은 누가 밀어준다고 해도 밑천이 없으면 못 하는 거지. 제가 딱 느낀 건 다른 탈북민이 정치하겠다고 했을 때 첫 번째 필수 요건은 ‘일단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겁니다.”
 
  —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저도 ‘국회의원 하려면 돈이 상당히 들겠다’고 생각은 했어요. 영입 제안을 받고 나서 그 문제를 놓고 이미 국회의원을 지낸 분들과 얘기했는데, ‘자금 문제’는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분들이 얘기하기를 ‘국회의원 몇 번 했지만 내 돈 한 푼도 안 들었다’고 하는 겁니다. ‘정치후원금 계좌 만들어서 후원받으면 그걸 다 쓰기도 어렵다’고 해요. ‘사비 쓸 일 없다. 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고 해서 ‘그래, 좋다!’고 했는데, 문제는 제 지역구를 당에서 일찍 정해주지 않으니까 여기 앉아서 속만 끓이고 있었습니다.”
 
 
  ‘비례대표’ 제안 거절 후 ‘수도권 출마’로 가닥 잡아
 
  — 김형오 공관위원장이 2월 10일에 ‘태영호 영입’을 발표했는데, ‘지역구 배정’은 2월 27일에 이뤄졌죠.
 
  “나는 2~3일 안으로 결정되는 줄 알았어요. 공관위에서는 계속 기다리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다가 (2월) 26일이 된 거예요. 지역구를 정하고, 사무실을 마련하고, 예비후보 등록을 해야 후원회를 만들 수 있고, 그다음에 후원회 계좌를 개설할 수 있어요. 그런데 나는 지역구가 안 정해졌으니까. 언론에서는 내가 ‘강남갑’에 나간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관위가 결정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지역에 가서 사무실을 얻을 수도 없는 일이고. 다른 사람들은 이걸 몇 달 동안 준비했는데, 나는 그걸 모르고 있다가 지금 갑자기 하려니까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 편하게 비례대표 하면 될 걸, 뭐 하려고 지역구 출마를 얘기했습니까.
 
  “처음에는 ‘비례대표’ 얘기가 있었는데, 당시 자유한국당에서 지성호 대표를 영입한 상태였으니까 같은 탈북민인 제가 들어가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탈북민이 3만5000명쯤이니까 ‘인구 비례로 봤을 때 많아야 1석이면 충분한데, 탈북민을 또 비례대표로 하느냐?’는 반발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지성호씨가 먼저 영입됐는데, 내가 나중에 가서 내 순번을 앞으로 달라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그때 주위 사람들이 ‘당신 국회 가서 하고 싶은 일이 뭔데? 진짜 도전하고 싶다면, 지역구로 가라’고 조언해서 당과 ‘지역구 출마’ 문제를 논의하게 됐어요.”
 
  — 애초 영입할 때부터 지역구는 정해져 있었던 것 아닙니까.
 
  “아니에요. 지성호씨 영입 발표를 마치고 나오면서 황교안 대표가 김명현 대표 비서실장에게 ‘태 공사는 뜻이 없느냐’라고 물었는데, 당시 염동열 인재영입위원장이 ‘내가 몇 번 연락했는데 태 공사는 의향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는 거예요. 황 대표가 김 실장한테 다시 제안해보라고 해서 만났는데, 나는 이전에 그런 얘기를 들은 일이 없다고 했어요. 그리고 비례대표 얘기를 하기에 ‘이미 자유한국당에서는 지성호 대표를 데려갔는데 내가 들어가면 탈북민 2명을 높은 순위로 줄 수는 없지 않으냐’고 하니까, ‘우리가 좀 늦게 온 것 같다’고 했어요.
 
  그 후 염 위원장이 전화했는데, 나는 그때 그분이 인재영입위원장인 것도 몰랐어요. ‘내가 공사님한테 제안 안 했다는 게 무슨 소리냐?’고 해서 내역을 확인해보니까 12월부터 문자가 왔던 거예요. 나는 거의 자기 행사에 참석해달라는 내용이라서 국회의원들 전화나 문자를 잘 안 봐요. 염 위원장이 ‘우리 당에서 오라고 하면 오시겠습니까?’라고 하니까 나는 심각해진 거죠. 그 후에 만나서 “‘지역구 출마’는 어떤가’라고 해서 ‘생각해보겠다’고 했어요. 그분은 ‘우리가 만약 당신을 지역구에 내보낸다면, 텃밭에 보내겠다’고 하면서 ‘원래 TK 쪽이 좋은데, 그쪽에 가는 건 모양이 좋지 않고, 수도권에서는 강남, 서초, 송파 이쪽으로 하겠다’고 해요. 그래서 내가 ‘정확하게 어디입니까?’라고 물었더니, ‘그건 마지막까지 가봐야 알 겁니다’라고 했어요. 그게 영입 과정입니다.”
 
  — 정계 입문을 결심한 계기를 ‘북한 선원 강제북송’이라고 했는데요. 그 사건은 작년 11월입니다. 그때부터 마음먹은 겁니까.
 
  “그때 내가 칼럼을 썼는데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특검 얘기도 나왔지만 얼마 못 가 사그라지고. 그때 내가 ‘북한 사람, 탈북민 권익을 위해 나서는 당이 없구나. 그럼 내가 한번 바꿔보자’라고 했지만, 총선에 출마하려는 계획은 없었어요.”
 
 
 
“‘태영호 對 김성곤’이라면 주민들은 ‘김성곤이 이긴다’고 얘기해”

 
김성곤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016년 20대 총선 당시 강남갑에서 낙선한 이후 재도전했지만, 태영호 미래통합당 후보에게 패했다. 사진=뉴시스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후 태영호 후보는 지역 표심 분석에 나섰다. 당시 선거사무소를 열지 못했던 그는 송파구 소재 개인 사무실에서 미래통합당 소속 시·구의원과 함께 선거 전략을 논의했다. 당시 논의의 결론은 ‘강남갑’이 미래통합당의 ‘텃밭’이라며 낙관했다가는 큰코다친다는 것이었다.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이종구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율은 55%였다. 경쟁자였던 김성곤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경우에는 45%였다.
 
  강남갑에서 ‘재선’을 했던 이 후보와 전남 여수에서 올라와 도전장을 낸 김 후보의 득표율 차가 10%p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은, 강남갑 민심도 예전 같지 않다는 방증인 셈이다. ‘박근혜 탄핵’ ‘문재인 집권’ ‘자유한국당의 지방선거 대패’ 등 소위 ‘우파 지지세’가 위축되는 각종 악재가 거듭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강남갑 표심이 4년 전과 같다고 장담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김성곤 후보의 경우 낙선 이후 재도전을 위해 지역 곳곳을 누비고 다닌 지 오래됐다는 점도 태 후보 측을 긴장케 했다. ‘4선 의원’의 ‘정치적 경륜’도 무시할 수 없었다.
 
  강남갑 지역 시·구의원은 “강남갑이 보수 텃밭인 시대는 이제 끝났다. 힘든 선거를 할 수밖에 없다. ‘태영호 전략공천’에 화가 난 주민들도 많다. 태 후보와 김성곤 후보가 붙는다면, ‘김성곤 표’가 더 많을 것이라고 주민들이 얘기한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민심은 완전히 바뀐다”고 충고했다. 미래통합당이 당초 계획했던 ‘태영호 전국 유세 차출론’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이 많았다. 이들은 “‘미래통합당이 내려보내면 우리는 무조건 찍어야 하나. 태 후보를 전국 유세 다니게 한다는데 우리 지역을 무시하는 거냐?’는 반발도 심하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는 선거 전략 기조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강남은 일반적으로 전국 어느 지역보다 부동산・세금・교육 문제에 민감하다. 당연히 이 지역 민심을 잡기 위해서는 이와 관련해서 그들의 ‘구미’에 맞는 ‘해법’을 내놔야 한다. 태영호 후보도 이에 대비해 단기간에 관련 분야를 공부했지만, 섣불리 대외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었다. 강남 주민들의 지식 수준이 훨씬 더 높았기 때문이다. 자칫 공부가 덜 된 상태에서 얘기할 경우 ‘네가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느냐?’란 조롱을 받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민들의 관심 사안이 아닌 ‘외교’ ‘안보’ ‘북한’을 얘기하면 ‘부동산 문제 때문에 죽겠는데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란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역 시·구의원은 “주민들 앞에서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순간 당신은 무너진다. 강남 부동산 문제는 문재인 정부와 박원순 서울시와 관련된 문제다. 정권 교체를 하지 않는 한 고칠 수 없다. 만일 ‘내가 국회에 가서 바꾸겠다’고 하면 주민들은 ‘현실을 모른다’고 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결국 이날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과세 정책에 불만이 큰 강남갑 주민들에게 ‘경제 문제’로 접근해서 지지를 호소한다”는 식으로 선거 전략 기조만 결정했을 뿐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논의는 뒤로 미뤘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태 후보의 얘기다.
 
  “실제로 강남 부동산 문제에 대해 내가 할 얘기는 하나도 없어요. 여기 보면 미래통합당 정책에 다 대안이 있어요. 그대로 얘기하면서 아는 척하겠느냐? 안 하겠느냐? 누구도 이걸 결정하지 못해요. 내가 오늘 느낀 건 ‘선거에 왕도는 없다’ 입니다. ‘자, 그럼 어떻게 할 건데?’라고 하면 다들 ‘침묵’해요.”
 
 
  ‘도산공원’에서 시작한 태영호의 ‘강남 민심 공략’
 
지난 3월 4일 태영호 미래통합당 서울 강남갑 국회의원 예비후보는 도산공원에서 국회로 가는 첫 발걸음 뗐다. 사진=뉴시스
  태영호 후보가 풀지 못한 ‘숙제’는 또 있었다. 그는 ‘강남갑 주민’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첫 행보를 어떻게 할지 정하지 못했다. 시·구의원들 사이에서는 “강남 사람들은 겸손한 걸 좋아하니까 피켓 들고 출근길 인사를 하자” “지금 사람들은 그런 걸 바라지 않는다”는 반대 의견이 나왔다. “다른 사람들처럼 방역복 입고 코로나 방역 작업을 하자” “다들 해서 전혀 참신하지 않다” “국립서울현충원에 가서 참배하는 걸로 시작하자” “대선 후보 흉내 낸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식으로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회의 말미에 태 후보는 “내일 아침에 도산공원으로 가서 안창호 선생 묘소에 참배하고, ‘애국애족’의 ‘도산 정신’으로 선거에 임하겠다고 선언한 뒤 주민들과 만나겠다”고 결정했다.
 
  3월 4일 오전 7시, 태 후보의 예비후보 활동이 시작됐다. 태 후보는 도산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공원에서 만난 주민들과 얘기를 나눴다. 이날 오후에는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부근 거리에서 “코로나를 함께 극복하자”는 취지의 문구를 적은 팻말을 들고 퇴근길 시민에게 인사했다.
 
  이후 태 후보는 상당 기간은 아침 출근, 저녁 퇴근 시간에 동네를 돌아가며 1시간씩 거리 인사를 하고, 지역 주민들이 모인 장소를 방문해 민원을 청취하는 식으로 선거운동을 진행했다. 선거운동 초반 팻말을 들고 인사하는 태 후보의 모습은 어색했다. 표정도 경직돼 있었다. 선거에 처음 나서는 ‘초보’다운 미숙함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3월 6일부터는 스스로 이목을 끄는 방법을 고안하는 등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은 태 후보의 말이다.
 
  “처음 나가서 인사할 때는 1시간이 왜 그리 길게 느껴졌을까. 시간이 꽤 지난 줄 알았는데 시계를 보니까 10분밖에 안 지났다고 해요. 내가 여기서 왜 이렇게 인사를 하고 있나. 인사를 한다고 해서 누가 봐주는 것도 아니고. 요즘 차들은 다 까맣게 선팅을 해서 나를 보는지, 안 보는지도 모르겠고. 고개 숙여서 인사하니까 내 인사를 받는지, 안 받는지도 모르겠고. 와, 이게 참 기운이 빠지는 일이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랬는데, 이것도 계속하니까 또 요령이 생겨요. 고개를 안 숙이고, 차가 저 멀리서부터 올 때 ‘안녕하세요~’라고 손을 흔들면 주민들 반응도 볼 수 있고, 버스나 택시 기사들은 같이 손을 흔들어주고. 그런데 딱 보니까 버스 안에서 다들 스마트폰을 하고 있으니까 내가 인사를 해도 대다수는 밖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고 지나가더라고.”
 
  태 후보의 거리 인사는 다른 후보와 다른 ‘제약’이 있었다. 태 후보가 경찰의 ‘가급 보호대상자’란 점이다. 주영 북한대사관 탈출 이후 태 후보는 북한의 위협에 시달렸다. 그에 따라 귀순 이후 ‘태구민’이란 가명으로 생활하면서도 그의 거주지, 행동반경, 모든 일정은 ‘비공개’로 분류됐다. 외부활동을 할 때는 경찰 경호 인력 8명이 따라붙는다. 귀가 후에는 CCTV로 그의 거주지 동태를 감시한다. 이런 상황에서 태 후보가 불특정 다수를 만나야 하는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면, 경찰은 경호 수준을 높여 더 많은 인원을 태 후보에게 붙일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의도치 않게 ‘위압감’을 줄 우려가 있었다. 실제 선거운동에 나선 태 후보에게 다가오던 사람들이 그 주위의 경찰들을 보고 물러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순조롭지 않은 인력 충원과 당협 내부 파벌 정리

 
  태영호 후보는 ‘정치 신인’이다. 선거 출마 경험이 전혀 없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선거에 참여한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국회의원 선거는 본 적도 없다. 한 번도 겪지 않은 선거에 직접 출마까지 했으니 매사가 첩첩산중일 수밖에 없다. 선거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던 그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지역 현안’과 대책을 문서화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충원이 쉽지 않았다. 도와주겠다고 오는 사람은 많았지만,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지도 않은 채 ‘당선’ 이후 ‘자리’부터 얘기했다. 3월 6일, 태 후보는 다음 날 일정표와 청담동 주민들의 GTX-A 관련 민원 내용을 정리한 문건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진짜 필요한 건 이런 거예요. 이거 보세요. 오늘은 압구정동 아파트에 갔는데, 거기 문제는 무엇이냐? 나는 어떻게 얘기해야 하느냐? 이걸 작성해서 주면 나는 달달 공부해서 가는 거예요. 나한테는 이런 사람이 필요한데, 대단히 구하기 어려운 거지. 이종구 의원 사무실에서는 ‘우리 사람을 써달라’고 했지만, 나한테 필요한 사람은 ‘몸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런 걸 정리해줄 ‘책사’가 필요해요.
 
  지금 같이하는 식구들이 만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한 번에 얘기가 통하는 게 아니고. 내가 무슨 내용으로 유튜브 영상을 찍으려고 하니까 이런 방향으로 원고를 쓰라고 지시를 해도 한 번에 마음에 딱 맞게 글을 쓰는 사람이 필요한데, 없어요.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는 거지. 내가 여기에서 대학을 나오고, 일했다면 사람을 끌어올 수 있겠는데. 나는 지금 같이 일하는 식구들과 알게 된 지 열흘밖에 안 됐으니까 서로 잘 몰라서 그러는 건데, 어떨 때는 좀 황당할 때가 있어요. 저녁에 일 끝나고 소주 한 잔 먹어야 팀워크가 생기는데, 예비후보는 밥 한 끼 사는 것도 안 돼요. 내가 소주 한 잔 마시자고 하고서 계산은 n분의 1로 하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 그렇다고 해서 여기저기서 사람을 끌어오면, 나중에 당선된다고 해도 ‘자리싸움’ 때문에 ‘잡음’이 심할 텐데요. 자리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한’을 품게 되지 않겠습니까.
 
  “선거 끝나면 싸움 난다고 사람들이 얘기해요. 여기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는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단, 내가 당선된다면 (국회로) 같이 간다. 그래도 다 갈 수는 없다. 각자 무슨 일을 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냈으며, 자기가 선거기간 기여한 지분이 얼마인지 잘 알 테니까, 매일 자기 성과를 스스로 측정하고 서면화해서 나한테 제출하라’고 했어요. 선거 끝나고 그걸 바탕으로 다 모여서 평가하는 거죠.”
 
  이종구(17·18·20대) 의원과 심윤조(19대) 전 의원,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사분오열된 당원협의회 파벌 사이의 갈등도 태 후보가 직면한 문제였다. 태 후보는 “선거운동 하는 것보다 파벌 간 교통정리가 더 힘들다”고 말했다.
 
  “이종구 의원이 (경기도) 광주시 을로 갔지만, 여기 조직은 살아 있으니까 손잡을 수밖에 없는데, 심윤조 전 의원 세력은 또 ‘이종구 쪽과 함께하면 우리는 같이 못 한다’고 하고. 김진 위원장 세력도 있는데, 거기 분들은 갑자기 내가 전략공천으로 여기 오니까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아직 접촉은 안 했지만, 그분들도 모셔오고, 다른 분들도 다 같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평양에서조차 못 본 ‘녹물 아파트’가 ‘강남’에?”
 
태영호 당선자는 자신이 상대적 우위에 있는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최대한 활용해 자신의 메시지를 대량 살포하는 ‘공중전’을 쉬지 않고 진행했다. 사진=태영호 당선자 제공
  태영호 후보는 경험 부족, 조직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공중전’을 강조했다. 공중전이란,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유튜브 등 온라인 채널을 이용한 소통을 말한다. 태 후보는 캠프를 주민 대면 선거운동 담당(지상전)과 온라인 채널 담당(공중전)으로 나눴다.
 
  공중전의 경우, 당시 태 후보는 이미 구독자가 11만명인 유튜브 채널 ‘태영호TV’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손쉽게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해당 채널에 게시된 북한 관련 콘텐츠는 조회 수가 적어도 10만 회, 많으면 80만 회에 이르렀다. 상당한 성과를 거둔 채널인 셈이지만, 이전까지 태 후보는 태영호TV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거리 인사와 주민과의 대화 장면 등을 짧게 편집해 올리는 식의 ‘일상 기록 영상’을 올렸다.
 
  3월 8일, 태 후보는 지금까지 올린 영상 형식에서 벗어나 태영호TV를 통한 ‘공중전’을 기획했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 계산한 결과 선거기간 태영호TV 구독자는 11만명에서 16만3000명으로 늘었다. 이 기간 해당 채널에 게시된 영상 수는 68개다. ‘강남 현안’을 주제로 한 ‘강남을 강남답게’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살리자! 강남 민생 경제’ ‘지키자! 자유 대한민국’ ‘힘내라! 태구민’으로 분화했다. 그 뒤에는 선거 유세 장면과 각종 이벤트성 영상, 강남 주민의 질문에 대안을 제시하는 영상, 생방송 등을 수시로 올렸다. 이와 달리 김성곤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월 2일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선거운동 기간 게시한 영상 수는 총 55개였는데, 대다수가 1~2분 이내의 짧은 영상이었다. 내용도 거의 선거운동 장면, 김성곤 응원 메시지였다. 즉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한 ‘공중전’에서는 태 후보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다고 볼 수 있다.
 
  — 이제 지역을 누빈 지 5일이 됐습니다. 지역 현안은 다 파악했습니까.
 
  “4월 2일 전까지 계속 다니면서 들어야죠. (서류철을 보여주며)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이렇게 주제별로 모으고 있는데, 여기 보면 3월 5일에는 GTX-A에 대해서 얘기했어요. 이거는 아파트 재건축 문제, 이거는 지구단위계획, 이런 식으로 다 만들었어요. 이걸 내가 가장 빨리 이해하는 방법은 설명 듣고, 자료 보고, 주민들 만나서 얘기 듣고, 사무실 들어와서 글로 쓰고, 태영호TV에 영상을 올리는 거예요.”
 
  — 지역 현안을 어떻게 영상으로 만들 생각입니까.
 
  “압구정동 아파트에서는 녹물이 나옵니다. 이 비싼 강남 아파트가 오래돼서 녹물이 나온다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아마 여기 주민 말고는 다들 안 믿으실 거예요. 저는 심지어 평양에서도 녹물이 나오는 아파트를 본 일이 없어요. 또 지하주차장이 없으니까 전부 이중주차를 해요. 특이한 건 잘사는 동네라서 그런지 경비 아저씨들이 주차까지 해준다고 해요. 이런 문제를 얘기할 때 녹물 나오는 사진, 아파트 단지 전체가 주차장으로 변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재건축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얘기하는 겁니다.”
 
  — 강남갑 지역의 동네는 다 돌았습니까.
 
  “내가 지금까지 압구정동, 역삼동, 청담동, 영동시장(논현동)에 갔고. 신사동은 내가 가서 활동하지 않고, 사무실 보느라고 몇 번 갔죠. 아직 나한테는 대단히 낯설어요. 아직 못 간 동네가 많아요.”
 
 
  “남한에 뿌리 없는 태영호를 공천한 건 국가적 망신”
 
투표일이 다가오자 태영호 후보의 얼굴이 선거 초반과 달리 초췌하게 변했다. 태영호 당선자는 선거가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체력이 떨어져갔지만, 지지자만 만나면 다시 힘이 솟는 경험을 했다. 사진=태영호 당선자 제공
  태영호 후보가 ‘강남갑’ 예비후보로 자리 잡아갈 때쯤 《경향신문》이 당시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되던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을 인터뷰했다며, 온라인 기사를 올렸다. 3월 12일 오후 4시경 보도된 해당 기사에 따르면 김종인은 ‘태영호 공천’에 대해 “국가적 망신이다. 공천을 이벤트화한 것이다. 그 사람이 강남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남한에 뿌리가 없는 사람이다”라고 주장했다.
 
  태 후보 측은 그야말로 ‘위기’를 맞았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고심했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김종인씨를 선대위원장으로 초빙하려 했고, 김씨는 ‘수락 조건’으로 ‘잘못된 공천 시정’을 요구했다. 그 대상 중 하나가 바로 ‘태영호 강남 공천’이었다. 황 대표 마음먹기에 따라 ‘태영호의 도전’은 하루아침에 중단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태영호 캠프에서는 보도가 나가고 5시간이 지난, 같은 날 오후 9시에 ‘입장문’을 내놨다. 태 후보는 입장문에서 “우리 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되는 분이 선거 일선에서 사력을 다하는 후보의 등에 칼을 꽂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나는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헌법과 법률에 따라 선거에 출마할 수 있고 정당의 공천을 받을 수 있다. ‘남한에 뿌리가 없어’ 잘못된 공천이라는 발언은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3월 13일, 기자는 김종인 당시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을 만났다. 다른 문제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그의 사무실을 찾았지만, 총선 얘기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태영호 관련 발언’의 진의에 대해서도 물었다. 당시 김종인씨와의 문답은 다음과 같다.
 
  〈— 어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가 보도됐는데요.
 
  “내가 오늘 아침에 야단을 엄청 쳤는데…. 나한테 인사를 한다고 아침에 왔어. 다른 사람도 여기 있었는데, 내가 인터뷰를 한 것도 아니에요. 잡담 비슷하게 얘기를 했는데, 마치 인터뷰한 것처럼 둔갑시켜서 그렇게 기사를 쓴 거지.”
 
  — ‘인터뷰’가 아니었다는 얘기입니까.
 
  “인터뷰 아니에요. 다른 사람하고 얘기하는 걸 적지도 않고 가서 썼어.”
 
  — 기사 속 태영호 후보 관련 얘기는 실제로 했습니까.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더라고 말한 거지.”
 
  — 태영호 후보가 서울 강남갑에 출마하는 걸 반대합니까.
 
  “나는 처음부터 거기에 공천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지금은 바꿀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지.”〉
 
  사실 ‘김종인 인터뷰’가 나간 후 태영호 캠프에서는 향후 거취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만일 당에서 ‘비례대표’를 제안하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태영호는 “여기 와서 조직을 닦았고, 필승을 결의한 마당에 그렇게 할 수 없다. 비례대표로 가라고 한다면, 아예 그만두겠다”고 했다.
 
  태영호는 3월 15일, 김종인씨 발언에 대한 ‘입장문’을 또 냈다. 입장문에서 태영호는 “논란이 된 소위 ‘뿌리론’은 남한에 고향을 두지 않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누려야 할 권리와 역할에 대한 부정”이라며 “이승만 전 대통령과 김구 선생도 이북 출신이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남한에 뿌리가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뿌리론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의무와 권리를 갖고 정정당당히 살아가는 탈북민들과 실향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이라고 비판하면서 김종인 이사장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김성곤은 보이는데 태영호는 안 보인다”는 민심에 비상
 
  3월 16일,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김종인 초빙’에 대한 당내 반발 기류를 의식해 그를 ‘총괄선대위원장’이 아닌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데려오려고 했다. 평소 ‘차르’로 불리며 ‘전권’을 행사해왔던 김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황 대표의 ‘김종인 카드’는 무산됐다. 이로써 태영호의 도전은 계속 이어질 수 있게 됐다.
 
  3월 19일, 태영호는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대신해 ‘오픈데이’ 행사를 가졌다. 이에 대해 캠프 측에서는 ‘우한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상황에서 일시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 대신 일정 시간 후보가 사무소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얘기하는 식으로 진행해 ‘쏠림’ 현상을 완화하는 ‘오픈데이’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날 선거사무소는 ‘태영호 지지자’ 100여 명이 한꺼번에 방문하는 등 문전성시를 이뤘다.
 
  3월 22일, 성중기 미래통합당 서울시의원(논현1동, 신사동, 압구정동, 청담동)이 강남 주민들의 ‘민심’을 듣고 왔다. 그에 따르면 강남 주민들은 “김성곤은 보이는데, 태영호는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당시까지 태영호 후보는 시·구의원, 캠프 관계자들을 대동하고 대로변이나 아파트 단지, 시장 위주로 다니면서 선거운동을 했다. ‘외부인’이 봤을 때는 그마저도 일정이 많지 않아 상당히 여유로운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분 단위로 구성됐어야 할 그의 일정표는 여전히 시간 단위로 돼 있었다. 심지어 그런 일정조차 몇 개 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민심 탐방’을 하고 돌아온 성중기 시의원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그 여론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해요. 좀 더 긴박하게 뛰어야 합니다. 경호 인력 눈치를 보면 안 돼요. 사방팔방으로 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사람? 없어도 괜찮습니다. 김성곤은 지난 4년 동안 배낭 메고 다녔잖아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잖아요? 우리도 출발한 지 꽤 됐는데, 후보가 잘 안 보여. 길에서 인사하는 건 ‘보여주기’입니다. 후보가 직접 상가, 주택가 찾아다니면서 인사하는 식으로 일정을 짜야 합니다. 저, 구의원 역할이 뭡니까. 후보 옆에 있을 수는 있지만, 결국 후보가 직접 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태구민 아바타’가 돼서 각자 주민들 만나야 하는 거지, 지금처럼 같이 붙어 다니면 안 됩니다. 지금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태영호 후보는 “김성곤 후보는 골목마다 다니면서 선거운동 하는데 태영호는 열심히 하는 모습이 안 보인다고 하네. 참 힘드네”라고 했다. “힘들다”는 말을 들은 기자는 “지금 다른 사람들은 공천 한 번 받아보려고 수년 전부터 지역 표밭 다졌는데도 경선도 못 붙어보고 ‘컷오프’된 사람도 있다. 그런데 ‘전략공천’으로 비교적 쉬운 지역인 ‘강남갑’에 와서 힘들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압구정·신사·청담과 논현·역삼으로 나뉜 ‘강남갑’
 
  3월 22일 오후 8시, 캠프 관계자들은 인근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나갔다. 태영호 후보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식당에 갈 경우 경호 담당 경찰들과 동행해야 해서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부인이 새벽에 싸준 도시락으로 점심과 저녁을 해결한다고 했다. 밥을 먹으면서 그는 “지금 나는 어떻게든 주민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데, 나를 보고 다가오려고 하다가도 옆에 경호원이 있으니까 피한다”고 아쉬워했다.
 
  한편, 식사를 마치고 나서 태 후보는 사무실 벽에 걸린 ‘강남구 지도’ 앞으로 가서 현황을 얘기했다. 지도에는 지금껏 태 후보가 방문한 곳이 표시돼 있었다. 강남갑 중에서도 소위 우파 성향이 강한 압구정동, 청담동은 여러 곳이 까맣게 칠해진 반면 젊은 층이 많은 논현동, 역삼동에는 방문 흔적이 많지 않았다.
 
  — 선거운동을 시작한 지 꽤 됐는데, 아직 별로 다니지 않았네요? 특히 논현동, 역삼동은 더 그렇네요.
 
  “글쎄, 진지전과 고지전이라고 하더라고. 진지전은 우리 텃밭을 지키는 거, 고지전은 적지를 탈환하는 거. 1차적으로는 여기 텃밭(압구정동·청담동)에 많이 가서 ‘태영호 열심히 하네’라는 소리를 듣고. 다음 주부터는 이쪽(역삼동·논현동)을 다니자고 하더라고.”
 
  태영호 캠프의 사무장은 “태영호 후보가 많이 다녔다. 다닐 곳은 전부 다녔다”면서 다음 날부터 시작될 새로운 선거운동 방법을 태 후보에게 설명했다. 다음은 그의 말이다.
 
  “지금 주민들은 태영호가 왔는지, 안 왔는지 모르잖아요? 이제 바닥에 많이 가야겠습니다. 내일은 청담동으로 갈 겁니다. 대로에서 출근 인사하고, 주변 상가를 다니면서 인사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안내는 하지만, 후보님이 직접 부동산・슈퍼・약국・미장원 문을 직접 열고 들어가셔야 합니다. 사람은 많지 않지만, 후보가 직접 나서는 거니까 효과는 더 좋습니다.”
 
 
  좌·우에서 제각기 이뤄진 ‘태영호 네거티브’
 
  3월 25일, 태영호 캠프는 소위 ‘흑색선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자칭 ‘촛불국회 만들기 4·15총선 시민네트워크’는 경찰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태영호 후보를 ‘강간 혐의’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태 후보가 탈북했을 당시 북한이 “미성년자를 강간하고 탈북했다”고 강변한 사실과 해당 내용을 다룬 책을 내세우면서 “비록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북한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성범죄 의혹이 제기된 이상 이를 조사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파 일각에서도 태 후보의 정체성과 관련한 의혹을 제기했다. 변희재씨가 ‘대표 고문’ 직책을 맡은 인터넷매체 ‘미디어워치’는 같은 날 “태영호, 강릉무장공비 침투 사건 ‘북한군의 강한 정신력 보여줘’ 망언”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태 후보가 《3층 서기실의 암호》 101쪽에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1996년 강릉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북한의 변하지 않은 대남 적화 전략을 세계에 보여준 사례이지만, 북한 군대의 강한 정신력을 보여준 측면도 있다고 본다”라고 치켜세우면서도 우리 국민이 희생된 일에 대해서는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지 않았다는 취지였다. 참고로, 변씨는 당시 이미 친박신당 후보로 강남갑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상태였다.
 
  태영호 캠프는 ‘흑색선전’에 대해 ‘법적 대응’ ‘무대응’ ‘입장문을 통한 경고 및 선거 종료 후 법적 대응’ 중 어떤 대응책을 택할지 논의했다. ‘촛불국회 만들기 4·15총선 시민네트워크’란 단체에 대해서는 일단 대응하지 않는 게 ‘최선’이란 결론을 내렸다. 선거기간에 이들을 고발해봤자 ‘실익’은 없는 반면 ‘미성년자 강간’이란 부정적인 ‘허위사실’만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킬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미디어워치’ 기사의 경우에도 대응할 경우 그들의 ‘노이즈 마케팅’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김종인 찾아간 태영호… 첫 방문지로 태영호 캠프 택한 김종인
 
선거 기간 당시 태영호 후보는 자신의 전략공천을 못마땅하게 여긴 김종인씨가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되자 그를 찾아가 “격려해달라”고 요청했다. 사진=뉴시스
  3월 26일, 본의 아니게 태영호 후보와 ‘악연’이 된 김종인씨가 미래통합당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직을 수락했다. 그가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오는 만큼 태 후보는 향후 그와의 관계 설정 방향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3월 28일, 태영호 선거사무소에 사분오열돼 있던 강남갑 당원들이 모였다. 선거대책본부장인 성중기 시의원은 태영호 후보에게 “그간 선거운동에서 소외됐던 사람들이 화합하려고 왔다. 이제 갈등은 다 해소됐다”며 “그쪽에서 사모님 쪽 선거운동을 지원하면 좋겠다고 해서 ‘아주 좋은 일’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태 후보는 “이제 완벽하게 정리가 된 거냐? 지금까지 선거운동 하는 것보다 상처 나고 갈등 겪은 집토끼 관리하는 게 더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날 태 후보는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관련해서 고민을 털어놓았다. 캠프에서는 “총괄선대위원장이고, 연세도 높으니까 태 후보가 ‘어른’을 먼저 찾아가 도와달라고 해야 한다” “총괄선대위원장직을 맡자마자 ‘정치 신인’이 달려가는 건 약삭빠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대해 태 후보는 “김 위원장이 첫 공식 행선지로 여기에 오겠다고 하시는데, 나는 나이 어린 사람이 가만히 앉아 연세 높으신 분이 오는 걸 기다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먼저 찾아가는 게 낫다”고 밝혔다.
 
  3월 30일 오전 10시, 태 후보는 “지금 김종인 선대위원장님으로부터 격려를 받기 위해 국회로 가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뵙겠습니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로부터 30분 뒤, 김 위원장을 만난 태 후보는 “우리 당의 총괄선대위원장으로 모시니 저는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라며 “김 위원장님께서 (강남갑에) 한번 오셔서 적극적으로 격려해주면 저한테는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내가 총괄선대위원장을 책임졌기 때문에 우리 태영호 후보 당선도 내가 책임지겠다”며 “그건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답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다음 날 선대위원장 첫 방문지로 태영호 선거사무소를 찾아, 태 후보를 격려하고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태영호 지지율 높게 나온 뒤 캠프 분위기 돌변
 
4월 13일과 14일, 태영호 당선자는 유튜브 채널 ‘태영호TV’를 통해 생방송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선거송 ‘찐이야’에 맞춰 막춤을 선보였다.
  3월 31일, 강남갑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중앙일보》가 입소스에 의뢰해 3월 26~27일, 서울 강남갑 거주 18세 이상 5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태영호(태구민) 미래통합당 후보(42.6%)가 김성곤 더불어민주당 후보(33.7%)를 ‘8.9%p’ 차로 앞섰다. 비슷한 시기, 미래통합당 산하 여의도연구원 자체 여론조사 결과도 전달됐다. 태 후보는 여의도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김 후보를 20%p 차로 이기고 있다고 했다. 이후 태영호 캠프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탈북민 출신 정치 신인 후보 ▲급조된 탓에 일사불란한 팀워크가 없는 조직 ▲‘망한 공천’이라는 비난 때문이었는지 당시까지 태영호 캠프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았다. 하지만 긍정적인 여론조사 결과치가 나오자 캠프에는 활기가 돌았다. 이전에 그들의 행동에서 쉽게 볼 수 없던 ‘의욕’ ‘열정’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4월 2일, 21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 기간의 첫날이 됐다. 태영호 후보는 이날 오전 8시, 압구정역 1번 출구 앞에서 ‘출정식’을 가졌다. 태 후보는 유세 차에 올라 “자유를 향해 사선을 넘었던 그 용기를 이제 우리 강남을 위해 발휘하겠다”며 “4월 15일은 강남이 승리하는 날, 대한민국이 승리하는 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영호 캠프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태영호 지지자’를 자처하는 이가 ‘스패너’를 몸에 숨기고, 태 후보가 탄 유세 차로 다가오다가 경호원에 제지당했다. 이후 태 후보에 대한 경호는 더 강화됐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태 후보 부인 오혜선씨도 선거사무소에 나와 선거운동을 도왔다. 전화로 지지를 호소하고, 후보 대신 사무소 방문객을 맞았다.
 
  이날, 태 후보는 한 재미(在美) 학자로부터 선거운동을 미국의 ‘타운홀 미팅’처럼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는 쪽으로 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태 후보는 ‘강남 현안’에 대한 주민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와 자신의 대안을 현장에서 주고받는 방식으로 선거 유세를 하자고 했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유튜브를 통해 유세 현황을 생중계하면서 채팅창을 통한 질의응답도 동시에 진행하자고 결정했다. 단, 현장 질의응답 과정에서 마이크를 주고받고, 돌아가며 쓸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였다. ‘우한 코로나’ 등 감염병 확산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혹여 언론에서 해당 내용을 지적하면 지지율에는 부정적이라는 게 주위의 조언이었다. 이에 태 후보는 “각 질문자에게 마이크를 건네줄 때마다 소독제로 깨끗하게 닦고, 마이크 위생 덮개를 교체하라”고 주문했다.
 
 
  ‘토론’ 무사통과하고 지지율 압도하자 ‘잔칫집’으로
 
선거 초반에는 대중연설을 할 때 긴장한 듯 보였던 태영호 당선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선거 유세를 즐기게 됐다. 사진=태영호 당선자 제공
  출정식 이후 태 후보는 강남 곳곳을 누비며 거리 유세를 하면서도 4월 5일로 예정된 ‘후보자 TV토론회’ 준비에 매진했다. 선거 토론 경험이 없고, 경쟁자인 김성곤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강남 현안’에 대해 상대적으로 준비할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긴장될 수밖에 없다.
 
  4월 5일, 태 후보는 거리 유세 없이 오전 8시부터 6시간가량 토론 연습에 몰두했다. 카메라 응시, 답변 길이, 표정, 말투를 확인하고, 발음하기 불편한 표현들을 삭제했다. 토론장으로 향하는 태 후보 표정은 선거기간을 통틀어 가장 어두웠고, 3시간 뒤 사무소에 복귀한 그는 수학능력시험을 보고 나온 수험생처럼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태 후보는 “귀순 이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올 때보다 오늘 TV토론을 앞두고 더 긴장했다”며 “가장 걱정됐던 토론을 무사히 넘기니까 후련하다”고 했다. 태 후보 부인 오혜선씨는 후보자 토론과 관련해서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한국에 온 건 3년 반이 지났지만, 실제로 ‘정착’한 건 얼마 안 됐어요. 여기 온 이후 생활은 전부 제가 옆에서 거들어줬고, 남편은 북한 연구만 했거든요. 작년 하순부터 사회단체 만들고 현실을 좀 접하게 됐어요. 월급, 세금, 보험을 알게 되면서 여기 생활을 접하게 된 거니까 실제로 정착한 기간은 짧다고 봐야 합니다. 우리 남편이 그 모양으로 3년만 더 일했다면, 숙지하는 게 빠른 사람이니까 걱정 안 했겠지만 지금 나가는 건 ‘경력’이 짧거든요. 부동산, 종부세를 공부한다고 했지만, 깊이 알지는 못해요. 겉핥기식으로 한 거죠.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늘 토론하는 걸 보니까 잘하네요.”
 
  후보자 토론과 관련해서 태 후보는 4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입장문을 남겼다.
 
  〈(전략) 제가 천안함 피격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 아닐 수 있다는 민주당 후보의 과거 발언에 대해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질문했지만, 민주당 후보는 정확한 답변 대신 당시 국제사회에서 나라마다 입장이 달랐다며 굉장히 가슴 아픈 사건이라고만 답변한 점입니다. 많은 분이 이 부분에 대해서도 국방위원장을 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정부의 공식 입장도 분명하게 대답하지 않는지 놀랍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어제 이러한 부분에 대해 참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토론이 규칙상 주고받는 토론이 아니었기에 충분히 반박을 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중략) 이번 선거에서 가장 필요한 일은 지금까지 세금폭탄으로 강남 주민에게 고통을 안겨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제대로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제 와서 자신이 속한 당을 설득하겠다고 뒤늦게 나서는 것은 병 주고 약 주는 격입니다. 모순된 주장으로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해서 흔들릴 우리 강남 주민이 아니십니다.〉
 
 
  ‘래퍼’ 태영호의 선거송 ‘찐이야’
 
선거 기간 태영호 당선자는 기존 ‘북한 외교관’이란 모습에서 탈피하고 유권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해 ‘래퍼’로 변신하기도 했다. 사진=태영호 당선자 제공
  4월 5일 오후 7시, 사무실에서 태 후보가 저녁 식사로 피자를 먹고 있을 때 캠프 관계자가 ‘TV조선’의 화제작 〈미스터트롯〉에서 ‘영탁’이 부른 ‘찐이야’란 노래를 개사한 ‘선거 로고송’을 틀었다. 한 번만 들어도 가사가 절로 외워질 정도로 노랫말이 단순했다. 현장에 있던 이들은 모두 “좋다”고 했지만, 태 후보는 “황교안 대표는 운동원들이 춤도 추지만, 과연 이런 시국에 신나는 노래를 틀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캠프 관계자는 “모두 침체돼 있으니까 신나는 노래를 틀면 주민들 반응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고, 태 후보는 노래 사용을 승인했다.
 
  4월 7일, 태영호 후보가 래퍼로 변신해 ‘기호 2번 태구민’ 지지를 호소하는 랩을 하는 영상을 촬영해 태영호TV에 올렸다. 영상 속 분홍 모자와 후드티 차림의 태 후보는 몸으로 리듬을 타며, “2번에는 2번이네, 2번만이 이기는 길, 2왕이면 2번이네, 2번 선거 2번 찍어 2 나라를 이어가세”라고 흥얼거렸다. 짙은 색 정장을 입고 ‘김정은 독재정권’ ‘북한인권’ 등 무거운 주제로 강연해왔던 태 후보의 평소 모습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인 변신이었다.
 
  4월 9일, ‘뉴시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서울 강남갑 선거구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512명을 대상으로 4월 6~7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태영호 미래통합당 후보는 52.3%, 김성곤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36.8%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두 후보 지지율 격차는 15.5%p였다. 3월 말 여론조사 결과 발표 이후 한창 탄력을 받은 태영호 캠프는 이후 완전히 ‘잔칫집’ 분위기가 됐다. 태 후보는 선거운동을 마감하고 사무소로 들어와서 오후 10시에 유튜브 생방송을 진행했다. 동시 접속자가 1500명이 넘자, 태 후보는 ‘찐이야’에 맞춰 3분 동안 막춤을 췄다. 이처럼 막바지로 갈수록 태영호 캠프는 선거를 즐기고 있었다.
 
 
  가로수길·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마지막 선거운동
 
4월 14일 오후 11시30분쯤, 공식 선거운동 종료 시각에 가까워졌는데도 태영호 당시 후보는 유권자를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야겠다며 압구정 현대아파트 입구에서 행인과 아파트 입주민에게 인사를 했다. 사진=태영호 당선자 제공
  4월 14일은 선거운동 마지막 날이었다. 이날 태영호 후보는 종일 유세 차를 타고 지역구를 돌아다녔다. 오후 6시에는 압구정역 앞에서 1시간가량 머물렀다. 이 자리에는 강남구 논현동에 거주하는 청각장애인 목사가 나와 태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또 자신을 공군 출신이라고 소개한 20대 청년은 “자유시장경제 원리를 거부하고 일관성 없는 부동산 규제를 시행한 여당이 선거철을 맞아 몰려와서 규제를 풀겠다며 위선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에 분노한다”는 취지로 현 정권을 비판했다.
 
  이날 밤 10시, 태 후보는 신사역 인근 가로수길로 나가 걸어 다니며 행인들에게 인사하고 명함을 줬다. 상점에 들어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는 환대를 받기도 했다. 이동 도중 태극기를 든 이들의 환호, 유튜브 생중계를 보고 찾아온 주민들의 응원을 받았다. 30대 청년들의 지지를 받자, 태 후보는 “30대가 좌파 정권을 비판하는 걸 처음 본다”며 놀랐다.
 
  태 후보는 밤 11시가 넘었지만, 유권자를 1명이라도 더 만나 인사하겠다면서 압구정 현대아파트 입구로 발길을 돌렸다. 그 자리에서 또 강남 주민들과 사진을 찍고, 그들이 가져온 책에 서명을 해줬다. 일산 거주 청년도 생중계 방송을 보고 차를 몰고 나와 태 후보를 응원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밤 11시54분이 되자 태 후보는 ‘기호 2번’과 ‘태구민(태영호)’이 적힌 선거용 상의를 벗고 ‘선거운동 종료’를 선언했다. 차를 타고 선거사무소로 돌아가면서 태 후보는 “내가 만약 비례대표로 나갔다면 정치가 무엇인지 몰랐을 것”이라면서 “지역구에 출마하길 정말 잘했다”고 말했다. 또 “아까 저녁 먹고 나서는 몸이 너무 무거워서 일어날 수 없었는데, 막상 나와서 지지자들을 만나니까 힘이 솟는다”면서 사무소로 복귀한 뒤에도 한동안 귀가하지 않고 마지막 선거운동에 대한 소회와 함께 향후 계획을 밝혔다.
 
태영호 후보가 15일, 선거사무소에서 자신의 승리가 예측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접하고 지지자들과 환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태 후보는 자신이 20%p 차로 이긴다면 ‘압승’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우리가 진행한 새로운 방식의 선거운동이 주민들한테서 호평을 얻었다고 들었다”면서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4월 9일 발표)가 15%p 차였으니까 그것보다는 좀 더 벌어지지 않았을까 기대한다”고 밝혔다. 태 후보는 미래통합당의 의석 확보가 여의치 않다는 점을 걱정하면서 현실적으로 자신의 공약을 실현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내가 선거 기간 주민들한테 종부세 개정안(9억원→12억원)을 통과시키겠다고 했는데, 이건 대단히 힘든 문제입니다. 우리 미래통합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면 안 되는데, 지금 우리 당이 과연 몇 석을 가져오겠어요? 이런 상황에서 종부세 개정안 통과를 기대하는 건 솔직히 어렵지 않을까…. 나는 국회에 가면 일차적으로 미래통합당의 강남갑 당협과 ‘숨은 보수’를 조직해서 광화문광장과 서울시청 앞으로 가서 드러누울 겁니다. 선거에서 밀렸기 때문에 이제 예전과 같은 신사적인 방법은 절대 통하지 않습니다.
 
  북한인권재단도 꼭 출범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인권법은 있는데, 북한인권재단을 못 나오게 하고 있거든요. 지금 140억원이 묶여 있어요. 이걸 여론화해서 저쪽이 얼굴이 뜨거워서 동의할 수밖에 없게 해야 합니다. 국내에서 안 되면 미국으로 가고, 일본으로 가고, 유엔에 가고, 외국으로 나가서 여론전을 하면서 떠들어야 합니다. 어떻게든 북한인권재단이 출범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들을 쫓아 보내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어서 강제북송을 막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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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원    (2020-04-20) 찬성 : 1   반대 : 9
종북좌익들이 북한 주민을 내세워 김정은을 보호하는 수법인데........툭한 주민을 내세우는 정책은 올바르지 않다. 북한을 견제할려면 군사독재로 길들여진 한국인들의 집단주의적 사고 방식을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하는 자유민주주의 사상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박승두    (2020-04-20) 찬성 : 16   반대 : 3
북한인권재단을 만든다니까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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