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窓日記] 옆에서 지켜본 〈PD수첩〉재판 : 월간조선

2010년 1월 20일 오전 11시 서울 형사지방법원 519호 법정. 주변까지 꽉 들어찬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는 법정이었다. 복도에서 서성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빨갱이 판사는 물러나야 해.”

다른 사람들도 흥분해서 제각기 한마디씩 하고 있었다. 선고(宣告)가 되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법정에 난입이라도 할 기세였다. 그런 북새통 속에서 웅얼거리는 단독판사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많이 오셨네요, 일절 판결의 선고를 방해하거나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새 법원은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PD수첩〉 제작진 측 변호사도 꽉 찬 시위대 때문에 법정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손을 귀에 대고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판사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복도 한쪽에는 법원 경비원들이 줄을 서 있었고 정체불명의 젊은 사람들도 보였다. 웅얼거리는 판사의 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고 그날의 상황이 기억 저편에서 푸른 안개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PD수첩〉의 선동

2008년 4월 29일 밤, MBC TV는 〈PD수첩〉을 방영하고 있었다. 음산하고 지저분한 미국의 한 도축장에 쓰러진 소가 있었다. 언뜻 광우병(狂牛病)이 연상됐다. 찢어질 듯한 금속성 절규가 들리고 한 여대생의 장례식 장면이 나타났다. ‘인간광우병에 걸려서 죽었다’는 자막이 나오고 있었다.

자료화면이 뜨면서 “한국인은 MM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4%”라고 했다. 방송은 광우병위험물질이 들어 있는 소의 내장이나 척수가 한국인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그걸 막았어야 할 민동석(閔東石) 대표가 다시 화면에 나와 엉뚱한 말을 지껄였다.

“쇠고기는 안전합니다. 위험부위의 물질만 제거하면 복어의 독을 제거하고 걱정 없이 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말이죠, 비행기를 탈 때도 항공사고가 치명적인데 그런 걸 생각하면 탈 수 없는 거죠.”

뻔뻔스런 변명이었다. 그가 과연 어느 나라의 협상대표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 모습을 곱지 못한 시선으로 보던 진행자가 이렇게 결론지었다.

“과거 친일(親日)매국노처럼 오늘 특히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역사에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지 않은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PD수첩〉의 정보가 바이러스처럼 사회전반에 퍼져나갔다. 인터넷의 아고라광장은 사람들을 덩어리로 진짜 광장에 나오게 했다.

학생들까지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에게 덤벼들었다. 쇠파이프와 망치를 든 시위대가 경찰버스를 파괴했다. 현장에 나온 장관이 멱살을 잡힌 채 안경이 날아가고 폭행을 당했다.

내 친구 민동석

지난 1월 20일 MBC 〈PD수첩〉 제작진에게 무죄가 선고된 뒤 고발자인 閔東石 전 농림수산식품부 정책관(가운데)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 무렵 조그만 식당에서 쇠고기 협상대표였던 민동석을 만났다. 그는 고1 때부터 친한 친구였다. 대학 졸업 후 절과 고시원에서 같이 고생을 했다. 그는 공부할 돈이 없어 작은 무역회사에 취직을 했다. 사장은 그를 혹사시켰다.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던 그가 마침내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외교관이 됐다. 그리고 30년 가까이 흘렀다.

어느 날 그는 자기가 드디어 협상대표가 되어 값싸고 질 좋은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오게 됐다고 자랑했다. 고시원 시절엔 쇠고기 두 근으로 50명이 국을 끓여 먹었다. 쇠고깃국을 먹는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협상대표가 된 그를 보고 나는 걱정했다. 정치적 희생양이 될 위험한 자리 같았기 때문이다. 반미감정이 농후한 사회 분위기도 마음에 걸렸다.

그러면서도 그가 굳이 그 위험한 자리를 맡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공무원에는 학연(學緣) 지연(地緣) 등과 같은 배경에 따라 출세가 보장된 부류와 그렇지 못한 부류가 있었다. 주류(主流)가 아닌 그는 격전지에서 몸으로 때우면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갔다. 그렇지만 그는 출세를 위해 양심을 파는 그런 종류의 인간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모자를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도망다니고 있었다. 그가 허탈한 얼굴로 휴대폰을 주면서 말했다.

“나를 저주하는 글들인데 한번 봐.”

문자메시지들이 화면에 떠올라 있었다.

‘친일파 이완용 같은 놈아, 광우병 걸린 미국 쇠고기를 너하고 니 가족이나 처먹고 뇌에 구멍이 뚫려서 뒈져라….’

하나같이 저주들이었다.

나는 내막을 알고 싶어 물었다. “화면은 광우병과 관계없는 젖소 동물학대를 고발하는 장면이다”, “(죽은 미국인의) 사인은 인간 광우병이 아니다”,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거의 0%”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008년 7월 〈PD수첩〉의 왜곡을 인정하고, MBC에 시청자사과명령을 내렸다.

정치적 희생양이 된 민동석 쇠고기 협상대표가 2009년 3월 〈PD수첩〉 제작진을 상대로 고소를 했다.

민동석은 담당판사에게 이런 의견서를 올렸다.

<〈PD수첩〉은 50분 방송 동안 30곳 이상을 조작, 변조, 왜곡, 과장을 했습니다. 일본의 NHK 같으면 단 한 군데 오보가 있어도 사장의 자리가 위태롭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러나 〈PD수첩〉의 제작자들은 그중 몇 마디만을 교묘하게 왜곡시켜 저를 매국노로 만들어 버리더군요. 엄청난 모욕과 비난의 돌멩이들이 저와 가족에게 날아들었습니다. 지금도 인터넷광장의 바닥에 나뒹구는 몇 개의 댓글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바로 너! 민똥석 너는 역사와 민족의 이름으로 매국노라 부르리라”, “저런 놈하고 사는 마누라 년 상판대기 한번 보고 싶네…퉤.”(중략)

저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결실을 얻어냈습니다.(중략)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해도 제 양심에는 한 점의 거리낌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공무원이기 때문에 방송이 뭐라고 해도 세상이 돌멩이를 던져도 그냥 맞아야 합니다. 저는 이번 사건에서 PD수첩의 악의를 적나라하게 봤습니다. 작가는 이메일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아빠가 국민들 모두 죽이려고 한단 말인가요?”

‘이명박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를 때’

이 한마디는 방송의 저의를 한마디로 웅변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담당 PD가 선동되어 나온 국민들이 모인 시청 광장에서 함께 온 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지요.

“김 여사, 현장에 나와 보니 소감이 어때?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눈에 보여? 이제 만족해?”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니 만족 못해.”

저는 이들의 대화 속에서 그들이 가진 악의를 적나라하게 느꼈습니다. 재판장님께서는 어떠신지요?

그들의 선동 앞에서 대한민국이 어이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대통령이 머리를 숙였습니다. 총리와 장관들이 일괄사표를 냈습니다. 왜 내야하는지 모르면서 저도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안 딸의 눈에서 하얀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딸이 저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아줌마들이 수군대는 말을 들었어요. 미국 쇠고기 먹으면 다 미쳐서 죽는다는 거예요. 우리 아빠가 국민들 모두 죽이려고 한단 말인가요? 도대체 아빠를 위해서 진실 한마디를 용감하게 해 줄 사람이 대한민국에는 단 한 사람도 없단 말인가요?”(중략)

이제 쇠고기 협상도 촛불시위도 아득한 먼 옛날의 일로 잊혀 갑니다. 아무도 그걸 기억하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공직이 보람이었던 저는 들판에 내버려진 폐기된 자동차 같은 신세가 되어 있습니다. 법정에 선 〈PD수첩〉의 제작진은 영웅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간곡히 희망합니다. 이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봐 주십시오. 사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堡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판사라는 자리는 사회의 십자가를 져야 하는 숭고한 자리일 것입니다. 법치주의의 한계 안에서 어쩔 수 없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지만 재판장님은 그 본질을 꿰뚫고 있으시리라고 확신합니다. 현명한 판단을 지켜보겠습니다.>

2008년 6월 10일 광우병 촛불시위 현장에 나간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원 안)은 시위대에 둘러싸여 봉변을 당했다.

鄭雲天 전 장관의 증언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전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인 정운천(鄭雲天)이 증언석에 나와 앉았다. 검사가 물었다.

―증인은 장관으로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발생가능성에 대해 검토하셨을 텐데 어땠나요?”

“서울대 전염병위원장인 이영순 교수와 깊이 있게 얘기했는데 광우병은 5년에서 10년 사이에 사라진다고 했고 광우병의 원인도 동물성 사료(飼料)를 먹였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스웨덴에서는 동물성 사료를 먹이지 않았기 때문에 광우병 걸린 소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이미 미국에서 1997년부터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가 취해졌고 지난 10년간 광우병소가 발생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이 정도면 국민건강에 위해가 없을 테니 협상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PD수첩〉의 광우병 방송 후 장관인 증인을 향한 수많은 욕설이 인터넷에 게재된 사실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저를 사형시키자는 얘기도 있었고 국민의 생명건강을 팔아먹은 역적 매국노로 몰렸습니다.”

이어서 〈PD수첩〉 측 변호사가 증인으로 나온 정운천 전 장관의 말을 반박하기 시작했다.

―증인. ‘사전(事前)예방의 원칙’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어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관련 논문 중에 나온 내용 같았다.

“예?”

증인으로 나온 정운천 전 장관이 갑자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사전예방금지의 원칙. 그거 압니까?

〈PD수첩〉 측 변호사는 주무(主務)장관이 그런 기본적인 사항도 모르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장관의 무식과 정책집행의 소홀함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같았다.

“앞 뒤 다 빼고 그렇게 물으시면….”

정운천 전 장관이 불만인 듯한 어조로 항의했다.

―광우병이 5년에서 10년 사이에 없어진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식인종(食人種)의 뇌를 검사한 결과 뇌에 구멍이 뚫리는 병이 사라졌는지 여부를 보려면 40년에서 50년은 지켜봐야 한다는데 알고 있나요?

“모릅니다.”

―노벨상 후보자인 스위스의 아구치 교수는 인간광우병의 경우 긴 잠복기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40년은 지켜봐야 한다고 했는데 그거 알고 계세요?

변호사는 전문적인 논문 지식을 가지고 장관을 놀리는 것 같았다. 정운천 전 장관이 제정신이 돌아온 것 같았다. 그가 이렇게 되받아쳤다.

“퓰리처 상을 받은 리처드 로즈는 <죽음의 향연>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벼락 맞을 확률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보다 높다고 했습니다. 광우병은 곧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논리와 기교의 싸움

―광우병이 몇 년 내에 사라진다는 생각으로 그 타결에 임하는 것이 ‘사전예방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나요?

“100% 안전한 것이 없기 때문에 무시할 만한 수준이면 무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경우 1996년 이후에 태어난 소에게서 광우병소가 21마리나 발견된 걸 알고 있나요?

〈PD수첩〉 측 변호사가 다시 물었다. 정 전 장관이 1997년 이후 미국에서 광우병소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얘기한 데 대한 역(逆)공격이었다.

“21마리가 아니라 29마리로 기억합니다.”

증인인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수치까지 정정해 줬다.

―증인은 일본과 캐나다의 광우병 검사비율이 어떤지 알고 있죠?

변호사는 철저히 준비한 듯 다시 허점을 뚫고 들어왔다.

“일본은 전수(全數)검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캐나다의 경우는 모릅니다.”

그 말에 변호사가 다시 물었다.

―1억 마리 중 광우병이 1마리 나올 수 있는데 0.1%만 검사하면 안 나올 수도 있지 않나요?

“전수검사를 하니까 일본에서는 돈이 많이 들어 후회하고 있다고 합니다.”

장관이 되받아쳤다.

―미국의 연구권위자 감베티 박사는 미국의 광우병 검사비율이 0.1%에 불과해서 극히 우려할 만하다고 하는데 아세요?

“기억이 없습니다.”

정 전 장관은 논리와 기교의 싸움에서 밀리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들을 보면서 이 사건은 철저한 논리와 기교의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D수첩〉 측은 법원에 제출한 변론(辯論)요지서를 통해 “〈PD수첩〉보도는 국가기관의 업무수행이 정당했는지에 관한 것이지, 자연인으로서의 민동석이나 정운천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이라는 공무가 정당하게 수행되는지를 감시 비판하는 것은 언론의 정당한 몫이다”라고 주장했다.

〈PD수첩〉 측은 “검찰이 의도적인 자막 왜곡이라 주장하는 것들은 해당 발언의 진의(眞意)를 살린 제작진의 정당한 의역이거나 긴박하게 진행된 제작 과정 중 불가피하게 걸러지지 못한 실수일 뿐”이라면서 “검찰이 의도적인 왜곡으로 몰아가는 것은 방송제작과정에 대한 몰이해와 정치적 의도에 의한 방송 흠집내기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근무하지 않고 계속 재판정에 나오셔도 되는 거예요?”

2009년 12월 2일 오후 2시경 서울 형사 지방 법원 519호 법정에서였다. 쇠고기 협상대표였던 민동석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되고 있었다. 〈PD수첩〉 제작진 측 변호사와 민동석 사이에 다섯 시간의 치열한 설전(舌戰)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방청석 끝에 앉아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검사가 증인으로 나온 민동석에게 먼저 물었다.

―PD수첩 방송 이후 사직서를 제출하셨는데 그 이유는 뭡니까?

“제가 협상을 잘못해서 사직서를 제출한 건 아닙니다. 〈PD수첩〉의 방송 때문에 거의 죽음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대통령은 사과를 하고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장관이 사퇴를 하고 제가 공직자로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위산에서 뛰어내리고 싶었습니다.”

그의 쉰 목소리는 착 가라앉은 듯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어서 PD수첩 측 변호사가 민동석에게 묻기 시작했다.

―증인은 아직 공무원이시죠?

“그렇습니다.”

“사직원은 그때 수리가 안됐나 보죠?”

조금은 얄미운 질문이었다.

“예….”

민동석은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것 같았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오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어색해 한다. 변호사가 질문을 계속했다.

―근무하지 않고 계속 재판정에 나오셔도 되는 거예요?

그건 힐난과 빈정거림이었다.

“…”

민동석은 가만히 있었다.

―방송에 나온 쓰러진 소가 광우병에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 확실히 아십니까?

“그건 광우병소가 아닙니다. 이미 확인된 사실입니다.”

“혹시 0.0001%라도 걸렸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합니까?”

대답하기 곤란한 난처한 질문이었다. 긍정을 하면 쓰러진 소는 광우병위험성이 있는 소가 되고 방송의 보도는 허위에서 진실로 바뀐다. 〈PD수첩〉 측은 ‘사전예방의 원칙’을 내세우면서 1만분의 1의 가능성만 있어도 국민건강을 위해 보도한 방송내용은 정당성을 부여받게 된다는 논리였다. 민동석이 되받아쳤다.

“증인이 그 소를 해부해 본 것도 아닌데…”

“그렇게 가정(假定)을 해서 질문하시면 안되죠. 그건 말장난이죠.”

―말장난이요? 증인 이 자리는 하고 싶으신 말 하러 나온 자리가 아니에요. 우리가 물어보는 거 대답하러 나온 거예요. 제가 알고 싶은 것만 대답하시면 돼요.”

변호사가 찍어 눌렀다. 민동석이 한풀 꺾여 대답했다.

“쓰러진 소가 확실히 광우병은 아닙니다. 이미 계류장에 들어온 소는 검사를 통해 다 걸러진 소입니다. 이미 농장에서부터 체크가 됩니다. 그리고 광우병 소는 자극을 주면 흥분해서 날뛰는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방송에 나왔던 그 소는 전기충격을 줘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까?”

―증인이 그 소를 해부해 본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절대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까?

〈PD수첩〉 측 변호사가 다시 물고 늘어졌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PD수첩〉이 광우병이 아닌 소를 광우병이 걸린 것처럼 조작해서 여론을 몰아간 게 이 사건의 핵심이 아닙니까?”

〈PD수첩〉 측 변호사는 쟁점을 다른 방향으로 틀고 있었다. 단독판사인 재판장은 〈PD수첩〉 측의 궤도이탈을 제지하지 않았다. 엉뚱한 가정과 상상이 재판의 중심에 들어와 섰다. 동영상 속의 젖소가 만에 하나라도 광우병에 걸렸을지도 모르지 않느냐는 것이다. 법대위에 놓인 문제가 슬며시 바뀐 것이다. 증인으로 나온 민동석은 당황한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잠깐만요.

그때 재판장이 나섰다. 재판장이 경직된 표정으로 민동석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증인이 그 당시 동영상에 나와 있는 소에 대해 검사를 한 적 있어요?

‘직접 가서 검사해 보지도 않고 왜 아는 척하느냐’는 뉘앙스가 들어 있었다. 노골적으로 〈PD수첩〉 측 변호사와 함께 추궁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판사가 이어서 경고했다.

“증인은 말이죠, 직접 알지 못하는 내용에 대해서 마치 사실인 것처럼 말씀하시면 위증(僞證)의 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법정에 처음 나오는 증인에게 그건 협박으로 들릴 수도 있었다. 재판장의 말 한마디에 방청석이 술렁거렸다. 방청객 중 한 명이 말했다.

“말도 안돼, 재판장이 어떻게 저렇게 물을 수 있어? 이 재판 더 볼 것도 없네.”

증인으로 나온 민동석은 재판장의 행동에 완연히 당황하고 있었다. 협상대표로서는 실무자들이 가져오는 보고서로 확인했을 것이다. 그가 직접 눈으로 봤을 리가 없다.

〈PD수첩〉 측과 한편이 된 재판장

〈PD수첩〉 제작진에게 무죄를 선고한 문성관 판사.

그걸 모를 리 없는 재판장의 질문 의미는 분명한 것 같았다. 선입견(先入見)이 있더라도 그렇게 드러내놓고 재판진행을 하지는 말아야 했다. 민동석이 재판장에게 볼멘소리로 조심스럽게 항의했다.

“이 재판의 본질이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자기를 매국노라고 하면서 명예를 훼손한 점을 고소했는데 재판장이 왜 그러시느냐’는 뜻이었다. 재판장이 불쾌한 듯 되받아쳤다.

―방송 당시 제작진이 방송내용의 허위성을 인식했느냐가 재판내용에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어요. 그래서 물어보고 있는 겁니다.

“이미 고등법원에서 거짓이라는 판결이 났고 재판 중에 허위가 다 드러났잖아요?”

증인 민동석은 재판장의 심기를 건드렸다.

―네, 알겠습니다.

재판장은 언짢은 얼굴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듯 간단히 끊었다. 다시 증인신문이 계속됐다. 〈PD수첩〉 측 변호사가 물었다.

―2008년 쇠고기협상 표결 당시 아레사 빈슨이라는 미국 대학생이 광우병 의심 진단을 받은 상태였죠? 그렇다면 그때 협상을 기다려 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국가 간의 협상에서는 불투명한 상황을 가운데 놓고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 쇠고기 협상은 노무현(盧武鉉) 정부에서 결정한 것을 정치적인 이유로 이 정부로 넘긴 겁니다. 저는 타결을 하면 하고 안 하면 안 했지 그걸 끌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민동석은 내게 노무현 정권 때 쇠고기문제는 이미 끝이 났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시 미 대통령에게 전화까지 걸어서 미국 측 조건을 승낙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 문제가 대통령선거 때문에 이명박 정권으로 넘어온 것이라는 얘기였다.

미국 측 협상대표 헬렌은 “대통령이 약속했는데, 왜 대표가 협상을 지연시키느냐”고 화를 내면서 각서까지 쓰라고 했다. 그래도 그는 버텼다고 했다. 대통령의 말보다 중요한 건 국민의 건강이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문제도 많았다. 그는 협상의 최전선에서 쇠고기뿐만 아니라 쌀도 감귤도 돼지고기도 닭고기도 막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무조건 다 막기는 불가능했다. 미국은 자기네 농축산물을 한국이 사 먹어야 한국 자동차에 대해서 관세를 철폐하겠다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섬유부문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자동차나 휴대폰을 팔아먹기 위해 농축산물을 개방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협상대표인 그의 입장은 어떻게 하면 피해를 최소화하느냐는 정도였다.

―인간광우병이 발생했다고 해도 협상과 관계가 없다는 겁니까?

〈PD수첩〉 측 변호사가 그 점만을 다시 물었다. 수석대표가 쇠고기의 위험성도 모르고 부실협상을 했다는 쪽으로 몰아가는 것 같았다.

“그런 의심은 〈PD수첩〉의 얘기겠지요. 그리고 가정을 해서 자꾸 이야기하지 마세요. 아시겠지만 미국에서 쇠고기 먹고 인간광우병에 걸린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법정에서 가정을 가지고 얘기합니까? 광우병은 뇌를 부검해야 나중에 확실히 아는 겁니다.”

발언을 봉쇄당한 민동석

죽은 미국 여대생은 인간광우병이 아니었다는 것이 후일 밝혀졌다. 〈PD수첩〉에서도 그 사실을 시청자에게 알렸었다. 공소사실들이 잘게 토막 쳐진 후 가정과 기교적인 논리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았다. 〈PD수첩〉 측 변호사가 질문을 계속했다.

―만약 아레사 빈슨이 인간광우병으로 확진이 되었다면 위험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나요?

“만약은 무슨 만약입니까? 죽은 미국여대생이 인간광우병이 아닌 걸 〈PD수첩〉이 거짓으로 선동해서 그런 건데요.”

―잠깐 정리하고 갑시다.

재판장이 다시 중간에 나서서 말을 끊었다. 재판장이 민동석 대표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증인은 쇠고기 협상대표로서 당시 아레사 빈슨이라는 여성이 인간광우병으로 확진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나요?

저의가 의심스러운 질문이었다. 이미 어떤 단정을 해놓고 몰아가는 질문 같았다.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미국 관계당국에서 사인을 조사 중에 있었으니까요.”

증인 민동석의 대답이었다. 판사가 다시 증인에게 다그쳤다.

―그러니까 결국은 아레사 빈슨의 사인이 인간광우병으로 진단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아니라니까요. 그건 미국 관계당국이 조사 중이었기 때문에 그 조사결과를 기다려봐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판사는 묵묵히 양측의 주장을 지켜보고 판결을 하면 된다. 그러나 나의 눈에는 직접 뛰어들어 변호사와 함께 막다른 골목에 이른 증인을 냅다 몰아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증인으로 나온 민동석 협상대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거의 봉쇄당했다. 말을 해도 중간에 제지당했다. 그의 증언은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교묘하게 바뀌고 있었다. 참고 참던 그가 어느 순간 분노가 폭발했다.

“당신들이 미워하는 건 대한민국”

“당신들!”

그가 눈을 부릅뜨고 〈PD수첩〉 제작진이 있는 쪽을 향했다.

순간 〈PD수첩〉 제작진은 그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당신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야!”

민동석이 쉰 목소리로 분노해서 소리쳤다. 민동석은 분노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 한 발 더 나아갔다. 검사들이 깜짝 놀라 민동석을 말렸다. 민동석은 뭔가 말하려다 자제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다시 그가 한 수위 낮추어 말했다.

“당신들이 제일 미워하는 걸 알아. 그건 대한민국이야.”

의미가 포함된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PD수첩〉 제작진의 모습을 보았다. 그중에는 미동도 하지 않고 도전적으로 민동석을 마주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어때’ 라고 얘기하는 듯했다. 제작진 중 다른 사람은 눈을 감고 고개를 좌우로 심하게 흔들기도 했다. 그렇지 않다는 강한 부인 같았다. 제작진 내부에서도 그들은 생각이 다 똑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법정의 허공에 가득 찬 수사적 기교보다 나는 차라리 민동석의 격정이 훨씬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에 민동석은 그 발언이 공판기록에 전혀 쓰여 있지 않더라고 말했다. 재판장이 의도적으로 뺐다는 얘기였다. 재판정에서의 말이나 행동은 일방적으로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재판장이 필요로 하는 부분만 기록에 남기기 때문이다.

민동석의 그런 발언에는 나름 근거가 있는 것 같았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속에 작가의 이메일이 있었다. 그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이명박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를 때’

사랑과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증오가 원동력이다. 또 작가의 메모에 ‘일 년에 한두 번쯤 필(Feel)이 꽂힐 때 그런 방송을 만든다’고 했다. 그들은 사랑이 아닌 증오의 바이러스를 세상에 퍼뜨리고 있었다. 그런 증오의 바이러스가 대중의 집단행동을 일으키고 정치적 힘을 이루어 마침내 대통령을 굴복시켰다.

“그런 식으로 하면 방송제작하기 힘들어요.”

정지민은 이화여대와 한국외국어대학 그리고 영국유학을 한 인물로 영어를 모국어나 다름없이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PD수첩〉 프로그램의 번역자로 참여했었다. 그는 〈PD수첩〉의 왜곡과 조작을 얘기한 유일한 증인이었다. 그가 검찰과 법정에 나와 증언한 중요한 내용은 대략 이랬다.

<나는 〈PD수첩〉 측에서 제공한 동영상을 보게 됐다. 휴메인소사이어티라는 단체가 위장잠입해서 찍은 젖소에 대한 동물학대 장면이었다.

번역을 위해 미국의 뉴스와 보도자료, 웨스트 홀마크사 청문회 및 쇠고기 리콜 등을 다룬 자료를 봤다. 홈페이지를 통해 동영상 속의 젖소들이 칼슘부족으로 쓰러지는 증상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자료들을 공부하면서 광우병과 인간광우병(vCJD)이 어떻게 다른지도 알게 됐다.

아레사 빈슨이라는 미국 여대생의 죽음과 관련된 장면도 봤다. 그와 관련된 미국 보건당국의 공문내용도 봤다. 아레사 빈슨의 사인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인간광우병을 의심하는 얘기가 나왔지만 전문가는 그런 게 아니라는 뉘앙스로 자신 있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맡은 번역감수 작업은 제작진이 방송에 내보낼 부분으로 골라낸 영어문서 및 영상물 부분과 번역가들이 번역한 내용들이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는 작업이었다.

제작진 중의 한 사람인 보조작가가 동영상을 보면서 ‘광우병소’라고 지칭하는 걸 보고 얼굴을 찌푸리면서 ‘그건 좀 아니다’라고 했었다. 동영상은 젖소에 대한 동물학대 행위였기 때문이다. 진짜 광우병에 걸린 소는 일으켜 세울 수 없었다. 영상에 나타난 관계자의 말은 일으켜 세울 수 없는 소는 총을 쏴서 폐기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광우병소가 섞여 도축될 우려는 없는 것이다.

내 의견에 대해 제작진인 보조작가는 “그런 식으로 하면 방송제작하기 힘들어요”라고 대답했다. 방송 자체가 과장을 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오역이 발견됐다. 동영상 속에서 ‘그래거’라는 인물이 ‘젖소’라고 말한 부분이 ‘이런 소’라고 번역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젖소라는 영상 속의 단어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초벌번역을 한 것 같았다. ‘이런 소’라고 번역하지 말고 ‘젖소’라고 정확히 번역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영상 속의 전후 문맥을 보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젖소가 도축되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취지였다. 영상 속의 인터뷰 내용도 전혀 다르게 번역되어 있었다. 인부들에게 동물학대에 대해 질문하는 내용들이 자막에는 ‘광우병우려소를 왜 일으키느냐’로 바뀌어 있었다. 동물학대라는 구체적 혐의를 ‘광우병우려’라고 바꾸고 있었다.

그 영상을 가지고 광우병을 논하기는 무리였다. 그래서 ‘광우병소와 연계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다시 말하면서 제작진에게 그 사실을 전해달라고 했다.

나중에 〈PD수첩〉 프로그램을 봤다. 사회자가 젖소의 동물학대 장면을 보면서 ‘광우병소’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내가 말한 부분을 제작진이 반영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광우병에 걸린 소’라는 단정적인 멘트는 상상할 수 없었다. 아레사 빈슨의 경우도 인간광우병으로 단정한 자막이 나오고 있었다.

촛불시위가 터지고 〈PD수첩〉 제작진의 사과가 있었다. 제작진이 번역자인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에 분노를 느꼈다. 해명하는 태도가 정정당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다. 검찰에 가서도 사실대로 얘기했다.>

판사, “증인은 광우병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이게 법정에서 한 그의 핵심 증언내용이다. 앞뒤 얘기들이 대체적으로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증인신문조서를 보면 재판장이 중간에 끼어들어 정지민에게 이런 질문을 한 게 보인다.

―증인은 광우병에 대해서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전문가라야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재판장은 증인으로 나온 민동석에게도 직접 도축장에 가서 검사를 했느냐고 따졌었다. 재판장은 어떤 선입견을 가진 상태에서 증인들을 부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영국에 거주하면서 광우병 관련 여러 보도를 들었기 때문에 그 당시 일반 시청자들보다는 조금 더 알았을 것입니다.”

―동영상을 보고 광우병소가 도축될 수가 없다고 확신한 건가요?

“광우병소가 섞여 있었다면 폐기가 됐을 겁니다. 영상 속 휴메인소사이어티 관계자의 말은 전기충격이나 동물학대를 해서 일으켜 세울 수 없는 소의 경우 총으로 쏴서 폐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는 소는 전기 충격기에 의해서도 설 수가 없다는 겁니까?

“진짜 광우병에 걸린 소는 일으켜 세울 수 없습니다.”

증인신문조서를 보면 〈PD수첩〉 측 변호사가 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애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 몇 가지를 보면 이랬다.

―한 번 쓰러진 소는 다시 도축되기 힘들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뭡니까?

언뜻 보면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질문 사항을 살짝 뒤틀었다. 증인 정지민이 그걸 바로 잡으면서 대답했다.

“정확히 말하면 한 번 쓰러진 소가 도축되기 힘든 것이 아니라, 한 번 쓰러진 후에 인위적인 방법으로도 일으켜 세우지 못하는 소는 도축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죠?

“영상에 나와 있습니다. 휴메인소사이어티가 인정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증인은 이 사건과 관련해서 <나는 사실을 존중한다>라는 제목의 책을 발행한 사실이 있지요?”

“저는 공부하기 위해 한국을 떠날 사람입니다. 제가 겪은 일을 기록하고 싶었고 사건이라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곡해될 수 있기 때문에 역사학도인 저의 입장에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정지민 vs. 변호사

〈PD수첩〉의 번역왜곡을 고발한 정지민씨.

―증인은 이 사건 보도의 어떤 부분이 의도적 과장이고 왜곡이라고 판단하나요?

“예를 들면 ‘동물학대 혐의를 받은 인부들에게 물었더니’라는 내용을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바꾸거나 아레사 빈슨의 사망원인을 인간광우병으로 단정하는 것은 단순히 방송을 잘해 보자는 의욕과는 반대방향인 것 같았습니다.”

―증인이 보기에 이 프로그램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위험이 굉장히 크다는 취지라고 생각합니다.”

―증인은 ‘사전예방의 원칙’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요?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예방 쪽으로 가자는 것이지요? 증인은 책에서 아레사 빈슨이 인간광우병 케이스일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였다고 했는데 그 근거가 뭐죠?”

“현지보도와 문서 번역내용을 보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현지보도를 종합해 보고 버지니아 보건당국의 공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PD수첩 측은 재판에서 어떤 경우도 만분의 일만 가능성이 있으면 방송을 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만분의 일%는 0%와 같다. 그건 무슨 의미일까. 이제 선고만 남게 됐다.

나는 선고 법정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판사의 판결이유가 나오고 있었다.

“증인 정지민은 방송제작과정에 참여한 바 없습니다. 보조작가 외에는 제작진을 만난 일도 없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제작 의도나 제작과정, 취재 내용 등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정지민의 진술은 믿기 어렵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검찰의 공소사실을 떠받치고 있던 유일한 증언이 뭉개졌다. 개별진술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는 없었다. 증인이 있어도 판사가 안 믿겠다면 증거는 없는 것이다. 그만큼 판사의 권한은 막강했다. 재판장이 계속 말하고 있었다.

“재판부는 일반 시청자가 보았을 경우의 인상을 고려하면서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보도의 의미는 광우병 의심이 있는 다우너 소들이 불법적으로 도축이 되어 식용으로 유통되었다고 보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동영상 속에 등장하는 다우너 소들이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단정할 수 없고, 따라서 PD수첩 제작진이 동영상 속에 나오는 다우너 소들을 ‘광우병 의심소’라고 보도하였다고 하여 이를 허위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PD수첩〉은 ‘광우병소’라고 방송했고, 이에 대해 정정과 사과방송까지 있었다. 그런데 판사는 그걸 ‘광우병 의심소’로 살짝 틀었다. ‘0.0001%의 위험성만 있어도 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사전예방의 원칙’을 들먹인 변호사의 전략이 먹혀들었다.

“광우병에 걸렸을 확률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없다”는 판사의 말이 그것이다. 0%에 수렴하는 확률이 광우병 위험성으로 연결되어 버린 것이다. 판사와 국민의 시각이 너무 달랐다. 프로그램을 보고 흥분한 수많은 시민을 광장으로 모이게 했던 프로였다. 미국산 쇠고기만 먹으면 94%의 국민이 광우병에 걸릴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뛰쳐나온 것이다. 0%라면 아무도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죽은 미국여대생의 사인에 대해 내가 본 방송은 분명 인간광우병(vCJP)이라고 자막에서 못 박고 있었다. 나중에 그게 아닌 게 판명되고 제작진도 정정해서 보도했다. 그러나 판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이 프로그램을 봤을 때, 아레사 빈슨과 관련된 보도내용은 현재 부검을 통해서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PD수첩〉은 아레사 빈슨의 사인이 ‘인간광우병’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내가 본 자막은 분명히 vCJD이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허깨비를 본 것일까. 판사는 허위가 아니라고 했다.

“과장이나 오해지, 허위는 아니다”

다우너 소를 광우병소로 둔갑시킨 〈PD수첩〉 방송.

그 다음은 〈PD수첩〉이 MM형 유전자를 가진 한국인은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4%라고 보도한 부분이었다.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부분 보도내용의 취지는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그 보도내용 중간에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섭취할 경우 인간광우병이 발병할 확률이 약 94% 가량 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기는 하나, 이는 전후 문맥에 비추어 과장되거나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표현이므로, 이 부분 보도내용은 중요한 부분에 있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어 허위라 볼 수 없었습니다.”

판사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이 프로그램을 분석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소신’에 따라 판단하고 있었다. 방송내용을 보고 어떤 일이 있었을까? 당시 아고라광장에 나와 있던 한 중학교 3학년이 프로그램을 보고 쓴 글은 이랬다.

<어제 저녁 학원에서 돌아온 후 〈PD수첩〉을 다시 봤습니다. 느낀 점은 죽음에 대한 공포입니다. ‘미국에서 수입해 오는 쇠고기를 먹으면 언제 어디서 미쳐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의 광우병 소들을 수입해서 우리 국민들을 모두 살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을 뽑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투표권을 가진 우매한 어른들 때문에 투표권이 없는 우리까지 모두 죽게 생겼습니다.>

판결의 나머지 부분들도 모두 단독판사 개인의 주관을 합리화하는 내용이었다. 협상대표를 매국노라고 한 데 대해서도 “공직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켰다고 하여 바로 명예훼손이 될 수 없다”고 하면서 〈PD수첩〉 제작진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한국의 언론사에 남을 엄청난 판결의 선고 순간이었다. 법정 안에서 고성과 욕설이 터졌다.

“이게 법이냐? 김정일이 법원까지 장악했구나!”

무기력한 검찰

결국 검찰의 완패였다. 어쩌면 패배는 예정되어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처음부터 명예훼손죄가 되느냐의 해석상의 논란도 있었다.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정권의 무릎을 꿇게 한 원인에 대해 책임을 물려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적용할 마땅한 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란선동죄까지는 못 미쳤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찜찜했을 것이다. 그 궁여지책이 형법상의 명예훼손죄 조문이었다.

프로그램 자체를 볼 때 진짜 명예훼손의 피해자는 직접 등장한 대통령 같았다. 그러나 현실의 고소인은 힘없는 다른 두 사람이었다. 퇴직해 버린 장관과 사직서를 썼던 협상대표 개인자격이었다. 약할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金大中) 대통령 시절 김홍신(金洪信) 의원의 ‘공업용 미싱사건’ 발언이 있었다. 한나라당 소속 김 의원이 “대통령이 거짓말을 많이 하니까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박아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문제가 된 재판이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개인 자격’으로 김 의원을 고소,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전직 장관과 협상대표는 아무 힘도 없었다. 일이 잘될 리가 없었다.

뉴스를 통해 방송국으로 압수수색을 하러 간 담당 검사의 모습을 보았다. PD수첩 제작진을 보호하는 노조 앞에서 검찰은 법집행을 포기했다. 검찰은 이미 거기서 명분과 주도권을 빼앗겼다. 〈PD수첩〉의 허위보도라는 사건의 본질은 사라지고 ‘공권력에 의한 언론탄압’이라는 식으로 문제가 변질됐다. 검찰은 피의자 신문도 하지 못했다. 검찰은 법정에서조차 〈PD수첩〉 제작진에게 진실을 따지지 못했다. 국민 앞에 서슬이 시퍼런 검찰이 언론에는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스스로 나타난 유일한 내부 고발자 정지민만이 용감히 싸우는 모습이었다.

이 재판은 또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였다. 〈PD수첩〉 측에는 작가가 있었고 연출가가 있었다. 아름다운 모습의 연기자도 보였다. 그들은 대중 앞에서 북 치고 장구 칠 수 있는 방송이라는 힘이 있었다. 단결된 그들은 전심전력을 기울여 재판이라는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었다.

黑을 白으로 바꾼 〈PD수첩〉 측 변호사들

무죄가 선고된 후 〈PD수첩〉의 조능희 PD(오른쪽 웃는 사람)와 김형태 변호사(왼쪽) 등이 웃으며 법원을 나서고 있다.

〈PD수첩〉 측은 변호사도 일류프로급이었다. 그는 94%라는 숫자를 0으로 바꾼 천재였다. 변호사는 재판정에서 0.0001%의 위험성만 있어도 방송을 해야 하고 국가는 협상을 중단해야 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게 판사에게 먹혀들었다. 본질을 바꾸어 버린 대단한 변론실력이었다. 흑이 백으로 바뀌는 최고의 법정드라마를 나는 봤다.

검사들도 드라마에 한몫했다. 그들은 정치검사라는 매도에 위축된 것 같았다. 법정에서 침묵했다. 별로 묻지도 않았다.

도망가는 여우를 따라가는 사냥개는 절대 그 여우를 잡을 수 없다. 여우는 목숨을 걸고 달아나지만 사냥개는 주인을 위해 적당히 의무로 하기 때문에. 담당 검사들은 영전해서 다른 곳으로 갔다. 이제는 내용을 아는 싸울 주체도 실질적으로 없어진 셈이다.

그러나 거짓은, 우선은 이겨도 진실 앞에 끝까지 승리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들이 만든 허위프로그램이 국민들을 시청 앞 광장으로 이끌고 나왔듯이 이번에는 이상한 판결이 국민들을 법원광장 앞으로 나오게 했다. 대법원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강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언론인 출신 조갑제(趙甲濟)씨가 관중 앞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머리 좋다는 법관이 하는 일이 말장난과 법을 비트는 기술입니다. 고양이를 개라고 해놓고 본질적으로 네 발 달린 짐승이니까 같다고 한 게 판결의 논리입니다. 말이 됩니까? 대법원장이 지키겠다는 사법부의 독립이란 이런 엉터리 재판을 해도 간섭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제부터 5000만 국민은 1억 개의 눈을 가지고 엉터리재판을 감시하는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쇠고기 협상대표였던 민동석도 어느새 고급공무원에서 운동가로 변신해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었다.

“저는 앞으로 이 나라의 편향된 판사들에 대해 탄핵소추운동을 벌이겠습니다.”

다음날 조선일보 사설은 구체적 판결이유를 조목조목 따지면서 PD수첩 제작진에게 면죄부를 준 판사의 편향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동아일보도 다음날 아침 사설에서 ‘문성관 판사 어이없다’라는 제목으로 건강성을 잃은 사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국민의 건전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집에 사로잡힌 판결은 독재권력 이상으로 위험하다는 내용이었다. 중앙일보 사설도 판결에서 보이는 이념적 편향과 정치성을 비판했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PD수첩〉 제작팀은 언론의 자유를 지켜낸 투사고 영웅이 됐다. 그들은 “문성관 판사는 과학적 지식이 풍부한 총명한 판사”라고 극찬했다. 동시에 내부 고발자 정지민의 말만 믿고 글을 쓰고 수사했던 조중동이나 한 줌의 정치검찰이 꼴좋게 됐다는 비아냥거림이 인터넷에 난무했다. 인터넷에 〈PD수첩〉 제작진의 기자회견 내용이 올라왔다. 대충 이런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를 위한 사법권 독립인가

〈MBC니까, 그중에서도 〈PD수첩〉이니까 버텼지 다른 언론사의 경우였다면 쉽지 않았을 겁니다. 타협안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청와대는 뒤집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다룬 KBS보도를 보니까 그걸 보도라고 하는지…. 말도 안되는 부끄러운 보도죠. 결국 문제는 조중동과 같은 수구꼴통신문이에요.〉

참과 거짓의 구별은 간단하다. 사실 그냥 마음의 눈으로 보면 당장 안다. 사회가 던지는 질문에 지혜로운 대답을 해야 하는 게 법관의 의무다. 그런데 아직 날것의 냄새가 나는 단독판사에게서는 그 지혜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일부 판사들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재판에 대해 비판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선고된 판결에 대해 국민은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다. 또 그래야 법관 개인의 사상을 관철시키려는 판결을 견제할 수 있다. 대법원장은 사법권의 독립을 굳게 지켜내겠다고 했다. 누구를 위한 사법권 독립인지 되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