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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의 실패 연구하는 니혼대 교수 권혁욱

“내년 정권 교체기가 한국 경제에 가장 위험한 시기”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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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값 폭락하면 IMF 때보다 더 위험할 수도
⊙ 창의력이 곧 경쟁력인 시대에 발맞춰야
⊙ 표준제품을 대량생산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

권혁욱
경북대 무역학과, 서울대 대학원, 일본 히토쓰바시대(一橋大) 박사(경제학) /
서울대 경제연구소 방문교수 역임. 현 니혼대 경제학과 교수,
일본 경제산업성 ‘경제무역산업연구소’ 자문연구원(faculty fellow),
일본 문부과학성 ‘과학기술정책국책연구소’ 방문연구원(visiting fellow)
  니혼(日本)대 경제학과 권혁욱(權赫旭·50) 교수는 일본 경제, 그중에서도 ‘잃어버린 20년’(1991~2011년)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다. 한국 경제 시스템이 일본과 가장 가깝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 위기와 극복방안도 최근 그의 관심사다. 권 교수는 “한국이 일본 경제 실패를 답습할 위험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권 교수는 경북 경주의 벽촌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權五相·72)가 1980년대 포항제철 협력사에 입사하면서 살림이 펴졌다. “아버지는 형편이 안되는데도 기대 때문에 절 대구로 보냈어요. 고향에 눌러앉았다면 모두 행복하지 않았을까요? 대구·서울·도쿄에서 공부하느라 아등바등했지만 나아진 게 없어요.”
 
  1986년 3월 경북대 무역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교정은 학생시위로 들끓었고 경제학은 원하던 공부가 아니었다. 그는 “가장 많이 괴로웠던 시절”이라고 했다. 권 교수 꿈은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목사님이 부인에게 존댓말을 쓰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 영향으로 막연히 목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기억에 남는 딱 한 가지!
 
니혼대 경제학과 제자들. 가운데 앉은 이가 권혁욱 교수다.
  “고교시절 고 강영우(姜永祐) 박사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어요. 중학교 때 축구공에 맞아 실명한 뒤 미국서 박사 학위를 받고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가 된 분입니다. ‘삶이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생각을 바꾸니 세상이 달라진다’고 한 말씀에 박사가 되면 의미 있는 삶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1992년 2월 대학 졸업을 앞두고 그제야 방황을 끝냈다. 그는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취직하는 게 맞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채 취직하면 회사에 미안할 것 같았습니다.” 고려대 대학원에 기세 좋게 원서를 냈지만 낙방했다. 그는 1993년 6월 고대에 재도전했지만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그해 겨울, 이번에는 서울대 대학원에 도전했다. 떨어질 줄 알았는데 합격했다. 서울대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은행과 기업, 국회의원실에 입사원서를 냈지만 모두 떨어졌다. 난감했다. 부득이 박사과정 진학을 고민할 때 서울대 박우희 교수가 미국 유학을 권했다. “형편이 안된다”고 하니 “일본에 가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권 교수는 일본어를 배운 적이 없었다. 박 교수가 ‘한자를 보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건 좀 안다’고 했더니 ‘그럼 됐다’며 추천해 주었다. 그는 일본증권장학재단의 장학생이 돼 1996년 4월 도쿄의 히토쓰바시대(一橋大)로 유학을 떠났다. 수업료 전액과 월 18만 엔 정도의 생활비를 지원받았다.
 
  2년간의 석사과정은 일본증권재단의 장학금 혜택으로 마쳤지만 박사과정 3년은 자비로 버텨야 했다. 당시 일본학술진흥회가 박사과정생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문턱이 높아 일본인 학생들도 비관적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버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해 무작정 원서를 냈다.
 
  “서툰 일어로 계획서를 써 일본 친구들에게 감수를 부탁하니 황당해 하더군요. 다들 비웃었는데 합격했어요.” 권 교수는 연 100만 엔의 연구비와 월 38만 엔의 생활비를 지원받아 박사과정을 마치고 2004년 히토쓰바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듬해 같은 대학 강사로 시작해 2008년 니혼대 경제학과 부교수가 됐다.
 
 
  일본, 과거 호(好)시절 경제에 의존하면서 몰락
 
권혁욱 교수는 2008년 니혼대 경제학과 부교수, 2013년 이 대학 종신교수가 됐다. 경제학과 축구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 무엇을 주로 연구하나요.
 
  “일본의 장기 경기침체에 대한 연구입니다. 어쩌면 지금 한국이 주목해야 할 현실이에요. 일본에서 ‘단카이 세대’라고 부르는 베이비 붐 세대가 있는데 1947년에서 49년 사이에 태어난 전후세대를 말합니다.”
 
  ― 일본 경제가 성장 일변도를 달릴 때 유년기를 보낸 세대지요.
 
  “아무런 어려움이 없던, 어제보다 오늘, 내일이 좋은 세계에 살다 버블이 찾아왔을 때 30~40대였고 버블이 깨졌을 때가 40대 후반에서 50대였던 세대지요. 경기가 나빠졌는데도 기업은 그들을 자를 수 없었고 결국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의 취업이 어려워졌습니다. 1994년부터 ‘취업 빙하기’가 찾아왔어요.”
 
  ― 지금 한국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1994~2001년까지 굉장히 취업 문제가 심각했어요. 이들은 결혼도 못 하고 취직도 어려워 ‘잃어버린 세대’가 됐습니다. ‘단카이 주니어’라고 부릅니다. 그러다가 단카이 세대가 정년퇴직 시점이 오자 지금 일본은 사람이 모자랍니다. 대충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되는 시대예요.”
 
  그는 “일본 경제 위기의 원인을 일자리 수요 부족 때문”으로 진단했다.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로 일자리 유형이 바뀌었지만 과거 숙련공을 못 자르면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생산성이 떨어지면 수익이 줄고, 투자를 안 하게 되어 고용과 가계소비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경기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권 교수의 말이다.
 
  “경기 악순환을 끊으려면 구조개혁이 필요한데 너무 힘이 드니 못 바꿉니다. 1991년 버블이 깨지고 2년 뒤 자민당 정권이 무너졌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일본은 줄곧 연립정권이었어요. 단독과반이라면 구조개혁이 탄력을 받았겠지만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연립정권은 어중간한 정책만 쏟아냈습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일본은 왜 20여 년간 장기불황을 극복하지 못했을까? 해답 중 하나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입니다. 종신고용제, 연공임금제, 기업별 노조로 이루어진 노동 시스템과 기업 간 수직계열화로 대표되는 생산 시스템, 주거래 은행제도와 같은 자원배분 시스템은 과거 일본 경제의 성공 이유였지만 지금은 유효성을 잃었어요.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익숙한 경로에 의존했습니다. ICT(정보통신기술)와 기술의 디지털화, 이머징 시장 출현과 같은 현상에 대응할 수 있는 새 시스템은 외면했고요.”
 
 
  ‘크리에이티브’, 백가쟁명으로 가야 망하지 않아
 
일본은 ‘잃어버린 20년(1991~2011)’ 동안 GDP 성장률이 2.5% 하락한 반면, 실업률은 2.5% 증가했다.
  ― 한국과 일본의 노동시장과 교육에 대해 어떤 생각이신가요?
 
  “일본이나 한국은 표준적인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은 한계에 달했어요. 대량생산 시스템에 필요한 노동자는 ‘지시하면 할 수 있는’ 표준적인 소양을 기르면 되는데 중국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게 됐습니다. 창의적이고 고부가가치 생산력을 가진 인재를 길러야 하는데 노동시장과 교육이 서로 연동이 안 되지요.”
 
  — 한국은 대학을 나와도 기업에서 쓸 수 없지요.
 
  “이른바 ‘즉전력’이 안 됩니다. 일본 기업의 채용기준도 ‘위에서 일시킬 때 알아들을 정도의 소양만 있으면 된다’고 봤어요. 일본은 신입사원이 3년간 기업 내 교육을 받는데 월급이 짜요. 입사 3년 차부터 월급을 올려주지만 3년을 못 채워 그만두는 젊은이가 많아요. 인적 자원의 축적이 안 되니 결국 이노베이션이 안 되지요.”
 
  ― 일본도 가망이 없는 건가요.
 
  “그나마 일본 교육이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게 고교 평준화가 아니기 때문이죠. 고교 진학생들은 머리가 좋아서 자기가 알아서 공부합니다. 원하는 공부를 해서 대학에 진학합니다. 다만 그런 학생들은 획일화된 회사와 맞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계속하는 경우도 많아요.”
 
  ― 미국과 일본 경제를 비교하면 어떤 시사점이 있나요?
 
  “미국에서는 ICT, 기술의 디지털화와 국제화에 대응하는 벤처 캐피털이 국제 수평분업 체제를 이뤄냈습니다. 대기업 엔지니어들이 회사를 떠나 창업에 뛰어들어 구글, 아마존, 이베이, 페이스북 같은 세계적 기업이 만들어졌고, 기존의 애플도 다시 부활했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종신고용, 연공서열을 고수합니다. 대기업 엔지니어들은 기업의 틀 안에서만 개량하는 데 그쳤어요. 그 결과 일본은 미국과 같은 현상, 즉 새로운 기업의 진입과 성장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베노믹스로 경제가 일시적으로 좋아질 수 있겠지만 고통을 수반하는 구조개혁 없이는 일본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능합니다.”
 
  권 교수는 “결국 일본이나 한국은 크리에이티브(Creative)로 가느냐, 제조업으로 가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크리에이티브로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샤프나 삼성을 도왔던 산요전기가 망하고 소니와 파나소닉의 성과가 좋지 않은 것처럼 경쟁 없는 독점은 망합니다. 삼성도 언제 망할지 알 수 없어요. 창조적인 것은 독점으론 안 됩니다. 백가쟁명(百家爭鳴)으로 가야 새롭고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어요.”
 
  ― 말은 맞지만 한국적 분위기와는 다릅니다.
 
  “한국은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갈공명처럼 누가 찾아와야 움직입니다. 이제는 부탁도 하고 영업도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일본의 망한 회사들은 다 특징이 있어요. 영업자보다 기술자에게 파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잘 만들면 잘 팔릴 거라 생각했어요. 영업하는 사람이 ‘디자인이 나빠 안 산다’고 해도 말을 안 들었어요. 기술자들은 ‘이 제품을 몰라 안 산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에이티브는 경쟁이고 영업입니다. 직접 발로 뛰어야 합니다.”
 
 
 
위기의 한국 경제 해법은…

 
한국과 일본 경제는 닮은꼴이다.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위험이 상존한다. 작년 10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제10차 한·일·중 경제통상장관회의에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가운데), 하야시 모토오 일본경제산업대신(왼쪽), 중산 중국 국제무역협상대표(오른쪽)가 회의를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3국 장관들은 한·일·중 자유무역협정과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 가속화 방안을 논의했다.
  요즘 한국 경제는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20년’과 비슷한 길을 밟고 있다. 권 교수에 따르면, 수익률이 낮아진 한국 기업들은 10년 전부터 해외투자를 늘렸다. 신흥국에 대한 해외 직접투자 덕분에 해외 생산거점을 지원하고 연결하기 위한 본사의 연구개발, 마케팅, 법무업무 등이 중요해져 이와 관련된 분야의 일자리는 늘었다.
 
  기술력이 낮은 제조업 관련 국내 일자리는 줄어들어야 하는데 중국 경제의 성장과 원유가격의 고등(高騰)으로 상당기간 국내 중화학산업을 중심으로 큰 호황을 누렸다. 권 교수의 말이다. “중국 경제 성장 둔화, 원유가격 하락, 신흥국 수요 감소로 그간 미룬 문제가 일시에 폭발하는 형국이 지금 상황입니다.”
 
  그는 “생산성이 하락된 가장 큰 원인은 재벌 시스템, 독점적 공기업과 노동시장의 경직성에 있다”며 “주요 기업의 경영권이 창업자와 2세대에서 3세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새로운 투자보다 경영권 세습을 위해 자금 확보에 여념이 없었고 공기업 운영을 비전문가에게 맡기면서 효율적인 경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수요 측면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권 교수는 “한국이 일본과 다른 점은 가계 부문의 부채가 엄청나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경기가 악화되면 일본과 달리 생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했다. “만에 하나 부동산의 가격이 폭락하면 주택담보대출에 묶여 있는 한국은행들은 1997년 IMF 위기 때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는 “정권 교체기인 내년이 한국에 가장 위험한 시기일 수 있다”고 했다. “수요와 공급은 투자수익률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일본보다 재정이 건전한 한국 정부는 국내 수요 진작을 위해 과감한 재정, 금융정책을 실시해야 합니다. 동시에 재벌·노동·교육개혁을 통해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한국 경제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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