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투 간부들의 육성 담긴 녹음파일·녹취록과 펀드 운용보고서 입수
⊙ 前 PB센터장 “(해당 펀드) 내가 만들었다” → ‘NH투자증권이 설계’로 말 바꿔
⊙ 270억 빼돌렸다고 의심받는 화장품 업체의 실체
⊙ 김○○ 전 PB센터장과 최○○ 팝펀딩 간부에게 반론 요청했지만…
⊙ 팝펀딩 대표 페이스북엔 천경득·제윤경 등 與圈 인사 흔적 보여
⊙ 前 PB센터장 “(해당 펀드) 내가 만들었다” → ‘NH투자증권이 설계’로 말 바꿔
⊙ 270억 빼돌렸다고 의심받는 화장품 업체의 실체
⊙ 김○○ 전 PB센터장과 최○○ 팝펀딩 간부에게 반론 요청했지만…
⊙ 팝펀딩 대표 페이스북엔 천경득·제윤경 등 與圈 인사 흔적 보여
“한국투자증권은… 팝펀딩 관련 사모펀드를 단독 판매하였다. 이 사모펀드는 올해 1월 21일부터 매월 차례대로 환매되어야 함에도 환매 중단이 계속되고 있다. 환매 연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피해자들은 한국투자증권의 말만 믿고 기다렸지만, 지난해 말 금융감독원의 검사에서 팝펀딩의 사기 및 횡령 혐의가 밝혀져 성남지검에 수사 의뢰된 사실을 뉴스를 통해 인지하게 되었다.”(2020년 5월 20일)
팝펀딩 관련 사모펀드의 환매 중단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대책위’(대표 백영수)가 금감원에 제출한 진정서의 일부다.
피해자들에 의해 ‘한국투자증권 팝펀딩 관련 금융 사기’라고 이름 붙여진 이 사건은 ‘제2의 라임’으로 불리며 언론에 조금씩 그 실태가 보도되고 있다. 이 사건은 막대한 돈이 환매 중단돼 피해자를 양산했다는 점에서 ‘라임 사건’과 비슷하다. 피해 금액은 최소 270억원에서 최대 1300억원에 달할 것이란 얘기가 있다.
배경에 권력의 입김이 개입했다고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팝펀딩이 과거 ‘문재인·박원순 펀드’를 운용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가 팝펀딩이 주력(主力)으로 삼고 있는 동산(動産) 담보 대출 육성을 강조해온 점도 거론된다.
《월간조선》은 한국투자증권(이하 한투) 관계자들의 증언이 담긴 녹음파일과 펀드 운용보고서 등을 입수해 팝펀딩 사건이 뭔지 진행 과정과 실체를 알아봤다.
사건 이해하기 위한 개념 설명
‘팝펀딩’의 사업방식은 다소 복잡한데 이를 최대한 쉽고 간단하게 설명해보도록 한다. 팝펀딩은 홈쇼핑에 상품을 납품하는 납품 업체(이를 ‘벤더’ 또는 ‘차주’라고 함)를 투자자들에게 소개해주는 역할을 한다. 팝펀딩을 ‘P2P업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2P(Peer to Peer)란 쉽게 말해 ‘개인과 개인 간의 거래’란 의미를 담고 있다. 즉 팝펀딩은 기존 금융 대출이나 투자와 달리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업체와 투자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이번에 문제가 발생한 펀드의 대출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 팝펀딩은 홈쇼핑 판매 물품을 담보로 잡아 이들 납품 업체에 돈을 빌려준다. 이때 팝펀딩은 법적으로 직접 대출을 할 수 없어 ‘팝펀딩소셜대부’란 대출 목적의 자(子)회사를 설립했고, 이 회사를 통해 벤더에 대출을 해줬다. 이를 ‘동산(動産)담보대출’이라고 한다. 팝펀딩은 납품 업체가 홈쇼핑에 내보낼 상품을 보관할 수 있도록 전용 창고를 경기도 용인과 파주에 마련해두기도 했다.
몇몇 자산운용사는 팝펀딩이 업체로부터 확보한 물품 채권을 근거로 펀드 상품을 만들어 한투 등을 통해 판매해왔다. 펀드 모집 자금은 이 펀드의 투자자들로부터 조성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펀드 모집을 통한 대출이 이뤄질 경우, 벤더들은 제2금융권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펀드 투자자들은 연 5%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문턱도 낮다. 즉 신용도가 낮은 사람도 투자 대상(벤더)의 재무 상태와 투자 조건만 보고 쉽게 투자할 수 있다. 위험도(risk)는 높지만 고수익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팝펀딩 대출 실행에 문제 있다는 정황 발견”
자산운용사 ‘자비스’ ‘헤이스팅스’는 팝펀딩 관련 펀드 상품을 개발했다. 그렇게 출시된 펀드 상품이 ‘자비스팝펀딩홈쇼핑벤더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5·6호’(이하 자비스팝펀딩 5·6호) ‘헤이스팅스더드림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4~7호’(이하 헤이스팅스 4~7호)다. 이 펀드 상품 판매사는 모두 한투였다.
그런데 이 펀드들은 지난 1~2월, 만기가 됐음에도, 환매가 중단됐다. 본지가 입수한 〈자비스팝펀딩홈쇼핑벤더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제5호 운용보고서〉에는 홈쇼핑 납품 물품에 문제가 있었다고 기재돼 있다. 보고서의 일부다.
〈■ 담보물 내역 관련 참고 사항
현재 담보목록에는 각종 매체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해당 목적물에 대한 횡령 등의 정황이 있고 이러한 사유 등으로 해당 담보물 전체 또는 일부가 창고에 보관되어 있지 아니한 경우, 해당 차주 및 팝펀딩㈜, 팝펀딩소셜대부㈜로부터 추가 및 대체로 확보한 담보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약정된 담보물과 수량을 제공하지 않은 차주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 중이며 계속하여 추가 및 대체 담보물을 확보하려고 노력 중에 있습니다.
■ 사고의 발견
2019년 12월 26일 당사(자비스)가 본건 펀드의 대출금 상환이 계획대로 이행되지 않은 이유를 팝펀딩에 추궁하는 과정에서 팝펀딩의 대출 실행 및 담보 보관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정황을 발견하였고 팝펀딩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조사에 착수하였습니다.
■ 사고의 검토 및 대응
당사는 즉시 팝펀딩의 용인창고 및 파주창고를 방문하였고 전체 담보물품의 보관 위치 및 수량을 확인하려 했으나 팝펀딩의 비협조로 당사 자체적으로 확인 가능한 일부 담보물품을 찾아서 본건 펀드의 담보물임을 고지하고 이전을 금지하는 내용의 게시문을 부착하였습니다.〉
피해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물품에 대한 홈쇼핑 방영 계획조차 잡혀 있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보고서의 내용처럼 아예 물품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납품 업체의 경우, 회계감사 과정에서 부실이 발견된 사례도 있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팝펀딩은 이런 식의 부실이 계속 발생하자, 만기가 도래할 때마다 다른 펀드의 투자금으로 또 다른 펀드의 투자금 상환을 돌려막는 식으로 돈을 끌어다 썼다. 이는 다른 펀드에까지 영향을 끼쳐 자비스팝펀딩 5·6호를 비롯해 헤이스팅스 4~7호 등이 연쇄적으로 환매 중단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결국 사기펀드였다”
투자자들은 환매 중단 규모가 350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하는 반면, 주요 판매사였던 한투는 28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팝펀딩도 팝펀딩이지만 부실의 사실이 예고돼 있던 펀드를 판매한 한투에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다음은 피해자 대표 백영수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자비스팝펀딩 5호 펀드의 경우, 이 펀드가 설정되기도 전에 팝펀딩의 돌려막기로 270억원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당초 펀드와 연계된 상품들을 홈쇼핑에서 판매하겠다는 계획이 펀드 설정 과정에 포함돼 있었지만 실현된 게 없습니다. 결국 사기펀드였다는 얘기입니다.”
— 현재 행방이 묘연한 270억원은 어디로 갔다고 봅니까.
“팝펀딩이 한투 측에 한 해명에 따르면 모 화장품 업체가 횡령했다고 하는데, 아직 정확히 밝혀진 건 없습니다.”
— 그 과정에서 판매사인 한투는 어떤 조치를 취했습니까.
“한투는 자산운용사들의 운용 행위가 투자설명서에 나온 대로 자금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법령을 비롯한 계약 사항 등에 위배되지 않는지 감시·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위반 사항이 있는 경우 그 운용 행위의 철회 변경이나 시정(是正)을 요구해야 합니다. 제가 알기로 그런 조치는 없었습니다.”
— 한투도 손해를 봤을 거 아닙니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면서 모든 손해를 피해자들에게 전가(轉嫁)하고 있을 뿐입니다. 펀드가 운용되는 과정에서 한투는 수수료 장사를 했고요.”
— 문제가 된 펀드들이 한투의 특정 지점 한 군데에서만 판매됐다면서요.
“그 부분도 아주 이상합니다. 해당 상품들 모두 분당PB센터 한 곳에서만 판매됐습니다. 그렇게 수익성이 높은 펀드를 왜 한 곳에서만 취급했는지 의아합니다. 한투 분당PB센터장과 자산운용사, 그리고 팝펀딩과의 유착이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누가 문제의 펀드를 설계했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백씨가 언급한 한투 전(前) 분당PB센터장 김○○씨다. 김 전 센터장은 문제의 펀드에 깊게 관여했다고 의심받는 인물이다. 피해자 중 일부는 지난해 6월경, 김 센터장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원문 그대로 싣는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정말 오래간만에 상품에 대해 말씀 드리는 거 같습니다. ‘자비스 팝펀딩홈쇼핑벤더 펀드’입니다….
작년 3월 팝펀딩 / NH투자증권 등과 같이 이 상품을 만들면서 많은 검토와 시뮬을 통해 만들었고, 본사 상품 / 리스크 부서로부터도 4번의 걸쳐 혹독한 점검을 받았습니다
(팝펀딩 본사 / 동산담보물 보관 자체 창고(파주/용인) 등 상품/리스크 부서 직원 직접 방문 검사)
그리고 5월까지 총 16회의 걸쳐 상품을 설정하였고, 10회까지의 펀드가 평균 운영 180일, 연 7% 수준으로 조기 상환이 잘 되고 있으며, 현재도 6개 펀드가 운영 중입니다.
(중략)
또한 매번 회차별 차주들의 관리(6월 상품 9개사)도 사전에 확정을 하고 펀드 모집[매월 70~80억 수준(한도관리)]을 하여 꼼꼼하게 확인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홈쇼핑 매출 입금계좌도 직접 통제 등)
매월 한도가 있다 보니 매각도 저희 분당PB센터만 할 수 있습니다.(제가 만들어 우선권이 있습니다)
이제 이 상품은 분당PB센터의 시그니처 상품이 되었고 충분한 검증이 된 만큼 회장님께도 제가 안심하고 추천해 드립니다
(중략)
한국투자증권 김○○ 배상.〉
이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는 피해자 노모씨는 “(문자 메시지에는) 김 전 센터장이 ‘제가 만들어 우선권이 있다’고 썼다. 하지만 나중에 김 전 센터장은 ‘자기가 만든 적이 없다’는 식으로 말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기자는 이 피해자로부터 김 전 센터장의 음성이 담긴 파일을 구해 들어봤다. 이는 팝펀딩 관련 펀드의 문제가 심각해지자, 김 전 센터장과 피해자들이 한자리에서 만났을 때 녹음된 것이다. 녹음 날짜는 지난 4월 14일이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센터장은 펀드에 문제가 발생한 경위를 피해자들에게 설명했다. 녹음파일에 담긴 김 전 센터장과 피해자들 간의 문답이다.
〈■ 김○○: 2018년 3월 달에 1호 홈쇼핑펀드는 NH투자증권에서 100억을 가지고 설정했습니다. 같은 달에 저희 한국투자증권하고 NH투자증권이 2호를 같이 설정했습니다. 저희는 40억 정도 설정했고, 그쪽은 100억 정도 설정했습니다.
■ 피해자: NH투자증권이란 건 농협을 얘기하는 건가요.
■ 김○○: 네. 농협. NH투자증권부터 설정이 됐고요. 아까 얘기하셨는데 저희 쪽에 헤이스팅스 자산운용하고, 상품을 먼저 설계한 건 NH투자증권이 설계를 했습니다. NH투자증권 법인상품금융센터하고 헤이스팅스, 팝펀딩 세 군데에서 설정을 했고요. 수탁계좌는 NH농협은행에 있습니다. 그쪽에서 설계를 해서 만든 상품이고요. 운용사들은 각 상품들이 나오면 본사(本社)의 상품 부서나 큰 지점엔 상품 제안서를 보내줍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주식형 펀드든 그런 펀드들은, 사모펀드들은 대부분 그렇게 영업을 합니다. 운용사들이. 그렇게 가져온 펀드를 이제 운용사하고, 저희 지점도 마찬가지고 본사에 상품 부서가 있습니다. 상품 본부가 있고요. 거기에 상품선정위원회(상선위)가 있습니다. 상선위가 통과돼야지만 모든 상품을 팔 수가 있습니다. 그게 통과되지 않으면 팔 수가 없습니다.〉

문자 메시지에선 ‘자신이 만들었다’고 했지만…
김 전 센터장은 문자 메시지에선 문제의 펀드를 ‘자신이 만들었다’고 했지만, 위 녹취록에서는 만든 주체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녹음파일을 원문 그대로 풀어 의미가 약간 불분명한 느낌이 있지만, 대략 ‘NH투자증권이 먼저 설계했다’는 것으로 읽힌다.
피해자 중 한 명이 “자비스팝펀딩 5호 6호는 우리가 (돈을) 넣자마자 돌려막기가 시작됐는데…”라고 하자 김 전 센터장은 “그때는 다 몰랐던 거죠”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 “(지난) 1월 달부터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운용사가 저희 쪽에 통보해온 게 1월 달”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전까지는 저희도 몰랐다. 여러분이 오해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직원들 일부러 피신시켰다, 제가 직원 발령을 일부러 냈다고 말씀하시는데…”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즉 자비스와 헤이스팅스 등 자산운용사가 팝펀딩의 부실을 보고하기 전까지, 펀드가 어떻게 운용되고 있었는지 김 전 센터장 자신은 물론 한투도 몰랐다는 의미로 들린다.
피해자 고모씨는 지난 4월 21일 한국투자증권 직원 김모씨와 만났다. 이날 나눈 대화의 녹취록에서는 또 다른 정황이 발견된다. 펀드의 문제점을 한투 본사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요지의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는 김 전 센터장의 주장과는 다소 상반된다. 두 사람 간의 문답을 보자.
〈■ 고: 원래 이렇게 파십니까, 이런 물건 팔 때? 위험도는 전혀 보지 않고 그냥 그… 이렇게 혹할 만한 이야기만 해도, 하시니까 평소에도.
(중략)
■ 김: 아니요, 그렇지는 않아요, 선생님.
■ 고: 근데 왜 안 하셨냐고요. 전 그거 알고 싶어요. 난 정말 지인으로, 그리고 지금 ××× 제가 본사에서 까인 상품이라는 얘길 들었을 때도, 사실 지금 굉장히 놀랐어요. 김○○ 차장님 입에서 그걸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나올 거라는 생각 안 했어요.
■ 김: 아니, 그때 아니, 그니까 저는 말씀을 드리잖아요. 그때 본사에.
■ 고: 그걸 몰랐으니까 나한테 이렇게 팔았겠지.
■ 김: 아니요, 직원들은 알고 있었어요. 근데.
■ 고: 그걸 알면서도, 그걸 아는 분이 그렇게 믿음이 가시던가요, 그때? 지금 아직 아무것도 벌어지지 않은 상태의 일인 거예요. 애초에 위험성이 있었던 거잖아요. 그걸 알면서도 너무 믿어서 단지 네 번은.
■ 김: 네 번이 아니죠, 선생님.〉

“팝펀딩과 한투, 자산운용사 간의 共謀관계 수사해야”
백영수씨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백씨는 해당 펀드 상품을 판매했던 한투 분당PB센터 직원 김모씨(※위의 김씨와는 다른 인물)와의 대화 녹취록을 보여줬다.
〈■ 김: 그거는 저희가 뭐 만들려고 했는데, 본사에서 드롭됐어요.
■ 백영수: 으음.
■ 김: 네. 오히려 뭐 홈쇼핑 쪽으로 더 안전하게 본사에서는 보는 것 같고 저희는 이제 추가로 팝펀딩 쪽하고 한번 더 다른 쪽으로 이제 계획을 잡았었는데 뭐 본사에서 ‘아니다’라고 해서 뭐 연락을 못 하게 해가지고 그거는 드랍이 됐고, 홈쇼핑 쪽은 계속 이번에도 상선위 올라갔다는데 그냥 통과돼서 추가로 또 지금 나온 거거든요.〉
백영수씨는 이 녹취록에 담긴 대화의 취지에 대해 “분당PB센터가 직접 팝펀딩과 다른 상품을 계획했지만 본사의 반대로 드롭(drop·취소)됐다가 다시 또 다른 팝펀딩 관련 상품이 상선위에 올라가 통과됐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를 근거로 분당PB센터와 김 전 센터장도 펀드의 문제점을 사전에 인지(認知)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백씨는 “김 전 센터장은 사고가 난 이후 팝펀딩 대표를 한 번 만나봤다고 했지만 나는 사실이 아닌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백씨의 말이다.
“김 전 센터장 자신이 ‘팝펀딩 관련 상품을 만들었다’고 문자 메시지에 적지 않았습니까. 이는 팝펀딩과 김 전 센터장의 유착이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팝펀딩뿐 아니라 헤이스팅스의 경우, 한투 출신 직원들이 세운 자산운용사입니다. 그런 점에 비춰보아 이들은 사전에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검찰은 이들의 공모(共謀)관계에 초점을 둬 수사를 해야 합니다.”
“위험도 고지 안 해도 되나” “그 부분은 제가 잘못”
이 밖에도 피해자들은 펀드 상품이 고위험성을 갖고 있었음에도 그에 대한 고지(告知)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앞서 김씨와 고씨의 지난 4월 21일 자 녹취록에 그러한 정황이 잘 나타나 있다.
이날 한투 직원 김씨는 피해자 고씨에게 “선생님(고씨) 성향보다 제가 위험한 상품을 선생님한테 권해드린 건 맞아요”라고 했다. 그러자 고씨는 상품의 위험도에 대해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점을 김씨에게 따졌다. 이에 김씨는 이를 인정하는 듯한 말을 했다. 두 사람이 나눈 문답을 보자.
〈■ 고: 회사의 잘못인 거 아닙니까? 회사가 직원 제대로 교육 못 시킨 거잖아요.
■ 김: 예, 맞아요.
■ 고: 위험도에 대해서.
■ 김: 예, 그런 부분은 제가 잘못한 게 맞아요. 예, 예.
■ 고: 제대로, 제대로 설명하고 숙지시키라는.
■ 김: 예, 예.
■ 고: 너 실적 따야 되니까.
■ 김: 근데 선생님.
■ 고: 어떻게든 실적 따오라는 거 아니에요?
■ 김: 저는, 저는 이거 가지고 실적을 따려고 선생님한테 상품 판매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요.
(중략)
■ 고: 그래서 본인한테 익숙한 상품이면 위험도 고지 안 해도 돼요?
■ 김: 아니요, 그 부분은, 그 부분은 제가 잘못한 부분이 맞고요, 선생님.
■ 고: 잘못했으면 어떻게 책임지실 거냐고요.
■ 김: 그니까 지금 절충안이 아직 안 나왔잖아요.
■ 고: 그러면 김○○ 차장님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도 이 상품을 팔았을 거 아니에요?
■ 김: 예.
■ 고: 그 사람들도 김○○ 차장님처럼 위험도를 전혀 고지하지 않았습니까?
■ 김: 아니요. 그거는 직원들은 고지를 했겠죠.〉
이 외에도 피해자들의 증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올해 90세인 류모씨는 “여생이 얼마일지 모르는 90세 고령의 피해자를 ‘초고위험의 투자자’라고 임의로 서류를 날조하고 조작해 상품에 가입시켰다”고 주장했다. 류씨는 “이런 행위는 노후의 생명을 담보하는 악행으로 수수료와 실적에 눈이 먼 돈벌레나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초고위험의 투자자라는 것은 그만큼 위험성 높은 펀드 상품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의미다. 류씨는 한투가 이런 식으로 서류를 조작한 뒤 펀드 상품에 가입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등장한 고모씨는 “환매 연체가 되던 날 한투는 집 앞에 서류를 던져놨는데, 가입 당시에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위험이 가득한 설명과 투자 안내서였다”고 주장했다. 박모씨는 “펀드에 가입하려면 (투자자의 성향이) ‘고위험 투자 성향이어야 한다’며 위험 성향을 임의로 날조 변경했다”고도 했다. 이 증언들은 피해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이기에 향후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김 전 분당PB센터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지만,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 이 같은 환매 중단 사태에 대해 한투 관계자는 “팝펀딩의 문제점을 사전에 알았던 부분은 전혀 없다. 판매사로서 운용에 개입한다거나 관여할 수도 없다”며 “판매사로서 투자자 자금 회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70억원 사기당했다고 한 화장품 업체는?
행방이 묘연한 270억원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 전 센터장이 지난 4월 14일 피해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했던 말을 들어보자.
〈팝펀딩 측 얘기로는 W플러스라는 화장품 회사가 있습니다. 홈쇼핑에서 김○○(유명 여배우)를 모델로 화장품을 런칭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270억(또 다른 주장에 의하면 280억) 정도 대출 사기를 당했습니다. 팝펀딩 측이 그걸 메울려고, 넘어가려고 (하다가) 그 부분에 관해서 돌려막기가….〉
피해자 대다수는 이 화장품 회사에 대해 ‘처음 듣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녹음파일을 들어보면, 김 전 센터장이 이 화장품 회사에 대해 언급하지만 피해자들은 그에 대해 추궁하지 않는다. 이 화장품 회사에 대한 단서는 〈자비스팝펀딩홈쇼핑벤더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제6호 운용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보고서에는 팝펀딩 관련 펀드와 연계된 납품 업체들과 물품들이 언급돼 있는데, 그중 다수를 차지한 물품이 바로 화장품이었다. 확인 결과, 이 화장품을 제작한 회사는 ‘○○코스메틱’으로 모(母)회사는 ‘○○○○컴퍼니’였다. 해당 회사의 화장품 모델이 김 전 센터장이 말한 배우 김○○씨란 점도 이 회사가 문제의 270억원과 관련 있는 회사란 사실을 강하게 뒷받침했다.
이 업체의 실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을 법한 위치에 있는 건, 관련 보고서를 작성했던 자산운용사 ‘자비스’다.
자비스자산운용 대표 K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제의 화장품 업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검찰 조사 중인 사안이라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했다. 기자가 취재한 화장품 회사가 270억원과 관련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K씨는 이 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참고인 조사 시 검찰에서 문제의 화장품 회사와 270억원에 관심을 갖던가’라고 묻자 K씨는 “(검찰이) 처음엔 잘 모르다가 지금은 파고 있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김○○ 전 한투 분당PB센터장은 W화장품이라고 얘기했었다’고 하자 “우리 쪽에 그런 차주(납품 업체)는 없다”고 말했다.
K씨는 “(아마) 여러 납품 업체 중 어느 한 회사의 계열사로 보인다. 한 명이 여러 개의 업체를 갖고 있어 파악이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일단 피의자들이 기소가 돼야 구체적인 수사자료를 받을 수 있고, 그것을 통해 해당 화장품 회사가 어딘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K씨의 말로 미뤄보아 검찰 역시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팝펀딩이 흥행시킨 ‘문재인·박원순 펀드’
이제 팝펀딩에 대해 이야기해볼 차례다. 팝펀딩의 대표는 신현욱(48)씨다. 신현욱씨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네이버’로 잘 알려진 NHN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동남아사업팀장과 인터넷검색사업부장을 지냈다. 2005년 NHN을 그만두고 프랑스 인시아드(INSEAD)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았다. 신현욱 대표는 이 대학 수업 중 P2P 금융에 대해 처음 접했다고 한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당시 P2P 금융은 해외에서 선진 금융 모델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었다. 영국의 ‘조파(Zopa)’와 미국의 ‘프로스퍼(Prosper)’라는 회사가 잇달아 창업하고 벤처 캐피탈들에게 후한 평가를 받으면서 자금을 모집하는 등 인기를 얻고 있었던 것이다. 신 대표는 2009년 MBA를 마친 후 국내에 돌아와 새로운 사업을 타진 중에 주변에서 한번 해보라는 권유를 받아 P2P 금융사업을 해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중략)
“P2P 금융은 뒤집어보면 온라인 대출 중개가 됩니다. 이게 제도권 금융을 끼고 있지 않다 보니까 ‘사채’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일반인들은 무슨 명동 사채시장의 변종인 줄 알더라구요. 인터넷 사각지대에서 불법 대출업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펀드’를 출시하면서부터다. 박원순 펀드는 출시 사흘 만에 목표치인 38억8500만원을 채웠다. 이듬해 19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강기갑 통합진보당 의원도 펀드 모금에 나섰다. 강기갑 의원은 19대 국회의원 선거 운동을 위한 자금을 마련코자 3월 5일 낮 12시부터 팝펀딩을 통해 1억7000만원 모금에 나섰다. 이는 ‘강달프펀드’로 명명됐다.
천경득 전 靑 행정관과 신현욱 대표와의 ‘접점’
팝펀딩은 2012년과 2017년 대선(大選)에서 문재인 후보 관련 펀드를 내놓음으로써 업계에서 그 위상을 공고히 했다.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 한 경제 매체에 보도된 기사 중 일부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펀드 투자자들에게 7월 19일 원리금 상환을 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월 대선을 앞두고 자금 확보를 위해 문재인 펀드를 발행, 329억원을 모금 받았다. 문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 500억원가량을 선거자금으로 지출해 이 펀드로 모금한 금액이 전체 선거자금의 66%를 차지했다. …문재인 펀드 모집 및 운영을 담당한 P2P업체 ‘팝펀딩’과 문 대통령 캠프의 인연도 주목받고 있다. 이 업체는 2012년 문 대통령이 처음 대통령 선거에 나왔을 당시에도 선거펀드인 ‘담쟁이 펀드’를 진행, 300억원가량을 모은 적 있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우연히 신현욱 대표의 페이스북 계정에 들어가볼 수 있었다. 신 대표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천경득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과 제윤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천경득 전 행정관은 신현욱 대표가 써 올린 글에 직접 댓글을 달아주기도 했다. 천경득 전 행정관은 2017년 대선 기간 중 ‘더문캠’의 총무팀장으로, 문재인 펀드의 실무를 담당했었다.
천 전 행정관은 이 정부 내내 실세로 주목받기도 했다. 특히 유재수 사건과 관련해 구설에 오르내렸다. 전직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이모씨는 유재수 사건 재판에 출석해 “천경득 청와대 행정관이 두려워 초기 검찰 조사에서 제대로 진술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검찰 조사에서 “천 전 행정관은 문재인 캠프 인사담당이었고,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이었지만, ‘예산은 천경득이 가지고 있다’는 말도 있었고 예측할 수 없는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천 전 행정관의 ‘파워’가 얼마나 셌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제윤경 전 민주당 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 박원순 후보 선거캠프 부대변인을 지냈다. 천경득 전 행정관과 제윤경 전 의원은 각각 ‘문재인·박원순 펀드’라는 연결고리로 신현욱 대표와 인연을 맺은 걸로 추정된다.
한편 신현욱 대표는 2018년 2월, 한국P2P금융협회 2대 회장에 선출됐다가 내부 문제로 석 달 만에 사퇴한 적도 있다.
팝펀딩, 특혜받았나?
팝펀딩이 주력해온 동산담보대출은 문재인 대통령의 관심 사항이었다. 2018년 3월 13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기업이 보유한 채권과 각종 동산, 부채 재산권 등을 담보로 활용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비부동산 담보 활성화 방안도 속도감 있게 추진해주기 바란다”고 언급했다.
이후 정부의 동산금융 활성화에 대한 기조(基調)가 뚜렷해졌다. 같은 해 5월 23일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은 시화공단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중소기업 단체장 및 기업인을 대상으로 ‘동산금융 활성화 추진전략’을 강연했다. 최종구 당시 위원장은 “중소기업이 보다 원활하게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선 기업이 보유한 동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동산금융이 정착되면 창업, 중소기업이 보유한 600조원의 유·무형의 동산 자산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서 “향후 5년간 3만 개 기업이 동산금융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러한 정부 기조에 힘입어 팝펀딩도 주목을 받았다. 작년 11월,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팝펀딩의 경기도 파주 물류창고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은성수 위원장은 “팝펀딩을 시작으로 또 다른 동산금융 혁신사례가 은행권에서 탄생하길 바란다”며 “정부도 동산금융 활성화를 위해 동산담보법 개정, 동산담보 회수 지원기구 설치 등 인프라 구축 노력에 힘쓰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앞서 작년 3월, 팝펀딩은 IBK기업은행(이하 기업은행) 동산담보대출 ‘지정대리인’으로도 선정됐다. 지정대리인 제도는 금융회사가 핀테크(팝펀딩이 이에 해당) 기업에 예금, 대출 심사 등 금융회사의 고유 업무를 위탁해 핀테크 기업이 혁신적 금융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도록 최장 2년 동안 시범운영하는 제도다. 기업은행은 팝펀딩에 온라인 판매자의 재고자산 평가·보관 등의 업무를 위탁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출을 지원한다. 당시 기업은행은 총 100개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당 최대 5억원, 총 5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팝펀딩이 지정대리인으로 선정된 건 P2P 금융업체로서는 다소 파격’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피해자들, 형사고소 준비 중
피해자 중 일부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팝펀딩에 대한 정부의 특혜일 수 있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피해자 중 한 명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팝펀딩은 2019년 팝펀딩소셜대부를 통해 동산담보대출을 위한 투자자 모집에 나섰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피해자가 양산됐다”며 “팝펀딩이 P2P 업계에서 아무런 견제 없이 커나가는 과정에서 정부의 배려가 없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팝펀딩 이사직을 맡고 있는 최모씨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반론을 요청했다. 최씨에게 “통화가 어렵다면, 신현욱 대표와 직접 통화할 수 있도록 주선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그는 아무런 회신을 보내오지 않았다.
한편, 현재 피해자들은 한투 등을 상대로 형사고소를 준비 중이다. 사건을 담당한 구현주 변호사(법무법인 한누리)는 “팝펀딩의 경우, 제안서를 보면 어떤 회사에 어떻게 투자되는지 적혀 있지만 실제 대출은 이뤄졌는지, 상환은 제대로 됐는지 확실치 않은 게 많다”고 했다. 이어 “만약 한투가 이런 부분을 알고도 펀드를 판매했다면 사기 혐의가 적용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팝펀딩 관련 사모펀드의 환매 중단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대책위’(대표 백영수)가 금감원에 제출한 진정서의 일부다.
피해자들에 의해 ‘한국투자증권 팝펀딩 관련 금융 사기’라고 이름 붙여진 이 사건은 ‘제2의 라임’으로 불리며 언론에 조금씩 그 실태가 보도되고 있다. 이 사건은 막대한 돈이 환매 중단돼 피해자를 양산했다는 점에서 ‘라임 사건’과 비슷하다. 피해 금액은 최소 270억원에서 최대 1300억원에 달할 것이란 얘기가 있다.
배경에 권력의 입김이 개입했다고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팝펀딩이 과거 ‘문재인·박원순 펀드’를 운용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가 팝펀딩이 주력(主力)으로 삼고 있는 동산(動産) 담보 대출 육성을 강조해온 점도 거론된다.
《월간조선》은 한국투자증권(이하 한투) 관계자들의 증언이 담긴 녹음파일과 펀드 운용보고서 등을 입수해 팝펀딩 사건이 뭔지 진행 과정과 실체를 알아봤다.
사건 이해하기 위한 개념 설명
‘팝펀딩’의 사업방식은 다소 복잡한데 이를 최대한 쉽고 간단하게 설명해보도록 한다. 팝펀딩은 홈쇼핑에 상품을 납품하는 납품 업체(이를 ‘벤더’ 또는 ‘차주’라고 함)를 투자자들에게 소개해주는 역할을 한다. 팝펀딩을 ‘P2P업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2P(Peer to Peer)란 쉽게 말해 ‘개인과 개인 간의 거래’란 의미를 담고 있다. 즉 팝펀딩은 기존 금융 대출이나 투자와 달리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업체와 투자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이번에 문제가 발생한 펀드의 대출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 팝펀딩은 홈쇼핑 판매 물품을 담보로 잡아 이들 납품 업체에 돈을 빌려준다. 이때 팝펀딩은 법적으로 직접 대출을 할 수 없어 ‘팝펀딩소셜대부’란 대출 목적의 자(子)회사를 설립했고, 이 회사를 통해 벤더에 대출을 해줬다. 이를 ‘동산(動産)담보대출’이라고 한다. 팝펀딩은 납품 업체가 홈쇼핑에 내보낼 상품을 보관할 수 있도록 전용 창고를 경기도 용인과 파주에 마련해두기도 했다.
몇몇 자산운용사는 팝펀딩이 업체로부터 확보한 물품 채권을 근거로 펀드 상품을 만들어 한투 등을 통해 판매해왔다. 펀드 모집 자금은 이 펀드의 투자자들로부터 조성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펀드 모집을 통한 대출이 이뤄질 경우, 벤더들은 제2금융권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펀드 투자자들은 연 5%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문턱도 낮다. 즉 신용도가 낮은 사람도 투자 대상(벤더)의 재무 상태와 투자 조건만 보고 쉽게 투자할 수 있다. 위험도(risk)는 높지만 고수익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팝펀딩 대출 실행에 문제 있다는 정황 발견”
자산운용사 ‘자비스’ ‘헤이스팅스’는 팝펀딩 관련 펀드 상품을 개발했다. 그렇게 출시된 펀드 상품이 ‘자비스팝펀딩홈쇼핑벤더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5·6호’(이하 자비스팝펀딩 5·6호) ‘헤이스팅스더드림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4~7호’(이하 헤이스팅스 4~7호)다. 이 펀드 상품 판매사는 모두 한투였다.
그런데 이 펀드들은 지난 1~2월, 만기가 됐음에도, 환매가 중단됐다. 본지가 입수한 〈자비스팝펀딩홈쇼핑벤더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제5호 운용보고서〉에는 홈쇼핑 납품 물품에 문제가 있었다고 기재돼 있다. 보고서의 일부다.
〈■ 담보물 내역 관련 참고 사항
현재 담보목록에는 각종 매체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해당 목적물에 대한 횡령 등의 정황이 있고 이러한 사유 등으로 해당 담보물 전체 또는 일부가 창고에 보관되어 있지 아니한 경우, 해당 차주 및 팝펀딩㈜, 팝펀딩소셜대부㈜로부터 추가 및 대체로 확보한 담보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약정된 담보물과 수량을 제공하지 않은 차주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 중이며 계속하여 추가 및 대체 담보물을 확보하려고 노력 중에 있습니다.
■ 사고의 발견
2019년 12월 26일 당사(자비스)가 본건 펀드의 대출금 상환이 계획대로 이행되지 않은 이유를 팝펀딩에 추궁하는 과정에서 팝펀딩의 대출 실행 및 담보 보관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정황을 발견하였고 팝펀딩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조사에 착수하였습니다.
■ 사고의 검토 및 대응
당사는 즉시 팝펀딩의 용인창고 및 파주창고를 방문하였고 전체 담보물품의 보관 위치 및 수량을 확인하려 했으나 팝펀딩의 비협조로 당사 자체적으로 확인 가능한 일부 담보물품을 찾아서 본건 펀드의 담보물임을 고지하고 이전을 금지하는 내용의 게시문을 부착하였습니다.〉
피해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물품에 대한 홈쇼핑 방영 계획조차 잡혀 있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보고서의 내용처럼 아예 물품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납품 업체의 경우, 회계감사 과정에서 부실이 발견된 사례도 있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팝펀딩은 이런 식의 부실이 계속 발생하자, 만기가 도래할 때마다 다른 펀드의 투자금으로 또 다른 펀드의 투자금 상환을 돌려막는 식으로 돈을 끌어다 썼다. 이는 다른 펀드에까지 영향을 끼쳐 자비스팝펀딩 5·6호를 비롯해 헤이스팅스 4~7호 등이 연쇄적으로 환매 중단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결국 사기펀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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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스팝펀딩 홈쇼핑 벤더 기본구조. |
—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자비스팝펀딩 5호 펀드의 경우, 이 펀드가 설정되기도 전에 팝펀딩의 돌려막기로 270억원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당초 펀드와 연계된 상품들을 홈쇼핑에서 판매하겠다는 계획이 펀드 설정 과정에 포함돼 있었지만 실현된 게 없습니다. 결국 사기펀드였다는 얘기입니다.”
— 현재 행방이 묘연한 270억원은 어디로 갔다고 봅니까.
“팝펀딩이 한투 측에 한 해명에 따르면 모 화장품 업체가 횡령했다고 하는데, 아직 정확히 밝혀진 건 없습니다.”
— 그 과정에서 판매사인 한투는 어떤 조치를 취했습니까.
“한투는 자산운용사들의 운용 행위가 투자설명서에 나온 대로 자금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법령을 비롯한 계약 사항 등에 위배되지 않는지 감시·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위반 사항이 있는 경우 그 운용 행위의 철회 변경이나 시정(是正)을 요구해야 합니다. 제가 알기로 그런 조치는 없었습니다.”
— 한투도 손해를 봤을 거 아닙니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면서 모든 손해를 피해자들에게 전가(轉嫁)하고 있을 뿐입니다. 펀드가 운용되는 과정에서 한투는 수수료 장사를 했고요.”
— 문제가 된 펀드들이 한투의 특정 지점 한 군데에서만 판매됐다면서요.
“그 부분도 아주 이상합니다. 해당 상품들 모두 분당PB센터 한 곳에서만 판매됐습니다. 그렇게 수익성이 높은 펀드를 왜 한 곳에서만 취급했는지 의아합니다. 한투 분당PB센터장과 자산운용사, 그리고 팝펀딩과의 유착이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백씨가 언급한 한투 전(前) 분당PB센터장 김○○씨다. 김 전 센터장은 문제의 펀드에 깊게 관여했다고 의심받는 인물이다. 피해자 중 일부는 지난해 6월경, 김 센터장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원문 그대로 싣는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정말 오래간만에 상품에 대해 말씀 드리는 거 같습니다. ‘자비스 팝펀딩홈쇼핑벤더 펀드’입니다….
작년 3월 팝펀딩 / NH투자증권 등과 같이 이 상품을 만들면서 많은 검토와 시뮬을 통해 만들었고, 본사 상품 / 리스크 부서로부터도 4번의 걸쳐 혹독한 점검을 받았습니다
(팝펀딩 본사 / 동산담보물 보관 자체 창고(파주/용인) 등 상품/리스크 부서 직원 직접 방문 검사)
그리고 5월까지 총 16회의 걸쳐 상품을 설정하였고, 10회까지의 펀드가 평균 운영 180일, 연 7% 수준으로 조기 상환이 잘 되고 있으며, 현재도 6개 펀드가 운영 중입니다.
(중략)
또한 매번 회차별 차주들의 관리(6월 상품 9개사)도 사전에 확정을 하고 펀드 모집[매월 70~80억 수준(한도관리)]을 하여 꼼꼼하게 확인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홈쇼핑 매출 입금계좌도 직접 통제 등)
매월 한도가 있다 보니 매각도 저희 분당PB센터만 할 수 있습니다.(제가 만들어 우선권이 있습니다)
이제 이 상품은 분당PB센터의 시그니처 상품이 되었고 충분한 검증이 된 만큼 회장님께도 제가 안심하고 추천해 드립니다
(중략)
한국투자증권 김○○ 배상.〉
이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는 피해자 노모씨는 “(문자 메시지에는) 김 전 센터장이 ‘제가 만들어 우선권이 있다’고 썼다. 하지만 나중에 김 전 센터장은 ‘자기가 만든 적이 없다’는 식으로 말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기자는 이 피해자로부터 김 전 센터장의 음성이 담긴 파일을 구해 들어봤다. 이는 팝펀딩 관련 펀드의 문제가 심각해지자, 김 전 센터장과 피해자들이 한자리에서 만났을 때 녹음된 것이다. 녹음 날짜는 지난 4월 14일이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센터장은 펀드에 문제가 발생한 경위를 피해자들에게 설명했다. 녹음파일에 담긴 김 전 센터장과 피해자들 간의 문답이다.
〈■ 김○○: 2018년 3월 달에 1호 홈쇼핑펀드는 NH투자증권에서 100억을 가지고 설정했습니다. 같은 달에 저희 한국투자증권하고 NH투자증권이 2호를 같이 설정했습니다. 저희는 40억 정도 설정했고, 그쪽은 100억 정도 설정했습니다.
■ 피해자: NH투자증권이란 건 농협을 얘기하는 건가요.
■ 김○○: 네. 농협. NH투자증권부터 설정이 됐고요. 아까 얘기하셨는데 저희 쪽에 헤이스팅스 자산운용하고, 상품을 먼저 설계한 건 NH투자증권이 설계를 했습니다. NH투자증권 법인상품금융센터하고 헤이스팅스, 팝펀딩 세 군데에서 설정을 했고요. 수탁계좌는 NH농협은행에 있습니다. 그쪽에서 설계를 해서 만든 상품이고요. 운용사들은 각 상품들이 나오면 본사(本社)의 상품 부서나 큰 지점엔 상품 제안서를 보내줍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주식형 펀드든 그런 펀드들은, 사모펀드들은 대부분 그렇게 영업을 합니다. 운용사들이. 그렇게 가져온 펀드를 이제 운용사하고, 저희 지점도 마찬가지고 본사에 상품 부서가 있습니다. 상품 본부가 있고요. 거기에 상품선정위원회(상선위)가 있습니다. 상선위가 통과돼야지만 모든 상품을 팔 수가 있습니다. 그게 통과되지 않으면 팔 수가 없습니다.〉

문자 메시지에선 ‘자신이 만들었다’고 했지만…
김 전 센터장은 문자 메시지에선 문제의 펀드를 ‘자신이 만들었다’고 했지만, 위 녹취록에서는 만든 주체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녹음파일을 원문 그대로 풀어 의미가 약간 불분명한 느낌이 있지만, 대략 ‘NH투자증권이 먼저 설계했다’는 것으로 읽힌다.
피해자 중 한 명이 “자비스팝펀딩 5호 6호는 우리가 (돈을) 넣자마자 돌려막기가 시작됐는데…”라고 하자 김 전 센터장은 “그때는 다 몰랐던 거죠”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 “(지난) 1월 달부터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운용사가 저희 쪽에 통보해온 게 1월 달”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전까지는 저희도 몰랐다. 여러분이 오해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직원들 일부러 피신시켰다, 제가 직원 발령을 일부러 냈다고 말씀하시는데…”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즉 자비스와 헤이스팅스 등 자산운용사가 팝펀딩의 부실을 보고하기 전까지, 펀드가 어떻게 운용되고 있었는지 김 전 센터장 자신은 물론 한투도 몰랐다는 의미로 들린다.
피해자 고모씨는 지난 4월 21일 한국투자증권 직원 김모씨와 만났다. 이날 나눈 대화의 녹취록에서는 또 다른 정황이 발견된다. 펀드의 문제점을 한투 본사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요지의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는 김 전 센터장의 주장과는 다소 상반된다. 두 사람 간의 문답을 보자.
〈■ 고: 원래 이렇게 파십니까, 이런 물건 팔 때? 위험도는 전혀 보지 않고 그냥 그… 이렇게 혹할 만한 이야기만 해도, 하시니까 평소에도.
(중략)
■ 김: 아니요, 그렇지는 않아요, 선생님.
■ 고: 근데 왜 안 하셨냐고요. 전 그거 알고 싶어요. 난 정말 지인으로, 그리고 지금 ××× 제가 본사에서 까인 상품이라는 얘길 들었을 때도, 사실 지금 굉장히 놀랐어요. 김○○ 차장님 입에서 그걸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나올 거라는 생각 안 했어요.
■ 김: 아니, 그때 아니, 그니까 저는 말씀을 드리잖아요. 그때 본사에.
■ 고: 그걸 몰랐으니까 나한테 이렇게 팔았겠지.
■ 김: 아니요, 직원들은 알고 있었어요. 근데.
■ 고: 그걸 알면서도, 그걸 아는 분이 그렇게 믿음이 가시던가요, 그때? 지금 아직 아무것도 벌어지지 않은 상태의 일인 거예요. 애초에 위험성이 있었던 거잖아요. 그걸 알면서도 너무 믿어서 단지 네 번은.
■ 김: 네 번이 아니죠, 선생님.〉

백영수씨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백씨는 해당 펀드 상품을 판매했던 한투 분당PB센터 직원 김모씨(※위의 김씨와는 다른 인물)와의 대화 녹취록을 보여줬다.
〈■ 김: 그거는 저희가 뭐 만들려고 했는데, 본사에서 드롭됐어요.
■ 백영수: 으음.
■ 김: 네. 오히려 뭐 홈쇼핑 쪽으로 더 안전하게 본사에서는 보는 것 같고 저희는 이제 추가로 팝펀딩 쪽하고 한번 더 다른 쪽으로 이제 계획을 잡았었는데 뭐 본사에서 ‘아니다’라고 해서 뭐 연락을 못 하게 해가지고 그거는 드랍이 됐고, 홈쇼핑 쪽은 계속 이번에도 상선위 올라갔다는데 그냥 통과돼서 추가로 또 지금 나온 거거든요.〉
백영수씨는 이 녹취록에 담긴 대화의 취지에 대해 “분당PB센터가 직접 팝펀딩과 다른 상품을 계획했지만 본사의 반대로 드롭(drop·취소)됐다가 다시 또 다른 팝펀딩 관련 상품이 상선위에 올라가 통과됐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를 근거로 분당PB센터와 김 전 센터장도 펀드의 문제점을 사전에 인지(認知)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백씨는 “김 전 센터장은 사고가 난 이후 팝펀딩 대표를 한 번 만나봤다고 했지만 나는 사실이 아닌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백씨의 말이다.
“김 전 센터장 자신이 ‘팝펀딩 관련 상품을 만들었다’고 문자 메시지에 적지 않았습니까. 이는 팝펀딩과 김 전 센터장의 유착이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팝펀딩뿐 아니라 헤이스팅스의 경우, 한투 출신 직원들이 세운 자산운용사입니다. 그런 점에 비춰보아 이들은 사전에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검찰은 이들의 공모(共謀)관계에 초점을 둬 수사를 해야 합니다.”
“위험도 고지 안 해도 되나” “그 부분은 제가 잘못”
이 밖에도 피해자들은 펀드 상품이 고위험성을 갖고 있었음에도 그에 대한 고지(告知)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앞서 김씨와 고씨의 지난 4월 21일 자 녹취록에 그러한 정황이 잘 나타나 있다.
이날 한투 직원 김씨는 피해자 고씨에게 “선생님(고씨) 성향보다 제가 위험한 상품을 선생님한테 권해드린 건 맞아요”라고 했다. 그러자 고씨는 상품의 위험도에 대해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점을 김씨에게 따졌다. 이에 김씨는 이를 인정하는 듯한 말을 했다. 두 사람이 나눈 문답을 보자.
〈■ 고: 회사의 잘못인 거 아닙니까? 회사가 직원 제대로 교육 못 시킨 거잖아요.
■ 김: 예, 맞아요.
■ 고: 위험도에 대해서.
■ 김: 예, 그런 부분은 제가 잘못한 게 맞아요. 예, 예.
■ 고: 제대로, 제대로 설명하고 숙지시키라는.
■ 김: 예, 예.
■ 고: 너 실적 따야 되니까.
■ 김: 근데 선생님.
■ 고: 어떻게든 실적 따오라는 거 아니에요?
■ 김: 저는, 저는 이거 가지고 실적을 따려고 선생님한테 상품 판매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요.
(중략)
■ 고: 그래서 본인한테 익숙한 상품이면 위험도 고지 안 해도 돼요?
■ 김: 아니요, 그 부분은, 그 부분은 제가 잘못한 부분이 맞고요, 선생님.
■ 고: 잘못했으면 어떻게 책임지실 거냐고요.
■ 김: 그니까 지금 절충안이 아직 안 나왔잖아요.
■ 고: 그러면 김○○ 차장님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도 이 상품을 팔았을 거 아니에요?
■ 김: 예.
■ 고: 그 사람들도 김○○ 차장님처럼 위험도를 전혀 고지하지 않았습니까?
■ 김: 아니요. 그거는 직원들은 고지를 했겠죠.〉
이 외에도 피해자들의 증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올해 90세인 류모씨는 “여생이 얼마일지 모르는 90세 고령의 피해자를 ‘초고위험의 투자자’라고 임의로 서류를 날조하고 조작해 상품에 가입시켰다”고 주장했다. 류씨는 “이런 행위는 노후의 생명을 담보하는 악행으로 수수료와 실적에 눈이 먼 돈벌레나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초고위험의 투자자라는 것은 그만큼 위험성 높은 펀드 상품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의미다. 류씨는 한투가 이런 식으로 서류를 조작한 뒤 펀드 상품에 가입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등장한 고모씨는 “환매 연체가 되던 날 한투는 집 앞에 서류를 던져놨는데, 가입 당시에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위험이 가득한 설명과 투자 안내서였다”고 주장했다. 박모씨는 “펀드에 가입하려면 (투자자의 성향이) ‘고위험 투자 성향이어야 한다’며 위험 성향을 임의로 날조 변경했다”고도 했다. 이 증언들은 피해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이기에 향후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김 전 분당PB센터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지만,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 이 같은 환매 중단 사태에 대해 한투 관계자는 “팝펀딩의 문제점을 사전에 알았던 부분은 전혀 없다. 판매사로서 운용에 개입한다거나 관여할 수도 없다”며 “판매사로서 투자자 자금 회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70억원 사기당했다고 한 화장품 업체는?
행방이 묘연한 270억원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 전 센터장이 지난 4월 14일 피해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했던 말을 들어보자.
〈팝펀딩 측 얘기로는 W플러스라는 화장품 회사가 있습니다. 홈쇼핑에서 김○○(유명 여배우)를 모델로 화장품을 런칭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270억(또 다른 주장에 의하면 280억) 정도 대출 사기를 당했습니다. 팝펀딩 측이 그걸 메울려고, 넘어가려고 (하다가) 그 부분에 관해서 돌려막기가….〉
피해자 대다수는 이 화장품 회사에 대해 ‘처음 듣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녹음파일을 들어보면, 김 전 센터장이 이 화장품 회사에 대해 언급하지만 피해자들은 그에 대해 추궁하지 않는다. 이 화장품 회사에 대한 단서는 〈자비스팝펀딩홈쇼핑벤더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제6호 운용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보고서에는 팝펀딩 관련 펀드와 연계된 납품 업체들과 물품들이 언급돼 있는데, 그중 다수를 차지한 물품이 바로 화장품이었다. 확인 결과, 이 화장품을 제작한 회사는 ‘○○코스메틱’으로 모(母)회사는 ‘○○○○컴퍼니’였다. 해당 회사의 화장품 모델이 김 전 센터장이 말한 배우 김○○씨란 점도 이 회사가 문제의 270억원과 관련 있는 회사란 사실을 강하게 뒷받침했다.
이 업체의 실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을 법한 위치에 있는 건, 관련 보고서를 작성했던 자산운용사 ‘자비스’다.
자비스자산운용 대표 K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제의 화장품 업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검찰 조사 중인 사안이라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했다. 기자가 취재한 화장품 회사가 270억원과 관련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K씨는 이 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참고인 조사 시 검찰에서 문제의 화장품 회사와 270억원에 관심을 갖던가’라고 묻자 K씨는 “(검찰이) 처음엔 잘 모르다가 지금은 파고 있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김○○ 전 한투 분당PB센터장은 W화장품이라고 얘기했었다’고 하자 “우리 쪽에 그런 차주(납품 업체)는 없다”고 말했다.
K씨는 “(아마) 여러 납품 업체 중 어느 한 회사의 계열사로 보인다. 한 명이 여러 개의 업체를 갖고 있어 파악이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일단 피의자들이 기소가 돼야 구체적인 수사자료를 받을 수 있고, 그것을 통해 해당 화장품 회사가 어딘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K씨의 말로 미뤄보아 검찰 역시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팝펀딩이 흥행시킨 ‘문재인·박원순 펀드’
이제 팝펀딩에 대해 이야기해볼 차례다. 팝펀딩의 대표는 신현욱(48)씨다. 신현욱씨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네이버’로 잘 알려진 NHN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동남아사업팀장과 인터넷검색사업부장을 지냈다. 2005년 NHN을 그만두고 프랑스 인시아드(INSEAD)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았다. 신현욱 대표는 이 대학 수업 중 P2P 금융에 대해 처음 접했다고 한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당시 P2P 금융은 해외에서 선진 금융 모델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었다. 영국의 ‘조파(Zopa)’와 미국의 ‘프로스퍼(Prosper)’라는 회사가 잇달아 창업하고 벤처 캐피탈들에게 후한 평가를 받으면서 자금을 모집하는 등 인기를 얻고 있었던 것이다. 신 대표는 2009년 MBA를 마친 후 국내에 돌아와 새로운 사업을 타진 중에 주변에서 한번 해보라는 권유를 받아 P2P 금융사업을 해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중략)
“P2P 금융은 뒤집어보면 온라인 대출 중개가 됩니다. 이게 제도권 금융을 끼고 있지 않다 보니까 ‘사채’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일반인들은 무슨 명동 사채시장의 변종인 줄 알더라구요. 인터넷 사각지대에서 불법 대출업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펀드’를 출시하면서부터다. 박원순 펀드는 출시 사흘 만에 목표치인 38억8500만원을 채웠다. 이듬해 19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강기갑 통합진보당 의원도 펀드 모금에 나섰다. 강기갑 의원은 19대 국회의원 선거 운동을 위한 자금을 마련코자 3월 5일 낮 12시부터 팝펀딩을 통해 1억7000만원 모금에 나섰다. 이는 ‘강달프펀드’로 명명됐다.
천경득 전 靑 행정관과 신현욱 대표와의 ‘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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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9일 천경득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선임 행정관이 신현욱 팝펀딩 대표 페이스북에 남긴 글(박스 안). |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펀드 투자자들에게 7월 19일 원리금 상환을 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월 대선을 앞두고 자금 확보를 위해 문재인 펀드를 발행, 329억원을 모금 받았다. 문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 500억원가량을 선거자금으로 지출해 이 펀드로 모금한 금액이 전체 선거자금의 66%를 차지했다. …문재인 펀드 모집 및 운영을 담당한 P2P업체 ‘팝펀딩’과 문 대통령 캠프의 인연도 주목받고 있다. 이 업체는 2012년 문 대통령이 처음 대통령 선거에 나왔을 당시에도 선거펀드인 ‘담쟁이 펀드’를 진행, 300억원가량을 모은 적 있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우연히 신현욱 대표의 페이스북 계정에 들어가볼 수 있었다. 신 대표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천경득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과 제윤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천경득 전 행정관은 신현욱 대표가 써 올린 글에 직접 댓글을 달아주기도 했다. 천경득 전 행정관은 2017년 대선 기간 중 ‘더문캠’의 총무팀장으로, 문재인 펀드의 실무를 담당했었다.
천 전 행정관은 이 정부 내내 실세로 주목받기도 했다. 특히 유재수 사건과 관련해 구설에 오르내렸다. 전직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이모씨는 유재수 사건 재판에 출석해 “천경득 청와대 행정관이 두려워 초기 검찰 조사에서 제대로 진술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검찰 조사에서 “천 전 행정관은 문재인 캠프 인사담당이었고,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이었지만, ‘예산은 천경득이 가지고 있다’는 말도 있었고 예측할 수 없는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천 전 행정관의 ‘파워’가 얼마나 셌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제윤경 전 민주당 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 박원순 후보 선거캠프 부대변인을 지냈다. 천경득 전 행정관과 제윤경 전 의원은 각각 ‘문재인·박원순 펀드’라는 연결고리로 신현욱 대표와 인연을 맺은 걸로 추정된다.
한편 신현욱 대표는 2018년 2월, 한국P2P금융협회 2대 회장에 선출됐다가 내부 문제로 석 달 만에 사퇴한 적도 있다.
팝펀딩, 특혜받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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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6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경기도 파주 팝펀딩 물류창고를 방문해 시설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
이후 정부의 동산금융 활성화에 대한 기조(基調)가 뚜렷해졌다. 같은 해 5월 23일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은 시화공단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중소기업 단체장 및 기업인을 대상으로 ‘동산금융 활성화 추진전략’을 강연했다. 최종구 당시 위원장은 “중소기업이 보다 원활하게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선 기업이 보유한 동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동산금융이 정착되면 창업, 중소기업이 보유한 600조원의 유·무형의 동산 자산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서 “향후 5년간 3만 개 기업이 동산금융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러한 정부 기조에 힘입어 팝펀딩도 주목을 받았다. 작년 11월,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팝펀딩의 경기도 파주 물류창고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은성수 위원장은 “팝펀딩을 시작으로 또 다른 동산금융 혁신사례가 은행권에서 탄생하길 바란다”며 “정부도 동산금융 활성화를 위해 동산담보법 개정, 동산담보 회수 지원기구 설치 등 인프라 구축 노력에 힘쓰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앞서 작년 3월, 팝펀딩은 IBK기업은행(이하 기업은행) 동산담보대출 ‘지정대리인’으로도 선정됐다. 지정대리인 제도는 금융회사가 핀테크(팝펀딩이 이에 해당) 기업에 예금, 대출 심사 등 금융회사의 고유 업무를 위탁해 핀테크 기업이 혁신적 금융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도록 최장 2년 동안 시범운영하는 제도다. 기업은행은 팝펀딩에 온라인 판매자의 재고자산 평가·보관 등의 업무를 위탁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출을 지원한다. 당시 기업은행은 총 100개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당 최대 5억원, 총 5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팝펀딩이 지정대리인으로 선정된 건 P2P 금융업체로서는 다소 파격’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피해자들, 형사고소 준비 중
피해자 중 일부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팝펀딩에 대한 정부의 특혜일 수 있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피해자 중 한 명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팝펀딩은 2019년 팝펀딩소셜대부를 통해 동산담보대출을 위한 투자자 모집에 나섰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피해자가 양산됐다”며 “팝펀딩이 P2P 업계에서 아무런 견제 없이 커나가는 과정에서 정부의 배려가 없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팝펀딩 이사직을 맡고 있는 최모씨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반론을 요청했다. 최씨에게 “통화가 어렵다면, 신현욱 대표와 직접 통화할 수 있도록 주선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그는 아무런 회신을 보내오지 않았다.
한편, 현재 피해자들은 한투 등을 상대로 형사고소를 준비 중이다. 사건을 담당한 구현주 변호사(법무법인 한누리)는 “팝펀딩의 경우, 제안서를 보면 어떤 회사에 어떻게 투자되는지 적혀 있지만 실제 대출은 이뤄졌는지, 상환은 제대로 됐는지 확실치 않은 게 많다”고 했다. 이어 “만약 한투가 이런 부분을 알고도 펀드를 판매했다면 사기 혐의가 적용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