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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777년 만에 이뤄진 교황의 역사적인 몽골 방문

“교황의 몽골 방문, 러키세븐 3개인 777년이 걸려”

글 : 류종수  연세대 보건대학원 겸임교수·서울의과학연구소(SCL Healthcare Group)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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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 인구 330만 명 중 가톨릭 신자는 인구의 1%도 되지 않는 1450명 남짓
⊙ “교황님의 몽골 방문은 베이징과의 우호적 관계 발전의 촉매 역할”(몽골 거주 외국인 가톨릭 성직자)
⊙ 중국 정부, 선빈 주교를 상하이 교구장에 바티칸의 동의 없이 임명… 바티칸의 권위와 전 세계 천주교인들을 무시하는 도전
⊙ 몽골 국립칭기즈칸박물관, 작년 10월 11일 개관… 외국 원조 없이 自力으로
⊙ “한국인과 몽골인들은 열정의 기운과 흥(興)도 닮아. 몽고점이 동일성의 증거”

柳鐘守
1962년생. 연세대 보건학 박사 / 美뉴욕플러싱 YMCA 이사장, 뉴욕가톨릭재단 부총장, 유엔재단 새천년개발사업 고문, 現 바레인왕국 국가보건의료최고위원회 고문, 남미개발은행(IDB) 남미국가 진단검사역량 강화사업 수석책임역, 서울의과학연구소(SCL) 국제사업 고문, 연세대 보건대학원 초빙교수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9월 3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의 스테프 아레나에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도착하자, 많은 신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경이롭지 않습니까? 러키세븐 3개인 777년의 세월을 기다렸습니다!”
 
  칭기즈칸의 손자인 몽골제국의 세 번째 황제 귀위크칸이 제180대 로마 교황 인노첸시오 4세(재위 1243~1254)에게 답장을 보냈을 때가 1246년이었다.
 
  그러니까 한 해 전인 1245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귀위크칸에게 ‘유럽의 그리스도교 왕국들을 위협하거나 침략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기독교로 개종을 권하며, 교황권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친서와 함께 플라노 카르피니의 요한 신부를 사절단으로 보냈던 것이다. (플라노 드 카르피니, 윌리엄 루브룩 신부가 쓴 《몽골 제국 기행》이 2015년 국내 번역 출판되었다.)
 
  귀위크칸은 꼭 1년을 기다려 교황의 요구에 반박하는 답장을 보내왔다.
 
  “신(神)의 도움이 없이 인간의 힘만으로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해가 뜨는 곳에서 해가 지는 곳까지 모든 땅이 우리에게 정복되었으므로 이것이야말로 신의 뜻이다. 로마는 당장 몽골 제국에 항복하고, 교황을 비롯한 모든 영공 또한 나에게 복종하라.”
 
  페르시아어로 쓰인 귀위크칸의 서한은 현재 바티칸 국가문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 사본 역시 몽골 칭기즈칸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지난 9월 1일(현지시각)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가 4박 5일 일정으로 몽골을 찾았다. 777년 만에 이뤄진 역사적 순간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몽골 울란바토르의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도착해 바트뭉크 바트체첵 몽골 외무장관의 영접을 받았다. 몽골 인구 330만 명 중 가톨릭 신자는 인구의 1%도 되지 않는 1450명 남짓이다. 역대 교황 최초의 몽골 방문이었다. 호사가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몽골을 찾은 이유에 대해 설왕설래했지만 로마와 몽골 사이에 777년의 세월이 있음에 놀라워하는 반응이었다.
 
 
  바티칸은 베이징에 상주대표부 설치 희망
 
프란치스코 교황과 우흐나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이 9월 2일 울란바토르 수흐바토르 광장에서 몽골 전통복을 입은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유럽에서 내륙의 몽골을 방문하려면 러시아 상공을 통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만큼 비행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이번 교황의 몽골 방문은 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푸틴 대통령이 국제사법재판소에 범죄자로 체포 대상이 된 상황에서 교황의 전용기는 중국 하늘 길을 택했다. 중국 상공을 지나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중국인에게 안부 메시지를 보냈다. 베이징 정부 또한 유화적인 메시지로 화답했다.
 
  바티칸 외교 활동을 잘 아는 몽골 거주 한 외국인 가톨릭 성직자는 “교황님의 몽골 방문은 베이징과의 우호적 관계 발전의 촉매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했다. 바티칸 정부는 베이징에 바티칸 상주대표부 설치를 희망하고 있기에, 중국에 관련한 표현들을 가급적 우호적이고, 완곡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예컨대 중국 정부가 천주교 신자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해달라는 표현 대신 중국 신자들에게 보내는 격려의 의미를 담아 “좋은 크리스천이자 좋은 시민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반응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작년 11월 로마 바티칸과 협의 없이 난창시의 5개 교구를 통합해 장시(江西) 교구를 설립하고 지오반니 펑 웨이자오 주교를 이 교구 보좌주교로 임명한 바 있다. 지난 4월에도 중국은 중국 천주교 주교단의 선빈 주석을 상하이 교구 주교로 임명을 강행했다.
 
  익명의 한국인 가톨릭 선교사는 바티칸의 비둘기파에 대한 우려를 다음과 같이 에둘러 표현했다.
 
  “현재 바티칸의 제2인자인 국무원장 피에트로 폴리나 추기경은 중국과 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대한 유화적인 정책을 지지하는 비둘기파들은 중국 정부가 교황청의 주교 임명권을 무시하고, 임명한 선빈 주교를 우선은 인정해주자는 쪽입니다.”
 
 
  “중국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교회와 바티칸만 따르는 지하교회의 갈등”
 
지난 9월 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몽골 사목방문 마지막 일정으로 울란바토르의 ‘자비의 집’을 찾았다. 전통의상을 입은 몽골 어린이가 교황에게 환영 꽃다발을 전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이는 2018년 교황청과 중국이 체결한 ‘주교 임명에 대한 잠정 협정’에서 정한 주교 임명권과 교구 설립의 최종 결정권이 바티칸에 있다는 합의를 위반한 것이다. 중국 정부 기관인 ‘중국주교 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고, 장쑤성 하이먼 교구장을 지낸 중국 가톨릭의 떠오르는 별인 선빈 주교를 상하이 교구장에 바티칸의 동의 없이 임명한 것은 바티칸의 권위와 전 세계 천주교인들을 무시하는 도전이었다. 계속된 한국인 가톨릭 선교사의 말이다.
 
  “중국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교회와 바티칸만을 따르는 지하교회의 갈등이 심각합니다. 한편으론 중국 정부의 지하교회 탄압이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적인 면도 있지요. 천주교회는 박해와 탄압과 순교 속에서도 신앙의 빛과 구원의 은총을 구현해내었습니다.”
 
  로마 바티칸 교황청은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대만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정부다. 세계에서 대만과 정상적인 국가 간 수교관계를 유지 중인 13개 나라 중 하나다. 심지어 이 중 7개국이 남미에 위치한 가톨릭 신앙 국가들이다.
 
  중국 정부의 정책은 ‘하나의 중국’이다. 로마 바티칸이 대만과의 수교관계를 단절하고, 중국과 외교관계를 만들면 대만의 중국 편입이 수월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난 9월 3일 몽골에서 신축된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교황이 미사를 집전했다. 한국과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온 각국 주교단이 함께 자리했다.
 
  이날 약 300여 명의 대만 가톨릭 신자들이 경기장을 찾아 자국 깃발과 바티칸 깃발을 흔들며 “비바 파파!”를 연신 외쳤다.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이들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때의 두려운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신앙적 기둥인 바티칸만은 중국의 세속적인 영향력에 편입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중국은 바티칸과의 국교정상화나 베이징 내 상주대표부 설치를 요청할 때마다 대만과의 국교 단절을 주장해왔다.
 
 
  “새로운 정치와 행정수도 건립 추진 중”
 
현 몽골국립의대 총장인 쿠렐바탈 박사.
  몽골 보건부 장관을 역임하고 현 몽골국립의대 총장이자 칭기즈칸박물관 건설의 막후 실력자인 쿠렐바탈 박사는 몽골 정부가 주최한 교황 방문 행사에 이경률 연세대 총동창회장과 길태기 변호사(법률법인 광장 대표), 필자를 초대했다. 쿠렐바탈 총장은 이 자리에서 몽골의 부흥(復興)을 이야기했다.
 
  “인간의 짧은 시야로는 도도한 역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몽골 민족의 조상은 하늘의 도움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위대한 제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몽골은 다른 국가에 제압되고, 분단되고, 점령되었죠. 이젠 굴레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민주국가로 부흥해야 합니다.”
 
  쿠렐바탈 총장은 잠시 한국 손님들을 의식하며 “한국인들이 훌륭한 지도자와 함께 불굴의 노력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듯이, 몽골은 엄청난 자원이 있는 나라다. 한국 및 제3의 이웃 국가들과 협력해 몽골의 기적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쿠렐바탈 총장은 우흐나 후렐수흐 대통령과는 막역한 사이라고 한다. 국가 리딩 그룹의 주요 멤버인 그는 칭기즈칸을 국가 혁신과 부강한 몽골 만들기의 정신적인 주인공으로 부각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몽골 대통령은 새 몽골 건설을 위해 칭기즈칸의 고향에 정치와 행정수도 건립을 결정했다.
 
  수도인 울란바토르의 집중 해소와 경제 다변화를 위해 울란바토르 남쪽 50km에 위치한 신공항 배후 지역인 쿠싱밸리 개발을 추진 중이다. 쿠싱밸리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해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과학·금융·의료·대학·관광 기능이 복합된 인구 15만 명 규모의 신도시로 개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또 정부부처 이전도 추진할 예정이다
 
  오르혼밸리는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360km 떨어진 곳이다. 옛 수도 카라코룸이 위치해 있다. 몽골은 이곳에 신도시를 지으려 하고 있다. 쿠렐바탈 총장의 말이다.
 
  “칭기즈칸이 탄생한 고향에 새로이 만들어질 정치 및 행정수도에 80만 명 정도의 주민들이 거주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울란바토르는 구(舊)소련에 의해 인구 50만 명 정도가 살 수 있는 도시로 설계되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200만 명 이상이 살며, 교통체증과 대기오염으로 정상적인 수도의 기능을 하기 어렵습니다.
 
  울란바토르에서 서북쪽으로 360km 떨어진 거리의 칭기즈칸의 위대한 삶이 만들어진 지역에서, 칭기즈칸 웅지(雄志)를 이어받은 21세기 동북아를 밝히는 몽골의 정치와 행정 수도를 만들 것입니다. 공항 건설을 위한 예비작업이 시작되었고, 대통령궁과 의회를 건설하는 설계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몽골 정부가 칭기즈칸박물관을 건립한 이유는…

 
  몽골 국립칭기즈칸박물관은 지난 2019년 첫 삽을 떠 작년 10월 11일 신축 개관했다. 울란바토르의 정중앙에 똬리를 튼 정부청사 인근에 위치해 있다.
 
  몽골의 대표 유물 1만3000여 점을 전시 중이다. 현재 몽골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 칭기즈칸박물관은 칭기즈칸을 포함한 거대한 스텝초원 지역에서 활약한 부족들과 왕조들의 역사와 혼(魂)을 담고 있다. 외국 원조를 받지 않고, 몽골 정부와 몽골인들의 힘만으로 건립했다.
 
  “칭기즈칸박물관은 세계사에서 위대한 정복자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칭기즈칸의 리더십과 탁월한 성공의 기록과 유물들을 포함해 5세기에 활약했던 훈족의 유물들까지 위대한 스토리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헝가리에서 중국까지 펼쳐진 스텝초원 지역에서 활약한 막강했던 유목민족의 이야기 말이죠.”
 
  몽골인들은 중국과 소련에 의해 작은 나라로 축소된 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청(淸)나라가 중국 중원을 지배할 무렵 몽골 역사와 문화를 혹독하게 탄압하는 정책을 폈다. 그런 이유에서 훗날 몽골인들은 ‘청왕조’라 부르지 않고, ‘만주인들’이라 칭한다. 쿠렐바탈 총장의 계속된 말이다.
 
  “속도전으로 칭기즈칸박물관을 건설했지만, 이탈리아의 대리석들과 유럽의 건축자재들을 사용하고, 몽골의 국보급 조각가들과 화가들이 전력을 다해 일했습니다. 전시품들을 제작하고 복원하는 데 사용된 수천 kg의 순금들은 몽골에서 특별 생산했습니다. 코로나19로 국제여행이 중단된 덕분에 오히려 박물관을 신속하게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몽골 공항과 병원 및 상수도 시스템 등 다수의 공공시설이 외국 원조로 건설되었지만, 몽골 민족의 자긍심을 나타내는 칭기즈칸박물관만은 100% 몽골인 자력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일치된 결단이 있었다.
 
  “몽골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칭기즈칸뿐만 아니라 몽골의 훌륭한 예술품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한국어 및 영어 통역 안내도 있습니다. 전시장 내 유물 보관 케이스들과 습도 및 온도 조절 장치들은 한국에서 수입해왔습니다. 지난번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할 당시 환영 만찬을 칭기즈칸박물관에서 가졌죠. 마크롱 대통령도 박물관의 디자인과 품격에 감탄했습니다.”
 
 
  “러·중에 둘러싸인 몽골, ‘제3의 이웃 나라’와의 관계 강화 노력”
 
바트뭉크 바트체첵 몽골 외무장관과 류종수 박사.
  바트뭉크 바트체첵 몽골 외무장관은 두 아들과 이탈리아에서 대학에 다니는 딸을 가진 여성 장관이다. ‘제3의 이웃 국가들’과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넓혀 가는 데 가장 앞장서는 정치인 출신 장관이다.
 
  ― 제3의 이웃 국가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러시아와 중국에 둘러싸인 몽골은 ‘제3의 이웃 나라’와의 관계 강화를 위한 노력을 꾸준히 전략적으로 해오고 있습니다. 몽골은 러·중 두 나라를 가장 중시하고, 두 나라 사이에서 중립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3의 국가들과의 협력으로 두 이웃의 영향력이 안정적이고 균형 있게 몽골에 미치도록 해야겠지요. 강대국 사이에 끼인 약소국은 타국과의 갈등을 미연에 예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러·중과 신뢰와 우의를 늘 나누는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과 미국, 일본, 독일, 캐나다, 프랑스 등과의 교류와 협력으로 몽골의 경제력을 배양하고, 이 지역의 평화와 국가들의 공동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활동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지난 2월에 몽골 총리로서는 10년 만에 어용에르덴 롭상남스라이 총리가 바트뭉크 장관과 함께 몽골 산업계 대표단을 인솔해 한국을 찾아 고맙게도 2030년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지지 선언을 했다. 경제통상 발전과 희소금속 및 광물 공동 개발, 관광산업 인프라 확대 등 여러 가지 산업 분야에서 전략적인 협력을 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해 8월 한국·몽골 양국의 광물 자원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희소금속협력센터를 설립하기로 합의하고 올해 5월 센터 조성 사업을 시작한 상태다. 바트뭉크 바트체첵 장관의 말이다.
 
  “지난 5월에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해 양국이 에너지 연대를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몽골은 세계 12번째로 많은 우라늄 광산을 소유하고 있고, 프랑스 에너지 회사들은 1997년부터 몽골과 합작해 우라늄 탐사 및 개발 사업들을 전개해오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탄소 중립 에너지 기술을 지닌 세계적인 리딩 국가입니다. 몽골은 프랑스의 도움으로 탄소 중립 신재생 에너지와 신에너지 기술들을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한국 내 몽골인 근로자 5만 명… 장기고용, 재고용 원해
 
팝페라 가수 임형주는 교황 집전 미사의 엔딩 프로그램을 맡았다. 무대에서 ‘아베마리아’ ‘유 레이즈 미 업’ ‘생명의 양식’ 총 3곡을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 미국과도 자원 협력을 강화하고 있더군요.
 
  “지난 8월 초 저는 어용에르덴 총리와 미국을 방문해 해리스 부통령과 회담을 가졌습니다. 블링컨 국무장관, 오스틴 국방장관 등과도 만나 양국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발전시키기로 했지요.
 
  몽골이 많이 가진 희토류 개발과 자원 협력에 대한 합의도 있었습니다. 1921년 소련에 의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공산국가가 된 몽골이 이제는 민주주의와 신자본주의 여정을 미국과 함께 나아가는 전략적 파트너 국가가 되었습니다.”
 
  ― 한국에서 몽골인 근로자들이 많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인과 몽골인들은 신체적·정신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아요. 열정의 기운과 흥(興)도 닮았지요. 몽고점이 동일성의 증거죠. 한국에 약 5만 명 정도의 몽골인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제가 받는 정보에 의하면 우리 몽골 일꾼들이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한국의 고용주들이 법적으로 허용되면 재고용이나 장기고용의 기회를 가지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합니다. 한국 정부가 외국 노동 인력을 국가별로 제한된 숫자대로 배당하고 있기에, 인구가 350만 명밖에 안 되는 몽골이 받을 수 있는 쿼터는 무척 제한적입니다.
 
  한국에서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기에, 몽골이 호주 정부와 개발한 교육과 노동을 병행하는 프로그램 모델을 한국과 몽골 간의, 몽골 젊은 인력 송출 프로그램으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 여성 외무장관으로서 가정과 국가 업무를 어떻게 균형 있게 하실 수 있나요.
 
  “한때 레슬링 챔피언이자 지금은 인쇄업을 하는 남편이 든든하게 외조를 잘하고 있어 고마워요. 해외 출장이 너무 많아 가끔 힘이 들지만 가족 채팅방에서 기운을 차리죠. 큰아들은 아버지의 사업을 도우는데 곧 결혼합니다. 고등학생인 둘째는 아빠를 닮아 장신에 거구입니다. 스포츠를 좋아해 유도 특기생으로 일본고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예정입니다. 딸은 이태리 대학에서 공부 중인데 대학원에서 엔터테인먼트 경영을 전공하려 합니다. 한국 음식과 한국 문화 콘텐츠를 무척 좋아해 한국의 대학원으로 유학가는 것도 고려하고 있죠.
 
  가족들은 다른 몽골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말 타기를 좋아합니다. 도시에 사는 몽골 가족의 절반은 시골에 농장을 가지고 말들을 기르고 있습니다. 유목민에다 기마(騎馬)민족의 후손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21세기 몽골은 다를 것”
 
프란치스코 교황이 9월 1일(현지시각) 몽골 울란바토르의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도착해 바트뭉크 바트체첵 몽골 외무장관의 영접을 받고 있다. 역대 교황 최초로 몽골을 방문했다. 사진=뉴시스
  한반도 면적의 7배나 되는 몽골은 약 350만 명의 몽골계 민족이 살고 있기에, 말을 타고 달릴 수 있는 평원이 많다. 한반도 6배 크기의 내몽골은 중국 영토인데 약 2200만 명의 주민 중 18% 정도가 몽골계 주민이다. 반면 한족이 80%나 된다.
 
  바트뭉크 바트체첵 장관은 “21세기 몽골은 다를 것”이라며 “작지만 강한 국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몽골은 17세기에서 20세기까지 한 발자국도 능동적으로 나가기가 어려운 암울한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몽골은 다를 겁니다. 생명의 땅에 가득한 정기(精氣)로 작지만 강한 국가로 만들 것입니다.
 
  부처의 가르침 중에 ‘지혜로운 자는 베푸는 것을 기뻐한다’는 말이 있어요. 몽골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한국을 비롯한 제3의 이웃들의 국민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잘 보호하겠습니다. 세계인들이 힐링할 수 있는 최고의 자연으로 함께 나누겠습니다.”
 
  작은 키에 부드러움과 야무짐을 겸비한 몽골 외무장관과 만나면서 칭기즈칸 제국의 여장군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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