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종파의 승려들이 달라이 라마의 장수 기원하면서 ‘티베트 불교는 하나’임을 보여줘
⊙ 어린 시절 달라이 라마로 선정된 후 라사에 가서 라사 말 배우던 시절에 대해 설법
⊙ 승려들 부축받아 보행 가능하지만 때때로 기행 벌여 외신 인터뷰 중단
⊙ 인도 군경이 통제하는 궁전 보니 ‘나라 없는 설움’ 느껴져
⊙ 30년 전 한국 언론 최초로 달라이 라마 인터뷰… 주한중국대사관 항의 받아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어린 시절 달라이 라마로 선정된 후 라사에 가서 라사 말 배우던 시절에 대해 설법
⊙ 승려들 부축받아 보행 가능하지만 때때로 기행 벌여 외신 인터뷰 중단
⊙ 인도 군경이 통제하는 궁전 보니 ‘나라 없는 설움’ 느껴져
⊙ 30년 전 한국 언론 최초로 달라이 라마 인터뷰… 주한중국대사관 항의 받아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장수 기원 기도회에 참석한 달라이 라마. 사진=달라이 라마 행정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신(神)을 믿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었다고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2020년 팬데믹은 신의 그림자가 희미해진, 인류 최초 글로벌 시련이었을 듯하다. 신도 멀리하는 상황에서, 세상을 밝혀줄 큰 바위 얼굴 어른에 매달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신은 죽었다(Gott ist tot)”는 말은 1882년 프리드리히 니체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계몽주의 영향으로, ‘가톨릭의 일방통행식의 신은 죽고, 개개인이 자주적으로 판단하는 신만이 살아남을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찾는 자에게만 나타날 뿐, 신이 전부 죽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니체의 생각이다.
21세기 신은 계몽주의로 풀고 말고가 아닌, 아예 인간의 눈과 머리에서 사라지는 존재로 변해가고 있다. 왜 어른도 신도 사라지고, 아예 불필요한 시대로 나아가고 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인터넷의 등장도 그 이유 중 하나인 듯하다. 세상 모든 것이 모바일 하나만으로,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하다. 유튜브 시대의 상식이지만, 혼자 방 안에 앉아 노래 부르고 춤추며 먹방으로 살아가는 모습 하나만으로도 생존해 나갈 수 있다.
꿈에서 만난 달라이 라마
2025년 한국의 현실은 척박하다. 말만 그럴듯할 뿐, 증오와 복수가 곳곳에 만연하다. 결국은 돌고 돌아 자신에게 향할 칼이지만, 당장은 복수극 칼부림에 환호한다. 알록달록 풍선 같은 슬로건이 넘치지만, 믿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정작 유한한 삶과 세상에 울려 퍼질 수 있는 진실과 진리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재벌 6세, 7세로 이어지는 부(富) 세습의 고착화, 고독(孤獨)을 넘어 고립(孤立)으로 치닫는 모바일 세상, 1분 이벤트 틱톡이 득세하는 세상 속에서 과연 어떤 혜안(慧眼)을 만날 수 있을까?
달라이 라마가 떠오른 것은 이 같은 의문과 답답함이 교차하던 때였다. 거짓말 같은 얘기지만, 티베트 불교 최고 성인(聖人)이 필자의 꿈속에 나타났다. 모습은 흐릿하지만, 카랑카랑한 저음(低音)인 달라이 라마의 목소리는 확연히 기억난다.
잠에서 깨는 순간 모든 관심사가 인도로 압축됐다. 하루 만에 비행기표를 끊고, 주방이 포함되어 있는 ‘한 달 살이’용 히말라야 숙소도 예약했다.
4월 초, 인도 다람살라로의 여정이 시작됐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지금 세계에 몇 안 남은 ‘큰 바위 얼굴’ 중 한 명이 달라이 라마다. 세계 여기저기 둘러보자. 한국도 그렇지만, 도토리 키재기 식 정치와 문화 논쟁 때문에 그나마 얼마 되지 않은 지성과 양심도 헐값에 떠내려간다. 10년, 20년 전에 쓴 글이나 행적이 평생 쌓은 경륜과 인생을 추락시키는 시대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인격적 생존 자체가 천연기념물로 남을 법한 세상이다. 달라이 라마는 이 같은 시대적 비극과 모순을 초월한 ‘글로벌 큰 바위 얼굴’이다. 올해 7월 6일, 90세에 들어서는 지구상 현존 최고령 어른일 듯하다.
30년 전 달라이 라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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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국내 언론 최초로 30년 전 달라이 라마를 인터뷰했었다. |
당시에도 필자는 1992년 한중 수교 직후부터 시작된 중국발(發) ‘거짓 뉴스’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다. 30년 전 인도를 방문하기 전부터 베이징(北京)의 아파트에서 장기 거주하면서, 당시 12억 인구(현재 14억)의 현실을 목격했다. 베이징에 머물기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중국 공산당 정부, 나아가 중국인이 말하는 내용은 무조건 거꾸로 생각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초 필자가 달라이 라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너무도 미개하고 더러운 미신 토족(土族)국가 티베트를 구원한 나라가 중국”이라는, 중국인들의 억지 주장 때문이었다.
책 100권보다 사람과 직접 대면한 1분이 한층 더 깊고 넓은 사고(思考)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25분간의 짧은 인터뷰였지만, 이후 달라이 라마는 필자 영혼 속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종교 지도자로서가 아닌, ‘인간 달라이 라마’의 매력 때문이다. 영국식 악센트의 영어로 웃음과 함께 이뤄진 너무도 자연스러운, 격이 없는 시간이었다. 평범하기에 비범하다고 할까? 당시 대화 도중, 형용할 수 없는 ‘신성(神聖)’이 가슴속에 퍼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필자는 신문·방송에서 티베트나 달라이 라마 관련 뉴스가 나오면 눈과 귀를 모아 주목했다.
에어컨 달린 민간 버스는 더 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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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정부가 운영하는 시외버스는 거의 50년은 됨직한 노후 차량이지만, 값이 싸서 인도인 대부분이 이용한다. 사진=유민호 |
인도의 대도시에 머물 경우 마스크를 수십 장 준비하는 것이 좋다. 자동차 경적을 비롯한 소음 천국이기 때문에 실리콘 귀마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숙소를 잡은 즉시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북쪽 히말라야 다람살라까지는 460km. 비행기로 1시간 정도면 가능하지만, 천천히 히말라야를 시야에 두면서 다가가는 것이 좋다. 30년 전 첫 방문 당시에도 하루 50달러로 운전사와 차를 빌려 다람살라로 향했다. 이틀이나 걸린 긴 여행이었다. 현재 다람살라행 직행버스 소요시간은 12시간이다. 2025년 인도는 1990년대 초반 중국 상황과 비슷하다. 올해 말 일본을 제치고 총국민생산액 세계 4위 경제대국에 오를 나라라지만, 현실은 척박하다.
인도의 시외버스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것과 민간이 운영하는 것 둘 다 있다. 정부 버스의 경우, 거의 대부분 폐기 직전의 차량들이다. 50년 이상은 달린 듯한 낡은 차량으로 최고 속도도 시속 60km에 불과하다. 민간 버스는 요금이 두 배 이상 비싸지만 여러 면에서 훨씬 낫다.
인도인 대부분은 10달러짜리 정부 버스를 이용해 다람살라로 향한다. 필자가 직접 버스 터미널에 간 것은 에어컨이 있는 버스를 찾기 위해서였다. 택시도 마찬가지지만, 인도에는 에어컨이 없는 차량이 기본이다. 에어컨이 있을 경우 비용을 더 지불해야만 한다. 정부 버스보다 거의 3배인 30달러를 내고, 오후 6시30분 에어컨 버스표를 끊었다.
인도의 4월 일출(日出)은 아침 6시 전후에 이뤄진다. 밤 동안 북쪽으로 달리다가 아침 녘에 히말라야와 만날 수 있다.
460km를 12시간 걸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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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착 당일 아침에 만난 히말라야 입구. 원래 만년설이었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히말라야 바깥쪽 눈은 4월부터 녹기 시작한다. |
필자는 육로(陸路)로 이어진 나라의 경우, 반드시 두 발로 걸어서 넘어간다. 국경선 하나로 나뉘는 두 나라의 차이를 확연히 발견할 기회다. 인터넷 시대답게, 심카드(Sim Card) 장사꾼들로 채워진 이색(異色) 공간이 국경 지역이다. 긴장감이 표류하는 땅이지만 가끔 체험하는 것도 삶의 자극이 될 듯하다.
아무리 인도라지만, 460km를 12시간이나 달린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됐다. 나중에 알았지만, 중간 휴게소에서 장시간 주차하면서 식사도 하고 현지인과의 대화도 즐길 수 있는 인도 스타일 여행법이다. 휴게소 식사는 보통 40분이나 지속된다. 도중에 전부 네 번 쉬었다. 악명 높은 인도 화장실을 걱정했지만, 놀랍게도 도로 주변 휴게실은 인도 전체를 통틀어 가장 깨끗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인도의 발전은 대도시 내에서는 실감하기 어렵다. 대도시의 바깥 작은 위성도시가 21세기 인도 발전의 현장이다.
사방팔방 울려대는 모바일 소음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녘 겨우 눈을 붙였지만, 창문을 타고 흐르는 아침 태양과 함께 눈을 떴다. 새벽 5시, 하얀 복면 속의 히말라야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다람살라에 내린 것은 정확히 4월 20일 아침 6시28분. 숙소로 이동하려는데 택시밖에 없었다. 서너 명의 기사와 흥정했지만, 가격이 전부 똑같았다. 강력한 택시조합이 있어 가격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택시조합 때문에 다람살라에는 우버(Uber)가 아예 없다.
숙소에 도착했다. 초대형 창문 바로 앞으로 높이 2000m 설산(雪山)이 펼쳐져 있었다. 밤이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데, 1995년 이곳에 왔을 때, 싸구려 호텔에서 체험한 히말라야의 추위가 지금도 뼛속 깊이 새겨져 있다. 난방기구 하나 없이 영하 20도의 설산 추위에 맞서야만 했던 길고도 긴 밤이었다.
매크로드의 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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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람살라 최고 중심지 매크로드 5거리. 과거에는 글로벌 히피들의 보금자리였지만, 지금은 인도인을 위한 국내관광지로 변해가고 있다. |
90세를 넘은 후 가끔 달라이 라마의 기이한 언행이 보도되고 있다. 상식에서 벗어난 경우가 종종 있는데, 가수 레이디 가가와 만나면서 몸을 만진 적도 있다. 중국 공산당 정부가 이 같은 순간을 놓칠 리가 없다. 결국 티베트 망명정부 당국은 달라이 라마의 외신 인터뷰를 전부 금하고, 공식적인 일정도 가능하면 줄이고 있다.
고령의 나이는 호흡기 계통 병에도 취약하다. 필자가 인터뷰 도중 뜻하지 않게 호흡기 균이나 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도 있다. 내일, 아니 1시간 뒤도 가늠하기 어려운 나이다.
사실 다람살라로 향하기 전 달라이 라마가 현지에 머무는지 여부조차 몰랐다. 달라이 라마는 해외여행도 자주 하지만, 고령으로 인해 다른 곳에 머물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히말라야에 머물 것이란 확신 하나만으로 무조건 찾아갔다. 도착 즉시 다람살라 현지인들을 통해 달라이 라마가 다람살라 한복판 ‘매크로드(McLeod)’ 티베트 불교 궁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달라이 라마 궁전으로 가는 길은 1차선에 불과하다. 달라이 라마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경우 좁은 길 전체가 차단된다. 테러 가능성 때문에 인도 경찰과 군인도 곳곳에 배치된다. 그래서 현지인 모두가 달라이 라마가궁전에 머물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겼는지를 잘 알고 있다.
남편과 사별 후 인도로 온 미국 여성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멀리서나마 달라이 라마를 접할 기회가 찾아왔다. 숙소에서 만난 79세 미국인으로부터 달라이 라마가 설법(說法)하는 장수(長壽) 기원 기도회가 열린다는 정보를 얻었다. 워싱턴DC 출신 백인 여성인 엘리자베스 씨는 남편과 사별(死別)한 뒤 무작정 인도로 달려왔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를 만나기 위해 생애 최초의 20시간 비행 아시아 여행에 도전한 것이다. 두 달 전부터 다람살라에 머문 덕분에 현지 네트워크도 구축되어 있어서 현지 최신 정보에 밝았다. 엘리자베스 씨가 알고 지내던 티베트 승려를 통해 기도회 표를 얻어낼 수 있었다.
필자가 달라이 라마를 인터뷰했던 1995년, 다람살라는 서방 히피들의 최후 안식처로 통했다. 이웃 네팔과 함께 인도, 특히 다람살라는 당시 50대로 접어든 베트남 참전 군인이나 반전(反戰)운동가들이 모여드는 ‘평화의 성지(聖地)’였다. 다람살라 중심지 매크로드는 싸구려 호텔과 국적 불명 음식, 요가와 명상 기도원, 마리화나 연기로 가득했다. 2025년이 되었어도 다람살라는 규모가 엄청나게 커진 것 외에는 3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기도회는 5월 7일 아침 9시부터 시작됐다. 매크로드 외곽에 세워진 티베트 중앙사원이 무대로, 달라이 라마 궁전과 인접해 있다. 1995년 인터뷰 당시에는 궁궐 주변이 먼지 나는 맨땅이었는데, 지금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다.
기도회
1차선 도로가 차량으로 뒤엉킬 것을 예상해 아침 8시 이전에 도착했다. 중앙사원 입구는 보안 검색이 철저했다. 휴대폰 반입 자체가 안 됐다. 중국 공산당에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달라이 라마에 관한 모든 사진과 영상은 티베트 망명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내놓는 자료들뿐이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저음의 독경(讀經) 소리가 들렸다. 수백 명의 승려가 동시에 행하는 장엄한 독경이었다. 티베트 불교의 독경은 초저음으로 행해진다는 점에서 한국 불교의 독경과 다르다. 몽골 전통 노래인 ‘흐미(Khuumii)’와 비슷한 낮은 음역(音域)으로, 한 번 들으면 머릿속에 영원히 각인될 언어(音)이자 소리(聲)다.
티베트 승려와 일반인 300여 명이 사원 1층 공간에 밀집해 있었다. 초대형 모니터를 통해 사원 2층 한복판에 앉은 달라이 라마를 볼 수 있었다. 건강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주변 사람들에게 축복기도를 내리고 있었다.
9시를 넘기자, 독경과 함께 신자들의 공물(供物) 전달이 시작됐다. 식량, 카펫, 과일, 옷, 꽃, 신발을 든 신자들의 행렬이 1층에서 2층까지 길게 이어졌다. 달라이 라마에게 공물을 바치면서 장수를 기원하는 것이다.
이탈리아 노포(老鋪) 식당이나 가게에 가면, 어디에서나 역대 교황의 사진을 만날 수 있다. 선대(先代) 부모가 교황에게 선물을 바치고 축복기도를 받는 사진이다. 이런 사진은 가보(家寶)로 영원히 간직한다. 다람살라도 마찬가지다. 어디에 가도 달라이 라마에게 공물을 바치는 사진이 걸려 있다.
승려는 모두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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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 기원 기도회에 참석한 동자승들. 고승이나 동자승이나 모두 평등하다. 사진=달라이 라마 행정실 |
하나는 일반 신자용으로 바나나, 과자, 음료다. 티베트 불교 중앙사원에서 음식을 즐긴다는 것이 뭔가 불경(不敬)스럽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주변과 어울리며 맛있게 즐겼다. 달라이 라마가 내린 음식이기 때문에 성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다른 하나는 승려들을 위한 선물인데, 600루피(7달러) 현금이다. 공물로 전달된 물건들을 팔아 현금으로 바꾼 뒤 다시 승려들에게 나눠준다고 한다.
승려에게는 월급이 따로 없다. 사원에 머물면서 갖가지 일을 하지만, 개인 용돈은 알아서 벌어야만 한다. 필자가 만난 40대 승려는 30여 년간 부모로부터 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설법을 하거나 일을 해서 생활비를 충당하는 생활이 티베트 불교의 기본이다.
티베트 불교에는 유교(儒敎)에서와 같은 장유유서(長幼有序) 세계관이 없다. 검붉은 승려 옷을 입은 승려라면, 남녀노소 구별 없이 누구나 평등하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가 내리는 돈도 승려가 어리다고 적게 주고, 고승(高僧)이라고 많이 주지 않는다.
달라이 라마와 다른 종파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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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라이 라마 장수 기원 기도회에는 티베트 불교 신자들은 물론 다른 종교 신자들도 참석했다. 사진=달라이 라마 행정실 |
당연히 라사와 다른 길을 걷는 반(反)달라이 라마 종파도 있다. 대략 티베트 불교의 5할 정도는 달라이 라마와 다른 생각을 가진 종파라고 한다. 다람살라에서도 목격했지만, 달라이 라마와 무관한 티베트 불교 종파와 그 종파를 이끄는 라마가 곳곳에 있다. ‘티베트 불교=달라이 라마’가 아니다.
기도회에 등장한 승려들은 다른 종파 지도자들로 구성돼 있었다. 달라이 라마에게 장수 기원 기도를 올리고, 이후 종파의 상징인 깃발과 모자를 달라이 라마에게 바쳤다. 종파는 달라도 티베트 불교는 하나이고 달라이 라마의 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다.
장수 기원 의식은 티베트 고유의 악기 연주와 독경 속에서 엄숙하게 치러졌다. 20분 정도의 의식이 끝나자 달라이 라마의 설법이 시작됐다. 모니터에 영어 자막이 나오고 영어 통역 이어폰도 있지만,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중에 엘리자베스 씨의 친구인 승려에게 무슨 내용인지 물어봤다. 달라이 라마가 5세 때 티베트 라사에서 언어를 배우며 겪은 체험담이 주된 내용이었다고 한다.
티베트는 산 하나만 넘어도 언어가 다르다. 달라이 라마가 윤회설(輪回說)에 기초해 제14대 라마로 선택된 것은 1937년, 그의 나이 두 살 때다. 이후 시골에서 라사로 옮긴 것은 1940년 다섯 살 때다. 달라이 라마는 라사의 티베트어를 몰라 한동안 대화가 어려웠지만,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영어는 승려 교육 필수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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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법을 하는 달라이 라마. 나이가 든 모습이 역력하다. 사진=달라이 라마 행정실 |
중국식 역사관에 오염된 탓이지만, 원래 티베트는 오지(奧地)가 아니다. 서쪽으로는 유럽, 남쪽으로는 인도, 동쪽으로는 동북아로 이어지는 ‘세계의 중심’이다.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Hakenkreuz)’도 인도 힌두교와 티베트 불교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티베트 불교가 영어를 공용어로 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중심에 선 나라다운 발상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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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라이 라마의 설법이 끝난 후 음악 행렬과 공연이 있었다. 사진=달라이 라마 행정실 |
주변 승려들에 대한 축복기도와 함께 달라이 라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90세의 나이 때문인지 두 명의 승려가 옆에서 부축을 했다. 달라이 라마의 건강을 걱정했지만, 아직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정도였다.
1층에 있던 신자 대부분이 달라이 라마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 달려갔다. 신비롭게도 갑자기 100여 마리의 원숭이 떼가 1층 간이 지붕 위에 나타났다. 원숭이가 양철 지붕 위를 달리자 천둥소리, 북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히말라야 원숭이는 몸이 크고 털 전체가 하얗다. 한국에서 보는 원숭이는 일본이나 중국산으로 작은 체구에 잿빛 털이 특징이다. 원숭이 떼는 300여 신자들이 먹다 남긴 바나나나 과자들을 먹기 위해 몰려온것이었다.
후계자 선정에 들어갔다는 소문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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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회가 끝난 후 달라이 라마는 각국에서 온 방문자들을 축복했다. 사진=달라이 라마 행정실 |
달라이 라마가 거처하는 궁전은 이름만 그럴듯할 뿐 사실상 감옥처럼 느껴졌다. 중국의 테러를 막기 위해 높은 철창이 둘러쳐져 있고, 인도 경찰과 군인이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중국 관계가 악화되면, 제일 먼저 궁전 주변 경비원들이 증원된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영적(靈的) 지도자지만, 인도에서 달라이 라마는 망명객에 불과하다.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인도 정부로부터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통제당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안전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궁전을 둘러싼 쇠창살에서 나라 없는 설움이 느껴졌다.
외신을 통해 나오는 소문으로는 달라이 라마의 차기 후계자가 될 15대 달라이 라마 선정 작업이 시작됐다고 한다. 윤회설에 입각해 달라이 라마가 세상을 뜰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달라이 라마 사후(死後) 당장 중국 공산당이 ‘괴뢰 어린이’를 달라이 라마로 세워 티베트 불교 무력화(無力化)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달라이 라마가 하루라도 더 오래 살면서, ‘큰 바위 얼굴’ 어른으로 세계의 양심을 계속 일깨워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웃음과 평화의 메시지
“정의(正義)는 칼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뤄집니다.”
30년 전 인터뷰 당시 달라이 라마가 한국인에게 전했던 메시지다.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재발굴·체험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
30년 뒤인 2055년에 필자가 다람살라로 버스 여행을 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30년 전인 1995년 달라이 라마가 보여주었던 웃음과 평화의 메시지는 필자의 가슴속에 영원히 새겨져 있다. 한 달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히말라야에서 지낸 필자만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