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사태 1년, 〈PD수첩〉에 대한 수사의뢰 件으로 검찰청에 선 鄭雲天 前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닭도 비바람이 치면 병아리를 감싸 안지만 정부 관료들은 책임을 회피하는 데 동물적 후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嚴相益
⊙ 1954년 경기도 평택 출생.
⊙ 경기고·고려대 법대 졸업.
⊙ 군법무관시험, 사법고시 합격. 大盜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 탈북 난민 한영숙씨 사건 등 변호.
⊙ 수필집: <변호사와 연탄 구루마> <욕심그릇이 작을수록 자유롭다> <하나님 엄변호삽니다>
<은빛남자의 금빛이야기> 등.
소설: <여대생 살해사건> <검은 허수아비>
논문: <미국과 프랑스의 언론법 비교>.
嚴相益
⊙ 1954년 경기도 평택 출생.
⊙ 경기고·고려대 법대 졸업.
⊙ 군법무관시험, 사법고시 합격. 大盜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 탈북 난민 한영숙씨 사건 등 변호.
⊙ 수필집: <변호사와 연탄 구루마> <욕심그릇이 작을수록 자유롭다> <하나님 엄변호삽니다>
<은빛남자의 금빛이야기> 등.
소설: <여대생 살해사건> <검은 허수아비>
논문: <미국과 프랑스의 언론법 비교>.
- 지난해 6월 10일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 집회장으로 향하는 鄭雲天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이 직후 그는 촛불시위대에 둘러싸여 봉변을 당했다.
독서모임에서 <거북선 농법>이라는 책이 토론 주제가 됐다. 키위 재배와 판매에 성공한 한 청년의 경험담이 담긴 책이었다. 내용은 대충 이랬다.
1980년 봄 고려대 농대 4학년생이던 청년이 서울을 빠져나와 무조건 남쪽으로 내려갔다.
‘인생의 진로를 결정할 때는 가장 첨단을 달리는 곳이나 아니면 가장 낙후된 곳을 찾아라. 성공 가능성은 그곳에 많다.’
대학 설립자인 金性洙(김성수) 선생의 말을 그는 가슴에 품고 있었다. 南道(남도)를 유랑하던 그는 키위와 인연을 맺게 된다. 비타민C의 함량이 사과의 20배이고 농약을 치지 않아도 되는 무공해 과일이었다.
그는 먼저 청과시장 상인들에게 판매 가능성을 알아보았다. 반응이 괜찮았다. 그는 먼저 키위 묘목을 수입해다 팔아 보았다. 실패는 바로 찾아왔다. 묘목의 90%가 얼어서 말라 죽었다. 사기당했다고 농민들이 아우성을 쳤다. 정부조차 우리환경에 맞지 않는 키위니까 재배하지 말라고 했다.
빚에, 폐결핵에, 가로수를 들이받는 교통사고에 그는 만신창이가 됐다. 그는 직접 키위를 재배하기로 했다. 그는 전남 해남의 빈 땅을 빌려 키위 재배를 위한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거기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그는 주변 산기슭에 텐트를 치고 호롱불 아래서 키위에 대해 공부했다.
그는 자기가 키위 묘목을 판, 실망에 빠진 농가들에 일일이 편지를 했다. 끝까지 책임을 지고 싶으니 함께 연구하자는 내용이었다. 비닐하우스의 한 귀퉁이를 키위 재배의 토론장으로 삼았다. 농민들이 한두 사람씩 모여들었다. 그는 5년5개월 동안 그렇게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면서 키위 국산화에 성공했다.
고비도 많았다. 태풍의 공격이 있었고 지역 텃세도 심했다. 농산물 중 첫 번째로 키위 시장이 개방됐다. 국산 키위는 도저히 경쟁력이 없었다. 그는 살아남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재배 농민들을 이끌고 농수산부 장관을 찾아갔다. 비서진을 통해 간신히 얻은 대화시간은 5분이었다. 그는 직격탄을 날렸다.
“장관님은 허수아비입니까? 아니면 핫바지입니까?”
그는 짧은 시간 최대한의 성의를 다해 설명했다. 그 정성에 장관의 마음이 바뀌었다. 키위가 정부가 권장하는 과일로 변한 것이다.
농군 鄭雲天
다음으로 중요한 건 판매처의 확보였다. 외국 키위와의 싸움은 거기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軍(군)에서 배운 특공전술을 사용했다. 정예 농가를 특공대로 만들어 백화점을 찾아다녔다. 어디도 그들의 키위를 사주겠다는 곳은 없었다. 마지막에 지하식품 코너에 한 평짜리 수수료 매대를 간신히 얻었다. 직접 물건을 팔고 그 판매액의 20%를 수수료로 내는 조건이었다.
농민들이 ‘국산키위’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시식을 권했다. 소비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시커먼 얼굴과 흙이 묻은 두툼한 손으로 권하는 키위를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은 낡은 방법이었다. 그는 미인계를 썼다. 아내의 직장동료들에게 도와줄 것을 간청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그는 ‘참다래’라는 고유 브랜드를 가진 최초의 농민주식회사를 만들었다. 못생긴 키위들로는 주스를 만들었다. 그는 이어 종합유통센터를 만들고 중간비용을 없앨 유통의 고속도로를 구축했다. 황폐화한 한국 농업의 부활이 그의 목표였다. 정부 주도의 他律農政(타율농정)에서 생산자 조직의 自律的(자율적) 농업체계로 전환시키겠다는 게 그의 꿈이었다.
그는 키위 독점 수입권을 얻어냈다. 반대가 능사가 아니었다. 키위는 반 년 장사였다. 여름과 겨울이 정반대인 뉴질랜드의 키위를 수입해서 팔면 1 년 내내 독점 공급이 가능했다. 경쟁이 아니라 상대방을 감싸 안아버린 것이다.
그의 다음번 상품은 고구마였다. 백화점마다 흙이 묻은 채 천대받던 고구마를 깨끗이 씻어 하나하나 진공포장을 한 고급상품으로 변화시켰다. 그건 특별한 게 아니었다. 부패를 방지하면서 깨끗이 씻는 간단한 기술이었다. 그는 자신의 방법을 ‘거북선 농법’이라고 이름 붙였다. 세계적 발명품이라고 하던 거북선도 사실 별게 아니었다. 나룻배에 총알을 피할 수 있도록 뚜껑을 덮었을 뿐이다. 농업도 조금만 발상을 바꾸면 중국대륙까지 점령할 수 있다는 게 그의 구상이었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후보는 그를 우연히 알게 된 후 농수산식품부 장관에 전격 발탁했다. 죽은 한국 농업을 부활시킬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촛불정국 때 군중에게 몰매를 맞을 뻔했던 鄭雲天(정운천)이었다.
촛불시위로 인해 그는 꿈을 펴지도 못한 채 날개를 접었다. 그는 쌀을 살릴 수 있었고 쇠고기를 특화시킬 계획이었다.
PD수첩의 선동
PD수첩 프로에서 스산한 장면이 나오고 있다. 지저분한 도축장에서 한 남자가 쓰러진 소를 전기충격기로 찌르고 있다. 물대포를 쏘기도 한다. 狂牛病(광우병)에 걸린 소 같았다. 이어서 장례식 장면이 찢어질 듯한 여성의 절규와 함께 나타났다. 죽은 미국인 여학생은 인간광우병에 걸렸다는 것 같았다. 내레이터는 우리에게 그런 충격이 올지도 모른다고 한다.
사회자가 아까 그 광우병에 걸린 소라고 확인해 주면서 출연한 취재담당 PD에게 자세한 걸 물었다. 미국 쇠고기는 끓여 먹거나 익혀도 감염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PD가 차트를 보이면서 한국인의 유전자는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특히 높아 94%라고 했다. 그건 식품이 아니라 독극물 같은 느낌이었다.
화면이 바뀌었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미국 사업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방금 차 안에서 장관으로부터 미국 쇠고기 수입협상을 타결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미국 업자들의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대통령의 미소는 교활해 보였고 매국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화면에 미국 대통령을 모신 한국 대통령이 손을 흔들면서 골프차를 직접 몰고 있었다. 한국 측 쇠고기 협상대표인 閔東石(민동석) 차관보의 인터뷰가 나왔다.
“미국인이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 하나의 사건만 가지고 구조적인 문제로 단정짓기는 어렵죠.”
광우병의 위험성을 의도적으로 묵살하는 것 같았다. 방송에서는 스펀지처럼 구멍 뚫린 뇌의 사진이 다시 클로즈업되고 있다. 방송은 소의 눈이나 뇌 척수 등에 광우병 위험물질이 들어있다고 알려주면서 그게 한국인의 식탁에 오르고 있는 사실들을 알려주고 있었다. 민동석 차관보의 기가 막힌 반론이 나왔다. 그는 싱긋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쇠고기는 안전합니다. 위험부위의 물질만 제거하면 안전하죠. 복어의 독을 제거하고 아무 걱정 없이 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비행기를 탈 때도 항공사고가 치명적인데 그런 걸 생각하면 탈 수 없는 거죠.”
도대체 제정신을 가진 사람의 말인지 의심스러웠다. 그걸 보고 있던 진행자가 이렇게 결론지었다.
“과거 親日 賣國奴(친일 매국노)처럼 오늘 특히 國政(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역사에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지 않은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방송을 보고 중학교 3학년 아이가 인터넷의 아고라에 올린 이런 글이 있었다.
<어제 저녁 학원에서 돌아온 후 PD수첩을 다시 봤습니다. 느낀 점은 죽음에 대한 공포입니다. 미국에서 수입해 오는 쇠고기를 먹으면 언제 어디서 미쳐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공포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의 광우병 소들을 수입해서 우리 국민들을 모두 살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을 뽑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투표권을 가진 우매한 어른들 때문에 투표권이 없는 우리까지 모두 죽게 생겼습니다.>
시청 앞을 벌겋게 물들인 촛불시위
방송을 보고 분노한 국민들이 하나씩 둘씩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여러 가지 얘기가 떠돌았다. 키스만 해도 광우병에 전염된다는 것이다. 미국 놈들은 대부분 호주나 뉴질랜드 쇠고기를 사먹기 때문에 그들이 먹는 고기와 우리가 수입해 먹는 건 다르다고 했다. 소를 이용해 만드는 화장품만 써도 광우병이 옮는데 학교 급식용은 모두 미국산 쇠고기라고 했다.
밤이면 시청 앞 일대는 수만 명의 촛불시위로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촛불시위 광장으로 가 보았다. 수많은 텐트가 군대 막사같이 쳐져 있었다. 그 안에는 피켓, 플래카드 뭉치, 전단지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미친 소의 조각상이 광장 복판에 우상같이 세워져 있었다. 사회자인 40대의 여성이 청계광장에 나온 중고교생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대통령 한 놈만 국민 무서운 걸 모르고 있습니다.”
저주와 증오가 난무했다. 중학생들이 “이명박은 퇴진하라”라고 소리쳤다. 중학생들까지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에게 덤벼들었다. 경복궁 담 위에 올라가고 가로수 버팀목을 뽑아서 광화문 네거리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술판을 벌인다고 했다. 쇠파이프와 망치를 든 시위대가 경찰버스의 유리창을 파괴했다. 중학교 여학생들의 대화내용을 옆에서 직접 들었다. 한 여성 국회의원의 사생활을 입에 올리면서 저주하고 있었다.
내 친구 민동석
얼마 후 현장에 나온 정운천 농수산식품부 장관이 멱살을 잡힌 채 안경이 날아가고 양복이 찢어지는 뉴스 장면을 봤다. 청와대쪽을 향한 도로에는 대낮에도 컨테이너 방벽이 이층으로 두껍게 설치되어 있었다. 거의 內戰(내전)상황 같았다. 50대 중반의 내 또래 친구들도 저녁이면 현장에 가보는 것 같았다. 현직 차관을 하는 친구가 촛불시위 현장을 다녀와서 씁쓸한 표정으로 이렇게 전했다.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나왔더라구. 내가 ‘너희 여기 왜 나왔니?’ 하고 물으니까 그 아이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 ‘안 나오면 쪽팔려서 나온 거예요’라고 하더라고.”
마침내 이명박 대통령이 백기를 들었다.
쇠고기 협상대표였던 민동석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40년 동안 단짝 친구였다. 그의 성품이나 집안 구석구석까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아들이 군대 가기 전 내 사무실에서 잠시 일을 했었다. 어느 날 점심 후였다. 그의 아들이 여직원과 잡담하는 소리가 문틈을 통해 들려왔다.
“우리 아버지 평생 외교관을 해 왔는데요, 그거 옆에서 보니까 절대 좋은 직업 아니에요. 돈도 못 벌고, 고생만 하고 말이죠. 우리 엄마는 대통령이 온다고 하면 김밥 싸야죠, 한복 입고 태극기 들고 나가야죠, 높은 사람 음식 만드느라고 동원되죠, 외교관 그거 빛 좋은 개살구예요.”
아들은 아버지가 외교관이 되기 위해 피눈물 나는 과정을 겪은 걸 보지 못했다. 가난을 딛고 외교관이 된 친구는 사명감과 부지런으로 평생을 보낸 협상전문가였다. 30년 경력의 외교관 부인이 무릎에 구멍이 난 낡은 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를 헌신적인 모범공무원으로 확신한다.
그런 그가 갑자기 매국노가 되어 마스크를 낀 채 도망 다니고 있었다. 촛불시위가 한창일 무렵 그와 조그만 식당에서 은밀히 만났다. 그가 자조적인 얼굴로 핸드폰을 내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나를 저주하는 글들인데 한번 봐.”
문자메시지들이 화면에 떠올랐다.
‘친일파 이완용 같은 놈아, 광우병 걸린 미국 쇠고기를 너하고 니 가족들이나 처먹고 뇌에 구멍이 뚫려서 뒈져라.’
하나같이 그런 저주들이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야당 당사의 벽에는 매국노 중 두 번째로 내 사진과 이름이 붙어 있더라고.”
그는 이미 사회적 사형선고를 받은 인물이 되어 있었다. 쇠고기 협상의 내막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을 그에게 먼저 확인하고 싶었다.
―방송을 보니까 광우병으로 쓰러진 소를 도살하던데 맞아?
“그거 광우병에 걸린 소 아니야. 다른 소를 광우병에 걸린 소같이 착각하게 만든 거지.”
―인간 광우병으로 죽은 미국인 장례식이 나오던데?
“죽은 미국인도 인간 광우병으로 죽은 게 아니야. 1990년대 중반에 광우병이 알려졌는데 그 이후 미국에서 5억 마리의 소가 도축돼서 식용으로 쓰였어. 3억명의 미국인이 매일 그 쇠고기를 먹은 거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인간광우병에 걸린 사람이 없어.”
광우병 소동의 진실은?
―그렇지만 한국인은 특히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4%라면서?
“알아보니까 광우병을 연구한 그런 논문은 없었어. 정말 그렇다면 미국에 있던 수십만 명의 우리 교포 대부분 광우병에 걸려 죽었게? 말도 안돼. 세계 117개국 사람들 수십억 명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도 단 한 사람도 광우병에 걸리지 않았어. 그런데 어떻게 한국 사람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4%라는 거야? 걸리고 싶어도 걸릴 수 없는 상황인데….”
그가 억울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매년 3만3000명이 미국에서 독감으로 죽어.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1000명이 벼락을 맞아 죽었다. 그런데 광우병에 걸려서 죽은 사람은 없어. 한 의사가 확률을 계산했는데 한국인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5000만명의 한국인이 수천만 년을 살아도 한 사람 보기가 어렵대.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몇 백만 배 낮은 거지. 그런데 왜 있지도 않은 광우병 유령이 세상을 흔드는 거야?”
그는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그런데 방송에서 복어 얘기는 왜 했어?
내가 물었다. 영 맞지 않는 엉뚱한 비유 같았기 때문이다.
“국제수역사무국이 가축에 관해서는 국제적인 공인기관이야. 거기서 광우병에 걸린 소를 연구했는데 뇌나 척수 이외의 부위에서는 원인물질인 ‘변형프리온’이 없다는 거야. 막말로 광우병 소도 뇌와 척수만 제거하면 먹을 수 있다는 거지. 복어도 독을 빼고 먹지 않느냐는 얘기는 거기서 나온 건데 두 시간 인터뷰하고 그 부분만 몇 초 나온 거지. 그렇게 편집하면 병신 안될 사람이 어디 있냐?”
나는 비로소 납득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업자들 앞에서 쇠고기 수입을 통보하는 장면은 비굴한 것 같아서 화가 나던데?
“그게 아니야. 盧武鉉(노무현) 정권 때 쇠고기 수입 문제가 이미 끝났어. 노무현이 부시한테 전화까지 걸어서 미국 조건을 승낙해 버린 거야. 그런데 대통령선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 문제가 이명박 정권으로 넘어온 거지. 이명박 대통령도 찜찜해 했지만 어떻게 하겠어? 받아야지.”
“그래도 난 버텼어”
―노무현 대통령이 왜 전화까지 걸어서 승낙을 했어? 그럴 분이 아니잖아?
“미국 쇠고기 속에서 손톱만한 뼈가 한 조각 발견됐다고 수입된 걸 전부 돌려보냈던 사건 알지? 국내에서조차 너무 속 좁은 행동이라는 의견이 있었어. 그때부터 미국은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우리를 철저히 불신하고 악착같이 덤벼들었어. 노무현 정부가 항복하고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서 미국 요구를 다 들어줬지. 협상대표인 나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어. 미국 대표인 헬렌이란 여자는 대통령이 약속까지 했는데 왜 협상을 지연시키느냐고 화를 냈어. 그래도 난 버텼어. ‘대통령의 말보다 중요한 건 국민의 건강’이라고 하면서 말이지. 사실 나는 협상의 최전선에서 쇠고기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쌀 수입도 막아야지, 오렌지도 막아야지, 돼지고기, 닭고기도 막아야지, 정신이 없었어. 무조건 다 막기는 불가능하지. 미국은 자기네 농축산물을 한국이 사먹어야 한국 자동차에 대해서 관세를 철폐하겠다는 조건이니까. 섬유도 마찬가지였어. 결국 자동차를 팔기 위해 농축산물을 개방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협상대표인 내 입장은 그래도 어떻게 하면 피해를 최소화하느냐는 정도였지.
그래도 난 30년 협상을 해 온 전문가야.쌀도 오렌지도 막았어. 내 노력으로 우리 삼계탕을 미국에 팔도록 약속 받았어. 그 외에도 한 일이 많은데 방송을 보니까 나는 완전히 매국노에 바보가 됐더라고.”
―30개월 이상 된 소는 광우병에 걸릴 위험성이 많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먹지 않는다면서? 자기네는 뉴질랜드에서 소를 수입해 먹고 위험한 소는 우리나라에 수출한다고 광우병 괴담에 나오던데.
“말도 안되는 소리 마라. 정말 그렇다면 미국 사는 교포 250만명이 1000만명이 넘는 한국 친척에게 그 소식을 전하지 않을 것 같냐? 미국에서 30개월 이상 된 소는 햄버거 재료로 전국적으로 먹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100개국이 소의 연령에 아무 제한이 없어. 아니 단 한 나라 일본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유통시키고 있지. 그 이유는 일본 자체에서 광우병이 발견된 적이 있기 때문이야. 일본 축산업자들이 기르는 소까지도 20개월 이내만 유통시키도록 법을 바꿨지. 만약 한국에서 그렇게 하면 축산업자들이 모두 도산하고 난리가 날걸.”
―방송이 허위보도라면 왜 정부는 한마디도 반박을 못하냐?
“내 말이 그 말이야. 내가 정말 매국노라면 아들을 미쳤다고 전쟁 중인 레바논까지 보냈겠냐? 정말 억울한 건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사과를 하니까 장관이나 나나 다 도매금으로 잘못한 놈이 되어버렸어. 국회에 나가서 진실을 말하려고 했더니 ‘대통령도 잘못을 시인했는데 네까짓 게 뭔데 그러냐’는 식으로 호통을 치더라고.”
―방송에서 인용한 학자나 전직 장관은 모두 현 정부에 잘못이 있는 것처럼 말하던데?
“그 양반들 정말 원망스러워. 정말 그런지 한번 따지자고 하니까 비겁하게 꽁무니들을 빼더라고.”
광우병 1년 후 달라진 民心
촛불시위가 일어난 지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단골 마트의 주인 아저씨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광우병 얘기 그거 다 개그라고 그래유. 저도 방송을 보고 처음엔 찝찝해서 쇠고기 못 먹겠더라구유. 안 먹었쥬. 25년 쇠고기를 취급한 아저씨가 있는데유. 미군부대에서 전부 미국 쇠고기를 가져다 먹지 언제 한국 소를 사 먹는 거 봤냐구 그래유. 생각해 보니까 그 말이 맞더라구유. 그 도매상 아저씨는 미국 쇠고기 때문에 韓牛(한우)도 못 팔았다고 투덜거리드만유. 쇠고기 한 근에 2만3000원 하고 사골 하나에 7만원 할 때는 정말 못 사 먹었슈. 그러다 요새 가족들 데리고 미국산 쇠고기 등심을 사 먹었는데 값싸고 맛만 좋더라구유.”
그가 뭔가 생각난 듯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계속했다.
“이상한 건유, 중국에서는 납이 든 생선도 보내고 농약이 든 만두도 보내는데 그건 왜 데모를 안 하쥬? 대통령 물러나라고들 안하대유. 쇠고기는 이명박 대통령 말처럼 나쁘면 안 사먹으면 되는 건데 왜들 그렇게 난리쳤는지 몰라유. 저두 없는 놈이라 처음에는 左派(좌파) 쪽을 지지했어유. 그런데 이제는 아녜유. 뒤에서 촛불시위를 시킨 좌파들을 전부 북쪽으로 보냈으면 좋겠어유. 거기서는 쥐고기도 없어서 못 먹는다는데 말유. 그 사람들 쇠고기 타령이 나오는지 말이에유.”
1년 만에 민심이 달라져 있었다. 오히려 미국發(발) 금융위기가 全(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상황이 됐다. 금융전문가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의 금융계에서 근무하고 메리츠 증권의 부회장도 역임했다. 그가 말했다.
“한국은 참 이상한 나라야. 이명박 정권은 쇠고기 협상을 타결한 공로로 세계적 금융위기를 넘기게 됐어. 만약 그게 타결되지 않았으면 미국이 절대 통화 스와프를 허용하지 않았을 거야. 그 진짜 의미가 뭔지 알아? 다른 나라가 부도로 다 쓰러져도 한국은 살리겠다는 미국의 보장이지. 한국 정부가 쇠고기 협상에서 치사하게 굴었다면 미국이 그런 혜택을 줬을까? 이명박 정권이 대단한 일을 한 거야. 정권이 그 공로를 언론에 홍보를 해야 했었는데 오히려 PD수첩과 촛불시위로 죽을 쑤는 걸 보니까 웃겨. 그리고 정책이 잘못됐으면 관련 실무자나 장관이 사과하면 되지 왜 대통령이 사과해? 일을 잘해 놓고도 말이야.”
비겁한 대통령
뒤늦게야 진실이 밝혀지고 있었다. 판결이 선고됐다. 방송에서 광우병이 아닌 소나 사람을 광우병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취지였다. 한국인만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4%에 해당한다고 방송한 것도 거짓이라는 판결이었다. 영상조작이 드러나고 내용 중 상당부분이 허위였다. 한 원로 언론인은 PD수첩의 방송내용에 대해 이런 의견을 제시했다.
“사회자가 뒤에 걸어놓은 플래카드를 보십쇼. ‘목숨을 걸고 광우병 쇠고기를 먹어야 합니까?’였어요. 그렇게 방향을 설정해 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등장인물, 모든 화면, 모든 내레이션, 그리고 모든 수치를 그 방향으로 몰고 간 거죠. 있지도 않은 광우병을 만들어 한국 사회에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키게 한 게 바로 그 방송입니다.”
그는 동시에 방송을 두둔하기도 했다.
“나도 기자를 수십 년 해 봤지만 언론은 시간에 쫓기니까 誤報(오보)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잘못이 발견되면 바로 사과를 하는 게 바른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없었어요.”
그는 대통령에게도 한마디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과하기보다 거짓보도에 화를 냈어야 하죠. 여론보다 옳고 그름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게 대통령이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게 뭡니까? 일부 언론에서는 촛불집회를 평화집회고 순수한 시민궐기라고 하죠. 그런데 보세요. 구호 중에 ‘이명박 정부 쓸어버리자’라고 하는 것도 있죠? 청와대를 포위해서 끝장을 볼 때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했죠? 현장의 유인물들을 보면 ‘혁명의 정신으로 죽음도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적혀 있어요. 결국 거짓말에 항복하고 조직적인 배후세력에게 대통령이 비굴하게 무릎을 꿇은 겁니다.”
“PD수첩 묵과할 수 없다”
지난 3월 2일 오후 2시, 검찰청 앞 지하다방에서 쇠고기 협상대표였던 친구 민동석의 소개로 정운천 前(전) 농수산식품부 장관을 만났다. 검찰조사에 변호사로 立會(입회)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흰 와이셔츠에 검은 양복을 입은 정운천 전 장관은 소박한 느낌이 들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고집스런 사각턱에서 독한 키위농사꾼이던 그의 의지가 엿보였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본론을 꺼냈다.
“거짓말 방송에 속은 시위대에 이명박 대통령이 두 번이나 사과를 했어요. 대통령은 잘못이 없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숙인 거예요. 일단 공포에 떠는 국민들을 위로하자는 거였죠.”
그는 옆에 있던 민동석 차관보에게 신문기사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벌써 뉴스가 나오고 있던데. 이거 한번 봐.”
내가 함께 그 기사를 봤다. 대충 내용은 이랬다.
‘검찰이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보도사건에 대해 관련자들을 다시 소환하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하고 있다. 검찰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수사의뢰로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으나 제작진이 세 차례에 걸쳐 소환에 불응하면서 수사가 교착상태에 빠졌었다.’
그걸 본 민동석 차관보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입을 열었다.
“1년이나 수사를 하지 않더니 이제 다시 한다고 그러네요.”
“도대체 검찰이 수사의지가 있나 의심스러워.”
정 전 장관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그가 나를 보면서 입장을 먼저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는 오늘 이 나라의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데 힘을 보태기 위해서 검찰에 나가는 겁니다. 저와 협상대표가 ‘광우병 五賊(오적)’, ‘매국노’ 등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욕설과 악성 댓글을 받은 것은 참아 왔습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건 PD수첩 방송 며칠 후 여중생이 장관실로 전화를 걸어 광우병이 꽉 찬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절규하는 겁니다. 국민을 속이고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조롱거리로 만든 PD수첩에 대해 정말 묵과할 수가 없습니다. 국가적, 법적인 차원에서 반드시 옳고 그름을 가리고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에 법이 있기는 있는건지…”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그 말에 내가 그에게 물었다.
―정부 측에서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하셨습니까?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의 부족을 인정했고, 사람들은 정부의 진실을 알리는 용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하는데요.
대통령이 진실에 대해 말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청와대 대변인이나 국무총리, 한나라당에서도 광우병 위험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걸 보지 못했다. 반박되지 않은 거짓말은 진실로 통하기도 한다. 판사만이 1년 후 허위사실이라고 판결했다. 정 전 장관이 억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워낙 사태가 험악하고 어떤 진실도 통하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행동으로 국민 앞에 서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말렸죠. 그래도 저 혼자 갔어요. 저녁 7시에 시위대의 자유토론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시위를 주도하는 측에서 장관인 저의 발언기회를 아예 차단해 버리더라고요. 현장에 갔더니 사방에서 저를 매국노라고 하면서 죽일 듯이 덤벼들더라고요.
저는 그 사람들 눈에서 섬뜩한 광기를 봤습니다. 그건 정책에 반대하는 단순한 눈빛이 아니었어요. 멱살이 잡히고 안경이 날아가고 양복이 찢겼죠. 대전에서 열리는 기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내려간 적이 있어요. 시위대가 회의장 건물을 둘러싸고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저보고 뒷문으로 들어가라고 하더라고요. 국가를 대표하는 장관인 내가 왜 숨어 들어갑니까?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가려고 했죠. 시위대들이 이번에도 저를 보고 ‘매국노 정 장관은 물러가라’고 외치면서 공격했습니다. 거기서도 다시 폭행을 당했습니다. 도대체 이 나라가 법이 있기는 있는 건지, 그리고 내가 장관인지 의심스러웠죠.”
나는 정 전 장관의 각오를 확인하고 싶어 이렇게 물었다.
―장관님은 이제부터 피켓을 들고 방송국 앞에 가서 1인시위를 할 용기가 있습니까?
“하죠. 당연히 할 용기가 있습니다. 장관 때도 그렇게 하려고 했었는데, 이제 자유인인데 뭘 못하겠습니까? 저도 원래 제도권이 아니고 재야에서 살던 사람입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사의뢰도 하고 법원에 소송도 걸었습니다. 이겼잖습니까? 대통령이 거짓에 고개를 숙였는데도 검찰은 지난 1년 동안 허위방송을 한 사람들을 부르지도 못했어요. 어떻게 법과 원칙이 이렇게 무너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검찰의 태도가 그동안 어땠습니까?”
“검찰은 이 사건을 저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으로만 취급하려고 하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형식논리에 밀려서 큰 걸 놓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죠. 촛불정국은 거짓된 방송내용 때문에 일어났고 일부 세력의 선동으로 國基(국기)가 흔들린 사건입니다. 感性(감성)을 파고드는 속임수로 중고생 아이들을 부추겼어요. 야간에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을 폭행하고 청와대로 쳐들어가 정권을 엎으려는 게 내란선동이 아니고 뭡니까? 숲을 보지 못하고 명예훼손만 따지는 검찰의 법 논리를 도무지 모르겠어요.”
어느새 다방 벽에 붙은 시계가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자, 일어서시죠.”
내가 정 장관에게 말했다.
“피하시죠. 지금 기자들이 와 있어요”
잠시 후 우리는 검찰청 민원안내실로 들어갔다.
“오후 세 시에 조사한다고 해서 왔는데요.”
내가 카운터에 앉은 여직원에게 말했다. 여직원은 키보드를 두드려 모니터를 보더니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오늘 조사 예정이 컴퓨터에 입력되어 있지 않은데요.”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였다. 얼마 전 검사가 쇠몽둥이로 테러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그 후로 검찰청 출입이 까다로워졌다. 그때 주머니 속에 있던 나의 핸드폰이 ‘웅’하고 진저리를 쳤다. 담당검사였다.
“왜 안 오십니까?”
늦다는 질책이 섞인 어조였다.
“들여보내야 들어가죠.”
“아, 제가 바로 컴퓨터에 소환인 이름을 올리겠습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여직원이 못마땅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정 전 장관과 나는 잠시 후 검사실로 들어섰다. 포승을 하고 철제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서기 앞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중앙에 앉았던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잠깐 따라오시죠. 먼저 부장님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잠시 후 도착한 부장검사실 주변은 어수선했다. 앞에 있던 검사가 갑자기 돌아서서 우리를 구석으로 끌고 가면서 속삭였다.
“피하시죠. 지금 기자들이 와 있어요.”
기자를 피할 이유가 없었다. 당당히 외치려고 왔다. 검찰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유쾌하지 않았다. 한참 기다린 후에야 우리는 부장실로 안내됐다. 정운천 전 장관이 부장검사에게 항의했다.
“검찰의 수사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법질서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이렇게 왔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왜 이 문제를 자꾸 저 개인의 명예훼손으로만 축소하는 겁니까? 사실 저는 PD수첩의 일선 실무자들에게 감정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국가의 기강은 바로 서야 한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듣고 있던 부장검사가 입을 열었다.
“말씀은 알아듣겠습니다. 우리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최대한 성실하게 수사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입장이 예전의 독재정권 시절하고 같을 수는 없습니다. 정확한 법적 검토 결과에 따라 움직일 겁니다.”
조사실의 정운천 장관
잠시 후 우리는 검사를 따라 조사실로 갔다. 블라인드가 내려진 한 평 정도의 작은 방이었다. 정 장관과 나는 검사 책상 앞의 의자에 나란히 쪼그려 앉았다.
“검찰청 조사실은 다 이렇습니까?”
장관이 불편한 듯 귓속말로 내게 물었다.
“그래도 다른 雜犯(잡범)들같이 철제 의자에 앉히지 않고 이렇게 별도로 조사받는 건 대접해 주는 셈입니다.”
“아, 이게 장관을 지낸 사람에게 조금은 예우해 주는 거군요. 그렇지만 난 被疑者(피의자)도 아닌데….”
실제 조사에서 참고인과 피의자의 구분은 없었다. 앞에 있던 검사가 입을 열었다.
“먼저 조사를 하기에 앞서서 장관님께 명예훼손에 관한 법이론들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검사가 책상위에 놓인 판례집을 들어 눈으로 한번 훑은 다음 속사포같이 말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명예훼손죄의 피해자 적격에서 국가기관은 그 대상이 되지 않는 게 확립된 대법원 판례입니다. 이 사건은 공적인물 이론이나 법적인 진실성과 相當性(상당성) 이론에 의해 위법성 阻却(조각: 방해하거나 물리침)이 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상대방에서 공공성과 상당성의 주장이 예견되고 그 부분에 대한 법적 검토를 거쳐야 기소 여부가 결정될 겁니다.”
“이게 뭔 말이여?”
생소한 법률용어에 장관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이제부터 진술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검사가 키보드 위에 손을 얹으면서 선언했다.
―진술인이 장관으로 재직하신 기간은?
“2008년 2월 29일 장관으로 임명되어 근무하다가 촛불시위가 일어났죠. 정국혼란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2008년 8월 6일 물러났습니다.”
―물러난 이유가 뭡니까?
“2008년 4월 29일 PD수첩이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방송을 했습니다. 방송내용을 보면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를 들여온 정부관계자가 무능해서 광우병 위험성을 몰랐거나, 아니면 그걸 축소 은폐하고 협상을 해 한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 매국노라는 보도였습니다. 방송 후 온 국민이 정부책임자인 저를 을사오적 같은 역적이라고 욕하고 국회에서도 저를 해임하는 안이 상정됐습니다. 저로서는 주무장관으로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국가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닭보다 못한 사람이 되기는 싫었다”
―협상에서 위생조건이나 안전성은 제대로 확인된 겁니까?
“미국 가축 위생실태에 대한 현지조사와 국내의 가축방역 협의회, 전문가 회의를 거쳤고 독자적인 수입위험 분석절차를 통해서 국제적 기준에 맞게 안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옆방에 있던 젊은 검사가 조사실 안으로 들어오다가 정 전 장관을 봤다.
“어? 정 장관이네. 요즈음 삿갓을 쓰고 남도를 돌아다니신다면서?”
그가 농담같이 말을 걸었다.
“아, 예 농민들을 대상으로 순회특강과 현장방문을 하고 있습니다.”
정 전 장관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잠시 쉬었다 하죠.”
장관을 조사하던 검사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우리도 화장실에 갔다가 그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검찰청에는 쉬는 시간 동안 있을 곳이 없나요?”
정 전 장관이 내뱉었다. 모멸감이 그의 표정에 나타나고 있었다. 혐의를 받고 있는 상대방 측 PD들은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출석을 거부했다. 장관은 벌써 두 차례나 불려 나오고 화장실 앞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대기실이라고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창문조차 없는 비좁은 그곳은 더 답답했다. 어느새 해가 지고 검찰청 어스름한 복도의 천장에서 형광등 불빛이 파랗게 흘러나왔다. 정 전 장관이 말했다.
“저는 원래 키위를 재배하고 농산물을 판매하는 게 저의 본업이고 장관은 잠시 있었던 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닭보다 못한 사람이 되기는 싫었어요.”
―닭보다 못하다뇨?
내가 무슨 소린지 몰라서 되물었다.
“닭은 비바람이 치거나 위험한 경우 자기 날개로 병아리를 모두 감싸 안잖아요? 그런데 정부에 있어 보니까 도대체 그런 게 안 보여요. 관료들은 책임을 회피하는 데는 동물적 후각들을 가지고 있어요. 나도 책임을 미뤘다면 그냥 장관을 해먹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러기 싫었어요. 지금 여기 나와 있는 것만 해도 그래요. 법이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이렇게 나와서 서 있는 게 아닙니까?”
그때 부장실에 보고를 갔던 검사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다시 조사실로 가시죠. 빨리 끝내야 하겠습니다.”
“이 매국노 같은 새끼”
밤의 좁은 조사실은 후텁지근한 공기가 꽉 차 있었다. 검사가 서류 중 한 부분을 보면서 장관을 향해 말했다.
“무식하고 덜떨어진 찌질한 놈아.”
“예?”
정 장관이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검사가 계속했다.
“이 매국노 같은 새끼.”
“….”
장관이 당혹한 표정이었다.
“국민 건강주권을 양키 놈들한테 팔아 넘기고도 지금 숨 쉬고 있는지 모르겠네.”
나는 검사가 왜 그러는지 눈치챘다. 검사는 정운천 전 장관에게 왔다는 댓글들을 읽고 있었다.
“국민은 광우병 쇠고기를 먹게 하고 너는 한우를 먹냐?”
검사는 끝이 없이 읽을 태도였다. 정 전 장관의 얼굴이 붉어졌다. 듣다 못해 변호사인 내가 끼어들었다.
“검사님, 그만하시죠.”
“예? 왜요?”
검사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지금 정 장관의 입장에서는 수모를 당하는 느낌이잖아요?”
내가 말했다.
“아니 저는 그냥 댓글을 확인하기 위한 겁니다. 그 이유는 국민들이 방송을 보고 통상적인 청취자의 입장에서 받은 인상이 댓글이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그런 인상을 명예훼손을 판정하는 기준으로 삼으라고 그랬죠.”
검사가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이렇게 물었다.
―장관님을 매국노라고 하는데 느낌이 어떠세요?
“그야 나쁘죠.”
―어떻게 나쁘셨는데요?
“저도 20년 동안 在野(재야)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입니다. 제 나름대로는 장관이 된 후 철저한 애국심을 가지고 일했는데 그런 욕을 먹었으니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저는 農大(농대)를 졸업하고 시골로 내려가 농민들 속에서 평생 신뢰를 쌓으려고 노력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국민들에게는 그걸 깬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을 망신시킨 사건”
정 전 장관이 얼굴에 울분이 서려 있었다. 검사가 물었다.
―국가는 명예훼손의 피해자 適格(적격)이 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입니다.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법률가가 아닌데 판례를 어떻게 알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죠?”
―국가기관인 농수산식품부를 아무리 욕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 판례란 말씀이에요.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요.
“회사도 개별 단체도 다 명예가 있는데 왜 국가가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겁니까? 멀쩡한 쇠고기를 한국 사람만 먹으면 광우병에 다 걸린다는 보도는 결국 대한민국 망신을 시킨 거 아닙니까? 한국 사람은 94%가 에이즈나 문둥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해보세요? 7000만 민족과 국가에 대한 명예훼손이 아닌가요? 이건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을 망신시킨 사건이죠.”
정 전 장관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가 덧붙였다.
“그뿐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축산농가에도 큰 피해를 줬어요. 촛불시위가 나온 후부터 쇠고기 소비가 급감했죠. 농촌경제연구원에서 낸 보고서를 보면 3개월간 농가 소득이 줄고 1300억원의 손해를 봤다고 합디다.”
조사가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검사가 調書(조서)들을 프린트에서 출력하고 있었다. 시계가 저녁 7시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검사 뒤쪽으로 난 작은 창문으로 서초동의 밤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 읽어 보시고 署名拇印(서명무인)하시죠. 이 조서는 후에 공개될 수 있습니다.”
검사는 막 출력된 두툼한 서류뭉치를 건넸다. 늦은 밤 우리는 검찰청을 나왔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정 전 장관이 한마디 내뱉었다.
“제 자신이 과거 수입개방 때 큰 고통을 받은 농민입니다. 장관이 되어서도 국민을 제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도 잘못한 게 없는 대통령은 사과하고 장관인 저는 얻어맞았어요. 장관은 검찰에 나와서 열 시간 동안 혼이 나는데 거짓말쟁이들은 언론의 자유라면서 아예 나오지도 않아요. 이게 대한민국 법치의 현주소죠.”
검은 하늘에서 빗방울이 한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
1980년 봄 고려대 농대 4학년생이던 청년이 서울을 빠져나와 무조건 남쪽으로 내려갔다.
‘인생의 진로를 결정할 때는 가장 첨단을 달리는 곳이나 아니면 가장 낙후된 곳을 찾아라. 성공 가능성은 그곳에 많다.’
대학 설립자인 金性洙(김성수) 선생의 말을 그는 가슴에 품고 있었다. 南道(남도)를 유랑하던 그는 키위와 인연을 맺게 된다. 비타민C의 함량이 사과의 20배이고 농약을 치지 않아도 되는 무공해 과일이었다.
그는 먼저 청과시장 상인들에게 판매 가능성을 알아보았다. 반응이 괜찮았다. 그는 먼저 키위 묘목을 수입해다 팔아 보았다. 실패는 바로 찾아왔다. 묘목의 90%가 얼어서 말라 죽었다. 사기당했다고 농민들이 아우성을 쳤다. 정부조차 우리환경에 맞지 않는 키위니까 재배하지 말라고 했다.
빚에, 폐결핵에, 가로수를 들이받는 교통사고에 그는 만신창이가 됐다. 그는 직접 키위를 재배하기로 했다. 그는 전남 해남의 빈 땅을 빌려 키위 재배를 위한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거기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그는 주변 산기슭에 텐트를 치고 호롱불 아래서 키위에 대해 공부했다.
그는 자기가 키위 묘목을 판, 실망에 빠진 농가들에 일일이 편지를 했다. 끝까지 책임을 지고 싶으니 함께 연구하자는 내용이었다. 비닐하우스의 한 귀퉁이를 키위 재배의 토론장으로 삼았다. 농민들이 한두 사람씩 모여들었다. 그는 5년5개월 동안 그렇게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면서 키위 국산화에 성공했다.
고비도 많았다. 태풍의 공격이 있었고 지역 텃세도 심했다. 농산물 중 첫 번째로 키위 시장이 개방됐다. 국산 키위는 도저히 경쟁력이 없었다. 그는 살아남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재배 농민들을 이끌고 농수산부 장관을 찾아갔다. 비서진을 통해 간신히 얻은 대화시간은 5분이었다. 그는 직격탄을 날렸다.
“장관님은 허수아비입니까? 아니면 핫바지입니까?”
그는 짧은 시간 최대한의 성의를 다해 설명했다. 그 정성에 장관의 마음이 바뀌었다. 키위가 정부가 권장하는 과일로 변한 것이다.
농군 鄭雲天
다음으로 중요한 건 판매처의 확보였다. 외국 키위와의 싸움은 거기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軍(군)에서 배운 특공전술을 사용했다. 정예 농가를 특공대로 만들어 백화점을 찾아다녔다. 어디도 그들의 키위를 사주겠다는 곳은 없었다. 마지막에 지하식품 코너에 한 평짜리 수수료 매대를 간신히 얻었다. 직접 물건을 팔고 그 판매액의 20%를 수수료로 내는 조건이었다.
농민들이 ‘국산키위’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시식을 권했다. 소비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시커먼 얼굴과 흙이 묻은 두툼한 손으로 권하는 키위를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은 낡은 방법이었다. 그는 미인계를 썼다. 아내의 직장동료들에게 도와줄 것을 간청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그는 ‘참다래’라는 고유 브랜드를 가진 최초의 농민주식회사를 만들었다. 못생긴 키위들로는 주스를 만들었다. 그는 이어 종합유통센터를 만들고 중간비용을 없앨 유통의 고속도로를 구축했다. 황폐화한 한국 농업의 부활이 그의 목표였다. 정부 주도의 他律農政(타율농정)에서 생산자 조직의 自律的(자율적) 농업체계로 전환시키겠다는 게 그의 꿈이었다.
그는 키위 독점 수입권을 얻어냈다. 반대가 능사가 아니었다. 키위는 반 년 장사였다. 여름과 겨울이 정반대인 뉴질랜드의 키위를 수입해서 팔면 1 년 내내 독점 공급이 가능했다. 경쟁이 아니라 상대방을 감싸 안아버린 것이다.
그의 다음번 상품은 고구마였다. 백화점마다 흙이 묻은 채 천대받던 고구마를 깨끗이 씻어 하나하나 진공포장을 한 고급상품으로 변화시켰다. 그건 특별한 게 아니었다. 부패를 방지하면서 깨끗이 씻는 간단한 기술이었다. 그는 자신의 방법을 ‘거북선 농법’이라고 이름 붙였다. 세계적 발명품이라고 하던 거북선도 사실 별게 아니었다. 나룻배에 총알을 피할 수 있도록 뚜껑을 덮었을 뿐이다. 농업도 조금만 발상을 바꾸면 중국대륙까지 점령할 수 있다는 게 그의 구상이었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후보는 그를 우연히 알게 된 후 농수산식품부 장관에 전격 발탁했다. 죽은 한국 농업을 부활시킬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촛불정국 때 군중에게 몰매를 맞을 뻔했던 鄭雲天(정운천)이었다.
촛불시위로 인해 그는 꿈을 펴지도 못한 채 날개를 접었다. 그는 쌀을 살릴 수 있었고 쇠고기를 특화시킬 계획이었다.
PD수첩의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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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곡보도로 촛불시위 사태를 야기한 MBC |
사회자가 아까 그 광우병에 걸린 소라고 확인해 주면서 출연한 취재담당 PD에게 자세한 걸 물었다. 미국 쇠고기는 끓여 먹거나 익혀도 감염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PD가 차트를 보이면서 한국인의 유전자는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특히 높아 94%라고 했다. 그건 식품이 아니라 독극물 같은 느낌이었다.
화면이 바뀌었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미국 사업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방금 차 안에서 장관으로부터 미국 쇠고기 수입협상을 타결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미국 업자들의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대통령의 미소는 교활해 보였고 매국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화면에 미국 대통령을 모신 한국 대통령이 손을 흔들면서 골프차를 직접 몰고 있었다. 한국 측 쇠고기 협상대표인 閔東石(민동석) 차관보의 인터뷰가 나왔다.
“미국인이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 하나의 사건만 가지고 구조적인 문제로 단정짓기는 어렵죠.”
광우병의 위험성을 의도적으로 묵살하는 것 같았다. 방송에서는 스펀지처럼 구멍 뚫린 뇌의 사진이 다시 클로즈업되고 있다. 방송은 소의 눈이나 뇌 척수 등에 광우병 위험물질이 들어있다고 알려주면서 그게 한국인의 식탁에 오르고 있는 사실들을 알려주고 있었다. 민동석 차관보의 기가 막힌 반론이 나왔다. 그는 싱긋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쇠고기는 안전합니다. 위험부위의 물질만 제거하면 안전하죠. 복어의 독을 제거하고 아무 걱정 없이 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비행기를 탈 때도 항공사고가 치명적인데 그런 걸 생각하면 탈 수 없는 거죠.”
도대체 제정신을 가진 사람의 말인지 의심스러웠다. 그걸 보고 있던 진행자가 이렇게 결론지었다.
“과거 親日 賣國奴(친일 매국노)처럼 오늘 특히 國政(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역사에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지 않은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방송을 보고 중학교 3학년 아이가 인터넷의 아고라에 올린 이런 글이 있었다.
<어제 저녁 학원에서 돌아온 후 PD수첩을 다시 봤습니다. 느낀 점은 죽음에 대한 공포입니다. 미국에서 수입해 오는 쇠고기를 먹으면 언제 어디서 미쳐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공포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의 광우병 소들을 수입해서 우리 국민들을 모두 살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을 뽑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투표권을 가진 우매한 어른들 때문에 투표권이 없는 우리까지 모두 죽게 생겼습니다.>
시청 앞을 벌겋게 물들인 촛불시위
방송을 보고 분노한 국민들이 하나씩 둘씩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여러 가지 얘기가 떠돌았다. 키스만 해도 광우병에 전염된다는 것이다. 미국 놈들은 대부분 호주나 뉴질랜드 쇠고기를 사먹기 때문에 그들이 먹는 고기와 우리가 수입해 먹는 건 다르다고 했다. 소를 이용해 만드는 화장품만 써도 광우병이 옮는데 학교 급식용은 모두 미국산 쇠고기라고 했다.
밤이면 시청 앞 일대는 수만 명의 촛불시위로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촛불시위 광장으로 가 보았다. 수많은 텐트가 군대 막사같이 쳐져 있었다. 그 안에는 피켓, 플래카드 뭉치, 전단지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미친 소의 조각상이 광장 복판에 우상같이 세워져 있었다. 사회자인 40대의 여성이 청계광장에 나온 중고교생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대통령 한 놈만 국민 무서운 걸 모르고 있습니다.”
저주와 증오가 난무했다. 중학생들이 “이명박은 퇴진하라”라고 소리쳤다. 중학생들까지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에게 덤벼들었다. 경복궁 담 위에 올라가고 가로수 버팀목을 뽑아서 광화문 네거리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술판을 벌인다고 했다. 쇠파이프와 망치를 든 시위대가 경찰버스의 유리창을 파괴했다. 중학교 여학생들의 대화내용을 옆에서 직접 들었다. 한 여성 국회의원의 사생활을 입에 올리면서 저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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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6월 10일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 집회장에 참석한 정운천 전 장관은 시위대에 둘러싸여 봉변을 당했다. |
내 친구 민동석
얼마 후 현장에 나온 정운천 농수산식품부 장관이 멱살을 잡힌 채 안경이 날아가고 양복이 찢어지는 뉴스 장면을 봤다. 청와대쪽을 향한 도로에는 대낮에도 컨테이너 방벽이 이층으로 두껍게 설치되어 있었다. 거의 內戰(내전)상황 같았다. 50대 중반의 내 또래 친구들도 저녁이면 현장에 가보는 것 같았다. 현직 차관을 하는 친구가 촛불시위 현장을 다녀와서 씁쓸한 표정으로 이렇게 전했다.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나왔더라구. 내가 ‘너희 여기 왜 나왔니?’ 하고 물으니까 그 아이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 ‘안 나오면 쪽팔려서 나온 거예요’라고 하더라고.”
마침내 이명박 대통령이 백기를 들었다.
쇠고기 협상대표였던 민동석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40년 동안 단짝 친구였다. 그의 성품이나 집안 구석구석까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아들이 군대 가기 전 내 사무실에서 잠시 일을 했었다. 어느 날 점심 후였다. 그의 아들이 여직원과 잡담하는 소리가 문틈을 통해 들려왔다.
“우리 아버지 평생 외교관을 해 왔는데요, 그거 옆에서 보니까 절대 좋은 직업 아니에요. 돈도 못 벌고, 고생만 하고 말이죠. 우리 엄마는 대통령이 온다고 하면 김밥 싸야죠, 한복 입고 태극기 들고 나가야죠, 높은 사람 음식 만드느라고 동원되죠, 외교관 그거 빛 좋은 개살구예요.”
아들은 아버지가 외교관이 되기 위해 피눈물 나는 과정을 겪은 걸 보지 못했다. 가난을 딛고 외교관이 된 친구는 사명감과 부지런으로 평생을 보낸 협상전문가였다. 30년 경력의 외교관 부인이 무릎에 구멍이 난 낡은 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를 헌신적인 모범공무원으로 확신한다.
그런 그가 갑자기 매국노가 되어 마스크를 낀 채 도망 다니고 있었다. 촛불시위가 한창일 무렵 그와 조그만 식당에서 은밀히 만났다. 그가 자조적인 얼굴로 핸드폰을 내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나를 저주하는 글들인데 한번 봐.”
문자메시지들이 화면에 떠올랐다.
‘친일파 이완용 같은 놈아, 광우병 걸린 미국 쇠고기를 너하고 니 가족들이나 처먹고 뇌에 구멍이 뚫려서 뒈져라.’
하나같이 그런 저주들이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야당 당사의 벽에는 매국노 중 두 번째로 내 사진과 이름이 붙어 있더라고.”
그는 이미 사회적 사형선고를 받은 인물이 되어 있었다. 쇠고기 협상의 내막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을 그에게 먼저 확인하고 싶었다.
―방송을 보니까 광우병으로 쓰러진 소를 도살하던데 맞아?
“그거 광우병에 걸린 소 아니야. 다른 소를 광우병에 걸린 소같이 착각하게 만든 거지.”
―인간 광우병으로 죽은 미국인 장례식이 나오던데?
“죽은 미국인도 인간 광우병으로 죽은 게 아니야. 1990년대 중반에 광우병이 알려졌는데 그 이후 미국에서 5억 마리의 소가 도축돼서 식용으로 쓰였어. 3억명의 미국인이 매일 그 쇠고기를 먹은 거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인간광우병에 걸린 사람이 없어.”
광우병 소동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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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5월 6일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설명회에서 민동석 농림수산식품부 통상조정관(오른쪽 끝)이 발언하고 있다. |
“알아보니까 광우병을 연구한 그런 논문은 없었어. 정말 그렇다면 미국에 있던 수십만 명의 우리 교포 대부분 광우병에 걸려 죽었게? 말도 안돼. 세계 117개국 사람들 수십억 명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도 단 한 사람도 광우병에 걸리지 않았어. 그런데 어떻게 한국 사람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4%라는 거야? 걸리고 싶어도 걸릴 수 없는 상황인데….”
그가 억울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매년 3만3000명이 미국에서 독감으로 죽어.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1000명이 벼락을 맞아 죽었다. 그런데 광우병에 걸려서 죽은 사람은 없어. 한 의사가 확률을 계산했는데 한국인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5000만명의 한국인이 수천만 년을 살아도 한 사람 보기가 어렵대.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몇 백만 배 낮은 거지. 그런데 왜 있지도 않은 광우병 유령이 세상을 흔드는 거야?”
그는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그런데 방송에서 복어 얘기는 왜 했어?
내가 물었다. 영 맞지 않는 엉뚱한 비유 같았기 때문이다.
“국제수역사무국이 가축에 관해서는 국제적인 공인기관이야. 거기서 광우병에 걸린 소를 연구했는데 뇌나 척수 이외의 부위에서는 원인물질인 ‘변형프리온’이 없다는 거야. 막말로 광우병 소도 뇌와 척수만 제거하면 먹을 수 있다는 거지. 복어도 독을 빼고 먹지 않느냐는 얘기는 거기서 나온 건데 두 시간 인터뷰하고 그 부분만 몇 초 나온 거지. 그렇게 편집하면 병신 안될 사람이 어디 있냐?”
나는 비로소 납득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업자들 앞에서 쇠고기 수입을 통보하는 장면은 비굴한 것 같아서 화가 나던데?
“그게 아니야. 盧武鉉(노무현) 정권 때 쇠고기 수입 문제가 이미 끝났어. 노무현이 부시한테 전화까지 걸어서 미국 조건을 승낙해 버린 거야. 그런데 대통령선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 문제가 이명박 정권으로 넘어온 거지. 이명박 대통령도 찜찜해 했지만 어떻게 하겠어? 받아야지.”
“그래도 난 버텼어”
―노무현 대통령이 왜 전화까지 걸어서 승낙을 했어? 그럴 분이 아니잖아?
“미국 쇠고기 속에서 손톱만한 뼈가 한 조각 발견됐다고 수입된 걸 전부 돌려보냈던 사건 알지? 국내에서조차 너무 속 좁은 행동이라는 의견이 있었어. 그때부터 미국은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우리를 철저히 불신하고 악착같이 덤벼들었어. 노무현 정부가 항복하고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서 미국 요구를 다 들어줬지. 협상대표인 나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어. 미국 대표인 헬렌이란 여자는 대통령이 약속까지 했는데 왜 협상을 지연시키느냐고 화를 냈어. 그래도 난 버텼어. ‘대통령의 말보다 중요한 건 국민의 건강’이라고 하면서 말이지. 사실 나는 협상의 최전선에서 쇠고기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쌀 수입도 막아야지, 오렌지도 막아야지, 돼지고기, 닭고기도 막아야지, 정신이 없었어. 무조건 다 막기는 불가능하지. 미국은 자기네 농축산물을 한국이 사먹어야 한국 자동차에 대해서 관세를 철폐하겠다는 조건이니까. 섬유도 마찬가지였어. 결국 자동차를 팔기 위해 농축산물을 개방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협상대표인 내 입장은 그래도 어떻게 하면 피해를 최소화하느냐는 정도였지.
그래도 난 30년 협상을 해 온 전문가야.쌀도 오렌지도 막았어. 내 노력으로 우리 삼계탕을 미국에 팔도록 약속 받았어. 그 외에도 한 일이 많은데 방송을 보니까 나는 완전히 매국노에 바보가 됐더라고.”
―30개월 이상 된 소는 광우병에 걸릴 위험성이 많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먹지 않는다면서? 자기네는 뉴질랜드에서 소를 수입해 먹고 위험한 소는 우리나라에 수출한다고 광우병 괴담에 나오던데.
“말도 안되는 소리 마라. 정말 그렇다면 미국 사는 교포 250만명이 1000만명이 넘는 한국 친척에게 그 소식을 전하지 않을 것 같냐? 미국에서 30개월 이상 된 소는 햄버거 재료로 전국적으로 먹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100개국이 소의 연령에 아무 제한이 없어. 아니 단 한 나라 일본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유통시키고 있지. 그 이유는 일본 자체에서 광우병이 발견된 적이 있기 때문이야. 일본 축산업자들이 기르는 소까지도 20개월 이내만 유통시키도록 법을 바꿨지. 만약 한국에서 그렇게 하면 축산업자들이 모두 도산하고 난리가 날걸.”
―방송이 허위보도라면 왜 정부는 한마디도 반박을 못하냐?
“내 말이 그 말이야. 내가 정말 매국노라면 아들을 미쳤다고 전쟁 중인 레바논까지 보냈겠냐? 정말 억울한 건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사과를 하니까 장관이나 나나 다 도매금으로 잘못한 놈이 되어버렸어. 국회에 나가서 진실을 말하려고 했더니 ‘대통령도 잘못을 시인했는데 네까짓 게 뭔데 그러냐’는 식으로 호통을 치더라고.”
―방송에서 인용한 학자나 전직 장관은 모두 현 정부에 잘못이 있는 것처럼 말하던데?
“그 양반들 정말 원망스러워. 정말 그런지 한번 따지자고 하니까 비겁하게 꽁무니들을 빼더라고.”
광우병 1년 후 달라진 民心
촛불시위가 일어난 지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단골 마트의 주인 아저씨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광우병 얘기 그거 다 개그라고 그래유. 저도 방송을 보고 처음엔 찝찝해서 쇠고기 못 먹겠더라구유. 안 먹었쥬. 25년 쇠고기를 취급한 아저씨가 있는데유. 미군부대에서 전부 미국 쇠고기를 가져다 먹지 언제 한국 소를 사 먹는 거 봤냐구 그래유. 생각해 보니까 그 말이 맞더라구유. 그 도매상 아저씨는 미국 쇠고기 때문에 韓牛(한우)도 못 팔았다고 투덜거리드만유. 쇠고기 한 근에 2만3000원 하고 사골 하나에 7만원 할 때는 정말 못 사 먹었슈. 그러다 요새 가족들 데리고 미국산 쇠고기 등심을 사 먹었는데 값싸고 맛만 좋더라구유.”
그가 뭔가 생각난 듯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계속했다.
“이상한 건유, 중국에서는 납이 든 생선도 보내고 농약이 든 만두도 보내는데 그건 왜 데모를 안 하쥬? 대통령 물러나라고들 안하대유. 쇠고기는 이명박 대통령 말처럼 나쁘면 안 사먹으면 되는 건데 왜들 그렇게 난리쳤는지 몰라유. 저두 없는 놈이라 처음에는 左派(좌파) 쪽을 지지했어유. 그런데 이제는 아녜유. 뒤에서 촛불시위를 시킨 좌파들을 전부 북쪽으로 보냈으면 좋겠어유. 거기서는 쥐고기도 없어서 못 먹는다는데 말유. 그 사람들 쇠고기 타령이 나오는지 말이에유.”
1년 만에 민심이 달라져 있었다. 오히려 미국發(발) 금융위기가 全(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상황이 됐다. 금융전문가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의 금융계에서 근무하고 메리츠 증권의 부회장도 역임했다. 그가 말했다.
“한국은 참 이상한 나라야. 이명박 정권은 쇠고기 협상을 타결한 공로로 세계적 금융위기를 넘기게 됐어. 만약 그게 타결되지 않았으면 미국이 절대 통화 스와프를 허용하지 않았을 거야. 그 진짜 의미가 뭔지 알아? 다른 나라가 부도로 다 쓰러져도 한국은 살리겠다는 미국의 보장이지. 한국 정부가 쇠고기 협상에서 치사하게 굴었다면 미국이 그런 혜택을 줬을까? 이명박 정권이 대단한 일을 한 거야. 정권이 그 공로를 언론에 홍보를 해야 했었는데 오히려 PD수첩과 촛불시위로 죽을 쑤는 걸 보니까 웃겨. 그리고 정책이 잘못됐으면 관련 실무자나 장관이 사과하면 되지 왜 대통령이 사과해? 일을 잘해 놓고도 말이야.”
비겁한 대통령
뒤늦게야 진실이 밝혀지고 있었다. 판결이 선고됐다. 방송에서 광우병이 아닌 소나 사람을 광우병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취지였다. 한국인만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4%에 해당한다고 방송한 것도 거짓이라는 판결이었다. 영상조작이 드러나고 내용 중 상당부분이 허위였다. 한 원로 언론인은 PD수첩의 방송내용에 대해 이런 의견을 제시했다.
“사회자가 뒤에 걸어놓은 플래카드를 보십쇼. ‘목숨을 걸고 광우병 쇠고기를 먹어야 합니까?’였어요. 그렇게 방향을 설정해 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등장인물, 모든 화면, 모든 내레이션, 그리고 모든 수치를 그 방향으로 몰고 간 거죠. 있지도 않은 광우병을 만들어 한국 사회에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키게 한 게 바로 그 방송입니다.”
그는 동시에 방송을 두둔하기도 했다.
“나도 기자를 수십 년 해 봤지만 언론은 시간에 쫓기니까 誤報(오보)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잘못이 발견되면 바로 사과를 하는 게 바른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없었어요.”
그는 대통령에게도 한마디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과하기보다 거짓보도에 화를 냈어야 하죠. 여론보다 옳고 그름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게 대통령이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게 뭡니까? 일부 언론에서는 촛불집회를 평화집회고 순수한 시민궐기라고 하죠. 그런데 보세요. 구호 중에 ‘이명박 정부 쓸어버리자’라고 하는 것도 있죠? 청와대를 포위해서 끝장을 볼 때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했죠? 현장의 유인물들을 보면 ‘혁명의 정신으로 죽음도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적혀 있어요. 결국 거짓말에 항복하고 조직적인 배후세력에게 대통령이 비굴하게 무릎을 꿇은 겁니다.”
“PD수첩 묵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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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5월 7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정운천 장관(오른쪽)과 민동석 통상조정관. |
“거짓말 방송에 속은 시위대에 이명박 대통령이 두 번이나 사과를 했어요. 대통령은 잘못이 없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숙인 거예요. 일단 공포에 떠는 국민들을 위로하자는 거였죠.”
그는 옆에 있던 민동석 차관보에게 신문기사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벌써 뉴스가 나오고 있던데. 이거 한번 봐.”
내가 함께 그 기사를 봤다. 대충 내용은 이랬다.
‘검찰이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보도사건에 대해 관련자들을 다시 소환하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하고 있다. 검찰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수사의뢰로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으나 제작진이 세 차례에 걸쳐 소환에 불응하면서 수사가 교착상태에 빠졌었다.’
그걸 본 민동석 차관보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입을 열었다.
“1년이나 수사를 하지 않더니 이제 다시 한다고 그러네요.”
“도대체 검찰이 수사의지가 있나 의심스러워.”
정 전 장관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그가 나를 보면서 입장을 먼저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는 오늘 이 나라의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데 힘을 보태기 위해서 검찰에 나가는 겁니다. 저와 협상대표가 ‘광우병 五賊(오적)’, ‘매국노’ 등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욕설과 악성 댓글을 받은 것은 참아 왔습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건 PD수첩 방송 며칠 후 여중생이 장관실로 전화를 걸어 광우병이 꽉 찬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절규하는 겁니다. 국민을 속이고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조롱거리로 만든 PD수첩에 대해 정말 묵과할 수가 없습니다. 국가적, 법적인 차원에서 반드시 옳고 그름을 가리고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에 법이 있기는 있는건지…”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그 말에 내가 그에게 물었다.
―정부 측에서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하셨습니까?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의 부족을 인정했고, 사람들은 정부의 진실을 알리는 용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하는데요.
대통령이 진실에 대해 말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청와대 대변인이나 국무총리, 한나라당에서도 광우병 위험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걸 보지 못했다. 반박되지 않은 거짓말은 진실로 통하기도 한다. 판사만이 1년 후 허위사실이라고 판결했다. 정 전 장관이 억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워낙 사태가 험악하고 어떤 진실도 통하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행동으로 국민 앞에 서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말렸죠. 그래도 저 혼자 갔어요. 저녁 7시에 시위대의 자유토론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시위를 주도하는 측에서 장관인 저의 발언기회를 아예 차단해 버리더라고요. 현장에 갔더니 사방에서 저를 매국노라고 하면서 죽일 듯이 덤벼들더라고요.
저는 그 사람들 눈에서 섬뜩한 광기를 봤습니다. 그건 정책에 반대하는 단순한 눈빛이 아니었어요. 멱살이 잡히고 안경이 날아가고 양복이 찢겼죠. 대전에서 열리는 기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내려간 적이 있어요. 시위대가 회의장 건물을 둘러싸고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저보고 뒷문으로 들어가라고 하더라고요. 국가를 대표하는 장관인 내가 왜 숨어 들어갑니까?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가려고 했죠. 시위대들이 이번에도 저를 보고 ‘매국노 정 장관은 물러가라’고 외치면서 공격했습니다. 거기서도 다시 폭행을 당했습니다. 도대체 이 나라가 법이 있기는 있는 건지, 그리고 내가 장관인지 의심스러웠죠.”
나는 정 전 장관의 각오를 확인하고 싶어 이렇게 물었다.
―장관님은 이제부터 피켓을 들고 방송국 앞에 가서 1인시위를 할 용기가 있습니까?
“하죠. 당연히 할 용기가 있습니다. 장관 때도 그렇게 하려고 했었는데, 이제 자유인인데 뭘 못하겠습니까? 저도 원래 제도권이 아니고 재야에서 살던 사람입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사의뢰도 하고 법원에 소송도 걸었습니다. 이겼잖습니까? 대통령이 거짓에 고개를 숙였는데도 검찰은 지난 1년 동안 허위방송을 한 사람들을 부르지도 못했어요. 어떻게 법과 원칙이 이렇게 무너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검찰의 태도가 그동안 어땠습니까?”
“검찰은 이 사건을 저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으로만 취급하려고 하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형식논리에 밀려서 큰 걸 놓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죠. 촛불정국은 거짓된 방송내용 때문에 일어났고 일부 세력의 선동으로 國基(국기)가 흔들린 사건입니다. 感性(감성)을 파고드는 속임수로 중고생 아이들을 부추겼어요. 야간에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을 폭행하고 청와대로 쳐들어가 정권을 엎으려는 게 내란선동이 아니고 뭡니까? 숲을 보지 못하고 명예훼손만 따지는 검찰의 법 논리를 도무지 모르겠어요.”
어느새 다방 벽에 붙은 시계가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자, 일어서시죠.”
내가 정 장관에게 말했다.
“피하시죠. 지금 기자들이 와 있어요”
잠시 후 우리는 검찰청 민원안내실로 들어갔다.
“오후 세 시에 조사한다고 해서 왔는데요.”
내가 카운터에 앉은 여직원에게 말했다. 여직원은 키보드를 두드려 모니터를 보더니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오늘 조사 예정이 컴퓨터에 입력되어 있지 않은데요.”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였다. 얼마 전 검사가 쇠몽둥이로 테러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그 후로 검찰청 출입이 까다로워졌다. 그때 주머니 속에 있던 나의 핸드폰이 ‘웅’하고 진저리를 쳤다. 담당검사였다.
“왜 안 오십니까?”
늦다는 질책이 섞인 어조였다.
“들여보내야 들어가죠.”
“아, 제가 바로 컴퓨터에 소환인 이름을 올리겠습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여직원이 못마땅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정 전 장관과 나는 잠시 후 검사실로 들어섰다. 포승을 하고 철제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서기 앞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중앙에 앉았던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잠깐 따라오시죠. 먼저 부장님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잠시 후 도착한 부장검사실 주변은 어수선했다. 앞에 있던 검사가 갑자기 돌아서서 우리를 구석으로 끌고 가면서 속삭였다.
“피하시죠. 지금 기자들이 와 있어요.”
기자를 피할 이유가 없었다. 당당히 외치려고 왔다. 검찰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유쾌하지 않았다. 한참 기다린 후에야 우리는 부장실로 안내됐다. 정운천 전 장관이 부장검사에게 항의했다.
“검찰의 수사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법질서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이렇게 왔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왜 이 문제를 자꾸 저 개인의 명예훼손으로만 축소하는 겁니까? 사실 저는 PD수첩의 일선 실무자들에게 감정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국가의 기강은 바로 서야 한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듣고 있던 부장검사가 입을 열었다.
“말씀은 알아듣겠습니다. 우리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최대한 성실하게 수사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입장이 예전의 독재정권 시절하고 같을 수는 없습니다. 정확한 법적 검토 결과에 따라 움직일 겁니다.”
조사실의 정운천 장관
잠시 후 우리는 검사를 따라 조사실로 갔다. 블라인드가 내려진 한 평 정도의 작은 방이었다. 정 장관과 나는 검사 책상 앞의 의자에 나란히 쪼그려 앉았다.
“검찰청 조사실은 다 이렇습니까?”
장관이 불편한 듯 귓속말로 내게 물었다.
“그래도 다른 雜犯(잡범)들같이 철제 의자에 앉히지 않고 이렇게 별도로 조사받는 건 대접해 주는 셈입니다.”
“아, 이게 장관을 지낸 사람에게 조금은 예우해 주는 거군요. 그렇지만 난 被疑者(피의자)도 아닌데….”
실제 조사에서 참고인과 피의자의 구분은 없었다. 앞에 있던 검사가 입을 열었다.
“먼저 조사를 하기에 앞서서 장관님께 명예훼손에 관한 법이론들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검사가 책상위에 놓인 판례집을 들어 눈으로 한번 훑은 다음 속사포같이 말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명예훼손죄의 피해자 적격에서 국가기관은 그 대상이 되지 않는 게 확립된 대법원 판례입니다. 이 사건은 공적인물 이론이나 법적인 진실성과 相當性(상당성) 이론에 의해 위법성 阻却(조각: 방해하거나 물리침)이 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상대방에서 공공성과 상당성의 주장이 예견되고 그 부분에 대한 법적 검토를 거쳐야 기소 여부가 결정될 겁니다.”
“이게 뭔 말이여?”
생소한 법률용어에 장관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이제부터 진술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검사가 키보드 위에 손을 얹으면서 선언했다.
―진술인이 장관으로 재직하신 기간은?
“2008년 2월 29일 장관으로 임명되어 근무하다가 촛불시위가 일어났죠. 정국혼란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2008년 8월 6일 물러났습니다.”
―물러난 이유가 뭡니까?
“2008년 4월 29일 PD수첩이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방송을 했습니다. 방송내용을 보면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를 들여온 정부관계자가 무능해서 광우병 위험성을 몰랐거나, 아니면 그걸 축소 은폐하고 협상을 해 한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 매국노라는 보도였습니다. 방송 후 온 국민이 정부책임자인 저를 을사오적 같은 역적이라고 욕하고 국회에서도 저를 해임하는 안이 상정됐습니다. 저로서는 주무장관으로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국가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닭보다 못한 사람이 되기는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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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26일 좌파단체 회원들은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MBC |
“미국 가축 위생실태에 대한 현지조사와 국내의 가축방역 협의회, 전문가 회의를 거쳤고 독자적인 수입위험 분석절차를 통해서 국제적 기준에 맞게 안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옆방에 있던 젊은 검사가 조사실 안으로 들어오다가 정 전 장관을 봤다.
“어? 정 장관이네. 요즈음 삿갓을 쓰고 남도를 돌아다니신다면서?”
그가 농담같이 말을 걸었다.
“아, 예 농민들을 대상으로 순회특강과 현장방문을 하고 있습니다.”
정 전 장관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잠시 쉬었다 하죠.”
장관을 조사하던 검사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우리도 화장실에 갔다가 그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검찰청에는 쉬는 시간 동안 있을 곳이 없나요?”
정 전 장관이 내뱉었다. 모멸감이 그의 표정에 나타나고 있었다. 혐의를 받고 있는 상대방 측 PD들은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출석을 거부했다. 장관은 벌써 두 차례나 불려 나오고 화장실 앞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대기실이라고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창문조차 없는 비좁은 그곳은 더 답답했다. 어느새 해가 지고 검찰청 어스름한 복도의 천장에서 형광등 불빛이 파랗게 흘러나왔다. 정 전 장관이 말했다.
“저는 원래 키위를 재배하고 농산물을 판매하는 게 저의 본업이고 장관은 잠시 있었던 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닭보다 못한 사람이 되기는 싫었어요.”
―닭보다 못하다뇨?
내가 무슨 소린지 몰라서 되물었다.
“닭은 비바람이 치거나 위험한 경우 자기 날개로 병아리를 모두 감싸 안잖아요? 그런데 정부에 있어 보니까 도대체 그런 게 안 보여요. 관료들은 책임을 회피하는 데는 동물적 후각들을 가지고 있어요. 나도 책임을 미뤘다면 그냥 장관을 해먹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러기 싫었어요. 지금 여기 나와 있는 것만 해도 그래요. 법이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이렇게 나와서 서 있는 게 아닙니까?”
그때 부장실에 보고를 갔던 검사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다시 조사실로 가시죠. 빨리 끝내야 하겠습니다.”
“이 매국노 같은 새끼”
밤의 좁은 조사실은 후텁지근한 공기가 꽉 차 있었다. 검사가 서류 중 한 부분을 보면서 장관을 향해 말했다.
“무식하고 덜떨어진 찌질한 놈아.”
“예?”
정 장관이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검사가 계속했다.
“이 매국노 같은 새끼.”
“….”
장관이 당혹한 표정이었다.
“국민 건강주권을 양키 놈들한테 팔아 넘기고도 지금 숨 쉬고 있는지 모르겠네.”
나는 검사가 왜 그러는지 눈치챘다. 검사는 정운천 전 장관에게 왔다는 댓글들을 읽고 있었다.
“국민은 광우병 쇠고기를 먹게 하고 너는 한우를 먹냐?”
검사는 끝이 없이 읽을 태도였다. 정 전 장관의 얼굴이 붉어졌다. 듣다 못해 변호사인 내가 끼어들었다.
“검사님, 그만하시죠.”
“예? 왜요?”
검사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지금 정 장관의 입장에서는 수모를 당하는 느낌이잖아요?”
내가 말했다.
“아니 저는 그냥 댓글을 확인하기 위한 겁니다. 그 이유는 국민들이 방송을 보고 통상적인 청취자의 입장에서 받은 인상이 댓글이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그런 인상을 명예훼손을 판정하는 기준으로 삼으라고 그랬죠.”
검사가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이렇게 물었다.
―장관님을 매국노라고 하는데 느낌이 어떠세요?
“그야 나쁘죠.”
―어떻게 나쁘셨는데요?
“저도 20년 동안 在野(재야)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입니다. 제 나름대로는 장관이 된 후 철저한 애국심을 가지고 일했는데 그런 욕을 먹었으니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저는 農大(농대)를 졸업하고 시골로 내려가 농민들 속에서 평생 신뢰를 쌓으려고 노력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국민들에게는 그걸 깬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을 망신시킨 사건”
정 전 장관이 얼굴에 울분이 서려 있었다. 검사가 물었다.
―국가는 명예훼손의 피해자 適格(적격)이 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입니다.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법률가가 아닌데 판례를 어떻게 알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죠?”
―국가기관인 농수산식품부를 아무리 욕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 판례란 말씀이에요.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요.
“회사도 개별 단체도 다 명예가 있는데 왜 국가가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겁니까? 멀쩡한 쇠고기를 한국 사람만 먹으면 광우병에 다 걸린다는 보도는 결국 대한민국 망신을 시킨 거 아닙니까? 한국 사람은 94%가 에이즈나 문둥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해보세요? 7000만 민족과 국가에 대한 명예훼손이 아닌가요? 이건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을 망신시킨 사건이죠.”
정 전 장관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가 덧붙였다.
“그뿐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축산농가에도 큰 피해를 줬어요. 촛불시위가 나온 후부터 쇠고기 소비가 급감했죠. 농촌경제연구원에서 낸 보고서를 보면 3개월간 농가 소득이 줄고 1300억원의 손해를 봤다고 합디다.”
조사가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검사가 調書(조서)들을 프린트에서 출력하고 있었다. 시계가 저녁 7시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검사 뒤쪽으로 난 작은 창문으로 서초동의 밤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 읽어 보시고 署名拇印(서명무인)하시죠. 이 조서는 후에 공개될 수 있습니다.”
검사는 막 출력된 두툼한 서류뭉치를 건넸다. 늦은 밤 우리는 검찰청을 나왔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정 전 장관이 한마디 내뱉었다.
“제 자신이 과거 수입개방 때 큰 고통을 받은 농민입니다. 장관이 되어서도 국민을 제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도 잘못한 게 없는 대통령은 사과하고 장관인 저는 얻어맞았어요. 장관은 검찰에 나와서 열 시간 동안 혼이 나는데 거짓말쟁이들은 언론의 자유라면서 아예 나오지도 않아요. 이게 대한민국 법치의 현주소죠.”
검은 하늘에서 빗방울이 한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