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집중분석

近世 일본사상을 통해서 본 일본의 本質

현대 일본에서 부활하고 있는 江戶 시대

글 : 이용수  한국항공대 교양학부 외래교수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1945년 일본이 패전한 이후 경제부흥을 위해 국가적 힘을 쏟은 뒤 지금은 다시 아베 총리를 중심으로 ‘전후체제 탈피’라는 명분하에 ‘평화헌법 개정’을 목표로 하는 ‘武 우위’ 현상이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게 현대 일본에서의 實用인 것이다.

⊙ 에도 시대는 일본의 국가 정체성이 형성·확정된 시기
⊙ 兵學·朱子學·蘭學·國學… 에도 시대 대표하는 핵심 思想
⊙ 武·국가·공명·황국의식·천황·국체 중시 경향… 공익·실용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계승
⊙ 자율성 배제된 강제적 義務인 ‘야쿠(役)’는 전체의 이익을 위한 實用이자 公益…
    오늘날 일본을 움직이는 動力

李龍守
⊙ 56세. 연세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일본 게이오(慶應)대 법학부 연구원.
⊙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한일의원연맹 기획실장, 국회의원 보좌관. 연세대·경희대·항공대 강사.
    現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전문연구원 겸 항공대 외래교수.
⊙ 상훈: 대통령 표창.
⊙ 《도쿠가와 시대의 철학사상》 《일본사상으로 본 일본의 본질》 번역 출간.
    〈다산 정약용과 오규 소라이의 실학관 비교〉 등 논문 다수.
일본 전통 풍속화 우키요에(浮世繪)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에도 시대 후기 우타가와 히로시게(1797~1858)의 그림. 18세기 일본 에도(지금의 도쿄)는 100만명이 넘는 인구가 북적거리는 거대도시였다.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일본의 실체와 본질은 무엇인가, 일본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물음이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인 것은, 지금까지 다방면에 걸쳐 있어 왔던 그에 대한 수많은 진단과 대답이 그리 썩 시원치 않았음의 반증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일본의 사회현상 중의 하나인 반한(反韓)감정 고조의 원인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에 대한 분석과 대답이 변변치 않음과도 상통하는 것이리라.
 
  지금까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 학문적으로 일본 내외에서 시도했던 방법은 대략 역사적·문화인류학적·사회적·문학적·예술적 접근방식이었고, 그런 방식을 통해 다양한 결과물을 도출했다. 물론 그런 결과물들이 갖는 나름대로의 의미는 분명히 있으나 필자 생각으로는 접근방식이 갖는 한계 때문인지 명석한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일본의 ‘본질’을 보는 방법을 좀 달리하면 어떨까. 말하자면 어떤 특정 시대에 유행했고 그 시대를 지배했던 사상으로써 그 사회와 체제의 본질을 파악한 뒤 그것을 도구로 삼아 오늘의 일본을 읽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의외로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일본 근세(近世)사상을 통해 일본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다시피 했고, 또 소개된 적도 거의 없었다. 아래에서 풀어 나갈 ‘일본 근세사상으로 본 일본의 본질’이 일본을 보다 정확하게 보는 창(窓)으로서 역할할 것이라 기대한다.
 
 
  일본 근세사상과의 만남과 의미
 
일본 기후현 다카야마시 축제의 한 장면. 에도 시대 상인들이 자신들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 호화로운 수레를 만들었다고 한다.
  “가깝기는 한데 멀기는 정말 멀지요.”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다수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는 대답이다. 가깝다는 말은 지정학적·역사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뜻이겠고, 멀다는 말은 양국 사람들 각각에 고유한 보편적 의식구조를 포함한 사상적 측면과 사회구조의 성격 및 특히 과거사 인식 등을 염두에 둘 때 그렇다는 뜻일 것이다. 멀다는 인식은 노벨상 과학부문 수상자 수가 19명 대 0명이라는 자조(自嘲)가 표현하듯 과학기술 측면에서의 격차까지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런 일본을 아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뭔가를 내보이겠다는 의욕으로 필자가 주제넘게 뛰어든 분야가 일본 근세사상사 연구였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특정 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예술 등 인간의 지적 활동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용기(容器)의 특성과 성격을 분석할 수 있는 도구가 바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상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둘째, 따라서 그것과 연결하여 일본의 에도(江戶) 시대(1603~1868·도쿠가와 시대라고도 함)라는 사회와 유기적으로 맞물려 등장했던 여러 사조(思潮)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 및 그 축적이 일본을 올바로, 그리고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셋째, 이전부터 있어 왔고 또 지금 있는 그대로의 일본을 객관화해 분석·파악하지 못한 채 친일·반일·지일(知日)·극일(克日) 운운하는 것은 큰 모순이 아닌가라는 회의(懷疑)가 들었기 때문이다. 그 회의는 일본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이중적 정서, 즉 선망과 질시·무시와 칭송·애증이 말 그대로 혼재되어 있는 애매모호한 심리 상태에 대한 필자 나름의 선전포고였던 셈이다.
 
  일본 근세사상사와의 인연은 우리 학계의 태도도 한몫했다. 지금은 관련 학회(특히 일본사상사학회)의 활동과 뜻있는 몇몇 연구자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연구결과가 어느 정도 축적되어 있지만 필자가 일본 근세사상 연구를 시작했을 무렵인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다.
 
  심지어 알지도 못한 채 ‘쇼군(將軍) 지배체제하의 사무라이(武士) 중심 무가(武家)사회인 에도 시대 일본에 무슨 사상이 있었겠는가,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주자학(朱子學) 전수과정이나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齋·1618~1682·퇴계 이황을 朱子 다음으로 존경했던 에도 시대 유학자이자 일본주의의 元祖) 등을 볼 때 퇴계학의 아류 아니겠는가’라는 식으로 애써 무시해 버리는 풍조가 일반적이었다. 물론 일본사상사와 관련한 한글로 된 변변한 텍스트조차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비판에 대해서는 일본사상사 소개와 착근을 위해 매진해 온 김석근 선생의 양해를 구한다. 그는 척박하기 그지없던 한국의 일본사상사 연구 토양을 개간해 일본사상사 연구가 이 땅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애쓴 선구자들 중 한 사람이다.
 
 
  무시해도 괜찮은 일본思想?
 
병영, 군사국가였던 일본 에도 시대 당시 활동했던 사무라이 모습을 재현했다.
  지구상에서 일본을 가장 무시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고들 한다. 왜 그럴까. 필자가 볼 때 과거 역사로 인한 반일(反日)감정도 일부 작용하겠지만 더 큰 이유는 문화적·사상적으로 우리에게 배운 한 수 아래의 나라라는 인식이 우리 의식 깊숙한 곳에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015년 오늘의 이 시점까지도 국내 어느 대학에서도 일본사상이나 일본사상사와 관련해 제대로 된 강좌가 개설되어 있지 않은 기막힌 현실이 이를 대변한다고 하겠다. 대학 현실이 이럴진대 다른 쪽 상황이 어떠한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제부터 진지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가슴을 식히고 고민해 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무조건 밉고 싫다는 생각에 가까이 다가가 보려고 하지도 않고 무시하고 관심조차도 갖지 않는 것은 알 만한 사람과 국가가 할 행동이 아니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일본을 극복해 무엇을 해 보겠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것이다. ‘일본이 자체 기술로 행성탐사우주선 ‘하야부사’를 쏘아 올리고, 혼다 같은 기업이 제트비행기를 제작·판매하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라고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 일종의 해결책으로서, 일본 근세사상사라는 창(窓)을 통해 일본을 들여다보면서 내린 필자 나름의 결론은 ‘일본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우리 사회의 일본 이해와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각 시대별 사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하나로 꿰어 일본사상 전체를 이해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떤 시대에 등장한 사상은 그 시대의 사회상이 반영된 결과물로서의 생명력이 있는 이데올로기이고 그런 이데올로기의 본질과 특징이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절름발이 인식이 횡행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특정 시대의 사상에 대한 보다 폭넓으면서도 구체적인 이해가 선행조건으로서 필수적이다. 부연하자면 서구나 일본에서 생산된 시각에 더하여 우리 시각으로의 ‘일본 본질 보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일본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根源과 아베
 
에도 시대의 대표적 국학자인 모토오리 노리나가. 그는 일본정신을 강조했다.
  단언컨대 에도 시대는 오늘의 일본과 일본인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원형의 틀이 갖추어진 시기이다. 이는 현대 일본 이해를 위해서는 에도 시대의 사상과 문화, 그리고 사회를 보면 훨씬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메이지(明治) 시대(1868~1912)에 국가 및 국민통합용으로 등장한 천황론과 국가주의 혹은 국체론(國體論·고쿠타이론) 및 신도론(神道論)은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1730~1801)나 히라타 아쓰타네(平田篤胤·1776~1843) 등에 의해 착근된 이른바 국학(國學)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에도 시대 중·후기 국학자로, 일본 고도(古道)발굴에 뜻을 두고 30년 동안 《고사기전(古事記傳)》 저술에 전념해 일본인 마음에 물들어 있는 한의(漢意·중국식 발상과 마음)를 제거하고 야마토다마시이(日本魂)의 회복을 주장했다. 히라타 아쓰타네는 모토오리 노리나가와 함께 국학 사대인(四大人)의 한 사람으로 모토오리의 고도신도(古道神道)를 확대·강화한 인물이다.
 
  한편, 현대 일본의 국민 정서 이해와도 깊은 관계가 있는 만큼 현대 일본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도 시대 중·후반기에 등장한 ‘국학’에 대한 선(先)이해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마에다 쓰토무(前田勉) 아이치(愛知)교육대학 교수는 ‘일본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본질 발굴이라는 목적을 염두에 두고 《병학과 주자학·난학·국학|근세일본사상사의 구도》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일본 에도 시대 사상의 내용과 의미 그리고 그 조류에 대해 사무적(四無的) 태도로 일관해 왔던, 즉 무지·무시·무관심·무반응했던 우리에게 적지 않은 화두를 던져 준다. 달리 표현하면 에도 시대 주류를 형성했던 사상들의 성격과 특징을 지금까지의 시도와는 달리 차별적으로 좀 더 객관화, 구체화함으로써 일본의 본질을 정확하게,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지난 연말 《일본사상으로 본 일본의 본질》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했다.
 
  일본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근원이 형성·확정된 시기인 에도 시대의 여러 사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재확인시켜 줌으로써, 최근 아베(安倍) 총리가 중심에 서 있는 ‘(신)일본주의’로의 회귀 성향까지 포함한 오늘의 일본을 보는 시각을 정리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실용주의와 일본 국가주의 형성의 근원인 ‘야쿠(役)’
 
모토오리 노리나가와 함께 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국학자 히라타 아쓰타네는 노리나가의 고도신도(古道神道)를 확대, 강화한 인물이다.
  세계관 및 인간관 그리고 가치관과 관련해 일본 사회와 일본인의 의식 저변에 깔려 있는 기본 정서는 무섭다 싶을 정도로 철저한 실용주의(實用主義)이다. 그런데 이 ‘실용’은 개인의 삶과 의식에만 국한되지 않은 공익(公益), 즉 공공성을 지향하는 실용이다. 필자가 일본 근세사상 연구를 포함해 여러 경로를 통해 일본 본질 이해를 위해 관찰한 바에 의하면, 일본인들의 실용주의는 학문이나 생활, 신앙을 포함한 문화적 측면에서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그것은 주자학 일변도였던 조선과 달리, 같은 시기의 도쿠가와(德川) 사회에서 주자학이 크게 환영받거나 학문적으로 뿌리 내리지 못한 가운데 고학(古學)이라는 일본적 유학(儒學)이 득세한 사실, 불교가 전래된 이래 신도(神道)와 습합적(習合的)으로 공존하고 있는 현상, 종교적 권위가 무(武)에 의해 압도당한 결과인지는 모르겠으나 내세(來世)보다는 ‘지금’이라는 현실을 중시하는 관념, ‘이에(家)’와 ‘우치(內)’를 중시하는 일본인들의 생활의식과 태도, 또 일본 사람들에게 거의 진리처럼 여겨지는 ‘와(和)’ 의식만 보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마에다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왜 그러한지를 일본의 근세를 이끌어 온 네 가지 사상, 즉 병학(兵學)과 주자학, 난학(蘭學), 국학(國學)을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도쿠가와 시대의 사회적 성격을 분석하고 거기에서 파생된 일본의 ‘내셔널 아이덴티티’가 뭔지를 정의(定義)하고 있다.
 
  그는 일본의 근세사회를 기본적으로 문(文)보다 무를 떠받든 무 우위의 체제, 말하자면 무위(武威)와 어위광(御威光)의 위세 아래 다스려진 병영국가, 군사국가 시대로 규정한다. 따라서 주자학이 일본에 들어와 있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병학의 위세에 눌려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한다. 주자학자들이 병학 위주의 막부(幕府)의 무단정치를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병학 우위 사회에서 자신들이 쓸모 없는 무용자(無用者)이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과 소외감으로 노심초사했다는 사실, 구한말의 위정척사 사상의 종조 이항로(李恒老·1792~1868)와 일본의 야마자키 안사이를 비교해 일본 주자학이 ‘유학의 성쇠’보다는 ‘국가의 존망’에 무게를 더 두었다는 사실을 예로 들면서 주자학자들이 막부 말기로 접어들면 결국 무 우위의 사회 분위기에 굴복해 일본 중심의 화이관념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음을 논증하고 있다. 특히 이항로와 야마자키의 비교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자학을 간결한 도덕체계로 만들고 일본 고유의 신도(神道) 이론을 완성한 야마자키 간사이.
  한편 초·중기의 에도 사회는 개인의 내면적 자율성이 박탈된 ‘야쿠(役)’ 체계로 꾸려진 사무라이 지배 중심의 사농공상(士農工商) 사민(四民)체제였다. 그런 사회질서가, 돈이 곧 힘인 세상으로 바뀌면서 흔들리자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난학자들은 ‘공명심’ ‘명예심’ ‘국익’ ‘자발적인 일본인 의식’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18세기 후반부터 경제화 사회로의 진행과정에서 소외된 약자·패자들이 돈에 대한 원한(=르상티망)으로 불안해하자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국학자들은 새로운 형식의 복종을 고안해 냈다. 즉,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御神)의 자손인 천황에 대해 격정적으로 복종하고 충성하고, 번(藩) 중심의 할거의식을 초월한 국학적 ‘일본인 의식’과 천황 중심의 ‘황국의식’을 고양시킴으로써 소외된 자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천황 아래에 그들을 하나로 묶었다.
 
  막말(幕末)에는 외우내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배자들이 국학자들이 제시한 ‘일본인 의식’을 교묘히 이용해 흔들리는 병영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손노죠이(尊皇攘夷·존황양이)를 내세웠다. 그 이론적 근거는 아이자와 세이시사이(會澤正志齋·1782~1863)가 쓴 《신론·新論》이었다. 실용 차원의 이념이 명확한 목적을 갖고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발현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실용이 실천적 이념으로 구체화될 수 있는 근원은 ‘야쿠’에 있고, ‘일본인’과 ‘일본’이라는 내셔널 아이덴티티에 있다는 것이다.
 
 
  실용과 공익을 기반으로 발전한 武國 일본
 
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인이자 사무라이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야쿠라는 말은 바로 실용, 즉 공익의 또 다른 표현이다. 마에다 교수는 “근세 일본의 병영국가에서는 ‘야쿠’를 짊어지는 것이 의무였고 ‘쓸모없음’은 용납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그 ‘야쿠’가 자율성이 배제된 강제적 의무였지만, 그것은 관찰자인 우리 입장에서 그럴 뿐이다. 도쿠가와 사회 체제가 무 우위의 힘의 논리를 등에 업고 유지·발전되었음을 상기해 볼 때 지배층으로서는 ‘야쿠’가 지배의 영속을 위한 당연한 실용, 즉 공익이었던 것이다. 도쿠가와 무가(武家)사회 유지의 기본법이었던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는 그 표상이다. 법가적(法家的) 이념에 기반해 필요하다면 법으로 얼마든지 이(理)를 부술 수 있다는 법 우위 사상이 바로 그들의 ‘실용’이었고 ‘공익’이었다. ‘무가제법도’의 법은 예절의 근본이다. 법은 도리를 깨트릴 수 있지만 도리는 법을 깨트리지 못한다. ‘법을 어기는 무리들은 대가가 가볍지 않을 것이다(法是禮節之本也. 以法破理, 以理不破法. 背法之類, 其科不輕矣)’라는 말이 그것을 단적으로 나타내 준다.
 
  피지배층 입장에서 보아도, 자신에게 부여된 ‘야쿠’에 의존해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하기만 하면 살아가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던 만큼 일본 근세 시대는 역설적으로 차분한 시대였다. 그런 삶의 형태가 곧 실용 및 공익과 연결됐던 것이다.
 
  도쿠가와 사회의 독특한 사회상, 즉 야쿠=실용=공익으로 이어지는 현상이 초·중기에는 무, 중·후반기에는 경제력 위주의 사민 초극 현상, 후기에 접어들면 다시 무 개념이 ‘국체’ ‘천황’과 연결돼 부상(浮上)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눈여겨봐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정신은 현대 일본에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어서다. 즉, 1945년 일본이 패전한 이후 경제부흥을 위해 국가적 힘을 쏟은 뒤 지금은 다시 아베 총리를 중심으로 ‘전후체제 탈피’라는 명분하에 ‘평화헌법 개정’을 목표로 하는 ‘무 우위’ 현상이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게 현대 일본에서의 ‘실용’인 것이다.
 
 
  武가 기반이 된 皇國의식
 
  물론 마에다 교수는 근세 일본이 ‘무위’와 ‘어위광’을 과시하며 사농공상 네 계층 각각에 부여된 ‘야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 군사체제의 무국(武國)이었다는 사실과 그런 체제에서 인간의 내면적 자율성이 박탈된 현상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문’보다 ‘무’를 더 숭상했다는 사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은 일본이라는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부각시키기 위해 ‘무’를 지렛대로 삼아 공공의 ‘실용’, 즉 ‘공익’을 추구한다는 공익 우위의 사유체계가 근세 사회의 지배층 저변에 굳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동아시아에 통용되고 있던 중국 중심의 세계관인 화이(華夷)관념이 일본으로 건너간 후에는 일본 중심의 화이관념으로 변한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일본 중심의 화이관념이란 다름 아닌 ‘무’ 우위 사상이 이념적 구조의 기저(基底)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근세 일본의 대표적 병학자였던 야마가 소코(山鹿素行·1622~1685)의 일본 중조론(中朝論), 국체론을 펼친 《신론》, 그것을 성전(聖典)으로 받드는 후기 미토학(水戶學)의 이념이 그 증거이다.
 
  특히 《신론》이 ‘무국’ 일본을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사상이었다고 지적한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신론》이 표방하고 있는 ‘문’보다 ‘무’에 의한 공적 실용성이 곧 근세 후기 일본사회의 국가적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마에다 교수가 “국학 차원의 ‘일본인 의식’이 전면에 나왔던 근본 이유는 병영국가라는 큰 틀이 결국 근세 말까지 붕괴되지 않았던 사실에 잠복하고 있다”고 한 것과, “메이지 국가는 근세 병영국가의 유산을 이어 받아 천황의 ‘대어심’을 마음으로 삼는 절대의존적 생활방식을 위에서부터 신민들에게 주입시키려 했다”는 야스마루 요시오(安丸良夫)의 분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난학자들이 추구했던 ‘국익’과 자발적인 ‘일본인 의식’의 발현, 국학자들이 일본의 신화에서 가장 일본적인 것으로서 끄집어낸 만세일계(萬世一系) 천황 중심의 ‘황국의식’도 마찬가지로 실용 선호 이념이 의식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말해 사회의 급속한 경제화 속에서 자신들도 ‘실용’의 범위에서 소외되지 않는, 말하자면 쓸모 있음을 확인해 주려 했던 것이다. 난학자가 추구했던 ‘명예심’ ‘국익’ ‘일본인 의식’의 발현, 그리고 국학자들에 의한 천황 중심의 ‘황국의식’이 지금의 일본에도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다.
 
 
  對外팽창으로 연결된 尊皇사상
 
일본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아베 총리의 고향은 묘하게도 요시다 쇼인,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야마구치현이다.
  천황의 존재와 권위를 부각시키기 위해 민중의 삶이 천황과 그 조상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은덕임을 강조함으로써, 천황을 정점으로 민심을 통합하는 장치로서의 ‘다이죠사이(大嘗祭)’ 곧 천황즉위 의례의 제의(祭儀)는 ‘무위’의 다른 표현이었다는 지적 역시 눈여겨봐야 한다.
 
  메이지 유신으로 인해 사민체제가 일군만민론(一君萬民論), 즉 천황 중심의 일민체제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야쿠’의 공백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전까지 ‘야쿠’의 행위규율 속에서 생활해 온 사람들에 대해 그 빈손을 채워 주기 위해 ‘마술적 조수(助手)’로서의 천황 권위를 교묘히 이용해 국가의 내적 통합을 꾀했던 묘안이 바로 메이지 4년(1871)에 행해졌던 ‘다이죠사이’의 고쿠유(告諭)였다. 말하자면 ‘천황을 위한 충’이라는 새로운 ‘야쿠’, 즉 ‘공익’이 바로 ‘다이죠사이’를 통한 천황 권위의 옹립이었다.
 
  산킨코다이(參勤交代·1635년 무가제법도 개정부터 제도화한 에도 막부의 다이묘 통제책의 하나)를 수행하기 위한 다이묘(大名)의 행렬과 같은 무력시위처럼, ‘다이죠사이’를 통해 사람들의 천황에 대한 복종심을 끌어모아 부국강병을 기치로 병영국가를 재편성하려 했던 것이 메이지 초기의 일본이었다. 에도 시대 말기까지 천황의 존재와 무관하게 260여 다이묘로 제각기 분산되었던 사무라이(武士)들의 맹목적 충(忠)이, 메이지 천황에 대한 충으로 통합·집중됨으로써 유례없는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존황(尊皇)’은 천황 존중과 복종을 넘어서서 황위(皇威)의 떨침까지 포함된 개념인데 그것은 대외팽창론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마련이다. 이는 막말(幕末)의 죠슈(長州·지금의 야마구치현) 출신의 지사(志士)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과 그 제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 그리고 사쓰마(薩摩·지금의 가고시마현) 출신으로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메이지 유신 삼걸(三傑) 중 하나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1828~1877)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막부 말기와 메이지 초기의 존황과 부국강병의 국체이념이 청일·러일전쟁, 한일합방과 대만병합, 쇼와(昭和) 시대의 군국주의와 중일전쟁, 동남아시아 침탈, 태평양전쟁으로 치닫게 된 동인(動因)이었다고 하면 지나치게 예민한 해석일까. 아베 총리의 출생지역이 묘하게도 요시다 쇼인, 이토 히로부미가 태어난 야마구치현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
 
  에도 시대의 네 개의 중심사상이 지녔던 핵심이념들, 즉 무위, 어위광, 야쿠, 국가, 공명, 일본인 의식, 황국의식, 천황, 국체 등은 결국 공익과 실용 중심으로 사회가 유지·발전돼 온 일본을 읽어낼 수 있는 키워드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일본의 본질, 일본의 실체를 볼 수 있다. 전체의 이익, 즉 공익을 위해서 근세 일본이 추구했던 수단과 방법들이 모두 실용이라는 이념에 기반을 두고 있고, 그 추진과정에서 일본의 내셔널 아이덴티티가 부각되었는데 그것이 오늘의 일본을 움직이는 동력의 하나라는 점이다. 그것은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 참사를 극복해 나가고 있는 일본이 무언으로 웅변하고 있는 사실이다. 실용이 곧 일본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이고 실용과 내셔널 아이덴티티가 결합할 때 그 파워는 당연히 주변국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그 중심에 아베 총리가 있음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지금의 한일(韓日)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경색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혐한론이 비등하고 반한(反韓)감정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등 우리로서는 좋지 않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의 타개책을 내기가 만만치 않은 것은 일본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결 방책의 하나로 근세 일본사상의 이해를 통해 일본의 본질을 바로 알고, 그것을 바탕으로 협상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즉 근세부터 이어져 내려온 일본의 실용주의 사상의 본질을 파악한 뒤 그것을 거꾸로 우리의 협상카드로 쓰자는 것이다. 요컨대, 일본의 본질은 문(文)을 중시하면서도 무(武)를 먼저 생각하는 국가이다. 언젠가 전쟁을 다시 할 수 있는 국가인 것이다. 이 점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2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yp1979    (2015-02-01) 찬성 : 45   반대 : 153
일본 역사상 쇼군에 의한 무인통치 시대는 도쿠카와의 230년, 카마쿠라 시대를 합치면 거의 700 여년 입니다. 한국사에서 고려 때 기십년에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암튼 귀하의 저서에 관심이 갑니다
  syp1979    (2015-02-01) 찬성 : 56   반대 : 5
좋은 글입니다. 내가 외국서 살며, 공공도서관에서 빌린 도쿠카와 시대 배경의 유명한 사무라이 만화 lone wolf and cub 시리즈를 보는데요..한국 언론과 지식층은 아이콘 이어령 교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란 저서의 폐해로 근본 큰 그림을 못보고 무조건 일본을 폄하합니다. 지금도 한국은 조선 선비사회의 축소판으로 실용, 공익을 무시합니다

202208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북스토어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