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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의 인간탐험

胃癌 치료의 전설 노성훈 교수

최고의 癌의사가 癌환자 되고, 아내는 癌으로 떠난 운명…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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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과 의사 32년간 세계 최초, 세계 최다 胃절제술 1만例 기록
⊙ ‘5無 수술’을 위암 수술에 도입… 無집도·無콧줄·無심지·無수혈·배꼽 밑 상처無
⊙ 자신은 2014년 말 후두암 2기 진단, 아내는 지난해 말 담관암으로 사망
⊙ “사람은 누구나 죽음 향해 다가가는 존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작은 것에 불과”

盧聖勳
1954년 출생. 연세대 의대 졸업, 고려대 의학박사 / 연세대 의대 교수, 연세암센터 원장, 연세암병원 원장, 대한위암학회 회장·이사장, 세계위암학회 회장 역임 / 세브란스병원 최우수 임상교수상(2000·2007), 연세대 의대 올해의 교수상(2001), 대한의사협회 의과학상(2005) 외 다수 / 現 강남세브란스 특임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회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회원
사진=영상미디어 김종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발생률을 보이는 암질환은 바로 위암이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수준의 위암 발생국이다. 위암 수술로 세계 1위인 외과 의사가 있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노성훈(盧聖勳·65) 특임교수다. 그의 이름은 수많은 외과 의사에게 전설로 불린다.
 
  그는 위암과 관련한 ‘위(胃)절제술 1만 례(例)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가 수술한 위암 환자 수가 1만명을 넘었다는 의미다. 대부분 암이 상당히 퍼진 진행성 위암 환자들이다. 강남세브란스 홍보팀 관계자는 “이 기록은 세계 최초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기록이란 평가를 받는다”고 했다.
 
  지난 4월 1일 강남세브란스병원(서울 도곡동 소재)에서 노 교수를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모습을 보니 거인(巨人) 같았다. 학계에서는 ‘닥터 몬스터(Monster·괴물)’라 부른다. 악수를 나눈 그의 손은 크고 두꺼웠으며 딱딱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손 같았다. 문득 10여 년 전 잡아본 피아니스트 백건우(白建宇)의 손이 떠올랐다. 두 거장(巨匠)의 손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는 노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며 《맹자(孟子)》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어떤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한다.(天將降大任于是人也, 必先苦其心志)”
 
  위암을 치료하는 외과 의사이자 병원 경영자인 암병원 원장임에도 그는 후두암에 걸려 오랜 투병의 시간을 보냈다. 또 담관암에 걸린 아내를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 날에 떠나보내야 했다. 암과 관련한 상황을 모두 겪은 셈이다. 하늘이 그에게 맡긴 임무가 얼마나 크고 높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 교수는 지난 2월 28일 연세대 의대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정년 퇴임한 것이다. 그리고 강남세브란스병원 특임교수가 되었다. 정년을 마친 교수를 특임교수로 재임용하는 경우는 노 교수가 두 번째 사례라고 한다. 병원 관계자가 “노 교수여서 가능한 케이스”라고 귀띔했다.
 
  ― 정년의 소회가 어떠신가요.
 
  “아쉬운 점도 많고 한편으론 대과(大過) 없이 마쳤다는 뿌듯한 마음도 있어요. 1972년 연세대에 입학해 47년간 신촌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미국 연수 2년, 군의관 시절 3년을 빼고 신촌에서 학생, 인턴, 레지던트, 연구강사,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까지 내 청춘을 모두 보냈거든요.”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지난 2017년 11월 7일 노성훈 교수는 세계 최초로 위암 환자 위절제 수술 1만 례(例)를 달성했다. 동료 의료진과 기념촬영을 했다.
  ― 이젠 좀 즐기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여행도 다니고 지난 일들을 정리할 계획을 세웠는데, 웬걸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쉴 시간이 없어요. 5월 1일부터 이곳(강남세브란스 암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하는데 아직 조금은 여유가 있어요.”
 
  ― 뭘 더 하고 싶습니까. 다 이루셨는데….
 
  “아니에요. 32년간 외과 의사로 1만명의 암환자를 수술한 것은… 숫자로 볼 때는 크지만 사실 전체 위암 환자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해요.”
 
  ― 아….
 
  “전 세계로 볼 때 매년 새로운 위암 환자가 90만명 생긴다고 합니다. 대략 30년이면 2700만명이잖아요. 그중 1만명을 수술한 것이니 적은 수죠.”
 
  노 교수는 “정말 적절한 판단과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좀 더 도움을 드릴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하늘이 장차 그에게 맡길 임무가 궁금해졌다.
 
  “위암 전공의가 해외에도 많아요. 시간이나 거리, 경제적 이유로 한국을 찾지 못하는 의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기도 합니다. 그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 더 많은 위암 환자를 치료할 수 있잖아요.”
 
  노 교수는 벌써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다. 아무래도 ‘일 중독’이 분명하다.
 
  “역시 수술은 제한적입니다. 수술만으로 완치되는 게 아니어서 수술과 항암 치료를 병행하는데, 항암 치료가 모든 환자에게 도움이 되진 않더군요. 일부 환자는 정말 하지 않아도 되는데 항암 치료를 받는 이가 있어요.”
 
  어떤 환자에겐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가 무익하다는 말이었다.
 
  “진행성 암 환자라고 해도 수술만으로 완치되는 환자가 있고, 또 어떤 환자는 항암제를 썼을 때 치료성적을 확실히 올릴 수 있는 환자가 있어요.
 
  어떤 환자는 항암 치료의 효과가 거의 없는 경우도 있죠. 우리(연세대 의료진)가 보기에 위암 2기와 3기 환자 중 45% 정도는 항암제를 써도 별 도움을 받지 못하는 환자입니다. 그러니까 불필요한 항암제를 쓰고 있다고 의심되는 환자가 40%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치료가 환자에게 적합한지 효과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bio-marker)’ 스터디를 해놓은 게 있는데, 그 결과가 지난해 《란셋 온콜로지(The Lancet Oncology)》라는 의학 학술지에 실렸습니다.”
 
  바이오마커는 단백질이나 DNA, RNA(리복핵산), 대사 물질 등을 이용해 몸안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를 말한다. 바이오마커를 활용하면 생명체의 정상 또는 병리적 상태, 약물에 대한 반응 정도 등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한경 ‘경제용어사전’ 참조)
 
  계속된 노 교수의 말이다.
 
  “항암제가 몸에 맞는지를 예측하는, 항암제 감수성 연구를 상용화해서 많은 환자가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거기서 더 나간다면 위암 신약… 위암에 효과적인 약을 개발하는 게 꿈이죠.”
 
  위암은 이전까지 항암제가 효험 없는 암으로 인식, 검증된 항암 치료가 없었다. 노 교수는 노련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표준화된 암수술법을 고안했다. 또 위암 환자의 생존율을 증가시키는 여러 연구 결과는 미국 표준 암치료 지침[(NCCN(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 Guideline]에 채택되어 위암의 표준치료 지침을 바꾸는 성과를 이루었다.
 
 
  혁신적 ‘5無’ 위암수술
 
노성훈 교수의 혁신적인 5무(無) 수술법은 국내외 위암수술의 표준이 되고 있다. 무(無)메스, 무콧줄, 무배액관, 15cm 이하의 수술 부위, 무수혈 등의 방식을 말한다.
  위암은 60세 전후에 많이 발병하는 노인병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중장년병이다. 위암 발병률은 40대 이후 급격히 증가해 50~60대 최고조에 이른다. 환자 절반 이상이 50~60대에 위암에 걸린다. 모든 암이 그렇지만 위암도 수술·치료 과정이 고통스럽다.
 
  그러나 노 교수의 환자라면 암수술의 공포 없이 수술 다음 날 걸어 다니며 심지어 수술 후 일주일 만에 퇴원할 수 있다. 강남세브란스 홍보팀이 기자에게 준 자료에 노 교수의 ‘5무(無) 수술법’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아주 인상적이었다. 짧게 인용하면 이렇다.
 
  〈… 수술 중 칼(메스)을 쓰지 않고 전기소작기를 이용한다. 수술 전후 사용하던 콧줄, 복강 내 배액관을 쓰지 않는다. 최소 절개를 하기에 배꼽 밑 상처가 없고 수술 중 수혈도 없다. 다양한 논문을 통해 이러한 수술법의 효과와 안정성을 입증했고, 현재는 많은 의사들이 노성훈 교수의 수술법을 따르고 있다.…〉
 
  ― 아니, 메스 없이 어떻게 수술합니까.
 
  “칼이나 가위를 댄다고 가정해봐요. 인체는 미세한 모세혈관으로 이뤄져서 칼을 대면 어디든 피가 나옵니다. 출혈이 되면 우선 (외과 의사의) 시야를 가립니다. 피를 닦아야 수술할 수 있어요. 저는 칼 대신 전기소작기를 씁니다. 전기소작기는 전기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꾸는 도구잖아요. 출혈 부위를 지져 지혈하는 전기소작기를 쓰면 우선 출혈이 최소화되니까 수술 시야를 깨끗하게 할 수 있어요.”
 
  ― 위암수술에 전기소작기를 쓰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해서 나온 겁니까.
 
  “하하, 제가 전기소작기를 발명한 것은 아니고요, 신경외과·정형외과에서 전기소작기로 수술하는 걸 보고 응용한 것이지요. 위암수술에 적용한 것은 제가 처음이죠. 보통 수술 과정에서 출혈이 많으면 수혈해야 합니다. 1980~90년대만 해도 위암수술 환자의 절반이 수혈을 했어요.
 
  남의 피를 받으면 여러 부작용이 있어서 신체에 나쁠뿐더러 수술시간도 길어집니다. 그런데 전기소작기로 출혈 부위를 지지면 ‘피가 안 나는’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죠. 1989년에 처음 시도했어요.”
 
  ― 꼭 30년 전이네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위암 중에서 암이 위의 상부에 위치하면 위 전체를 들어내야 해요. 이 과정에서 비장을 함께 절제했어요. 절제 이유는 비장으로 가는 혈관 중 임파선(림프절)을 제거하기 위해서죠. 제가 1997년에 비장을 절제하지 않고 위전(胃全)을 절제했어요. 당시로선 이 수술법을 처음 제시했지요. 지금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표준수술이 됐어요.”
 
 
  산부인과 무통분만을 응용하다!
 
외과 전공의 3년 차 시절(1981년 무렵)의 모습이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노성훈 교수다.
  노성환 교수가 치료하는 환자들은 이른바 ‘콧줄[鼻胃管]’이 없다. 콧줄은 수술 부위의 분비액과 가스가 빠져나가도록 코로 넣어 수술한 위까지 연결하는 관을 말한다. 그는 2002년부터 이 콧줄을 없애버렸다.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겼을 때 고름 배출을 위해 환자 배에 넣는 심지[排液管·drain]도 쓰지 않는다. 노 교수의 말이다.
 
  “제 생애를 돌이켜보면 1990년대 말에서 2005년까지가 환자 중심의 수술에 관심을 가진 시기입니다.
 
  보통 위암수술을 하면 환자들이 콧줄로 인한 고통을 호소합니다. 위를 떼내거나 다른 장(腸)과 연결하면 남은 위나 장에서 장액 혹은 가스가 생기는데, 꿰맨 수술 부위가 터질까 봐 코에 줄을 넣어 (장액이나 가스를) 뽑아냈어요. 이때 환자들이 구역질, 구토, 호흡 곤란 등을 호소했죠. 배를 절제해 가뜩이나 괴로운데 배 속 장까지 튜브가 들어가니까요. 간호사는 가래가 생기면 뱉어내라는데, 뱉다 보면 배에 울림이 전달돼 더 아픕니다. 그걸 없앤 겁니다.”
 
  ― 환자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나요.
 
  “정교한 수술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죠. 또 수술 후 배 속에 피나 진물 같은 것이 생길까 봐 심지를 꽂아 밖으로 뽑아내는데….”
 
  ― 심지요?
 
  “네, 예방 목적이죠. 심지를 달면 허리 부위에 염증이 생기거나 짓무르기도 하고 심지를 빼낼 때 환자들이 무지하게 고통스럽죠. 저는 ‘꼭 필요할까’ 하고 의문을 가졌고, 결국 없애버렸습니다.
 
  또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산부인과의 무통분만(無痛分娩)을 응용하게 됐습니다.”
 
  ― 어떻게요?
 
  “산모 등에 관을 꽂고 그 관에다 진통제를 넣어 통증 없이 아이를 낳게 하는데, 위암수술에 응용하면 어떨까 생각했죠. 대개 아파하는 시간이 수술 후 이틀 정도거든요. 그런데 무통마취 방식을 택하니 통증이 줄고 수술 이튿날 바로 걸어 다닐 수 있게 된 것이죠.”
 
  ― 수술 부위도 크게 줄였다고 들었습니다.
 
  “과거에 위암수술을 하면 25cm가량 (배를) 열고 수술했어요. ‘위대한 외과 의사들’ 일명 ‘그레이트 서전(great surgeon)’들은 큰 상처 자국을 내고 수술한다는 불문율 같은 게 있었죠. 그런데 크게 (배를) 가르면 환자에겐 큰 고통이죠. 상처를 작게 내면 고통이 적으니까요. 그래서 상처를 15cm 이하로, 명치 끝에서 배꼽 있는 곳까지 (상처를) 배꼽 이하로 내려가지 않게 모든 수술을 해냈어요.”
 
 
  수술 시간이 줄자 병원 이익은…
 
노성훈 교수(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1983년 2월부터 86년 4월까지 국군 서울지구병원 일반외과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노 교수는 자신이 고안한 무(無)메스, 무콧줄, 무배액관, 15cm 이하 수술 부위 등 수술법을 국내외 위암학회에 발표했고, 그 후로 많은 국내외 의사가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고 회고했다. 고통을 줄이는 환자 중심의 수술은 위암수술의 표준이 되었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그동안 위암수술 하면 일본이 가장 앞선 나라였는데, 한국이 앞지르게 된 것이죠.”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내과 의사든 외과 의사든, 병리학 의사든 위암을 전공하는 의사는 모두 일본에서 1~2년간 연수를 받았다. 식습관이 한국과 비슷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경우 위암 발병이 많아 덩달아 위암수술도 발전했다.
 
  “1993년에 미국 연수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일본에 들러 3개월간 연수를 받았죠. 그때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10년 뒤에는 외국 의사들이 나한테 오도록 하겠다’고 결심했는데, 그 꿈을 이뤘어요. 2000년 이후 한국 의사들이 일본에서 연수하는 경우가 거의 없을 겁니다. 오히려 일본에서 저한테 수술을 가르쳐달라고 하더군요.”
 
  ― 노 교수로 인해 일본 의료진이 깜짝 놀랐겠어요.
 
  “일본의 위암수술 시간이 보통 4시간에서 5시간30분 정도 걸립니다. 제가 콧줄도, 칼이나 가위도 없이 수술하니 2시간가량 시간이 줄더군요. 그런데 수술시간 단축은 마취시간의 단축으로 이어졌어요. 보통 수술시간이 4시간이면 마취시간은 5시간입니다. 수술시간을 2시간 줄이니 마취시간 역시 2시간30분 정도 줄었죠. 이렇게 수술·마취 시간을 줄이니 환자 회복도 빨라지죠.”
 
  ― 수술시간 단축이 가져온 효과가 크네요.
 
  “그렇죠.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우리 몸속은 늘 닫혀 있잖아요. 그걸 연다고 쳐요. 고열의 수술실 불빛 아래서 장기(臟器)가 공기와 접촉하게 됩니다. 또 수술도구를 배 속에서 계속 조작해야 하니까 환자가 겪는 생리적·물리적 스트레스는 회복 기간을 늦춥니다.
 
  수술시간이 줄면 입원기간도 줄어요. 일반적으로 수술 후 입원기간이 2~3주일 되던 것이 일주일로 줄었죠. 결국 환자의 일상 복귀가 빨라지고 입원비가 줄어드니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겠죠.”
 
  ― 퇴원을 빨리 하면 병원 경영에는 별 도움이 안 되겠네요.
 
  “하하하, 별 영향이 없는 것이… 일주일 단위로 계속 새로운 환자가 생겨나요. 새 환자가 끊이지 않으니 병원은 병원대로 도움(이득)이 됐을 겁니다.”
 
 
  “암진단을 처음 받았을 땐 머릿속이 하얘졌죠”
 

  노 교수는 2014년 말 후두암 2기 진단을 받았다. 2012년 9월부터 ‘의료원 건설사업단 암병원 개원사업본부장’을 맡아 공사를 진두지휘한 후 암병원이 문을 연 지 6개월쯤 지났을 때다. 당시 그는 연세암병원장(연세대 신촌캠퍼스 소재)이었다.
 
  “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지… 평생 암을 치료하는 의사로 살아왔지만 2014년 암에 걸렸어요. 목소리가 너무 나빠져 쉰소리가 났는데, 실은 2012년 무렵 조직검사를 받았을 땐 별 이상이 없었거든요. 암병원 개원에 신경 쓰다 보니 결국 후두암 진단을 받은 겁니다.
 
  7주간 방사선 치료를 받았죠. 피부가 다 헐고 식도 역시 헐어서 밥을 못 먹을 지경이었어요. 암진단을 처음 받았을 땐 머릿속이 하얘졌죠. 이런 일이 왜 내게 일어났을까, 되물었어요.”
 
  그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 남의 건강은 돌보면서 내 건강은 못 챙겼다는 후회와 함께 가족에 대한 미안함 등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고 한다. 그날 이후로 의사가 아닌 환자로서 암의 또 다른 실체를 경험하게 됐다.
 
  “암진단을 받았을 때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정신적으로 나락에 떨어지는 경험을 했어요. 암 전문의인 제가 말이죠. ‘재발(再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항상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사람과의 접촉에 자신이 없어지고 누구와 대화하고 싶지 않았어요. 게다가 후두암에 걸리면 정상적인 목소리도 안 나오고….”
 
  노 교수는 암을 신이 내린 ‘채찍’이라 생각했다. 이전에도 환자에게 친절한, 환자를 배려하는 의사였지만 암투병으로 더욱 환자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를 찾아온 암은 ‘은혜’였어요. 의사가 아닌 환자 입장에서 암을 바라보고 환자 중심의 병원을 운영하게 됐으니까요. 당시 암병원장이던 저는 ‘설명 잘 하는 병원’ ‘기다림 없는 병원’ ‘통증 없는 병원’을 선언했어요.
 
  당시 연세암병원을 짓기 위해 3000억원을 썼습니다. 그런데 하드웨어 경쟁력은 일시적이에요. 결국 경쟁력은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연세암병원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병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죠.
 
  그 새로운 경험은 대단한 경험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국민이 병원에 와서 불편해하는 게 뭡니까. 몇 시간을 기다려 2~3분 진료를 받아요. 어떻게 의사가 갑(甲)이고 환자가 을(乙)인가요? 무조건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 환자가 (병원을) 선택해 충분한 지불을 하고 진료받는데 어떻게 환자가 을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죠.
 
  그렇게 하다 보니 개원 후 6개월쯤 지나니까 병원 내부에서 친절하다는 소문이 들리더군요.”
 
  연세암병원장 시절, 일일 외래환자가 1500명에서 2500명으로 늘어났다.
 
  “암병원을 개원할 때 의료계에서 우려를 많이 했어요. 3000억원 투자가 세브란스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요. 경쟁 병원인 삼성의료원, 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도 암병원을 갖췄고, 일산에 국립암센터가 있는데 어떻게 견딜 수 있느냐고 했지요. 그런데 첫해만 50억원 적자였지 2015년 이후 흑자로 돌아섰어요. 지금도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저는 병원 직원들에게 말합니다. 병원 수입을 매일 보고하고, 매주 환자 수를 통계 내어 의사에게 통보하는 식의 병원 경영은 결국 환자를 돈으로 보게 만든다고요. 진심으로 환자를 치료하면 경영은 부수적으로 좋아지더라는 얘기를 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병원의 궁극적인 경쟁력은 사람에게 달려 있거든요.”
 
  노 교수는 “환자가 병원을 신뢰할 때, 환자가 의료진을 신뢰할 때 경영은 저절로 좋은 성과를 내더라”고 체험론적으로 말했다.
 
 
  아내를 암으로 떠나보내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외과 의사의 손. 노성훈 교수의 손이다.
  연세암병원이 성공적으로 안착될 무렵, 그에게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2017년 11월, 아내가 암진단을 받은 것이다. 담관암 4기. 수술이 소용없는 말기였다.
 
  “아내는 평소 건강했어요. 그해 11월쯤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동네 의원에 갔는데 호전이 안 됐어요. 그래서 큰 병원에 갔더니 담관암 4기라는 겁니다.
 
  담관암은 초기에 발견해 수술하는 것이 제일 좋지만 4기 암이라면 수술도 안 되고… 항암제도 좋은 게 없어요. 의사들이 6개월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내렸는데 13개월을 살다가 작년 크리스마스이브 날에 운명했죠.
 
  암을 치료하는 의사이자 암환자로서, 그러나 암환자의 간병인은 또 다른 경험이었어요. 결혼 후 36년 동안 아내와 얘기한 것보다 마지막 1년 동안 아내를 간병하며 나눈 얘기가 훨씬 많았죠. 병원 업무가 끝나거나 내원객 발길이 뜸한 주말 오후나 휴일에 병원 주변을 거닐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말 깊이 있는 교류(交流)의 시간을 온전히 가졌어요. 제겐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 생사(生死)의 현장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의사가 바라보는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태어나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갈 수밖에 없습니다. 신의 부르심이 좀 빠르냐 느리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다 같이 하늘나라에서 만나게 돼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믿고 있죠.”
 
  ― 보통 암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신이나 절대자의 존재에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환자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만난 다수의 환자는 암진단 후 분노와 후회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낍니다.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생겼을까’ 하고 말이죠. 종교가 있는 분은 일시적으로 신을 원망하지만, 자신에 대한 분노가 더 커요. 그러나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남은 삶을 가족과 함께 지내려고 애를 쓰고 종교에 의지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고통을 혼자 헤쳐나가기 힘들기 때문이죠.”
 
  ― 신을 다시 찾는다….
 
  “그렇죠. 자신이 아프면 가족이나 친지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아요. 그럴 때 내 몸을 의탁하고 싶은 대상이 필요한데 그 대상이 대개는 신이 되지 않을까요? 암진단을 받은 후 종교에 귀의한 분이 많아요.”
 
  ― ‘신은 인간에게 왜 고통과 죽음을 주었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암이라는 질병도 신이 저에게 준 하나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저 역시 가혹한 고통과 죽음의 과정을 겪으며 성장함을 느꼈으니까요. 암 의사였다면 몰랐을 암환자, 암환자의 가족이 느끼는 감정과 사고, 생각이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제가 암환자가 되어, 그리고 아내를 떠나보내며 확실히 느꼈어요. 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작은 것에 불과하구나, 하고….”⊙
 
노성훈 교수가 말하는 위암 예방법
 
  “조기 검진이 최상의 예방”
 
  노성훈 교수는 “마흔이 되면 무조건 위암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 위암 발생률은 서양에 비해 최고 10배나 높다. 또 위암 발생률이 40세부터 급격히 증가하는데, 위암 발병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 감염이 이미 30대에 선진국의 2배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검진 시기는 1년 또는 2년 간격이 바람직하다.
 
  노 교수는 “위암은 소화불량, 속쓰림 등의 증상이 나타나지만 별다른 자각 증상이 없고 심지어 말기에도 아무런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가벼운 소화불량으로 생각하고 정확한 진단 없이 소화제만 먹다가 위암으로 발전할 때까지 방치 말고 평소 위장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 검진입니다, 40세 이상일 경우 내시경 검사가 필수고, 만약 위암이 발견되어 의사와 치료를 시작했으면 끝까지 의사를 믿으라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위암 막을 올바른 식습관은 무엇일까.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음식을 먹고, 맵고 짜거나 태운 음식, 방부제가 들었거나 상한 음식을 안 먹어야 합니다. 또 술은 줄이고 흡연은 삼가고,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많이 권합니다. 이 밖에 고단백 식품, 유제품, 비타민, 짜지 않은 된장국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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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갑수    (2019-04-23) 찬성 : 1   반대 : 0
선생님, 존경합니다. 은퇴 이후 제2의 인생 멋지게 사십시오.

20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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