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보낸 3박 4일

전주에서 만난 인간 불행의 극적(劇的) 희망들

  •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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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회 전주국제영화제, 4월 30일부터 5월 9일까지 전주 도심 일대에서 열려
⊙ 독립 예술영화 최전선에 놓인 57개국 224편 작품 상영
⊙ 청년이 다시 돌아오는 꿈 꾸며 ‘영화·영상 도시 전주’ 선언
⊙ 유서 깊은 도시, 차분한 물개박수, 시민들의 예스러운 기품 느껴져
전주국제영화제의 한 장면. 영화가 끝난 뒤 관객과 영화 감독 혹은 배우와의 Q&A 시간이 마련되었다. 사진=전주국제영화제
올해 26회째를 맞은 전북 전주의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기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온전히 관객이 되어, 또는 어설픈 탐정이 되어 저 유서 깊은 도시를 나흘 동안 둘러보며 오직 영화에만 젖었다. 전주를 찾는 벼슬아치들이 머물던 객사(客舍)인 ‘풍패지관(豊沛之館)’(국가유산 보물)에 들렀고, 상다리가 휘어지는 것으로 유명한 전주 한식과 비빔밥을 먹었다. 한옥마을의 처마 아래 서서 빗소리를 들었으며,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 성지(聖地) 터에 세워진 전동성당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영화제 내내 독립영화 장르가 뭔지는 몰라도 낯선 배우들이 울 때 같이 울었고 이들이 웃을 때 같이 웃었다. 돌이켜보면 너무나 진지한 영화들만 봐서 그런지 웃은 기억이 별로 없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들은 스펙터클과 엔터테인먼트라는 통념을 깬, 의도적으로 화려하지 않고 큰 재미도 없으며 화끈한 감동의 희열도 없었다. 아, 기무라 타쿠야와 옥택연이 나온 일본 음식 영화 〈그랑 메종 파리〉에서만은 독립영화의 규칙 내지 패턴과는 다른 ‘상업적 향신료’가 느껴졌다.
 
  독립영화가 무슨 의미인지 서울에 와서 제대로 찾아보았다. 예산이 적고 대규모 자본에 의존하지 않음, 감독이나 작가의 자율성과 예술성이 강조됨, 상업적 흥행보다 실험적 형식을 우선함, 영화제 상영을 통해 관객과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는 경우가 많음….
 
 
  영화를 보고 또 보고
 
영화제엔 다양한 부대 행사가 마련돼 관객의 참여를 높였다.
  아침 굶고 영화를 봤다. 시계를 보면서 점심을 먹고 영화를 봤으며, 해설 브로셔를 보면서 저녁 먹고 또 영화를 봤다. 한 편당 1만원을 내고서 인간 내면이 만든 집착 내지 강박의 역사와 마주했고, 상처투성이 관계의 역사를 만났다.
 
  또 영화와 영화의 형식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과 만났다. 하나의 갈등에는 죄와 인간, 정치와 사회, 이웃과 전쟁이 얽혀 있었고, 스크린 속 세상은 너무나 뜨거워 불타기 직전이거나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전주에 머무르며 오직 영화 생각만 했다. 스크린 속에서는 살아 있거나 살고 싶거나 살 수 없거나 살기 싫거나, 삶을 둘러싸고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들이, 가능한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관객들은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좌석에 그대로 앉아 있었고, 약속이나 한 듯이 조용히 물개박수를 쳤다.
 

  도심은 연휴에도 조용했고 거리는 차분했다. 도시를 찾는 손님을 깜짝 놀라게 하거나, 놀라게 하기 위한 기발한 이벤트나, 봄의 햇살 속에 빠져들 만한 즐거움은 느낄 수 없었다. 예스러운 도시답게 시민들의 표정엔 기품이 가득했다. 기자와 만난 택시기사의 말이다.
 
  “익산에 가면 열차가 많지만 전주는 오는 기차도 별로 없어요. 작년 12월 3일 이후 골목상권이 완전히 망했습니다. 저기 거리 좀 보세요. 초저녁인데 우중충하잖아요. 경기가 너무 안 좋다 보니까 솔직히 말해 전주에 오시는 분들한테 미안한 것도 있어요.
 
  영화 보러 오셨어요? 음식이 드실 만할 겁니다. 소주 한잔 하시려면 동문예술거리 쪽으로 가보세요. 한옥마을 주변은 음식이 이렇다 할 곳이 없어요.
 
  정권이 바뀌면 기대가 되냐고요? 당연하죠. 전주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어요.”
 
 
  “전주영화제, 왜 전주에서 하냐?”
 
  영화 사이트에 들어가니 이런 글이 올라 있었다.
 
  〈전주국제영화제, 왜 전주에서 하냐?
 
  전주, 부산, 부천 영화제 모두 ‘문화 수도 서울’에서 하자. 서울에서 가기 너무 멀어.〉

 
  이 글에 달린 댓글들은 이랬다.
 
  “이게 요즘 MZ 사고방식이라 부르는 거야?”
 
  “칸 영화제를 프랑스 파리에서 하자고 할 놈이네.”
 
  옛 전주가 아닌 오늘의 전주가 궁금했다. 전주는 2036년 하계올림픽 개최를 선언, 전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아직 국제도시 간 경쟁을 거쳐야 하지만 국내에서는 서울을 제치고 당당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하계올림픽 개최 후보 도시로 선정됐다. 아무도 예견 못 한 이변이었다. 전주시는 “국가균형발전과 지방 소멸 극복의 새로운 출발점을 삼겠다”며 올림픽 유치를 선언했다.
 
  2025년 4월 기준 전주시의 주민등록 인구는 63만1587명이다. 남성 31만20명, 여성 32만1567명이며, 총 29만7089세대가 존재한다. 2013년부터 10년간 65만 명 선을 유지했지만,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전달 대비 인구 감소 폭은 1월 1103명, 2월 880명, 3월 1202명, 4월 879명으로 올해 첫 넉 달에만 벌써 4064명이 전주를 빠져나갔다. 《전북도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같은 추세라면 하반기엔 63만 명 선도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인구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청년 세대의 유출이다. 전주 청년(19~ 34세) 인구는 2021~23년 말까지 13만여 명 선을 유지하다가 2024년 말 11만2262명으로 2만 명가량이 빠져나갔다. 전체 인구 대비 청년 인구 비중은 2021년 21.03%였으나 2024년 17.66%로 뚝 떨어졌다. 청년 세대가 전주를 떠난 이유는 전국 지방 도시들이 겪는 공통된 문제와 다르지 않다. 양질의 일자리와 유망한 기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주시는 영화·영상 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된다면 연간 20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은 물론 7000개의 직·간접 일자리를 창출하고 200개 기업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시가 영화제를 열고 젊은 관객을 끌어모으려는 이유다.
 
  전주영화종합촬영소가 위치한 상림동 일대 10만㎡ 부지에는 가상현실(VR) 및 수중(水中) 촬영이 가능한 첨단 스튜디오가 들어설 예정이며, 전주 북부권 30여만㎡ 용지에는 〈반지의 제왕〉과 〈아바타〉를 촬영한 뉴질랜드 쿠뮤필름스튜디오(Kumeu Film Studios)가 직접 투자해 제2 스튜디오를 조성할 계획이다.
 
국내 주요 영화제는…
 
  전주국제영화제는 국내 영화제 중에서도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며,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중심의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국내 제1의 영화제답게 세계 3대 영화제 입상작들도 대다수 가져와 상영할 만큼 규모가 크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호러나 엽기, 미스터리 등 장르적 색채가 강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국내 유일, 아시아 유일의 음악 관련 영화제다. 영화와 음악을 매개로 영화 상영뿐 아니라 라이브 공연, 토크 콘서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이미 입소문이 나있다. 무주산골영화제는 말 그대로 깊은 산속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심야 상영의 낭만이 물씬 풍기는 영화제다.
 
  또한 DMZ국제다큐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디아스포라영화제 등은 각각 분단, 여성, 독립, 이주의 주제를 품고, 한국 영화제 지형에 깊이와 다양성을 더하고 있다.
 
  브라질 영화 〈계엄령의 기억〉
 
영화 〈계엄령의 기억〉 포스터.
  〈계엄령의 기억(원제 I’m Still Here)〉은 브라질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인 바우테르 살리스의 장편영화다. 138분 동안 이어졌는데 전반적인 스토리 전개가 12·3 계엄사태로 대통령이 파면된 대한민국의 현실을 연상시켰다. 이 작품은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았고 페르난다 토레스는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는 순식간에 끝났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박수를 쳤다. 유니스 역을 맡은 페르난다 토레스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내면에서 배어난 자제력과 폭력에 맞선 분노, 슬픔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포르투갈어를 처음 접한 기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 언어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프랑스어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과는 다른 색감의 독특한 발음과 음악적 리듬감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다 문득, 아프리카 서쪽의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카보베르데 출신의 가수 세자리아 에보라의 ‘아우센시아(Ausencia·부재)’라는 곡을 듣고 매료됐던 기억이 떠올랐다. 노래로 들었던 포르투갈어가 이제는 두 시간이 넘는 동안 줄곧 대사로 들리니, 그 감동이 다시금 밀려왔다.
 
 
  타락하거나 악랄하지도 못했지만…
 
  브라질은 1964년 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1985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기까지 군사독재를 경험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70년에서 1971년 사이는 군사정권과 이에 맞서는 세력이 거세게 충돌하던 때로, 정권은 반정부 세력에 대해 불법 체포 및 구금, 잔인한 고문, 암매장 등 무자비한 탄압을 일삼았다고 한다. 한국의 작년 12·3계엄 상황과는 맞지 않았다. 영화 속 브라질 군부의 모습은 한국의 영화 〈남산의 부장들〉처럼 비정하거나 타락하거나 악랄하지도 못했지만, 그런대로 끔찍하고 잔인했다. 무엇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여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또다른 브라질 영화인 〈다시, 민주주의로: 브라질 대선의 기록(At This Moment, in the Na tion’s Sky)〉도 봤다. 2022년 10월 30일 치러진 브라질 대선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당시 룰라 대통령과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득표율 격차가 단 1.8%에 불과했던 치열한 선거 국면과 그에 따른 정치적 파장을 밀도 있게 따라간다.
 
  다소 지루해 주위를 둘러보니 꾸벅꾸벅 조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106분이 느리고 길게 느껴졌으며 소란스러웠다. ‘극우’로 불리는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이 선거 부정을 외치며 의회와 대법원을 점거한 모습은 한국의 부정선거 논란이나 서울서부지법에서 벌어진 소동을 떠올리게 하려는 영화제 측의 의도된 암시라고 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일까. 기자로서의 직업병을 영화를 보면서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배창호 감독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영화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포스터.
  이 영화의 원작이 되는 박완서의 소설을 읽었지만 영화는 처음이었다. 특별히 이번 전주의 ‘영광’을 위해 최초로 4K 디지털로 복원된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에서 안성기·한진희·송재호·유지인·이미숙의 꽃다운 시절과 만나는 기쁨 외에, 전주에 내려온 거장 배창호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이 120 분짜리 영화는 인간 불행의 막장 실험극이다. 6·25가 발발하자 수지(유지인 분)는 피란길에 울며 보채는 동생 오목이(이미숙)를 목에 노리개 비슷한 것을 걸어 주고서는 버리고 만다. 열 살도 안 된 아이에게 왜 동생을 불행에 빠뜨렸느냐를 따질 필요는 없다. 동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아비규환 속에서 어린아이가 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내팽개친다고 누가 손가락질하겠는가. 그 노리개는 박을 반으로 쪼개 만든 은표주박으로, 자매의 피를 상징하듯 본래 한 쌍이어야 했다. 오목이는 그 그릇에 혈육의 정을 품으며, ‘볼록이’를 찾으려는 희망을 품고 남편의 폭력 속에서도 버텼는지 모른다.
 
  세월이 흘러 수지는 부자인 인제(한진희)를 만나 결혼하지만 늘 마음 한켠에 있는 동생에 대한 죄의식에 짓눌려 산다. 수지와 인제의 결혼은 이미 파탄 난 지 오래다.
 
  언니에게 버림받았다는 의식 속에 고아원에서 자란 오목이는 일환(안성기)을 만나 결혼하지만, 결혼 전 인제가 성폭행을 하는 바람에 아이를 갖게 된다. 따지고 보면 형부의 아이를 가진 셈이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일환은 첫아이가 인제의 씨앗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 오목이에게 폭력을 일삼는다. 일환 역시 불행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아간다.
 
  서로 다른 공간,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두 자매와 인제, 일환은 우연히 만나거나 헤어지지만 똑같은 비극이 흐르는 불행의 강을 건넌다. 문학과 영화는 장르가 다르지만 모든 인간 불행을 가장 극적으로 다룬다. 그런 삶의 모순과 맞닥뜨리려고 우리는 컴컴한 영화관 속에서 배창호가 다루는 불행의 저열한 방식을 체험한다. 40년 전 배창호가 6·25전쟁을 매개로 탐색한 불행의 굴레를 탄식하며 기자도 관객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때로 감정의 곡선이 너무 요란스럽거나 예고도 없이 질주해 브레이크를 꽉 밟으려고 애썼지만, 배창호 감독의 의도대로 관객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다가 말다가를 반복하며 집단 현기증을 경험했으리라.
 
 
  낯선 감동의 호주 영화 〈이 생의 몸〉
 
영화 〈이 생의 몸〉 포스터.
  호주의 아방가르드 영화감독인 코린 캔트릴(1928~2025년)의 일생을 담은 실험극 〈이 생의 몸(In This Life’s Body)〉을 보았다. 영화는 1984년 제작됐는데, 그러고 보니 우연치고는 묘하게도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와 같은 해다.
 
  코린 캔트릴 감독은 때로 ‘그녀’라는 3인칭으로, 때로 ‘나’라는 1인칭으로 자신의 거울(사진) 앞에 관객들을 일렬로 세웠다. 어린 시절의 성장과 여행, 만남과 헤어짐, 성적(性的)인 진정성에 대한 추구, 모성과 질병 및 회복을 겪는 자신의 몸과 영혼을 탐구했다. 캔트릴은 1983년 암을 발견했는데, 기적적으로 이후 41년을 더 살다 올해 2월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작품이 먼 나라 전주에서 상영되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으리라.
 
  이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내한한 호주의 영화 평론가 에이드리언 마틴은 “‘이 생의 몸’이라는 그릇은 단 하나의 정체성이나 운명에 국한되지 않고 오히려 불연속적이고 유동적이며, 끊임없이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을 호주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주저 없이 꼽았다.
 

  영화는 단순히 수천 장의 스틸 사진만으로 2시간 27분 동안 구성되며, 코린 캔트릴이 직접 내레이션을 맡아 1983년까지의 삶을 ‘들리는 자서전’처럼 고백한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반복되는 수미상관 구조 속에서, 그녀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정체성과 현재의 자아 사이의 차이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도 자기 성찰을 유도하며, 앞으로의 삶에 대해 스스로 묻게 만든다. 백인이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어두운 피부와 유대계 혈통으로 인해 차별을 겪었고, 독특한 부모 밑에서 자란 그녀는 부모의 영향과 상처를 되짚는다. 부모를 거부하고 싶지만 결국 자신을 형성한 뿌리를 인정하는 모습은 복합적 감정을 드러낸다.
 
  그녀의 두번째 남편이자 동반자 아터는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다양한 나라에서의 체류와 경험은 그녀만의 철학과 감독으로서의 기반을 마련했다. 고등학교 시절 여교장이 제시한 여성 전문가상(像)의 이미지와, 아버지가 그녀의 여권 발급을 막으려 한 행동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어려움을 뚫고 19세에 유럽으로 떠난 후의 자유롭고도 험난했던 여정은 그녀의 내면을 깊게 만들었다. 자폐 진단을 받은 둘째 아들이 말을 하게 되는 감동적인 이야기와, 헌신을 다하는 모성과 열정적인 감독으로서의 삶을 병행하는 모습은 큰 울림을 준다.
 
  코린 캔트릴의 내레이션 중 기억에 남는 문장을 적어 보았다.
 
  〈-우리는 사진 속 우리의 아이들이 너무나도 완벽하고 사랑스러워, 우리의 존재로 그 그림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기쁘게 한 이유는, 그들 안에서 나 자신을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게 없는 무언가였기 때문일까?
 
  -사랑의 시학 속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완벽함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완벽함을 경험했다.
 
  -이 전혀 다른 아버지와 어머니의 두 본성이 내 안에 있다. 나는 두 배로 축복받은 것일까, 아니면 두 가지의 짐, 그리고 그 갈등이라는 짐을 짊어진 것일까?
 
  -내 얼굴은 내면의 슬픔과 억지 미소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터 같다.
 
  -나는 여전히 ‘이 생의 몸’으로 나 자신을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느낀다.〉

 
 
  성 정체성을 다룬 〈에디 앨리스: 리버스〉
 
영화 〈에디 앨리스: 리버스〉의 한 장면. 왼쪽이 에디, 오른쪽이 앨리스다.
  김일란 감독의 장편 다큐 영화인 〈에디 앨리스: 리버스(Edhi Alice: REVERSE)〉를 보았다. 130분 동안 숨죽이며 남성의 몸으로부터 여성의 몸을 스스로 택한 에디와 앨리스가 겪은 내면의 전쟁을 지켜보았다.
 
  2020년 대한민국에서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겪은 차별 사례를 배경으로, 선형적 시간을 탈피해 순환 구조로 이야기를 풀며, 편집 방식은 수술 경험과 맞물려 영화 내에서 유사성을 형성한다.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정체성과 삶을 보다 다양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감각하고 상상하길 제안한다.
 
  에디는 자신의 몸과 성 정체성 혼란을 이겨 내기 위해 태국으로 가서 성별수술(MTF)을 받고 돌아와 생전 처음 대중목욕탕에 몸을 담근다. 마찬가지로 앨리스 역시 남성으로 결혼한 뒤 여성의 몸을 갖게 된 사연, 자신의 몸을 더 이해하기 위해 발레를 배운 일을 얘기한다. 두 사람, 두 여성의 이야기가 일정한 편집 속도와 리듬에 따라 한 편의 극으로 완성됐다. 쫓고 쫓기는 추격 신(scene)이나 짧은 숏으로 이뤄진 빠른 편집은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나태하고 절제 없는 장면의 반복도 없다. 성전환자 두 사람의 고뇌와 절망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희망이란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잔잔하게 물결쳤다. 논쟁의 여지가 없도록 영화는 복잡한 대립 구조를 친절하게 피해 갔다.
 
  기자는 영화를 보며 문득 깨닫게 되었다. 두 사람은 사랑을 하거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며, 사랑 외에는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전주가 그리워
 
  영화를 보는 내내 스크린 속의 삶을 동일시하며 불쾌한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했고, 비참한 기분과 후회가 몰려들기도 했으며, 펑펑 울기도 했다. 수천만 달러짜리 블록버스터가 절대 담아내지 못하는, 아니 담아낼 수 없는 색다른 침묵과 호기심 가득한 물음, 두세 번 봐야 알 것 같은 모호한 해석, 뒤에서 들리는 낮은 톤의 두드림, 낯선 이미지, 기괴한 상황의 연속을 영화 도시 전주에서 만났다.
 
  전주를 떠나온 지 며칠이 지났는데 다시 전주가 그리워졌다. 아니,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독립영화가 품고 있는 자유의 결이 자꾸만 떠오른다. 스크린 밖의 현실은 혼란과 갈등, 이기심과 탐욕으로 가득 차있는 듯 보이기에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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