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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규제학의 대가’ 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

“규제개혁 제대로 하면 경제성장률 2% 끌어올릴 수 있어”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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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강하고 좋은 정부는 힘을 앞세우는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 시장 원리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
⊙ “이기지도 못할 시장을 이길 수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며 시장을 도외시한 정권은 무식하고 무책임”
⊙ “규제의 궁극적 부담 주체는 기업이 아니라 국민”
⊙ “교육정책·부동산정책·최저임금제… 이름만 다를 뿐 모두 ‘규제’”
⊙ “국민과 기업이 규제 때문에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2019년 기준으로 300조원”
⊙ “부정부패, 무능과 독선, 정책 실패를 보면서 어떻게 정부는 자애롭고 유능한 존재라고 우길 수 있나”
⊙ “DJ 때 1년 만에 규제 절반 없애… 문재인 정부는 惡性 규제 만들어”

崔炳善
1953년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美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정책학 석·박사 / 상공부 사무관, 규제개혁추진회의 위원, 美 캘리포니아대 객원교수, 한국규제학회 초대회장, 한국정책학회 회장, 감사원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역임. 現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 / 저서 《정부규제론》 《규제의 역설》 《민주주의는 만능인가?》 《규제 vs 시장》 등
  “규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장을 알아야 합니다.”
 
  ‘규제학의 대가’가 던지는 메시지는 일관적이었다. 30년 넘게 대학에서 학생들을 교육하고 규제개혁 실무에 깊이 관여해오는 동안 이 생각은 짙어졌다고 했다. 행정고시를 패스해 공무원 생활을 하던 그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우리나라의 1970~80년대 경제 정책 기조의 개혁 과정을 연구해 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부임했다. 규제 정책, 통상 정책, 규제제도 연구 등을 주로 강의했으며, 한국규제학회 창립을 주도해 초대회장,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을 지냈을 정도로 ‘규제’라는 한 분야만을 팠다. 규제 정책의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는 최병선(崔炳善)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가 정년 퇴임 후 4년을 바쳐 《규제 vs 시장》이란 책을 내놨다.
 
 
  규제 개념에 대한 생각이 바뀐 규제의 大家
 
  ― 규제의 개념을 재정의하셨더군요.
 
  “1992년에 낸 《정부규제론》에서 규제는 ‘바람직한 경제사회 질서의 구현을 위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기업과 개인의 행위를 제약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었는데, 《규제 vs 시장》에서는 ‘정부의 강제력으로 사회문제들을 바로잡거나 해결할 목적으로 제안된 행동들’이라고 규정했습니다.”
 
  ― 좀 더 부정적으로 들리는데요. 왜 생각이 바뀌었나요.
 
  “‘바람직한 경제사회 질서의 구현을 위해’라는 말을 빼고 정부의 강제력을 사용해 사회문제를 해결 할 목적으로 제안된 행동들’이라고 가능한 한 가치중립적인 개념으로 재규정하되 '제안된 행동'이라는 표현을 통해 규제의 목적이나 효과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도록 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부의 강제력으로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권리를 제약하려면 충분한 이론적, 경험적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규제가 해당 문제의 해결을 위한 최선의 대안인지에 대한 의문이 반드시 제기돼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 없이 규제를 능사로 삼는 태도, 즉 규제만능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둬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널리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모든 문제는 사회문제이고, 대부분이 규제를 필요로 하는 문제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흔히 사회문제라고 부르는 문제들 중에는 규제가 아니라 시장에 맡겨두면 해결될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어쩌다 나는 사건 사고에 대하여 강력한 규제 외에는 다른 대책이 없다는 듯이 덤비고, 부동산 가격이 문제라고 하면 부동산 정책, 교육이 문제라고 하면 교육제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규제를 쏟아냅니다. ‘정책’이라고 부르든 ‘제도’라고 부르든 이것들의 핵심은 규제입니다. 무릇 모든 규제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 소득과 부(富)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파급효과를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규제문제는 매우 중요하게 신중하게 다뤄져야만 합니다.”
 
  ― 국민이 규제 때문에 돈을 내나요.
 
  “교통범칙금, 부동산 관련 규제 등에 따라 세금을 내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규제든 규제를 이행하는 데는 당연히 비용이 들고 누군가는 이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언뜻 기업이 부담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궁극적 부담 주체는 국민입니다. 무슨 규제든 결국은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올라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규제는 공짜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규제는 惡性 규제”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8월 26일, 대구 달서구 아진엑스텍에서 열린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사진=뉴시스
  ―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필요한 규제 같은데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규제들이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규제가 시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 위에서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규제가 많다는 겁니다. 문재인 정부가 취한 규제들이 거의 악성(惡性)입니다. 최저임금제, 주52시간제, 중대재해처벌법, 20여 차례의 부동산 대책은 특히 문제가 컸습니다. 세상이 움직이는 이치,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태부족한 상태에서 규제만능주의로 일관했습니다.”
 
  ― 일부에서는 선(善)한 의도였는데, 시장의 반발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하죠.
 
  “시장이 반발할 게 빤한 규제를 한 게 문제입니다. ‘강한 정부의 역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시장을 무시하고 정부의 선한 의도와 힘만 믿고 밀어붙이는 정부는 강한 정부가 아닙니다. 정말 강하고 좋은 정부는 힘을 앞세우는 정부가 아니라, 시장의 힘을 인정하고 시장이 시장 원리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입니다. 난방비 폭탄 사례가 잘 보여줬듯이, 이기지도 못할 시장을 이길 수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며 시장을 도외시한 정권은 무식하고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모면할 수 없습니다.”
 
 
  “원수지간도 조건만 맞으면 거래되는 곳이 시장”
 
2022년 9월 27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규제개혁추진단 임명장 수여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대학에서 명강의 교수로 유명세를 떨쳤다는 최 교수의 설명은 간결했고, 쉽게 이해가 갔다. 정부, 시장, 민주주의, 자본주의라는 무거운 주제를 마치 대학생에게 설명하듯 조곤조곤 설명했다. 그는 “사회는 인위적(人爲的) 질서에 의해서만 이끌리는 게 아니다. 그보다 더 근원적인 질서는 자생적(自生的) 질서”라고 했다.
 
  “누가 어떤 의도를 갖고 만든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저절로 생성되고 자라난 질서를 자생적 질서라고 부릅니다. 시장이 전형적입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은 누구나 싸게 사려고 하고, 파는 사람은 비싸게 팔려고 합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았는데도 다들 그렇게 하고 흥정을 하다 보면 매매가 이뤄집니다. 사회의 기본을 이루는 질서도 인위적 질서가 아니라 자생적 질서입니다. 윗사람을 보면 인사하고, 남의 비위에 상할 말을 삼가고, 아기를 데리고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이에크(Hayek·1899~1992년)의 표현을 빌리면 자생적 질서는 이렇듯 ‘인간이 고안한 결과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 시장은 질서가 있군요.
 
  “시장은 아주 질서 있게 움직입니다. 시장을 움직이는 자생적 질서는 정부의 명령 지시로 대표되는 인위적 질서보다 훨씬 강합니다. 이 질서에 역행하는 사람이나 기업은 없습니다. 시장의 질서에 반하면 자기가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가짜 상품을 파는 상인, 같은 상품을 비싸게 파는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됩니다. 소비자들이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장을 관계적 개념으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사람들은 시장이라고 하면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로 생각하는데, 무수한 사람이 참여해 거래하고 교환하고,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무한히 다양한 내용과 형태의 협력 관계가 만들어지도록 돕는 것이 시장입니다. 저는 ‘자발적 교환을 통한 협력 관계의 망(網)’이 시장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고, 그 필요를 채워줄 사람(서비스)이 어딘가에 있는, 그래서 서로 협력 관계를 맺어서 더 나은 상태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게 시장입니다. 놀라운 것은 각자가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대의(大義)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먹고살기 위해 그런 협력 관계의 망 속으로 편입해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 협력은 서로 윈윈하는 것이 목표죠.
 
  “그렇습니다. 서로가 윈윈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장에서 교환하고 거래하고 계약합니다. 다만 시장에서의 협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협력과 다릅니다. 사람들은 보통 뜻이 같고 목적이 같아야 협력이 이뤄진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시장에서의 협력은 서로 뜻과 목적이 같아서가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이뤄지는 협력입니다. 교환, 거래는 쌍방 누구도 공통의 목적에 합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나 신뢰도 필요 없어요. 심지어 원수지간이라도 조건만 맞으면 거래가 성사됩니다. 이 조건들 중 가장 중요한 조건이 가격입니다.”
 
 
 
“가격은 신성하다”

 
  ― 시장경쟁과 가격 기능이라는 것은 뭡니까.
 
  “시장에서 가격은 서로의 기대가 일치되도록 만듭니다. 예컨대 A가게 커피는 맛은 참 좋은데 6000원입니다, B가게 커피는 맛이 비슷한데 4500원이에요. 그러면 A가게는 가격을 조금 낮춥니다. B가게에 고객을 뺏길까 봐 그러는 거죠. 이게 시장경쟁의 기능입니다. 시장은 각자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할 뿐인데 놀랍게도 서로가 윈윈 합니다. 시장에서 가격은 각자가 서로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유도합니다. 시장에서 사람들은 가격이 보내는 신호를 보고 자신의 행동을 조정합니다.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1916~2001년)의 말로 표현하면 ‘가격은 인간의 선택을 쉽게 만들어주는 단순화 도구’인 동시에 가장 빠르고 정확한 정보의 전달 수단, 통신 수단입니다. 세상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고 어디로 굴러가고 있는지에 대한 모든 정보가 가격에 축약됩니다. 그래서 섣불리 가격을 건드리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 최저임금제, 분양가상한제, 농산물 가격 안정대책 등 수많은 가격 제한 조치들을 하는데요.
 
  “가격이 높다느니 낮다느니 하면서 가격을 규제하려고 하는데 이런 말은 개인 차원에서는 타당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컨대 강남 아파트 가격이 최고점을 찍었다는 뉴스가 나오는데도 그 아파트를 구매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판단이 틀릴 수 있지만, 앞으로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하기에 그런 겁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가격은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가치 판단 결과를 집약한 수치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가격은 신성하다’ ‘함부로 건드리면 절대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어떤 것의 가격을 규제하면 그 효과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경제 전체로 파급되며 무수한 부작용을 야기합니다. 예컨대 분양가상한제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시장 스스로 문제 해결책 찾아내”
 
2020년 7월 25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열린 ‘소급적용 남발하는 부동산 규제 정책 반대’ 집회 참가자가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조선DB
  ― 그런 조처를 한다고 환호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가격은 최대한 원가(原價)에 근접해야 하는 것으로 혹은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어야 한다고 보면 잘못입니다. 시장에서의 가격은 오로지 수요와 공급이 결정합니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가격은 오르고, 반대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가격은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힘으로 가격을 내리거나 올리면 왜곡이 생겨날 뿐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거듭된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매매가, 전세, 월세가 오르기만 했던 이유가 뭐였습니까. 정부는 수요를 규제하면 가격이 내릴 줄 예상했지만, 국민은 공급이 늘어나지 않는 한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했습니까?”
 
  ― 가격은 그냥 시장에 맡겨야 하는 거군요.
 
  “가격이 통제되면 시장은 중병이 들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합니다. 시장에는 여러 문제가 있고 끊임없이 생겨나지만, 그와 동시에 시장은 스스로 문제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시장은 자생적 조정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 너무 시장만능주의 아닙니까.
 
  “글쎄요. 저는 시장의 기능은 그저 경이롭고 신비하다는 말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사고 싶은 옷이 시장에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습니다. 우리 집 근처의 식당 음식은 영 내 입맛에 맞지 않는데 사람들이 몰리는 게 신기합니다. 반면 길 건너편 식당은 어찌 내 입맛에 꼭 맞을까요? 더 놀라운 사실은 옷가게나 식당 주인이 나를 위해서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각자 돈 벌어서 자기 자식들은 고생 덜하며 살도록 그런 일을 하는데 그것이 제게 유익하니 이보다 기묘한 이치가 어디 또 있겠습니까. 이것이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이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신비입니다.”
 
 
 
“경쟁적인 시장에서 사익은 공익으로 전환”

 
  ― 그 시장을 무대로 사기치고 나쁜 일 하는 부류도 많습니다.
 
  “있죠. 먹는 음식을 갖고 장난치는 식당이 있다고 칩시다. 그 식당이 잘나갈 리 없습니다. 반(反)기업 정서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은 그저 ‘돈 벌려고 혈안이고 자식에게 상속하려고 나쁜 짓만 골라 하는 존재’라고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그런 회사들이 없지 않습니다. 기업의 사익(私益) 추구를 비난하면 안 됩니다.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없으면 무한히 다양한 물건과 서비스들이 무한히 다양한 가격과 품질로 시장에 쏟아져 나오지 않습니다. 경쟁적인 시장에서 사익은 공익(公益)으로 전환됩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손’이 부리는 놀라운 조화입니다.”
 
  ― 시장이 달리 추구해야만 할 가치,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없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시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無)목적성입니다. 시장은 어떤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존재가 아닙니다. ‘시장은 공평해야 한다’ ‘정의로워야 한다’ ‘시장은 냉혹하고 비열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시장은 인격적 존재가 아닙니다. 시장을 두고 시장은 비인간적이라거나 비윤리적이라고 비판한다면 어불성설입니다. 시장은 그냥 상호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얻도록 하는 일만 하는 겁니다. 밀턴 프리드먼이 ‘시장이 비난받는 이유는 어떤 일을 못 해서가 아니라 일을 너무 잘 해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약이나 성매매의 성행을 시장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많지만, 마약 파는 사람이 나쁘고 성매매하는 사람이 나쁜 것이지, 시장을 탓할 이유는 없습니다. 서로의 필요와 필요를 잘 연결해주기만 한다면 그 시장은 잘 작동하는 시장입니다.”
 
 
  정부는 자애롭고 유능하다?
 
(왼쪽 사진) 김현미 전 장관이 2020년 7월 10일, 부동산 후속 대책을 발표하는 모습. (오른쪽 사진) 김상조 전 청와대정책실장(왼쪽)이 2019년 7월 10일, 최저임금제 등 현안에 대해 발언하는 모습. ‘정책’과 ‘제도’ 모두 규제의 하나다. 사진=조선DB
  ― 좌파 정부는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시장을 부정하고 혐오하는 좌파 사람들은 시장이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의 달성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시장을 죽이는 일입니다. ‘대학교 앞에는 서점이 있고 문구점이 있어야지, 호프집이 웬 말이냐’라고 한탄하며,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결함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이들 생각대로 하면 경제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같은 생산요소와 자원이 더 가치 있게 사용될 때 경제는 성장합니다. 대학가에 맥주 가게가 즐비한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그 비싼 땅을 영영 온라인 서점을 선호하는 탓에 날로 장사가 되지 않아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인 오프라인 서점이 차지한 채로 있으면 그 땅의 사회적 가치는 줄어듭니다.”
 
  ― 정부가 시장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겠다는 건 무식한 생각일까요.
 
  “시장, 시장경제,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왜 이렇게 저렇게 기능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하지도 않으려는 사람들이 반자본주의자, 사회주의자들입니다. 시장이 문제투성이라면 진즉에 인류 역사에서 사라졌어야 맞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시장은 날이 갈수록 크고 넓어져서 세계가 하나인 시장으로 고도화됐습니다. 인간의 삶의 질(質)이 향상되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됐습니다. 세계화의 어두운 구석도 생겨나고 있지만 그런 나라는 대부분 공산국가거나 독재국가입니다. 시장이 작동하는 나라, ‘법의 지배’가 살아 있는 나라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일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 정부가 실패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죠.
 
  “개입주의자들의 암묵적 가정은 ‘정부는 자애롭고 유능하다’입니다. 이 가정은 엉터리입니다. 공직자의 부정부패, 정부의 무능과 독선, 무수한 정책 실패를 보면서 어떻게 정부는 자애롭고 유능한 존재라고 우길 수 있습니까. 튀르키예(터키)-시리아 국민들이 가공할 지진 사태 속에서 망연자실한 채 ‘정부는 어디 있느냐’고 물으며 울부짖지 않던가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선택지는 불완전한 시장과 불완전한 정부 간의 선택뿐입니다. 시장이 불완전한 것도 사실이지만 불완전하기는 정부도 마찬가지라는 균형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이 둘의 조합 여하야말로 정책의 성패를 좌우하고, 한 나라의 체제와 이념의 성격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입니다.”
 
 
  규제로 인한 비용
 
  최 교수는 문득 “정 기자는 오늘 인터뷰 장소에 오면서 규정 속도대로 운전했나요?”라고 물었다.
 
  “과속 단속 카메라가 설치된 구간에서는 규정 속도를 지키다가 그 구간을 벗어나면 다른 차들과 속도를 맞춰서 운전하지 않았나요? 이것이 규제가 집행되는 현장의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의 규제는 대략 1만5000건 안팎입니다. 퀴즈를 하나 드릴게요. 어느 날 이 모든 규제가 사라졌다고 합시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완전히 뒤바뀔까요? 온갖 범죄가 난무할까요?”
 
  ―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되면 세상이 10% 내외 달라질 것으로 봅니다. 규제가 100% 실행되는 예는 없습니다. 규정 속도가 있지만 딱지를 떼이지 않는 선에서 지키는 수준이니 60~70% 정도 실행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식당에서 금연하라는 규제가 없어져도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우지 않을 겁니다. 담배 연기를 싫어하는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입니다. 식품위생 규제가 사라져도 식당 주인은 예전 방식대로 조리할 겁니다.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질서와 시민의식 수준이 그 정도로 향상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장의 힘이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담배 냄새나는 식당, 식중독을 일으키는 음식을 파는 식당에는 가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규제를 하느라 우리 국민과 기업이 규제 때문에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2019년 기준으로 300조원이나 되니, 규제가 과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규제에 대해 볼멘소리를 제일 많이 하는 게 재계(財界)다. 경제계는 ‘우리나라에서 사업하기 어려운 이유’로 늘 과도한 규제를 꼽는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지난해 말 발표한 〈중소기업 규제혁신을 위한 정책지원방안〉 보고서를 보면, 응답 기업의 44.6%가 “규제로 애로사항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해 5월에 〈우리나라 주요 신산업 규제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과도한 규제로 우리나라 신산업 경쟁력이 점점 뒤처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업들이 엄살을 떠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우리나라가 기업을 경영하기 안 좋을 정도로 규제가 많은 것일까.
 
 
  “세계 6위의 규제강국”
 
  최병선 교수는 ‘우리나라는 규제가 매우 강한 나라’라고 말했다. OECD의 상품시장규제지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제6위의 ‘규제강국’이고, 세계은행이 발표하는 기업환경평가(Doing Business)에서도 중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각국의 규제실태를 조사해 계량 분석한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규제가 무턱대고 강하기만 한 국가가 규제가 비교적 합리적인 국가의 수준으로 규제를 개혁하면 매년 경제성장률을 1.4~2.1% 정도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여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경제성장률이 1% 선에 머물지 않을까 우려되는 지금 우리는 이 분석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규제만 제대로 개혁해도 2% 가까이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 척박한 경영여건 속에 있는 우리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 보면 경이로울 정도네요.
 
  “우리 국민이 매우 영리하고 약아서라고 생각합니다. 나쁜 의미는 아니고요(웃음). 지켜야 할 규제는 지키면서 과한 것은 적당히 대처하는 요령이 뛰어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도로에서 운전할 때 그러는 것처럼요.”
 
 
  DJ 정부 때 규제 50% 없애
 
  평생 교단에 서온 최병선 교수는 규제 정책을 짜는 정부에 여러 형태로 자문하고 참여해왔다. DJ 정부 시절인 1998~1999년에는 초대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고, 한국규제학회 설립을 주도해 2002~2004년까지 초대회장을 지냈다. MB 정권 때인 2008~2010년에는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을 역임했다.
 
  ― 규제개혁 측면에서 어느 정부가 잘했다고 평가하십니까.
 
  “경제 정책 영역에서만큼은 전두환 대통령을 높게 평가합니다. 그때 경제 정책의 기조를 안정, 자율, 자유화로 대전환했죠.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말했다는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은 규제 완화 쪽으로 경제의 기본틀을 고쳐 잡았습니다. 당시 규제개혁은 민원 간소화 차원에서 추진됐을 뿐이지만 경제 정책의 전환이 대세가 됐습니다. 노태우 정부 들어서는 ‘경제 규제 완화’라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행정쇄신위원회를 중심으로 규제 완화 노력이 계속되었습니다만 성수대교와 삼풍아파트 붕괴 사건 등이 터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YS 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고건 총리는 ‘행정의 달인’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규제개혁추진회의를 만들어 주재했는데 ‘규제개혁은 산발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라 항구적인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제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제도 기안의 책임이 제게 떨어졌습니다. 후에 전경련 부회장을 지낸 이승철 박사와 제가 행정규제기본법 초안을 만들었습니다. 공무원들이 고치기는 했지만, 그 초안이 현행 행정규제기본법의 모태가 됐습니다. 김대중(DJ) 정부 출범과 동시에 이 법이 통과되었고, 현재의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가 발족됐습니다.”
 

  ― DJ가 규제개혁은 잘했다고 보십니까.
 
  “높게 평가합니다. ‘현행 규제의 50%를 없애라’고 내각에 지시했고, DJP 공동 정부의 실세 총리였던 김종필 총리는 직접 회의를 주재하면서 규제개혁을 독려했습니다. 총리가 회의를 주재하니 정부위원인 6개 부처의 장관이 모두 다 참석할 정도로 열의가 넘쳤었습니다. 이후 이런 일은 거의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 정말 절반을 줄였습니까.
 
  “1998년 초에 위원회가 구성돼서 운영된 지 1년 만에 실제로 규제 건수를 절반으로 줄였습니다. 후임인 이한동 총리 때까지도 규제개혁은 계속됐는데, 대통령의 규제개혁 의지가 강했고, 총리의 힘도 막강했지만, 다수의 분야별 전문위원회를 두는 등 예산과 인력도 충분히 제공됐기 때문에 그런 목표의 달성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뭔지 압니까? 규제를 확 줄였지만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규제개혁위, 과도한 규제 막는 수문장 역할
 
  ― 노무현 정부 때는 어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기 규제를 마구 완화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는데 경제가 계속 어렵고 청소년 실업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규제개혁을 독려하는 쪽으로 선회했습니다.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운영하고, 어느 때보다도 새로운 개혁 기법들을 도입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습니다.”
 
  ― 이명박 정부 때는 규제개혁위원장으로 활동하셨죠.
 
  “규개위에 주어진 막강한 권한을 제법 행사했습니다. 행정부처가 만드는 모든 신설 또는 강화규제 법안은 규개위의 규제심사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법제처,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이 권한을 이용해 악성 규제를 막는 수문장 역할을 꽤 했다고 자부합니다. 규제심사 단계에서 법제화가 가로막힌 규제가 무수했습니다.”
 
  최 교수는 일례로 ‘저가항공 시장 진입 제한’을 들었다. 당시 시장에서는 진에어, 제주항공 등 저가항공사들이 시장 진입을 추진했지만,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기존 대형항공사가 반대하고 있었다. 명분은 ‘저가항공사 비행기는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였다. 최 교수는 “저가항공사라고 땅에 떨어질 비행기를 갖고서 사업을 한다고 하겠느냐?”며 반대 주장을 물리쳤다.
 
  또 한 번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GMO 콩 등의 원재료를 사용하는 모든 식품에 그 사실을 라벨에 명기할 것’을 의무화하는 규제를 만들려고 했다. 당시 몇몇 과자류의 안전성 문제가 대두하자, GMO 식품으로까지 불똥이 튈까 싶어서 식품위생법 개정을 통해 이 규제를 도입하려 한 것이었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주한대사관을 통해 ‘이 규제를 하지 말아줄 것’을 공문으로 요청하였다고 한다.
 
  “제가 미국대사관으로부터 그런 요청을 받아본 것은 그게 유일합니다(웃음). 미국에서는 GMO 식품이 별 탈 없이 유통되는데 왜 유독 한국에서는 유전자 변형 식품이라고 일일이 라벨에 표시해야 하느냐는 거죠. 각계의 의견을 취합해보니 GMO 식품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학계의 통일된 의견이 없었습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도 않은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알려봐야 무슨 득(得)이 있겠나? 공연한 염려를 불러일으키고 업계에 부담만 준다 싶어서 그 제안도 거절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조직 개편 안 한 것은 잘한 일”
 
《규제 vs 시장》
  ― 새롭게 만들어질 뻔했던 규제를 세상에 내놓지 않으셨군요.
 
  “MB 정부는 규개위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공약대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이하 국경위)를 설치했습니다. 당연히 그리로 힘이 확 쏠렸습니다. 규개위 민간위원장으로서 맘이 편치 않았는데, 저는 그 위원회에 위원으로 끼지도 못하게 돼 있더라고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사공일 당시 위원장을 찾아가 사정했습니다. ‘이 위원회에서 하는 일을 잘 모른 채 어떻게 규개위가 힘을 보탤 수 있겠느냐.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규개위도 보조를 맞추어 역할을 다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요. 선선히 받아줬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개혁과제는 따로 기관을 신설해 추진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정치적 계산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꼭 그래야만 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있고 경험이 축적된 기관을 더 잘 활용할 생각을 먼저 해야 좋습니다.”
 
  ― 규제 전문가를 떠나 행정학자로서 답답하신 모양입니다.
 
  “규제개혁을 위한 조직과 기관의 신설에 대한 제 의견입니다만, 저는 대통령마다 행정개혁을 한다고 조직 개편을 앞세우는 것에 대해 강한 반대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고려대 김영평 명예교수와 함께 조직 개편을 비판하는 《행정개혁의 신화와 논리》라는 책도 냈습니다. 조직을 개편한다고 관료들의 행태나 의식이 바뀌지 않습니다. 부처 명칭 하나 바꾸는 일에도 세금 몇억원이 쉽게 날아가는데 조직이 안정되고 제 할 일을 제대로 하게 만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정부 조직을 거의 바꾸지 않기로 한 결정을 높이 평가합니다.”
 
 
  한시적 규제완화 조치
 
  ― 이명박 대통령의 관심과 지원이 상대적으로 적어진 탓에 하실 일을 못 하시지는 않았나요.
 
  “제 할 일은 제법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한시적 규제완화 조치입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와 경제가 어려움에 처했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규제완화 때문에 금융위기가 초래됐다는 주장이 득세하는 판에 규개위원장이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죠. 대통령이 주재하는 장차관 회의가 열렸기에 제가 ‘민간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가격을 낮추고 서비스 질을 높이는 등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규제를 만들어내는 정부부처가 손을 놓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관련 법들을 고칠 시간이 없으니 한시적으로라도 풀어줄 수 있는 규제들을 찾아보겠다’고 했습니다.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 만한 규제 1000여 건을 검토해 약 300건의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 적용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공장 증설 건폐율, 용적률의 한시적 완화였습니다. 공장을 늘리고 싶었는데 규제에 막혔던 기업들이 덕분에 공장 증설 투자를 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약 30조원에 달하는 추경예산을 편성해 조속 집행하기도 했지만, 한시적 규제완화 조치도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지 않도록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자부합니다. 이걸 나중에 논문으로 만들어서 OECD에서 발표했더니 다들 입을 벌리더군요.”
 
  ― 왜요.
 
  “법률 위반이니까요. 다른 국가 대표들은 ‘자기들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엄정한 법의 잣대로 보면 위법·위헌이라고 볼 수 있지만, 경제위기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시도해볼 만한 조치 아닙니까. 놀랍게도, 아니 고맙게도, 제게 시비를 건 사람은 없었습니다.”
 
 
  ‘쓰레기종량제’는 좋은 규제의 전형
 
롯데마트 월드점이 2010년 5월 2일, 쓰레기 종량제봉투를 선보였다. 사진=조선DB
  《규제 vs 시장》 책이 제시하는 규제 방식은 다양하다.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를 위해 흔히 사용되는 자동차 정기검사, 엔진의 성능검사 등과 식품 안전을 위해 사용 가능한 원료를 제한하고 유통 과정에서의 사업자 준수 사항을 정해 규제하는 등의 방식은 ‘투입요소기준 규제방식’이다. ‘성과기준 규제방식’은 자동차 배출 CO₂ 규제에서 30g/km 이하 등 피규제자가 달성해야 할 최소 목표치만 설정하고 이 기준치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피규제자의 자율적 선택에 맡기는 방식이다.
 
  “투입요소기준 규제방식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데 가장 문제가 많은 규제 방식입니다. 초보적인 인과관계 분석에 기초한 상식적인 규제 방식이기도 하지만, 비용 대비 효과가 형편없이 낮습니다. 사고나 사건의 발생 이후 유사 사고의 재발 방지, 예방에 초점을 맞춘 규제들이 이에 속합니다. 최근에 일어난 소음방지벽 화재사건 이후 소재를 불연재로 바꾸게 하는 규제를 도입하려 한다는 보도를 봤는데 저는 반대입니다. 국토부가 이런 대책을 내놓은 이유는 위험성을 과장하는 여론과 언론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런 사고가 나기까지 도대체 뭐를 하고 있었느냐’는 책임 추궁을 모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막강해 보이는 규제를 채택하는 겁니다.”
 
  ― 제대로 된 규제는 없나요.
 
  “많지요. 규제 기법도 계속 진화하고 있으니까요. 쓰레기종량제가 대표적입니다. 법적 강제가 아니라 경제적 유인을 제공해 자발적으로 규제에 순응하도록 하는 경제유인규제방식의 규제입니다. 내용이 참 간단합니다. 쓰레기를 배출하려면 반드시 구청이나 군청에서 파는 규격봉투를 사용해야 하고, 불법투기를 하면 과태료 100만원을 물어야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쓰레기 감량을 강제하지 않습니다. 가구당 혹은 업소당 배출허용량을 정하는 방식의 성과 기준도 없습니다. 놀랍게도 이 제도의 시행으로 쓰레기 배출량이 20% 정도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최근에 쓰레기 배출량이 다시 크게 늘고 있다는데 이 문제는 규격봉투 가격을 조금만 인상하면 생각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 단순한 규제가 통했다는 거네요.
 
  “세상에는 역설이 많습니다. 세상이 복잡해져 갈수록 사람들은 법 제도도 따라서 당연히 촘촘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복잡해져 갈수록 규칙은 더 단순해져야 합니다. 유럽 축구 리그는 정말 볼 만합니다. 심판이 휘슬을 잘 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 파울에 관대하다는 건가요.
 
  “선수를 치명적으로 다치게 할 파울이 아니면 휘슬을 불지 않습니다. 화장실 가기가 겁날 정도예요. 그 순간에 골이 터질 수 있거든요(웃음). 프리미어리그 선수들 몸값이 보통 몸값입니까. 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작은 파울에도 휘슬을 불어야 마땅하지만 그러면 게임이 재미가 없고 장사가 안 됩니다. 휘슬을 자주 불지 않으면 태클은 늘어납니다. 그러면 유명 선수들은 단순히 공만 잘 다루는 것이 아니라 태클을 피하는 훈련을 더 열심히 합니다. 게임규칙이 단순할수록 선수들의 기량은 더욱 올라가고 게임은 재미있어집니다. 규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잡한 세상을 쫓아가려면 규제를 늘리는 게 아니라 풀어줘야 합니다.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강력한 시장의 힘, 시장의 규율에 사회의 운영을 맡겨야 합니다.”
 
 
  “행정개혁의 핵심은 규제개혁”
 
  ― 윤석열 정부는 규제개혁의 의지가 보입니까.
 
  “그렇다고 봅니다. 집권 초기에 비하면 요즘 규제개혁 얘기가 상당히 뒤로 밀리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연금개혁과 더불어 노동개혁과 교육개혁을 3대 개혁으로 내세우고 있고, 최근에 공직사회의 개혁을 추가했는데, 노동개혁, 교육개혁, 행정개혁의 요체는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한 규제개혁입니다.”
 
  ― 모든 것은 규제개혁으로 귀결된다는 건가요.
 
  “정부개혁, 행정개혁의 핵심은 규제개혁입니다. 규제개혁은 시대의 변화, 기술의 변화에 발맞추어 정부와 민간, 그리고 시장 간의 역할 분담을 재조정하는 문제입니다. 그중에서도 정부의 역할을 올바로 정립하는 게 핵심입니다.
 
  MB 정부 때 배추 파동 얘기를 해보죠. 배추 한 포기 가격이 1만원으로 치솟으면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해 여름에 폭우로 배추가 많이 썩어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론이 비등하자 정부가 나서서 중국에서 배추를 수입하는 등 부산을 떨었습니다. 배추 가격은 정부가 관여할 성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장이 알아서 움직입니다. 실제로 당시 식품유통업체들은 김장철에 대비해 이미 중국 농가와 계약 재배에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정부가 뒤늦게 뛰어들어 중국산 배추를 잔뜩 수입했는데 결국 남아돌았고, 그해 가을 배추 농가는 배추 값이 폭락하자 밭을 갈아엎는 일도 생겨났습니다. 시장에 맡겨두면 될 일을 여론에 떠밀린 정부가 뛰어들어 낭패를 본 전형적인 사례죠.”
 
 
  “시장에 더 많은 일을 맡겨야”
 
  ― 정부의 역할을 정확히 알라는 얘기로 들립니다.
 
  “정부는 꼭 정부가 해야 하고,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일, 민간과 시장이 더 잘하는 일, 그런 분야에는 관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민간 주도 경제사회로 가는 길입니다. 시장의 기능을 신뢰하고 시장에 더 많은 일을 맡겨야 합니다. ‘손톱 밑 가시’니 ‘모래주머니’니 하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합니다. 규제개혁은 국가 운영의 틀과 기조를 바꾸는 일입니다. 정부가 나서야만 세상이 옳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가 나서면 안 되는 일이 훨씬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정부가 욕심을 부리면 안 됩니다. 책임지지 못할 것을 책임진다고 말하는 정부만큼 무책임한 정부는 없습니다. 이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 눈이 부신 신기술 범람의 시대에 우리가 규제개혁에 노력을 집중해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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