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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美中 갈등 속 일본의 對中전략

日, 中이 5년 내 타이완 공격할 것으로 예측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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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시다 요시히데 신임 육상막료장, 도쿄대 나온 兵 출신 안보통
⊙ 對中 견제 위해 일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미국, 한국 주장에 귀 안 기울여
⊙ 스가 총리, 외무성 부대신 등 타이완을 ‘국가’로 호칭
⊙ ‘美中 관계 좋으면 美日 관계는 나빠진다. 美中 관계 나쁘면 美日 관계는 좋아진다’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前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미국·영국·일본·호주가 참여하는 ‘탈리스만 사브레21’ 훈련. 사진=美 인도태평양사령부
  아시아 근대화 과정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으로 1842년 난징(南京)조약을 빼놓을 수 없다. 아편전쟁에 패한 청(淸)나라가 영국과 맺은 불평등 조약이다. 청나라는 막대한 전쟁 배상금에다 홍콩 할양도 한다. 5개 항구를 열고 관세율을 불평등하게 맺는다. 올해 중국은 홍콩의 자치권을 사실상 박탈하면서 난징조약을 자주 거론했다. ‘아편전쟁으로 홍콩을 뺏은 영국과 서방이 홍콩의 인권과 자유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식의 논리다. 이미 179년 전의 사건을 들고나와 민족주의를 조장하면서 자기 합리화에 나서는 식이다. 반일(反日)이 한국 정치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중국은 반(反)제국주의 논리가 만사형통 처방이다. 미국이 티베트 문제를 거론하면 ‘18세기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너희의 만행은?’ 이런 식의 반응이 돌아온다.
 
  새삼스럽게 난징조약을 꺼내는 이유는 당시 벌어진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건에 대한 한일(韓日) 간 대응 자세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당시 변화에 맞서는 한일 양국의 감각이 너무나 다르다.
 
 
  세계를 향해 열린 창, 데지마
 
아편전쟁 후 체결된 난징조약은 일본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본은 난징조약이 이뤄졌다는 소식을 일찍부터 알아차린다. 나가사키(長崎) 네덜란드 전용 항구인 데지마(出島)를 통해서다. 데지마는 1636년 에도(江戶) 막부의 쇄국(鎖國)정책 일환으로 나가사키에 건설한 외국인 특별거주지다. 가로 세로 100m 정도의 인공섬으로 평소 거주민 100여명에 불과한 협소한 곳이지만, 세계로 열린 정보 통로로 활용된다. 네덜란드인이 앞장서서 정보를 알려준 것이 아니다. 일본인들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면서 데지마를 활용하는 가운데, 난징조약에 관한 실상을 일찍부터 파악하게 된 것이다.
 
  데지마를 통해 전래된 ‘란가쿠(蘭學)’는 네덜란드뿐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 문화와 문명을 전부 포괄하는 ‘서양학(西洋學)’ 그 자체였다. 난징조약 이전 일본에서는 이미 네덜란드어 사전이 등장했다. 데지마로 들어온 유럽발(發) 정보를 일본어로 번역해 일반인에게 판매하는 장사꾼도 나타났다. 해부(解剖)·무기·동물·식물·기계에 관한 책들로 에도와 전국에 팔려나갔다.
 
  네덜란드에서 구입한 과학도구를 활용한 책도 출간된다. 난징조약 10년 전인 1832년 출간된 눈(雪) 문양에 대한 책, 《설화도설(雪華圖說)》은 그중 하나다. 고가(高價)로 들여온 네덜란드제 현미경을 통해 수백 가지에 달하는 눈의 결정체(結晶體)를 문양(紋樣)으로 표현한 자연과학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과학서로만 쓰인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활용됐다는 점이다. 수백 가지 ‘눈 문양’을 기모노(着物)에 넣어, 현미경과 접목된 최첨단 의류로 둔갑시킨 것이 1830년대 일본 장사꾼들이다.
 

  일본은 ‘난징조약=청의 패배’로 이해한다. 청이 원해서 조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서양의 강력한 힘에 의해 청이 굴복했으며, 과학 문명과 군사력을 볼 때 중국은 더 이상 서양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간파한다. 중국은 더 이상 일본이 의지하거나 부탁할, 과거의 대국(大國)이 아니라는 사실도 재확인한다. 일본의 공기는 서서히 탈아론(脫亞論)을 향해 나가기 시작한다.
 
  아울러 동양의 대표주자인 중국이 굴복한 이상, 서양이 일본에 몰려올 것이란 위기의식도 갖게 된다. 서양의 무력(武力)에 의해 일본 전역이 갈라지고, 각국의 식민지로 전락할 것이란 공포감이 1842년 이후 일본 지식인 사이에 퍼져 나간다. 1853년 6월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黑船)은 그 같은 배경하에서 출현한 것이다.
 
 
  중국을 통해 난징조약을 이해한 조선
 
  조선은 난징조약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당파 싸움으로 세월을 보내던 조선은 1842년 조약의 의미는커녕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스스로 문을 걸어 닫았던 조선은 아예 기초적인 정보 자체를 확보할 수도 없었다. 조선은 청의 일방적 통보에 기초해 난징조약을 이해하게 된다. ‘야만 서양인이 불쌍해서, 중국의 깊은 도량에 기초해 외국에 부분적으로 문을 연다’는 식의 중화(中華)사상에 기초한 변명이다. 조선은 난징조약의 의미도 모른 채 중국의 일방적인 체면치레용 해설만 믿었다. 난징조약 이후에도 이전과 똑같은 시각으로 중국을 대한다.
 
  더불어 득세한 것은 한층 더 강화된 쇄국론이다. 서양인이 단 한명도 발을 붙이지 못할 경우 조선의 내부 사정도 모를 테니까, 물샐 틈 없이 문을 꼭꼭 닫고 살아가자는 우물 안 논리가 확산된다. ‘우리끼리’를 주문처럼 외우는 북한식 주체사상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한일 근현대사를 비교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다. 일본의 경우 천황을 중심으로 한 전면적인 개혁이 단행된 데 비해, 조선은 쇄국주의자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으면서 결국 망하게 됐다는 식의 흑백논리식 역사관이다.
 
  흥선대원군은 1821년생(生)이다. 21세 때 난징조약을 만난 셈이다. 이후 권력을 잡은 것은 1860년대부터다. 일본은 흥선대원군이 등장하기 이미 20여 년 전에 청의 종말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흥선대원군은 난징조약을 맺은 지 20여 년이나 흘렀는데도 중국의 실상도 모른 채 죽어가는 청조(淸朝)만 쳐다보고 살았다.
 
  따라서 1868년 메이지유신이 아니라, 1842년 난징조약에 대한 자세와 정세관이 한일 간 근대화 실력 차의 근본적인 동인(動因)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메이지유신 이전에 이미 한일 간 승패가 드러났다는 의미다.
 
 
  美中 냉전시대의 韓日
 
  2022년은 그 유명한 ‘닉슨 쇼크’ 50주년이 되는 때다. 1971년 4월 미중(美中) 간의 탁구 교류에 이어, 1972년 2월 닉슨 전 대통령이 베이징(北京)을 전격 방문한다. 이후 닉슨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의 회담을 통해 미중 평화시대를 연다.
 
  반세기가 넘어선 2021년 미중 관계는 20세기 중반 미소(美蘇) 냉전(冷戰) 이상으로 살벌하다. 미중 간의 외교 설전(舌戰)이나 보복은 거의 매일 되풀이되고 있다. 서로 조금도 양보하지 않은 채, 미국·중국과의 디커플링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강한 톤으로 말하지 않을 뿐, 전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와 흡사한 외교정책이 바이든 대통령의 중심 노선이다.
 
  이 같은 상황하에서 미중 관계를 대하는 한일 양국의 자세와 정세관은 과연 어떻게 드러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징조약 당시의 한일 간 인식 차와 거의 비슷하다. 180여 년이 흐른 상황이라고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흥선대원군 같은 정치가들로 넘쳐난다. 민족이란 이름하의 우물 안 쇄국정치가 대세다. 인터넷 시대라고 하지만, 정보 분석은커녕 정보 그 자체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눈을 뜨고 있는 이상, 현장의 한국 외교관들도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는 있다. 그러나 정책결정자인 정치권으로 넘어가면 흥선대원군 정치가들이 판을 친다. 현장과 정책결정자와의 괴리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고도 넓다.
 
  일본은 어떨까? 변화의 흐름을 일찍부터 간파하면서 적극 준비해가고 있다. 과거에는 데지마의 네덜란드인을 통해 이뤄졌지만, 21세기 현재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앵글로 색슨 국가와 유럽발 정보로 대응하고 있다. 현장과 정책결정자가 한 몸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도쿄대 나온 兵 출신 육상막료장

 
요시다 요시히데 일본 육상자위대 막료장.
  최근 일본 육상막료장(陸上幕僚長)에 취임한 요시다 요시히데(吉田圭秀)는 현장과 정책결정자 사이의 일체화를 확인시켜주는 좋은 본보기다. 육상막료장은 한국의 육군참모총장에 해당되는 자리로, 육상자위대 최고사령관이라고 보면 된다.
 
  지난 4월에 취임한 그의 배경이 흥미롭다. 자위대 보병 출신으로 졸병에서부터 최고위직에 오른 입지전적(立志傳的) 인물이다. 일본은 모병제(募兵制)다. 자위대는 기피 직업으로 통한다. 월급은 평균 샐러리맨 이상이지만,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고, 평화헌법에 반한다는 편견 때문에 자위대원이라고 하면 모두 이상하게 본다. 자위대의 요직은 방위대학교 출신으로 채워진다. 방위대가 머리, 자위대는 팔과 다리다. 요시다는 자위대원 출신으로 육상자위대 정상에 오른 두 번째 인물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요시다의 자위대 지원 이전 경력이다. 요시다는 원래 도쿄대 공학부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대학을 마치는 즉시 모두가 기피하는 자위대에 병(兵)으로 입대한다. 보통 상식이라면 도쿄대 출신은 고급 관료가 되는 것이 수순인데, 정반대의 길을 택한 것이다. 요시다가 자위대에 입대한 것은 대학 시절 읽은 《일본안전보장론》에 감명받아서였다. 아마도 육상자위대 수뇌부는 요시다를 눈여겨봤을 듯하다.
 
  이후 요시다는 홋카이도(北海道) 근무를 비롯해, 육상자위대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면서 현장 경험과 전략, 국제 감각을 갖춘 장군으로 성장한다. 미국 워싱턴에서 무관(武官)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2015년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주도하의 국가안전보장국에서도 근무했다. 군사·외교·정보·정치를 섭렵한 안보통인 셈이다.
 
  요시다는 육상막료장 취임 즉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문제에 주목한다. 지난 6월 말에는 미국·일본·영국·호주 4개국 간 군사훈련인 ‘탈리스만 사브레 21(Talisman-Sabre 21)’도 행한다. 중국에 맞선 4개국 해병대 상륙작전 훈련이다.
 
  한국에서는 간혹 해외토픽처럼 보도되지만, 현재 일본은 다양한 차원의 합동군사훈련을 수시로 시행하고 있다. 영어에 능통하고 국제 감각을 갖춘 요시다가 자위대원 출신으로 육상자위대 수뇌에 오른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미국을 제대로 알고 국제안보와 정치를 이해하는 인물이 육상자위대를 지키고 있다.
 
 
  방위대 학장은 미국전문가
 
  흥미롭게도 한국도 사상(史上) 처음으로 비(非)육사 출신 육군참모총장이 등장했다. 창군 이래 첫 학군단(ROTC) 출신 참모총장이다. 대학에서 정보통신을 전공한 인물로 야전작전과 교육훈련 전문가라고 한다. 능력도 있고 디지털 시대 한국 육군이 필요로 하는 인물인 것 같다.
 
  그러나 과연 미중 격돌시대에 어울리는 군인일지는 의문이다. 과거 경력만으로 본다면 바깥 세계와 무관한 국내 차원의 군인으로 느껴진다. 태평양 주변국뿐만 아니라 영국·프랑스까지 항공모함을 동원해 일본과 합동군사훈련을 벌이는 판이다.
 
  일본에서는 국제 감각에 기초한 군사 능력을 가진 이들이 국방 관련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요시다와 함께 발탁된 신임 방위대 학장은 미국 정치 일인자로 통하는 구보 후미아키(久保文明) 도쿄대 교수다. 무관이 아닌 문관(文官)이지만 미국을 기반으로 한 국제 문제 전문가로서 미중 격돌에 대응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제1 관심사는 미중 문제다. 일본 최대의 국내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 해결이겠지만, 바깥쪽으로 눈을 돌리면 역시 미중 격돌 문제다. 한때 일본 신문과 방송에 매일 울려 퍼지던 북한 핵문제, 한국과의 문제는 2선으로 물러난 상태다. 올림픽 직전 문재인 대통령이 방일(訪日)을 조건으로 뭔가 ‘빅딜’을 계획했지만, 일본 사정을 너무나 모르는 일방적 구애(求愛)로 느껴진다.
 
  현재 일본은 한국에 대해 아쉬운 것이 별로 없다. 한국과의 경제 관계가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은 늘고 있다. 역사 문제로 비걱거리기는 하지만, 여야는 물론 일본 전체 여론도 한국과의 대화는 내년 선출될 새 대통령과의 문제라고 말한다.
 
  예전 같으면 미국이 일본의 등을 밀면서 한일 협력을 종용했을 것이다. 바이든은 그 같은 압력을 싫어한다. 아예 할 의사가 없다. 필자 판단으로는 좌파 이념과 반일로 무장한 한국의 주장이나 논리는 워싱턴에서 안 통한다. 일본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기울여야만 한다는 것이 2021년 1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의 워싱턴 분위기다.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아베 총리가 스토커처럼 비쳤지만, 현재의 스가 총리, 나아가 차기 총리가 미국의 압력으로 한국과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일본의 등을 민다고 해도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얻을 것도 없다.
 
 
  도시바의 몰락 부른 도시바기계 사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것이 일본의 종래 입장이었다. 집권당 자민당은 경제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다. 중국에서의 비즈니스를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은 이런 식으로 양다리 작전을 펼쳐왔지만, 한계에 다다랐다. 미국이 아예 법을 통해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명문화했기 때문이다. 산업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지만, ‘미국과 비즈니스를 원한다면 중국과의 관계를 끊어라’는 것이 바이든의 생각이자 행동이다. 첨단 제품 소재 부품이 주된 대상이다. 반도체에서 보듯, 앞으로 미국이 금지한 상품을 중국과 거래할 경우 미국법에 의해 제재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은 아직 피부로 못 느끼고 있지만, 일본은 디커플링에 관한 미국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 될지 잘 알고 있다. 1987년 터진 도시바기계(東芝機械) 사건 때문이다. 도시바가 당시 소련에 대형선박용 프로펠러를 팔면서 터진 사건이다. 냉전 당시 자유진영의 법인 코콤(COCOM), 즉 대(對)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의 규제에 반하는 수출이었다. 결론은 도시바의 미국 거래 4년간 중단과 엄청난 제약이었다.
 
  1980년대 도시바는 전 세계 IT 기업의 정상에 서 있었다. 당시 도시바 컴퓨터는 오늘날 애플 제품 이상의 고가로 인기 제품이었다. 그러나 코콤 사건 이후 끝없는 추락과 함께, 부채(負債)투성이 기업으로 전락한다. 미국의 제재로 세계적 기업 하나가 날아간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중국 디커플링 관련 각종 제재법은 전부 코콤 당시의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추진되고 있다. 과거처럼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 말할 수 없는 상황에 접어든 상태다. 단카이세대(團塊世代) 중에는 이참에 미국이 아닌 같은 동양권인 중국으로 방향을 틀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홍콩·티베트 문제를 보면서 그런 주장은 쑥 들어간다. 미국이 일본을 필요로 하듯, 일본도 미국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현재 일본은 중국과의 디커플링 정책에 맞춰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처럼 중국 디커플링 관련 법을 만들어 기업에 알리면서 기업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난세이제도 군사기지화

 
일본이 군사기지를 설치하고 있는 마게시마. 가고시마에서 남서쪽으로 30km 거리에 있다.
  안보 문제는 일본이 미국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영역이다. 타이완 문제와 센카쿠(尖閣)열도 때문이다. 둘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로 생각해야만 한다. 어느 것이 먼저 닥칠지 문제일 뿐, 중국과의 마찰이 가까운 시일 내에 올 것이라 보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은 중공군의 한반도 참전이 없을 것이라 전망했다. 마오쩌둥이 미국 원자폭탄을 겁내고, 공산국가를 막 수립한 상태에서 여력이 없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옛 관동군 정보출신자들을 중심으로 한 일본인들은 중공군의 한반도 참전을 120% 필연이라 보았다. 막상 중공군이 밀려들자 맥아더 장군은 일본 정보출신자들을 미군과 연계해 적극 활용했다.
 
  현재 일본은 중국의 타이완 공략이 5년 내로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일을 중심으로 한 서방 진영이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 한 전쟁은 필연으로 보고 있다. 전면전이 아닌, 1979년 2월 중국-베트남 국지전(局地戰)처럼 되겠지만, 무력시위가 초읽기에 들어섰다는 것이 일본 측 전망이다.
 
  한국에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은 198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유·무인도들을 동중국해 아래 보유하고 있다. 규슈 가고시마(鹿兒島)에서 타이완까지 1300km에 달하는, 이른바 난세이제도(南西諸島) 내 섬들이다. 항공모함용 인공섬 제조국이 중국이지만,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기존 작은 섬들을 군사용으로 전환할 수 있다. 중국의 무력시위가 가속화될수록 난세이제도의 섬들도 각광받을 것이다.
 
  이미 2019년부터 군사용으로 전환되고 있는 무인도도 있다. 가고시마에서 남서쪽으로 30km 떨어진 무인도 마게시마(馬毛島)가 주인공이다.(지도 참조) 폭 2.7km, 길이 4.5km의 공간으로, 현재 자위대 군사시설로 신속 개발 중이다. 빠른 시일 내에 항공모함 탑재기용 미군비행장으로 전환될 것이다. 항공모함 갑판을 대신한 이착륙 비행장인 셈이다.
 
  일본은 중국의 반응을 보면서 장기적으로 난세이제도 전체의 군사기지화에 힘쏟을 전망이다. 아마미오시마(奄美大島)의 미사일 부대를 비롯해, 이미 5개 섬을 군사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이 무력시위를 중단하지 않을 경우 무인도를 적극 개발해 동맹국인 미국에 제공될 것이다.
 
 
  스가, 타이완을 ‘국가’로 호칭
 
  도쿄올림픽 폐막과 함께 일본은 총선거 모드로 들어갈 것이다. 현 중의원 임기는 오는 10월 21일에 끝나지만, 대략 ‘9월 중의원 해산, 10월 총선’이 유력시되고 있다.
 
  한국에서 보면 스가 총리는 이미 끝난 듯하다. 하지만 이는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반감의 영향일 뿐이다. 자민당이 승리할 경우 스가 총리 연임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자민당이 강한 것이 아니라 야당이 너무 지리멸렬해서 현재의 정권이 그대로 이어질 것이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벌어지는 도중에 장수를 바꿀 수도 없다. 스가가 탁월하게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가 나와도 현재의 바이러스 상황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국민 모두 잘 알고 있다. 일본은 강제명령에 기초한 방역이 아니다. 마스크를 쓸지 여부는 본인의 자유다. 식당 문을 열지 닫을지도 업주가 판단한다. ‘마스크 안 쓰면 벌금, 5명 이상 식사 자리를 제공하면 폐업’ 같은 법이 없다. 일본인이 보면 한국은 공산독재국가 중국과 비슷한 방역권역으로 비친다. 자율 방역에 기초한 일본은 평소에 비해 7할 정도의 영업과 사회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아무리 바이러스가 난리를 쳐도 식당 문을 안 닫는 사람이 7할이란 의미다. 따라서 감염자가 한국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타이완 문제는 일본의 안보 문제를 가늠하는 상수(常數)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태평양전쟁 당시 시라인(Sea Line) 보급망이 차단된 참상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남중국·동중국 바다로 들어오던 식량·자원·에너지가 전부 미국 함선에 의해 단절됐다. 이것이 일본이 패전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타이완이 중국에 점령된다는 것은 일본 해상 안보라인의 괴멸을 의미한다. 해상 안보라인으로 연결된 타이완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자세는 여야 따로 없이 완고하다. 중국의 무력 사용에 반대라는 말이다. 그동안 일본에서 타이완은 ‘지역’으로 불려왔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입각해 ‘나라(國)’라고 부르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타이완을 하나의 나라로 대하는 공식적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지난 6월 9일 스가 총리가 입을 열었다. 당수 토론회에서 바이러스 대책에 대해 말하던 중 타이완을 ‘나라’라고 칭했다. 당시 동석한 야당 입헌민주당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대표도 타이완을 지역이 아닌, ‘나라’라고 불렀다. 6월 29일에는 나카야마 야스히데(中山泰秀) 방위성 부대신이 타이완을 ‘나라’로 호명했다. 미국 싱크탱크와의 온라인 행사에서 “중국의 군사적 압박에 맞서 민주주의 ‘국가’인 대만을 적극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타이완 방문 추진
 
  일본은 천안문 사태 기념일인 6월 4일 타이완에 대한 백신지원을 발표했다. 한국이 보면 부럽게 느껴지지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24만 회분을 타이완에 무상 지원했다.
 
  현재 일본의 타이완 지지를 주도하는 인물은 아베 전 총리다. 그는 7월 28일 인터뷰에서 “바이러스 상황을 보면서 타이완을 방문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방문 목적은 지난해 7월 30일, 97세로 서거한 이등휘(李登輝) 총통 묘소 방문이다. 친일(親日) 정치가에 대한 존경과 애도를 전하고 싶다는 말을 타이완인에게 전했다. 아베의 인터뷰가 나간 뒤 타이완 전 국민이 두 손을 들어 반겼다.
 
  필자 생각으로는 9월부터 펼쳐질 일본 총선을 즈음해 아베의 타이완 방문에 대한 얘기가 한층 더 무르익을 것이다. 중국을 자극할 것은 분명하지만, 타이완에 대한 일본인의 호감도를 고려할 경우 자민당에 절대 유리하다. 물론 미국과의 관계도 좋아질 수 있다. 여야 구별 없이 일본 정치인 모두 타이완을 지지하면서 미국의 반중(反中) 전선에 동참하는 판이다.
 
  ‘미중 관계가 좋으면 미일 관계는 나빠진다. 미중 관계가 나쁘면 미일 관계는 좋아진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신봉하는 1차원 국제정치 프레임이다. 최근에 미중 격돌이 심화되면서 새로운 프레임이 하나 더 추가됐다.
 
  ‘미일 관계가 좋으면 중국이 일본에 구애를 한다. 미일 관계가 나빠지면 중국은 일본을 간단히 무시한다.’
 
  반일과 친중(親中)으로 무장한 한국 정치가에게 전하고 싶은 1차원 국제정치 프레임이 하나 있다.
 
  ‘한미 관계가 좋으면 중국이 한국의 말을 듣는다. 한미 관계가 나쁘면 한국이 중국의 말을 들어야만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던 지난 8월 7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에서 한 발언이 눈에 띈다.
 
  “한미군사훈련 중단해야 한다.”
 
  정확히 7시간이 지난 뒤 한국의 차기 국립외교원장 내정자도 인상 깊은 몇 마디를 남겼다.
 
  “한미연합훈련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한미연합훈련의 구체적인 내용을 북한에 알려야 한다.”
 
  1842년 난징조약을 대하던 한일 간 인식 차는 2021년에도 ‘변함 없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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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gtm0129    (2025-02-15) 찬성 : 0   반대 : 0
항상 좋은 기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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