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세브란스병원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노력이 빚은 결과
⊙ 작지만 강한 병원으로 10년 내 톱5에 근접한 병원 만들겠다
⊙ 척추 분야의 최고 명의… 경영과 수술 함께
⊙ 깨끗하고 친절한 병원으로 환자 맞는 것은 직원들의 자부심 덕분
김근수
1962년생. 연세대 의과대학 졸업, 연세대 의학박사 / 전북대 의대 신경외과 부교수,
연세대 의과대학 신경외과 교수, 강남세브란스병원 기획부실장, 척추병원장 역임.
현 강남세브란스병원장 / 국제요척추학회 대상(ISSLS Prize), 대한신경외과학회
최우수 논문상(척추분야), 대한신경외과학회 최우수 임상논문상 수상
⊙ 작지만 강한 병원으로 10년 내 톱5에 근접한 병원 만들겠다
⊙ 척추 분야의 최고 명의… 경영과 수술 함께
⊙ 깨끗하고 친절한 병원으로 환자 맞는 것은 직원들의 자부심 덕분
김근수
1962년생. 연세대 의과대학 졸업, 연세대 의학박사 / 전북대 의대 신경외과 부교수,
연세대 의과대학 신경외과 교수, 강남세브란스병원 기획부실장, 척추병원장 역임.
현 강남세브란스병원장 / 국제요척추학회 대상(ISSLS Prize), 대한신경외과학회
최우수 논문상(척추분야), 대한신경외과학회 최우수 임상논문상 수상
1960년대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76달러였다. 유엔 120여 개국 중 최하위였다. 필리핀이 우리의 2배를 웃도는 170달러였고 태국은 3배 많은 220달러였다. 가진 것 없는 나라가 살길은 인력(人力)뿐이다.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보낸 것은 이들의 임금을 담보로 잡혀 차관을 빌려야 했기 때문이다.
조국의 ‘빚 담보’로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독일에 간 간호사가 모두 1만226명이다. 이 가운데 5000여 명이 아직까지 독일에서 살고 있다. 파독(派獨) 간호사들이 1970년대부터 줄기 시작하자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이들이 귀국할 경우 국내에서 어떻게 취업을 시킬 것이냐는 문제였다.
독일이 파독 간호사 한국 내 취업 위해 병원 설립 제안한 게 기원
1974년 당시 서독의 수도 본에서 열린 한독(韓獨) 정기 각료회담에서 서독 정부는 이런 제안을 한다. “파독 간호사들의 한국 내 취업을 위해 독일이 장기 저리(低利) 차관을 제공할 테니 한국에 병원을 설립하는 것이 어떠냐.” 1년 뒤인 1975년 당시 남덕우(南悳祐)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김효규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김 부총장은 독일 뮌헨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갓 귀국한 이성낙 교수(현 가천의대 총장)에게 파독 간호사를 위한 병원 건립 프로젝트를 추진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성낙 교수와 송자 교수(宋梓·전 연세대 총장), 김모임 교수(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여러 명이 가세했다. 연세대는 병원 건립계획서를 제출했고 그해 10월 서울서 열린 제5차 한독경제각료회의에서 제안이 채택됐다. 곧바로 서독경제협력성 한국문제담당 서기관 3명이 한국에 와 전국을 둘러봤다.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외에도 건립 중이던 서울대병원, 부산, 대구의 지방 대학병원까지 살펴본 서독 정부 조사단은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은 잘 운영되고 있는데 굳이 차관을 줄 필요가 있느냐”며 “신촌이 아닌 다른 지역병원에 차관을 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그렇다면 어디란 말인가.
그 무렵 서울 강남은 허허벌판이었다. 지금의 강남세브란스병원 자리가 서울시가 계획 중인 강남개발계획서에 ‘종합병원 건설 예정지’로 분류돼 있었다. 지금은 어림도 없지만 당시 도곡동 병원부지에서는 한남대교가 훤히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연세대는 일단 그 부지를 확보했다.
1976년 12월 국회에서 서독 차관 승인이 떨어졌지만 뜻밖의 암초가 생겼다. 당시 보건사회부 등에서 “서울에는 병원이 많으니 울산·포항 같은 공단(工團)에 병원을 건립하라”고 한 것이다. 강남세브란스 관계자는 “정부 차관을 국립대가 아닌 사립대가 받는 것을 못마땅해 한 점도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독일 평가팀 내한해 “독일병원보다 더 낫다” 평가
우여곡절 끝에 강남세브란스병원의 규모를 당초보다 절반 줄어든 250병상으로 수정하고 대신 성남(100병상), 용인(30병상), 광주(30병상), 인천주안공단(80병상)의 병원을 건립하는 수정안이 통과됐다. 강남세브란스는 1978년 1500만 마르크를 빌려 개원 25주년인 2008년 차관을 전액 상환했다.
개원 다섯 달 후인 1983년 9월, 1500만 마르크를 빌려준 독일재건은행(KRW) 관계자들이 강남세브란스병원(당시 영동세브란스)을 방문했다. 어떻게 운영되는지 평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듬해인 1984년 서독은 동남아 및 태평양과장 포스(Voss) 박사 등 4명의 평가위원을 다시 한국으로 파견했다.
그들이 내린 평가는 이랬다. “연세대 영동병원은 독일 내의 병원보다 우수하다. 지금까지 독일재건은행이 지원한 세계 여러 나라 병원 중에서 영동병원이 가장 운영이 잘되고 있는 병원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앞으로 파독 간호사들이 돌아오면 적극 채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실제로 강남세브란스는 1983년 개원과 함께 파독 간호사 중 한국 내 취업을 원하는 간호사 6명을 우선적으로 채용했다. 파독간호원협회에는 안내 공문을 보내 우수한 파독 간호사가 영동세브란스병원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파독 간호사 채용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이런 유서깊은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지난 8월 새 원장이 취임했다. 척추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명의(名醫)로 꼽히는 김근수(金槿洙·54) 원장이다. 김 신임 원장은 취임 직후 “의료의 질(質) 향상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며 “연구부원장직도 신설해 융합연구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겠다”고 밝혔다.
— 강남세브란스가 어떤 병원이 되기를 바랍니까.
“병원에는 여러 기능이 있습니다. 환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첨단의료를 도입하며 중증질환이나 고난도 치료를 하는 것 등이 거기 포함되지요. 무엇보다 저희 병원은 환자 치료 대신 수익에만 집중하는 병원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 아무래도 강남 한복판이다 보니 다른 병원들보다는 좁아 보입니다.
“주차장 문제가 심각해서 인근 도곡중학교 운동장 지하를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요. 내년 초에 교수 연구동이 개원하는데 병원 인근의 건물을 사들여 부서들을 분산시키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 처음에 이 땅을 매입할 때 좀 더 넓게 사들였으면 좋았을 텐데요.
“1991년 매봉터널이 개통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 못했지요. 분당 개발 때문에 터널이 생겼거든요. 저기 보이는 매봉산 능선도 사실은 병원 땅인데 자연녹지로 묶여 활용할 수 없고요.”
— 그렇다면 인근의 다른 초대형 병원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거 아닌가요.
“수서역 인근에 교육복합시설을 세우려고 서울시와 협의도 벌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병원의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원하는 환자들의 느낌이라고 봅니다. 들어오면서 보셨겠지만 저희 병원은 정말 깨끗합니다. 편안한 느낌을 주고요. 직원들도 전국 병원 가운데 가장 친절할 겁니다. 그뿐 아니라 전국 톱 클래스 분야가 많아요.”
척추·갑상선·유방암 등 전 분야에서 전국 최고 수준의 진료

— 어떤 분야들입니까.
“척추·갑상선암·유방암·간담췌장 분야·대장암·전립선암·폐암·심장혈관 분야·호흡재활 분야·뇌종양 분야는 전국 최고입니다. 대동맥 혈관 질환도 최고입니다. 박리성 대동맥류라는 질환이 있는데 들어보셨어요? 한 해에 우리나라에서만 1000명가량의 환자가 생기는데 그중 300명이 우리 병원에 옵니다.”
— 진짜 그렇습니까?
“우리 병원이 폐암 치료 적정성 평가에서 2년 연속 1등급을 받았어요. 위암 치료 적정성 평가에서는 최초로 통합평가를 했는데 거기서도 1등급이고요. 대장암 치료는 4년 연속, 유방암은 3년 연속 1등급입니다. 내친김에 다 말해볼까요? 만성 폐쇄성 폐 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폐렴 적정성 평가 1등급, 수술 예방적 항생제 적정성 평가 6년 연속 1등급, 급성기 뇌졸중 치료 적정성 평가도 6년 연속 1등급이고요. 그 외에도 자랑할 게 너무 많아요.”
— ‘작지만 편안하고 치료에 강한 병원’이라는 말씀이네요.
“앞서 편안하고 깨끗한 병원이라고 말했는데 그게 쉬운 게 아닙니다. 그 전통은 사실 세브란스의 출발 때부터 생긴 겁니다. 세브란스는 루이 세브란스라는 미국 클리블랜드의 거부(巨富)가 기증해서 생긴 병원입니다. 루이 세브란스는 한국에 한 번도 오지 않았던 분입니다. 그가 서울역 인근에 현대식 새 병원을 지어 기증한 게 세브란스의 기원입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그런 병원을 기증한 바탕이 무엇이겠습니까?”
— 무엇입니까.
“사랑이지요. 세브란스의 목표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자유케 하리라’라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세브란스병원은 설립된 지 131년이 됐습니다. 만일 병원 운영자들이 투명하지 않았다면, 자기 욕심만 부렸다면 벌써 망해서 없어졌을 겁니다.”
투명한 운영이 세브란스의 전통이자 저력… 직원들도 그걸 알아
— 투명한 운영이란 게 말처럼 쉽지는 않지요.
“저는 병원장이어서 법인카드를 받는데 개인적인 일로는 짜장면 한 그릇도 사먹고 결제해 본 적이 없어요. 아마 이 병원을 이끌어오신 선배들도 그랬을 겁니다. 직원들도 병원 운영자들이 깨끗하다는 걸 알아요. 그걸 아니까 직원들의 병원에 대한 자부심이 높습니다.”
— 얼마나 높은데요.
“5년 전에 경영진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의사들이 경영을 하니 아무래도 전문가들이 하는 것보다는 못하겠지요. 그런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어요. ‘세브란스가 이 체계를 오랫동안 유지해 온 힘은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직원들의 힘 덕분’이라는. 우리 직원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찍 출근하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늦게 퇴근합니다. 환자들에게 친절한 것도 누가 시켜서 그런 게 아닙니다. 스스로 병원이 자랑스럽기 때문일 겁니다.”
— 편안하다, 깨끗하다 이런 게 수치로 나오는 건 아니지요?
“JCI라고 국제 규정이 있습니다. 환자 안전규정인데 이 인증을 받은 국내병원이 몇 군데 되지 않습니다. 3년에 한 번씩 평가를 받아 인증을 받는 제도입니다. 강남세브란스의 청결도와 편안함은 그냥 인상적인 게 아니라 공인을 받은 것입니다.”
— 강남세브란스가 병원 순위에서는 어느 정도인가요.
“흔히 빅5라고 하는 병원이 있습니다. 연세대 신촌세브란스-서울대병원-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이지요. 저희는 아홉 번째 정도입니다.”
— 그럼 그 중간에 세 곳은 어딘데요.
“분당서울대병원-아주대병원-인천 길병원이지요.”
— 그럼 앞으로의 목표는 뭡니까.
“앞으로 10년 안에 강남세브란스병원을 빅5와 어깨를 견줄 만한 수준으로 진입시키는 겁니다.”
— 아무리 김 원장께서 척추 분야의 최고 명의라 해도 그게 가능할까요.
“하하. 골리앗이 다윗을 항상 이기지 못하잖아요.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 작지만 강한 병원이면 가능합니다.”
다윗이 골리앗 이기듯 대형 병원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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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척추전문의’ 김근수 병원장은 지금도 직접 환자들을 진료한다. |
“총장이 계시고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그다음이 신촌세브란스병원장-강남세브란스병원장-연세암병원장 셋이 다 병렬이지요.”
— 그럼 다음 목표는 의무부총장입니까?
“아이고. 저는 병원장 임기 마치고 평교수로 돌아가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 척추 분야의 명의라고 소문이 자자한데.
“하하. 저는 명의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지금까지 한 1만 회 정도 수술은 했지요.”(강남세브란스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김 원장의 척추 수술은 장안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특히 결핵균에 의해 녹아버린 척추를 재건하는 고난도 수술에서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 그런데 병원에서 사전에 준 자료에는 그런 내용이 일체 없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김 원장이 자기와 관련된 분야는 다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 임상의에서 경영자가 됐으니 느낌이 남다르겠습니다.
“제가 20년 넘게 척추신경외과 의사로 살아왔어요. 사실 전공의 시절에는 뇌(腦)를 전문으로 하고 싶었는데 당시 스승이자 모교 신경외과학교실 주임교수이던 김영수 교수님께서 절 부르더니 ‘너는 척추를 해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주임교수가 바꾸란다고 전공을 바꿉니까?
“지금 세대는 이해가 안 가겠지만 당시에는 스승의 말씀이 절대적이었어요. 그분 덕분에 척추신경외과의사가 됐고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 병원장이 돼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아 진료일수와 수술 건수를 조정하긴 했지만 저는 영원한 척추의사라고 생각합니다.”
— 병원장은 스스로 택한 길입니까.
“그것도 사실 자의 반 타의 반이지요. 수술하는 의사로서의 내 판단력과 용기, 경험을 우리 기관에서 평가해 준 것 같습니다. 특히 앞서 말했듯 공간이나 인력, 연구기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강남세브란스병원은 빠른 결단과 추진력이 필요한데 저를 적임자라고 봐주신 것 같습니다.”
— 병원 경영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까.
“처음은 아니지요. 병원 내 기획관리부실장과 척추병원장을 지냈으니까요. 아시다시피 기획실이라는 데가 어느 조직이 건 중심이잖아요. 병원의 살림살이며 여러 임상과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새로운 방안을 이끌어내는 데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어요.”
— 앞서 의료의 질을 언급했습니다만.
“의료의 질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병원별로 차등 수가제를 적용하는 것은 향후 국가정책의 명백한 방향입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뿐 아니라 모든 병원이 의료의 질을 향상시킨다면 그게 장기적으로 환자의 안전을 지키고 국민건강 증진에 이바지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고2 때까지 법대 진학하려다 큰형 권유로 진로 바꿔
— 원래 고향이 전라북도 고창인가요.
“거기서 살다가 초등학교(대조초등학교) 때 서울로 이사 왔습니다. 고창읍성 가보셨어요? 바로 앞에 신재효 선생 생가가 있고 그 뒤가 국악당인데 거기가 우리 집이었습니다.”
— 그렇습니까? 저도 고창읍성 가봤는데.
“어릴 때는 고창읍성이 놀이터였지요.”
— 의사가 될 생각은 어떻게.
“원래 우신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문과(文科)였어요. 법대에 진학하려 했는데 큰형님께서 의대 진학을 권했습니다.”
— 지금도 칼을 잡으셨으니 법대 가서 사법시험 합격했으면 검사(檢事)를 하셨겠네요.
“그랬겠지요. 집안에 법조인이 계세요. 지금 헌법재판소의 김이수 재판관이 집안 형님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