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嚴相益 변호사의 남중국해 5000km 항해기

세 남자와 선원들의 7日간 이야기

글 : 엄상익  변호사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지난 10월 초 평택항에서 LNG운반선 스플렌더호 승선… 싱가포르항까지 5000km 항해
⊙ 중국 어선, 동중국해에서 어족 씨 말려… 큰 배 항로 막아 스트레스 줄 정도
⊙ 배에 사다리 보이면 틀림 없는 해적… 돈독이 올라 로켓포와 총을 난사하며 덤벼들어
⊙ 소말리아 해적과 커넥션이 있는 국가, 배에 대한 정보를 해적들에게 알려주기도
⊙ 30대 초반 연극배우 출신 선원, “순간순간 변하는 파란바다를 사랑”

嚴相益
⊙ 58세. 고려대 법대 졸업.
⊙ 군법무관시험·사법고시 합격. 大盜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 탈북난민 한영숙씨 사건 등 변호.
⊙ 수필집: 《변호사와 연탄 구루마》 《욕심그릇이 작을수록 자유롭다》 《하나님 엄변호삽니다》 등.
    소설: 《여대생 살해사건》 《검은 허수아비》 등.
LNG운반선 스플렌더호.
  지난 10월 2일, 평택항 주변에는 둥근 가스탱크들이 열병 분열을 하듯 서 있었다. 그 뒤로 조용히 떠 있는 바닷바람에 노란 페인트칠이 벗겨진 LNG운반선 ‘스플렌더호’. 높디 높게 녹슨 배의 밑창이 보였다. 나는 철제 사다리를 타고 갑판 쪽을 향해 올랐다.
 
  가시철망이 얼기설기 흉물스럽게 걸려 있는 난간과 배 귀퉁이에 자리한 총을 든 허수아비들. 해적 퇴치를 위한 궁여지책(窮餘之策) 같았다. 배정받은 선실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먼바다 위에 떠 있는 화물선을 보면서 그 안에 어떤 사람들이 살며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었다. 특수 화물선에 탄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모 해운사 간부의 도움으로 운좋게 승선할 수 있었다. 변호사가 현장체험을 하면 규정이나 법을 적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바다 여행길에 우연히 만난 두 명의 동행이 있었다. 60대 중반의 류철호(柳徹浩)씨와 정우성(丁宇聲)씨. 노년에 화물선을 타고 혼자 먼바다로 나가는 사람이라면 내용이 풍부한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 같았다. 이윽고 기관실의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몇 겹의 철판 너머로 들렸다. 현창(舷窓)을 통해 부두가 차츰 멀어지는 게 보였다.
 
  브리지로 올라갔다. 사방의 투명한 창을 통해 눈 아래 펼쳐진 것은 검푸른 바다였다. 넘실거리는 파도에 12층의 브리지가 좌우로 조금씩 호를 그리며 흔들렸다. 브리지 안은 모든 게 자동화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뒤쪽 중앙에 배의 핸들인 ‘오토 파일럿’이 혼자 딸깍딸깍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저절로 건반이 움직이면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피아노가 연상됐다. 복잡한 부호와 선으로 가득 찬 전자해도와 레이더 모니터도 보였다.
 
  모든 시스템이 자동화돼 몇몇 수치만 입력하면 배는 저절로 가게 되어 있었다. 기관실도 무인공장같이 홀로 움직인다고 했다. 사람의 할 일은 정상수치에서 벗어나 경고음이 울릴 때 가서 조정을 해주는 정도라고 했다. 바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갈증과 물이었다. 그러나 배는 물도 스스로 만들어냈다. 배 안의 대형 정수기로 바닷물을 퍼올려 하루 60톤 정도의 담수를 만든다고 했다.
 
  그 물을 끓여 터빈을 돌리고 거기서 배출되는 증기로 식수까지 즉석에서 만든다고 했다. 버려지는 에너지도 없었다. LNG 탱크의 압력을 조절하기 위해 빼는 가스까지 낭비하지 않고 모아서 재활용하고 있었다. 50대 초의 침착해 보이는 선장이 전자해도를 보면서 내게 설명했다.
 
  “여기 바다를 온통 덮은 하얀 표시들이 중국 어선입니다. 서해 바다부터 동중국해까지 엄청 나와 있어요. 물고기들을 보호하면서 잡아야 하는데, 아주 씨를 말리는 것 같아요. 중국 어선이 어떻게나 많이 바다에 나와 있는지 우리 같은 큰 배의 항로를 막아 스트레스를 줍니다.”
 
  레이더 모니터 화면 동심원들이 겹쳐진 안에 파랗고 하얀 꼬리가 달린 노란 오각형 표시들이 보였다. 노란 건 배고 파란색 꼬리는 배가 만들어내는 항적이다. 배의 표시 위에 커서를 놓고 클릭하니 그 선박의 종류와 방향, 속도 등이 바로 화면에 떴다.
 
 
  火葬 동의서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에게 총격을 가한 것으로 알려진 아라이 모하메트. 2011년 1월 30일 국내에 압송돼 조사받기 위해 부산 남해해경청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타오르던 붉은 해가 서서히 수평선에 잠기면서 바다 저쪽부터 어둠이 밀려왔다. 데크하우스 7층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선원들이 부지런히 밥을 먹고 있었다. 구석에 밥솥과 국솥이 있었다. 맑은 조갯국이었다. 그 옆으로 접시 위에 오이소박이와 배추김치가 보였다. 각자 먹을 만큼 떠다 먹게 되어 있었다. 커다란 배치고는 선원이 의외로 단출했다. 주방과 기관실에서 일하는 선원까지 합쳐서 20여 명이었다. 선장과 두 명의 동행이 테이블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선장이 입을 열었다.
 
  “저희 배는 평택항과 사우디의 카타르항을 반복해서 오가고 있습니다. 배가 한 번 실어나르는 가스는 한국이 사흘 동안 음식을 만들고 난방을 할 수 있는 양이죠. 바닷길을 다니다 보면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배가 커져도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배가 바닷속에 잠기고 12층 브리지 창문까지 파도가 덤빌 때면 섬뜩하죠.”
 
  그러고 보니 우중충한 겨울 하늘에 깔려 있던 연탄 냄새가 우리 주위에서 사라졌다. 철(鐵)을 타고 물(水)을 건너 불(火)을 가져다주는 그들 덕이다.
 
  “요즈음은 해적도 무섭다고 들었는데요?”
 
  내가 물었다. 여러 발의 총알을 맞고 살아난 석해균 선장 뉴스가 뇌리에 떠올랐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인도양까지 활동범위를 넓혔습니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쪽은 믈라카 해협(옛 이름은 말라카) 근처에 본부를 둔 해적이 수시로 출몰하고 있습니다. 항해하다 보면 해적을 만났다면서 구조를 요청하는 무전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사실상 그런 구조신호를 받아도 저희로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인도양에 들어서면 배를 최대한 대륙 가까이 붙여 운항합니다. 항로가 멀어지기는 하지만 해적을 만났을 때 인근 국가에 구조요청을 하기가 쉬우니까요.”
 
  “해적선은 어떻게 접근하나요?”
 
  “대개는 총기도 감추고 어선으로 위장하기 때문에 식별하기가 어렵습니다. 2km 정도 다가와야 식별할 수 있어요. 높은 갑판으로 오르기 위해 배에 긴 사다리를 가지고 올 적이 많아요. 사다리가 보이면 틀림없이 해적이죠. 또 작은 어선으로 넓은 바다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연료통을 여러 개 달고 있기도 해요. 그런 해적선을 발견하면 전속력으로 달아나야 하는데, 그들이 다가오는 시간은 불과 몇 분 정도죠. 예전에는 이쪽에서 경고사격을 하면 돌아갔는데, 요새는 돈독이 올라서 그런지 로켓포와 총을 난사하면서 덤벼들어요.”
 
  “소말리아에서 어떤 사람들이 해적이 되죠?”
 
  “선생을 하다가 해적이 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소말리아에는 친미정권인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가 무너진 이후 십수 년간 정부가 없었다. 이 해적들은 바로 국가 권력의 공백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밥을 먹는 자리에서 바다여행에 동행한 두 명의 남자에게 내가 뜬금없이 물었다.
 
  “화장 동의서는 준비하셨습니까?”
 
  “화장 동의서라뇨?”
 
  두 남자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았다.
 
  “여행길에서 갑자기 사고가 나서 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현지의 사람들이나 가족은 시신 때문에 고생하는 수가 있죠. 그래서 저는 여행을 떠날 때 간단하게 한글과 영어로 화장 동의서를 작성해 넣고 다니죠. 갑자기 죽으면 현지에서 화장을 할 수 있게 만들어두는 겁니다.”
 
  여행하다 죽으면 그 자체로 행복하다는 생각이다. 해적을 만날 수도 있고, 갑판에서 미끄러져 바다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것 괜찮은 방법이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공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평생 해외의 토목공사장에서 일했다는 류철호씨가 입을 열었다. 그는 도로공사 사장을 지냈다.
 
  “나는 재작년에 한 번 죽었었어요. 산에 오르다가 심장혈관이 막힌 거예요. 병원에 가 수술해 달라고 했더니 의사가 여섯 시간 정도는 경과를 봐야 한다는 거예요. 대개 그 시간 안에 죽는다고 하면서 당장 수술을 하면 의료사고가 될까 봐 그런 것 같더라고요. 의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데 나는 기가 막혔죠. 하여튼 거기서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어요. 우리 조부도 내 나이에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신 걸 보면 명이 다했던 건지도 모르죠.”
 
  옆에서 듣고 있던 정우성씨도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다.
 
  “나도 암에 걸려서 폐의 3분의 1을 도려냈어요. 수술실에서 가슴을 열고 갈비뼈를 자르고 그 속에 있는 허파를 잘라냈죠.”
 
  그 역시 죽음 가까이 갔다가 온 사람이었다. 나도 암이라는 고지(告知)를 받고 임종 연습을 한 적이 있다. 정우성씨는 EU대사와 대통령비서실 외교 보좌관을 지냈다고 했다.
 
 
  용병과 선장
 
스플렌더호 5층 갑판 위에 선 필자.
  “배를 지키기 위해 무장을 하지는 않나요?”
 
  내가 선장에게 물었다. 국제경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넓은 바다에서는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유엔안전규약은 민간 화물선에 총을 싣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 해적과 맞서 싸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해적이 배에 올라탔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란 싸우려 들지 말고 순순히 행동하는 거죠.”
 
  “그건 스스로 생명과 재산을 포기하라는 소린데요?”
 
  내가 되물었다.
 
  “스리랑카에서 경호요원 네 명을 태웁니다. 그 사람들은 국제적인 경호회사 소속이기 때문에 실탄과 함께 기관총 그리고 저격용 스나이퍼를 가지고 승선해서 같이 갑니다.”
 
  우리의 재산을 지키는 데 무장을 못하고 그 자격을 외국계 경호회사만 갖고 있다는 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들의 사격에 대한 지휘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선장인 제게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변호사님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해적선이 다가오면 선장으로서는 언제 발포명령을 내려야 할까요? 아직 해적과 조우해 본 적이 없어서 선장으로서 고민입니다. 일단 위협사격을 해야겠죠. 그런데도 해적이 달려들면 어쩔 수 없이 자위권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맞는 소리였다. 상황에 따라 정당행위나 정당방위가 성립될 것 같았다. 그러나 국제형사재판의 구체적 판례가 형성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굳이 경고사격을 해야 할까요?”
 
  한참을 생각하던 선장이 내게 물었다.
 
  “해적은 로켓포까지 가지고 무장하고 있는데, 이쪽은 계약서상 실탄을 몇백 발밖에 갖고 타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위협사격을 하다가 실탄이 다 떨어지면 그 다음 조준사격을 할 수 없는데…. 요즈음은 인질뿐 아니라 수천억대 되는 배까지 끌고가 소말리아 영해에 정박시키고 돈을 요구합니다. 화물이 값나가는 게 실려 있으면 해당국가의 선박회사는 돈을 지불하기도 합니다. 소말리아 해적과 커넥션이 있는 나라에서 배에 대한 정보를 해적들에게 알려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국제분쟁이라면 자진해서 끼어드는 미국이 왜 해적문제에는 소극적인 것일까? 해운회사 중에 미국 회사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APL 같은 회사가 미국의 큰 해운회사였지만, 싱가포르에 팔렸다. 소말리아에 개입했다가 혼이 나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는 소리도 있다. 미국 해군은 사실 인도양보다는 이라크와 가까운 걸프만에 다 모여 있다. 그곳이 더 전략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적이 날뛰고 규정의 공백을 틈타 외국계 경호회사만 이득을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싱가포르 대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었다. 지난해 4월 제미니호라는 싱가포르 선적의 배가 선원들과 함께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 선원 중에 한국인도 4명이 있었다. 해적과의 협상은 요즈음 상당히 정형화되어 있다. 해운회사 측에서는 아예 해적보험에 들기 때문에 협상금액도 배의 가치나 선원의 숫자에 따라 정해져 있다. 해적들도 그런 금액기준을 잘 안다.
 
  그런데 해적들이 이번에는 터무니없이 돈을 많이 불렀다. 그건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협상은 타결됐다. 해적이 끌고 간 배 위에서 헬기로 선원 전원이 안전한 걸 확인하고 난 후 돈뭉치를 바다로 투척, 해적들은 그 돈을 가지고 배에서 사라졌다. 동시이행의 항변권(상대편이 채무를 이행할 때까지 자기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해적들이 한국인 선원 4명만 다시 사로잡아 끌고 간 것이다. 한국에 잡혀서 재판을 받고 있는 소말리아 해적들과 교환하자는 취지였다. 청해부대의 아덴만 ‘여명작전’이 성공한 이면의 보복 같았다. 해적들에게 우리나라가 봉이 되는 순간이었다.
 
 
  해적들, 쌀과 반찬까지 알뜰하게 챙겨가
 
2009년 5월 아덴만 인근 해역에서 미 해군 특수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을 생포하고 있다.
  나의 선실은 작은 법률사무소가 됐다. 선원들이 육지에서 갖고 온 비장의 물건들을 내게 주면서 법률상담도 하고 얘기도 들려주었다. 장모가 싸주었다는 곶감과 떡도 있었고 맥주도 있었다. 그중 선원학교를 졸업하고 외항선을 탔다는 고참 선원의 해적 얘기가 생생했다. 그가 말한 내용은 대충 이랬다.
 
  <몇 년 전 인도에서 동남아 쪽으로 항로를 잡고 오다가 남중국해를 지날 때였다. 입항날짜가 당겨져서 18명의 선원을 태운 케미컬선은 항로를 변경해 최고속도로 항해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불덩어리 같던 해가 바닷속으로 잠겨 들고 짙은 어둠이 하늘을 덮었다. 8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갑자기 스피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적이다. 모든 선원은 대비하라.”
 
  그는 기관실에서 나와 바다 쪽을 보았다. 빠르게 다가오는 보트의 불빛이 보였다. “탕, 탕, 탕” 하고 해적들이 쏘아대는 총소리가 들렸다. 외딴섬을 본부로 하는 남중국해의 해적이었다. 선내의 모든 문을 닫고 선원들은 다시 각자 자기 선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해적들이 철문을 열기 위해 기관총을 쏴대는 소리가 요란했다. 해적들은 꼭대기에 있는 브리지의 창문을 통해 침입했다.
 
  결국 두꺼운 철문도 방탄유리도 소용없었다. 배 안으로 침투한 해적들은 한 층 한 층 내려오면서 선원들을 방에서 끌어냈다. 그의 방에도 해적들이 들이닥쳤다. 중국의 인민해방군복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정글칼을 들고 동남아 말을 쓰는 해적도 보였다. 방으로 들어온 해적은 그의 뺨을 갈기고 꿇어 앉혔다. 해적들은 방에 있던 노트북은 물론 배의 식량창고까지 뒤져 알뜰하게 챙겨갔다.>
 
  우리가 타고 가는 배는 각 철문마다 총알에 뚫리지 않도록 이중삼중으로 철판을 용접해 덧붙여 로켓포가 아니면 뚫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유리창이 있기 때문에 해적이 들어오려고 마음먹으면 어쩔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해적을 피하는 방법은 해적이 배 위로 올라올 것 같으면 일단 배의 모든 전원을 꺼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선원들은 해적들이 찾기 힘든 기관실 뒤쪽에 있는 은밀한 방에 모두 모인다. 거기엔 며칠 버틸 물과 식량이 있고, 통신장치가 있다. 거기서 근처의 해군과 선박회사에 구조신호를 보낸다. LNG선은 컴퓨터 제어장치가 복잡해서 선원이 없으면 해적들이 끌고 가기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총 주면 수십만 달러 위험수당 받을 수 있어”
 
브리지에서 항해사 서가원씨와 함께.
  항해 사흘째 밤 선내 휴게실에서 선장과 선원들 그리고 손님인 나와 두 명의 승객이 모여 서로 인사하는 모임이 있었다. 갑판장이 사회를 봤다.
 
  “이번 168 항차에서 여섯 명의 선원과 세 명의 손님이 새롭게 승선하셨습니다.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신입선원 6명이 앞으로 나와 한 명씩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2급기관사입니다. 처음 배에 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걸로 끝이었다. 다음 사람이 나왔다.
 
  “저는 2급항해사입니다. 7월 2일 배에서 내려 세 달 동안 잘 쉬다 다시 배에 탔습니다. 여러분께서 필요하신 일이 있으면 항상 브리지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사람이 나왔다.
 
  “저는 어선에서 일하다가 상선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선원들은 수시로 바뀌는 것 같았다. 선장이 나와 인사했다. 소설 《백경(白鯨)》에 나오는 에이하브 선장의 모습이 아니라 동네 목사님 같은 온유한 모습의 사람이다. 선원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턱수염을 기른 50대의 사나이, 우람한 근육남, 아직 어린애 같은 티가 남아 있는 20대도 보였다. 좁은 배 안 소수의 사회에서도 인간사회는 역시 비슷했다. 지도자인 선장과 해양대학을 나온 사관 그리고 선원.
 
  일부 선원의 잠재의식 속에는 ‘뱃놈’이라는 열등감이 엿보였고, 그래서인지 육상근무 직원과의 차별에 민감한 것 같았다. 변호사인 나는 법률상담을 하기에 바빴다. 받은 월급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준 후 그 돈을 떼인 경우가 많았다. 육지에 오르면 채무자를 찾아다니는 게 일인 선원도 있었다. 해적 얘기가 나왔다. 선원들은 해적을 무서워한다기보다 오히려 외국계 무장경호회사에 나가는 돈을 아까워했다. 한 선원이 내게 질문했다.
 
  “해적 때문에 영국계 경호회사의 무장 보안요원 네 명을 태웁니다. 용병인 그 사람들은 우리 선원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은 급료를 받아요. 한 사람이 오만 달러를 받으니까 한 번 항해에 수십만 달러가 나가는 거예요. 우리 선원들도 다 군대에 갔다 왔습니다. 공수부대나 해병대 출신도 흔해요. 총만 주면 잘 쏘고 대포도 만질 수 있죠. 그런데 그 많은 비용을 꼭 외국인에게 주고 보호해 달라고 할 필요가 있나요? 직업적 용병인 그 사람들이 우리 선원의 생명을 보호해 주려 온 사람인지 아니면 수천억에 달하는 이 배를 지키기 위해 온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요. 특수부대 훈련을 받은 우리 선원들에게 총을 주고 싸우라고 하면 서로 말도 통하고 그 수십만 달러를 위험수당으로 받을 수 있을 텐데….”
 
  맞는 말 같았다. 그러나 단순하게 생각할 건 아니었다. 특수부대 출신 선원들에게 무기를 주고 배를 보호하게 하려면 근본적으로 법을 제정해야 한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이나 ‘군방관계법령’을 보면 경찰이나 군인만 무장할 수 있다. 민간인인 선원에게 무기를 들게 허용하는 법은 없다. 그렇다면 선박을 지키는 업무를 담당할 경호회사가 있어야 하고, 무장할 법적근거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얼마 전 경호경비에 관한 법의 심사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다. 경호경비 회사를 설립해 독점적 높은 수익이 가능할 때, 청와대 경호실 출신, 군 출신, 경찰 출신들의 이권경쟁이 있을 수도 있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민간인 부대를 무장시켰을 때, 안보나 사회질서적인 측면에서 괜찮은가 근본적으로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었다.
 
 
  밀항자와 마약
 
  나의 선실을 찾아온 선원들은 수시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40대 초의 노총각 선원이 싱글거리며 밀항선과 마약에 관한 경험을 이렇게 얘기했다.
 
  “1988년에 니카라과에서 바나나 냉동선을 탔어요. 일본 배였죠. 그때부터 이 배 저 배 안 타본 배가 없어요. 포철에서 미국항구까지 가서 갖고 오는 고철 운반선도 탔어요. 미국의 온갖 잡동사니 고물을 배에 싣고 와서 용광로에서 녹이는 거죠. 곡물을 실어나르는 화물선도 타고, 케미컬 운반선도 타고, 원유선도 타고, 다 타 봤어요. 밀항자 얘기를 해드릴게요. 우선 그게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 다음은 마약이고, 그 다음은 도둑 얘기를 해드리죠.”
 
  영화에서 본 밀항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콜롬비아에서 선원들 모르게 밀항자가 탔어요. 보통은 선원들이 몰래 밀항자를 돈 받고 실어주는 걸로 생각하지만, 배에 몰래 스며들어와 밀항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우리 선원들도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밀항자가 스며들면 그 많은 화물 사이에 숨은 사람을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거죠. 내가 탔던 일본 배는 선장과 1등항해사, 2등항해사는 일본인이고 선원들은 필리핀인인데 서로 말이 잘 안 통했죠. 배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다가 사고가 있어서 뒤로 후퇴하는 바람에 이틀 정도 미국으로 가는 게 늦어졌어요.
 
  미국의 항구에 배가 입항하고 우리가 내려서 게이트로 갈 때까지도 밀항자가 있다는 걸 전혀 몰랐던 거죠. 밀항자는 선원들이 모르는 사이에 배에서 빠져나오는 데도 성공했어요. 미국은 게이트까지 걸어가면 두세 시간 걸리는 거리예요. 밀항자가 그 길을 걸어가다가 기절을 해서 쓰러지는 바람에 선원들에게 발각이 된 거예요.”
 
  “왜 기절을 했죠?”
 
  내가 물었다.
 
  “밀항자는 자기 나름 미국에 들어갈 날짜를 계산해서 빵과 물을 준비했는데 그게 틀어져 버리는 바람에 굶은 거죠. 미국 세관원들은 그 밀항자를 법에 따라 수용소 같은 데 보내지 않고 우리보고 너희가 데려왔으니까 도로 데려가라는 거예요. 귀찮은 거죠. 할 수 없이 밀항자를 도로 배에 태웠죠. 밀항자를 배에 태워 콜롬비아로 가서 신고하고 법적으로 처리하려면 상당히 골치 아프죠. 더구나 일본 바나나 냉동선이잖아요? 그런 경우는 신고하지 않고 그냥 밀항자를 바다에 던져 버린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 밀항자를 어떻게 했나요?”
 
  “죽이지는 않고 선실에 집어넣고 문을 용접해 버리던데요. 그걸 보고 황당했지만 배에서 각자 자기 맡은 일이 있는데 누가 그 밀항자를 지킬 수 있겠어요. 그냥 용접해 버리는 게 낫지. 2~3일 그렇게 뒀다가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그 사람을 나오게 해서 일을 시켰어요. 그리고 적당한 데서 내려줬죠.”
 
  “다음은 마약 얘기를 해봐요.”
 
  내가 화제를 바꿨다.
 
 
  ‘고장’ 난 산소게이지마저 훔쳐가는 도둑
 
  “선원들인 우리도 전혀 모르게 마약이 운반되는 수가 많아요. 컨테이너 안쪽에 마약봉지를 천장까지 메워놓은 다음, 철판으로 가짜 벽을 만들어 땜질을 한 뒤 페인트칠을 해서 벽같이 만들어요. 컨테이너 내부의 남은 공간과 구분할 수 없게 만드는 거죠. 그리고 신선도가 유지되도록 냉장된 덜 익은 시퍼런 바나나로 가득 채우는 겁니다. 마약덩어리가 있을 거라곤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죠.
 
  그 외에도 크레인 구멍 같은 데 마약을 집어넣고 용접해 버리면 찾기 힘들고요. 심지어는 볼펜심 같은 데 마약을 넣고 그 볼펜을 배의 여기저기 던져뒀다 회수해 가는 거예요. 마약 조직의 반대파에서 제보해 주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거죠. 배 안은 샅샅이 뒤지니까 프로펠러 뒤의 라더 쪽에 그물을 치고 거기에 마약을 숨겨서 갖고 가기도 하죠.”
 
  “세관을 통과할 때 걸리지 않나요?”
 
  “큰 항구는 워낙 통과하는 화물의 양이 많기 때문에 컨테이너들을 일일이 검사하는 건 불가능하죠. 깜냥대로 검사할 수밖에 없어요. 들어오는 화물의 5퍼센트 정도만 정밀검사를 한다고 할까요. 운송장이나 서류에 하자가 있거나 발송지 항구가 이상할 때 하는 거죠. 검사할 때 보면 컨테이너 내부에 밀실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요. 엑스레이 검사부터 마약견 투입, 화학테스트를 하기도 하죠. 그래도 마약은 통과돼요. 이미 사전에 세관 공무원들의 계좌로 거액을 줘서 매수를 한다고 그러니까…. 반대 조직에서 제보하지 않으면 잡을 수가 없죠.”
 
  “이번에는 도둑 얘기를 해보세요.”
 
  “남미 쪽의 경우, 배 안 기관실까지 도둑이 자주 들어와요. 공구들을 훔치러 오는 거죠. 제가 기관실 산소게이지가 고장이 나서 한글로 ‘고장’이라고 써서 붙여놨어요. 그렇게 망가지면 아무 가치가 없는 쓰레기가 되는 거예요. 도둑이 들어와서 그걸 들고 가다 걸렸어요. 고장이라고 쓴 의미를 알았다면 힘들게 들고 가지 않았을 텐데…. 참! 그리고 이집트 쪽에 가면 세관과 협상을 한 여자들이 줄줄이 배 위로 올라와 장사를 해요.”
 
  마음의 문을 연 바다 남자들의 얘기는 끝이 없었다.
 
  “앞으로 꿈이 뭐예요?”
 
  “큰 꿈은 없고요. 그냥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무한대의 바닷길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떠도는 거죠. 지난 20년 동안 항구에 닿으면 끝이 아니라 다음 항구가 기다리고, 한 항차가 끝나면 다른 항차가 있고 그랬어요. 이제는 선원 일이 생활이 되어 버리니까 편한 것 같아요.”
 
 
  바다를 사랑하는 남자들
 
갑판 위의 가스파이프들.
  닷새째 바다 위를 흐르고 있었다. 나는 선실에서 책을 읽다가 눈이 피곤해지면 갑판 위를 산책했다. 굵은 혈관 다발 같은 파이프 뭉치들과 난간 사이에 페인트칠을 한 좁은 길이 있었다. 감옥에서 손바닥만 한 운동장이 귀하듯 철판 위의 그 길은 내게 귀중했다. 13만 톤의 배는 철로 만든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철로 만든 거대한 집 뒤에 기관실이 공장같이 붙어 있었다. 갑판을 지나가는 젊은 항해사에게 물었다.
 
  “항해하면서 즐거웠던 일을 말해 줄래요?”
 
  “전에는 LPG선에서 3등항해사를 했습니다. 그때 인도 쪽의 벵골만을 지날 땐데, 레이더상으로 비구름이 듬성듬성 있었죠. 그 구름 아래서만 비가 내리는 겁니다. 그런데 구름 사이에 쌍무지개가 떴는데 정말 아름다웠죠.”
 
  바닷사람은 아름다움이 뭔지 안다. 나는 가슴 속에 시원한 바람구멍을 열어주는 짙푸른 바다가 좋았다. 깊은 바닥에서 서늘한 생명력이 안개같이 피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바다는 순간순간 색과 표정을 바꾸었다. 바람에 흰 물결을 날리는 남색의 바다가 깊숙한 햇빛을 받고 투명한 보석이 되기도 했다. 항해사는 기억의 서랍을 열심히 뒤졌다.
 
  “황당한 일도 있었어요. 인도를 항해하는 중이었는데 바다 위에 안개가 껴 레이더를 보면서 가는데 갑자기 안개가 확 걷히면서 순간 거대한 LPG선 앞에 조그만 목선(木船)이 보이는데, 인도인 네 명이 한가롭게 낚시를 하고 있는 거예요. 배의 방향을 돌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 아찔한 상황에 다행히도 배가 아슬아슬하게 목선을 스치듯 미끄러져 옆으로 비켜가는 겁니다. 낚시를 하던 사람들은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더라고요. 배가 지나고 항적 물결에 그 사람들이 타고 있던 목선이 흔들리니까 그제야 제가 탄 LPG선을 올려다보는 거예요. 그런 작은 배는 레이더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아찔했죠.”
 
 
  지금 선원은 대기업 직원
 
  발밑에서 전해오는 단조로운 기계음을 느끼며 나는 다시 갑판 위를 걸었다. 제법 바람이 강해졌다. 30대 초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갑판 위에서 아래위가 붙은 작업복을 입은 채 일을 하고 있었다. 하얀 얼굴에 눈썹이 새까맣게 일자로 난 미남선원이었다. 그에게 다가가서 선원생활에 대해 물었다.
 
  “배의 와이퍼입니다.”
 
  와이퍼란 신참으로 배에서 기름칠을 하고 기계를 닦는 제일 험한 일을 하는 선원이다.
 
  “저는 원래 연극배우였습니다. 돈 때문에 배를 타게 됐죠. 그렇지만 저는 바다를 좋아합니다.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수영에서 살았죠. 군대도 해군으로 갔어요. 군함을 타고 싶었는데 못 탔습니다. 어려서부터 바다에 대한 동경이 많았습니다. 바다는 항상 아름답죠. 파도가 높을 때도 낮을 때도, 그리고 해가 뜰 때도, 해가 질 때도 좋아요. 순간순간 변하는 파란 바다를 사랑하고 심지어 깜깜한 바다도 예뻐요.”
 
  그는 살 줄 아는 것 같았다. 그 옆에 있던 40대 초반의 고참 선원이 입을 열었다. 기관실 근무인데 교대하고 쉬는 중이었다.
 
  “저는 선원학교를 나와서 열아홉 살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배를 탔어요. 저는 배에서 낚시를 하는 걸 좋아해요. 닻을 내려놓고 배가 정박해 있을 때면 낚시를 합니다. 1미터 정도 되는 참치를 잡으면 그걸로 배에서 파티를 합니다. 전갱이 같은 건 한 시간에 100마리 이상을 잡아요. 바늘이 줄에 10개씩 달린 걸 바닷속으로 넣으면 바로바로 잡혀 올라오죠. 감성돔도 많이 잡았어요. 그런 재미로 선원생활을 합니다.”
 
  선원 중에는 사진작가 출신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원인 모를 우수가 배어 있었다. 선장에게서 솔직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바다를 동경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을 보면 가난한 집 자식들이 해양대학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걸 국가에서 대주니까요. 해양대학을 졸업하면 일반대학보다 취직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저도 3등항해사로 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마도로스의 얘기를 낭만으로 생각하고 멋있어 하지만, 저는 선원들을 주인공으로 만든 우리의 60년대 영화를 원망합니다.”
 
  의외였다. 모두들 영화배우 장동휘(張東暉)와 박노식(朴魯植)이 파이프 담배를 피워 물고 항구에서 멋진 사랑을 하는 모습에 갈채를 보냈다.
 
  “그런 영화 탓인지 세상 사람들은 우리 같은 선원이 세계로 나가면 항구마다 여자를 찾아가 난잡하게 행동하는 걸로 오해를 하는 거예요. 실제로는 대개 착실해요. 선실에 박혀 토익을 공부하고 책을 읽고 하는데, 사람들은 술집을 찾아다니며 싸우고 술 먹고 여자들과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결혼 적령기가 됐는데도 특히 그런 인상 때문에 여자들이 꺼리는 겁니다. 저도 결혼 무렵에는 6년간 육상근무를 했어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선입견이 존재했다. 선원들의 결혼은 농촌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고 했다.
 
  “선원이란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선장에게 물었다.
 
  “지금은 선박회사가 모두 대기업 소속입니다. 저희는 대기업 직원인 거죠. 땅에서 근무하는 대기업 직원보다 보수가 더 좋은 편입니다. 또 바다 위에서 선장은 독립된 독자적인 지휘권을 갖고 있습니다. 전문성도 갖고 있어서 나이 60세까지는 직장생활이 보장된 셈입니다. 프라이드를 가져도 되는 직업인데, 선원들은 좁은 배 안에서 갇혀 사니까 세상이 더 좋은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어요. 몰라서 그렇죠.”
 
 
  세 노인의 바다여행
 
  어느새 스플렌더호는 동중국해를 지나 남중국해의 5000km를 향해 마지막을 달리고 있었다. 배에 함께 탄 황혼의 두 동행은 바다 위에서도 바쁘게 사는 것 같았다. 책도 읽고, 가지고 온 영화도 보고, 갑판도 산책하고, 국선도(國仙道)도 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부지런한 습성이었다.
 
  서로의 생활에 방해가 될까 봐 손짓하기 전에는 다가가지 않았다. 나그네의 저녁을 맞은 그들과 얘기하고 싶었다. 늙은 세 남자는 남십자성을 찾기 위해 윙브리지로 올라갔다. 남중국해의 밤하늘은 꿈같은 별밭이었다. 떨어지는 유성을 기다렸다. 마음의 우물 바닥에는 아직 동심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퇴직한 지 3년째 된다는 정우성 대사가 말했다.
 
  “공직을 함께했던 많은 동료가 퇴직 후에도 자리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많이 봐요. 지방대 겸임교수에 매달리기도 하고, 연금이 있는데도 계속 돈을 벌려고 하죠. 그게 아니라도 소속될 어딘가를 찾죠. 인생 전반부의 버릇이 뼛속까지 밴 거죠. 저는 이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는 내 몸이라는 배터리에 얼마 남지 않은 생명에너지를 나를 위해 쓰고 싶어요. 이렇게 배를 타고 자유롭게 항해하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는 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덧붙였다.
 
  “자유인이 되어 보려고 지리산 둘레길도 돌아봤어요. 그런데 거기서도 묶여 있는 나를 발견했어요. 한 시간당 몇 킬로씩 하루에 얼마는 걸어야 한다고 계산하는 틀에 박힌 나를 발견한 거죠. 진정한 목표인 아름다운 들꽃이나 푸른 나무에 전혀 시선을 두지 않는 거예요. 정말 나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좀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바다로 나왔는데 결국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내가 만든 틀에 잡혀 버려요. 바람이 부는데도 갑판에서 국선도를 한답시고 물구나무를 서다가 엎어졌다니까요. 같이 온 고등학교 동기 류철호 사장이 여행 중 모든 것을 잊자고 해서 왔는데, 벌써 배 안에서 뉴스를 볼 수 없다고 안달을 내더라고요.”
 
  우리는 공감하면서 하하 웃었다. 어린 코끼리의 다리에 쇠줄을 걸어 말뚝에 매어놓으면 커서 그 줄을 풀어줘도 숲으로 갈 줄을 모르는 것과 흡사했다. 바다 위에서도 결국 관심은 정치 얘기로 가고 있었다. 정우성씨가 말을 계속했다.
 
  “많은 정치인과 권력자들을 봤죠. 이태리 대사로 있을 때 박근혜(朴槿惠) 후보가 이명박(李明博) 대통령과 같이 온 적이 있어요. 우리 집에서 식사를 했죠. 박근혜 후보에게서 받은 인상은 잘 교육받고 자란 양갓집 처녀 같았어요. 함께 온 정치인들 앞에서 권위를 세울 만도 한데 겸손하고 침착한 모습이었어요. 좀 추워하는 것 같아서 집사람이 스웨터를 가져다 덮어줬죠. 먼저 달라고 청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았어요.
 
  제가 외교보좌관을 할 때 문재인(文在寅) 후보는 민정수석이었죠. 관대하고 온유한 분 같았어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모시고 성지순례를 한 적도 있어요. 선물을 살 때는 꼭 이태영(李兌榮) 여사를 챙기더라고요. 제일 비싼 걸로요. 그리고 부인인 이희호(李姬鎬) 여사와는 별개의 주머니를 찬 게 재미있었죠.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비판을 받는 부분도 있지만 나름 철학이 강한 분들이었어요.”
 
  구름 사이로 노란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 빛을 받아 만들어진 검은 바다 위 번들거리는 띠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노무현의 “김정일 주장 일리 있다”는 발언 과정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5월 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페이먼트 호텔에서 재미실업가 이종문 회장, 스칼라피노 교수, 윌리엄 풀러 아시아재단 총재(왼쪽부터)를 접견하고 환담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분이었나요?”
 
  그는 당시 청와대 외교보좌관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특이한 성격을 말해 줄게요. 한미 정상회담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통령이 연설할 때 비하인드 스토리예요. 보통은 연설담당 비서관들이 연설문을 써서 대통령한테 올리는데, 노 대통령이 직접 자기가 쓰겠다고 하는 겁니다. 자기 철학을 담겠다는 취지였죠. 비서진은 매번 고통을 겪어요. 미리 연설문을 받아서 영문으로 번역을 해야 하기도 하고 또 기자들에게 브리핑할 준비도 해야 하는데, 대통령이 비행기를 타고 가는 순간까지도 연설문을 주지 않으면 밑에서는 난리가 나는 겁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할 연설문이 마지막에 내려오긴 내려왔어요. 그런데 그 내용을 보니까 아찔한 거예요. 그대로 나갔다가는 문제가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연설문을 밤중에 반기문(潘基文) 외교부 장관에게 보였죠. 반 장관도 펄쩍 뛰면서 ‘그게 그대로 나가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장관과 외교보좌관인 제가 대통령에게 가서 건의했죠. 대통령은 그러면 연설문 내용을 고쳐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노무현 대통령은 절대 권위로 누르는 일이 없어요. 우리 외교보좌팀은 둘러앉아 밤사이에 열심히 연설을 고쳤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통령이 연설을 할 때였어요. 연설을 하다가 우리가 고친 부분에 이르자, 대통령이 갑자기 말을 딱 멈추는 겁니다. 그리고 잠시 가만히 있더라고요. 청중 모두가 무슨 일인가 하고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었죠.
 
  노무현 대통령이 청중에게 ‘이 부분은 지금 다시 보니까 참모들이 고친 것 같습니다. 제 의견과는 다르네요’하면서 대통령의 원래 의견대로 연설하는데, 말 중에 ‘김정일의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라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게 외신을 타고 나가면서 국내언론들이 막 조져대기 시작했죠. 저는 외교보좌관으로 기자들에게 그 진의를 설명하는 데 진땀을 뺀 적이 있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연설 하나에도 자신의 메시지를 담으려고 했다. 그런 게 살아 있는 연설문이고 진정성을 담은 대통령의 행동이 아닐까.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은 어떤 거였습니까?”
 
  내가 물었다. 많은 얘기가 있었다.
 
  “노 대통령은 나름 특정한 역사책을 많이 보신 것 같아요. 과거의 역사에서 제국주의의 폐해를 많이 읽고, 현실도 제국주의의 연장선이라고 본 것 같아요. 그리고 본능적으로 강한 자한테 저항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아요. 정상회담 때 보면 부시 미국 대통령한테 절대 지지 않고 강하게 대응했어요.
 
  언론에 나지는 않았지만 부시한테 ‘김정일은 나쁘지만 그래도 미국의 입장에서 그렇게 몰지 말라’고 해댔죠. 부시가 노 대통령의 그 말에 ‘그래서 내가 연설할 때 김정일한테 미스터라는 존칭을 붙여주지 않았느냐’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은 나 같은 외교부 직업관료 출신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엘리트 출신이고, 너무 친미 쪽에 기울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盧,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의심 안 해”
 
  “노무현 대통령은 왜 바위에서 떨어져 자살했죠?”
 
  내가 물었다. 외교보좌관을 지낸 그는 대통령을 잘 알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진실을 들을 수 있는 귀한 자리였다.
 
  “결국은 자존심을 이기지 못해서 돌아가신 거라고 봐야죠. 가족이 돈을 받아 그게 문제가 되고 검찰수사가 시작됐는데, 솔직히 아이들 유학 보내고 집 사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 난 이해가 가요. 미국의 집이 화려하다고 언론에서 떠들었는데, 보통 집보다는 괜찮지만 미국 기준으로 치면 그렇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권양숙(權良淑) 여사도 세상에서는 뭐라고 하지만, 저는 괜찮은 분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사이에 어떤 앙금이 있는 걸로 세상에서는 생각하는데, 그게 뭔가요?”
 
  “있죠. 사실 한미 FTA를 성사시키기로 한 건 노무현 대통령이죠. 그 시절 이미 모든 게 다 되어 있었어요. 사인만 하지 않은 거지. 노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는 조금도 광우병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미국 사람도 다 먹는 쇠고기인데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는 거였죠. 30개월 이하가 안전하다느니 뭐니 얘기하는데 전혀 그런데 개의치 않았죠. 그런데 재야의 반미감정과 축산농민 때문에 정치적으로 얽혀서 그런 뜻을 나타낼 수 없었던 겁니다.
 
  그 문제를 이명박 정권에 넘긴 거죠. 이명박 정권은 섭섭하죠. 정권 초에 광우병 시위 때문에 엄청나게 당한 거 아닙니까? 미국의 대통령을 보면 참모진과 끈끈한 의리와 정이 있어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합심해서 방어하기도 하고 치고 나가기도 하죠.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그런 팀워크가 없는 것 같았어요. 나서겠다는 장관도 없고, 대통령에게 과감히 대책방안을 조언해 주는 사람도 없어 보였어요.
 
  이명박 대통령이 단호했더라면 문제가 바로 해결될 수도 있었죠. 시민들 앞에 나서야 했어요. 그 과정에서 계란 세례를 받는다거나 폭력사태가 있었다면 바로 문제가 끝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대통령이 주저했죠. 그 바람에 정권이 휘청거리고 지지율이 폭삭 주저앉지 않았습니까? 대통령 혼자였지, 팀워크가 있었던 게 아닌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심 노무현 대통령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겠죠. 그런데 이번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문제에 휘말렸어요. 가족이 돈을 받은 것 때문에 수사가 시작된 거죠. 사실 이 대통령이 너무 그러지 말라고 검찰에 지시하면 될 텐데, 광우병 때 앙금이 있어서 그런지 내버려둔 거죠. 자존심이 강한 노 대통령이 평소에 과시하던 도덕성이 훼손되니까 어땠겠어요? 스스로 견딜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돌아가셨다고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은 어땠나요?”
 
  “청와대라고 하면 신비하게 생각하지만, 대통령의 생활이 특별히 화려하거나 대단하게 보이지는 않았어요. 노 대통령은 여가시간에 책을 많이 읽는 편인 것 같았어요. 그런데 저 같은 직업외교관 출신하고는 독서방향이 많이 틀렸죠. 제 경우는 매일 일어나 《뉴욕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를 읽죠. 거기 나와 있는 칼럼이나 사설들을 봐야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는 게 뭔지를 알 수 있으니까요. 노 대통령은 좋아하는 분야의 책만 골라 거기 몰입하는 성향이 있더라고요. 우리 참모진은 그걸 독학한 사람들의 특징으로 봤죠. 소수파와 이질적인 내용을 대통령이 너무 열심히 보는 것 같았어요. 대통령은 절대로 《조선일보》를 보지 않았어요. 그것도 고집이죠. 권양숙 여사가 대신 읽고 식사 때 얘기해 준 걸로 압니다.”
 
  “퇴임 후 봉하마을로 내려간 의미는 뭡니까?”
 
  “좋은 취지였죠. 역대 다른 대통령이 서울에 머물면서 정치에 훈수를 두려고 하는 모양이 좋지 않았다는 거죠.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도 봉하마을 내려가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한마디씩 툭툭 던졌어요. 그게 따지고 보면 정치적 발언이죠. 결국 봉하마을로 간 취지가 실종된 면이 있다고 저는 봅니다.”
 
  “평생 외교관을 하셨고 대미(對美) 관계에 기여를 하셨는데, 미국은 어떤 나라라고 보십니까?”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죠. 그렇지만 정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성향인지, 좋은지 나쁜지는 말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부시 같은 사람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럼스펠드도 마찬가지고, 그러나 콜린 파월 같은 사람은 신중론자이고, 좋다고 봅니다.”
 
  개결(介潔)한 자존심이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았다. 바다 위에서 의외로 역사 이면의 모습을 살짝 들여다본 것 같았다.
 
  평택항에서 출발한 5000km의 항해가 끝나가고 있었다. 싱가포르항이 안갯속에 꿈같이 희미하게 보였다. 스플렌더호는 멈출 듯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멀리서 우리를 데려갈 작은 배가 물결을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었다. 방에서 같이 얘기했던 선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변호사님이 우리랑 같이 인도양을 지나면서 해적을 만나보면 좋은 경험이 될 텐데….” 지난 10월 2일부터 일주일 동안 많은 걸 얻은 바닷길이었다.⊙
조회 : 12258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1912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도서출간 배너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