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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세상을 연결하는 高佑成 와이즈파트너·휴빅코리아 대표

지식으로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돕는다!

글 : 이근미  월간조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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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벌고 꿈도 실현하는 일, 많은 사람이 꿈꾸지만 쉽지 않다. 활발하게 사업을 펼치면서 공익사업도 열심히 해 직장인들의 꿈으로 떠오른 고우성 대표. 낮에는 사업하고 밤에는 신나게 노는 현장을 찾아 ‘연결의 시대’를 사는 비결을 들었다.

高佑成
⊙ 50세.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美 남캘리포니아대(USC) 컴퓨터사이언스 석사.
⊙ 대우통신·사이베이스코리아 근무. 와이즈파트너·휴빅코리아 대표.
    북포럼·지글청소년멘토링·전자신문 UTV 지식PD.
  지난 10월 7일 저녁 7시30분, 650만이 사용하는 ‘배달의 민족’ 앱을 만든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의 토크쇼가 서울 강남 압구정에 위치한 한 스튜디오에서 열렸다. 김봉진 대표가 4명의 MC와 대화를 한 뒤 방청객들의 질문을 받았다.
 
  인터넷을 통해 생방송된 CEO 토크쇼의 메인 사회자는 IT벤처 와이즈파트너를 이끌고 있는 고우성 대표. 와이즈파트너는 IBM, HP, SAP, 오라클 같은 글로벌 IT회사들의 온라인마케팅과 온라인교육 서비스를 하는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전문회사로 전자신문 UTV에서 IT전문가 토크쇼도 진행하고 있다. 고 대표는 유료 토크쇼 진행을 위해 사내에 50여 명이 방청할 수 있는 스튜디오 시설을 마련했고, 이 공간을 일과시간 이후 공익사업에 활용하고 있다. 고 대표는 휴빅코리아라는 별도의 회사를 만들어 무료로 북포럼, CEO 토크쇼, 청소년멘토링 등을 운영한다.
 
  ‘고사장님’ 대신 ‘지식PD, 날피디’로 불리는 그는 공익사업을 계속해 여러 공공단체가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특별한 존재로 떠올랐다. 자신의 사업체 공간을 활용해 꿈도 펼치고 인지도까지 높아진,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내는 중이다.
 
  매주 월요일마다 열리는 CEO 토크쇼는 서울시와 함께 하는 사업이다. 출연자는 서울산업통상진흥원이 선정한 총매출 1조원이 넘는 170개 하이서울브랜드기업 대표들이며, 지난 7월부터 지금까지 매출 100억원 이상 되는 중견기업 대표 16명이 출연했다.
 
  대개 관공서에서 일을 수주할 때는 제안서를 내고 다른 업체와 경쟁을 통해 선정이 되면 그에 상응하는 사업비를 받는다. 하지만 고우성 대표는 정반대다. 서울시로부터 중견기업 CEO 홍보방안을 의뢰받자 평범한 홍보보다는 톡톡 튀는 토크쇼가 어떠냐고 역제안을 하여 사업비를 받지 않고 일하는 중이다.
 
  “와이즈파트너를 통해 밥벌이를 하고 있고, 스튜디오와 인력이 있으니 휴빅코리아를 통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겁니다. 미래의 다양한 지식서비스를 위한 신뢰자본을 쌓는 거지요.”
 
 
  ‘지식방송 북포럼’
 
  돈 받지 않고 일하는 걸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고 대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비(非)사업적인 일에 심혈을 기울이는 독특한 행보를 해 왔다. 회사가 적자(赤字)행진을 하던 2006년부터 운영한 ‘지식방송 북포럼’(이하 북포럼)은 현재 인터넷에서 가장 인기있는 방송으로 부상했다. 북포럼의 유명세를 알고 서울시에서 중견기업 CEO들의 홍보를 고우성 대표에게 의뢰한 것이다.
 
  북포럼 진행과정을 보면, 매주 신간을 선정한 뒤 회원들 가운데 3명의 MC를 뽑는다. 방송준비가 끝나면 2만여 명에게 안내 메일을 보내고 페이스북, 블로그 등에도 공지를 한다. 선정된 3명의 MC들은 책을 읽고 질문을 꼼꼼히 뽑아 고우성 대표와 함께 방송을 진행한다. 매주 수요일 7시30분부터 1시간30분 동안 인터넷을 통해 생방송할 때 시청자들도 질문에 참여할 수 있다. 생방송이 끝난 후 방송을 편집하여 유튜브, 팟캐스트, 전자신문 사이트 등에 올린다. 서울시와 함께 하는 CEO 토크쇼도 똑같은 과정을 거쳐 매주 월요일 저녁에 방송한다.
 
  인터넷을 전방위로 활용하다 보니 북포럼이 웬만한 공중파 방송의 책 관련 프로그램보다 영향력이 커 출판사들이 신간이 나오면 먼저 연락을 한다. 연세대 마광수 교수,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 공병호 대표, 서울대 김난도 교수, 차동엽 신부, 이지성 작가 등 베스트셀러 필자들도 출연했다. 2011년에 계정을 만든 페이스북 북포럼 클럽의 회원이 3000명을 넘어섰다. 초청이 아닌 자발적으로 가입한 숫자로, 페이스북 클럽 가운데 가장 활성화되었다.
 
 
  원래 목표는 工大 교수
 
  서울공대 출신인 고우성 대표의 원래 목표는 공대(工大) 교수였다. 모범생 코스를 밟던 그는 궤도 이탈 후 ‘돈키호테’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변화무쌍한 삶을 살았다. 아버지인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창설자 고명삼 명예교수가 이끄는 대로만 살던 그는 미국 유학시절에 변화와 맞닥뜨렸다.
 
  “남의 눈치 보지 않는 미국사람들을 보면서 정체성과 진로에 대한 방황을 하던 중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읽고 도전하며 세상을 바꾸는 삶을 살고 싶어졌어요. 선배들이 그렇게 되려면 세일즈를 배워야 한다고 조언하더군요. 아버지의 인생이 아닌 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하고 귀국했습니다.”
 
  연구소가 아닌 영업을 하겠다는 일념하에 여러 곳에 응시하여 1991년 대우통신 시스템사업부에 입사했다. 4년간 시스템사업 영업을 담당한 후 외국계 회사로 옮겨 의료정보화 프로젝트 등을 담당했다.
 
  “당시 중소기업 대표들을 많이 만났는데 은행사람들 만나고 인사치레하느라 창의적인 일을 할 여유가 없더군요. 사장이 영업, 자본, 기술을 다 책임지는 걸 보고 사업을 하게 되면 전문성을 가진 파트너들과 협업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1997년 자산가인 친구가 15억원을 투자하겠다며 자동차 내비게이션 사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다름 아닌 팅크웨어로, 이 이름을 고 대표가 만들었다. 그와 함께 네트워크컴퓨터 회사를 설립하여 인재영입에 들어갔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대기업의 5~6년차 연구원 영입작업을 했습니다. 경계하는 연구원들에게 ‘당신네 회사 로비에서 만나자’고 하여 새 사업 구상을 들려주었고, 두 달 만에 10명을 모았어요. 근데 갑자기 IMF가 터진 겁니다. 15억을 투자하기로 한 친구가 5000만원만 낸 상태였는데 현금이 돌지 않는다며 돈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겁니다. 직원들한테 상황을 얘기하고 다른 데 취직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IT에 관심 없으면 전화 끊으세요”
 
10억원을 선뜻 투자해 준 이용한 회장(가운데). 바로 왼쪽이 고우성 대표.
  투자유치가 힘든 상황에서 상장(上場)회사들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주가가 적게 내린 업체 가운데 30개 기업을 찾아 《법인연감》에서 회장들의 정보를 입수했다.
 
  “주가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건 현금이 많다는 뜻이거든요. 회장실에 전화해도 비서들이 바꿔 주지 않아요. 무조건 영어로 말했습니다. 컴퓨터 전문용어를 남발하며 매우 긴박하고 중요한 내용이라고 말하면 대개 바꿔 줍니다. 회장이 받으면 단도직입적으로 ‘IT에 관심 없으면 전화 끊으세요’라고 말했어요. 다들 굉장히 당황해하면서도 관심있다고 답했습니다.”
 
  70%는 팩스로 사업계획서를 요구했지만 10명의 회장이 직접 브리핑할 기회를 주었다.
 
  “제가 이공계 출신이라 비즈니스 용어 가운데 모르는 게 많았어요. 첫 번째 만난 회장님이 3년간 ROI(투자수익률)가 어떻게 되냐고 물을 때 무슨 뜻인지 몰라 머뭇거리는 바람에 협상이 결렬되었죠. ROI를 공부해서 다른 분을 만났더니 캐시 플로어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더군요. 회장님들을 만나면서 공부도 많이 하고 오너가 세상을 보는 관점을 알게 되었어요. 오너들은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이 사람이 믿을 만한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다섯 번째로 원익그룹 이용한 회장님을 만났는데, 제 얘기를 듣고 ‘당신들은 나한테 어떤 커미트먼트(Commitment)를 할 건지 내일까지 알려 달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의 의미가 너무나 와 닿았습니다.”
 
  직원들과 의기투합을 하여 모은 1억원을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하자 이용한 회장이 1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임원들이 반대해 투자가 무산될 뻔했으나, 고 대표가 임원들을 일대일로 만나 설득해 투자결정이 났다.
 
  “그런데 우리 기술이사가 네트워크컴퓨터는 시기상조니 디지털 영상기기를 만드는 게 더 낫겠다는 겁니다. 그 말을 하지 않고 10억을 투자받을 수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씀드렸어요. 이 회장님이 투자를 반대했던 비서실장에게 디지털 영상기기를 함께 조사해 보라고 지시한 뒤 한 달 후에 결정하겠다고 했어요. 한 달 후 비서실장에게 ‘나는 투자를 못 받아도 사업을 한다. 나중에 내가 성공해도, 혹은 투자받아 실패해도, 당신은 해고된다. 잘못된 의견을 제시하면 당신이 위험하다’고 말하며 잘 부탁드린다고 했어요. 비서실장님이 우리 손을 들어 주어 1998년에 10억을 투자받았습니다.”
 
 
  한국형 유튜브 개발
 
  투자받은 돈으로 디비코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1년의 연구 끝에 국내 최초로 디지털TV 수신·녹화카드(PVR)인 스마트TV와 디지털캠코더 편집기인 파이어버드를 개발했다. 그와 함께 유튜브와 같은 개념의 아하비디오닷컴(www.ahavideo.com)을 만들어 자신이 촬영한 비디오를 편집해 올릴 수 있도록 했다.
 
  “스마트TV가 많이 보급되면 시청자들의 선호도를 파악해 콘텐츠나 상품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검색기능과 비슷한 거죠. 2000년 당시 스마트TV가 너무 생소해서 대중에게 알릴 방법이 마땅치 않았어요. 광고비를 쓸 형편도 아니어서 홈쇼핑 회사를 찾아갔어요. 담당자가 연예인이 나오는 CF를 찍어 오면 고려해 보겠다고 하더군요.
 
  무작정 KBS로 찾아갔는데 강호동씨가 있더군요. 그때는 지금처럼 크게 유명하지 않을 때였는데 우리 사업 구상을 알아듣고 응해 줬어요. 자금 사정도 넉넉지 않아 스톡옵션을 주기로 하고 함께 콘티를 짜서 양수리 세트장에서 우리 직원이 촬영을 했어요.
 
  세 번 방송했는데 많이 팔리지 않아서 결국 실패했죠. 아이템은 좋았으나 10년을 앞서 갔으니 무리였죠. 하지만 스마트TV 사업을 하면서 네트워크와 서비스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게 소득이었죠.”
 
  2001년 휴가지에서 제레미 레프킨의 《소유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고 그는 또 한번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다.
 
  “작가가 ‘소유가 아니라 연결의 시대’라고 강조한 말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용한 회장님으로부터 10억원을 투자받을 때 ‘코스닥 상장 5년 전까지 자발적으로 퇴사하면 6억원을 배상하고 나의 지분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썼어요. 이 회장님께 네트워크 기반의 지식서비스 회사를 만들고 싶다. 약속한 돈이 없으니 성공하면 드리겠다. 실패하면 되돌아와서 영업직으로 일하며 월급으로 갚겠다’고 말씀드리자 그 자리에서 각서를 찢으셨어요. 정말 고마운 분이죠. 그 길로 제가 창업한 디비코를 나와서 2002년에 와이즈파트너란 지식서비스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와이즈파트너는 사람을 도와주는 회사”
 
북포럼에 출연한 차동엽 신부. 맨 왼쪽이 고우성 대표, 다른 3명의 MC는 직장인.
  당시 1000만원밖에 없었지만 진정성이 있으면 돈은 따라온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다고 한다.
 
  “와이즈파트너는 말 그대로 현명한 파트너, 사람을 도와주는 회사입니다. 기업과 전문가의 지식이 소통되고 거래되는 세상에 일조하겠다는 꿈을 갖고 시작했습니다. 지식서비스를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회사를 3개월간 동안 찾아 헤맨 끝에 이스라엘의 인터와이즈를 알게 되었어요. 지식서비스를 구현할 플랫폼을 가진 회사인데 일본의 유명 통신업체 NTT도 이 회사의 파트너였습니다. 세계 유명업체와 파트너를 맺고 있었는데 그때까지 한국에 파트너 회사가 없었어요.”
 
  이스라엘에 있는 창업자에게 한 시간만 발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폭탄 테러로 인해 외국인들이 철수하던 때에 이스라엘로 찾아간다고 하자 오라는 연락이 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사업계획을 발표하는데 한 임원이 ‘자본금이 얼마나 있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솔직하게 1000만원이라고 하자 분위기가 차갑게 변하면서 같이 일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창업자에게 ‘당신은 둘이 창업했지만 우리는 지금 세 명이다. 빌 게이츠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나와 손잡고 기술과 서비스를 융합해야 당신네 회사가 이긴다. 우리나라는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MSN이 힘을 못 쓴다. 이게 문화의 힘이다. 문화와 융합을 해야 거대 경쟁자에 대한 진입장벽을 칠 수 있다’고 강조해서 결국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인터와이즈의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기술은 쌍방향(雙方向) 교육을 하는 시스템으로 생방송을 하면서 시청자와 대화가 가능하고, 쌍방향 교육과 화상(畵像)회의도 가능하다. 벤처캐피털의 임원이 개인적으로 3억원을 투자해 주어 2002년 1월에 사업을 시작했다. 유명 포털과 대기업에 “기존 서비스에 지식서비스 기술을 융합하여 공동사업을 하고 이익을 나누자”고 제안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제대로 모르고 무조건 무시할 때 좀 힘들었죠. 규모가 큰 채용업체에 구인(求人)방송을 하자고 제안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작은 회사에 교육 시스템과 화상회의 시스템을 개별적으로 판매했죠.”
 
 
  ‘지식방송’ 시작
 
  몇십 군데 회사에 시스템을 팔았지만 규모가 작아 계속 적자가 났다. 큰 회사와 함께 사업을 하면 분명한 승산이 있지만 시기상조였다.
 
  “2006년에 처음으로 실패라는 단어가 떠오르며 방향에 대한 회의(懷疑)가 들었어요. 연결의 시대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되더군요. 두 달간 남산을 걸으며 묵상을 했을 때 방향성은 맞으나 아직 때가 아니라는 결론이 났어요. ‘때가 올 때까지 본질을 유지하자. 거대한 글로벌 플랫폼을 만드는 건 포기하자. 내 분수를 인정하자.’ 이렇게 결론을 내리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하루아침에 커지는 것보다 죽을 때까지 가자는 다짐을 하니 일단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생활습관을 완전히 바꾸었다. 하루 두 갑 이상 피우던 담배를 끊고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매일 운동을 하고 패스트푸드 대신 생야채를 먹었다. 그 결과 3개월 만에 몸이 마치 털갈이를 하듯 바뀌면서 가벼워졌다고 한다.
 
  “2002년부터 실시간 쌍방향 온라인 세미나를 했었어요. IT업체와 IT전문가들을 위한 서비스였죠. 파워포인트를 켜 놓고 온라인으로 세미나를 하는데 건조하고 재미가 없다는 게 문제였어요.
 
  2006년에 우연히 라디오에서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듣는데 화면도 없이 음성만으로 재미도 있고 집중이 되는 거예요. 왜 그럴까 분석해 보니 손석희씨가 게스트를 물고 늘어지면서 둘 사이에 감정이 부딪치니 재미가 생기더군요. ‘좌뇌(左腦)가 아니라 우뇌(右腦)에 감성으로 호소해야겠다, 정보에 감성을 집어넣자’ 그런 결론을 내리고 전문기술과 토크쇼를 접목하기 위해 실험적으로 만든 게 지식방송 북포럼입니다. 그때 세계에서 처음으로 ‘지식방송’이라는 용어를 썼어요.”
 
 
  판소리 공연장 같은 스튜디오 분위기
 
  2006년 12월 삼성동의 골방에서 웹캠을 켜 놓고 ‘저자와의 생방송 토크쇼’ 북포럼을 시작했다.
 
  “첫 번째로 최정아 저자를 초청했는데 신간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니 흔쾌히 수락하더군요. 근데 방청객도 없이 골방에 웹캠 하나 켜 놓은 걸 보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어요. 오후 5시, 직장인들이 퇴근하기 전에 방송을 시작했는데 방송이 시작되자 몇백 명이 들으며 온라인으로 질문을 보내는 겁니다. 작가도 저도 신이 났죠.”
 
  매주 한 번씩 방송하는 북포럼이 인기를 얻자 2007년 7월에 전자신문 UTV에서 연락이 왔다. IT분야 전문가와 토크쇼를 해 보자는 제안이었다.
 
  “일주일에 3번씩, 지금까지 1000회 이상 방송했는데 이익금을 우리 회사와 전자신문이 공동 배분합니다. 거의 모든 글로벌 IT기업들이 방송에 출연하였고, 2007년에 회사가 흑자로 돌아섰죠.”
 
  2010년에 압구정동으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방송설비를 대폭 보강하고 직원도 12명으로 늘어났다. 100평 공간의 일부를 뚝 떼어 50여 명의 방청객이 들어갈 수 있는 참여형 생방송 오픈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마침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와 스마트폰이 대거 보급되면서 연결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방송시간을 저녁 7시30분으로 바꾸고 낯선 사람들을 소셜네트워크에서 초대하기로 결정했죠.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식을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6월 첫 오픈 방송을 할 때 15명이 스튜디오로 찾아왔다. 점차 사람이 늘면서 매번 50여 명이 방청하고 있다. 조용히 경청만 하는 게 아니라 출연자의 말에 공감할 때 ‘좋아요’ 공을 던지고 깔깔 웃는 등 마치 판소리 공연하는 것처럼 활기가 넘친다.
 
  현재 북포럼 회원은 3000여 명이지만 숫자로 영향력을 가늠하기 힘들다. 생방송을 편집한 영상의 다시 보기 횟수가 많은 데다 유튜브, 여러 군데 팟캐스트, 스마트폰, 전자신문 사이트 등으로 노출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조회수가 몇천회를 넘어선다. 유튜브 다시 보기의 경우 30여 개국에서 접속하고 있다.
 
  “저자를 선정할 때 이 사람이 얼마나 진한 삶을 살았나, 얼마나 일관된 삶을 살았나를 봅니다. 그래야 진한 대화가 오갈 수 있기 때문이죠. 경험과 실천이 없이 머리로만 글을 쓴 저자들은 선호하지 않습니다. 직장인들은 정보가 아니라 진한 관점을 보길 원합니다.”
 
  고우성 대표는 북포럼을 향후 지식소비자 협동조합처럼 운영하며 문화사회운동을 펼치고 싶다고 했다.
 
  “각 기업체, 학교, 도서관과 연계하여 북포럼 문화를 심어 주고 싶습니다. 단순한 강연이 아니라 저자가 주민들과 진하게 교류할 수 있도록, 사업이 아닌 참여형 지식공동체 문화를 퍼뜨릴 계획입니다. 북포럼 회원들은 뭔가 공유하고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분들이어서 시간이 지나고 신뢰자본이 서로 축적되면 자연스럽게 진화될 것이라 예상합니다.”
 
 
  MB가 출연 자처
 
  2010년 압구정동으로 사무실을 옮긴 후 지식서비스 소셜벤처 휴빅코리아를 설립해 북포럼에 이어 시작한 것이 지글청소년멘토링이다. 지글청소년멘토링은 매주 토요일 청소년도서 저자들을 초청하여 북포럼도 열고, 직업인들을 초청해서 강연도 듣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11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교육기부박람회에 참여했을 때 ‘멘토링 토크쇼’라는 문구를 본 이명박(李明博) 당시 대통령이 출연을 자청해 북새통이 일었다.
 
  “청와대와 생방송을 맡은 KBS에서 예정에 없던 일이 벌어지자 뒤에 있던 우리 부스를 앞으로 옮기는 등 난리가 났죠. 질문지를 만들어서 주길래 ‘학생들에게 너희들 마음대로 해, 쫄지 말고 원래 했던 대로 해’라고 말했어요. 남학생 한 명과 여학생 한 명이 사회를 맡았는데, 이명박 대통령께 ‘멘토님이라고 부를게요’라며 질문을 팍팍 던지고, 대통령의 말이 길어지면 자르고, 정말 재미있었어요. KBS를 통해 10분간 생방송됐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굉장히 즐거워해서 담당자들이 다들 좋아했어요.”
 
  휴빅코리아에서 공익사업으로 청소년 멘토링을 실시하자 여러 업체가 다양한 의뢰를 하고 있다. 3년째 강남구청의 의뢰를 받아 청소년 멘토링 사업을 함께 하고 있으며, 올 11월에 실시되는 교육과학기술부 주관 대한민국 창의체험 페스티벌 독서PT대회 진행업체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다.
 
  2011년과 2012년 겨울방학 때 도서벽지 청소년들을 서울로 초청하여 작가들의 강의를 듣고 사인받는 행사를 벌였다. 지난해 풍문여고에서 33명의 작가가 각 교실에서 강의를 한 뒤 교실로 찾아온 학생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 주었다. 참가자들과 출판사에서 기증받은 1000여 권의 책을 소외된 지역에 보내는 일도 했다. 이런 행사를 할 때마다 작가들이 재능기부를 하고 북포럼 회원들이 자원봉사를 한다. 올해부터 전교생 60여 명인 강원도 창촌중학교에서 ‘찾아가는 청소년 멘토링’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도서벽지 아이들에게 다양한 진로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더 많은 학교를 찾아갈 계획이라고 한다.
 
 
  代案대학교가 목표
 
  고우성 대표는 7년간 쌓은 신뢰자본을 갖고 13년 전부터 기다렸던 ‘연결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업을 곧 가시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2005년에 이수만씨의 SM엔터테인먼트를 보면서 나도 전문가 SM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전문가와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수요자가 직거래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에 인재가 안 온다고 아우성인데, 중소기업을 제대로 알려 인재들을 연결하는 브리지 역할을 할 계획입니다. 작은 기업들을 속이는 투자브로커들이 폭리를 취해 문제가 되고 있는데 투자자그룹과 건실한 벤처기업을 연결하는 일도 할 예정입니다.”
 
  고우성 대표의 개인적 꿈은 대안대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5년 후 쯤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IT, 미디어, 디자인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워 현장경험이 많고 유사한 가치관을 가진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거칠지만 확실한 콘텐츠가 있는 분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죠. 지금 하는 모든 일들이 대안대학교를 할 때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10년 전에는 ‘무조건 돈 되는 것, 능력 있는 사람, 당장 계약할 수 있는 일’에 관심 있었다면 이제는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창의적인 생각과 실천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사업확장으로 더욱 바빠진 고우성 대표는 돈 안되는 공익사업을 더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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